제2장 4


 

4

 

조미대결이 극한점에 이르게 되자 각국의 정치계, 언론계에서는 조선의 정치정세, 특히는 김일성동지의 동향에 주의를 집중하게 되였다.

원래 지난 시기에도 적들의 정탐기관은 물론이고 우리 나라를 찾는 수많은 정객들과 인사들은 수령님께 각별한 주의를 돌리면서 무엇이든 알아내려고 애썼다. 심지어 그들은 그이의 건강문제에 대해서까지 류다른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김일성동지의 건강문제에 대하여 세계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있었다. 어느 나라에서든지 수반의 건강문제는 중대비밀로 되여있지만 우리 나라와 같이 세계정치의 초점으로 되고있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였다.

세계초대국인 미국과의 대결이 극한점에 이른 이 시기 김일성동지의 기분은 어떠하며 조성된 사태를 놓고 그분께서 무엇을 생각하고있는가 하는것들이 그들의 큰 관심사로 되였다. 그러한 사람들중에는 재미교포 언론인인 리영숙이도 있었다. 그는 서방언론계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백악관 출입도 마음대로 하고있는 명류녀기자였다. 그는 며칠전에 우리 나라에 와서 수령님께 접견을 요청하였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영숙의 요구를 수락하시였다. 일군들은 이때에도 그이의 건강을 념려하여 그의 접견요청을 보류하도록 제기하였으나 그이께서는 지금 세계가 조미관계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억측을 많이 하고있는데 기자들을 만나 우리의 립장을 똑똑히 밝혀주는것도 나쁘지 않다, 더우기 리영숙으로 말하면 내가 이미 만나본 기자이며 그가 서방언론인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우리 동포가 아닌가고 뜨겁게 말씀하시며 그 일도 역시 사업이 아니라 하나의 휴식과 같은것이라고 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영숙을 접견하시기에 앞서 조선에 와있는 손정도목사의 아들 손원태도 만나주시였다.

10대의 학창시절, 길림에서 동생처럼 데리고 다니시던 손원태와는 60여년의 긴 세월을 헤여져계시다가 이마적에 와서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되시였다. 청년시절에 잠간 인연을 맺었던 손원태를 친동생처럼 맞아주고 위해주시는 그이의 그 인간미, 의리심을 보고도 세상사람들은 감동을 금치 못하고있는것이다.

하여 우리 인민들속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손원태가 이제는 인민들에게 친숙해진 유명한 인사로 되였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리영숙과의 회견은 금수산의사당의 면담실이 아니라 평양교외의 대동강기슭에서 있었다. 그이께서는 시원히 소풍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것이 좋을것 같아 거기에 장소를 택하시였다. 이곳은 대동강의 지류인 남강이 대동강과 합수되는 곳이였다. 넓은 삼각지점에 흰 닭알같은 자갈과 정갈한 가는 모래가 깔린 풍치좋은 곳으로서 김일성동지께서 즐겨 산책하시는 구역이였다.

이 회견은 장소가 이례적인것처럼 기자회견에서의 상례적인 일문일답의 형식을 취하지 않았다.

리영숙이 김일성동지의 첫 접견을 받은것은 지난해 평양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이 발표되였을무렵이였다. 공화국에서는 그 강령을 발표하고 남조선과 해외의 애국인사 100명에게 개별서한을 보내였는데 리영숙이 그때 그 100명 인사의 한사람으로서 커다란 충동을 받고 평양을 방문하였으며 수령님의 접견을 받았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리선생을 믿고 편지를 보냈더니 이렇게 만나게 됩니다.》하고 그를 손잡아주시였다. 리영숙은 그 손길에서 동포애의 따뜻한 정과 거대한 인력을 느끼였다. 지금도 그것은 다를바 없었다.

