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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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의 눈부신 해빛이 집무실에 밝게 비쳐들고있었다. 금강산발전소건설문제로 오전 한겻을 무력부에 나가계시다가 집무실로 돌아오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사이에 밀린 문건들을 처리하느라 여념이 없으시였다. 그이의 가르침이나 결론을 시급히 받으려고 당, 정권기관들과 부, 위원회들에서 올려보낸 문건들이였다.

그이께서는 빠른 속도로 문건들을 읽어나가면서 책임서기 김성묵이로부터 오전에 제기된 사업에 대한 보고를 받으시였다. 새해에 들어와서 계속 밤을 패며 일해오신 그이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여있었다. 수령님의 신년사에 뒤이어 1월 3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앞에서 올해 당사업방향을 제시하신 그이께서는 다음날에 경제부문 협의회를 조직하고 새로운 경제전략방침을 수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도들을 토의하였으며 금강산발전소건설에 대한 지도를 하시였다. 서해갑문건설보다도 더 많은 작업량이 요구되는 금강산발전소건설은 말그대로 거창한 대자연개조사업이였다.

그이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부문의 방대한 사업들을 다 맡아보시면서도 내부사업까지 보시느라 어차피 밤낮으로 무리하게 일하셔야 하였다.

책임서기와 짤막짤막하게 대화를 나누시면서도 잠간사이에 문건 한묶음을 처리하신 그이께서는 문득 《수령님께서 병원으로 가셨는지 알아봤소?》 하고 물으시였다.

김성묵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병원이 아니라 단군릉건설장으로 가신것 같다고 대답올렸다.

《단군릉건설장으로?··· 아침에 주치의사와 담당간호원이 수령님을 병원으로 모셔간다고 하지 않았소?》

이번에 알고보니 수령님의 안질은 과도한 정신적긴장과 련관된것이여서 수술도 제때에 받아야 하지만 우선 정신적으로 안정하는것이 중요하였다. 그때문에 그이께서는 수령님께서 절대안정하시도록 하시면서 수술을 위한 일련의 대책들을 세우고계시였다. 그런데 수령님께서는 병원으로 가시지 않고 수술을 뒤로 미루려고 하신다는것이였다.

김성묵은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잠시 서있다가 김일성동지께서 눈수술을 며칠 미루게 된 사연을 말씀올리였다.

《리대천책임서기의 말을 들어보니 단군릉개건공사를 앞당기는 문제를 비롯해서 농업대회준비사업도 걸려있고 또 그밖에 국제관계문제들이 있어서 수령님께서 당장 입원하시기는 어려울것 같습니다.》

《문제를 그렇게 보면 수령님께선 영원히 병치료를 받으실수 없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소. 만사를 다 제쳐놓아야 하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시였다. 수령님의 눈을 치료해드리는 일보다 더 긴급하고 중요한 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이께서는 일손이 잡히지 않아 보시던 문건들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시계를 들여다보시였다. 이미 오전 집무시간도 지났었다. 그이께서는 전화로 리대천을 부르시려다가 그만두시였다.

요즘 조미관계가 악화되는것과 관련하여 오늘아침에 무력부에서 중요한 군사문제가 제기되였으므로 그것도 토론하실겸 자신께서 직접 금수산의사당으로 찾아갈 작정이시였다.

장군님께서 금수산의사당에 도착하신것은 그때로부터 2시간후였다. 응접실에서 옷매무시를 바로하고 체경에 잠시 얼굴을 비쳐보시던 그이께서는 색안경을 꺼내 끼시였다. 그이께서 집무실에 들어서시였을 때 수령님께서는 농업위원회 안덕상부위원장에게 전화를 걸고계시였다. 그이께서는 김정일동지를 보시자 잠간 기다려달라는 뜻으로 응접탁이 놓인 쏘파를 가리키며 전화를 계속하시였다.

《덕상동무는 연백벌에 아예 나가 틀고앉으시오. 나도 시간을 내여 나가겠소··· 그래, 이제 농업대회도 크게 하겠소. 금년농사를 한번 잘해봅시다.》

전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수령님께서는 송수화기를 놓고 김정일동지께 눈길을 돌리시였으나 그이께서 찾아오신 까닭을 이미 짐작하신듯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수령님께서 응접탁으로 가시여 그이와 나란히 앉으시며 말씀하시였다.

