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7


 

7

 

일요일 새벽 저택정원의 나무가지들과 오솔길우에는 흰눈이 덮여있었다. 밤새도록 눈이 내린것이였다.

이해따라 례년에 없이 늦게 내리는 마지막 봄눈이였다. 어둠이 가시면서 새벽빛이 희붐히 비쳐들자 정원은 온통 은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풍년눈이 왔구만!》

정원으로 나오신 김일성동지께서 밝아오는 새벽빛속에서 설광에 번득이는 주변의 나무숲들을 둘러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눈석이가 시작되고있는 계절에 소담한 함박눈이 푸짐히 내린것은 풍년을 부르는 자연의 약속인듯싶었다.

이윽고 정원 울타리를 벗어나 시험포전쪽으로 한참 걸어가시던 그이께서는 정향나무가지우에 무겁게 실려있는 눈을 한줌 쥐여보시였다. 희고 깨끗하고 찰기가 느껴지는 눈이였다.

그때 회색 봄외투에 검은 단화를 신은 두 젊은이가 저마끔 사진기를 손에 들고 가래나무숲 소로길에 나타났다. 그들은 우리 나라에 와서 대학공부를 하고있는 장울화의 손자들인데 김일성동지께서는 어제저녁 그애들을 가까이 부르시여 함께 하루밤을 지내고 아침산보에 데리고 나서신것이였다.

장울화의 손자애들을 량옆에 끼고 한동안 눈길을 걸으시던 그이께서는 청신한 대기를 깨며 울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걸음을 멈추시였다. 저택 시험포전관리원인 오삼수가 강냉이시험포전쪽으로 가는 길옆에서 손자녀석들과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있었다.

그는 새해에 접어들어 여든두살이 되는 로인이였다. 시험포전에서 오래동안 일해오던 그는 나이가 들면서 힘든 일은 젊은이들에게 맡기고 지금은 고문격으로 일하고있었다.

《이녀석들아, 가만, 가만, 수염은 이 오사리로 달아라.》

오삼수는 맨머리바람에 솜옷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젊은이들처럼 기운차게 눈사람둘레를 돌아치면서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였다. 그는 로인성탈모증으로 비록 머리는 벗어졌으나 정수리에 몇오리 남아있는 머리카락이 머루빛처럼 새까맸다.

김일성동지로부터 가끔 《동갑이》라는 애칭을 받기도 하는 오삼수는 수십년세월 시험포전에서 고락을 함께 해오는 친근한 벗이기도 하였다. 저택 울타리안팎에 있는 거의 모든 시험포전들에는 실농군으로 농산기술까지 겸비한 오삼수로인의 땀이 스며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이 허물없는 농사의 벗과 수시로 농업기술문제에 대한 의견도 나누시였다. 세상에 이심전심이란 말이 있듯이 수령님과 오삼수는 서로 늘 마음이 통하여 말없이도 뜻을 전할수 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오삼수를 보시자 대번에 마음이 밝아져 이끌리듯 그를 향해 걸음을 옮기시였다. 뒤에서 보는 오삼수는 머리만 벗어지지 않았다면 여불없는 건장한 장년사나이였다.

《삼수동무, 백살은 문제없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아이들과 어울려 생눈을 밟고다니는 오삼수를 바라보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순간 오삼수는 몸에 묻은 눈을 털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수령님께서···》

그는 허둥지둥 생눈밭을 빠져나와 그이께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리였다. 눈우에서 딩굴며 돌아가던 유치원또래의 두 어린이도 《할아버지대원수님, 안녕하십니까.》하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인사를 올리면서 그이께 큰절을 드리였다.

《오냐, 너희들이냐?》

수령님께서는 인자하게 웃으시며 어린이들의 인사들을 받아주시였다.

오삼수와 그의 손자애들은 쟈케트에 가죽방한화를 신고 산책용 둥글모자를 쓰신 그이를 눈이 부시듯 올려다보았다. 숲을 꽉 채우는듯 한 그이의 큰 체격, 부드럽고 따스한 미소··· 이 아침의 설경은 그 미소로 하여 더욱 밝아지는것 같았다.

《눈사람이로군! ··· 저런 오락을 하는것이 건강에 좋소.》

김일성동지께서 눈사람을 가리키며 오삼수에게 말씀하시였다. 그러나 오삼수는 손자애들과 섭쓸려 눈장난을 하고있은것이 무안스러운듯 어줍은 웃음을 지었다.

