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1


 

제 2 장

1

 

백악관은 벅적 끓었다.

클린톤대통령의 방은 미행정부 수급인물들의 부산스러운 출입으로 소란하였다. 핵문제와 관련한 북조선의 동향이 그들을 경악실색케 한것이다. 그것은 저들의 고압적인 《군사제재》에 필시 굽어들리라고 생각했던 북조선에서 로심교체를 단행하는 등 완강한 대결자세로 나오기때문이였다.

뜻밖의 소식은 세계 여러 나라들에도 큰 파문을 일으키고있었다.

《자유의 녀신》이 살펴보는 미국의 하늘 한쪽에서는 비둘기가 날고 다른 한쪽에서는 매들이 돌아치면서 혼잡을 일으키고있다는 비양의 목소리들이 울려나오기도 하였다.

이것은 북조선문제를 두고 벌어지는 미국의 강경파와 온건파의 아귀다툼에 대한 조소와 비난이였다.

북조선의 동향을 두고 백악관은 군사적대결이냐 정치적협상이냐 하는 문제로 론난을 일으키던 나머지 몇년전부터 북조선방문을 제기해온 전직대통령인 카터를 북조선으로 들여보낼 생각까지 하였다.

어찌보면 그것은 막다른 골목에 다달은자들의 궁여지책이라고 볼수 있지만 이외의 효력을 기대할수 있는 명안일지도 몰랐다.

카터에게는 《여생에 모든것을 얻는다》는 저서가 있었다. 그것으로 보아 그는 대통령직을 이미 내놓은 인생의 황혼기에 오히려 정치계에 두드러지는 사람인것 같았다.

《여생에 모든것을 얻는다》는 그 격언같은 말속에는 수억만 인류앞에 평화의 투사로 부각되기를 바라는 그의 희망이 비껴있었다.

음악애호가인 그는 전화기의 신호음에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 《알로하오에》의 선률을 집어넣고 전화를 즐겨받군 하였다.

5월초의 어느날 황혼무렵이였다. 카터의 방안에 놓인 전화기에서 《알로하오에》의 선률이 반복해서 울렸다.

그러나 이때만은 경쾌한 그 소리가 불청객이 철책을 두드려대는 소리처럼 자극적으로 들렸다. 카터는 불도 켜지 않은 방안에서 쏘파에 몸을 묻은채 얼굴을 찌프리고있었다.

전화기의 신호소리가 다시 울렸으나 그는 한모양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얼굴빛은 침울했다. 그는 전화가 백악관에서 걸려오는것임을 알고있었다.

이날 이른새벽이였다.

대통령 클린톤의 안보담당보좌관 앤톤 레이크가 워싱톤에서 죠지아주 소재지인 애틀란다에 있는 카터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왔었다. 전화는 극비에 붙여졌다. 레이크는 백악관이 카터의 평양방문을 승인한다는것과 방문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것, 카터의 결심을 오늘중으로 알려주기 바란다는것을 강조했다.

카터는 지금까지 자기의 평양방문을 가로막고있던 백악관이 갑자기 그것을 승인하고 서둘러대기까지 하는 까닭을 짐작할수 있었다. 평양으로 가는 경우 자기에게 정치적짐을 지워보내자는것이 분명했다.

그는 레이크에게 물었다.

《그래 평양에 간다면 무엇을 해야 하오?》

《물론 평화적모색입니다. 조선반도의 위기상황에서의 출로는 김일성주석을 만나는 길밖에 없습니다. 각하께서 결심이 선 다음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허나 평양에 가서 만나야 할 상대가 김일성주석이라고 할 때 세계 여러 나라 수반들이며 한다하는 정객들을 만나본 그였지만 심사숙고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서 레이크의 전화가 있은후 부인 로잘린을 김일성주석과 상봉한바 있는 절친한 사이인 빌리 그라함에게 급파하였다. 그가 돌아와서 뭐라고 할지 카터는 그의 말을 들어보고 최종결심을 내릴 작정으로 벌써 여러차례 걸려오는 백악관의 전화를 일축하고있는것이였다.

