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3


 

3

 

하늘빛승용차 한대가 새벽추위에 얼어붙은 거리를 급하게 달리였다. 이따금 가볍게 경적을 울리며 질주하던 그 차는 금수산의사당이 가까와오자 속도를 죽이더니 정문으로 조용히 미끄러져 들어갔다. 차안에는 하얀 의료복에 위생모를 쓴 수령님의 담당간호원 채순이가 타고있었다. 시내가의 물망초처럼 온몸에서 청신한 기운이 풍기는 스물대여섯 나보이는 처녀였다. 하지만 처녀의 그 청초한 얼굴에 지금은 그늘이 짙게 덮이여서 평소의 명랑한 기색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금 채순은 의사들과 함께 병원책임일군들을 만나 수령님을 병원으로 모셔가기 위한 토의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였다. 장군님의 지시를 받고 어저께 수령님의 눈을 검진한 결과 시급히 수술을 받지 않으면 안될 병이 생기였다는것이 확인되였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강력한 의료진을 무어 수령님의 건강을 돌보도록 해주시였는데도 그이의 눈병을 미리 알아내지 못한것이였다. 이렇게 된데는 담당간호원인 자기에게 책임이 제일 크다고 채순은 생각하였다.

이 얼마나 엄중한 사태가 빚어졌는가. 채순은 온밤 가슴을 쥐여뜯으며 울었었다. 담당간호원이 수령님의 눈에 병이 생기는것도 모르고 여태 마음편히 지내고있었으니 그는 자신을 용서할수 없었다.

장군님께서 수령님의 건강에 대하여 문의하실 때마다 《장군님, 마음을 놓으십시오. 수령님께선 건강하십니다.》 하고 대답을 올리군 했던 채순이였다. 그런데 담당간호원인 자기가 아니라 장군님께서 먼저 수령님의 눈에 이상이 생긴것을 알아내신것이였다.

생각할수록 사람들앞에서 머리를 들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자책의 눈물을 흘리는것보다 수령님의 눈을 빨리 고쳐드리는것이 중요하였다.

그때문에 채순은 한시간이라도 속히 김일성동지를 병원으로 모셔가려고 그처럼 급하게 차를 타고왔던것이다.

정문으로 들어선 승용차는 정원길을 지나 푸른 가라목 두그루가 쌍보초처럼 서있는 현관앞 계단밑에서 멎었다.

차에서 내린 채순은 시계를 들여다보며 계단밑을 발볌발볌 오고갔다. 거기서 수령님을 기다리도록 약속되여있은것이였다.

얼마후 의사당옆 포도원기슭으로 김일성동지께서 타신 승용차가 나오더니 채순이 서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채순은 옷매무시를 바로하고 그이의 승용차를 향해 깍듯이 절을 하였다. 그러자 승용차앞문이 열리며 수령님의 부관이 《간호원동무, 어서 올라타오.》 하고 채순에게 손짓을 하였다.

승용차 뒤좌석에 앉으신 수령님께서도 인자한 웃음을 띠고 채순을 바라보고계시였다.

《자, 여기 앉으라구.》

그이께서 차문곁에 다가선 채순에게 옆자리를 권하시며 병원으로 가기전에 먼저 어디에 가볼데가 있다고 하시였다.

채순은 시계를 들여다보며 먼가 조금 주저하는듯 하다가 그이의 곁에 조심히 앉았다.

승용차는 정문을 벗어져나와 곧추 큰길을 향해 달리였다.

금성거리에 나선 승용차는 합장교를 건너서자 강동쪽을 가리키는 도로표식을 따라 질주하였다. 닦은지 얼마 안되는 강동행 대도로는 피치의 검은색 윤택이 아직 빠지지 않아 알른거리는데 승용차는 우로 미끄러지듯 소리없이 달려갔다. 어느덧 승용차는 벌써 교외로 빠졌다.

채순은 김일성동지께서 교외 어디엔가 잠간 들렸다가 병원으로 가시려는가부다하고 생각하면서도 의아한 마음을 가시지 못한채 그냥 차창밖을 살피였다.

승용차앞쪽에서 마주 달려오던 차들이 멈춰서고 길 좌우에서 행인들이 승용차를 향하여 인사를 올리였다. 교통지휘원도 자세를 정중히 하고 수령님께서 타고계시는 승용차를 경건한 눈으로 우러러 지켜보았다.

차창밖을 내다보던 채순은 《수령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으려다가 주춤하였다. 수령님께서 승용차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대신채 눈을 감고계시기때문이였다. 그이의 머리에 얹힌 흰서리와 만면에 스며있는 피로의 빛이 간호원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채순은 새해에 들어와서 수령님께서 거의 매일이다싶이 농업, 경공업, 대외무역 등 인민경제 여러 부문의 일군들을 만나시여 바쁜 시간을 보내신 사실을 잘 알고있었다.

《참으로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모자라누나.》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주 그런 말씀을 하시였다. 그처럼 일분일초도 아까와하시던 그이께서 이제 눈수술을 받으려 병원으로 가셔야 하는것이다.

수술을 받으시자면 적어도 한달정도는 병원생활을 하셔야 하는데 수령님께 있어서 그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였다. 채순은 그이의 모든 사업이 조선혁명은 물론 국제혁명과도 치차처럼 맞물려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는 수령님의 그 귀중한 시간을 잃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자기라고만 생각하니 그이의 옆에 감히 앉아있기조차 죄스러웠다. 허나 어찌할수 없는 일이였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수령님을 빨리 병원으로 모셔가는것이였다.

승용차는 벌써 강동땅을 가까이하고있었다. 차가 시외로 점점 더 멀리 벗어나자 채순은 불안감에 휩싸여 시계를 자주 들여다보았다. 그는 묵묵히 명상에 잠겨계시는 수령님의 기색을 살피며 여러번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수령님, 어디로 가십니까? 아홉시전으로 병원에 가셔야 하는데··· 의사선생님들과 시간을 그렇게 약속하였습니다.》

《아홉시전으로? 그건 힘들겠군···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는고 하면 옛 조상이 있는 곳으로 가오.》

《네에?!···》

채순은 어리둥절해졌다.

