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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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1993년 8월 31일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북부지구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신뒤 려독을 푸실 사이도 없이 농업위원회와 교통위원회 책임일군들을 데리고 밤중에 평양을 떠나 이튿날 새벽 6시에 배천역에 도착하시였다. 사업이 겹쌓이여 한낮에는 좀처럼 차시간을 내실수 없었던것이다.

그이께서 역홈에 내리셨을 때 구름같은 새벽안개가 짙게 덮여서 지척을 분간할수가 없으시였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갈바람을 타고 안개는 바다의 멀기처럼 늠실거리며 동남방향으로 서서히 흘러갔다. 사람들은 아직 요람속에 잠들어있는듯 안개바다에 잠긴 연백벌은 절해고도와 같이 고요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허리에 손을 짚고 안개흐르는 광막한 허공을 감회깊이 둘러보시였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여러차례 다녀가신 추억도 깊은곳에 30년만에 찾아오신것이였다.

움켜쥐면 잡힐것 같은 짙은 안개, 하얀 젖빛안개를 누비며 그이께서는 천천히 역홈을 거니시다가 책임서기를 가까이 부르시였다.

《하루동안에 넓은 연백벌을 다 돌아보자면 이제부터 바삐 움직여야 하겠소. 우선 아침식사전에 한 서너시간 배천군의 농장들을 돌아봅시다. 그사이에 렬차는 연안역에 가서 기다리게 하시오.》

리대천은 선뜻 대답을 못하고 덤덤히 서서 려관쪽을 바라보았다. 역에서 좀 떨어진 느티나무숲속에 배천려관이 있었는데 별장처럼 아담한데다 장수에 좋다는 온천까지 있어서 그는 밤새 기차를 타고오신 수령님께서 잠시나마 거기서 쉬시게 하려던것이였다.

차곁에 있던 부관도 안타깝던지 윤기나는 밤빛 지팽이를 찾아들고 그이께로 다가왔다. 우둘투둘한 농촌길을 걷게 되실 그이를 생각하여 이번에 각별히 준비해가지고온 지팽이였으나 수령님께서는 그마저 마다하시였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연백벌인민들앞에서 지팽이를 짚고다니겠소?》

그이께서는 지팽이를 차안에 보이지 않게 건사해두라고 하시였다. 황해남도 지방책임일군들이 련락을 받고 그이를 마중하려 역구내로 들어온것은 바로 그때였다. 맨 앞장에 섰던 녀성간부인 도농촌경리위원회 위원장이 김일성동지께 인사를 드리였다. 이제 쉰살안팎으로 보이는 유순하게 생긴 녀인이였다. 겉으로 보면 그저 수수한 농촌집아낙네같았다.

《응, 위원장인가?》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며 수원들을 향해 반롱담조로 말씀하시였다.

《내가 이 위원장을 단발머리때부터 신발을 신겨주며 키웠는데 늘그막에 덕을 보는것 같소. 농사를 잘 짓거든.》

그것은 사실이였다. 어제날 학교를 졸업하고 농촌에 진출하였던 단발머리 꿈많던 처녀는 수령님의 사랑의 손길에 이끌려 30여년세월 처녀분조장으로부터 작업반장을 거쳐 관리위원장과 도농촌경리위원회 위원장으로 한단한단 인생의 계단을 올라 오늘은 로력영웅이 되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되여 한개 도의 농사일을 맡아보고있었다.

위원장의 이름은 허복덕이였다. 그랬음에도 이상한것은 김일성동지께서 언제부터인가 그의 이름을 꺼꾸로 부르시는것이였다.

《자, 덕복(복덕)동무, 주인이 길안내를 해야지. 논벌을 좀 구경하자구!》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세간 내보낸 친딸이라도 보시는것처럼 위원장의 잔등을 허물없이 두드리시였다.

《차에서 내리시자바람으로 논벌을 다니시겠습니까··· 수령님, 아직 농장원들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복덕은 걱정어린 얼굴로 그이를 바라보았다.

《덕복이, 걱정말구 이렇게 조용한 때 한바퀴 돌자구.》

할수없이 길안내를 나서게 된 복덕은 단발머리처녀때처럼 응석을 부리였다.

《수령님, 왜 제 이름을 자꾸 꺼꾸로 부르십니까?》

《꺼꾸로 부르다니 무슨 소리야?》

복덕이가 손으로 입을 가리우며 재미있게 웃는것을 보고 리대천이 그이께 알려드리였다.