《농업위원회 안덕상부위원장을 내 특사로 연백벌에 파견하려고 하는데 장군의 의견은 어떻소?》

《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능력도 있고 열성도 있는 동무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선뜻 동의하시였다.

《그 동무가 올해 연백벌농사를 마음먹고 지어보겠노라고 하는데 꽤 해낼거요.··· 장군도 찬동을 하니 그럼 덕상동무를 연백벌에 보내겠소.》

장군님께서는 그 말씀을 묵묵히 들으시며 전에없이 도수높은 안경을 끼고계시는 수령님의 눈을 살피시였다.

《수령님! 저도 몇가지 중요한 문제들을 의논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어서 말하라는듯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다름이 아니고 지금 인민무력부에서는 조미관계가 악화된 조건에서 사회주의건설에 동원된 군인들을 모두 소환하자는 의견을 제기하고있습니다.》

《그렇소?》

수령님께서는 의외로운듯 얼굴에 파문을 지으며 반문하시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수령님께서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손가락으로 응접탁을 두드리고계시다가 조용히 물으시였다.

《최고사령관의 결심은 어떻소?》

《저는 소환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둘 결심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바위와 같은 무게가 느껴지는, 그러면서도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김정일장군님의 결연한 표정을 일별하고 응접탁에 얹었던 손을 들어 허공을 힘있게 가르시였다.

《그에 대해선 나도 찬성이요. 구데기 무서워 장을 못담그겠소? 적들이 군사적으로 공격하겠으면 하라지, 우리는 배심이 든든하오. 원래 력사적으로 보면 사회주의가 적들의 봉쇄나 군사적공격에 의해 붕괴된 일은 한번도 없었소.》

《그렇습니다.》 하고 긍정하시는 김정일장군의 눈에서 번개의 섬광과 같은 강렬한 빛이 번쩍이였다. 그것은 주지의 사실이였다. 어제날 지구상에 처음으로 탄생하였던 청소한 쏘베트사회주의를 없애버리려고 제국주의자들이 이리떼처럼 달려들었지만 무너뜨리지 못했다. 2차대전때 쓰딸린그라드까지 봉쇄했던 도이칠란드도, 《까리브위기》때 꾸바를 봉쇄했던 미제도 끝내는 사회주의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사회주의는 어디서나 필승불패하였다.

그러나 세계최대의 《군사강국》으로 하늘땅을 제압하던 쏘련이 외부적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치사상적으로 변질된 내적요인에 의해 총한방 쏴보지 못하고 무너진 력사의 교훈을 장군님께서는 중시하시였다. 그때문에 긴장한 정세속에서 언제나 군사위주로 나가면서도 사상과 경제를 함께 틀어쥐고 자체의 막강한 힘을 키워나가시는 그이이시였다.

《수령님, 군인들을 계속 사회주의건설에 동원시키겠습니다.》

《최고사령관의 결심을 지지합니다.》

수령님께서 신심에 넘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비단 금강산발전소 건설뿐만아니라 평양-향산관광도로건설을 비롯하여 공화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평화적인 대자연개조사업들을 우리 인민군군인들이 맡아하고있는 사실이 긍지로운 일이라고 하시였다.

《그게 우리의 자랑이지··· 군인들이 평화적인 건설을 한다는게 얼마나 좋소. 그래 금강산발전소 건설은 언제면 끝낼것 같소?》

《래후년쯤에 1단계공사를 끝내려고 합니다.》

《1996년에?》

수령님께서는 안광을 번쩍이며 김정일동지를 바라보시였다.

《대단하오. 우리 군인동무들이 대단해. 그거야 서해갑문건설보다도 더 어려운 건설이 아니요. 그리고 우리 당이 아니면 그런 공사를 상상이나 하겠소?···》

수령님께서는 저으기 흥분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통이 크게 설계하고 불이 번쩍나게 최상의 수준에서 건설하는것, 이것이 김정일식창조의 특징이였다.

