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9


 

제 5 장

9

 

겨울이 한창이였다. 대동강이 얼어붙고 북과 남의 상공인들, 장사군들, 어부들과 농민들이 배를 타고나가 물물교환을 벌리던 남포앞바다도 얼어붙었다. 한편 나라의 정치정세도 최저기온에로 급격히 떨어져내렸다. 그것은 주체36(1947)년 이해에 시작된 이상기후의 여파였다. 유명한 《트루맨독트린》(미국대통령 트루맨이 미국회에서 선언한 대쏘봉쇄-철의 장막정책)으로 시작된 랭전의 눈보라가 이 땅을 중심으로 동북아시아 전지역의 정치정세를 동토대처럼 얼어붙게 하였던것이다.

하여 《해방자》의 탈을 쓰고 기여든 미제의 정체는 나날이 발가져갔다. 쏘미량군의 《주둔군 경계선》으로 생겨났던 38°선은 날을 따라 정치분단선으로 굳어져가고 미국과 급기야 무어진 괴뢰군이 대포와 땅크를 들이밀고 철조망을 늘여놓았다. 매일같이 38°선에서는 적들의 무장도발이 그칠새 없었다.

김일성동지께서 지난해 여름 쓰딸린과의 회담때 예언하신 그대로였다.

하기에 그이께서는 온갖 애로와 난관을 박차고 군건설사업을 힘있게 추진시키시였다. 주체36(1947)년이 저물어가는 오늘 이미 평양학원에서는 제3기 졸업식이, 중앙보안간부학교에서는 제2기졸업식이 진행되였다.

수상보안간부학교가 설립되고 보안간부훈련대대부직속 중앙병원(후엔 11호중앙병원)과 협주단도 조직되였다. 바야흐로 혁명적인민무력의 건설을 선포할 그날이 다가오고있었다. 보안간부훈련대대부 문화부사령관 김일은 열병식준비사업으로 눈코뜰새없이 바삐 돌아쳤다.

안길은 열병식까지 견디여내려고 안깐힘을 다 쓰고있었다. 그러나 끝내 쏘련으로 병치료를 가는데 동의하였다. 병치료가 아니라 사실상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을 가능한 연장하기 위한 비상조치라는것을 그는 알고있었다.

드디여 그날이 왔다. 김일성동지께서 전날에 벌써 리학을 불러 비행기로 후송할데 대한 임무를 주시였었다. 그러나 그날 비행기는 뜨지 못했다. 흐린 날씨에 눈까지 내리기 시작했던것이다.

안길은 말했다.

《눈이 내릴 때면 왜 그런지 늘 어릴 때 일들이 추억되면서 까닭없이 즐거워집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혹시 그가 딴생각을 품고있지 않나 하여 우정 다짐을 두시였다.

《눈이 멎으면 밤이라도 비행기를 띄우겠소. 이번엔 꼭 간다고 약속했다는걸 잊지 마시오.》

《알고있습니다.》 안길이 대답올렸다. 《저때문에 너무 마음 쓰시지 마십시오. 꼭 갑니다.》

《오늘 황철에서 3호용광로 출선식이 있는데 같이 가보지 않겠소?》

《아닙니다. 장군님, 전 열병훈련장에 나가있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오. 말은 타지 말고.》

《알았습니다. 장군님!》

류달리 쾌활해진 안길이였다. 쏘련으로 가는것이 무척 기쁜듯한 인상이였다.

정오까지 그이께서는 황해제철소에 나가계시였다. 3호용광로 출선식에서 황철로동계급들에게 동방에서 제일가는 부강조국건설을 위하여 매진하자는 내용의 축사를 하시였다. 돌아오시는 길엔 김일성종합대학 새 교사건설장을 현지지도하시였다. 한편 평양혁명자유가족학원 교사건설에서 제기되는 문제도 풀어주시였다.

밤이 왔다. 눈은 계속 퍼부어지고있었다. 낮동안 일시 뜸해지더니 저녁부터는 함박눈이 쏟아져내렸다. 안길이 말한것처럼 눈이 내리면 마음이 즐거워지는 법이다. 하얀 눈, 소리없이 내리는 정결한 눈··· 춤추듯 하늘거리며 퍼부어지는 눈송이들을 맞을 때면 늘 어린시절의, 흘러간 나날의 못잊을 추억들이 가슴가득 쌓여지며 오늘과 래일의 기쁨과 희망이 꿈결처럼 안겨지군 한다.

