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8


 

제 5 장

8

 

헤여질 때 공병소대장 한종삼이 또 물었다.

《소대장동무, 이름이 뭐요?》

벌써 두번째이다. 시범전술훈련이 바야흐로 절정에 이르던 그때에도 느닷없이 이렇게 소리쳐 물었다. 처녀들에게 대뜸 이름을 묻는것이 얼마나 무례한짓인가 하는것도 모르는 사람같다.

석금옥은 파랗게 질려 떨리는 입술을 놀리며 맵짜게 말했다.

《무례하군요. 소대장동무, 그래도 훈련장에선 돋보이더니··· 그런줄 몰랐어요.》

한종삼의 얼굴이 구운 가재빛으로 물들었다. 당황하여 몸둘바를 몰라하며 그는 중얼거렸다.

《난 그저···그 눈이 꼭 본것 같아서···》

그래도 체면은 가리는것 같다. 금옥은 금시 몸을 돌려 가버리려던 생각을 고쳐먹었다. 무안을 주기엔 어쩐지 어질고 순박해보였다.

《평양학원에서 보지 않았어요. 소대장동문 졸업전이였구 난 새로 편입되던 그때 말예요. 생각나지 않으세요?》

《아-그랬댔군.》

어쩐지 실망에 찬 목소리였다. 훈련장에서 황소영각소리처럼 부르짖던 공병소대장이 아닌 딴 사람으로, 어리숙한 소몰이군처럼 변했다. 벌거우리해졌던 얼굴에 비낀 한가닥 그림자를 금옥은 놀라서 바라보았다.

《안됐소. 소대장동무, 난 그저 그 눈이···》 맥없이 중얼거리며 그는 눈길을 돌렸다. 《아니, 그게 아니야. 이제야 알겠소. 어째서 꼭 본것 같댔는지··· 알겠어.》

인제는 그가 불쌍해보이기까지 하였다. 서서히 꺼져가는 그의 표정과 맥 풀린 두눈에 비낀 크낙한 비애가 석금옥의 가슴을 휘저었다.

《왜 그러세요. 소대장동무?》

《아-아니요. 그만··· 동무와 같은 어떤 눈이 생각나서··· 미안하오. 정말 안됐소.》

한종삼은 무겁게 걸음을 옮기며 가버렸다. 금옥은 멀어져가는 한종삼을, 그의 느린 발걸음을 이윽토록 지켜보았다. 그의 슬픔이 무엇인지를 다는 알수 없었지만 석금옥은 그것이 한 처녀 혹은 한 녀인에 대한 아픔의 기억때문이라는것만은 명백히 깨달았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가둑나무잎사귀들이 와삭거렸다.

금옥은 안길이 소리쳐 불러서야 급히 되돌아 달려갔다.

안길이 물었다.

《그 동무와 무슨 얘길 했소?》

《별게 아닙니다. 그저 평양학원 얘길···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금옥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 사람과 곽일무는 친구간이지.》

석금옥이 놀란 눈빛으로 쳐다보자 안길이 또 말했다.

《곽일무는 래일 중앙보안간부학교로 가오. 장군님께서 친히 추천하셨소.》

《?···》

무엇때문에 안길참모장이 그 말을 꺼냈는지 석금옥은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별안간 가슴을 뜨끔하니 깨무는듯한 느낌에 혀가 굳어져버리고 말았다. 중앙보안간부학교라는 의미를 아무리해도 생각해낼수 없었다. 마치 그의 생각을 틔여주기라도 하려는듯 안길이 덧붙였다.

《중앙보안간부학교는 중급간부들을 키우는 곳이요. 기술병종도 있지만 대체로 보병대대장, 련대장들이 나오게 되지. 벌써 1기졸업생들이 나왔소.》

안길은 자기가 보안간부훈련소 1소지휘부(개천)로 가게 되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차에 올라서야 대대부(평양)에 들렸다 가겠는데 곽일무도 잠간 만나자고 하였다.