《옛날부터 조상을 몰라보는 사람을 후레자식이라고 했지. 그런데 조상중에서도 첫 조상인 시조를 몰라보아서야 안되지. 그 시조가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 민족도 있는거지.···》

김일성동지께서는 반롱담처럼 말씀하시며 미소를 지으시였다. 채순이의 온화하던 얼굴에 별안간 파문이 일었다.

《그러니까 단군릉 개건공사장으로 가십니까?》

그이께서는 여전히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채순은 당황해하며 새삼스레 차창밖을 다시 내다보았다. 아득히 먼 원경으로 흰눈에 덮인 산발들이 바라보이였다. 그 하얀 설경은 매운 바람부는 소한무렵의 추위를 느끼게 하였다.

승용차를 돌려세워야겠다고 생각한 채순은 성급히 물었다.

《수령님, 거기에 꼭 가보셔야 합니까?》

《그래, 내가 돌아보지 않으면 안될 일이 생겼소. 병원에 가는거야 시간이 좀 늦은들 무어라나.》

김일성동지께서는 간호원의 표정을 살피며 사정하듯 말씀하시였다. 그러나 처녀는 양보할 기색이 아니였다.

그이께서는 응답이 없이 새침해진 간호원의 얼굴을 보며 은근히 불안해하시였다. 원체 치료규정을 놓고는 한치의 에누리도 없는 이악하고 책임성있는 이 담당간호원한테서 늘 《자유》를 구속받고계시는 그이이시였다. 당은 손녀벌이 되는 이 20대의 처녀한테 수령의 건강을 통제할수 있는 큰 권한을 주었던것이다. 이제 담당간호원의 통제는 어차피 더 엄격해지기마련이였다.

《수령님, 시간도 시간이지만 찬바람을 맞으시면 눈병이 더 악화됩니다. 병원에 가서 책임일군들을 통해 단군릉실태를 알아보시면 안됩니까?》

《채순이,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지. 백번 듣는것보다 한번 보는것이 낫다는 말이야. 그리고 아래사람들의 말이나 들어가지고 해결될 일이라면야 내가 왜 채순이의 속을 태우면서 거길 찾아가겠나.》

김일성동지께서는 채순이의 어깨를 다정히 두드리시였다. 채순은 안타까운듯 가늘게 한숨을 내쉬였다. 그의 어글어글한 눈에 물기가 핑 돌았다. 처녀의 눈귀에 맺힌 이슬을 보시느라니 그이께서도 속이 좋지 않으시였다. 그러나 사실 그이께서는 병원으로 들어가기전에 먼저 단군릉을 찾아보아야 하시였다. 단군릉개건확장공사와 관련하여 매우 긴급한 문제가 제기되였던것이다.

원래 단군릉개건공사는 래년도 개천절(10월 3일)까지 완공하기로 계획되여있었는데 그이께서 지난 1월 2일 제정당, 단체 책임일군들과 협의회를 하시는 과정에 그 공사를 1년 앞당길 생각을 하게 되시였다. 단군릉이 발굴되였다는 소식을 듣고 지금 남조선의 100여만 대종교인들과 해외동포들로부터 올해 개천절을 시조의 무덤앞에서 기념하자는 제기가 계속 들어오고있었다. 심지어 기독교인들까지도 우리의 성지는 에루살렘이 아니라 내 시조의 유골이 있는 강동땅이라고 하면서 개천절을 그곳에서 기념하겠다고 제기하고있었다. 민족의 이 불같은 념원과 지향은 무엇으로도 막을수 없으며 또 막아서는 안되였다. 올해의 개천절을 전민족적인 행사로 맞이하자면 그전에 단군릉개건공사를 다그쳐끝내야 하는것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병원문제가 제기된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사뭇 생각이 복잡하시였다. 비단 단군릉 개건공사뿐아니라 이무렵 그이께서는 하실 일이 너무도 많으시였다.

어떻게 하면 병원치료를 받으면서도 제기된 모든 사업을 처리해나갈수 있을것인가. 어제부터 밤새 그것을 생각하시였으나 방도가 잘 떠오르지 않으시였다.

《정말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모자라누나.》

그이께서는 또다시 그 말씀을 뇌이시며 시계를 들여다보시였다.

불현듯 어린시절 가슴깊이에 새겨두었던 아버님의 말씀이 새삼스레 상기되시였다.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아낄것이 두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시간과 동지이다.》

이것은 그이께서 열다섯살되는 해 생신날에 저 이국땅 무송에서 아버님으로부터 시계를 선물로 받으시면서 들으신 말씀이였다.

그때로부터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새겨보면 아버님의 그 말씀이 명언중의 명언이라는 생각이 드시였다. 하기는 그 말씀을 지금껏 혁명의 좌우명으로 삼아오신 김일성동지이시기도 하였다.

승용차는 어느덧 맥전동굴을 지나 강동땅에 들어서고있었다. 유서깊고 수려한 땅, 5천년전 시조의 넋이 잠들고있는 유정한 고장이 바야흐로 눈앞에 다가오고있는것이다. 언제 보아도 마음이 끌리는 이고장, 대박산 동남쪽 경사진 기슭에서 바로 지난해, 1993년 2월 18일에 조선민족의 원시조인 단군유골이 나왔었다.

5011년의 유구한 세월이 흘러온 단군유골의 발굴은 결국 몽롱한 안개속에 묻혀있던 우리 민족사의 3천여년을 새로 찾아낸것으로 되였다. 다시말하여 조선의 반만년력사를 과학적으로 확인하게 되였고 조선민족이 단군을 원시조로 하는 단일민족임을 더욱 떳떳이 자랑할수 있게 되였다.

