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3


 

3

 

밤 12시.

김일성동지께서는 방금 병원에서 나오시여 금수산의사당 집무실에 와계시였다. 창가림을 드리운채 형광등을 끄고 집무탁에 놓인 탁상등만을 켜놓은 방안은 푸른 등갓에 불빛이 가리워져 푸릿한 달밤을 련상시켰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마음을 안정하지 못하시고 뒤짐을 지고 집무탁곁을 왔다갔다하시였다. 방금 병원에서 억지를 부리다싶이 하여 퇴원하신것이였다. 이윽고 수령님께서는 송수화기를 드시였다.

《조직비서동무, 나요.》

《수령님, 왜 아직 주무시지 않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 의문과 걱정이 실린 목소리로 물으시였다.

《내 퇴원했소. 지금 의사당집무실에 와있소.》

《의사당집무실에 말입니까?》

장군님께서는 문득 반문하시고는 말씀을 잇지 못하시였다. 너무 뜻밖이고 아연하여 말씀을 못하시는가싶었다.

《병원동무들한테는 총비서의 권한을 썼소. 그러니 그들을 추궁하지 말아주시오.》

수화기는 여전히 잠잠하였다. 그 침묵이 오히려 수령님의 건강에 대한 그이의 심려와 괴로움과 고민을 다 말해주고있었다. 수령님의 마음도 편치 않으시였다. 이윽고 수령님께서 사정하듯 그러하면서도 확고하게 말씀하시였다.

《수고스럽지만 좀 와주시오. 카터의 방문요청과 그에 따르는 자료들이 있으면 가지고오시오.》

그로부터 불과 10분도 채 안되여 장군님께서 수령님의 집무실에 도착하시였다. 출입문으로 들어서시는 그이의 표정은 밝지 못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무거운 상념에 잠기신듯한 김정일동지의 안색을 유심히 살펴보며 뭔가 말씀하시려다가 응접탁을 마주하고 쏘파에 앉으시였다.

《장군은 지금 한창 집무를 볼 때인데 불러서 안됐소.》

《일없습니다. 마침 수령님과 긴급히 의논할 문제도 있었습니다.》 쏘파에 앉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들고 수령님의 눈을 주의깊이 지켜보시였다.

안경을 끼신 수령님의 눈은 아직도 불깃하게 부어있었고 안개같은 물기에 덮여있는듯 하였다. 순간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을 지지우시는것 같은 아픔을 느끼시였다. 그전날에 보시던 수령님의 영채로운 눈과는 분명히 달라진 눈이였다.

이윽히 그이를 지켜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돌려 집무실안의 문건들에 눈을 주시였다. 밤색 응접탁을 내리비치는 탁상등불빛이 불현듯 그이께 멀리 어린 시절에 있었던 추억의 한토막을 되살려주었다.

광복후 민주건설시기, 그때도 늘 밤을 패워 일하시는 수령님의 방에는 불빛이 꺼질줄 몰랐다. 밤이 새도록 수령님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그 불빛은 저택보초병들의 마음을 오히려 어둡게 하였다. 그것은 그 불빛이 늘 밤새워 일하시는 수령님의 건강을 걱정하게 만들었던것이다.

보초병들은 어느날 자기들의 심정을 솔직히 수령님께 아뢰였다. 이야기를 들으신 수령님께선 《내 방의 불빛이 동무들의 마음을 어둡게 했단 말이지? 내 오늘부터 일찍 불을 끄고 자겠소.》하고 선선히 대답하시였다.

약속대로 그날부터 밤 10시가 되면 여불없이 수령님의 방에서 불이 꺼지군 하였다. 보초병들은 기뻐했고 불이 꺼진 그 어두운 창문때문에 그들의 마음은 정말로 밝아졌다. 그런데 어느 무더운 여름밤 창문가림천이 바람에 펄럭이는 서슬에 수령님의 방안에서 언뜻 희미한 불빛이 새여나왔다. 그날에야 보초병들은 자기들의 마음을 괴롭히지 않기 위해 수령님께서 밤 10시만 되면 창문가림천을 치고 갓을 씌운 탁상등밑에서 일을 보아오셨다는것을 알고 놀라게 되였다.

지금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의 집무실 창문에 길게 드리운 문가림천이며 푸른 갓을 씌운 탁상등을 무심히 볼수가 없으시였다. 바로 그 물건들이 수령님께서 늘 누구도 모르게 밤늦도록 일해오셨다는것을 말해주고 있는듯 하였다.