여전히 금옥은 혀를 깨물고있었다. 어느덧 가슴속에서는 눈보라가 일고있었다. 곽일무와의 상봉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려들었다. 아니다, 그는 이 상봉을 바라지 않았다. 그것을 바라는 마음이 꿈틀거릴 때면 모질게 자기를 꼬집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곽일무가 자기를 차던질 때의 사납게 번득이던 눈빛을 생각만 해도 피가 얼어드는듯 했다. 곽일무 역시 태도를 달리하지 않을것이다. 고집스럽고 우악스럽기까지 한 그였다. 《도끼모태》, 《도리깨》로 불리울 정도로 드세고 격하고 송곳같은 그가 자존심도 없이, 경위소대장의 체모도 잃고 용서를 빌지는 않을것이다. 그가 그렇게 한다면 오히려 가엾어질것이고 따라서 쓰거운 환멸만을 자아낼것이다.

대대부에 도착하자 안길은 곽일무를 불렀다. 석금옥은 눈을 내려깔고 잠자코있었다. 참모장동지의 그 마음은 고마우나 오늘의 상봉은 랭랭할것이다. 참모장동지에겐 죄스러운 일이지만 어찌하랴··· 운명은 그들을 썩 이전에, 벌써 한해전 그날에 서로 딴 길을 가게끔 갈라놓았던것이다.

마가을의 설핀 해빛이 창가로 흘러들고있었다. 방이 추워서인지 안길은 이마의 주름을 펴지 못하고있었다. 누르끼레해진 얼굴에 고통스러운 빛을 띠우고 무슨 서류들을 뒤적거리다가 여전히 표표한 자세로 서있는 금옥에게 두번째로 편히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계속했다.

《그 사람을 리해해야 돼. 물론 금옥이를 아프게 매질한건 사실이지만 곽일문 그때문에 속깨나 썩였소. 내가 아는데··· 곽일무는 금옥일 잊지 못하구있소. 훌륭한 청년이지. 한땐 길들이지 않은 망아지처럼 세차게 굴었지만 얼마나 달라졌는가 이제 보라구.》

《···》

여전히 말없이 서있는 금옥이를 치떠보며 그는 미간을 찌프렸다.

《나는 사랑에 대해서 뭐 조언을 주자는건 아니요. 사랑을 직권으로 권할수야 없지. 그렇지만··· 용서할순 있지 않나. 동무도 평양학원에서 많이 배웠으니 잘 알겠는데··· 혁명동지로서 따뜻이 대해주라구. 중앙보안간부학교에 추천된걸 축하도 해주구.》

《예.》 금옥이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참모장동지.》

그때 문기척소리가 들렸다. 곽일무답게 크게, 성급하게 문을 두드리며 《들어갈수 있습니까?》 하고 소리쳐 묻고있다.

이윽고 그가··· 곽일무가 들어섰다. 그는 눈을 슴벅거리며 뜻밖에 나타난 석금옥을 바라보았다. 안길이 말했다.

《인사들을 하오.》

곽일무는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안녕하오?··· 저··· 오래간만이요.》

《안녕하세요?》

금옥은 싸늘하게 반쯤 내려뜬 눈으로 그를 흘낏 쳐다보았다.

그는, 곽일무는 그새 많이 변했다.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 딱히 찍어말할수 없지만 어쨌든 달라져보였다. 좀더 의젓하고 침착해졌으며 거무스레한 얼굴에 떠오른 표정에서 무엇인가 감때사나운 빛이 덜해진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보려고 애쓴 탓인지도 모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두사람의 표정을 살피던 안길이 소리내여 웃었다. 그러나 그것은 웃음이라기보다 혀를 차는 핀잔의 토막숨과도 같았다.

《무슨 인사들이 그렇소. 응?··· 내가 있어 그런가?》

《아- 아닙니다.》

두사람이 동시에 기겁한듯 부르짖었다. 금옥은 곽일무 역시 안길참모장이 자리를 뜰가봐 겁을 내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럼 내 말을 듣소.》 하고 안길이 또 입을 열었는데 그의 표정은 침중하였고 목소리는 엄엄했다. 《내 오늘 동무들을 우정 만나게 한건 동무들의 마음속에 있는 진정이랄가 본심이랄가 그걸 들어보자는거요. 사실 동무들이야 앞으로 건설될 정규적혁명무력의 골간이 될 사람들인데 햇내기청년들처럼 숨박곡질할게 있소. 총쥔 사람들답게 명백해야지.》

《옳습니다. 참모장동지.》

곽일무가 한 말이였다. 금옥은 아연해졌다. 아첨기가 느껴지는 그 수선스러운 대답, 금옥은 너무도 뜻밖이여서 자기를 견주고있는 그에게 눈총을 쏘기까지 했다.

