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5


 

5

 

수도의 거리들은 전국농업대회에 대한 소식으로 흥성거리였다. 공화국의 각 신문들도 김일성동지께서 대회참가자들에게 력사적서한을 보내고 친히 회의에 참석하신 감격적인 소식들을 대서특필하여 전하고있었다. 그러나 수령님께서 시간을 얻지 못해 눈수술을 미루신채 대회에 참가하신 사실에 대해서는 그 어느 신문에도 소개된것이 없었다. 그것은 아직 세상이 모르고있는 비밀이였다.

인민들은 텔레비죤화면으로 대회주석단에 앉아계시는 그이의 정정하신 모습을 보고 그지없이 감격하고 기뻐하였을뿐이였다.

대회뒤끝에 김일성동지께서는 금수산의사당에서 사회주의농촌테제승리를 경축하는 성대한 연회를 베푸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날도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농업전사들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으시며 연회장으로 나오시였다.

령롱한 불빛이 흐르는 넓은 연회장에서 그이를 우러러 환호를 올리는 수백명 농업전사들의 눈에는 누구라없이 뜨거운 이슬이 맺혀있었다.

그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하시며 연회장을 둘러보시는 김일성동지께서도 감개가 무량하시였다. 그이의 시야에는 지난 30년간, 아니 반세기의 긴세월이 흐르는동안 농촌현지지도의 길에서 낯을 익히신 농업전사들의 얼굴이 수없이 비끼고있었다.

그이께서 애어린 시절부터 품에 안아 키우신 많은 농업전사들이 50대, 60대가 되여 머리에 인생의 서리를 얹고있었다.

천리마시대의 농촌 붉은선동원, 전화의 나날 이름을 떨친 처녀보잡이, 그들도 이제는 농업부문의 60대안팎의 녀성간부가 되여 연회장 뒤쪽에 서있었다. (이날 연회에서는 농장일군들을 앞에 앉히고 간부들을 뒤에 앉히였다.)

세월은 참으로 멀리 흘러갔다. 하기는 이 자리가 농촌테제 30돐을 경축하는 연회가 아닌가.

김일성동지께서 연회탁에 나서시자 박수소리는 한층 더 높아졌다.

손을 들어 답례하신 그이께서는 자리에 앉으신 다음에도 감회깊은 표정으로 연회장을 오래도록 둘러보시였다.

《음, 낯익은 동무들이 많이 보이누만··· 저기 청산리에서도 오고··· 온성에서도 오고 판문군에서도 오고···》

그러시고는 연회탁에 앉은 농업전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찬찬히 더듬어보시였다. 수령님을 모신 연회탁에는 풍정협동농장의 고문관리위원장인 박영순과 원화협동농장 관리위원장, 옥도협동농장 관리위원장 림경찬, 3월3일국영농장 지배인을 비롯하여 주로 시범농장의 관리일군들이 앉아있었다. 영광스럽게도 수령님을 한 연회탁에 모시고 앉은 그들의 얼굴은 감격과 흥분으로 하여 벌겋게 상기되여있었다. 너무 긴장하여 몸이 굳어져있는 농장원들도 있었다.

얼마후 농업위원회의 한 책임일군이 수령님과 한 연회탁에 앉아있는 농업전사들을 그이께 하나하나 소개해드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소개를 다 받으신 다음 맞은편에 꼿꼿이 앉아있는 젊은 농장원에게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동문 왜 그렇게 얻어온 사람처럼 꼿꼿이 앉아있나. 어려워하지 말구 많이 자시오. 그동안 농사를 짓느라 수고한 동무들과 식사나 한끼 같이 하면서 회포도 나누고 농사소식도 들어보고싶어 연회를 차린것이니 무슨 격식이 필요없소. 원래 농사군들이란 국수를 먹어도 양푼들이를 하는 법인데 마음껏 자시오.》