《조직비서동무!》

문득 부르시는 수령님의 목소리에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돌리시였다.

《카터의 방문요청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알고싶소.》

김일성동지께서는 병원을 나오시게 된 사정이야기는 묻어두고 화제를 이렇게 꺼내시였다. 장군님께서도 그에 대하여 굳이 물으려 하지 않으시였다. 문제는 어떻게든 수령님의 마음을 돌려세워 병원으로 다시 들어가게 하는것이 중요하였다. 그이께서는 수령님께서 요구하신대로 납작한 서류가방안에서 널직널직하게 타자를 친 문건 하나를 꺼내놓으시였다. 그 문건이 그저께 외교부에서 올려보낸 카터의 방문요청과 관련된것이였다.

문건에 의하면 카터가 시급히 평양을 방문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상봉할것을 요망하는 편지를 다시 보내왔으며 그가 현시기 조미간의 관계를 해결하는데 기여할수 있다는것을 시사하였다는것이였다. 문건에는 카터의 우리 나라 방문요청에 대한 외교부의 견해도 첨부되였는데 외교부는 이것이 핵문제와 관련한 우리의 정당하고 원칙적인 립장을 내외에 다시한번 과시할수 있는 기회로 될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의 눈에 피로를 주지 않기 위해 직접 문건을 읽어드리신 다음 카터의 우리 나라 방문요청이 제기된 배경에 대하여 보충적인 설명을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장군님의 말씀을 주의깊이 듣고나서 문득 물으시였다.

《그러니까 카터의 방문요청이 조미관계에서 나타난 새로운 반응이겠소?》

《그렇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는 강경보수세력이 있다는것만은 잊지 말아야 하오. 미국의 정치를 주도하는것은 사실상 그들이거든··· 두차례의 조미회담이 공회전한것이 무엇때문인가? 그들은 막부득이해서 협상을 묵인하다가도 기회가 생기면 그것을 뒤집어엎소. 우리는 미국정계의 량면을 잘 들여다보아야 하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게 지연전술을 쓰고있소. 우리는 여기에 경각성을 높여야 합니다. 잘못하다간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잃을수 있소. 우리에게는 할 일이 얼마나 많소.》

수령님께서는 의향을 물으시듯 김정일동지를 돌아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전적으로 공감하시였다. 공감하실뿐아니라 그이 자신께서도 바로 그러한 내용으로 이미 문선규에게 주의를 주시였던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문건 하나를 또 꺼내놓고 읽어드리시였다.

그것은 조선인민군총참모부에서 최고사령관동지께 적정을 종합하여 올려보낸것이였다.

《적정자료,

미국방장관 페리가 오늘아침 9시 (조선시간으로 어제저녁 11시)우리에 대한 제재조치가 유엔에서 취해질 경우 초래될 그 무슨 위기상황에 대하여 운운하면서 초대형항공모함 인디펜덴스호를 수일내에 조선반도의 작전에 진입할수 있는 곳에 전진배치할것을 언명하였음. 그는 나토국방상회의에까지 우리의 핵문제를 끌고가 반공화국소동을 국제화하려 함.

이와 때를 같이하여 미상원의원 맥케인이 우리의 평화적핵계획이 미국의 안보에 위협으로 된다고 주장하면서 항공모함전단을 비롯한 미국무력을 남조선에 추가배치하고 북조선의 핵시설을 공습하거나 미싸일공격도 불사하는 군사적완력을 행사하여야 한다고 공언함···》

김정일동지께서는 문건을 읽으신 다음 입가에 랭소를 띠우시고 《수령님, 문선규의 말이 옳습니다. 개들은 짖어도 행렬은 갈것입니다.》하고 말씀하시였다.

《개들은 짖어도 행렬은 간다.》 이것은 제1차 조미회담때 문선규가 상대측앞에서 한 말이였다.