《그럼 곽일무, 동무가 먼저 말해보오. 동문 금옥일 사랑했더랬지?》

《예, 참모장동지. 사랑했습니다.》

금옥은 모닥불을 들쓴것 같았다. 어쩜 저럴수 있는가. 사랑이라는 말을 그리도 쉽게, 대수롭지 않게 꺼내다니. 도대체 이 동무가 언제 이처럼 달라졌는가. 좀더 의젓해진것이 아니라 천박해지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차버렸소. 응?!》

안길은 재판관처럼 따지고 들고 곽일무는 법정에 불리워온 사람처럼 기를 펴지 못하는듯 했다.

《사실 그건··· 제가 그때 너무 어리석었기때문이였습니다. 예수쟁이라는걸 알자 그만··· 참을수 없었습니다. 홍목사의 양딸로서 그렇게 된게 이상한 일이 아닌데두··· 정말 어리석었습니다.》

아니, 아니다!··· 금옥은 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래도 그때엔 결패있는 사내였고 불같은 청년이였다. 모욕을 받으면서도 존경하지 않을수 없는 경위소대장 곽일무였다. 오히려 지금 동무는 어리석게 굴고있다. 천해지고 비루해졌다.

안길이 계속했다.

《동문 차버렸지만 우리 장군님께선 금옥일 평양학원에 보내주셨소. 독립군에서 싸운 친아버지는 물론 량심적인 종교인이였던 홍목사, 두 아버지의 뜻을 이어 나라를 지키는 총으로 키워주셨단 말이요. 이게 우리 장군님 뜻이야.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다 품에 안아 키워주시구 내세워주신단 말이요. 그래서 석금옥이 어떻게 자랐는가. 보라구. 저런 동무를 차버리다니. 맘씨곱구 교양있구··· 곽일무, 내 이미 동물 청맹과니라구 말했지? 사랑이 무엇인지 동무가 알기나 하는가?···》

《예. 지금 와서야··· 전엔 정말 몰랐습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곽일무는 머리를 떨구었다. 두손을 바지혼솔에 대고 비비적거리는것이 심한 자책에 잠겨있는듯 싶었다. 곽일무답지 않은 그 놀라운 행동과 말투··· 금옥은 숨이 막혀 참을수 없을 지경이였다. 과연 이처럼 변모된 곽일무를 만나게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던가?!···

《음- 인젠 안단 말이지.》 안길은 괴롭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애써 웃음을 지었다. 《그럼 말해보라구. 곽일무, 이 동무한테 잘못을 빌 용기가 있는가?》

《예, 있습니다.》

아유, 저런!··· 미칠지경이였다. 금옥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고있었다. 어찌하여 저 지경이 되였는가. 사내로서의 자존심도 없는가. 그렇게 비루해지다니!···

《그럼 말해보지. 응?》

안길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곽일무가 머리를 들었다. 이쪽을 쳐다보며 이상스러운 눈빛을 던진다. 금시 입을 벌리고 《용서하오. 금옥동무, 내가 잘못했소.》 하고 말할 차비이다.

아니, 아니, 그래선 안돼. 그런 꼴을 보자고 내 여기서 동무와 마주서있는줄 아세요? 제발, 제발 잠자코있어요. 제발!··· 금옥은 허덕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곽일무는 《저···》 하고 말을 떼고있었다.

《됐어요!》

소리쳤다. 진저리난 웨침소리였다. 으시시 몸을 떨며 뒤걸음치기까지 했다. 다음 순간 금옥은 또 부르짖었다.

《제발 그만두세요. 제발!···》

놀란것은 곽일무만이 아니였다. 안길은 창백해진 얼굴의 근육을 움씰거리고있었다.

《금옥이, 왜 그러오?》

그러나 금옥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곽일무만을 똑바로 쏘아보며 낮고 빠르게, 무섭게 속삭이였다.

《어쩜 동무가··· 그럴수 있어요. 도리깨같다던 동무가 비굴하게 굴다니, 됐어요. 말하지 마세요. 난 더이상 듣고싶지 않아요. 이런 동물 만나리라곤··· 정말 몰랐어요. 분해요!》

곧장 몸을 돌려 문있는데로 갔으나 오한이 난듯 몸을 떨며 다시 안길에게로 돌아섰다. 규정대로 거수경례를 붙이며 떨리는 목소리를 짜냈다.