말뚝처럼 꼿꼿이 앉아있던 젊은 농장원들은 김일성동지의 소탈한 말씀에 저절로 긴장이 풀어진듯 하얀 대문이를 반짝이며 웃음을 지었다. 그이께서 주변연회탁에 앉은 농업전사들에게도 구미에 당기는 음식들을 더 청해주면서 이 시간을 즐겁게 보내라고 하시였다. 그리고 연회탁에 놓인 음식들을 가리키며 이것이 다 동무들이 땀을 흘려 지은 낟알이라고 하시면서 저마다 사연도 많을터이니 옛말도 하고 농사경험도 나누라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한 연회탁에 앉아있는 원화리 관리위원장을 바라보시며 원화리 농민들이 다 잘있는가고 안부를 물으시고는 전쟁시기부터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에 대하여 회고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자신께서 원화리 협동농장의 명예농장원으로서 지난해에는 분배돈까지 받아 자동차와 뜨락또르를 사보내주셨다고 하시였다.

이때 흰색치마저고리를 입은 중년녀인이 축배잔을 들고 그이께로 찾아와서 만수축원의 인사를 드리였다.

《음, 중석화리 관리위원장동무로구만, 오래간만이요··· 그런데 얼굴이 좀 상한것 같아. 어디 앓지 않았나?》

그이께서는 녀인의 얼굴을 다심하게 살펴보시였다. 이 녀성관리위원장도 그이와 수십년전부터 인연을 맺고 나라의 농사를 지어온 연고자였다.

《수령님! 전 건강합니다.》

관리위원장은 눈을 슴벅이면서 부디 만년장수하시라고 그이께 거듭거듭 축원의 인사를 드리였다.

《고맙소. 감사하오.》

그이께서는 따뜻이 답례하고 한 연회탁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씀하시였다.

《이 동무가 중석화리 관리위원장이요. 농촌테제가 발표되기전 60년대초만 하여도 중석화리는 무서운 산골이였소. 협동농장의 수준도 다른 농장에 비해 형편이 없었소. 산골이다보니 간부들도 찾아가지 않았소. 그래서 내가 산골농장일수록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간부들을 비판했소. 그러던 농장이 오늘은 기계로 농사를 짓고 흰쌀밥에 기와집을 쓰고 살아가고있소. 이게 바로 농촌테제 승리요. 그렇지, 관리위원장동무?》

김일성동지께서는 중석화리 관리위원장에게 눈길을 돌리며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 모든것이 다 어버이수령님의 은덕입니다.》하고 관리위원장은 수령님께서 험한 산골길을 걸어 우리 마을에 찾아오신것만도 수십여차례나 되지 않는가고 목메인 소리로 말씀올리였다. 수령님께서 하도 중석화리에 자주 오시여 거기에는 그이께서 직접 이름을 지어주신 아이들도 많다고 하였다.

이것이 어찌 중석화리에만 있는 일이겠는가.

지금 중석화리관리위원장의 뒤에 수령님께 만수축원의 인사를 드리려고 여러 사람들이 렬을 지은채 차례로 기다리고있는데 그들도 모두 수령님과 그러한 인연을 맺고있는 연고자들이였다.

중석화리 관리위원장은 그들을 위해서 자리를 비켜야 하였다. 그뒤를 이어 연회참가자들을 대표한 십여명의 농업전사들이 차례차례로 그이께 만수축원의 인사를 드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들의 축배잔에 매번 자신의 잔을 찧어주시면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따뜻이 답례하시였다.

그들 축배대렬이 지나간 다음 김일성동지께서는 곁에 서있는 외사국장에게 물으시였다.

《그런데 안달수 아들이 왜 보이지 않소? 그 동무도 왔겠지?》

《저기 중간좌석에 앉아있습니다.》

외사국장이 앞탁에서부터 초간히 떨어져있는 연회탁쪽을 가리켜드리였다. 그이께서는 고개를 들고 그쪽을 바라보시였다.

《안달수 아들이 어디 있는지 일어나시오. 좀 봅시다.》

그이의 부르심을 받은 안달수 아들이 숱한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엉거주춤 일어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를 보시자 손짓을 하시였다.