김일성주석, 김일성주석···》

혼자소리로 되뇌이던 카터는 미지의 상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번거로웠다. 일종의 공포심리를 체험하고있었다. 반세기동안 집권하고있는 백전로장, 거기에다 팔십고령, 고집이라는 로인병이 겹쳐있다면 자기의 상대는 요지부동의 담벽일것이다.

물론 카터는 김일성주석에 대한 파악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실용주의철학의 고향인 미국의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그러하듯이 카터 역시 리해관계에 예민하고 타산이 밝은 사람이였다. 그러므로 그는 정치계에 출마할 때부터 미국의 정치에서 무시할수 없는 존재인 북조선과 북조선의 수령에 대하여 자기식의 연구를 거듭했었다. 카터는 이미전에 북조선에서 온 한 일군을 만났을 때 평양방문의사를 표시하면서 승인이 되면 련락해달라고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붙이는 자기집 전화번호까지 알려준 일도 있었다.

카터에게 김일성주석에 대한 생각을 더 깊이 하게 만들어준것은 김일성주석이 쓴 회고록이였다. 이 회고록은 그후 유엔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상임대표부 대사에게서 얻은것이였다.

대통령으로 있을 때 다른 행성에서 떠온 시료를 받아본적이 있는 카터는 이 책을 받아든 순간 그때처럼 신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학자들이 행성의 시료를 들여다보듯이 책의 매 페지와 글줄을 읽어보면서 뭔가 찾아내려고 애썼다. 그래서 얻어진 결론이 《그이는 위대한분이시다. 인간중의 인간이시다.》라는것이였다.

특히 60여년전에 인연을 맺었던 중국의 벗인 장울화의 자녀들에 대한 김일성주석의 사랑은 카터의 가슴을 감동의 눈물로 젖어들게 하였다.

이미 반세기전에 저세상으로 간 장울화를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있을뿐아니라 그의 자녀들을 친자식처럼 돌보아주는 김일성주석의 인정미는 어느 서방나라나 미국의 인도주의자들속에서도 볼수 없는것이였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카터는 불안하였으며 이제 로잘린이 돌아와서 주석의 인간상에 대하여 좀더 확실한것을 알려주기를 초조히 기다리고있었다.

이때의 카터의 심정을 그후 미국의 보도계가 행성비행을 앞둔 우주비행사의 심리에 비유했는데 카터는 자기의 심리를 기자들앞에 내비친적이 없지만 구태여 부인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카터의 서기가 또다시 백악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는것을 알리였다. 그제서야 카터는 마지 못해 송수화기를 들었다. 전화기에서 레이크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그의 목소리는 아주 부드럽고 상냥하였다.

카터의 집권시기 국무성에서 정책계획국장으로 있은 레이크는 카터와 함께 정계에서 물러난 다음 크리오크종합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정치학을 가르쳐왔는데 민주당정권이 서면서 클린톤의 안보담당보좌관이 되였다. 그는 전 대통령에 대하여 아직도 어렵게 대하고있으며 몸가짐을 조심하였다. 카터도 이것을 알고있었으므로 그에게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백악관에 대한 모종의 압력이 필요했기에 잠자코 있었다. 앞으로 평양과 그 어떤 흥정을 해야 하는 경우 그들에게 내놓아야 할 백악관의 담보가 커야 하는것이다.

레이크는 어조가 부드러웠으나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각하! 미네소타주에서 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는게 아닙니까?》

미네소타주는 미국의 교회지도자 빌리 그라함목사의 전도협회가 있는 곳이였다. 카터는 로잘린을 비밀리에 보냈는데 백악관이 벌써 그것을 알고있어 저으기 놀랐다. 그는 자기의 일거일동이 백악관의 시야에 놓여있음을 짐작하면서 그 어떤 중압감을 느꼈다.

《그렇네.》

카터는 솔직히 대답했다.

그러자 상대방에서도 직선적으로 응수했다.

《각하, 각하의 평양방문을 행정부에서는 기정사실로 하고있습니다. 각하께서는 이번 걸음을 꼭 하셔야 합니다. 저는 각하께서 결심하신것으로 대통령에게 보고하겠습니다.》

《허허, 자네들이···》

카터는 《힘에 부치니까 이 늙은 역마에게 멍에를 씌우려는군.》하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크는 그 침묵을 동의로 여겼던지 말을 이었다.