1시간으로 예견된 회견시간은 정치문제와는 관련이 없는 따뜻한 생활이야기로 많이 흘러가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영숙과 함께 자갈밭을 거닐면서 이야기하시였다. 그러나 이때 승용차들이 서있는 길가에서는 간호원 채순이 무척 초조한 마음으로 시계를 들여다보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일이 사업이 아니라 휴식이라고 즐겨 말씀하시지만 접견을 마치고 혈압을 재보면 언제나 혈압계의 눈금이 어방없이 올라가군 하였던것이다. 그렇다고 만류할수도 없는것이여서 채순이는 접견시간을 엄격히 지키게 하는것으로써 수령님의 건강을 담보하리라 속다짐하였다. 접견시간은 1시간이였다.

그런 사정을 알리없는 리영숙은 아무러한 초조감도 느끼지 않고 김일성동지께서 끼신 연한 밤색의 색안경이 매우 보기 좋으며 그이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이의 말씀을 듣고있었다.

《리선생, 나의 부관이 그러는데 선생은 정구를 매우 즐긴다면서요? 그래서 정구장이 달린 숙소를 마련해드렸습니다. 그래 우리 나라에 와서도 정구를 칩니까?》

《주석님의 성의는 고맙습니다만···》

60이 가깝다고 하지만 아직 40대의 녀성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보통키에 세련미가 느껴지는 리영숙은 어쩐지 당황해하며 대답을 올렸다.

《왜 그럽니까? 치지 않는 모양이구만.》

《솔직히···》

리영숙은 우리 나라에 와서 정구를 치고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가 미국을 떠날 때보다도 정세는 더욱 험악해졌던것이다. 그는 우리 나라의 통신방송을 듣는외에 반도체수신기로 서방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이미 BBC방송은 유엔안전보장리사회 5개 상임리사국중 중국을 제외한 4개나라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제재원칙》에 합의하였다는것을 보도하였다. 한편 방송은 미국, 영국, 프랑스, 로씨야대표들이 《제재일괄안》을 작성하기 위한 일환으로 안보리사회 상임리사국들과 협의하였다는 소식도 전하였다.

NHK방송은 미국회상원의 공화당계 의원들이 공화국에 대한 《군사적타격》을 요구하고있다고 하였다. 미국회상원의원인 미첼은 《북조선이 핵무기개발능력을 가지기전에 애초에 제압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러자면 공중무력으로 핵시설을 선제타격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무력을 동원하여 북조선을 제압할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떠들었으며 다른 의원들도 《우리는 제재와 함께 군사적조치도 응당 준비해야 한다.》고 하였다고 전하였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 곧 그의 마음을 짚어내시였다.

《허허··· 선생은 우리 나라에 와서 좀 긴장해진게 아닙니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부터라도 정구를 시작하십시오. 아무리 좋은 운동이래도 끊지 말고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체력단련에 효험이 없습니다.》

《네, 주석님의 분부시라면···》

《나의 분부라고 할것이 있습니까. 자신을 위해서지요.》

《그렇지만 저는 주석님의 분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렇게 말씀올리는 리영숙은 김일성주석께서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실만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있는것을 의외롭게 여기였다. 그이의 인상과 표정, 어느 한 구석에도 나라의 정세로 하여 오는 불안과 위구를 찾아볼수 없는것은 이상한 일이였다.

그렇다면 이 나라의 운명에 대하여 안심할수 있단말인가. 그때문에 그는 김일성주석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질문을 삼가하려던 본래의 생각을 바꾸고 《주석님께서는 조선반도의 사태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하고 자기가 목적하고 온 그 문제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려고 하는데 김일성동지께서 여전히 운동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시였다.

《나는 75살까지도 정구를 쳤습니다. 그후부터는 수영을 하고있습니다. 건강에는 수영이 좋은 운동입니다. 리선생은 정구를 계속하십시오.》

리영숙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올리였다.