회담이 치렬해지던 어느날 미국측은 회담탁을 차고 일어나서 당신들이 우리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국제공동체의 규탄을 면치 못한다, 계속 그렇게 나오면 회담은 결렬될것이며 당신들도 파국적인 처지에 빠지게 될것이라고 위협하였다. 허나 문선규는 끄떡하지 않고 천천히 일어나서 미국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개들은 짖어도 행렬은 간다》라는 말을 영어로 맞받아웨쳤다. 그러자 미국측은 입을 딱 벌리고말았다. 이 사실로 하여 서방언론계에서 문선규에 대해 굉장히 떠들어댔다. 문선규는 일약 《강단이 있는 외교관》이라는 세계적인 평판을 받게 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 조미회담사에 남긴 그 이채로운 일화를 상기하신 다음 한층더 격조높은 목소리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는 지금까지 평화적인 핵공업발전의 국제적협조와 교류를 위해서 국제원자력기구에 가입하였고 가입후 기구의 규약상 의무를 성실히 리행하였다, 그러나 기구가 미국의 리용물로 되여 우리에게 부당한 요구를 들이대면서 우리의 자주권을 유린하고 우리에 대한 《압살》책동에 공모하고있다고···

그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응접탁을 짚고 움쭉 일어서시며 철추로 내리치듯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래서 저는 국제원자력기구에서 탈퇴하자는 의견입니다.》

수령님께서는 고개를 번쩍 드시였다. 허나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무거운 침묵속에서 운명적인 시각이 흘러가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 또다시 우렁우렁한 진동적인 목소리로 침묵을 깨뜨리시였다.

《우리가 국제원자력기구에서 탈퇴한다면 더는 불편한 기구의 광주리에 앉아서 구속을 받지 않아도 될것입니다.》

《나는 전적으로 동감이요. 나라의 근본리익에 부합될거요.》

수령님께서 마침내 쏘파에서 일어나시였다. 그리고 조용히 물으시였다.

《그러니 긴급히 토의할 문제가 있었다는것은 기구탈퇴문제요?》

《그렇습니다. 수령님, 기구에서 탈퇴하는 조건에서 카터의 방문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정 요구하면 가을에 가서 토론해볼수 있을것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 수령님의 표정을 긴장하게 지켜보시였다. 실지 중요한것은 이 문제였던것이다. 그이께서는 카터의 방문건이 제기된후 줄곧 그 문제를 생각해오시였다. 수령님께서 마음놓고 눈수술을 받고 삼복한철 휴식하실수 있게 하자면 카터의 방문요청을 보류하거나 아니면 가을로 미루는것이 필요했던것이다.

한때 미국의 최고권좌에 앉아있던 카터의 방문은 수령님께 류다른 정신적부담을 안겨드릴수 있었다.

《조직비서동무!》

응접탁옆을 거닐며 김정일동지의 말씀을 주의깊이 들으시던 수령님께서 문득 돌아서시였다. 그리고 탁상등의 갓그림자때문에 마치 재빛 황혼속에 서계시는것 같은 김정일동지의 얼굴을 마주보시였다.

《우리가 기구에서 탈퇴한다 해도 미국사람들을 만나 할 이야기가 있을거요. 우리는 평화적환경의 조성과 조국통일에 도움이 될수 있는 조그마한 가능성도 놓치지 말아야 하오.》

이번에는 김정일동지께서 인차 응대를 못하시였다. 그이께서도 그 자그마한 가능성이 비할바없이 중요하시였다. 그리고 그 조그마한 가능성으로부터 조미관계의 새로운 력사적국면이 열리게 될수도 있을것이라는 기대도 가지고계시였다.

하지만 그이께 있어서 보다 더 절박하신것은 수령님의 휴식문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께로 한발자국 옮겨가시였다.

《저도 국제원자력기구에서 탈퇴하되 카터의 방문요청까지 거절하자는것은 아닙니다. 다만 가을로 미루자는것입니다.》

《소뿔은 단김에 빼랬다고 말이 났을 때 미국사람들을 만나는게 나쁘지 않소.》

수령님께서는 응접탁앞으로 돌아와 멈춰서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병치료를 뒤로 미루시려는 수령님의 결심이 이미 굳어졌다고 생각되시였다.

《수령님, 카터일행은 어느때 만나든 큰일 없지만 병치료는 때를 놓치면 안되지 않습니까··· 의사들의 말은 수령님께서 빨리 수술후 치료를 마저 받으시고···》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러시며 수령님의 종합검진결과에 대한 의사들의 소견을 다시금 상기하시였다.

의사들은 수령님의 눈병이 과로와 관련되여있다는것과 수령님의 년세와 로동강도사이에 심한 불균형이 조성되고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수령님께서 만약 이대로 계속 사업하신다면 돌이킬수 없는 후과를 발생시킬수 있다고 하였다.

그이께서는 어제도 밤중에 원장을 전화로 부르시여 수령님의 건강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가,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를 물으시였다.