《동무, 여기 좀 가까이 나오시오. 그렇게 멀리 앉아있어서 보이지 않는구만.》

아버지를 닮아 성정이 순하고 일밖에 모르는 서원협동농장 관리위원장 안성철은 어떻게 처신할지 몰라 옆사람들을 돌아보며 주밋거리였다.

《아니, 왜 그러구있소. 수령님께서 부르시는데 빨리 나가지 않구···》

옆에서들 설레발을 쳐서야 그는 정신을 차린듯 서둘러 수령님을 향해 걸어나갔다. 축배잔도 없이 빈손으로 걸어나간 그는 수령님으로부터 열댓발자국 떨어진 자리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고 깍듯이 절을 하였다.

《어버이수령님! 전국농업대회에 보내주신 수령님의 서한교시를 높이 받들고 농사를 더 잘 짓겠습니다. 쌀을 많이 생산하여 사회주의를 억척같이 지키겠습니다.》

그는 수령님께 먼저 올려야 할 만수축원의 인사를 잊어버린채 불쑥 농사결의부터 올리고는 첫인사가 자기스스로도 불만스러운듯 얼굴을 붉히였다. 천정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불빛에 이슬기를 머금은 그의 두눈이 진주처럼 번쩍이였다.

《농사를 잘 짓겠다니 고맙다. 어디 손이나 잡아보자. 이리 가까이 오너라.》

안달수 아들은 조심스럽게 몇발자국 걸어나가서 그이께 바른쪽 손을 내밀었다. 굵은 피줄이 불거져나온 갈퀴같이 큰 손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손을 잡아쥐고 애틋이 쓸어만지시였다.

《손도 꼭 아버지를 닮았군.》

그이께서는 조용히 뇌이시며 추연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자신께서 농장에 찾아가시면 이렇게 큰 손에 농립모를 거머쥐고 달려나와서는 이새를 드러내며 소리없이 웃군 하던 안달수의 둥그런 얼굴이 떠오르시였다. 그가 농촌테제 30돐을 경축하는 이 연회에 참가했다면 얼마나 좋을것인가. 참으로 애석하시였다.

《이 동무의 아버지는 진짜 실농군이였지··· 애국자였고 혁명가였지···》

그이께서는 안성철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그전에 내가 농장을 찾아다니며 관리위원장들에게 지금 걸리고있는게 뭐요 하고 물으면 대체로 다 뜨락또르가 모자라오, 자동차를 주시오 하였지만 이 동무의 아버지만은 농촌의 청장년로력이 도시로 빠져나가는것을 걱정하였소. 농촌의 계급진지에 대해 마음을 썼소. 벌써 생각하는 각도가 달랐지.》

그이께서는 안달수영웅의 제기를 받고 전국의 협동농장들에 제대군인청년들을 대대적으로 파견하시던 그 사변적인 나날들을 추억하시였다. 국가로부터 지원로력을 받을 때마다 농군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있다면서 진심으로 죄스러워하던 농민도 안달수였다.

《자, 안동무 한잔 받소.》

수령님께서는 포도주처럼 분홍빛이 도는 삼지연의 들쭉술을 친히 유리잔에 부어서 안성철에게 주시였다. 그제야 그는 축배잔도 없이 빈손으로 덜렁덜렁 걸어나온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수령님!》

안성철은 황송하여 어찌할바를 몰라하였다.

《어서 받소. 동무 아버지생각이 나서 그래···》

안성철은 떨리는 두손으로 술잔을 받았다.

《마시라구··· 내가 보는데서···》

《수령님, 고맙습니다.》

안성철은 몸을 반쯤 옆으로 돌리고 절을 하듯이 허리를 굽히며 술을 쭉 들이키였다. 방금 들이마신 붉은 술이 피줄로 돌아서 눈굽으로 솟아나오는듯 그의 두눈에서 령롱한 이슬방울이 흘러내리였다.