만약 리영숙이 이것이 김일성동지와의 첫 회견이라면 《지금 주석님께서는 일부러 복잡하고 머리아픈 정치문제에 대한 화제를 피하시는게 아닌가?》하고 오해할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김일성동지께서 진심으로 자기에게 운동을 권고하신다는것을 피부로 느끼고있었다. 실지 김일성동지의 그 말씀은 한갖 외교도 아니고 일부러 차리는 인사치레도 아니였다. 그것은 그이의 따뜻한 인정미로부터 흘러나오는 진심의 말씀이였다. 그이께서는 외국의 그 어떤 정객이나 인사들을 만나는 경우에도 언제나 그의 건강, 신상문제부터 물으시고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조언을 주군 하시였다.

동족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시였다. 동족으로서의 명류인사들을 높이 내세우면서도 그들의 신상에 대해서는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 굽어살피시는것이였다. 리영숙에 대해서도 그러하시였다. 그가 아무리 이름있는 기자라고 할지라도 수령님의 눈에는 이국살이로 고생하는 한사람의 동족이였다. 그이께서는 조선의 한 녀성이 서방언론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있는것을 자못 대견하게 생각하시면서도 한편으로는 제 나라, 제 땅을 떠나 해외만리에서 향수의 설음을 안고 지내고있는것을 못내 가엾이 여기고 동정하시였다.

촉기 빠르고 감각이 예민한 서방의 명류기자가 그것을 리해하지 못할수 없었다. 더구나 그는 김일성동지를 두번째로 회견할뿐아니라 이미 려운형의 딸을 비롯하여 김일성동지와 류다른 인연을 맺고있는 사람들을 여러명 만나본 해외기자였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그이께서는 해외동포들을 제일 가엾이 여기며 동정한다고 하시였다.

1946년에 수령님의 댁에서 그이와 한식솔처럼 지낸 려운형의 딸은 그때를 눈물겹게 추억하면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해방후 어느날 《설음중에서도 제일 큰 설음은 이국살이설음이야. 빨리 조국을 통일시켜 이국살이하는 동포들도 다 데려다가 집주고 밥주고 일줘서 잘살게 해야겠는데··· 신심을 가지고 하면 끝이 있겠지.》하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리영숙은 그것을 상기하고 새삼스레 김일성동지를 바라보았다.

50년전 젊은 시절에도 나라의 통일때문에 애쓰며 마음고생하시던분이 머리에 은발을 얹으신 지금도 의연히 분렬된 조국때문에 마음고생을 하신다. 50년전에 저이는 《신심을 가지고 하면 끝이 나겠지.》하고 말씀하시였는데 아직도 그 끝은 묘연하지 않는가.

리영숙은 종잡을수 없는 생각에 잠겨있었다.

《뭘 그리 생각하십니까? 신색이 좋지 못합니다. 혹시 몸이 편찮은게 아닙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영숙의 얼굴을 근심스럽게 지켜보시였다.

《주석님, 그런게 아닙니다.》

리영숙은 얼굴을 살짝 붉히였다. 그리고 이제는 지체없이 자기가 목적한바를 터놓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주석님, 저는 오늘 사태에 대한, 조미관계에서 빚어진 현 사태에 대한 주석님의 이야기를 듣고싶습니다.》

《정세말입니까?》

반문하시는 김일성동지의 얼굴에서 돌연 웃음이 가시여졌다.

그이의 심각해진 표정을 보는 리영숙의 눈에도 긴장이 어리였다.

《그러니 기본문제를 이야기하자는거지요?》

《네···》

리영숙은 김일성동지께서 자기의 회견목적을 알고계셨구나 하고 생각하며 대답을 올리였다.

《미국사람들때문에 우리 나라 정세는 복잡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 공화국에 대해서 별의별 말을 다하고있습니다. 위협도 하고 걸고들기도 하고 또 세상에 터무니없는 랑설을 퍼뜨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선속담에 달보고 짖는 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온밤 멋없이 짖어대다가 제풀에 지쳐버리지요.》

리영숙은 그 말씀에 놀라움과 함께 새로운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김일성동지께서 신심에 넘쳐있고 정세를 락관하고계신다는 생각이 가슴을 쳤다. 그렇다면 그 신심과 락관은 무엇에 기초하고있는가. 리영숙은 마치 캄캄한 어둠속에서 번개불은 없이 먼 우뢰를 들은것과 같은 느낌이였다. 분명히 하늘땅을 들었다놓는 우뢰는 울렸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일어났다는것인가.

