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2


 

제 5 장

2

 

리학이 돌아간후 안길은 문수비행장에 전화를 걸었다. 리학이 도착했는가 물었으나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보고였다. 그가 떠난지 30분이 넘었는데 도착하지 않았다는것이 놀라왔다. 그 코수염쟁이 비행사가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일을 벌려놓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곧 머리를 저었다. 그의 눈물이 모든것을 다 말해주었다. 사실 안길은 그를 호되게 비판하고 당분간 사업정지처벌을 줄 생각이였었다. 혁명군대의 지휘관 특히 한 군종의 책임적지휘관이 제멋대로 군다는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였다. 우쭐렁거리는 그 버릇, 자유주의를 뚝 떼주려면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10분쯤 지난후 또 전화를 걸었다. 장군님을 모신 좌석이여서 애써 참았지만 참모장으로서 꼭 해주고싶은 말이 있었다. 마침 리학이 전화를 받았다. 안길은 왜 늦게야 비행장에 도착했는가고 따지듯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 안길은 송수화기를 꾹꾹 눌러대다가 한결 낮아진 음성으로 지금 무얼 하는가고 물었다. 분명 머리를 싸쥐고있거나 아니면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훈련계획을 검토하리라고 믿고있었다. 그런데 리학의 대답은 뜻밖이였다.

《참모장동지, 면도를 하고있었습니다.》

《?!》

안길은 뜨아해졌다. 장군님께서 그처럼 아프신 심정을 누르고 조용히 따뜻하게 그의 뿔난 버릇을 지적해주셨는데 셈평좋게 면도를 하다니?··· 그는 미간을 찌프리며 저도 모르게 또 어성을 높였다.

《면도를 한다?···》

《예. 참모장동지. 코수염을··· 다 밀어버렸습니다.》

《···》

한동안 전류 흐르는 소리만이 징-징 귀전을 지지고있었다. 별안간 안길은 자기가 꼭 하려고 했던 노기에 찬 질책의 말마디들을 다 잊고 말았다. 코수염을 기르는 사람들은 그 동기야 어떻든 그것을 자기 몸의 한 부분으로, 자기의 이름이나 넋처럼 귀중한것으로 여긴다. 면도칼로 눈섭을 박박 밀어버리는것을 생각할수 없듯이 자기를 특징짓는 표식처럼, 고대유적의 현판처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는것으로 여기는것이다. 그런데 리학은 그것을 밀어버렸다. 그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결연히 밀어버리고 말았다.

안길은 말라든 입술을 혀로 추기고나서 말했다.

《리학동무, 보안간부훈련소 제1소 2분소장이 누군지 아오?··· 최현동무요. 음, 아까 동무 코수염이 멋있다고 하던 그 사람··· 소문난 싸움군이지. 적들의 포위속에서도 드렁드렁 코를 골며 잔다는 사람이요. 헌데 그사람 코수염을 내가 몰래 깎아버렸소. 코를 골며 자구 있을 때 가위로 싹 깎아버렸지. 핫하하··· 그때부터 날 원쑤보듯 한다니까.》

공명판을 울리는 리학의 웃음소리, 안길은 가슴이 후더워졌다.

《훈련계획을 다시 검토하시오. 최현동무네 제2분소 시험전술훈련에 항공지원도 할수 있도록. 그걸 말해주자고 전화를 걸었소.》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묵묵히 앉아있었다. 욕설과 추궁, 처벌··· 그것만을 처방으로 여긴다면 어떻게 될것인가? 흔히 군사규률은 엄하고 랭정하며 지어 가혹하기까지 하다고 한다. 우악스럽게, 찢어지는듯한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고 명령에 불복하거나 비겁쟁이의 덜미를 끌어 군사법정에 내세우는것을 응당한것으로 보고있다. 그러나 그 모든 매질과 위협이나 총살의 선고도 움직일수 없는것을 사랑은 움직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은 사랑에 있다.

그는 머리를 수굿하고 이윽토록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리학에게 전화를 걸고는 평양학원에 나가려 했는데 또다시 엄습해오는 아픔에 꼼짝할수 없었다. 지금 당장 제2분소의 시범전술훈련(연습)을 위한 준비사업을 내밀어야 한다. 대렬상학과 전술상학(전술훈련의 한 형태)을 준비하고 훈련생들의 정치적자각과 열의를 더 한층 높이기 위한 사상동원사업도 내밀어야 한다. 그런데 또 동통이 시작되였다. 근래에 와서는 거의 매일 변함없이 주기적으로 아픔이 엄습해온다. 인제는 그 시간표까지 짜놓을수 있을 정도이다.