《위원장의 이름이 복덕인데 수령님께선 자꾸 덕복이라고 부르십니다.》

《복덕이?··· 아니 덕복이야, 덕복이! 덕이 있으니 복이 있지, 아까 내가 말했지. 저 동무의 덕을 본다고··· 그건 저 동무가 농사 잘 짓는 덕에 내가 복을 누린다는 소리요. 허허허···》

김일성동지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으나 위원장은 문득 숙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눈을 내리깔았다. 가슴이 쩌릿하였다. 수령님덕에 우리들이 복을 누리는데 우리들덕에 자신께서 복을 누리신다니 그이께서는 그것도 꺼꾸로 말씀하신것이였다. 그러나 어쨌든 덕이 있어야 복이 있다는 말씀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것인가.

멀리 동쪽하늘이 연분홍색으로 물들어지면서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였다. 그제야 설핀 안개짬으로 시누런 벼포기들이 내다보이였다.

이때 수령님께서 사용하시는 차가 그이의 앞으로 부드러운 음향을 울리며 다가왔다.

《위원장동무, 먼저 수원리농장부터 돌아봅시다. 어서 앞에서 길안내를 하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30년전에 다녀보신 수원리마을을 머리속에 그려보시며 차에 오르시였다.

그이의 승용차는 배천읍거리를 지나 벌판길을 달리기 시작하였다. 한 십여리 지나자 안개발이 점점 더 설피여지면서 망망한 황금벌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넓은 들판 멀리에는 잔잔한 파도를 이룬 야산들이 널려있는데 그것은 마치 광야를 달리는 룡마를 방불케 하였다.

얼마후 승용차는 수원리마을을 가까이 하면서 나지막한 언덕길을 치달아올랐다. 언덕길 굽인돌이에 유화 《여기는 최전선입니다》를 모사한 대형그림판이 세워져있었다. 그 대형그림판은 40년전에 여기 연백벌에서 있은 가슴뜨거운 사연을 전하고있었다.

전화의 날 김일성동지께서 바로 이곳에 오셨을 때 전선길을 지키던 나어린 녀성군인이 여기는 최전선이라고 그이께 간절히 아뢰이며 길을 막아섰던것이다.

그런데 수십년이 지난 오늘 또다시 김일성동지께서 농업사령관이 되시여 은발을 날리며 여기 최전연지구로 나오시였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 타신 승용차는 사연깊은 이 력사의 지점에 세워진 그 그림판옆으로 너무도 무심히 그리고 빠르게 지나갔다.

그이께서는 차창으로 논밭을 내다보며 한껏 밝은 웃음을 지으시였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을 보니 마음이 흐뭇하오. 만풍년이요. 벼이삭들이 모두 무겁게 머리를 숙이고있는데 그게 바로 만풍년을 의미하오.》

한평생 농촌길을 걸어다니신 그이께서는 차안에서 먼발치에 있는 벼이삭을 보고도 농사작황을 헤아리시였다.

이른아침이여서 무연한 논벌 어디에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이께서 수원리에 도착하시였을 때에도 벌은 인적없이 조용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십분나마 두렁길을 걸으시자 비로소 수원리 리당비서가 뛰여나왔다. 사내처럼 키가 크고 뼈가 굵은 50대의 녀인인 리당비서는 어찌나 황급했던지 한쪽바지를 무릎우에 걷어올린채로 달려와서 그이께 인사를 올리였다. 그 모양을 보고 도의 일군들이 몹시 당황해하였으나 그이께서는 《리당비서가 새벽부터 바지를 걷어올리고 다니는것을 보니 틀림없이 수원리농사가 잘됐겠소.》 하고 유쾌하게 웃으시였다. 리당비서는 그제야 해에 시꺼멓게 탄 자기의 긴 다리를 보고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이것은 아마도 먼 후날까지 수원리사람들속에 일화로 남게 될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 도의 일군들과 리당비서를 데리고 동구길 한옆으로 뻗은 논두렁으로 들어가시였다. 새벽이슬에 축축히 젖은 논두렁은 미끄러웠다. 그이께서 걸음을 옮기실 때마다 두렁길 풀숲에 숨어있던 개구리들이 훌쩍훌쩍 뛰여올랐다.