이제는 단군이 고조선을 창건했다는것이 분명해졌을뿐아니라 그가 도읍했던 평양이 바로 검은모루유적의 주인공과 《력포사람》(고인), 《만달사람》(신인)이 조선사람의 류형으로 발전하게 된 인류발상지의 하나이며 조선민족의 첫국가의 발상지라는 사실이 확증되였다.

승용차가 강동읍을 에돌아 대박산가까이에 이르자 단군릉개축공사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차창으로 공사장을 둘러보시는 김일성동지께서는 감회가 새로우시였다. 광복후부터, 아니 그보다 더 먼 항일무장투쟁이전시기부터 민족의 원시조를 놓고 마음써오신 수령님이시였다. 그이께 있어서 애국은 조국에 대한 사랑과 함께 민족의 력사에 대한 사랑이였다. 그러기에 일찌기 그이께서는 력사학자 신채호가 고구려의 성지를 탐방하고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신채호와 같이 눈바람, 찬비도 가리지 않고 조국의 력사행적을 찾아다니는 그런 사람들도 쉽지 않은 애국자라고 하시였다.

민족의 력사에 대한 그이의 불같은 사랑속에 광복후 고구려의 시조무덤인 동명왕릉이 로동당시대 하나의 기념비로 수복되였고 고려태조인 왕건의 무덤이 조락을 면할수 있었다.

그이께서 일찌기 로동당의 민족문화보존정책을 제시하시고 선조의 슬기가 깃든 하나의 유산도 금싸래기처럼 아끼고 다루도록 하시였기에 우리 나라는 명실공히 유구한 민족문화유산을 가진 찬란한 문화국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였다.

허나 그이께서는 우리 민족의 반만년력사를 자랑하시면서도 늘 마음속의 빈구석을 느끼군 하시였다. 그것은 민족의 원시조를 찾지 못한 허전함이였다. 그 허전함은 력사의 유적들을 보실 때마다 갑절로 더해지군 하였다.

특히 단군사와 단군에 대한 신비한 전설이 깃들어있는 구월산이나 강동주변을 다니실 때면 어디에선가 수천년전 선조의 령혼이 찾고 부르는것 같아서 귀를 기울이기도 하시였다. 그때마다 서운하고 안타깝게 생각되는것은 외국의 사가들은 물론 이 나라의 사학자들까지 단군을 허황한 신화적인물로 보고있는 그것이였다.

옛날부터 강동군에 조그마한 단군릉이 소문없이 보존되여왔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실재한 인간의 무덤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심지어 광복전에 단군릉을 지키기 위해 《단군수호회》를 조직한 사람들까지도 그 단군릉이 우리 나라의 시조를 상징하는 무덤이라고만 생각하고있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단군을 허황한 신화의 주인공으로 생각하는 경향성이 더 심해져서 나중에는 고고학자들도 단군릉이 있는 강동땅에 발길조차 하지 않게 되였다. 그리하여 가뜩이나 왜소하고 초라하던 그 《상징의 무덤》은 후손들의 관심밖에서 비바람에 씻기여 그 형체조차 보기 어렵게 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것을 가슴아프게 생각하시고 어느날 학자들을 가까이 부르시여 고려나 리조시기에 편찬된 우리 나라 력사책은 물론이고 기원전 3세기에 편찬된 중국의 력사책 《위서》에도 단군이 고조선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내가 세조선, 고려, 리조시기에 쓴 력사책들과 중국의 고서들도 수십권 읽어보았는데 많은 책들에 단군이 고조선을 세웠다고 기록되여있습니다. 삼국유사>와 고려사에서도 단군을 우리 나라의 개국시조로 보고있고 1484년에 편찬한 동국통감도 우리 민족사서술을 단군조선으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단군릉에 대한 문헌기록도 적지 않습니다. 1530년에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해서 1626년에 편찬한 강동지 그리고 리조실록에도 문헌으로 기록되여있습니다. 이렇게 력사에도 기록되여있고 또 강동에 실지 단군릉이 있는데도 오늘 적지 않은 학자들이 단군을 허황한 전설적인물로만 생각하면서 그에 대한 연구사업을 소홀히 하고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러시며 지난날 일제가 유구한 우리 민족사를 저들의 력사보다 뒤늦은것으로 만들기 위해 단군말살정책을 실시한 후과로 그렇게 되였다고 하시였다. 일제는 이마니시와 같은 력사위조의 명수들을 내세워 단군을 실재한 조선의 시조가 아니라 후세에 와서 사람들이 꾸며낸 허황한 인물이라는것을 《론증》케 하는 한편 20여만부나 되는 단군관계 력사책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리게 하였다.

그러므로 수령님께서는 학자들이 우리 나라 고대력사에 대하여 주체적립장에서 다시 검토해보고 단군이나 고조선과 관련한 고증사업도 과학적으로 심화시켜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이러한 교시는 무려 60여차례이상이나 되였다. 김일성동지의 교시를 받을 때마다 학자들은 그이의 비상한 기억력과 해박한 지식, 명철한 분석에 경탄하였고 더우기는 우리 민족, 우리 나라에 대한 열렬한 사랑에 감복하군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김일성동지의 깊은 뜻을 받들어 단군에 대한 고증사업을 계속하던 끝에 마침내 단군의 실체를 얻게 되였다. 민족의 시조를 상징하는 한갖 허황한 무덤이라고 생각했던 단군릉에서 유골이 나타난것이였다.

1993년 2월 18일, 그날에 바로 리대천으로부터 세상을 경악케 하는 그 소식을 들으시자 수령님께서는 못내 기뻐하시면서도 반신반의하시였다.

《그게 사실이요?··· 잘못 측정하지 않았소? 다시 확인해보시오. 수천년력사가 왔다갔다하는 일인데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확인해보시오.》

그이께서는 지난날 일부 력사가들의 무책임성과 비량심적인 행동으로 하여 력사가 위조되고 희롱된 사실이 있는데 대하여 거듭 강조하시였다.

그리하여 그후 최첨단의 과학측정기구로 24번씩이나 측정하여 단군의 유골이 5011년전에 묻힌것임을 다시 확인하게 되였다.