《참, 세월이 빠르지. 동무가 장가들 때 옷장을 마련하던 일이 엊그제같은데 동무도 중년나이가 됐소.》

그이께서는 술잔을 들고 엉거주춤 서있는 안성철을 지켜보며 그윽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성철이가 장가들 때 그이께서는 신랑신부의 결혼식옷과 함께 안달수내외의 옷도 지어보내시였다. 그것도 한벌옷이 아니라 겨울옷과 여름옷 그리고 봄가을옷을 따로따로 일식으로 갖추어 보내주시였다.

회포에 잠기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윽히 말씀이 없으시였다. 안달수와 관련된 잊지 못할 추억들이 련달아 떠오르시였다.

농민영웅 안달수도 지난날에는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던 무지렁이 농군이였었다. 바로 그런 사람이였기에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를 품에 안아 나라의 영웅으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키워주시였다.

그이께서 안달수에게 보내주신 사랑의 선물은 얼마나 되고 그를 데리고 찍은 사진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건강한 몸으로 오래 살라고 해마다 숱한 보약을 보내주고 조금이라도 몸이 편찮아하면 병원이나 료양소에 데려다 치료를 받게 하시였다. 지어 그가 늙은 몸으로 농장벌에 나다니기 힘들겠다고 승용차까지 보내주시던 수령님이시였다.

이윽고 안달수 아들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수령님의 눈앞에 또 한사람의 농민영웅 림근상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선한 웃음이 떠도는 구리빛얼굴, 북두갈구리같은 험한 손, 고역에 시달려 때이르게 굽어진 허리··· 그이께서는 림근상의 이러한 옛모습을 그려보며 한 연회탁에 앉아있는 옥도리관리위원장 림경찬에게 시선을 돌리시였다.

그가 림근상의 아들이였다.

림근상의 아들 역시 얼굴도 체격도 지어 목소리까지 신통스레 아버지를 닮아서 누구든지 그를 보기만하면 저절로 림근상을 생각하기가 십상이였다.

《동무의 아버지 역시 훌륭한 농민이였소. 림근상동무는 내가 바라는 일이라면 무조건 즉시에 집행하던 사람이였소.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지.》

그이께서는 림경찬을 건너다보며 옛일을 회고하시였다.

수십년전 어느해 봄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옥도리를 지나가시는 길에 건너편 산탁에 낡은 초가집 한채가 덩그랗게 앉아있는것을 보고 무척 유감스러워하시였다. 사람의 눈에 제일 잘 띄우는 당반같은 산탁에 가난에 쪼들리던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기때문이였다.

그래서 그이께서는 림근상에게 산탁에 오막살이 초가집이 앉아있으니 보기가 좋지 못하다는 말씀을 하시고 다른 농장으로 가시였다. 이튿날 그이께서는 돌아오는 길에 옥도리를 다시 지나가게 되였는데 놀랍게도 산탁에 있던 이영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자리에 고래같은 기와집이 일어선것이였다.

《나는 그때 너무 신기해서 어떻게 하루밤사이에 기와집이 생겨났는가, 신선이 내려와 지어주었는가고 물었소. 그러자 림근상은 마을농민들에게 수령님의 말씀을 전하니 즉시에 모두 팔을 걷고 나서더라는거요. 그래서 하루밤사이에 집을 지을수 있었다고 하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가 농민들속에서 그처럼 높은 신망을 받고있었다고 하시였다. 림근상이 한마디만 하면 농민들이 군말없이 따라나섰다는것이였다.

《그래 아버지한테서 그 이야길 들어봤소? 하루밤사이에 기와집을 지은 이야기말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림경찬을 의미있게 바라보시였다.

《예. 들었습니다. 그날 아버지는 수령님의 그 한마디 말씀에서 이 나라 모든 농민들에게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이고 기와집에서 살게 하고싶어하시는 수령님의 그 심정을 똑똑히 깨닫게 되였다고 했습니다.》

《옳소, 동무의 아버지는 그런 관리위원장이였소. 농민들을 사랑하고 언제나 그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했소. 그래서 해마다 풍작을 거두었고 농촌문화주택건설도 제일먼저 끝냈소.》

그러시며 그이께서는 림근상이와 함께 온천지구에서 관개공사를 하시던 일을 회고하시였다.