《최고사령관의 결심이자 실천이고 성공이지··· 나는 믿소.》

수령님께서는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건설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사실은 내가 단군릉개건공사때문에 장군과 의논을 좀 해보려던 참이였소.》

《예. 저도 이미 들었습니다. 무엇이 걸렸는지 제가 알아서 풀겠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수령님께서는 오늘 공사현장을 돌아보신 과정을 말씀하고 이렇게 덧붙이시였다.

《현장동무들의 말은 석재운반만 해결되면 공사를 1년 앞당길수 있다고 하오. 내보기에도 그것만 풀리면 크게 어려울것이 없을것 같소.》

《당조직들에 지시하여 군중을 발동시키겠습니다. 군용견인차들을 동원시켜 해결할수도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땅크도 동원시키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 어찌나 씨원스레 말씀하시는지 수령님의 얼굴에 해빛같은 웃음이 확 피여올랐다.

《그럼 단군릉은 시름을 놓게 되였소. 음. 됐구만···》

수령님께서는 그러시며 집무탁에 눈길을 보내시였다. 거기에는 부피가 두터운 여러권의 책이 무드기 쌓여있었다. 대부분 농업기술서적들이였다. 겉가위가 닳고 보풀이 인 책들은 나라의 농사일에 심혈을 바쳐오신 수령님의 로고를 말없이 설명해주고있는듯싶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책들을 보시자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가 세상에 처음으로 발표되였던 30년전 2월이 불현듯 추억되시였다. 오래동안 사회주의나라들에서 미해결문제로 남아있던 농촌문제, 농민문제를 종국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길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1964년은 참으로 이 나라 농촌에 행복의 대문이 열려진 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잊지 못하고있고 수령님께서도 이해 신년사에 조국통일문제와 함께 농업제일주의방침을 두드러지게 강조하시면서 이해가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발표 30돐이 되는 해라는것을 특별히 언급하시였다.

지난 30년동안에 우리 나라 농촌은 눈부시게 변모되였고 농촌테제의 빛발아래 농민들은 문명한 사회주의근로자로 되였다. 하지만 나라의 농사는 아직도 수령님께서 바라시는 높이에 올라서지 못하여 그이의 집무탁우에 오늘도 저렇게 농업기술서적들이 쌓여있는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농사일에 로고를 바치고계시는 수령님의 바쁘신 모습을 보시게 되자 병원으로 가시지 않는 까닭에 대하여 문의할 용기가 나지 않으시였다.

단군릉문제가 풀리여 한순간 표정이 밝아지셨던 수령님께서는 잠시 농촌문제가 발목을 잡는듯 창문쪽으로 묵묵히 고개를 돌리시더니

《농업대회는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참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소.》 하고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아침에 강동에 갔다 돌아오면서 협동농장들을 돌아보니 일부 농업일군들이 영농준비사업을 잘하지 못하고있다고 걱정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어쩌면 수령님의 그 말씀이 지금 형편이 이런데 내가 어떻게 병원으로 가겠소 하는 의미로 느껴지시였다. 그이께서는 수령님의 심려의 말씀을 어느 농업일군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자신의 일처럼 가슴아프게 받아안으시였다.

《농업부문에 대해서 제가 관심을 덜 돌린것 같습니다. 금년부터는 농사도 제가 책임지고 하겠습니다.》

《아니요!··· 장군에게 농사까지 맡길순 없소.》

수령님께서는 서둘러 손을 내저으시며 김정일동지의 말씀을 막으시였다.

《이미 말한것처럼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장군에게 농사걱정만은 절대로 시키지 않겠소. 장군이야 지금 당사업을 보지, 군사를 보지, 경제, 문화예술사업과 대미, 대남 사업을 보지, 오죽 부담이 많소? 거기에 농사부담까지 지워놓겠소?··· 보아하니 어제도 밤을 패운것 같구만.》

수령님께서는 장군의 색안경을 유심히 지켜보시였다. 그 진한 흑갈색안경유리에 가리워진 그이의 눈빛을 보려고 애쓰시는듯 하였다. 사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신의 충혈진 눈을 숨기기 위해 금수산의사당으로 오실 때마다 색안경을 끼군 하시였는데 수령님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그 기미를 알아차리신것이였다.