리영숙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나는 기자인 선생이 관심을 가지는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할것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같은 조선사람으로서 선생과 한가지 의견을 나누려고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갔구만. 허허···》

그이께서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웃으시였다. 그러시는 그이를 바라보며 리영숙은 그이께서 회견시간을 엄밀히 타산하고있으며 자기가 질문을 제기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문제를 세우고계신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의문과 함께 새로운 기대를 가지면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였다.

《우리는 지난해 핵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의 대결이 가장 첨예하게 되였던 때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했고 이어 선생도 아시는 조국통일 10대강령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세는 다시 험악해졌습니다. 선생은 지난해에도 그랬거니와 이번에도 정세가 편안치 않은 때에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이에 대하여 나는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리영숙은 그이의 뜻밖의 찬양에 당황해졌다. 자기에게는 찬사를 받을 아무런 명분도 있을것 같지 않았기때문이였다. 그는 서방세계에서 성공한 녀성으로서 미국의 어느 신문사주필이였다. 1960년대 《한일회담》의 조기타결로써 민족을 오욕케 한 박정희에게 침을 뱉고 남조선을 떠난이래 자신의 명예를 위한 서방세계의 실력전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고 《한국》에 대한 경멸과 반발심을 품고 미국인으로 완전히 귀화하여 국적까지 바꾸었다. 이러한 그는 그사이 민족은 별로 안중에 두지 않았다. 두번에 걸쳐 평양을 방문하면서도 외국기자의 위치에서 취재라는 명분만을 내세웠다. 그랬기때문에 김일성동지께서 사의를 표시하시자 당황해졌고 얼굴을 붉히는것이였다.

그러면서도 리영숙은 김일성동지의 말씀을 듣자 마음속으로 자부심을 느끼였다. 그의 가슴속에도 그자신이 인정하든 안하든, 또 평양방문에 어떤 명분을 세웠든 민족의 운명에 대한 우려가 자리잡고있었던것이다. 사실 그의 두번에 걸친 평양방문은 민족대단결을 리념적기초로 하고있는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에 대한 공감에서 출발한것이라고 할수 있었다.

물론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점을 평가하신것이였다.

《고맙습니다, 주석님.》 리영숙은 진정을 담아 답례를 드렸다.

《내가 선생과 의견을 나누자는것은.》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진지한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지금 나는 우리 나라의 정세가 험악해질수록 조국통일에 대하여 더욱 절박하게 생각하고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불안한 정세는 모두 국토의 분단에 원인이 있습니다. 나는 선생의 고견을 듣고싶습니다. 어떻습니까? 어떻게 하면 조국통일을 앞당길수 있을것 같습니까?》

리영숙은 인차 입을 열지 못하였다.

뜻밖의 말씀이였던것이다. 그렇다고 견해가 없는것도 아니였다. 명석한 두뇌를 자랑하는 그는 김일성동지의 물으심을 《당신도 자기 민족을 잊지 않고있었을것이다.》라는 고마운 믿음으로 느끼고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당신은 자기 민족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진지한 타이름으로 생각하고있었다. 어쩌면 이미 보낸 편지, 조국통일 10대강령에 대한 의향을 물으시는것인지도 모른다.

《왜 대답이 없습니까? 선생도 조국통일에 대해선 늘 생각하고있었을텐데?》

《네, 그만큼 믿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사실 생각했습니다. 생각했다기보다 주석님의 통일방안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정세가 어려워질 때마다 망연자실하게 됩니다. 요즘의 정세를 보아도···》

리영숙은 말끝을 흐리며 김일성동지의 기색을 살피였다.