《각하, 곧 조선대표부에 통고하십시오. 통고는 이전에 승인하여 보내준 초청편지가 아직도 유효한가 하는 식으로 하는것이 좋겠습니다.》

이전에 보내온 초청편지란 1992년 11월 13일부로 된 조선외교부장의 공식초청장을 말했다.

카터는 벌써 오래전에 조선방문을 희망하여 초청장까지 받았던것인데 행정부가 승인하지 않아 지금까지 실현하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카터가 북조선방문을 시도한것은 세상사람들속에서 론의가 구구한 이 나라에 대한 인식을 정확히 하고싶어서였다. 어떤 사람들은 북조선을 두고 무서운 호전국이라고 비난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정의의 리상국이라고 찬탄하였으며 또 혹자들은 동방의 안개속에 파묻힌 미궁같은 수수께끼의 나라라고 하며 혀를 차기도 했다.

대통령직에 있을 때부터 북조선에 대하여 관심을 돌려온 카터는 자기 눈으로 직접 가보아야만 북조선의 실상을 정확히 인식할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고 평양방문을 제기했던것이다.

물론 그때는 철저히 사적방문을 념두에 두었다. 허나 지금은 국임을 지고 정치적문제로 가야 하니 카터는 주춤하지 않을수 없었다.

수화기에서 레이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1992년에 각하께 보내온 조선외교부장의 초청장이 아직도 유효하다면 급히 움직여야 하겠습니다.》

수화기를 든채 오래동안 침묵을 지키고있던 카터는 《서두를것이 없네.》하고 잘라 말하였다. 그 소리에 레이크는 펄쩍 뛰는것 같았으나 카터는 로잘린이 돌아온 다음에 보자고 고집하였다. 레이크의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할수 없는듯 자기와의 접촉을 비밀로 지켜줄것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

카터는 레이크의 요구를 일단 물리쳤으나 잔등을 떠미는 거대한 힘을 인식하였다. 그는 마치 등을 밀리워 프로권투경기장에 들어서는듯한 감을 느끼며 빈 방안을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그는 며칠전 조선이 로심교체를 단행한것을 계기로 미행정부안에 균렬이 가고 이른바 매파와 비둘기파사이의 알륵이 더욱 심각한 양상을 띠고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많은 미국시민들은 조선과의 싸움이 아니라 집안싸움을 보는것 같았다. 카터도 그들중의 한사람이였다.

그는 개탄했다. 이것이야말로 초대국의 망신이다, 빨리 수습하지 않으면 개코망신을 당할것이다, 이러한 때 나를 평양으로 가라고 한다, 그들이 나에게 줄 짐은 물론 《평화적모색》일것이다, 레이크가 나선걸 보니··· 카터는 이렇게 생각했다.

로잘린은 심야비행기로 자정이 되여서야 돌아왔는데 그가 가져온것은 빌리 그라함목사가 쓴 짤막한 편지였다.

그라함은 편지에 카터의 평양방문을 환영한다고 하고는 성경의 한대목을 원문그대로 인용하여 보냈다.

《이스라엘자손이 모압평지에서 애곡하는 기한이 맞도록 모세를 위하여 30일을 애곡하니라. 그후에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옛 유태민족의 해방자 모세의 최후를 애곡하며 그 민족의 통분함을 적은 구약성서의 한구절이였다.

독실한 신자인 카터는 그라함목사를 잘 알고있었다. 목사가 하느님처럼 숭상하는 거인이 모세였다.

타민족에 의하여 한쪼박의 땅, 한모금의 물마저 빼앗기고 위기에 처한 자기 민족을 필사의 힘으로 일으켜세워 끝내 약속의 땅인 가나안의 문턱에 가서 지팽이를 후손인 여호수아에게 물려주고 쓰러진 해방자, 민족의 영웅 모세가 바로 구세주라고 그라함은 전도에 나설 때마다 가슴에 십자를 긋고 말해왔었다.