《간밤에 눈이 온걸 보더니 이녀석들이 풍년할아버지를 만들자구 어찌나 조르는지 끌려나왔습니다··· 할아버지대원수님이 강냉이시험포전을 보시러 가실 때마다 늘 이 길을 걸으신다고 하면서 꼭 여기다 눈사람을 만들자는겁니다.》

《허허··· 그러니 아이들까지 농사걱정을 하는 모양이요. 그런데 풍년할아버지를 왜 저 모양으로 만들었소? 내 좀 도와줄가?》

수령님께서 생눈을 밟으시며 눈사람앞으로 다가가시였다. 그러자 아이들이 좋아서 짝짜그르 손벽을 치고는 눈사람을 만드는 《조각도구》들인 나무꼬챙이와 숯덩이, 강냉이오사리를 그이께 받쳐드리려고 하였다.

《원, 버릇없이!》

오삼수는 저마끔 자기것을 먼저 드리겠다고 싱갱이질을 하는 손자녀석들을 꾸짖으면서도 그이와 함께 섭쓸리게 된것이 흥겨워 뭔가 도와드리려고 그이의 곁으로 다가섰다.

《삼수동문 옆에서 보기나 하오!》

김일성동지께서는 오삼수를 물러나게 하시였다. 하는수 없이 뒤로 물러선 오삼수는 손자녀석들의 응석을 받아주시는 그이께 민망스러운 생각이 들어 손을 비비며 서성거리였다.

그이께서는 손수 눈덩이 몇개를 빚어 눈사람의 어깨와 배부위에 붙이시였다. 그러시고는 짐짓 목각을 새기는 공예사처럼 직심스럽게 나무꼬챙이로 눈사람의 머리를 섬세하게 다듬으신 다음 숯덩이로 눈과 코와 입을 만들어놓고 수염을 달으시였다.

그 일이 다 끝나자 아이들에게 머리카락은 없느냐고 물으시였다.

아이들이 그것을 준비하지 못한 실책을 깨닫고 발을 동동 구르니 그이께서 마침 주변에 잣나무들이 서있는것을 보고 바늘잎 몇대를 뽑아가지고 돌아와 눈할아버지의 대머리정수리에 꽂으시였다. 순간 신비하게도 눈할아버지는 살아 숨쉬는 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야, 우리 할아버지다.》

별안간 아이들이 자기 할아버지와 눈할아버지를 번갈아보며 웃어대기 시작하였다.

오삼수는 저도 모르는 사이 자기의 대머리에 나있는 몇오리의 머리카락을 쓸어만지였다. 그바람에 어느새 왔는지 같이 구경을 하던 장울화의 손자들까지 소리내여 웃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몇걸음 뒤로 물러서서 허리에 두손을 얹고 풍년할아버지를 바라보시면서 룡을 그릴 때 눈을 잘못그리면 룡이 안되는것처럼 저 대머리에 돋은 머리카락이 없으면 풍년할아버지가 안되지 하고 말씀하시며 웃으시였다. 그리고는 오삼수의 손자애들이 알아듣도록 차근차근 말씀하시였다.

《너희 할아버지가 바루 풍년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여기서 농사를 지으며 늙었는데 할아버지가 가꾼 밭에서는 언제나 풍년이 들었다. 그러니 풍년할아버지지. 안그러냐?》

수령님께서 자기네 할아버지가 풍년할아버지라고 말씀하시자 철없는 아이들도 웃음을 거두고 새로운 눈으로 눈사람을 지켜보았다. 눈사람을 마주하고 서있는 오삼수의 주글주글한 얼굴에 느슨한 웃음이 피여났다. 순간 번쩍하는 섬광이 오삼수의 눈을 부시게 했다. 장울화의 손자가 풍년할아버지를 찍느라고 사진기샤타를 누른것이였다.

얼마후 김일성동지께서는 아이들을 남겨놓고 강냉이시험포전쪽으로 가시며 오삼수와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내 그러지 않아도 삼수동무를 만나자고 했는데 마침 잘됐소. 그래 요즘 건강은 어떻소?》

《수령님 말씀대로 백살은 문제 없을것 같습니다.》

오삼수는 버릇처럼 대머리를 쓸어만지며 흐뭇이 웃음을 지었다. 농터에서 흙냄새를 맡으며 늙어온 그의 고동색 얼굴에는 주름살들이 많이 잡혀있었으나 웃음을 띠고있는 두눈은 아직도 청년의 눈처럼 윤기가 돌았다.