그는 전화기를 끄당겨 가까스로 발전자돌리개를 움직였다. 교환수에게 보안간부훈련대대부 훈련참모 고윤을 찾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얼마후 고윤이 전화를 받았다.

《고윤동무, 내 그리로 가려구 했는데··· 지금은 안되겠소. 전술상학제강준비는?··· 다 되였다구?··· 수고했소. 래일은 꼭 가겠소.》

송수화기를 떨구며 탁자우에 머리를 박았다. 전에 비해 오늘은 더 아픔이 심한것을 공포어린 심정으로 의식했다. 바야흐로 군건설의 대들보를 올려놓고있는데··· 쓰러지면 안된다. 끝까지 견디여내여야 한다. 땀이 줄지어 흐르며 눈을 가리고있다. 목을 헤치고 또 전화기를 당겨간다. 경위소대장 곽일무를 찾았다.

곽일무가 들어섰을 때 그는 수첩에 무엇인가를 써넣고있었다.

《소대장.》 우정 딱딱하게, 실무적으로 말했다. 《군대혁띠를 하나 구해올수 없겠소?》

《들었습니다.》

《든든한걸루. 가죽이면 더 좋아. 왜놈들것보다는 쏘련군대군관혁띠가 낫지.》

《예, 그런게 있습니다.》

곽일무는 구멍이 두줄로 난 붉은군대군관혁띠를 가지고 왔다.

《좀 도와주게.》

군복저고리단추를 벗기며 안길이 말했다.

《배에 띠려구 그러는데 바싹 조여주게.》

곽일무는 말뚝처럼 박혀있었다. 안길이 속내의우에 꼭같은 혁띠를 띠고있는것을 눈을 흡뜨고 보고있었다. 잠시후에야 떠듬거리며 물었다.

《참모장동지, 이건··· 왜 또 띠려구··· 그럽니까?》

《묻지 말게, 그저 시키는대루만 하면 돼.》

두번째 혁띠를 배에 돌리고 곽일무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이놈의 위탈, 아예 요동치지 못하게··· 조여, 더 힘껏!》 하고 이를 악물며 씨근거렸다. 그러나 병을 결박하는 바줄은 없다. 아픔을 묶어놓는 바줄도 없다. 조이면 조일수록 더욱더 물어뜯는 극심한 아픔에 신음소리를 내지 않을수 없었다. 두눈에서도 눈물이, 아픔이 새여나왔다. 그는 참다못해 쓰러지듯 의자우에 주저앉았다. 곽일무는 얼빠진듯 멍청하니 서있다가 갑자기 그를 끌어당기며 부르짖었다.

《갑시다. 참모장동지, 병원으로!··· 이러다 큰일나겠습니다.》

《아니, 아니야!》 그는 숨을 헐떡거리며 곽일무의 팔을 힘없이 뿌리쳤다. 《위탈이야, 몹쓸 병이지. 그러다 또 일없어.》

그러나 곽일무는 그를 놓아주려고 하지않았다. 그의 얼굴은 시꺼매지고 놀란 두눈은 허둥거렸다.

그때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안길은 손을 내뻗쳐 곽일무가 넘겨주는 송수화기를 잡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벌떡 몸을 일으키며 한손으로 벗겨진 단추를 채우는데 손이 떨려 제대로 채울수 없었다.

《예, 안길입니다. 장군님!》

장군님께서는 새로 조직된 수상보안대의 인원구성과 침식조건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안길은 안깐힘을 쓰며 최정보가 보고해온 실태를 말씀드렸다.

《해군건설이 좀 늦어지는데.》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가능한 생활조건과 훈련용기재들을 풀어줍시다. 내 김책동무한테도 과업을 주겠습니다.》

김책은 현재 북조선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산업국사업까지 맡아보고있다. 오늘은 그가 기관단총문제때문에 병기공장에 나가있다는것을 안길은 알고있다.

《장군님, 그 문제는 제가 맡아 풀어보겠습니다.》

안길은 자기의 거친 숨소리를 억누르기에 도저히 길게 말씀드릴수 없었다.