이른새벽 두렁길이 습하고 험해 한발 앞서가던 허복덕이 막아나섰으나 수령님께서는 일년내내 손에 흙을 주무는 농군들만이 느끼는 그 남모르는 즐거움을 맛보시며 그냥 앞으로 걸어나가시였다. 논판이 터지게 영글어 두렁길에 무겁게 실린 벼이삭들이 걸으실 때마다 다리에 휘감기며 어리광치는 무죽한 맛이 마냥 즐거우시였다.

《벼가 참 잘됐소. 대체 한이삭에 몇알이나 되겠나?》

그이께서는 문뜩 벼알을 세여보고싶은 생각이 드시여 벼이삭 하나를 손수 뽑아쥐고 천천히 큰길로 나오시였다.

《제가 세여보겠습니다.》

허복덕이 그이곁에 조심히 무릎을 꺾고앉으며 벼알을 세기 시작하였다. 수령님께서는 허리를 굽히시고 애들처럼 《하나》, 《둘》 셈세기를 끝없이 해나가는 허복덕을 재미나게 내려다보시며 귀를 기울이시였다.

《수령님, 백예순두알입니다.》

마침내 셈세기를 끝낸 허복덕이 벼이삭을 다시 그이께 올리며 말씀드렸다.

《백예순두알씩이나?··· 대단해! 연백벌사람들이 알곡전선 돌파구를 열어놓는것 같소.》

김일성동지께서 허리를 쭉 펴시고 일망무제하게 펼쳐진 벌을 바라보시며 웃으시였다.

드넓은 논벌도 그이를 따라 함께 일어서며 하늘터지게 웃기라도 하듯 새벽바람이 세차게 파도치며 솨- 설레였다.

그이께서는 수원마을너머로 아득히 내다보이는 치악산과 연안쪽을 이윽토록 둘러보시다가 기쁨에 겨워 말씀하시였다.

《연백벌이 생겨 처음보는 대풍이요. 옛날부터 벌은 넓어도 물이 없고 땅이 메말라 언제 한번 이렇게 물농사를 지어봤소?···

고구려시기에는 여기 배천군을 도랍현이라고 했소. 후기 신라시기에는 구택현, 고려시기에는 백주현이라고 불러오다가 리조시기에 와서 배천군으로 됐는데 1914년인가 15년에 연안군과 합쳐 다시 연백군이 됐소. 아마 그때부터 이 벌을 연백벌이라고 하는것 같은데 력사자료를 다 뒤져봐도 벼농사가 이렇게 잘된 때는 없었소.》

그이께서는 무척 만족하시여 연백군은 광복후 38분계선이 생기면서 두동강으로 갈라졌댔는데 전쟁때 우리가 남연백군을 해방하여 이고장을 다시 배천군으로 부르게 됐다고 하시면서 연백벌의 긴 력사와 앞날에 대해서까지 세세히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연백벌사람들은 옛날에도 고생을 많이 했고 광복후에도 분계선구역에 있다보니 별의별 경난을 다 겪었으며 현재 우리 나라에서 렬사자가족과 리산자가족이 제일 많은 곳도 이 연백벌이라고 하시였다.

《그래서 내가 30년전에 저 연안군 오현리에 가서 렬사자가족들을 만나본 다음 월남자안해들까지 만나 위로해주었습니다. 동무들의 남편은 우리 당을 반대하여 남으로 넘어간것이 아니다, 적들의 강요에 못이겨 나갔거나 반동들의 선전에 속아서 넘어갔다, 그러니 걱정말고 기를 쭉 펴고 살아가라, 동무들이 일을 잘하면 통일도 되고 머지 않아 남편도 만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 녀인이 일어나서 자기는 부모도 없고 자식 하나 없는 외로운 사람이라고 하면서 고작 석달밖에 살아보지 못한 남편을 기다려 계속 혼자서 살아야 하는가고 물었습니다.

정말 딱한 질문이였습니다. 남편을 버리고 시집을 가라고 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또 새파랗게 젊은 녀자에게 언제 만날지도 모를 남편을 기다리라고 말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 동무의 질문에는수령도 답변할수가 없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명백히 말해줄수 있다, 동무는 외로운 사람이 아니다, 당의 품이 있다, 당을 어머니로 믿고 살아가라고 하였습니다.···》

그이께서는 별안간 등뒤에서 일어나는 흐느낌소리에 말씀하시다 말고 돌아서시였다. 길가에 어느새 숱한 농장원들이 몰려와있었는데 반백의 녀인 하나가 키높이 자란 수삼나무가로수에 기대여 울고있었다.