그러나 이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눈송이들이 불러주는 정겨운 음향에도 불구하고 어인 일인지 눈시울이 떨려나는 심정이시였다.

안길은 돌아오지 않았다.

밤 10시가 넘었다.

전화종소리도 울리지 않았다.

모든것이 잠들었다. 눈송이들만이 끊임없이 사륵사륵 고요히 속삭이며 대지를 덮고있을뿐··· 누가 맨처음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다고 했던가, 펑펑··· 그것은 무엇을 뜻한것일가··· 그이께서는 더 이상 기다리고만 있을수 없으시였다. 문수비행장으로 차를 달리시였다. 열병식을 준비하는 구분대들이 지금 그곳에 전개해있는것이다.

전조등불빛이 하늘을 가득 쏟아져내리는 눈발을 헤치며 앞서갔다. 눈송이들의 하염없는 속삭임소리도 들려오는듯··· 모든것이 흰눈을 맞으며 고요히 잠들어있다. 낮추 드리운 하늘, 키높이 자란 길가의 백양나무들도 묵묵히 명상에 잠겨 서있었다.

흰눈에 덮여있는 문수벌에서 잠들지 않고있는것은 안길뿐이였다. 비행장 한끝에서 말고삐를 잡고 서있는 안길, 전조등불빛에 비쳐진 안길은 웬일인지 말에 오르지 못해 모지름 쓰고있었다. 한손엔 고삐를 쥐고 다른 손으로는 안장을 잡으며 등자에 발을 꿰고 몸을 솟구치군 하였으나 번마다 무너지듯 떨어져내리군 했다. 공골말이 다리를 저겨디디며 눈덩이들을 걷어찼다. 그리고는 대가리를 숙이고 안길의 손잔등을 혀로 핥는것 같았다. 열병대오의 지휘관인 참모장에게, 래일의 총참모장에게 제발 힘을 내라고 격려하는듯 싶었다.

안길은 자기에게로 비쳐진 전조등불빛을 무심히 힐끗 돌아보고는(아마도 열병식을 위해 준비한 대렬차려니 했을것이다.) 또 헛되이 안깐힘을 썼으나 끝내 허우적거리며 눈속에 쓰러지고 말았다.

《불을 끄오.》

그이께서 아픔에 겨워 힘들게 하신 말씀이였다. 더이상 그 정경을 보기가 괴로우시였다. 불현듯 신음소리를 삼키며 눈을 감으시는것과 동시에 전조등이 꺼졌다. 그러나 다시 눈을 뜨셨을 때 안길은 또 일어나 있었다. 흰눈의 세계에서 홀로 유령처럼 움직이고있다. 말머리를 토닥거려주고 또 등자에 발을 꿰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차에서 내리시였다. 문짝을 소리없이 밀고는 거의나 무릎까지 빠지는 눈속을 걸어가시였다.

《안길동무!》

이렇게 소리쳐 부르셨으나 안길은 듣지 못한듯 했다. 아니 들을수 없었을것이다. 목이 칵 메인 그 음성, 그이자신께서도 그것을 듣지 못하셨으니 그것은 다만 마음속에서만 터쳐진 웨침이였는지도 모른다.

그이께서는 퍼붓는 눈발속으로 막 달려나가시였다. 두텁게 쌓인 눈속에서 장화발소리가 빠드득거리고 눈가루들이 그이의 외투앞섶에 허옇게 불렸다.

《안길동무!》

비로소 안길이 머리를 돌렸다. 첫순간엔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한듯 굳어져있었으나 다음 순간 《장군님!》 하고 부르짖으며 마주 달려왔다. 아니 달려오려고 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눈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를 잡아 일으켜주시였다.