그때 김일성동지께서는 《정말 나라에 대통운이 텄소. 중국에도 원시조인 헌헌황제의 무덤이 있지만 그건 유골이 없는 무덤이요. 아마 5011년전 시조의 유골을 가지고있는 나라는 세상에 우리 나라밖에 없을거요.》 하고 기뻐하시였다.

실지 단군유골의 발굴은 세상을 진감시키였고 국내외의 모든 동포들의 가슴에 뜨거운 애국의 불씨를 지펴주었다.

내처 달리던 승용차는 대박산기슭의 소로에 이르러 멈추어섰다. 수령님께서 차에서 내리시자 어느새 채순이가 보안경을 들고 그이곁으로 다가왔다.

《음, 보안경인가?》

그이께서는 뭔가 뒤말을 이으려다가 그만두고 간호원이 올리는 보안경을 묵묵히 받으시였다. 소한추위를 하는지 소란스럽게 불어오는 찬바람이 살을 에이는듯 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보안경을 끼자 두손을 허리에 얹으며 공사가 진행되고있는 야산을 올려다보시였다.

《수령님, 밖에 오래 계시면 안됩니다. 찬바람을 맞으시면 눈에 좋지 않습니다.》

불안한 표정을 짓고 곁에 서있던 채순이가 애원하듯 말씀올리였다.

수령님께서는 간호원에게 다정하게 말씀하시였다.

《걱정말고 채순이도 나와 함께 저 공사장에 올라가서 구경을 하자구.》

그이께서는 군데군데 눈이 덮여있는 울퉁불퉁한 작업도로를 따라 올리막을 오르기 시작하시였다. 산봉우리에서부터 불어오는 찬바람이 사정없이 그이의 몸을 휩쌌다. 채순은 할수 없이 부관과 함께 그이를 따라가며 부축해드리였다.

《일없어, 부축하지 않아도 돼···》 하고 그이께서는 유쾌하게 웃으시였다. 그때 마침 현장지휘를 하고있던 평양시당비서가 달려와 수령님께 인사를 올리였다.

《수고하오. 공사형편이 궁금해서 찾아왔소···》

그이께서 우선우선하게 인사를 받아주시였다.

《그런데 이렇게 추운 날씨에···》

털모자밑으로 희슥희슥한 머리카락이 흘러내린 오랜 일군인 시당비서가 손을 비비며 민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날이 추우면 무어라오. 나는 여기만 오면 속이 훈훈하고 기쁘오.》

김일성동지께서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야산마루를 올려다보시였다. 그때 광대뼈가 두드러지고 얼굴에 병색이 도는 강희원부총리가 헐떡거리며 달려오고있었다.

《수령님! 어찌 이 추운 날씨에···》

떠듬거리며 인사를 올리는 강희원이 역시 날씨부터 걱정하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를 보자 무척 놀라와하시였다. 병원에 있다고 생각한 사람을 뜻밖에 여기서 보게 되시였기때문이다. 그이께서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듯 보안경을 벗어들고 한참 들여다보시였다.

《동무가 어떻게 여기 와있소?》

《수령님! 이젠 다 나아서 퇴원했습니다.》

강희원은 두손으로 붉은 수첩을 맞잡고서서 누런 얼굴에 어줍은 웃음을 지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강희원의 어색한 거동과 병색이 완연한 낯빛을 보고 그가 의사의 허락도 없이 병원문을 뛰쳐나왔다고 대뜸 짐작하시였다.

강희원은 사업상으로 그전부터 수령님과의 련계가 많던 일군이였다. 그전에 그는 매일 새벽 네댓시만 되면 평양시안의 거리들을 돌아다니며 남새를 비롯한 식료품들이 얼마나 공급되는지 일일이 알아보고 그날아침으로 그이께 보고드리군 하였다. 그리고 낮에는 낮대로, 밤에는 또 밤대로 수령님께서 제일 근심하시고 아파하시는 문제를 풀기 위하여 뛰여다니였다. 그러한 일군이니 수령님께서 단군과 관련한 교시를 하실 때마다 그것을 해결해보겠다고 강동, 성천, 구월산 어디 안가본데가 없고 력사학자들의 조수가 되여 땅도 파고 곡괭이질도 하였다. 그는 다른 간부들에 비해 리론수준이 높지 못하고 력사에 대하여 박식하지 못하지만 김일성동지께서 조직하시는 단군과 관련된 협의회나 학술토론회에는 한사코 참가하여 귀담아듣군 하였다.

그이께서는 강희원의 사람됨을 너무도 잘 알고계시기때문에 단군릉개건공사가 시작되자 바로 그에게 공사의 책임을 맡겨주시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도중에 그가 중병에 걸리게 되자 시당비서에게 사업을 인계하고 입원치료를 받게 하시였다. 그런데 그 강희원이가 병원으로 갈 때보다 더 수척한 모양을 하고 숨을 헐떡거리면서 그이의 앞에 나타난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속이 좋지 않으시였다. 지금껏 그이의 얼굴에 떠돌던 밝은 웃음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강동무, 병이 다 나았다는 사람의 얼굴이 왜 그렇소? 숨소리는 왜 그렇구?》

그이께서는 책망하는 어조로 물으시였다.

《방금 달려오다보니···》

강희원은 숨소리를 죽이다가 오히려 덧궂혀서 컬렁컬렁 기침을 깇기 시작하였다. 시당비서가 옹색한 몸가짐을 하고 안절부절하였다.

《좋소. 동무문제는 따로 봅시다.》

수령님께서는 그러시고도 강희원을 한참 측은히 지켜보신 다음 시당비서에게 물으시였다.

《단군릉개건공사를 올해 개천절전으로 완공할수 없겠소?》

《올해 개천절전으로 끝내야 한단 말씀입니까?》

시당비서는 놀라며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렇게 해주면 좋겠소. 10월 3일 전으로···》

김일성동지께서는 무겁게 뇌이시며 강희원과 시당비서가 서있는 사이를 천천히 거니시였다. 10월 3일이 바로 단군이 나라를 세웠다고 하는 개천절이였다.