《그러니 선생은 오늘의 정세를 놓고 몹시 걱정하고있는것 같은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정세는 험악하지만 그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며 뜻밖의 일도 아닙니다. 우리는 애당초 인민들에게 조선혁명은 간고하고 복잡하며 장기성을 띠고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명백합니다. 고진감래라고 고생끝에 락이 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웃으시였다. 순간 리영숙은 그이께서 분명 모든것을 락관하고있으며 조성된 사태에 대하여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있다고 생각을 굳히였다.

그럴수록 의문은 더 커졌다.

김일성주석의 락관은 어디에 기초를 두고있는가. 무엇을 내다보고 락이 온다고 믿으시는가?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영숙의 눈빛에서 그 질문을 읽으신듯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가 믿는것은 인민입니다. 인민들은 자주적인 사상을 가지고 온 민족이 단결하면 세상에 무서운것도 없고 못해낼 일이 없다는 이 진리를 깊이 깨닫고있습니다. 그때문에 우리는 오늘과 같은 험악한 정세에서 오히려 통일의 서광을 내다보고있습니다. 미국사람들이 압력을 가할수록 인민들은 더욱 단결하고 분발하기때문입니다. 머지 않아 남반부인민들과 해외동포들까지도 반드시 한마음으로 뭉치게 될것입니다. 왜 그런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고 문득 화제를 돌려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체험한 사실을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항일혁명투쟁시기 인민들의 도움을 받아 군사물자를 운반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운반도중 적들과 맞다들려 불리한 정황이 생겨도 조선사람들은 끝까지 짐을 지고 따라왔지만 왜놈십장들은 례외없이 짐을 다 팽가치고 도망쳤다고 하시였다.

《피는 속일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때부터 민족의 피가 바로 민족단결의 제일조건이라고 생각하였고 민족성을 규정하는데서 기본이 피줄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조국통일을 위한 10대강령을 내놓은후 지난 1년간도 민족대단결의 제일조건으로 되는 민족의 피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였습니다. 우리는 엎어놓으나 제쳐놓으나 한피줄을 이은 단일민족입니다. 이 민족적의식을 자주적인 사상으로 각성시키면 단결과 통일은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지금 현실로 접근해가고있습니다.》

리영숙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있었다. 그는 이 순간 그이께서 단일민족이라는 그 평범한 어휘에 비상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신의 통일지론을 집대성화하고있는것 같아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보았다. 그러자 불현듯 그이의 말씀에 며칠전에 본 단군릉개건확장공사장이 삼삼히 떠올랐다. 여기서 그가 놀라게 되는것은 리영숙, 자기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허황한 신화적인물로만 생각해온 단군에 대하여 김일성주석께서는 각별한 관심을 돌려 연구하도록 오랜 세월을 두고 학자들을 일깨워 마침내 시조의 유골을 발굴하게 하시였다는 그 사실이였다.

리영숙이 보건대 어느 민족주의자들도 김일성주석처럼 우리 민족의 시조를 높이 받들고 관심한 사람이 없었으며 또 있을것 같지 않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리영숙은 웃음을 지으며 흥겹게 말하였다.

《주석님께서 민족의 혈통에 대하여 말씀하시니 말이지 지금 모든 해외동포들이 단군유골이 발굴되였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주석님, 그러니 이젠 우리가 곰의 후손이 아니란 말씀이지요?》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렇다고 하시며 크게 웃으시였다. 그리고는 조선사람들자신이 자기 조상을 그렇게 허황하게 생각하게 된것은 지난날 일본사람들이 단군말살정책을 쓴것과 많이 관련되여있다고 하시였다.

《주석님은 정말 큰일을 하셨습니다. 우리 동포들모두를 기쁘게 해주셨습니다.》

리영숙은 감동된 눈으로 김일성동지를 지켜보았다. 그는 단군유골을 발굴하게 하신 그 하나의 공적만으로도 김일성동지의 존함은 만대에 길이 빛나게 될것이라고 하였다.

《아닙니다. 나는 별로 한일이 없습니다. 우리 학자들이 수고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리영숙의 찬탄에 겸손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저으시였다.