《안길동무, 여기서 혼자 뭣하는거요?》

《장군님!》 안길의 목소리는 신음소리에 가까왔다. 《마지막으로··· 열병대오를 돌고··· 장군님께 보고드리고싶었습니다. 열병식에서처럼··· 제식대로 한번 해보고싶었습니다. 그런데··· 인젠 그만··· 힘이 진했는지···》

《···》

그이께서는 목이 잠겨 아무 말씀도 하실수 없었다. 천천히 안길의 옷에 뒤덮인 눈을 털어주시였다. 어깨와 가슴 그리고 모자의 눈과 바지무릎의 눈까지 아무말없이 털어주시려니 눈굽이 저려드는것을 참을수 없으시였다.

이 사람을 보내야 하다니, 열병식을 앞두고··· 그처럼 건군사업에 몸과 맘 다 바쳐온 이 사람을··· 진정 그의 생명을 잠시나마 더 연장하기 위해 떠나보내야 하는가. 그의 몸과 마음에까지 수술칼을 들이대여야만 하는가. 그의 마지막기쁨을, 눈물의 행복을 빼앗고나면 무엇이 남겠는가. 그렇게 연장된 삶이 이 안길에게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마침내 그이께서는 뜨거운 숨결을 퍼붓고있는 안길의 어깨를 꽉 틀어잡으시였다.

《안길이, 그런데··· 이번엔 왜 떼를 쓰지 않았소. 응?!··· 죽어도 못 가겠다고 왜 뻗대지 않았는가 말이요!》

안길은 흐느끼는듯 했다.

《장군님, 장군님께서 그처럼 괴로워하시니··· 견딜수 없었습니다. 제 고집만 부리면서··· 그렇게 뻗대면 장군님께선 어찌하시겠습니까. 아니 그렇겐··· 할수가 없었습니다. 배를 째구 심장을 도려낸다한들 그보다야··· 눈을 펀히 뜨구 장군님께서 가슴아파하시는걸 보기보다야 더 괴롭구 아프겠습니까!···》

눈송이들이 눈앞에서 세차게 사물거렸다. 그것들의 눈물겨운 속삭임소리가 밤하늘에 꽉 들어찼다. 고요한 밤을 흔들고 뜨거워진 가슴을 흔들며 하염없이 쏟아져내리는 그 눈송이들의 흐느낌소리, 정녕 대자연은 바로 이 시각을 위해 숨겨두었던 눈송이들을 아낌없이 죄다 퍼붓고있는것이나 아닌지?··· 그이께서는 말고삐를 끄당겨 자신의 손에 감으시였다. 그리고는 말머리를 돌려 그의 옆에 붙여 세우시였다.

《자 오르오. 내가 도와줄게.》

《장군님, 이러시면···》

《오르라니까. 자 힘을 내오. 등자를 딛고··· 그렇지, 하나, 둘··· 셋!》

그이께서는 안길을 힘껏 들어 말잔등에 올려주시였다. 그가 편히 자리잡고 앉는것을 보자 말고삐를 당기며 걸음을 옮기시였다. 자신께서 말을 끌어주시려는것이였다.

안길이 놀라서 부르짖었다.

《장군님, 안됩니다. 그러시면··· 안됩니다.》

《일없소, 가만히 앉아있소.》

《장군님, 그럼 저는··· 저는 뭐가 됩니까. 네?!》

《뭐가 되긴. 총참모장이 열병부대들의 보고를 받으러 나가고있지 않소.》

《장군님!···》

《가만 있으라는데.》 그이께서는 마치 어린 소년을 타이르듯 하시였다. 《자, 안길이. 저길 보오. 광장에 열병종대들이 쭉 나와 정렬해있소. 지금 다들 말을 탄 총참모장을 바라보고있지 않소.안길동무랑 애써 키운 우리 당의 혁명적무장대오요. 총참모장의 인사말을 기다리고있소. 어떻소. 안길동무, 그날의 열병식장이 눈에 보이지 않소?》

《예, 보입니다. 장군님, 환히··· 보-보입니다.》

끝내 터져나오는 오열을 참지 못해 안길은 어깨를 마구 떨었다. 그의 어깨우에 쌓이던 눈송이들이 소리없이 흐트러지며 떨어져내렸다. 그리고는 또 내려쌓인다. 어둠을 밀어내며 끊임없이 내리고 내리는 눈송이들, 그이께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으신다. 공골말도 두귀를 쭝긋거리며 무엇인가를 엿듣고있다. 펑펑 내리는 눈송이들의 속삭임도 그치지 않는다.