《옛날에는 그 지구에 논이 얼마되지 않아 거기 사람들이 흰쌀밥을 먹지 못했소.》

그래서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떻게 하나 관개공사를 하여 온천지구 인민들에게 흰쌀밥을 먹게 하자고 결심하시였다. 그러나 온천지구에는 벼농사를 할수 있게 물을 대줄수 있는 강이 없었다.

그이께서는 지도를 보며 연구하신 끝에 대동강물을 온천지구에 끌어가기로 결심하시였다.

《사실 대동강물을 끌어가기만 하면 온천, 증산, 대동, 룡강을 비롯한 여러군의 인민들에게 흰쌀밥을 먹일수 있었소. 그런데 대동강물을 온천지구에 끌어가는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였소. 그러자면 제방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고 물길을 파야 하는데 그걸 누가 하겠소. 내가 그것을 걱정하니 림근상이가 선뜻 나서면서 수령님, 제가 먹을 쌀밥인데 우리가 해야지요, 제방은 우리 농군들이 하겠으니 군대들이 물길만 파주면 됩니다 하고 결의해나섰소. 그후 림근상이 정말 해냈소. 그때에도 군중을 발동시켰지··· 털어놓고 말해서 림근상이 있을 때에는 온천지구에 다닐 멋이 있었소.》

김일성동지께서는 고개를 들고 어딘가 멀리를 바라보시였다.

불현듯 옥도리마을 큰길이 눈앞에 떠오르시였다. 그이께서는 그전에 다른 농장에 볼일이 있어 가면서도 림근상이 보고싶어 일부러 옥도리를 거쳐가시는 때가 많으시였다. 그러면 림근상이 기다렸던듯 어느새 수령님! 하고 부르며 길가로 뛰여나오군 하였다. 그 길은 언제나 검불 하나 없이 정갈했으며 거기서 바라보이는 논밭들은 모두 꽃밭처럼 알뜰하였다.

림근상이가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그이께서는 한동안 옥도리마을에 전혀 발길을 하지 않으시였다. 거기에 가면 산천만 보아도 림근상이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고 참을수 없이 가슴이 아팠기때문이였다.

그로부터 몇년이 지난후였다. 그이께서는 림근상이에게 농업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 무척 기뻐하시며 아버지의 대를 이어 그 아들이 옥도리관리위원장 사업을 하도록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그리하여 림경찬이 오늘 옥도리에서 농업혁명의 피줄을 이어가고있는것이다. 림경찬은 이번 대회에서 토론까지 하여 그이를 기쁘게 해드리였다. 하지만 그는 지금 죄스러운 마음으로 연회탁에 앉아있었다. 그는 한때 농장원들속에서 평판이 좋지 못했었다. 아버지의 발치에도 가지 못한다는 군중의 비난을 받아 그이께 걱정을 끼쳐드린적도 있었다.

아버지가 혁명가라고 하여 아들이 저절로 혁명가로 되는것은 아니였다. 생리적인 피줄은 유전이 되여도 혁명의 피줄은 저절로 이어지지 않는것이였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하던 일을 아들이 맡았다고 하여 혁명의 대가 이어진것으로는 볼수 없었다.

림경찬은 아직도 아버지에 비하면 자기의 충성심이 너무도 부족하다는것을 스스로 인정하고있었다.

《옥도리관리위원장동무!》

김일성동지께서는 림경찬을 조용히 부르시였다. 고개를 수굿하고있던 그는 얼굴을 쳐들고 경건히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앞으로 아버지처럼 일을 잘하기 바라오.》

《수령님, 명심하겠습니다.》

《음, 그러길 바라오··· 자, 어서들 음식을 드시오.》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듣느라 수저들을 놓고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연회탁을 가리키며 음식을 권하시였다.