《무탈하다니 반갑소. 그러나 장담해서는 안되오. 여든두살이거든···》

수령님께서는 절대로 힘든 일은 하지 말고 건강에 좋을만큼 알맞춤하게 일하라고 하시였다.

오삼수는 간절한 눈빛으로 그이를 바라보았다. 건강문제로 말하면 오삼수자신이 먼저 그이께 아뢰고싶은 소원이였던것이다. 오삼수는 노상 그이의 곁에서 지내다보니 그이의 신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거의다 알고있었다. 김일성동지자신이 80여년의 인생을 살아온 나이도 같고 마음도 통하는 그한테는 신변상의 문제를 다 터놓고 지내시였다. 오삼수는 그이께서 눈탈이 났다는것과 지금까지 시간을 내시지 못한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지금도 색안경을 끼신 그이의 눈에 마음이 쓰이여 불안을 금할수 없었다.

그는 걱정스러워 물었다.

《그래 언제면 시간을 내게 되십니까?》

《내 눈때문에 그러오?》

《예···》

《이미 결심을 내렸소. 래일 병원으로 들어가 눈수술을 받기로 했소.》

《예?··· 그게 사실입니까?!》

오삼수는 전혀 믿어지지 않는듯 눈을 비비며 물었다.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하겠소? 사실이요.》

《됐습니다. 이젠 저도 걱정이 놓입니다. 그래야지요. 사정을 보지 말구 시간을 뚝 떼서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오삼수는 어깨춤이라도 출것처럼 들썩거리며 기뻐하였다. 그는 요즘 정세가 하도 긴장해지고있기에 그이께서 병치료를 받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그건 그렇고···》

김일성동지께서는 화제를 돌리시였다.

《동무가 며칠전에 연백벌에도 다녀왔다고 하니 거기 소식이나 들어봅시다.》

오삼수가 관리하는 시험포전들중에는 연백지구를 비롯한 우리 나라 주요농업지구들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시험포전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삼수는 늙은 몸이지만 사업상 관계로 여러 농촌지구들을 자주 돌아다니는것이였다.

《그래 연백지구에서 영농준비들을 잘해나갑디까? 농업대회에서 알아보았지만 동무의 의견도 좀 들어봅시다.》

수령님께서는 저택으로 들어가시는 길목 측백나무밑에서 걸음을 멈추며 물으시였다.

《예. 지금 거기 사람들은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뜨락또르와 자동차들을 받아안고 성수가 났습니다. 농업대회에서 하신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모두 불이 붙었습니다. 거기에 나간 농업위원회 부위원장은 바람개비처럼 돌아갑니다.》

오삼수는 연백지구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그이께 자상히 아뢰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어쨌든 올농사를 잘 지어야겠소. 우리 학자들이 육종한 새 강냉이종자가 요즘 들어왔는데 시험포전에 그걸 심을 자리도 넉넉히 내놓소. 시험해본 다음 파악이 생기면 중간지대에 보냅시다.》하고 눈에 덮여있는 시험포전들을 둘러보시였다.

《예. 올해엔 마음먹구 더 잘해보자구 합니다. 수령님, 참 이 눈속에서두 벌써 영양모에서 싹이 돋아났습니다.》

시험포전이야기가 나오자 오삼수는 더욱 활기를 띠였다.

《벌써?··· 어디 가봅시다.》

수령님께서도 밝은 웃음을 지으며 영양모판이 있는 쪽을 바라보시였다.

《수령님, 가만 계십시오. 제하나 떠오겠습니다.》

성수가 난 오삼수가 어린이처럼 껑충껑충 눈밭을 밟고 영양모판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축구선수가 뽈을 보면 본능적인 약동이 일어나듯이 오삼수는 그 어떤 인력에 끌리듯 80객 로인으로 보기에는 믿기 어려운 날렵한 동작으로 모판에 달려갔다. 그리고는 눈을 헤치고 비닐박막속에 있는 모판에서 벼모 하나를 뽑아들고 돌아와 수령님께 드리였다. 그이께서는 그 작은 영양단지를 손바닥우에 올려놓고 파랗게 돋아난 벼싹을 들여다보시였다. 락종날자를 앞당겨 시험해보는 벼모였다.