《수령님, 저 동무가 바로 오현리에서 살다가 여기로 이사해온 그때 그 월남자가족입니다. 오덕실이라고···》

《그렇소?··· 그럼 구면인데 내가 왔수다 하고 인차 앞으로 나서야지 울기부터 하오··· 어디 손이나 잡아봅시다.》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그의 곁으로 걸어가시였다.

그이께서 손을 잡아주시자 오덕실은 더 크게 울음을 터뜨리였다.

《덕실동무, 그만하오.》

그이께서는 바른손을 그 녀자에게 맡기신채 왼손으로 물결치는 녀인의 어깨를 다독여주시였다. 그리고 눈물에 젖은 녀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시였다. 녀인의 눈귀와 이마에는 잔주름이 잡혀있고 머리도 반백으로 희여졌으나 해빛에 가뭇이 탄 얼굴에는 아직도 젊은 시절의 미모가 스러져가는 노을의 잔광처럼 연하게 남아있었다. 어딘가 낯이 익은것 같으면서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으시였으나 그날에 주고받으신 말씀만은 생생하시였다.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소?》

수령님께서 조용히 물으시는데 그이의 음성도 약간 갈리시였다.

《덕실동문 그후 당에도 들고 학교에 가서 공부도 하고 남부럽지 않게 살아왔습니다. 자식들도 있고··· 저 동문 도대의원입니다.》

수원들속에 서있던 도당책임비서가 앞으로 나서며 아뢰였다.

《일도 잘하고 자식들도 있다니 됐습니다.》

그이의 만면에 한순간 미소가 떠오르다가 보이지 않는 수심으로 번졌다. 자손도 있다니 재가한것이 기쁘시면서도 헤여졌다는 남편 일을 생각하면 또 마음이 걸리시는것이였다.

《수령님, 덕실동문 지금도 그 남편을 기다리고있습니다. 그에게 친자식은 없습니다.》

이번에는 같은 녀인으로서 그와 자주 만나 심금을 터놓고지내는 복덕이가 말씀드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갑자기 어떤 둔중한 물체에 가슴을 탁 부딪친것 같은 세찬 충격을 느끼시였다. 한 녀인의 가슴저린 운명에서 민족이 겪는 고통의 일단을 받아안으시였던것이다.

수령님께서는 배천에서 멀지 않은 례성강철교가 있는쪽을 오래도록 바라보시였다.

그이께서는 수원리를 떠나기에 앞서 머지 않아 통일이 된다고 하시면서 수원들중에 알곡수송문제때문에 따라와있던 교통위원회 책임일군들더러 북남으로 오가는 례성강철교를 더 든든히 보수해놓으라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수원리현지지도에 이어 배천군 금성협동농장, 연안군 오현협동농장 등 아침식사전에 자동차로 200여리나 되는 먼길을 다니시였다. 오현협동농장에 가시여서는 2작업반장과 함께 강화도와 교동도가 코앞에 바라보이는 분계선마을에까지 들리시여 옛일을 다시 추억하시였다.

30년만에 와보시는 이 마을의 번성한 풍경은 그이께 더욱더 격세의 감을 느끼게 하였다. 그전에는 200여호 될가말가 하던 마을이 이제는 1 000여호나 되는 도회지같은 큰 마을로 전변되였다. 그리고 추녀가 낮고 지게문들이 좁아 허리를 굽히고 겨우 드나들던 이영집들이 모두 두루미날개처럼 추녀가 건듯 들린 세칸, 네칸짜리 기와집들로 일신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계획대로 연안역에 머물러있는 기차칸에서 아침식사를 하시고 천태협동농장으로 가실 때에는 해가 벌써 하늘에 높이 떠올라있었다.

갑자기 날씨가 무더워지기 시작하였다. 승용차들은 황금벌을 옆에 끼고 달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 타신 승용차가 천태리소재지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밀짚모자를 쓴 한 녀인이 큰길 저편을 하염없이 바라보고있었다. 아마도 수령님께서 연백벌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나왔지만 이렇게 첫새벽에 최전연까지 나가셨다가 오시는줄은 모르고 평양에서 내려오는 청단쪽길만 바라보고있는 모양이였다.

속도를 늦추며 천천히 미끄러져가던 선두차가 관리위원장이 서있는 바로 뒤에 멎어섰다. 그와 거의 때를 같이하여 뒤를 돌아본 관리위원장은 몹시 놀라는 표정이였다. 이제 쉰살 안팎으로 보이는 몸이 호리호리하고 얼굴이 갸름한 녀인이였다.