안길은 어느덧 허리를 굽히고 말갈기를 잡고있었다. 눈물에 젖은 얼굴을 돌리는데 뜨거운 입김이 눈송이들을 날렸다. 그는 말했다. 꺽꺽 숨이 막혀 헐썩이면서 목메인 갈린 음성으로 속삭이였다.

《장군님, 전··· 행복합니다. 인제는 편히 눈을 감을수 있을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요. 안길이.》

《장군님, 제 말을 막지 말아주십시오. 전··· 말하고싶습니다. 꼭··· 말씀드리고싶었습니다. 전··· 제 한생을 자랑합니다. 장군님을 모시고 싸워온 한생이여서··· 행복합니다. 제 생명은··· 장군님께서 주신것입니다.》

그는 한동안 숨을 돌리느라고 가쁘게 허덕이였다. 그이께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고삐를 더 힘껏 감으시였다. 그가 하고싶었던 말이, 지금 하고있는 그 말이 자신께 남기는 마지막말임을 너무도 잘 알고계시였던것이다.

《이제 세월이 흘러》 하고 그는 또 말을 이었다. 《우리의 후대들이 오늘을 돌이켜볼 때 뭐라고 하겠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들은 나를··· 일찌기 눈을 감은 나를··· 불쌍히 여기진 않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부러워 할겝니다. 장군님을 모시고 싸워온 한생이였다고··· 장군님총대가 되여 싸워왔다고··· 부러워 할겝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장군님!···》

총대!··· 그렇다. 안길은 우리 혁명의 자랑스러운 총대였다. 뜨겁게 사랑하고 무섭게 증오하며 온몸을 불덩어리처럼 달구어온 총대!··· 이 귀중한 혁명의 총대를 잃게 되다니··· 어이하여 죽음은 제일 귀중한 전사들만 먼저 골라가는것인가?···

안길이 또 속삭이였다.

《장군님을 모시고 오래오래 살고싶었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고···》

《안길이, 동문 죽지 않소. 절대 죽지 않소.》

《예, 압니다. 장군님, 전 죽지 않습니다. 영원히 장군님을 모시고··· 장군님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김일성동지께서는 불현듯 눈굽이 쿡 쑤시고 목이 잠기는것을 참고 견딜수 없으시였다. 다음 순간 찝찌레한 눈물이 입안으로 흘러드는것을 느끼시였다.

《안길이, 그 마음을》 하고 가까스로 말을 이으시였다. 《그 마음을··· 왜 모르겠소. 안길이, 솔직히 말해서 나도 동물 보내고싶지 않았소. 한시도 떨어지고싶지 않았단 말이요. 그건 지금도 같소. 보내지 않을테요. 안길이, 절대 보내지 않아!》

《장군님, 장군님!···》

《견뎌내야 돼. 안길이, 열병식때 말을 타기 힘들면 차를 타도록 하자구. 참모장, 그게 더 좋지 않겠소?》

《아닙니다. 장군님!··· 말이 좋습니다. 지금껏 말을 타고 싸워왔는데··· 일없습니다. 걱정마십시오. 장군님!···》

《좋소. 그럼 정식으로 한번 사열해보오. 나는 여기 있겠소. 혼자서 일없겠소?》

《일없습니다. 장군님!》

벌써 비행장구내를 한바퀴 돌아 그이께서 타고오신 승용차앞에 이르렀다. 그이께서 고삐를 넘겨주시자 안길은 허리를 쭉 펴며 발로 말의 배를 가볍게 찼다. 순간 그이께서는 보시였다. 전혀 뜻밖의, 믿을수 없는 일이 그이께서 고삐를 잡고 지나오신 그 눈판우에 펼쳐져있었다. 어느새, 어떻게 알고나왔는지 전체 열병구분대들이 총을 메고나와 정렬해있었던것이다. 새로 제정된 군복을 입고선 열병종대들, 하얀 눈판우에 규정대로 엄청나게 큰 새까만 두부모처럼 네모반듯 정렬하여 숨을 죽이고있었다. 그들의 모자와 어깨우에도 눈이 가득 쌓여있었다. 종대지휘관들도 대오옆에 군기수들과 나란히 서있었다. 군기만이 없을뿐··· 군기 수여식은 열병식직전에 하기로 되여있었다. 누가 그들을 불러냈는가. 종대의 지휘관들은 거의다 항일빨찌산출신들, 안길의 전우들이다. 하지만 저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소리도 없이 나와섰는가?···