《저는 주석님의 수고를 이미 들어서 알고있습니다. 주석님의 말씀대로 민족의 피를 민족단결의 제일조건으로 보신다면 단군유골발굴은 나라가 분단된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정치적의의가 대단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또 실지로 그것으로 하여 통일의 열기가 더욱 높아진것도 사실입니다.》

《의의가 있습니다.》하고 김일성동지께서 긍정하고 계속하시였다.

《그런데 단군유골을 정치적리용물로 삼고있다고 시비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누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조의 유골이 스스로 민족의식을 높여주게 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시조의 유골을 보고도 기뻐하지도 않고 그 앞에서 분렬된 조국을 놓고 생각하지 않는 조선사람이 있다면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김일성동지의 눈에 서늘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리영숙은 그지없이 인자하신 그이의 눈에서 처음으로 그런 빛을 보았다. 그이의 눈에 잠간 스치고 지나간 그 빛에서 민족을 욕되게 하는 사람들에 대한 준절한 질책을 읽을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민족의 피, 애국의 피를 놓고 자신을 새롭게 돌이켜보았고 지금까지 민족을 외면하고있은데 대한 자책으로 얼굴을 붉히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며 민족의 시조를 받드는 이 나라의 민심과 관련된 하나의 사실을 이야기하시였다.

최근 신라의 화가 솔거가 그린 단군초상진품이 남조선의 전라남도 해남군의 한 농민의 집에서 발견되였다. 이 그림은 1914년에 그 농민의 작은 할아버지에 의해 보관되게 된것이였다. 그의 작은 할아버지는 중학교시절 구월산으로 수학려행을 갔다가 《삼성사》에 있는 단군초상그림을 보고 이것을 그대로 두면 일제가 짓밟거나 없애버릴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품속에 감추어가지고 서울로 돌아갔다. 그는 8. 15후 재산을 털어 고향인 전라남도 해남군 금호리에 《삼신전》을 짓고 단군의 초상을 걸어놓게 하였다. 그러던중 1955년 국민들이 국조인 단군할아버지를 궁벽한 촌구석에 모셔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기부금을 모집하여 《단군전》을 다시 짓고 거기에 그림을 옮기였다. 그후 《단군전》의 초상을 다른것과 바꾸어가면서 단군의 진품초상을 지금까지 보존해왔다는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남조선의 한 농민의 이 소행은 남조선인민전체의 민심이라는것, 남조선에 단군을 숭배하는 100여만의 교인이 있다는 사실은 그것을 증명해주고있다고 하시면서 리영숙의 생각을 다시금 물으시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생도 민족의 피줄을 민족대단결의 제일조건으로 보는데 대한 우리의 의견에 동감하는것 같습니다.》

《예. 지당한 말씀입니다. 그러나···》하고 리영숙은 말끝을 흐리며 눈길을 떨구었다.

《달리 생각한단 말입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전혀 서두르지 않고 여유있게 물으시였다.

《뭐라고 해야 할지.》

《허허··· 숨김없이 말하시오. 그래서 시간을 낸건데···》

그이께서는 느슨히 미소를 지으시였다.

《제가 평양으로 오기전 쌘프란씨스코에서 교포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요?》 수령님께서 재촉하시였다.

《거기에서 한 교포학자가 하는 말이 모든 사람들이 김일성주석님께서 항일혁명투쟁을 벌리신데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하고 주석님을 존경하면서 마음을 합치면 통일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제보니 그 학자도 주석님의 자주사상을 따르자는 뜻인것 같습니다.》

《자주정신은 나의 사상이라기보다 우리 민족의 력사가 가르쳐준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인민들은 그길로 나가기마련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리선생?··· 앞날이 명백한데 뭘 근심할게 있습니까.》

리영숙은 이제 비로서 김일성동지께서 정세를 락관하고계시는 까닭이 무엇인지 알게 되였다. 결국 자기 인민과 자기 민족에 대한 믿음이 그이를 락천적이고 신심에 넘친 그리고 인민을 열렬히 사랑하시는 령도자로 되게 하였다.