《돋아났구만 돋아났어.··· 아직 눈은 덮여있지만 봄이거든.》

김일성동지께서는 마치 금싸래기를 다루시듯 영양모를 이리저리 보고 또 보시였다.

《수령님, 그게 보물입니다.》

《그렇소, 보물이지. 이 영양모 하나에서 숱한 낟알이 나오게 될테니까.》

수령님께서는 그 조그마한 낟알싹으로 하여 만시름을 다 잊으신것 같았다.

《수령님, 이 영양단지모는 먹어둔겁니다··· 몇해째 해봤으니까요.》

《그렇다면 금년부터 대대적으로 도입해봅시다.》

그러자 오삼수는 기뻐서 싱글벙글하였다. 시험포전을 가꾸어 이렇게 수령님을 기쁘게 해드리는것이 바로 그의 가장 큰 생활의 락이였던것이다.

얼마후 오삼수가 영양모를 제자리에 가져다 심어놓고 돌아오자 그이께서 문득 물으시였다.

《이번에 삼수동무가 여러곳을 돌아다녔다고 하는데 그래 인민들의 생활형편이 어떻소?》

줄곧 싱글거리고있던 오삼수는 수령님의 그 물음에 웃음을 거두고 정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지 않아 지난 기간에도 오삼수는 어디에 갔다오면 인민을 위해 늘 마음을 쓰시는 김일성동지께 자기가 보고 들은것들을 조금도 숨김없이 사실그대로 말씀올리군 했었다.

수령님께서 오삼수를 특별히 좋아하신것은 그 곧은 성미때문인지도 모른다.

오삼수는 이때도 자기가 돌아다니며 목격한 사실들을 그대로 말씀올리였다.

《수령님, 거기는 생활이 그닥 풍족하지는 못해도 불편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우리 제도처럼 좋은 제도가 어디 있는가고, 미국놈만 아니였다면 생활수준도 세상에서 제일 좋았을거라고, 그저 죽일놈은 미국놈들이라고 욕합니다.》

《우리 인민은 정말 리해력이 있는 좋은 인민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소박하고 성실하고 더없이 충직한 인민들을 생각하시는듯 고개를 들고 먼 하늘을 바라보시였다.

벌써 두해째나 《핵문제》로 하여 대결하고있는 미제의 책동때문에 어려운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고있는 우리 인민들이였다.

《정말 좋은 인민이요.》하고 되뇌이신 그이께서는 걸음을 떼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내가 어제 어느 한 회의에서도 말했소. 나는 이런 좋은 인민에게 아직 나라의 통일을 주지 못한것이 제일 한스럽다고···》

오삼수는 부지중 걸음을 멈추었다.

《수령님, 정말 죽일놈은 미국놈입니다. 우리가 나라만 통일되면 무서운게 있겠습니까. 인민생활도 문제없습니다. 이제는 미국놈들과 결판을 내야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있습니다. 이를테면 그것이 민심입니다.》

솟구치는 격분으로 하여 오삼수의 관자노리에서 시퍼런 피줄이 살아올라 꿈틀거리였다.

《이제 머지 않아 통일의 문이 활짝 열릴거요.》

김일성동지께서는 격정을 누르시는듯 나무가지를 그러쥐시였다. 흰눈가루가 그이의 둥글모자와 어깨우에 떨어져내렸다. 숲속에서 새소리가 들려왔다.

그이께서는 다시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통일의 날은 머지 않았소. 그러니 동갑이는 몸조리를 잘하시오. 뭐 제기할것이 있으면 말하오.》

그이께서는 시계를 들여다보시였다.

오삼수는 무엇인가 간절히 기원하는 뜨거운 눈빛으로 그이를 바라보았다.

《수령님, 인민들은 지금 수령님만을 믿고 수령님만을 바라보고있습니다. 인민들의 소원대로 부디 건강에 주의하시기를 바라옵니다. 그래야 이 오삼수도 통일의 날을 볼수 있지 않겠습니까.》

수령님께서는 오삼수의 절절한 당부에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끼시였다. 그이께서는 새삼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시였다. 나무가지에 덮인 눈들이 녹고있는지 물 한방울이 떨어져 그이의 둥글모자를 적시였다. 아침해빛에 녹아떨어지는 물방울을 보시자 그이께서는 어느덧 겨울의 마지막잔해들을 녹여버리는 눈석이의 소연한 물소리가 들려오는듯 하시였다.