《아니, 안길동문 보안간부훈련소의 전술상학과 시범전술훈련을 잘 준비하시오. 전술상학제강준비는 다 되였습니까?》

《예, 고윤동무가 작성했는데 이제 검토해보고 장군님께 올리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약간 달라진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안길동무, 뭔가 숨기고있지 않소?》

《예? 제가 말입니까?》

《그러지 마시오. 요새 병색이 짙어가던데··· 지금도 편치 않다는게 알리오. 이제 곧 병원으로 가야겠소.》

《장군님!》

《아니 그래선 안되오. 전번처럼 도망쳐나올 생각은 아예 마시오. 병원에 전화를 걸어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으니 그리 알고 당장 떠나시오.》

《···》

안길은 입을 다물고 굳어져버렸다. 장군님의 준절한 음성이 오래도록 귀전에서 메아리치고있었다. 곽일무가 등뒤에서 서성거리며 어쩔바를 몰라하는것도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때아닌 추위가 닥쳐온듯 하였다. 방안에 서려있는 얼어붙은 적막에 귀속이 웅웅거렸다.

그는 두손으로 꽉 움켜쥔 송수화기를 이윽토록 내려다보다가 또 귀전에 가져갔다. 무슨 소리가 울리는듯 느껴졌던것이다. 그러나 전류흐르는 소리조차 없다. 전화는 끊어졌다. 그는 장군님의 엄명을 따르지 않을수 없다는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송수화기를 떨구고 티검불처럼 무너지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곽일무가 낮게 속삭이였다.

《참모장동지, 갑시다.》

《···》

아무말도 하고싶지 않았다. 인제는 생각하는것조차 힘이 들 지경이였다. 하느님은 왜 이리 불공평한가. 간악한 왜놈들도 어쩌지 못했는데 병마에 시달리게 하다니. 진정 하느님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가슴에 서리고 쌓인 울분을 터쳐 하느님을 욕질하고 저주를 퍼붓는다면 속이라도 후련할게 아닌가!···

문두드리는 소리에 이어 손종준부관이 들어섰다.

《참모장동지, 장군님께서 절 보내셨습니다.》

《?!》

묻는듯한 시선을 옮기자 그는 재빨리 설명했다.

《참모장동지가 입원하는걸 보고와서 보고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구··· 장군님께선 병원에도 전화를 거시였습니다.》

《···》

여전히 그는 입을 꾹 다문채 의자에 못박혀있었다. 언제든 이런 날이 오게 되리라는것을 모르지 않았건만 정작 일을 당하니 온 육신이 무너져내리는듯 하였다. 그러나··· 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힘들게 몸을 일으켜 철궤에로 다가갔다. 번호를 돌리고 문을 열자 제일 먼저 눈에 띄운 권총집에로 손을 가져갔다. 그것을 들어 묵묵히 살펴보다가 단추를 벗기고 권총을 꺼냈다.

혀를 깨무는듯한 신음소리, 누가 그랬는지 알수 없다. 곽일무인지 손종준인지··· 그는 권총을 군복안주머니에 찔러넣었다. 그래, 이렇게 할 생각이였지. 오래전부터 생각해왔었는데 끝내 이날이 오고 말았구나, 권총을 품에 넣고 병원으로 가야 할 날이!··· 그는 손부관과 곽일무 두사람이 입을 딱 벌리고 쳐다보고있는것도 아랑곳 않고 말없이 출입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밖에서는 장군님의 승용차가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안길은 말없이 차에 오르고 역시 말 한마디 없이 병원으로 실려갔다.

 

×

 

다음날 저녁무럽 안길은 원장방에서 류덕호원장과 단둘이 마주 앉아있었다. 귀밑머리가 희슥희슥한 50대의 류덕호원장은 몸이 강마른 전형적인 학자풍의 림상외과전문가였다. 조용조용히 말하고 소리없이 걷군 하나 일단 메스를 들면 사정없이 무자비하게 베고 자르고 꿰맨다는 사람이였다. 정부병원 외과과장이면서 원장사업도 겸임하고있었다. 침착하고 절제있고 절대 흥분하지 않는다는 그가 지금 병력서와 렌트겐필림, 갖가지 실험검사표들을 뒤적거리며 안길의 찌르는듯한 눈길을 애써 피하고있었다. 음산한 날씨였다. 검은 구름장들로 꽉 뒤덮인 하늘에서 비방울들이 떨어져내리고있었다. 그러나 류덕호원장의 얼굴엔 그보다 더 침침한 비구름이 덮여있었다. 지금 그의 눈앞엔 여러 병원에서 불려온 10여명의 유능한 의학자들, 로박사들, 림상전문가들의 협의진단결과가 놓여있는것이였다. 그가 짐짓 태연한체 무표정하게 크고작은 종이장들과 필림을 두손에 엇바꾸며 살펴보고있었으나 기실 아무것도 보지 않고있다는것을 안길은 알고있었다. 밝은 시력으로 아직 안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였지만 가끔 작은 글자들을 바투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는 지금 적당한 말마디들을 고르지 못해 안절부절하며 헛되이 시간을 끌고있는것이였다.