《그렇게 늘 밤을 패워선 몸이 견디지 못하오.》

수령님께서는 그이의 색안경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며 걱정스레 뇌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안경을 한번 추슬러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수령님, 제 걱정은 마십시오. 저야 젊고 또 아무 병도 없지 않습니까. 걱정은 수령님의 건강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절절하게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병원에 가셔야 할 수령님께서 이렇게 집무실에 앉아계시니 걱정입니다. 수령님께선 어찌하여 자신의 병에 대하여 그처럼 소홀히 여기십니까?》

《···》

수령님께서는 말문이 막히신듯 덤덤히 앉아계시였다.

《알아보니 농사걱정, 단군릉공사걱정, 두루 이런것때문에 못가신것 같으데 제가 다 맡아하겠으니 걱정마십시오. 사흘후에 가실것없이 처음 계획하신대로 오늘 가십시오.》

《···》

여전히 침묵을 지키시는 수령님의 표정은 어두웠다.

《수령님, 농사도 그렇지만 병치료야말로 시기를 놓치면 글러지는게 아닙니까?》

사실 그이께서는 지금도 수령님의 눈병이 각일각 악화되는것만 같아 조급증이 나시였다. 사흘이 아니라 하루도 참기 어려우시였다.

《장군!》

문득 수령님께서 부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막연한 어떤 기대를 가지고 수령님을 바라보시였다.

《내가 간호원한테는 사흘이라고 했는데 아마 적어도 한달은 미루어야 할것 같소.》

장군님께서는 아연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혹시나 하고 대답을 기다리셨는데 이번엔 사흘도 아니고 한달씩이나 병원길을 미루시겠다고 하시는것이다.

알고보니 수령님께서는 처음에 눈치료를 받는것을 간단히 생각하고 수술을 받기로 선뜻 약속하신것 같았다.

《그런데 눈수술을 받자면 적어도 한달이라는 시간을 바쳐야 한다니 한달이 어디요. 그렇게는 안되겠소!》

장군님께서도 새해의 첫 진군을 시작한 이때 수령님께 있어서 한달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하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 한달이 아무리 중하다 할지라도 수령님의 눈과 비길수는 없지 않는가.

(수령님의 눈이 어떤 눈인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름할수 없이 뜨거운 마음을 안고 수령님을 바라보시였다. 문필가들은 흔히 수령님의 영채도는 눈을 가리켜 민족의 앞길에 빛을 주고 삼천리를 밝히는 눈이라고들 한다. 사람들의 가슴에 빛과 힘과 용기를 안겨주는 그 눈에 병이 드시다니··· 아니, 하루도 치료를 미루어서는 안된다.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힘껏 저으시였다.

하지만 수령님께서는 여전히 수술은 단념하신듯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시작이 절반이라고 새해 첫걸음부터 발목을 잡힐수는 없소. 새해전투를 선포한 수령이 첫달부터 병원에 갇혀있어서야 되겠소.》

수령님께서는 1월과 2월은 몸을 뺄수가 없다고, 우선 이 바쁜목을 넘기고 보자고 하시면서 지금은 웬만한 병쯤은 참으면서 일해야 하는 때라고 덧붙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지금 나라가 처한 형편이 항일혁명투쟁시기의 시련많던 고난의 행군을 련상시킨다고 하시였다. 사실 미국과 또 한고패의 대결이 예견되는 엄혹한 환경속에서 사회주의의 보루를 지키며 혁명을 전진시켜야 하는 나라의 실정은 조선인민혁명군사령부를 《소멸》하기 위해 사면팔방에서 적들이 달려들었던 1938년말 1939년초의 엄혹한 겨울과 다를바가 없었다.

고난의 행군시기 앞으로 오는 적을 무찌르고 뒤에서 달려드는 적을 후려치면서 천신만고를 이겨내며 마침내 조국진군의 길을 열어놓은것처럼 기어이 적들을 굴복시키고 민족분렬의 화근인 나라의 분단을 끝장내여야 하였다.