공원이며 정원숲은 눈에 덮여있어도 분명히 겨울은 물러가고 봄은 눈앞에 와있었다.

《삼수동무, 자 이젠 갑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걸어오신 길을 되짚어 걸어가시였다. 이때 뒤따르던 장울화의 손자들이 고전풍의 중국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이께서 노래를 좋아하시는것을 알고있는 젊은이들은 그이께 기쁨을 드리려고 일부러 목청을 가다듬고 한껏 감정을 잡아서 노래의 선률을 이어가는듯 했다.

《삼수동무, 저애들이 부르는 노래가 뜻이 깊은 노래요.》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던 수령님께서 오삼수가 알아듣도록 우리말로 천천히 노래를 풀이하시였다.

 

누에는 죽을 때까지 실을 뽑고

초불은 꺼질 때까지 눈물을 흘리네

가까운 사람 만나기도 힘들고

가까운 사람 헤여지기도 힘드네

 

김일성동지께서 걸음을 멈추고 장울화의 손자들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시였다.

《너희들 노래를 잘 부르는구나. 그런데 그 노래를 누가 지었는지 알고 부르느냐?》

젊은이들은 서로 마주보며 머뭇거리였다.

《모르는 모양이군. 그건 당나라 시인이 지은 노래이다.

너희들은 노래 하나를 불러도 그저 무턱대고 불러선 안된다. 당나라 시인이 어째서 그런 노래를 지었는지 력사적인 분석도 해보아야 한다. 자기 나라 력사를 잘 알아야 참다운 애국자가 될수 있다. 나는 너희들이 중국의 진정한 애국자가 되길 바란다.》

《큰할아버님, 명심하겠습니다.》

젊은이들은 조선말로 힘있게 말씀을 올리였다. 그이께서는 오삼수에게 피끗 시선을 주고나서 감회깊게 뇌이시였다.

《누에는 죽을 때까지 실을 뽑고··· 오늘 너희들한테서 그 노래를 들으니 너희 할아버지생각이 더 난다. 너희 할아버지는 젊어서 돌아갔지만 죽는 순간까지 혁명을 했지. 누에는 죽을 때까지 실을 뽑고 사람은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혁명을 해야지···》

말씀을 마치며 먼 공간을 아득히 응시하시는 김일성동지의 얼굴에는 부지중 자연과 인생의 철리에 잠겨보시는듯 한 깊은 사색이 비껴있었다. 젊은이들은 그이앞에서 조용히 머리를 숙이고 숙연한 감정에 휩싸여 단화끝으로 눈바닥을 허비였다.

《자, 이젠 집으로 가자.》

수령님께서는 성큼성큼 눈길을 밟으며 걸어가시였다. 따뜻한 해빛을 담은 정원의 나무가지들에서 녹아버린 눈들이 비물처럼 떨어지고있었다.

 

그날아침 김정일동지께서는 집무실에서 하나의 문건을 접수하시였다. 캄보쟈왕국 국왕 노로돔 시하누크의 방문건이였다. 수령님의 탄생일을 맞으며 찾아오는 년례방문이였다.

국방위원들의 모임에서 눈치료를 받으시겠다고 하신 수령님께서 오늘 새벽 산책길에 애들이 눈사람 만드는것까지 거들어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못내 기뻐하시던 장군님께서는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시하누크의 방문건이 반가우면서도 무엇인가 깊은 생각을 하시게 하였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노로돔 시하누크의 평양방문은 70년대와 80년대 이어 90년대에 들어와서도 계속 이어지고있었다. 이것은 수령님과 그와의 사이에 맺어진 혈육같은 친분관계의 표시였다. 그 회수는 무려 40여회였다. 그야말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가리지 않는 접촉이였고 우정이였다. 어떻게 할것인가?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방문건을 다 읽고나서 더욱 무거워진 표정으로 송수화기를 들고 외교부장을 찾으시였다.

어제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국방위원들의 협의회에 참가했던 문선규로부터 로심을 교체하게 된다는것을 보고받은 외교부장은 그이의 갑작스러운 부르심에 긴장해졌는지 놀라운 목소리로 대답을 올렸다.