(그런분이시기에 나같은 사람도 믿어주고 사랑해주시는것일가.)

결국 리영숙은 자기의 회견목적을 달성하였다고 말할수 있었다. 그랬으나 그는 김일성동지의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싶었다.

《현재 이북에서는 주석님대에 통일을 하자고 말하고있는데 그 말의 참뜻인즉 주석님이야말로 통일의 구심점이라는것입니다. 저는 이북민중들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말에 손을 내저으시였다.

《리선생,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는 통일의 구심점이 민족자주사상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선생이 이의를 내놓는다 해도···》

《주석님, 저는 기자로서 오늘의 회견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것을 말씀드리고있습니다. 훌륭한 령도자가 없이는 민족의 피도 민족단결의 기본조건으로 될수 없고 인민들속에서 자주사상이 생겨날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리영숙의 목소리는 물기에 젖어있었다. 그는 김일성주석과의 두번에 걸치는 상봉을 통하여 그이의 통일정책에 전적으로 공감하였고 민족의 어버이로서의 위인상에 완전히 매혹되여 버렸다. 더우기 그이의 소탈함과 겸허성에 깊이 머리숙였다. 그것이야말로 정견과 신앙과 주의주장을 초월하여 온 민족을 하나로 묶어세울수 있는 품이라고 믿었다. 이때 그에게는 잊을수 없는 하나의 뜨거운 추억이 떠올랐다.

지난해 여름 리영숙은 영광스럽게도 김일성동지와 동행하여 지방참관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이께서는 어딘가 다녀오겠다고 하면서 리영숙을 숙소에 남겨두고 나가시였다. 그런데 해종일 돌아오지 않으시였다.

리영숙은 할일 없이 숙소에 남아있다가 나중에는 그이께서 자기를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까지 하였다.

저녁늦게 돌아오신 그이께서는 종일 숙소에서 무료히 기다리였다는 리영숙의 말에 몹시 놀라시며

《나는 선생이 자유롭게 인민들을 찾아다니며 취재하라고 일부러 시간을 내드린건데···》하고 크게 웃으시였다.

그러시고는 그에게 잠간 기다리라고 하시였다. 얼마후 그를 뜨락으로 불러내시였다. 거기에는 모닥불이 타오르고 풋강냉이 구워지는 구수한 냄새가 풍기고있었다. 그이께서는 한이삭 손수 집어주시면서 《리선생, 우리 농민들이 지은 첫물 강냉이맛을 좀 보시오··· 어떻습니까. 여기 오니 고향생각이 나지 않습니까? 제 집에 왔다 생각하고 많이 드시오. 하기야 여기도 선생의 집이지요. 이제 통일만 되면 우리 나라도 잘살게 됩니다.》라고 하시였다.

리영숙은 강냉이알을 씹으면서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하지만 그때만 하여도 리영숙은 김일성동지에 대해서 모르는것이 너무도 많았고 그래서 그 조그마한 생활세부에 비낀 거대한 의미를 깊이 리해하지 못했었다.

리영숙은 그때를 생각하며 그이를 바라보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작열하는 해빛에 녹아버린듯 안개처럼 저 멀리 산봉우리우에 비껴있는 구름을 바라보시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계시였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그이의 발밑에서 자갈이 밟히는 소리가 이상스레 크게 들리였고 맞부딪치는 자갈들속에서는 부시돌처럼 불꽃이 튀는것 같았다. 색안경에 가리운 그이의 안광에서 거센 빛발이 날리는것 같았다.

리영숙이 보건대는 그이께서 통일에 대한 지향과 념원으로 온몸을 깡그리 태우시고있는것 같았다. 그의 머리속에는 세상에 공포할 하나의 글줄이 적혀져있었다. 《조성되고있는 정세에 대한 김일성주석의 평가와 반응을 나는 완전히 판단할수 있었고 거기에 공감하였다. 그 판단이란 김일성주석이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공화국의 운명에 대해 전혀 불안해하시지 않고 락관하고있는것이였다. 그렇다. 공화국은 신심에 넘쳐 자기의 민족적임무만을 생각하고있다.》

리영숙은 자기의 판단을 믿었다.