《정신적부담을 피해야 합니다. 특히 지나친 흥분을 피해야 합니다. 그것은 아무리 좋은 의미에서라도 말씀입니다. 물론 우리 수령님의 일반상태는 같은 나이의 다른 사람들보다는 대비가 되지 않게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수령님께서 젊은 사람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심장부하를 받고있는것입니다.··· 말하자면 젊은 사람들도 하기 힘든 중로동을 하고있습니다.》

이것이 원장의 대답이였다. 이 대답속에 대책적인 문제가 너무나 명백히 밝혀있었다. 그럼에도 김정일동지께서는 묻지 않을수 없으시였다.

《대책이 뭡니까? 나는 그걸 알고싶소.》

원장은 대답을 못하고 한참 바재이다가 대책은 수령님의 로동강도를 낮추는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당분간은 약물치료를 하면서 장기휴식을 보장해드리는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하여 그이께서는 수령님의 장기휴식을 보장하기 위한 비상대책을 세우려고 하시는데 카터의 방문요청이 제기되자 수령님께서 갑자기 병원에서 나오신것이다.

반드시 받아야 하는 수술후치료도 미루고 병원에서 나오신것을 보면 수령님께선 애당초 휴식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시지 않는것 같으시였다. 원래 수령님께서는 의사들이 들고다니는 종합검진결과라는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였다.

《늙은이들치고 그만한 병을 안가지고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그건 병이 아니요. 휴식을 하라는 의사들의 말에 대해선 참고로 들어야 하오.》

수령님께서는 사람마다 자기식의 섭생이 있다, 해방직후 자신의 주치의가 최소한도로 하루에 6시간은 자야 한다고 하면서 새벽 3시에 일어나는 습관을 고치라고 강권하였는데 만약 그대로 하였다면 자신의 건강은 훨씬 나빠졌을것이라고 하시였다. 그리고는 별안간 화제를 바꾸시였다.

《건강이요, 휴식이요 하는 문제는 차후 토론하고 우선 내 말을 들어보시오. 나는 이번에 화를 복으로 만들자고 하오.》

수령님께서는 핵문제에 대해 다시금 이야기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핵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미국과의 대결과정을 하나하나 분석하시면서 객관적으로 볼 때 그것은 나라앞에 도래한 하나의 큰 재난이며 화라고 평가하시였다. 올해에 들어와서 그것은 참을수 없는것으로 되였으며 공화국을 《압살》하려는 미국의 본심이 변하지 않는 한 그것은 앞으로 조국과 민족앞에 엄중한 후과를 가져올수 있다고 하시였다.

《그러나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우리가 늘 말하고 있는것처럼 정의의 장검을 들고나가면 되는게요. 사필귀정이라고 정의를 들고나가면 일은 제대로 잘될거요.》

수령님께서는 세상에는 화가 복으로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시면서 오늘의 험악한 사태가 조국통일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새 국면을 열어놓게 될수도 있다고 하시였다.

《어떻소? 그 카터라는 사람이 미행정부의 립장을 대변할수 있을것 같소?》

《제 보기에는 그럴것 같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화제에 끌려들어가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진지한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의 방문요청서에 시민자격이라는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미국대통령의 특사자격으로 오는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를 가을까지 기다리게 할 필요는 없소.》

수령님의 음성은 사뭇 조용하고 낮았으나 바위와 같은 무게를 가지고 근엄하게 울리였다. 그이께서는 이미 결단을 내리신듯 김정일동지를 향해 바른손을 힘있게 흔들어보이시였다.

《내가 그를 만나 모든것을 털어놓자고 하오. 우리는 지금까지 미국사람들과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소.》

《그건 사실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긍정하시였다.

수령님께서 창밖을 내다보시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비록 정견과 신앙은 달라도 서로 흉금을 터놓고 허심탄회하게 의사를 나누기만하면 그리 힘들지 않게 의사가 통할수 있다고 보오. 실지 혁명투쟁과정에 그렇게 해서 큰 문제들을 많이 풀어보았소.》

수령님께서는 생각깊은 표정으로 뒤짐을 지고 한동안 방안을 거니시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구국군의 우사령과 오의성, 남조선의 김구··· 물론 그렇다고 미국의 카터를 그런 사람들과 동일시하는것은 아니요. 그러나 어쨌든 우리를 오해하던 그런 사람들을 만나 큰 문제들을 풀었소.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나면 우리 혁명에 하나의 봉우리들이 생겨나군 하였소.》

수령님께서는 지나온 혁명의 길에 새겨진 빛나는 리정표들과 력사의 봉우리들을 돌아보시듯이 눈길을 어딘가 높은곳에 주신채 그린듯이 서계시였다.