사실 새로 개건확장하는 단군릉은 그 규모가 대단히 클뿐아니라 높은 건축예술적인 기교를 요구하고있기때문에 올해 개천절전으로 공사를 끝낸다는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였다. 수령님께서도 그것을 모르지 않으시였다.

단군릉을 새로 개건확장하기 위한 기술실무적인 문제가 본격적으로 토의되기 시작한것은 1993년 9월 25일부터였다.

그날아침에 의사당 소회의실에서 정무원총리와 부총리, 당중앙위원회 비서 등 여러 간부들과 전문가들이 모여앉아 새로 개건한 단군릉의 규모를 놓고 론의가 벌어졌는데 그들은 대체로 단군릉을 고구려의 시조왕인 동명왕릉보다 크게 할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날 뒤늦게 협의회장에 나오신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들의 의견과는 달리 단군은 민족의 시조이기때문에 릉도 그 어느 왕릉보다도 더 웅장하게 최상의 수준으로 개건확장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후에도 9월과 10월에 그이께서는 여러차례 현장을 답사하시면서 단군릉개건공사와 관련한 교시만 하여도 40여차례나 하시였다. 그리하여 왜소하기 그지없던 단군릉이 오늘과 같은 대규모의 건축물로 설계되여 개축공사를 시작할수 있었다.

《단군릉을 래년에야 완공할수 있단 말이지?》

김일성동지께서 이렇게 뇌이시며 시당비서옆으로 오시였다.

시당비서와 강희원은 두손을 맞잡은채 대답을 드리지 못하고있었다.

《그래 올해 개천절까지 공사를 끝내지 못하겠소?》

수령님께서 다시 물으시였다.

시당비서는 여전히 자신이 없는듯 아무 대답도 못올리였다.

《헐치 않은 일이요. 그러나 올해 개천절전으로 꼭 완공해야 하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승용차가 대기하고있는 야산기슭을 내려다보며 계속 말씀하시였다.

《단군유골이 발굴된 이후 남조선은 물론 중국, 일본을 비롯한 해외동포들속에서까지 대단히 큰 반향이 일어나고있소··· 동무도 알겠지만 남조선에는 대종교라는 큰 종교단체가 있소. 그 신자만도 백여만이 된다고 하오. 지금 베이징에서 우리 천도교대표들이 남조선 종교단체대표들과 접촉하고있는데 많은 남조선사람들이 단군릉을 찾아보겠다고 하오. 그들은 올해 개천절에 단군릉앞에서 통일축제를 거행하자고 계속 제기해오고있소.》

수령님께서는 말씀을 끊으시고 이윽히 남쪽하늘을 바라보시였다. 50년 긴 세월 조국의 분렬로 하여 쌓여진 인민들의 원한과 비분이 하늘가에 사무쳐있는듯 하였다.

그이께서는 한참만에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가 굳이 행사를 조직하지 않아도 아마 올해 개천절에는 국내 인민들은 물론 많은 해외동포들이 여기로 찾아올거요. 그 흐름은 막을수 없소. 그래서 개천절전으로 공사를 끝내자는거요. 우리의 모든 동포들이 웅장하게 개건된 단군릉을 보고 기뻐하도록 말이요.》

《수령님, 근심마십시오. 올해 개천절전으로 꼭 완공하겠습니다.》

한옆에 비켜서있던 강희원이 앞으로 나서며 힘있게 대답을 올리였다.

그는 수령님께서 무슨 일로 이 추운날 공사장에까지 나오셨는지를 비로소 깨달았던것이다. 그의 수첩에는 단군릉을 빨리 개축하여야 하겠다는 교시가 적혀있었다. 그때문에 공사를 앞당겨 끝내자고 병원에서까지 뛰쳐나왔지만 수령님께서 올해 개천절을 맞으며 이처럼 큰 통일축제를 구상하고계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그는 몹시 흥분하여 버썩버썩 앞으로 나섰지만 수령님께서는 그의 병치료가 더 걱정되신듯 아무 말씀이 없으시였다. 찬바람이 불고있는데도 강희원의 이마에선 땀이 흐르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강희원의 열에 뜬 모습을 지켜보시다가 시당비서에게 고개를 돌리시였다.

《좋소, 무조건 한다! 문제를 이렇게 세워놓고 토론해봅시다. 계산은 간단하오. 지금보다 건설속도를 한 둬배 높이면 될거요··· 그러자면 무엇이 해결되면 되겠소? 그걸 좀 말하오.》

시당비서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면서 우선 석재운반이 걸린다고 하였다. 몇t씩 되는 대형석재를 산경사면으로 끌어올리자니 여간 힘들지 않다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좀전에 톺아오르신 울퉁불퉁한 작업도로들을 잠시 내려다보시였다. 길닦이를 잘하고 기중기와 대형견인차들을 여러대 동원하면 석재운반은 해결될것 같으시였다. 그러나 수십여t짜리 중량물들을 나를만 한 견인차들이 그리 흔한것은 아니였다. 그런데다 걸린것은 비단 견인차뿐이 아니였다.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수많은 석상과 비돌들, 아름다운 화강석계단, 웅장하고 숭엄하게 솟구쳐야 할 산같은 시조의 봉분 그리고 차도와 인도 등 그 모든것을 이제 단 아홉달동안에 하나의 조화로운 대건축물로 완공하자면 현상태에서 너무도 걸린 문제가 많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무런 내색도 하시지 않았으나 마음속으로는 과연 올해 개천절전으로 이 방대한 규모의 건설을 해낼수 있겠는가 하는 걱정이 더 커지시였다.

(혁명적인 대책이 필요해! 아무래도 장군을 만나봐야겠군.)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항용 그러하시듯 수령님의 마음은 어찌할수 없이 김정일동지를 찾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시당비서가 제기한것들을 수첩에 적으신 다음 그를 앞세우고 단군무덤을 꾸릴 기본공사장인 야산마루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가시는 길에 공사장 한쪽에서 사자석상을 쫏고있는 젊은 석공들을 만나시였다. 하얀 돌가루를 쓴 석공들이 일시에 일어나서 김일성동지께 인사를 드리였다.