《참모장동지, 돌아갈수 있습니까?》

《?!》

《그럼 전··· 차 있는데서 기다리겠습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뛰여나갔다. 굽인돌이, 복도, 층계, 그 다음 현관··· 어떻게 달려나왔는지 알수 없었다. 찬바람이 화끈 달아오른 얼굴을 후려쳤다. 키높이 자란 백양나무에 달려가 거기에 등을 기대자 눈을 감고 말았다. 머리우에 우수수 떨어지는 황이 든 잎사귀들, 처녀의 마음속에서도 모든것이 죄다 흩어지고 떨어져내리고있다. 아까울것 없는 황이 든 잎사귀들, 한때는 푸르싱싱하였고 해빛을 받아 번들거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살랑살랑 은밀한 속삭임처럼 정답게 설레이던 그 잎사귀들··· 금옥은 성급한 발자욱소리가 다가온것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곽일무가 그의 어깨를 사납게, 우악스럽게 와락 끌어당겨서야 눈을 뜨며 전혀 달라진, 본래의 곽일무 그대로인 그의 석탄빛처럼 번득이는 두눈과 격한 숨소리에 놀라 몸을 떨었다.

《동문 뭐요. 그렇게 뛰쳐나가면 어쩐다는건가?》

《?···》

금옥은 굳어져버리고 말았다.

《동무가 뭐길래 그럴수 있어. 참모장동지 아픈 마음에 칼질을 한면서, 응?!》

비로소 금옥은 숨을 돌렸다.

《됐어요. 참모장동지 얘긴 더 하지 마세요.》

《그건 왜?》

《내가 따로 말씀드리겠어요.》

《안돼, 지금 들어가. 지금 당장!》

《그래 들어가서 뭐라구 하라는거예요?》

《날 사랑한다구 해, 이 곽일무를 사랑한다구.》

《?!》

금옥의 두눈이 꼿꼿해졌다. 야멸차게 그를 쏘아보면서 머리를 가로저었다.

《왜 못해. 왜 못한다는거야?》

《됐어요, 그만하자요. 제발!》

《에익. 이걸 그저!》 곽일무가 절구공이같이 딴딴한 주먹을 번쩍 들었다. 《이 쳐죽일것!》

얼결에 눈을 감았다 떴다. 다음 순간 백양나무의 마른 껍질을 부셔버리는 쿵- 소리와 함께 가랑잎들이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인제는 더이상 쓸모 없는 잎사귀들, 하지만 그의 터진 주먹을 보는것만 해도 다행이 아닐수 없다. 석금옥이 사랑했던것은 바로 이런 주먹이였고 성칼사나운 성미가 아니였던가!··· 그렇다. 사랑했었다. 바로 방금 만나기 직전까지 그를 사랑했었다. 그것을 모르고있었고 알려고 하지 않았을뿐··· 눈굽이 쿡 쑤시며 눈물이 솟구쳐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차라리 그 주먹으로 나를 후려갈겼더라면 더 좋았을것을··· 그러나 인제는 다 끝났다. 남은것은 련민과 환멸뿐이다. 사랑을 배반한 사람, 어제도 배반했고 오늘 또 두번째로 배반하였다. 처녀의 마음속에 고이 간직되여있던 사나이의 담찬 기질과 억센 성품에 대한 마지막 기대마저 배반해버렸다.

곽일무는 입술을 악물고 신음하고있었다. 별안간 머리를 번쩍 쳐들었는데 금옥은 그의 석탄빛 두눈에 고이는 뜨거운 눈물을 보았다.

《가서 말하오. 나를 사랑한다고··· 부탁이요. 마지막부탁··· 속에 없는 말이라도 좋소. 후엔 나를 거들떠보지 않아도 좋단 말이요. 침을 뱉겠으면 뱉구··· 그렇지만 지금은 가서 말하오, 제발!》

《그건··· 그건 뭣때문에요?》

금옥은 자기의 목소리가 떨리는것을 의식했다.

한순간 곽일무의 두눈이 놀라서 굳어졌다.