《우리가 우사령을 만나서는 반일부대를 강화하는 사업을 촉진시킬수 있었고 오의성을 만나서는 반제공동전선을 선포할수 있었소. 해방후 김구를 만나서 얻은것이 민족통일전선이였고 일본의 정객들을 만나서 3당공동선언을 채택할수 있었소. 그리고 리후락이를 만나서 조국통일의 3대원칙을 내놓았소··· 이제 카터를 만나서는 무엇을 얻을수 있겠는가?···》

오래동안 서계신 수령님께서는 피로를 느끼신듯 쏘파에 다시 앉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냥 응접탁옆에 서신채로 이제 조국땅에 새롭게 솟아나게 될 하나의 봉우리를 눈앞에 그려보시였다. 그것은 우리 인민이 50년세월 애타게 념원해온 민족숙원의 절정, 조국통일이라는 봉우리였다.

수령님께서는 응접탁에 주먹을 얹으시며 그 무엇을 결심하신듯 힘있는 어조로 거듭 말씀하시였다.

《나는 카터를 만나 이야기를 해봐야겠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의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계셨고 그것으로 하여 우리 민족앞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전에 없이 그냥 침묵만을 지키고계시는 장군님을 바라보며 의향을 묻듯 다시금 말씀하시였다.

《나는 미국사람들을 만나 우리 나라의 통일문제를 이야기하려고 하오. 나라에 조성된 정세로 보나 우리 인민이 당하고있는 불행으로 보나 통일문제는 제일 절박한 문제요. 도래한 정세는 내가 이제 더는 자기 몸이나 돌보고있어서는 안된다는것을 말해주고있소.》

《···》

김정일동지께서는 여전히 말씀이 없이 시계를 들여다보시였다.

벌써 새벽 1시가 지났다. 그이께서는 가슴속에 피여오르는 시름을 묵새기시려는듯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이께서는 밤을 톺아가는 이 한초한초가 그렇듯 거대한 력사의 짐을 지신 수령님의 건강을 녹여내는것 같아 가슴이 저리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갈린 목소리로 수령님께 말씀하시였다.

《수령님의 휴식문제는 저로서도 어찌할수 없게 되였습니다. 그것은 이미 정치국위원들이 토의하고 합의를 본것입니다.》

수령님께서는 응접탁에 손을 얹고 김정일동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시였다.

《정치국위원들이 나의 휴식문제를 토론했단 말이요?》

수령님께서는 한참만에 무거운 안색을 지으시고 물으시였다.

《그렇습니다. 지금 의사들속에서도 수령님의 휴식문제를 놓고 심각한 론의가 벌어지고있습니다. 인민들도 한결같이 수령님께서 쉬실것을 바라고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비록 자신의 의향은 내비치지 않았으나 그 말씀속에는 수령님의 휴식에 대한 강한 요구와 절절한 념원이 담겨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쏘파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긴숨을 내쉬였을뿐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더 다른 말을 하지 않으시였다.

침묵은 오래도록 계속되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던지 수령님께서 《담배 한대를 피우고 싶소.》하고 먼저 말씀을 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드시였다. 담배를 찾으시는 수령님의 무거운 표정을 일별하신 그이께서는 잠시 주저하시다가 떨리는 손으로 담배갑을 꺼내여 한대를 뽑아올리고 불을 켜드리시였다. 그이께서는 그때 이상한 생각이 드는것을 느끼며 스스로 놀라시였다. 수령님께 금지되여있는 담배를 내가 드리다니···

묵묵히 담배 한대를 다 태우신 수령님께서 《조직비서동무!》하고 몹시 갈린 소리로 부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 천천히 돌아서시였다.

《나는 지금 조직비서를 보면서 지난날 내가 위험한 길을 걸을 때마다 막아나서던 전우들을 생각하게 되오.》

《···》

《우사령을 만나러 갈 때는 차광수가 막아나섰고 오의성과 담판할 용단을 내리였을 때는 량성룡이 만류했지··· 해방후 남조선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가슴을 조인 사람은 조직비서의 어머니였소···》

수령님께서는 갑자기 말씀을 끊으시였다. 김정일동지의 색안경밑으로 이슬이 흘러내리는것을 보시였기때문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그 이슬을 보이지 않으려고 급히 돌아서시였다.