이때 장령이 다가오더니 수령님께 장군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알려드렸다. 그 장령은 부관이였다. 그이께서는 리영숙에게 량해를 구하고나서 부관을 따라 차들이 서있는 곳으로 곧추 걸어가시였다가 이어 빠른 걸음으로 돌아오시였다.

리영숙이 궁금하여 문의했다.

《주석님,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유엔에서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제재결의가 곧 표결에 붙여질것이라고 합니다.》

그 말씀에 리영숙은 갑자기 회오리바람에 말려든것 같은감을 느끼며 다급히 문의했다. 그는 이 경우에 사태가 어떻게 되리라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국제원자력기구에서 탈퇴하기로 최종결심을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의 통신, 방송들이 그 사실을 보도할것입니다.》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기정의 사실을 말씀하듯 심상히 뇌이시였다.

리영숙은 긴장해서 다시 문의했다.

《주석님께서는 중대한 결심을 어떻게 그리 빨리 내리셨는가요?》

《아니, 나는 김정일동지의 결심에 동의했을뿐입니다.》

리영숙은 놀라운듯 그이를 한참 바라보다가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소리로 《김정일비서님의 결심이군요.》라고 했다.

그러는데 채순이가 이리로 다가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를 보더니 리영숙에게 이야기를 끝내자는 뜻으로 손을 약간 들었다놓으시며 말씀하시였다.

《리선생, 뭐 더 물을것이 없습니까?》

《뭐 별로···》 리영숙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한가지 의문을 지워버릴수 없었다.

새로운 정황이 조성된 지금에 와서도 김일성주석께서 정세에 대하여 여전히 락관하실수 있을것인가? 리영숙은 그이께서 그 어떤 표정의 변화라도 있을것 같아서 그이의 얼굴을 잠시 눈주어보았다. 어딘가 긴장해진것 같으시면서도 다른것을 찾아볼수 없는 밝은 모습이였다.

《문의할것이 더 없습니다.》

《그렇습니까?》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를 한참 바라보시다가 말씀하시였다.

《그렇다면 나는 기자인 당신이 흥미를 가질 하나의 사실을 알려주겠습니다.》

《네?》

《이제 곧 미국의 큰 인물이 우리 나라로 찾아오게 됩니다. 그 사람은 미국의 전직대통령 지미 카터입니다.》

이 순간 리영숙은 김일성주석께서 오늘의 회견에서 자기가 마음속으로 제기하였던 문제에 대한 대답으로 그 말씀을 하신다는것을 의식했다. 그는 놀라움으로 하여 굳어졌다. 그이께서 지금까지 표시한 정세에 대한 락관이 실제적인것으로 눈앞에 다가왔던것이다. 기자인 그의 안목으로 볼 때 카터의 조선방문이 미국의 그 어떤 정책변화로 판단되였기때문이다.

허지만 기자로서의 남다른 안목을 가진 리영숙이였지만 이때 우리 나라에 조성되고있는 새로운 정치적국면이 김일성동지의 비상한 헌신성에 의하여 이루어지고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였다.

얼마후 리영숙은 김일성동지와 헤여졌으나 그의 귀에서는 《고생끝에 락이 옵니다.》라고 하시던 그이의 목소리가 그냥 쟁쟁히 울리였다. 그는 김일성동지와의 회견에서 바로 그것, 그 어떤 최악의 사태에서도 마음 흔들리지 않고 신념에 넘쳐 웃으시는 위대한 령도자의 락관성이 인민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 강철같은 의지에 기초한것임을 리영숙은 알았다. 그는 회견끝에 무한히 강하면서도 무한히 부드러우신분, 한없이 격렬하고도 따뜻하신분, 인류력사 그 어디에도 그러한 령도자는 있어보지 못하였다고 취재수첩에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