선두차에서 내린 복덕위원장이 그에게로 급히 달려가 무어라고 말을 하자 그는 흠칫 굳어지며 놀란 기색을 짓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허둥거리는 시선이 차창에 미칠 때 김일성동지께서 차에서 내리시였다. 순간 얼어붙은듯 서있던 관리위원장이 바람처럼 달려왔다.

《어버이수령님,··· 천태··· 관리위원장 배련실입니다···》

밀짚농립모를 땅바닥에 떨구면서 고개를 숙이는 배련실의 좁은 어깨가 세차게 들먹거리였다. 그는 고개를 쳐들고 무어라고 말을 하였지만 울먹이는 불명확한 발음이 되여 그이께서는 가려들을수가 없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래, 그래··· 고맙소, 감사하오.》하시며 관리위원장의 손을 잡아주시였다. 연약해보이는 호리호리한 몸매와는 달리 관리위원장의 손은 사내들처럼 크고 억세고 뜨거웠다. 땅기운에 그슬린 농군의 손이 틀림없었다.

《위원장동무, 이 천태리관리위원장이 예술영화 <흰저고리의 딸이라고 했던가?》

김일성동지께서 관리위원장의 손을 잡으신채 복덕위원장을 돌아보시였다.

《그렇습니다, 수령님!》

《흰저고리》란 1950년대의 어려운 시기에 열여섯명의 전쟁고아를 키운 이 나라 한 녀인의 별명이였다. 그를 주인공으로 형상한 예술영화에서도 그 녀인의 깨끗하고 고운 마음을 상징하여 《흰저고리》라는 제명을 달았었다. 천태리관리위원장 배련실은 열여섯명 자식을 키운 그 《모성영웅》의 맏딸이였다.

《어린 시절에 일가친척을 다 잃어버린 전쟁고아가 오늘은 수백정보의 논밭을 관리하는 관리위원장이 됐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우리 사회주의가 얼마나 좋은가를 알수 있소. 이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도 쌀을 많이 생산해야 합니다.》 하고 말씀하신 그이께서는 논두렁을 바라보며 몇걸음 옮기시다가 문득 멈춰서시였다. 주변의 모든것이 너무도 낯이 익으시였다.

《음, 낯이 익어. 30년전에 왔던 자리에 다시 왔구만.》

그이께서는 1963년 8월 30일에 바로 이 큰길가에서 농장원들을 만나 연백벌의 농사형편을 료해하시고 강령적인 교시를 하시였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감회롭게 주변을 둘러보시다가 논벌 건너편에 서있는 록음우거진 둥근 산봉우리를 바라보시였다. 그것은 마치 황금바다에 떠있는 푸른 섬처럼 보이였다.

《저 산이 천도산이지?》

김일성동지께서 록음우거진 푸른 천도산을 가리키시였다.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복숭아를 따먹었다고 하여 생겨난 이름이였다. 그러나 1963년 당시에만 하여도 천도산에는 복숭아는커녕 산열매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수령님께서는 천도산의 복숭아가 하도 달아서 선녀들이 나무채로 떠가지고간 모양이라고 하시면서 천도산은 그 이름으로 보아 과일이 잘될것 같으니 감나무를 많이 심어 조선의 선남선녀들이 감을 따먹게 하자고 친히 감나무 종묘까지 보내주시였다.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그후 단발머리처녀 원예기수가 천태리마을로 찾아왔으니 그가 바로 배련실이였다. 배련실은 그때부터 천태리에 뿌리내려 30년세월을 보냈었다.

누런 황금벌과 푸른 천도산은 조화로운 색조를 이루어 한폭의 아름다운 조선화를 보는것 같았다.

《수령님, 저 시퍼런게 다 감나무입니다. 천도산에서 해마다 수백톤의 감을 따서 다른 군에까지 공급합니다.》 하고 복덕위원장이 감나무를 지성껏 가꾸어온 배련실의 공적에 대해 말씀올렸다.

《감사하오. 그러니 천태리관리위원장은 쌀농사도 잘하고 과일농사도 잘하누만.》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득히 펼쳐진 누런 논벌을 둘러보시였다. 탐스럽게 익은 벼이삭들은 마치그이께 인사를 드리듯 숙연히 고개를 숙이고있었다.