목사가 모세에 대하여 쓴 성경의 이 구절을 인용한것은 그가 최상으로 숭배한 성인이 모세였고 김일성주석이야말로 력사에 다시 나타나지 못할 선지자라는것을 암시하기 위해서였다. 과연 목사다운 답변이라고 카터는 생각했다.

사실 빌리 그라함은 자기의 이례적인 평양방문이 목사의 신분에 맞지 않는 정치활동으로 오인되여 종교지도자로서의 권위와 영향력이 약화될것을 몹시 우려하고있었던것이다.

새벽이 다 되여 침상에 든 카터는 잠이 오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는 아라비아인들에 의하여 고대에짚트의 한끝까지 쫓긴 망국민을 이끌고 막막한 사하라사막을 횡단하는 모세의 거상이 밟혀왔다.

카터는 꿈속에서처럼 중얼거렸다.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다시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조선문제에 대한 번잡한 생각으로 잠을 설친 레이크는 침상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물었다.

애연가가 못되는 그가 첫새벽부터 담배를 피우는것을 보면 심사가 편안치 못한 모양이였다. 그는 반도 태우지 못한 담배를 서둘러 꺼버리고는 응접실로 나와 송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애틀란다의 카터쎈터를 찾아 카터의 책임보좌관에게 조선대표부에서 카터의 방문요청에 대한 회보가 아직 없는가고 물었다. 책임보좌관은 자기가 직접 뉴욕에 있는 조선대표부에 알아보았는데 조선대사도 본국의 지시를 받지 못하여 답답해하는 표정이더라고 하였다.

레이크는 대통령측근에서 온건파로 알려진 인물이였다. 그는 카터의 조선방문을 적극 주선하고 뒤받침하고있었다. 조선에 대한 야심에서는 매파와 다를바 없었으나 당장 군사적수단을 써서 어째보자는 그들과는 반대로 외교적방법으로 유화정책을 쓰면서 그것을 실현해야 한다는 정치적립장으로부터 매파들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두파사이에서 동요하고있는 대통령을 설복하여 카터의 조선방문건을 성사시키려 하는것이였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 이루어놓은 일이 평양으로 가야 할 당사자의 침묵으로 지연되고있으니 이 기회에 매파들은 그들대로 무슨 일을 벌려놓자고 할지 몰랐다.

그들을 진정시키고 멈춰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레이크가 커피 한잔으로 아침식사를 때고 국방성으로 찾아갔을 때 군부에서 매파의 주동인물이라고 할수 있는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국방성 방위정보국장이 모여앉아 무엇인가 모의판을 벌리고있었다.

레이크가 처음 들어와보는 밀실이였다. 방음장치를 든든히 해놓아서 밖에서 포탄이 터져도 모를 정도였다.

아니나다를가 국방장관이 그를 보자 기세등등하여 말하였다.

《레이크씨, 우리는 조선문제에 대한 당신의 립장을 모르는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까지 대외관계에서 힘을 중시해왔으며 그것으로써 자기의 국가적리익을 지켜왔습니다. 이런 점을 미루어볼 때 조선반도문제해결에서 다른 길이란 있을수 없습니다!》

《국방장관!》 레이크는 그를 달래려는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직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국방장관은 《아니요. 시간이 갈수록 미국은 평양과의 관계에서 피동에 빠질것입니다.》하고 레이크를 자기들이 마주앉았던 작전탁으로 데리고갔다.

《우리는 지금 조선반도유사시 어떤 형태의 군사적선택을 단행하겠는가를 합의하는중이였습니다. 바라건대 당신은 여기서 토론된 내용을 대통령각하에게 정확히 통보해주길 바랍니다.》

국방장관은 레이크에게 말하고나서 시선을 돌려 방위정보국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은 방위정보국장이 자기의 맞은켠에 있는 레이크를 힐끗 쳐다보고나서 문건철을 집어들었다.

《우리가 북한에 대한 군사적억제수단으로 어떤 형태를 취하겠는가를 결심하자면 먼저 북한의 선택안을 아는것이 필요합니다. 이제부터 방위정보국이 입수한 북한의 군사적잠재력과 작전기술적타산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국방장관도 합참의장도 다같이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레이크도 그렇게 하라는것처럼··· 그들을 진정시키려고 레이크는 일이 별라게 되여간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수 없이 그들을 따르지 않을수 없었다.