물론 그 일은 쉽지 않은 일이였다.

조미간의 대결을 주시하고있는 세계의 많은 나라 사람들은 조선의 운명에 대하여, 아니 사회주의운명에 대하여 우려하고있었다. 그것도 역시 고난의 행군때 많은 사람들이 조선인민혁명군이 만주의 눈구뎅이에 빠져 몽땅 얼어죽고 굶어죽으리라고 생각한것과도 같은것이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오늘의 《고난의 행군》은 더욱 어려운 시련이라고 말할수 있었다. 하지만 수령님께서는 그 행군의 선두에 문무충효와 지, 인, 용을 겸비한 김정일동지가 서있기에 래일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으시였다.

《정세가 정세이니만큼 기회를 봐서 치료를 받겠소.》

수령님께서는 이미 락착을 보신듯 쏘파에서 일어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말씀이 없이 고개를 돌려 집무실 벽에 걸려있는 달력을 보시였다. 햇솜처럼 희고 소담한 눈을 가지마다 떠인 공원숲의 설경을 배경으로 1월의 날자들이 차례로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수술을 미루면 안된다. 기회를 기다릴것이 아니라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잠시 생각에 잠기셨던 장군님께서 결연히 말씀하시였다.

《수령님, 제가 수술을 받으시도록 시간을 짜보겠습니다.》

《그러지 않아 책임서기가 이미 시간을 짜내보자고 한것 같소. 그러나 여의치 못했소.》

《제가 다시 짜보겠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시간을 얻어내야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단호하게 나오시는 김정일동지를 더 만류하지 못하고 묵묵히 계시였다.

··· 장군님께서는 곧 수령님의 책임서기와 마주앉아 시간을 짜보시였다. 침착하고 주도세밀한 리대천은 조용하고 깐깐한 성미대로 수령님의 사업일정을 어찌나 빈틈없이 짜놓았는지 한달은 고사하고 하루도 뽑아낼수 없었다. 퍼그나 시간이 걸려서 리대천이 겨우 뽑아놓았다는 일정을 들어보니 수령님을 만나러오는 외국손님들과 해외에 살고있는 항일혁명투쟁연고자들의 우리 나라 방문이였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그것도 뽑거나 뒤로 미루어놓을수 없으시였다.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의 연고자들과 그들의 유자녀들을 만나시는것을 하나의 락으로, 도덕의리로 여기시며 한두명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애쓰시기때문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사업계획을 보시면서 자신이 많은 사업을 맡아안았지만 수령님의 사업부담이 아직도 많으며 그것을 수령님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대신할수 없다는 사실앞에서 놀라움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1월만 하여도 최근년간 새롭게 제기한 경제전략에서 주공전선인 농업, 경공업, 대외무역부문 일군들과의 협의회가 련이어 물려있었다. 또한 2월, 3월, 4월로 가면서 수령님께서 반드시 참석하셔야 할 큰 대회들과 국가적인 사업들이 꽉 차있었다. 2월로 예견된 전국농업대회만 하여도 수령님께서는 그 준비로부터 대회의 전과정은 물론 대회에서 제기한 과업을 관철하기 위한 문제까지도 자신께서 직접 맡아 지도하실것을 예견하고계시였다.

그밖에 국가수반으로서 수많은 외국의 대표단을 접견해야 하며 나라의 어버이로서 수많은 인민들을 만나셔야 했다. 그이께서 만나셔야 할 손님들은 일별로 비는 때가 없었다.

어쩔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뭔가 또다시 생각하면서 1월말에 예견된 미국종교지도자 그라함목사의 우리 나라 방문을 몇달 미루게 하는것이 어떠하겠는가 생각해보시였다. 그러나 역시 다른것은 몰라도 그것만은 힘들다고 생각되시였다.

그라함목사와의 사업은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나라의 통일문제와 잇닿아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조국통일을 위한 가능성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면서 그 위업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이 하실수 있는 모든것을 다하고계시였다. (그 짐만은 나의 어깨에 지우려 하지 않으신다. 실상 나라의 통일문제는 수령님의 권위를 떠나서 생각할수 없는 일이다.)