《그래 작년에 비해 올해 벼수확고가 얼마나 높아질것 같소?》

《작년보다 정보당 두톤은 더 낼것 같습니다.》

《2t? 연안군농사도 괜찮아···》

그이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다가 관리위원장을 돌아보며 《그러나 앞으로 3t, 4t정도 더 높여야겠소. 만족해서는 안되오.》 하고 강조하시고는 올해에 논밭들에 비료는 얼마나 쳤는가고 물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비료를 많이 보내주시여서 금년에는 작년보다 200kg 더 많이 쳤습니다.》

《200kg?··· 그래서 벼수확고가 2t이나 더 높아졌구만.》

김일성동지께서는 수원들을 돌아보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보시오. 여기서도 법칙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까. 가령 정보당 비료 400kg를 주면 4t의 쌀이 나오고 800kg를 주면 8t ~ 10t의 쌀이 나옵니다. 비료 한키로면 쌀 열키로요.》

그이께서는 비료와 쌀의 일대 십 비률은 자신께서 수십년동안 농사를 지으시는 과정에 얻어낸 과학적수치라고 하시였다.

한낮이 되여오면서 해볕이 따가와지고 논판에서 열기가 확확 풍기였다. 아침안개가 끼더니 날씨가 몹시 무더워지고있었다. 하지만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논, 저 논들을 돌아보시면서 모내기는 언제 했는가, 써레질은 며칠 앞세웠는가, 뜨락또르와 자동차는 얼마나 되는가, 아직도 지원로력을 받는가 이렇게 수십가지나 되는 질문을 하시면서 잘못된것이 있으면 구수한 농민들의 말로 알기 쉽게 일깨워주시였다. 30년의 농사경험이 있는 배련실이도 그이의 농학지식과 농사경험에 깜짝 놀랄 지경이였다. 잠간사이에도 그는 많은것을 배우고있었다. 하지만 그는 염염한 폭양을 맞으며 오랜시간 논뚝길을 걷고계시는 년로하신 수령님을 뵙고있느라니 죄송스럽기 그지없고 가슴이 조이였다.

어찌하여 오늘따라 해볕은 이리도 따가운가.

《수령님, 이젠 좀 다리쉼을 하십시오.》

배련실은 수령님께서 새 논뚝길을 잡으려고 하실 때 마침내 말씀올리였다.

《응, 다리가 좀 아프구만. 이젠 길에 나가앉아서 이야기할가?》

김일성동지께서는 큰길로 나오시였다. 하지만 키높이 자란 수삼나무가로수들은 논판에만 그늘을 던지고있어 그 어방에는 수령님을 모실만한 그늘자리 하나도 없었다. 볕에 달아오른 석비레땅에서 단김이 올라왔다.

부관이 그이께 접이의자를 가져다드리고 양산을 받쳐드리였다.

《양산을 걷으시오. 논벌에 나와 양산을 쓰고있으면 농장원들이 웃소. 농군은 벌에 나와 양산을 쓰지 않소.》

그러자 부관은 양산을 걷어가지고 승용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더니 전넓은 왕골모자를 들고왔다.

《수령님, 그럼 왕골모자라도 바꿔쓰십시오.》

《왕골모자?》

그이께서는 쓰고계시던 중절모에 손을 대보시였다.

《음, 여간한 날씨가 아니로군. 중절모가 뜨끈뜨끈해.》

그이께서는 볕에 달아서 뜨거워진 중절모를 벗고 부관이 가져다 드리는 왕골모자를 받으시였다.

마침 이때 수령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일군들과 마을사람들이 큰길에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감격에 넘친 그들은 김일성동지께서 앉아계시는 논뚝옆 길가에 달려와서 저마끔 제나름대로 인사를 올리였다. 눈물이 번들거리는 고동색얼굴들이였다.

《동무들, 농사를 잘 지어서 고맙습니다. 오늘은 여기 와서 정말 한 십년 젊어지는것 같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 밝은 웃음을 지으시며 모두걸이로 치하의 말씀을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가까이 서있는 한 청년에게 눈길을 돌리시였다.

《동무, 하나 물어보자구. 금년에 여기 연백벌 농사작황이 대단히 좋은데 동무는 그 비결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오?》

창졸간에 그이의 질문을 받은 청년은 한순간 당황하였으나 인차 마음을 수습하고 기운차게 대답을 올렸다.

《그것은 어버이수령님께서 금년에 또다시 농업사령관이 되시여 나라의 농사를 보살펴주셨기때문입니다.》

농장원들은 옳은 대답을 했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럽게 청년을 바라보았으나 그이께서는 손을 저으시였다.