《오늘 동무들과 함께 옛말을 하느라니 김제원농민에 대한 생각도 간절해지누만.》

그이께서는 토지개혁이후 다수확을 거두어 나라에 많은 애국미를 바친 김제원농민도 잊을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시였다. 해방후 국고에 돈 한푼 없는 때에 김일성종합대학과 같은 과학의 전당을 건설할수 있은것은 김제원과 같은 의리있고 애국심이 높은 농민들이 수많은 애국미들을 나라에 희사하였기때문이였다.

《전쟁시기에도 우리 농민들이 나라를 잘 받들었소.》

그이께서는 가렬한 전화의 날에 소집했던 전국농민열성자대회에 대하여 감회깊이 말씀하시였다. 그 대회는 모란봉지하극장에서 진행되였었다.

그이께서는 당시 평안도의 서원석모범농민과 처녀보잡이, 강원도 실농군인 오경봉로인, 황해도 어러리벌의 류만옥녀성을 비롯해서 우리 농민들이 식량증산운동을 활발히 벌려 전선원호에 크게 기여했다고 하시였다.

《전쟁에서도 가장 필요한것중의 하나가 식량증산이였소. 그래서 내가 전국농민열성자대회도 소집하고 전시식량증산에 동원된 우리 농민들을 후방의 군인들이라고 높이 평가해주었소. 어러리벌 농민들에게는 내 이름으로 감사편지까지 보냈소. 그렇지 박영순동무?》하고 그이께서는 맞은편에 앉은 농업전사들중 나이가 제일 많은 축인 풍정협동농장 고문관리위원장을 의미있게 바라보시였다.

그이께서는 계속하여 전필녀, 리신숙, 리금실 등 사회주의농촌혁명의 길에 금별의 위훈을 새긴 유명한 녀성영웅들에 대해서 말씀하시였다. 전필녀녀성은 지난날 너무도 기구한 운명의 길을 걸어와 리기영선생이 그를 원형으로 하여 《한 녀성의 운명》이라는 소설까지 썼다고 하시였다. 태여나자부터 불행의 그림자가 끊임없이 따라다닌 그의 기구한 운명은 당의 손길에 의해 구원되였다. 그래서 전필녀는 칠순이 넘은 지금도 손에서 호미를 놓지 않고 쌀로써 당을 받들어나가고있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당의 농업방침을 구현하기 위해 한평생 변심없이 투신해온 농업지도일군들에 대해서도 못내 잊지 못해하시였다.

《그전에 리덕구동무도 일을 많이 했소. 나한테 욕도 많이 먹고 수고도 많이 했지. 그는 아무리 욕해도 탓하지 않았소. 일하느라니 결함을 자주 범했지만 일깨워주면 즉시에 고치군 하였소. 그전에 김정일장군이 과오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 아니라 과오를 빨리 고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그게 명언이요.》

그이의 추억담은 계속되였다. 실로 그이께서 50년 농촌지도의 길에서 낯을 익히신 유명무명의 농민들은 몇천몇만이겠는가. 며칠밤을 추억하시여도 끝이 없을것이였다.

감회로운 표정으로 연회장을 둘러보시던 그이의 눈길은 얼마후 한 녀성의 얼굴에서 문득 멈추어졌다. 천태협농장 관리위원장 배련실이였다.

《음, 저 동무도 왔구만··· 천태! 여기 나오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반색을 지으며 배련실에게 손짓을 하시였다. 뜻밖에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은 배련실은 일순 놀라며 당황해하다가 황급히 일어섰다. 사람들은 몸매가 호릿하고 상아빛처럼 얼굴이 하얀 50대의 그 녀인을 선망이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 녀자가 누구요?》 배련실이 앉아있던 연회장 우측에서들 수선거리였다. 배련실은 농업부문에서도 그닥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관리위원장이였다.

그이께서는 검은 비로도치마를 끌면서 정중히 걸어나오는 배련실을 찬찬히 지켜보고계시였다. 옷치장과 머리단장을 곱게 한 배련실은 농촌관리위원장이 아니라 단아한 녀성예술인과 같은 인상을 주었다.