종시 시간을 짜내지 못하신 장군님께서는 한옆에 송구하게 비켜서있는 리대천에게 수심어린 눈길을 보내시였다. 리대천은 몸둘바를 몰라 고개를 수그리는데 눈이 뿌옇게 흐려있었다. 그 눈빛은 《장군님, 면목이 없습니다. 제가 일을 쓰게 못해서 장군님께 걱정만 끼쳐드리고있습니다.》 하고 자책하는듯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리대천에게 뭔가 말씀하시려다말고 앞탁에 놓여있는 서류가방을 들고 수령님의 집무실로 들어가시였다.

《그래 토론해보았소?》

벌써 일감을 펼쳐놓으신 수령님께서 장군님의 수심에 잠긴 안색을 살피며 조용히 물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아무 응대도 없이 수령님을 잠시 마주보시다가 가방에서 록음카세트를 꺼내여 집무탁우에 올려놓으시였다.

《이건 또 뭐요?》

수령님께서는 록음카세트를 바라보며 영문을 몰라하시였다. 그것은 새해에 수령님의 만수무강을 축원하여 써올려보낸 인민들의 편지들중 몇통을 김정일동지께서 친히 골라 록음하신것이였다. 편지만은 원문그대로 직접 수령님께 올리군 하였지만 안질이 걱정되여 록음하시였었다.

장군님께서는 그 사연을 말씀올리고 《앞으로 당분간은 편지도 록음으로 들으셔야 하겠습니다. 짬짬이 들어주십시오.》라고 하시였다.

《나더러 기어이 병원으로 가라는 소린가···》

수령님께서는 록음카세트를 보시며 웃으시였다. 장군님께서도 미소를 지으시였다. 사실 하루의 여유도 없는 수령님의 사업일정을 보시고는 더는 병원으로 가시라는 말씀을 올릴수가 없어 그대신 이미 준비해가지고 가셨던 인민들의 편지를 내놓으신것이였다.

《어쨌든 인민들이 보낸 편지를 록음한거라니 들어야지···》

수령님께서는 록음카세트에 씌여있는 글자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시였다. 지금까지 수령님께서는 아무리 시간이 바빠도 그리고 그것이 몇백 몇천통이 될지라도 인민들의 편지라면 그 필적까지 찬찬히 살피며 죄다 읽군 하시였다.

《거기엔 정춘실동무가 저에게 보낸 편지도 있습니다. 모두 수령님의 건강을 념려하고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 말씀을 남기고 자리를 뜨시였다.

그이께서는 차를 타고 당중앙위원회로 돌아오시는 길에 록음편지를 들으시는 수령님의 모습을 그려보시였다.

눈물없이는 들을수 없는 뜨겁고 진실한 인민의 편지, 수령님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그 편지들이 수령님의 생각을 돌리게 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수령님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정춘실의 절절한 목소리가 울려오는듯 하였다.

···

오라버님!

어버이수령님께서 여기 전천땅을 다녀가신지도 석달이 지났습니다.

이 춘실이는 그저 자나깨나 수령님생각뿐입니다. 지난해 가을 아버님께서 찾아와 춘실아, 네가 보고싶어 왔다, 빈손으로 올수 없어 돼지 한마리를 싣고왔다고 다정히 이르시던 그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평양으로 돌아가시던 날에 아버지대원수님께서는 저물어가는 서산의 해를 한참 바라보시다가 농사도 더 잘 짓고 짐승도 잘 길러보라고, 래년 가을에 전천군사람들을 보러 다시 오겠다고 하시며 저의 등을 두드려주시였습니다.

저는 그때 찬바람에 날리는 수령님의 흰머리카락을 보며 그만 설음이 북받쳐 울었습니다.

이 춘실이의 효성이 모자라 아버님의 머리가 더 세여진것 같아 울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더 이악을 부리며 일하고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민들을 위해 로고를 아끼지 않으시는 수령님의 모습을 텔레비죤화면으로 뵈올 때마다 걱정은 커지고 죄송한 마음 누를길 없습니다.