《시험점수를 매기면 그 대답은 락제야!》

그러자 《어마나!》 하는 어느 녀인의 호들갑스러운 비명이 울려 와! 하고 웃음이 터졌다.

수령님께서도 크게 웃으시였다.

《금년에 농사작황이 좋은 원인은 다른데 있지 않소. 첫째로는 동무들 농장원들이 사상적으로 동원된데 있고 다음으로는 비료와 물을 넉넉히 대주고 육종사업, 모내기, 씨붙임들을 잘한데 있습니다. 그래서 논농사, 밭농사가 다 잘됐습니다. 물론 그밖에도 원인이 있지만 기본은 사람, 비료, 물, 종자입니다.》

그이께서는 옛날부터 거름(비료), 물, 종자를 풍년담보의 세가지 기본요소로 보았다고 하시였다.

하지만 옛날에는 연백벌에서 이 세가지가 다 모자라서 벼를 정보당 이삼톤밖에 내지 못했다고, 특히 물때문에 고생이 많았다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남쪽하늘가로 추연한 눈길을 보내시였다. 두루미 세마리가 해빛에 흰 날개를 번뜩이며 스적스적 바다가로 날아가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그것들이 흰점으로 작아질 때까지 묵묵히 지켜보시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내가 아직까지 잊지 못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연백벌 절반땅이 남조선통치하에 있을 때입니다. 1947년이였습니다. 어느날 나는 남조선 연백벌농민들로부터 해마다 물이 모자라 농사를 망치고 이제는 굶어죽을 형편이니 북조선에 있는 구암저수지의 물을 보내달라는 진정서를 받았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뇌리에 깊이 새겨져있는 진정서의 몇구절을 뜬금으로 외우고나서 한 늙은이에게 시선을 돌리시였다.

《로인도 옛날부터 여기서 살았겠으니까 아마 물때문에 진정서를 낸 사실을 알고있을겝니다.》

《수령님, 알다뿐이겠습니까. 저두 그 진정서에 지장을 눌렀던 사람입니다. 그때 수령님께서 물을 보내주시지 않았더라면 저희 가족들은 다 굶어죽었을겝니다. 어찌 제가 그걸 잊겠습니까.》

그의 말에 의하면 당시 이남당국자들은 북조선에서 보내주는 물을 쓴다고 연백벌농민들을 가두고 때리며 지독히 초달을 했다고 하였다.

《그렇소, 연백벌사람들은 그렇게 물때문에 고생하였소.》

김일성동지께서는 농장원들을 둘러보며 계속하시였다.

《나는 그때부터 연백벌이라고 하면 먼저 물을 생각하게 되였습니다. 김정일장군이 우리의 그 심정을 알고있었기때문에 평안도와 황해도일대를 련결하는 2천리물길공사를 대담하게 작전하고 진두에서 지휘했습니다. 그래서 여기 재령, 연백벌사람들이 하나의 운하와 같은 관개수로를 옆에 끼고 물농사를 마음껏 하게 되였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우리 당이 나라의 농사를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가를 알수 있을것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앞으로도 당은 연백벌농사에 특별히 관심을 돌리고 비료, 물, 종자 이 세가지를 넉넉히 대주려고 한다, 그러니 이제는 농장원들이 사상적으로 동원되기만 하면 해마다 흉풍을 모르게 될것이다, 오늘 세계혁명의 운명은 조선혁명에 달려있고 조선의 사회주의운명은 중요하게 쌀에 달려있다고 하시였다.

《래년은 농촌테제발표 30돐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다음해 농업대회를 크게 하자고 합니다. 래년은 조국통일운동에서도 전환을 일으켜야 할 해입니다. 그러니 래년에는 농사를 더 잘 지어야 합니다.》

그러자 농장원들은 농사를 잘 짓겠다고, 이제는 농사걱정을 놓으시라고 저마끔 목메인 대답들을 하였다.

《수령님!》

배련실은 잠자코 서있다가 맨나중에 한걸음 나서며 그이를 불렀다.

《왜?》

《저희들이 지금까지는 일을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요?》

김일성동지께서는 느닷없이 용서를 비는 배련실을 지켜보시였다.

《이렇게 농사를 잘 지어놓고 용서를 빌다니···》

그이께서는 관리위원장의 손을 잡으시며 이 거칠어진 손이 모든것을 다 말해준다고 하시였다. 련실은 그이께 손을 맡긴채 흐느끼며 말씀을 올리였다.