김일성동지의 연회탁에 와닿은 배련실은 그이께 큰절을 하며 만수축원의 인사를 올리였다.

《고맙소··· 고맙소.》

그이께서는 이러시면서 배련실의 손을 잡아주시였다. 사내처럼 크고 억세고 마디가 진 그 손만은 그의 화려한 옷차림에 어울리지 않았다. 근면한 농민의 본색을 감출수 없었다.

수령님께서는 배련실의 손을 어루만지시였다.

《황해남도에서 많은 대표들이 왔다지?》

《그렇습니다. 수령님··· 연백지구만 하여도 수십명이 왔습니다··· 작년에 수령님께서 현지지도하신 수원리, 금성리, 오현리, 청단읍과 청정리들에서도 다 왔습니다.》

《그럼 와야지. 연백벌에서 오지 않구 어디서 오겠나··· 연백벌에 자동차, 뜨락또르들이 내려갔지?》

《예, 저희들이 평양으로 떠나올 림박에 뜨락또르와 자동차가 수백대 내려왔습니다. 이제 돌아가면 선물전달식을 한다고 합니다.》

배련실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그이께 떠듬떠듬 아뢰였다.

《이제 농업대회를 계기로 해서 뜨락또르, 자동차를 더 내려보낼거요. 뜨락또르는 한 500대, 자동차는 250대정도 보내자고 하오.》

《수령님, 고맙습니다.

이제는 농기계도 그쯘히 갖추어져서 우리도 지원로력을 받지 않고 농사를 지을수 있습니다. 연백벌농사는 걱정놓으십시오.》

배련실은 그러면서 천도산이 건너다보이는 천태리길가에 지금 정자를 짓고있으니 올해에는 시원한 정자에 편안히 앉아서 풍년벌을 구경만 하시라고 간절히 아뢰였다.

《고맙소. 내 꼭 가겠소. 논벌에 첫 이삭이 팰 때 알리시오··· 내 우선 그때 만사를 제쳐놓구 가보겠소. 동무들의 소원대로 정자에 편안히 앉아 구경하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감나무 우거진 천도산을 눈앞에 그려보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동무들이 지원로력을 받지 않고도 농사를 지을수 있다고 하니 아무튼 기쁜 일이요. 그것은 결국 농산작업의 기계화수준을 높였다는것을 말해주는거요. 즉 협동적소유를 전인민적소유로 넘기기 위한 주요조건들을 마련하였다는것을 의미하오. 내가 이번에 농업대회에 보낸 서한이 바로 협동적소유를 전인민적소유로 넘기기 위한 사업을 편향없이 잘하자는 하나의 호소이기도 하오···》

그이께서는 말씀을 끊고 한동안 묵묵히 계시였다.

(전인민적소유!)

김일성동지께서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뇌이며 문득 토마스모어의 작품에 나오는 유토피아를 생각해보시였다. 그것은 인류가 공상한 갈망의 리상향이였다. 그이께서는 그러한 리상향과 《지상천국》을 십분 이 땅에 세울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고 30년전에 농촌테제를 발표하시였다.

이윽히 상념에 잠기셨던 그이께서는 배련실을 바라보며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관리위원장동무! 이제 농사를 잘 지어서 동무네 연백벌에 <지상천국>을 세우도록 합시다.》

《수령님! 알겠습니다. 수령님의 서한교시를 받던 날 도농촌경리위원회 위원장동무도 천도산이 있는 천태리에 진짜 천국을 세우자고 하였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인들 못할게 있는가고 하면서···》

《옳소.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소.》하고 밝은 웃음을 지으신 그이께서는 이번 농업대회에서 첫 토론을 한 복덕이의 이름이 덕복이로 소개된 사실을 상기하시고 화제를 돌리시였다.