《그럼 아직 그걸 모르고있었단 말이요?》

《뭘 말이예요?》

《?!···》

곽일무는 몸을 앞으로 쑥 내밀고 사납게 두눈을 흡떴다. 어리둥절해진 금옥의 얼굴을 불로 지지듯 노려보고나서야 처녀가 아무것도 모르고있다는것을 깨닫고 뜨아해진것 같았다. 마침내 팔을 맥없이 내려뜨리고 한발 물러섰다. 그것은 꼭 오랜 고통끝에 모든것을 포기한 사람의 절망적인 얼굴이였다.그는 눈시울을 떨며 힘들게 입을 열었다.

《참모장동지가··· 왜 우릴 만나게 했는지 알기나 해? 금옥이, 참모장동진 지금 마지막까지··· 아니 마지막힘까지 다 짜내구있소. 우리 일도 잘되길 바라서 그러는데··· 동문 뭐야. 새파래서··· 그는 불치의 병··· 얼마 못간다구 해. 얼마 못간다구···》

《예? 그게 정말이예요?》

숨이 막힌듯 가늘게, 째지게 금옥이 부르짖자 곽일무는 주먹을 불끈 그러쥐며 풀무처럼 씩씩거렸다.

《그래서 내가 부탁하는건데 그게 뭐야. 매정하게··· 에익···》

《?!》

금옥은 한순간 불에 달군것처럼 머리가 뻥해졌으나 돌연 모든것을 깨닫게 되였다. 저도 모르게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였다. 곽일무가 그를 휙 잡아돌렸다.

《이젠 알았지?··· 그럼 가서 말해. 어서!》

그가 세괃게 떠밀치는 통에 하마트면 어푸러질번 하였다. 그러나 지금처럼 호되게 얻어맞고싶은 생각이 든 적이 이제껏 없었다. 누구든 사정없이 쥐여박고 짓밟아주며 온갖 험한 욕설을 다 퍼부었으면 좋을듯 싶었다. 이 미련한것아, 이 쳐죽일것아! 하고 왜 고함을 지르지 않는가. 따귀라도 후려치지 않는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울기에는 그 아픔이, 그 슬픔이 너무도 쓰라린것이였다. 별안간 몸을 돌리며 곽일무에게 손을 내뻗쳤다.

《왜 그러오?》

곽일무의 웨침소리에 쓰러질듯 비청거리며 가까스로 속삭였다.

《같이 가자요.》

《뭘그래, 가서 한마디만 하라는데.》

《같이 가자요. 부탁해요. 부탁- 해요···》

바람 새는것 같은 그 애원의 목소리가 곽일무의 마음을 움직인듯 싶었다. 그는 닁큼 달려와 억센 손으로 금옥을 껴안다싶이 부축해주었다.

《가서 절대 울지 말구··· 한마디만 하오. 속에 없는 빈말이라두 일없다니까. 그담 일은 아무렇게 되든 내가 다 알아 할테니.》

《하겠어요. 같이만 있어준다면···》

《됐소. 됐어. 이렇게 같이가구 있잖아.》

문앞에 이르자 그들은 옷매무시를 바로했다. 곽일무가 문을 두드리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그 순간 금옥은 말코지에서 모자를 벗겨들고있던 안길이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보는것을 보았다. 놀라움도 없는 얼굴, 오직 아픔만을 느끼며 그것을 잊기 위해 모지름쓰기에 돌덩이같이 굳어진 얼굴이였다.

《참모장동지!》

금옥이 부르짖었다. 그리고는 왈칵 눈물을 쏟으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것이 안길을 놀라게 한것 같았다. 금옥이를 붙들어주며 그는 소리쳤다.

《왜 그래, 또 싸웠소?》

《아니예요. 참모장동지, 우린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럼 어째서?··· 울긴 왜 우는거요?》

《참모장동지, 사실 난···》 금옥은 터져나오는 오열에 제대로 말을 이을수 없었다. 《이제야··· 아-알았습니다.》

곽일무가 경고하듯 《금옥이!》하고 소리쳤다. 그러건말건 금옥은 눈물에 흠뻑젖은 얼굴을 들며 계속했다.

《참모장동지, 난··· 사랑합니다. 정말입니다. 사랑합니다. 우릴··· 우릴 여기서 축복해주십시오.예?!》

《허허··· 그럴줄 알았어. 알았다니까.》 안길이 웃으며 금옥의 등을 가벼이 두드려주었다. 《축복해주구 말구. 우리 장군님께서 키우신 두자루의 총인데···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응?!》

금옥은 마침내 왕왕 소리쳐 울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