《경애하는 장군님, 무슨 일입니까?》

《외교부에서 올려보낸 시하누크왕의 방문건을 보니 이번 방문에 례외적인 목적이 있다고 하는데 수령님으로부터 자국내의 문제에 대한 조언을 듣자는겁니까?···》

《···》

《왜 대답이 없습니까?》

《저희들이··· 어쩔수 없어··· 올렸던것인데···》

잠시 주춤했던 외교부장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오기 시작했다.

최근 캄보쟈에서는 시하누크왕의 민족화해호소에도 불구하고 왕국정부와 민주주의캄보쟈측사이의 의견대립으로 내란이 치렬해지고있었다. 국왕은 이와 관련하여 두측사이의 원탁회의를 진행할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장소문제로 그것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못하고있었다.

노로돔 시하누크는 이번 방문에서 이 문제를 수령님께 제기하고 그이로부터 조언을 받을것을 희망하고있었으며 더 중요하게는 수령님께서 민주주의 캄보쟈측에 영향력을 행사하여주실것을 기대하고있었다.

외교부장은 이러한 사연을 말씀올리면서 덧붙였다.

《국왕은 자기나라 문제를 진심으로 도와주실분은 우리 수령님밖에 없으시다는것입니다.》

《알겠소.》

수화기를 놓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국왕의 방문건을 놓고 뇌리에 깊이 새겨진 하나의 사연을 상기하시였다.

세계공산주의운동력사에 치욕을 남긴 민주주의캄보쟈정부의 전국통치시기 100만이 넘는 크메르민족이 희생됐고 시하누크자신도 친족 10여명을 잃었다. 그때 국왕은 수령님앞에 달려와 가슴을 쾅쾅 치며 부르짖었다.

《주석각하, 공산주의란 이렇게 무서운것입니까? 이건 야만행위입니다. 크메르의 하늘아래서 이들과 같이 산다는것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아, 저주맞을···》

그때 국왕의 절규는 수령님의 가슴을 사정없이 허비였다. 그로 하여 그이께서는 하루종일 식음까지 전페하시였다. 시하누크가 든 영빈관의 호수가를 말없이 거닐던 그이께서는 해질녘에 시하누크에게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그 아픈 마음 무엇으로 보상할수 있겠소. 허나 공산주의자인 우리를 봐서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시오.》

마음이 여리고 인정깊은 시하누크는 《형님!》하고 눈물을 떨구었다.

그후 키에우 삼판을 만난 자리에서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타이르시였다.

《사회계급적처지라는 채로 인민을 선별해서는 안됩니다. 인민을 가르는 척도는 어떤 사회계급적처지를 가졌는가 하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어떤 사상을 가졌는가 하는데 있습니다. 그 사상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만이 되는것이 아닙니다. 나라와 인민, 민족을 사랑하는 애족, 애민의 사상을 가지면 다 인민이 될수 있습니다.》

삼판은 머리를 떨구었다. 머리를 숙인것은 그만이 아니였다. 시하누크는 너무 감격하여 김일성동지의 품에 얼굴을 묻고 가슴아프게 해드려서 안되였다고 백배 사죄했다.

그 시하누크가 또 찾아오겠다고 하는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참만에 그의 방문건을 비준하시였다. 그 다음 다른 문건을 끄당겨쥐던 그이께서는 표지를 보더니 또다시 무거운 표정을 지으시였다. 그 문건은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과 관련한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연거퍼 다른 문건들을 보시였다. 모두가 수령님의 일감으로 되는것들이였다. 그가운데는 재미교포 언론인인 리영숙의 접견요청서도 있었다.

그이의 얼굴에는 심연과도 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비끼였다.

수령님께서 일껏 비상한 용단을 내려 입원치료를 결심하시였으나 결국 또다시 그것을 미루지 않으면 안되게 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실망에 잠겨 망연히 서계시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오래 그러고있을수 없으시였다. 민족의 리익과 존엄을 위해 로심을 교체하라는 지시를 떨군 이상 적들이 준동하고 서방세계가 움직일것이였다. 그이께서는 방문과 관련한 문건을 한쪽에 밀어놓으시고 당사업과 관련하여 부서들에서 올려보낸 문건들을 펼치시였다. 력사의 조종간을 틀어쥐신 그이 역시 한순간도 사업을 지체할수 없었고 쉬실수 없으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