칠팔월 염천에도 찬바람부는 동지섣달에도 포전길을 걷고 산길을 밟으시는 우리의 아버님!

이번 설날아침에 신년사를 하시는 아버님의 모습을 텔레비죤으로 뵈온 다음부터는 이 딸의 가슴에서 더더욱 수령님에 대한 걱정이 떠나지 않습니다.

제 마음이 그래서인지 수령님께서 이번 설날에는 여느때와 달리 신년사를 힘들게 하시는것 같았습니다. 아버님의 머리도 더 세여지고··· 수령님께서 올해엔 별로 늙어보인다고 모두들 눈물을 흘렸습니다.

뵈옵고싶은 오라버님!

저희들이 수령님께 바라는것이 무엇입니까. 이제는 제발 로고를 그만하시고 우리곁에 오래 앉아계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힘을 얻고 용기를 얻습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년로해진 몸을 생각지 않고 하루도 쉬임없이 로고를 바쳐가시니···

바라옵건대 오라버님께서 저의 이 심정을 수령님께 여쭈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어버이수령님께서 지난 가을에 주신 돼지가 벌써 새끼를 쳐서 올가을에 가면 수십마리로 늘어날것 같습니다. 약속대로 아버님께서 가을에 오시면 저는 이 전천땅에 오래오래 모시고 쉬시게 하겠습니다.

···

 

승용차는 어느덧 당중앙위원회청사앞에 이르렀다.

그이께서 집무실에 들어서시자 책임서기 김성묵이가 기다리고있은듯 타자문건 한통을 그이께 드리였다.

《인민군총참모부에서 보내온 새로운 적정자료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집무탁우에 놓여있는 적정자료를 오래도록 내려다보시였다.

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뉴멕시코주에 있는 국립연구원에서 미국방장관, 합동참모본부의장, 방위정보국장 등 군부의 강경보수세력이라고 할수 있는 호전층들이 모여서 우리의 핵시설에 대한 선제타격을 위한 모의훈련(콤퓨터에 의한 모의전쟁)을 벌려놓았다고 한다.

이것은 미국과의 또 한차례의 대결이 현실로 되고있다는것을 말해주었다.

정세가 이렇게 엄혹할 때 우리 공화국으로서는 한두달후 나라의 전력공업발전을 위해 운영하고있는 흑연감속로에서 과학기술공정의 요구에 따라 로심을 교체해야 하였다. 그렇게 되면 《핵의혹》을 운운하면서 흑연감속로자체를 페기해버릴것을 강요해오던 미국과 세계반동들이 군사적제재의 명분을 세워 덤벼들수도 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미 이것을 예견하고있었고 그로부터 야기되는 모든 중하를 자신이 걸머질것을 결심하고 수령님께 치료를 권고하시였던것이다.

그러나 시시각각으로 우심해지는 공화국에 대한 미제의 《압살》책동으로 하여 이제 수령님께서는 치료를 받으시기가 더 어렵게 될것 같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외교부에서 조미관계를 전담하고있는 부부장 문선규를 찾으시였다.

《우리가 흑연감속로에서 앞으로 로심교체를 단행하는 경우 조성될수 있는 최악의 사태를 판단해보시오. 그리고 그것을 국방위원회앞에 보고할 준비를 하시오.》

근엄하게 울리는 그이의 목소리가 여운을 거두기도 전에 그이를 찾는 전화종소리가 들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다시 송수화기를 드시였다.

수화기에서는 수령님의 음성이 울려왔다. 혹시나? 하는 기대에 그이께서 긴장해지시였다.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록음한 편지들을 다 들었소. 나는 그 편지를 들으면서 눈물이 나는것을 겨우 참았소. 인민을 위해 쉼없이 더 많이 일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군, 나의 심정을 리해해주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금시 가슴이 답답해지시였다. 편지에 걸었던 마지막기대마저 허물어진것이였다.

그후 1월이 가고 2월중순이 되도록 수령님께서는 종시 시간을 얻지 못하여 눈수술을 받을수 없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여전히 변함없이 바쁘시였다. 그이의 정상적인 바쁘심속에서 인민들의 보람찬 생활이 흘러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