《참, 그런데 동무네 위원장동무가 이름을 고쳤더구만. 덕복이로.》

《우리 위원장동무가 어버이수령님께서 부르시는대로 이름을 고치겠다고 해서 친히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위원장내외가 다같이 새 공민증을 내도록 해주셨습니다.

위원장동문 처음에 자기 공민증만 새로 내자고 했는데 장군님께서 동무의 남편공민증 결혼식란에도 복덕이란 이름이 있지 않소, 그것도 고쳐야지, 그저 자기밖에 모르누만 하시며 한참 웃으시였다고 합니다.》

배련실은 감격에 겨워 눈을 슴벅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배련실뿐아니라 그후 다른 농업전사들도 여러명 더 부르시여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마음같아서는 연회장에 있는 수백명의 농업전사들을 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시고싶었다.

그이께서는 연회시간이 끝나갈무렵에는 연회장 《말석》에 앉은 농업위원회 책임간부들을 가까이 부르시였다.

《동무들, 기분이 어떻소?》

그이께서는 웃음을 띠고 그들에게 물으시였다.

농업위원회 일군들은 수령님을 모시고 농업대회를 하였을뿐아니라 기념사진도 찍고 이렇게 연회에까지 참석하니 기쁘기 그지없다고들 하였다.

《동무들이 좋아하니 됐소. 나 역시 이번 대회가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하오. 그것은 이번 대회를 통해 농사경험들을 서로 충분히 교환하고 맹세들을 다지고 신심있는 목표를 명확히 내걸었기때문이요. 그러나 우리가 대회에서 만세만 부르고 이후 새로운 전진이 없게 되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이께서는 일군들을 쭉 둘러보시고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연회장에서 무슨 긴 말을 하겠소만 한가지만 강조하겠소.》

그이께서는 기상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올해에 이상고온현상과 심한 가물이 계속될것이 예견된다고 하시였다. 수리화가 완성된 우리 나라에서는 어떤 왕가물이 져도 논농사에서는 걱정이 없지만 아직 밭관수시설이 원만치 못하다고 하시였다.

《부뚜막의 소금도 가마에 집어넣어야 짜다고 관수시설이 완비되지 못하니 물을 곁에 끌어다놓고도 밭에 대주지 못하고있소.》 그이께서는 이제부터 가물방지준비를 철저히 하여야 한다고 이르시였다.

《수령님! 일전에 말씀드린 새로운 밭관수시설도 거의 완성단계에 들어가고있습니다.》

안덕상이 자신있게 나서며 그이께 말씀드리였다.

《그게 완성되면 어디 봅시다. 그리고 여러가지 다른 관수방법도 연구해보시오.》

그이께서는 농장원들속에 들어가 지혜를 발동시키면 못해낼 일이 없다고 하시며 문득 연회탁에 놓여있는 찹쌀경단쟁반을 가리키시였다.

《내가 늘 말하지만 이 쌀이 곧 사회주의요. 우리가 사회주의보루를 지키자면 우선 농사를 잘 지어야 합니다. 오늘의 조미대결은 단순히 조선과 미국의 대결이 아니라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입니다.》

그이께서는 일군들을 또다시 잠간 둘러보시고 계속하시였다.

《동무들도 알고있는것처럼 지금까지 군사적제재요 뭐요 하면서 으르렁거리던 미국이 지난 2월 25일, 그러니까 농업대회 제1일 회의가 진행되던 날에 우리가 제기하는 조미 제3단계회담에 응해나서겠다고 하였소. 그래 조미뉴욕접촉합의문이 채택되였소. 이것은 물론 우리의 승리입니다. 그러나 앞에서는 약속하고 뒤에서는 다른것을 하는것이 미국입니다. 그러므로 일부 언론들은 조미뉴욕접촉합의문이후 조미대결이 오히려 크라이막스에로 상승할것이라고도 하고있는데 사회주의의 보루를 지키는 정신으로 농사를 잘 지어야 합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황해남도에서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농사요. 알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연백벌에 전권대표로 나가있는 안덕상을 바라보며 말씀을 마치시였다.

그로부터 얼마후에 연회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