《허, 용감한 석공들이로군. 추운데 수고들 하오.》

그이께서는 돌가루가 묻은 청년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고 주변을 둘러보시였다. 거기에는 한창 세부작업을 하고있는 여러가지 석상과 비돌들이 널려있었다. 그이께서는 어떤 동물의 륜곽을 잡고있는 하얀 화강석을 쓸어만지며 물으시였다.

《이게 뭐요. 사자가 아니요?》

《수령님, 그렇습니다.》

이제 스무살안팎으로 보이는 곱슬머리 청년이 털모자를 벗어쥔채 씩씩하게 대답을 올리였다.

《어서 모자를 쓰시오. 귀가 시리겠소.》

그이께서는 곱슬머리 청년의 꼬불꼬불한 머리우에 친히 털모자를 얹어주시고 다시 물으시였다.

《이 사자석상을 어디 세우자고 그러오?》

《단군릉앞에 세우자고 합니다.》

《단군릉앞에?》 하고 반문하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천천히 머리를 저으시였다.

《우리 시조의 무덤인 단군릉앞에 왜 사자를 세운단 말이요?》

《원래 단군릉앞에 사자석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곱슬머리청년은 자신없이 중얼거리였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것이요. 우리 나라에 없는 사자를 시조의 무덤앞에 세운다는건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단군릉앞에 무슨 석상을 세워야 하는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위에 둘러서있는 석공들과 수원들 그리고 부관과 간호원 한사람한사람을 의미깊이 둘러보시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호랑이석상을 세워야 합니다. 조선의 호랑이는 아프리카사자보다도 더 용감하고 더 잘 생겼습니다.》

《?!···》

순간 석공들은 강한 공감으로 하여 눈빛을 반짝이며 밝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지휘일군들인 시당비서와 강희원은 심각한 얼굴빛을 하고있었다.

채순이도 얼굴을 숙인채 발끝을 내려다보고있었다.

(수령님께서 여기에 오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번했는가?)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며 자신을 뉘우치고있었다.

《어떻소, 동무들? 사자가 옳소, 호랑이가 옳소?》

《수령님 말씀대로 호랑이석상을 세우겠습니다.》

곱슬머리청년이 석공들을 대표하여 씩씩하게 대답하였다.

《좋소. 그렇게 하오. 뭐 불편한게 없소. 무엇이든 애로되는게 있으면 다 말하오.》

그러자 곱슬머리청년은 시당비서의 얼굴을 흘깃 스쳐보고 머밋거리였다.

《누구 눈치를 보지 말구 어서 말해.》

《수령님, 애로되는것이 없습니다.》

곱슬머리청년은 활기있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마음이 놓이시지 않는듯 그의 솜옷저고리를 만져보시였다.

《솜옷이 얇구만. 시당비서동무, 좀더 두툼한 솜옷을 해입힙시다··· 내가 보내주겠소.》

그이께서는 감격해하는 석공들과 한참 이야기하고 곧장 산마루로 오르시였다. 거기서는 벌써 무덤의 기틀을 잡기 위한 기초작업이 끝나서 아직 봉분의 모양은 볼수 없었지만 그 규모와 틀거리는 짐작할수 있었다.

《가만, 무덤자리는 이렇게 잡으면 남향이 되겠소. 그런데 유골위치는 어떻게 정하려고 하오?》

잠시 무덤위치에서 남향을 판정해보시던 수령님께서 무슨 생각이 드셨는지 시당비서에게 불쑥 물으시였다.

시당비서가 수첩을 벌컥벌컥 뒤지더니 뒤장에 간략해그려놓은 유골위치략도를 그이께 보여드렸다.

《이 유골배치때문에 론의가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단군의 유골은 왼쪽에 놓고 부인의 유골은 오른쪽에 놓기로 락착지었습니다.》

그는 결혼식이나 환갑잔치때에는 남자의 위치가 녀자의 오른쪽이지만 죽은 다음에는 살아있을 때와 반대로 유골위치를 정한다고 해서 그렇게 배치하였다고 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유골배치략도를 한동안 들여다보시다가 유골위치를 잘못 정한것 같다고 하시였다.

《옛날 우리 나라의 풍습에는 결혼식이나 환갑잔치를 할 때 남자와 녀자의 서는 자리를 남쪽을 향하여 부동녀서로 정하여 남자는 동쪽에 서고 녀자는 서쪽에 서게 하였습니다.

유골배치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그 풍습대로 무덤칸안에다 살아있을 때와 반대되게 단군유골은 오른쪽에 놓고 부인의 유골은 왼쪽에 놓으면 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이어 그것은 《좋을 호(好)》자만 보아도 알수 있다고 하시면서 력사자료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중국의 강희황제시기에 글자를 많이 고쳤는데 《좋을 호》자는 바로 강희황제가 남자와 녀자가 함께 있으면 좋다는 의미를 담아 만들었다는 글자이다. 녀자《녀》자와 아들《자》자결합으로 이루어진 이 한자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남자의 오른쪽에 녀자가 있는것으로 되여있다.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남자가 왼쪽에 서고 녀자가 오른쪽에 서는것을 남좌녀우라고 하는데 그 반대로 하면 역시 남자가 오른쪽에 서고 녀자가 왼쪽에 서는것으로 된다고 세세히 설명해주시였다. 시당비서는 그 어느 력사가나 박문학자도 따를수 없는 그이의 넓은 견문과 해박한 지식에 놀라면서 말씀대로 유골배치를 다시 정하겠다고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감회어린 표정으로 눈아래 펼쳐진 아득한 들과 파도치는 산언덕들을 굽어보시였다. 이미 여러번 올라와보신 산마루이지만 보면 볼수록 단군릉은 대성산혁명렬사릉과 같이 앞이 탁 트이여 멀리까지 내다보이고 도로에서도 가까와 참으로 명당자리에 앉게 되였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야산마루에서 드넓은 대지를 이윽토록 부감하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저으기 흥분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모형사판을 보며 생각할 때보다도 현지에서 보니 릉규모가 더 커보이는구만! 우리 설계가들이 모든것을 통이 크게 잘하거든.》