안길도 놀란듯 했다. 잠시 주춤거렸으나 곧장 말을 몰아갔다. 천천히 평보로, 이어 속보로 달려가다가 종대들앞에서 또 속도를 죽였다. 이윽고 대오앞에서 멎어섰다. 그리하여 모든것이 정지되였다.퍼붓는 눈송이들만 아니라면 이 모든것이 믿어지지 않을수도 있었다.

드디여 안길이 말을 타고 종대들앞을 지나갔다. 그러나 규정의 인사도 답례도 없다. 안길이 목이 메여 규정의 인사말을 웨칠수 없었을것이다.

이윽고 안길은 돌아섰다. 구보로 말을 달려 그이 계신 곳으로 달려왔다. 말발굽밑에서 눈가루들이 뽀얗게 흩날렸다. 활주로바닥을 울리는 말편자소리가 눈내리는 이 밤의 엄숙한 고요를 깨뜨리고있었다.

말발굽소리가 멎었다. 안길이 거수경례를 올렸다.

《장군님!··· 저는 보았습니다. 새로 태여난··· 장군님군대의 자랑찬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규정에도 없는 보고였다. 청높은 웨침도, 자랑높은 부르짖음도 아니였다. 목메인 감사의 인사, 눈물어린 감사의 속삭임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손을 들어 답례하시였다. 그 순간 전체 열병종대들이 일시에 우뢰처럼 함성을 터쳤다.

《만세!-》

《만세!-》

《만세!-》

눈송이들이 흩날렸다. 고요속에 잠들어있던 문수벌이 급작스러운 그 함성에 뒤흔들렸다. 장엄한 탄생의 고고성!··· 모든 탄생에는 아픔이 동반된다. 인간의 탄생이나 별들의 탄생에도 극심한 진통이 있다. 아픔을 동반하지 않은 기쁨이란 사소하고 보잘나위 없는것들일뿐이다. 진통이 클수록 탄생의 기쁨 또한 크고 격렬한것이다!···

주체37(1948)년 2월 8일의 평양역전광장 열병식에서는 안길을 대신하여 새로 임명된 조선인민군총참모장 강건이 말에 올라있었다.···

 

×

 

안길의 장례식이 거행된지 얼마후 평양사격장에서는 우리 나라 병기공업이 생산한 첫 제품인 기관단총의 국가시험사격행사가 성대하게 진행되였다.

대한추위를 갓 넘긴 때였지만 날씨는 맵지 않았다. 한낮의 따스한 볕이 처마끝의 고드름들을 졸금졸금 녹이고있었다.

차에서 내리시는 김일성동지께 강건이 영접보고를 드렸다. 붉은줄이 간 곤청색 승마바지에 번쩍거리는 장화를 신고 정보로 걸어오는 강건의 모습은 그대로 새 정규무력의 기백 그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뒤따라 내리신 김정숙동지와 더불어 영접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시였다.

김책, 김일, 공장지배인 현무광, 당위원장, 기사장 지웅도··· 장군님께 인사올리는 지웅도의 얼굴은 기쁨보다도 고통스러운 빛이 더 많은듯 싶었다. 시험비행을 앞둔 비행사, 첫 경기를 앞둔 선수, 시험장에 나선 학생들이 흔히 그처럼 종잡을수 없는 심정에 휩싸여있는것이다.

《수고했소, 기사장동무.》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오늘은 자신있겠지?》

《예. 장군님, 자신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드리는 그의 얼굴은 불그레했고 알릴듯말듯 경련이 일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으시였다.

《그럼 시험사격을 시작합시다. 누가 쏘기로 했소?》

김책이 말씀 드렸다.