《여기 와서 좀 앉으시오.》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앉으신 쏘파의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리시였다. 그리고 김정일동지께서 자리에 앉으실 때까지 덤덤하시다가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조직비서가 괴로와하는걸 보니 나도 참기가 어렵소.》

수령님의 목소리는 물기에 푹 젖어있었다. 그이께서는 창문쪽에 눈길을 돌리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나는 요즘 우리 가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고있소. 돌이켜보면 우리 집안은 모두 단명했소. 타고난 명이 짧아서가 아니라 혁명을 하느라 비명하였소.》

수령님께서는 떠나가신분들의 나이를 하나하나 꼽으시였다.

《조직비서의 할아버지는 서른을 좀 넘기였고 할머니가 그보다는 좀 오래 앉아서 마흔에 가셨소. 형권 작은조부님은 마흔도 못 넘겼고 철주삼촌은 장가도 못들어보고 눈을 감았소. 조직비서의 어머니만 봐도 서른두살에 가지 않았소!》

수령님께서는 목이 꽉 메이시여 말씀을 뚝 끊으시였다. 찡- 하는 방안의 정적···

수령님께서는 그린듯이 앉아계시는 김정일동지를 이윽히 지켜보시다가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그런데 나는 지금 여든두살이요. 오래 살았소. 오래 살았지··· 이전에 모택동주석에게 병문안을 갔더니 인생이란 일흔을 넘기면 염라대왕이 부르지 않아도 찾아가야 한다더구만. 내가 인민들앞에는 백살이 문제없다고 말하지만 나도 인간이니 명에 한계가 있는거요. 사람들은 내가 인민을 위해 해줄수 있는것을 다 해주었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 인민들에게 주자던것을 다 주지 못했소. 나는 혁명을 하면서 나라의 완전광복을 내다보았지 절반을 찾자고 하지는 않았소. 나는 아직 인민들에게 나라의 절반땅을 찾아주지 못했소. 통일을 주지 못했소. 앞날은 많지 못한데 해야 할 일은 많소!···》

《···》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신도 모르게 돌아서서 수령님을 바라보시였다. 북받치는 격정으로 하여 귀가 멍멍해지면서 수령님의 목소리가 아득히 멀리서 들려오는듯 그 우렁우렁한 음성이 어렴풋해지시였다. 그대신 사랑하는 경희동생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왔다. 아마도 장군님의 가슴에 깊이 사무쳐있던 소리여서 그런지 몰랐다.

《···원래 만경대집안사람들은 머리가 잘 세지 않는다고 하는데 왜 아버님만은 저렇게 머리가 셌습니까. 형록 작은할아버진 늙어서도 머리가 까맸지요. 로할아버님, 로할머님도···

만경대가문의 유전도 아버님의 세여지는 머리만은 막아내지 못하니···

왜 아버님은 한평생 저렇게 머리가 세도록 고생하여야 하십니까. 그것이 수령님의 숙명입니까, 위인의 팔자입니까.》

《경희야, 그만해라!》

이것은 어느해 4월 봄명절에 그이께서 김경희동지와 나누신 눈물겨운 대화였다. 눈을 감고 서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의 기침소리를 듣고 앞을 바라보시였다.

수령님께서 두손으로 응접탁을 누르며 마치 무거운 짐을 지고 일어나듯 쏘파에서 천천히 그리고 힘겹게 일어나시였다.

전등갓밑으로 흘러나오는 불빛에 수령님의 흰머리가 유난히 번뜩이며 그이의 눈을 아프게 찔렀다.

수령님께서 김정일동지께 고개를 돌리시였다.

하여 다시금 눈을 마주치신 두분께서는 지금까지 긴 이야기를 하시였지만 아직도 근본문제를 아퀴짓지 못했다는것을 상기하시였다.

허나 어느분도 더는 말씀이 없이 묵묵히 서계시였다. 침묵은 계속되였다. 그 침묵이 얼마나 길었던지 두분께서는 가늠하지 못하시였다. 벌써 시계는 밤 2시를 가리키고있었다.

그날밤 김정일동지께서는 카터를 만나시겠다고 하는 수령님의 말씀에 어쩌는수 없이 동의하시였다. 그것 역시 력사와 시대의 요구였던것이다. 그대신 카터를 접견하시기 전까지는 수령님께서 휴식하시며 절대안정하실것을 약속하시였다.

그러나 생활은 결코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