《모형사판과 릉건설을 위한 설계문건들을 장군님께서 여러번 보아주시였습니다.》

강희원이 허연 입김을 날리며 다시 끼여들었다. 단군릉설계문건들을 들고 성수가 나서 뛰여다니던 때가 상기돼서인지 누렇게 뜬 그의 얼굴에 추연한 빛이 어리였다. 그것은 결코 먼 옛날에 있은 일이 아니였다. 불과 서너달전, 그때만 하여도 불깃불깃 혈조가 피여있던 그의 얼굴이 지금은 피기가 없어지고 눈은 깊숙이 꺼져있었다.

(저 사람을 빨리 병원에 보내야지. 정말 일을 치겠군···)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시며 산기슭에 서있는 승용차를 내려다보시였다. 그것도 모르고 강희원은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수령님, 여기 공사가 수령님의 뜻대로··· 속도를 보장하지 못한건 전적으로 이 강희원에게 잘못이 있습니다. 제가 첫시작을 잘못 뗐습니다. 수령님께서 단군릉개건공사를 다그치자고 말씀하신건 오늘이 처음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첫시작부터 늦장을 부리였습니다.》

《됐소. 그만하오.》

수령님께서는 떠듬떠듬 자신을 반성하면서 두서없이 내리엮는 강희원의 말을 밀막아버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아까운 기둥재목이 사나운 탕수에 사정없이 떠내려가는듯 한 가슴아픈 상실감에 고개를 돌리고 천천히 보안경을 벗으시였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른 뒤에 수령님께서 시당비서를 가까이 부르시였다.

《동문 부총리가 여기 나와있는걸 왜 나한테 보고하지 않았소? 사람이 저 지경이 됐는데···》

시당비서는 털모자를 벗고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시당비서를 그 이상 더 꾸짖지 않으시였다.

《이틀후에 내가 다시 오겠소. 그때 마주앉아 구체적인 대책을 세웁시다. 어쨌든 명심할것은 하늘이 무너져도 올해 개천절전에 공사를 끝내야 한다는 그거요.》

시당비서는 털모자를 두손으로 움켜쥐며 대답을 올리였다.

《죽으나사나 해내겠습니다. 수령님의 의도를 알게 되면 모두 결사전을 벌릴겝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아껴야 하오. 로동자들에게 솜옷 하나 제대로 보장해주지 않고있으니 이 추운 겨울에 그게 어디 됐소? 언제면 그런 일본새를 없애겠소. 제때에 휴식도 시키고··· 문화생활도 하고 그리고 공사도 앞당겨야 하오.》

《알겠습니다. 수령님!》

시당비서는 목이 꽉 잠기여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였다.

《이틀후에 또 오겠소.》

그이께서는 다시 강조하고 강희원을 돌아보시였다.

《동문 나와 함께 갑시다. 내 차를 타고 당장 병원으로 가기요.》

수령님께서 손을 들어 산밑에 서있는 승용차를 가리키시였으나 강희원은 뿌리가 내린 나무처럼 버티고 서있었다.

강희원은 이제 다시 병원으로 갈 생각이 없었다. 그의 결심은 확고하였다. 그는 자기 병이 심상치 않다는것을 알게 된 때로부터 구차스레 명을 부지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남은 명을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받드는 길에 깡그리 바치는것이 보람도 있고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병원침대에 누워서 자기의 남은 생명을 어떤 일에 바치겠는가를 생각하다가 마침내 자기가 책임을 지고 진행하던 단군릉개건공사장에 다시 되돌아가기로 작정하였던것이다.

종잡을수 없는 생각에 묻혀있던 강희원은 결연히 말씀올리였다.

《수령님, 전 일없습니다. 안가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항거하듯이 나서는 그를 놀랍게 지켜보시였다.

그것을 어찌 응석으로만 생각할수 있겠는가. 강희원이야 언제나 내가 하라는대로만 하던 사람이 아닌가. 밤중에도 부르면 예 하고 자리를 차고 일어나 바다에 가라면 바다에 가고 산으로 가라면 산으로 가던 사람이였다.

《부총리동무, 왜 어린아이들처럼 구오···》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목소리가 높아지는것을 의식하고 말씀을 끊으시였다. 그리고 한결 가라앉은 소리로 채순에게 이르시였다.

《간호원동무, 부총리동물 모시고 내려오우.》

그이께서는 먼저 걸음을 떼시였다.

《수령님!》

강희원이 달려와서 수령님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수령님, 진정을 말씀올립니다. 저는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여기가 지금 제가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다른 자리는 아무 필요도 없게 되였습니다.》

그의 눈빛은 간절한 소원으로 자글자글 타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가슴이 미여지는듯 하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의사들한테서 무슨 나쁜 말을 들었소?》

《아니,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래 응? 강희원이! 병을 고쳐야 나하구 함께 일하지 않겠나?》

수령님께서 목소리를 낮추어 사정하듯 말씀하시였다. 강희원이 터지는 오열을 참고있는지 어금이를 꽉 깨물고있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은 보이지 않았으나 온몸에서는 전률이 일어나고있었다.

《수령님! 전 정말 수령님과 함께 일하고싶습니다. 여기서 개천절까지만이라도··· 통일잔치를 할 때까지만이라도···》

《동문 고집불통이로구만!》

김일성동지께서는 마침내 어성을 높이시였다.

《그래, 동무는 나를 남겨두고 먼저 가겠다는거요? 옛날부터 부모의 눈앞에서 비명하는 자식은 불효자식이라고 했소. 그래 강희원이, 정말 불효를 할텐가?》

수령님께서는 노하시여 《최후통첩》같은 말씀을 남기시고 산밑을 향해 걸음을 옮기시였다. 멀어져가는 수령님을 넋없이 바라보던 강희원의 머리가 갑자기 푹 숙어졌다. 누런 흙이 묻은 그의 솜신코숭이로 눈물방울이 점점이 떨어졌다.