방위정보국장은 우리의 전략전술적방안들을 순위별로 설명하였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선택 A는 (그는 우리의 전략전술적방안의 순위를 그렇게 표현하였다.) 대화라는 수단을 쓰면서 시간을 얻어 핵무기개발을 포함하여 군사적잠재력을 최대한 높이자는것이며 선택 B는 심리작전을 벌려 남조선의 불안정화를 촉진시켜 《한국》의 체제를 전복하는것, 선택 C는 유사시 해외에서의 《테로》활동, 선택 D는 특수무력에 의한 침공, 선택 E는 핵무기를 사용한다는것이였다.

이에 따르는 대응책에서 선택 A는 핵무기의 선제사용, 선택 B는 공습에 의한 북조선의 《핵시설》파괴, 선택 C는 해상봉쇄··· 등등이 있다.

국방장관은 방위정보국장의 설명에 끼여들면서 레이크의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부단히 주석을 달았다. 한마디로 말하여 그는 온건파인 레이크에게 압력을 가하여 그로 하여금 대통령에게 자기들의 주장을 납득시킬것을 꾀하였다.

레이크는 그들에게 오전이 다 가도록 붙잡혀있었다. 지루하고 답답하게 앉아있던 그는 마지막에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군사적선택을 단행하는 경우 지불해야 할 엄청난 군사비와 인명손실이였다. 레이크는 백악관의 자기 방에 돌아와 문을 닫아매고 대통령에게 보고할 문건을 만들었다.

《북조선과 미한의 군사적선택에 대한 평가.

조선반도에서 무력분쟁은 어떤 형태이든 미국에 리익이 될수 없을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한쪽이 한정적인 목적으로 군사작전을 진행한다 해도 그것은 곧 조종하기 힘든 사태의 방아쇠를 당기는것으로 될수 있다. 어느 측이나 다 20세기의 승리자로 될수 없으며 전면적인 상용무기전쟁 혹은 핵전쟁을 통해서는 리익을 얻을수 없다.》

레이크는 자기의 보고문 마지막에 이 전쟁에서 미국은 800억US$라는 막대한 군사비와 40만명의 인명손실을 입게 될것이라는것을 덧붙이고 거기에 방점을 찍었다.

문건은 대통령으로 하여금 군사적선택을 피하고 미조관계를 회담을 통하여 해결하며 카터의 파견문제를 시급히 결속하도록 할것을 의도한것이였다. 저녁이 다 되여 그는 문건을 가지고 대통령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문건에 대한 클린톤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였다. 레이크는 자기가 국방성에서 땀을 빼고있을 때 대통령자신은 상원에 출두하여 공화당패거리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는것을 몰랐다. 카터의 파견문제를 기안한 대통령자신이 그것을 외면하다싶이하는 바람에 레이크는 한동안 정신이 얼떠름해있었다. 잠시후 그는 대통령을 달래기 시작하였다.

두사람은 여러시간 마주앉아있었다.

그리하여 조선에 대한 유엔제재와 카터의 조선방문을 다같이 촉진하자는것으로 락착을 보게 되였다.

클린톤은 카터의 조선방문을 행정부가 주관하면서도 그 내막을 철저히 비밀에 붙일것을 요구하였다.

카터가 그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 집권이후 외교적무능이라고 비난받아온 그로서는 자기의 위상을 돋구는 좋은 기회로 되겠지만 아직은 국교관계가 없는 북조선과 행정부가 공식왕래를 한다는 비난을 받을수 있었고 회담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북조선에 줄 담보가 강경파들의 비난의 구실로 되지 말아야 하기때문이였다.

카터의 조선방문에 미행정부가 관여하고있다는것을 시사하기로 한것은 조선문제에 대한 대응에서 제재일변도로 내닫고있던 행정부의 정책에서 방향전환이 예견된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라고도 해야 할것이였다.

카터의 조선방문문제가 겨우 락착되자 레이크는 즉시 조선외교부장에게 보내는 카터의 편지에 본인의 수표를 받아내려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카터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2년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김일성주석이 만나주기나 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