《아닙니다. 저희들은 지금까지 일을 잘못했습니다. 그래서 수령님께서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 그러나 이제부터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도를 높이 받들어 농사를 잘 짓겠으니 더는 포전길을 걷지 말아주십시오.》

수령님께서는 대견하신듯 배련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시였다. 한줄기 바람이 지나갔다. 뙤약볕에 달아서 바람마저 입김처럼 후끈후끈하였다. 그이께서는 배련실의 어깨를 쓰다듬어주시였다.

《고맙소. 감사하오. 동무가 김정일장군의 지도를 받아 농사를 잘 짓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기 바랍니다. 래년에도 농사를 잘 짓소. 그래야 내가 농장들에 나가다니지 않지. 농사를 잘 짓지 못하면 80이 넘었지만 나와다니지 않을수 없소.》

《수령님, 저희들이 채심하고 농사를 잘 짓겠으니 이제는 편히 쉬십시오.》

수령님의 손을 붙들고 간절히 아뢰이는 배련실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군중들속에서도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이께서는 관리위원장의 등을 두드려주시며 《일없소, 일없소, 동무가 나에게 편히 쉬라고 하는데 사람은 운동을 하여야지 운동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빨리 늙소.》 하고 웃으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새 원기를 회복하신듯 접이의자에서 움쭉 일어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제도 청단군에 가서 몇개의 협동농장을 더 돌아보실 계획이였다. 얼핏 시계를 들여다보신 그이께서는 농장원들을 향해 애로되는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시였다.

《수령님, 없습니다.》

배련실이 얼른 대답을 올리였다.

《왜 없겠소. 이렇게 큰 농사를 지으면서 애로가 없다는것은 말이 안되오. 관리위원장이 대표로 말하시오. 책임서기동문 수첩을 꺼내놓고 적소.》

그이께서 이렇게 재촉하시여 배련실은 사실대로 다이야, 베아링과 같은 농기계의 부속품들이 다소 부족하다고 말씀올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제 돌아가면 농기계부속품들뿐아니라 자동차와 뜨락또르를 더 보내주겠다고 하시였다.

《연백벌은 우리 나라 10대벌중의 하나입니다. 연백벌은 농업의 주공전선을 담당하고있으니만큼 앞으로 농사를 더 잘 지어야 하겠습니다. 그럼 이젠 집마을로 가봅시다. 어떻게들 살고있는지 구경을 합시다.》

푸른 하늘 높이 제비들이 날아예고 두루미는 반공에 긴 원을 그리며 돌아갔다.

집마을이 점점 가까와오고있었다.

어디선가 어린이들의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그날 김일성동지께서 천태협동농장 집마을까지 돌아보시고 청단군의 협동농장들을 지도하시였을 때는 이미 서산에 해가 뉘엿뉘엿 지고있었다. 그이께서는 복덕이를 비롯한 도의 책임일군들의 바래움을 받으시며 렬차있는데까지 오시였으나 웬일인지 선뜻 차에 오르지 않고 잠시 거니시였다. 인민들을 찾아오실 때는 늘 서둘러 첫새벽에 길을 떠나시고 돌아가실 때는 해를 넘기며 늦잡으시는수령님이시였다. 어제날 원화리의 이른새벽같이 오늘도 첫새벽에 이 고장을 찾으신 그이께서는 적들에게 온 가족을 다 잃은 한 일군의 외로움때문에 가던 길을 되돌아서시여 하루밤 같이 지내시던 그날처럼 사연많은 연백사람들을 두고 쉬이 떠나실수 없으시였다.

《자, 이젠 그만 헤여지자구. 그런데 평양서 살던 덕복동무랑 이렇게 먼곳에 보내놓고 오래간만에 찾아왔는데 거저 헤여질수야 없지 않소··· 다들 저녁식사나 같이 들기요.》

그이께서는 헤여지자고 하시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또 일군들을 렬차식당으로 데리고 오르시였다. 그리고 달리는 렬차에서 간소한 식사를 나누시며 농사와 생활에서 제기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또 의논해주시다가 평양으로 올라가는 본선 인입선이 있는 장방역에 와서야 일군들과 헤여지시였다. 그러니 차칸에서 드시는 저녁식사시간에까지 이어지는 그 하루는 참으로 로고에 로고로 이어진 하루였다. 그이의 하루는 언제나 그러하였다.

이른새벽에 벌써 농장벌을 다녀오시여 새해 첫 전투를 벌리시는 이날의 하루도 더할나위없이 바쁘실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