지금껏 한켠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있던 채순이의 두눈에도 핑하니 눈물이 고이였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강희원의 앞으로 걸어가서 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어서 병원으로 가십시다.》

《응, 알겠소, 알겠소.》

이렇게 말을 한 강희원은 허탈이 온 사람처럼 비칠거리였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린듯 수령님을 향해 달려내려갔다.

《수령님!》

수령님께서 문득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시였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입원은 래일 하겠습니다. 오늘 인계사업을 깨끗이 하고···》

강희원은 정말 어린아이들처럼 소리를 내면서 흐느끼였다.

수령님께서도 슬며시 손수건을 꺼내시였다.

《그만하오, 간호원이 내려와!··· 손녀같은 아이들앞에서 우는 꼴을 보이겠소?》

강희원은 황급히 눈물을 거두고 그이께 작별인사를 올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말씀이 없이 머리만 끄덕이시였다. 또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안개속에 묻힌듯 뿌잇하게 흐려진 시야에서 강희원의 모습이 얼른거리였다.

(내가 저 강희원이와 같이 일한지가 벌써 50여년이 거의 되지··· 허천강발전소에서 로동계급출신의 좋은 일군을 찾았다고 하면서 건설상을 하던 최재하가 데리고왔던 저 사람··· 그를 잃지 말아야 하겠는데···)

그이께서 이런 생각을 하고계실 때 채순이가 다가와서 길을 재촉하였다. 그가 재촉하는것은 물론 병원길이였다.

《채순동무.》

김일성동지께서는 은근한 목소리로 채순이를 부르시였다.

《내 아무래도 한 사나흘 지나서 병원으로 가야 될것 같소. 단군릉공사장에 와보니 당장 내가 풀어주어야 할 문제들이 많아. 그밖에도 내게는 밀린 일감들이 수두룩해. 그러니 한 사나흘 있다가 입원해야겠소.》

채순은 눈을 내리깔고 서있었다. 사실 보통일군들도 당분간 자리를 뜰 때에는 하루이틀 여유를 두고 밀린 일들을 마무리하기가 십상인데 항차 수령님이 아니신가. 아마 사나흘도 모자라실것이다. 하지만 채순은 물러설 잡도리가 아니였다. 입술을 깨물며 다소곳이 서있던 채순은 고개를 쳐들었다.

《수령님!···》

채순은 목이 꽉 메여올라 뒤말을 잇지 못하였다. 한참만에 그는 흐느낌처럼 떨리는 소리로 애원하듯 말씀올렸다.

《수령님, 다른 병도 아니고 눈병이 아닙니까. 의사선생님들은 수술을 지체하면 병이 힘들어진다고 합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사흘동안에 내 눈에 무슨 변이 나겠나?》

《수령님께서 언제 바쁘시지 않은 때가 있습니까. 일년 사계절이 다 바쁜목이 아닙니까. 그저 백사불구하고 가십시다.》

《사흘만! 응? 채순이!···》

수령님께서는 세손가락을 펴보이며 사정하듯 말씀하시였다.

채순은 자신으로도 어쩔수 없다는것을 깨달은듯 실망한 표정을 짓고 승용차있는데로 맥없이 걸어갔다.

(나때문에 저 어린 처녀가 늘 속을 썩이는군.)

수령님께서는 무겁게 걸음을 옮기는 처녀의 뒤모습을 측은히 바라보시였다. 문득 몇가지 잊을수 없는 일들이 그이의 머리속에 떠올랐다.

원래 채순은 기차역에서도 수백리 떨어진 자강도의 어느 깊은 산골에서 나서자란 처녀였다. 채순이의 어릴적소원은 기차를 실컷 타보는것이였다. 그 소원은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인민군대에 초모되여 평양까지 장거리로 기차를 타게 되여 풀리였다.

처녀는 끝없이 순진했다. 그만큼 마음도 티끝하나 없는 흰눈같았다.

그후 당은 검정시험으로 의사자격을 받게 되자 이 깨끗하고 성실한 처녀에게 김일성동지의 담당간호원의 직무를 맡겨주었다. 고등중학교시절에야 처음으로 기차구경을 해본 산골내기처녀가 그런 중임을 받아안을줄이야 누가 꿈엔들 생각했겠는가. 채순은 수령님곁에 와서 처음 한동안은 말도 변변히 번지지 못하고 발걸음도 제대로 옮기지 못하였다.

그러던 그가 점차 양기를 띠고 활발해지더니 어느날엔가는 느닷없이 이런 놀라운 말을 꺼냈다.

《수령님, 수령님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너무도 많으십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수령님께서는 영문을 몰라하시였다.

《수령님, 이전에 저는 수령님은 세상에서 못하시는 일이 하나도 없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이께서는 저으기 흥미를 느끼며 처녀의 다음말을 기다리시였다. 채순은 갑자기 눈굽에 이슬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쉬고싶으셔도 쉬지 못하시고 주무시고싶어도 주무시지 못하고··· 때식마저 제대로 못드시고··· 사실 세상사람들은 그걸 모릅니다.》

《됐소, 됐소···》

《아닙니다. 농사군인 우리 아버지도 쉬고플 때 쉬고 먹고플 때 먹고 자고플 때 잡니다. 여든이 넘은 우리 할아버지는 아직도 머리오리가 머루빛 같습니다. 그런데 수령님께서는··· 수령님···》

처녀의 입에서 이런 뜨거운 말사태가 쏟아져나오자 수령님께서는 아무 응대도 못하시였다.

수령님께서 생각에서 깨여났을 때 간호원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며 어디에선가 숨어서 한숨짓고 눈물흘리는 고마운 처녀의 모습이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으시였다.

용서해라, 너도 수령을 담당한 간호원이여서 남달리 더 속을 썩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