《국가시험사격이니만큼 장군님께서 직접 쏘시기로 했습니다.》

《음- 그렇게 합시다.》

그이께서는 사격좌지앞의 탁자우에 놓인 여섯자루의 기관단총을 바라보시였다. 갓 에나멜칠을 한 총신과 탄창들에서 해빛이 들뛰고있었다. 그이께서는 그 기관단총 하나를 들어 손에 잡으시였다.

우리 로동계급이 만든 첫 기관단총 얼어든 금속의 차디찬 감각도 느끼지 못하신다. 묵직하다. 만탄창이다. 그것을 들고 좌지앞으로 걸어가신다. 근엄하신 표정, 광채어린 안광으로 목표물들을 바라보신다. 반신형, 구보형, 전신형··· 목표는 얼마든지 있다. 저 목표들뒤에도 헤아릴수 없이 많은 목표들이 있다.

자리잡고 앉으며 사거리에 해당한 조척을 놓고 첫목표의 중심을 겨누신다. 뒤에 선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없다. 아카시아숲으로 둘러친 둔덕우에서 멋모르는 참새떼들만이 숨차게 재잘거릴뿐··· 이윽고 엄숙한 정적을 깨치며 총성이 울렸다. 짧은 점발, 긴 점발··· 새떼가 날아오르는 저 앞의 아카시아숲에서 눈가루들이 뽀얗게 흩어져내린다. 또다시 이어진 점발사격, 긴 련발사격, 유리같이 투명하고 쟁쟁하던 대기가 산산이 부서진다. 여무진 총성, 우리 로동계급이 재워준 총탄들이 불을 뿜는다.화끈 달아오른 총신강, 그래도 사격은 계속된다.

별안간 총성이 멎는다. 창끝같이 하늘을 찢어발기며 펀뜩인 번개불의 섬광끝에 찾아든 귀가 먹먹한 정적, 총소리의 여운만이 흉벽을 세차게 울린다.

잠시 그이께서는 까딱 움직이지 않으시였다. 흘러간 세월의 년대들을 넘어 피흘리던 결전의 싸움터를 바라보신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남기신 두자루의 권총으로부터 시작된 피어린 혁명의 발자취들,쓰러진 전우들··· 김혁, 차광수, 최효일, 리광··· 동지들, 동지들의 령전에 조총을 쏘았소. 동지들 들었소? 해방된 내나라 로동계급이 만든 이 총소리를?··· 오중흡, 최경화, 김확실, 리계순, 김주현, 최희숙, 박길송, 권영벽, 리제순··· 이제 건설될 혁명적정규무력이 동지들께 보내는 첫 인사요. 또다시 울부짖는 길고 긴 련발사격의 총성··· 박락권동무도 들으시오. 해방된 조국이 동지의 령전에 조총을 쏘고있소!···

첫 목표는 형체도 남지 않았다.

두번째 기관단총을 바꿔쥐신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뜨겁게 웨치신다. 후대들이여, 이 총을 사랑하라. 언제든 이 총을 손에서 놓지 말라. 그 언제든 흔들리지 않게 억세게 틀어잡으라. 혁명이자 군대이고 군대이자 겨레의 운명이다!···

기관단총이 불을 토하며 울부짖었다. 목표뒤의 아카시아가지들이 중둥무이로 부러져나가고 얼어붙었던 눈더미들이 산산이 뒤번져졌다. 벌둥지가 되여버린 목표들은 사라진지 오랬으나 련발사격의 총성은 계속되였다. 파르스름한 화약가스가 눈앞에서 엉켜돌았다. 그우에서는 눈부신 해빛이 아낌없이 쏟아져 내리고있었다.

이윽고 총성이 멎었다.

김책의 눈귀가 떨리고있었다. 김일은 입술을 꽉 깨물고 굳어져있었고 강건은 눈길을 돌리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소리없이 울고계시였다. 맑은 이슬이, 뜨거운 격정이 두눈에서 샘물처럼 끓고 용솟음치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윽토록 움직이지 않으시였다. 벼락치던 그 총성의 메아리를 듣고계시였다. 년대와 년대를 이어 울려온 그 총소리, 시대를 넘어 먼 래일에로 메아리쳐가는 그 총소리에 점도록 귀를 기울이고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