참다못해 안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원장선생, 뭘 그렇게 오래 들여다보십니까?》

류덕호는 이마를 찡그렸다.

《그런건 묻지 않는 법이지요, 참모장동지.》

《예- 실례했습니다. 그만···》

물론 진단결과를 환자에게 상세히 알려주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다름아닌 안길의 요구,아니 안길의 부탁이였으므로 지금 원장은 고통을 겪고있는것이다. 안길은 그의 심정이 리해되였고 어느 정도 그가 측은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안길이 바라는것이 무엇인가를 그가 안다면··· 이렇게 말을 고르지 못해 속을 썩이고있지는 않을것이다.

《원장선생,》 안길이 또 입을 열었다. 《제 재미나는 얘길 하나 하랍니까. 심심치 않게.》

원장은 말이 없었다. 안길이 말을 이었다.

《옛날 어느 시골에 한 어리석은 장님이 살았답니다. 매일아침 길가에 나가 만나는 사람마다 <눈이 번쩍 뜨이는 새 소식이 없슴둥?> 하고 묻군 했다지요. 그래서 어느날 장난꾸러기 청년이 <눈이 번쩍 뜨이는 소식이 있음둥. 어제밤 저 아래말서 땅이 천길 꺼져내렸는데 아 글쎄 그밑에도 마을이 있지 않수. 사람들이 오구가구 닭들이 울구··· 내 지금 그걸 구경하구 오는 길임둥.> 했다지요. 그러니 그 어리석은 장님이 저를 좀 데려다 구경시켜 달라구 청했답니다. 보진 못해도 소리만이라도 들어보겠노라구요. 그러자 그 청년이 장님을 끌고 험한 벼랑에 가서 밑에까지 내려갔는데 아 글쎄 앞 못보는 장님이라 벼랑을 내려가본적이 있을게 뭡니까. 제집 뒤울안에까지 신기해서 따라가 봤지요. <허 참 괴이함둥. 닭이 울구 다듬이소리도 나구, 이게 바로 땅속나라인가본데 우리말서 듣던거하구 신통히 같지 않슴둥?!> 사람들이 배를 그러안고 웃는데 제 안해의 웃는 소리까지 들리니 그 어리석은 장님이 꿈쩍 놀라서 물었지요. <임잔 언제 여기 왔음둥?> 하고 말이지요. 어떻습니까. 우스운 얘기지요?》

류덕호원장은 종이장들을 밀어놓으며 눈꼬리를 치떴다.

《그건 무슨 뜻입니까. 안길동지, 무얼 말씀하시는건지요?》

《원장선생,》 안길이 역시 정색하여 말하였다. 《제게도 그런게 필요합니다. 어리석은 장님을 땅속나라에 끌고간것처럼 그닥 중하지 않는 그런것을 골라 아무 병명이나 붙여주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알도록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원장의 두눈이 꼿꼿해졌다. 혹시 그것은 유능한 외과전문가인 그에 대한 모욕으로 될수도 있을것이다. 하얀 손가락끝으로 눈언저리를 긁으며 원장은 노여움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우린 지금 심각한 문제를 놓고있습니다. 안길동지, 롱이 다 뭡니까.》

《롱이 아닙니다.》

《아니··· 아니 부탁합니다만··· 난 지금··· 연구중입니다. 이 병력서, 실험검사표들을 종합분석해야 하는데 제발···》

《괜히 그러십니다. 원장선생!》 드디여 안길은 그의 말허리를 끊으며 지금껏 하고싶던 그말을 꺼내였다. 《나는 알고있습니다. 이미 다 알고있습니다. 매일같이 느끼고있습니다만··· 나는 오래 못갑니다.》

원장은 흠칫했다. 한동안 말없이 주의깊은 눈길로 안길을 마주보는데 무엇인가 열심히 생각을 굴리는듯 싶었다. 드디여 시무룩이 웃으며 그는 말했다.

《예- 그럴수도 있지요. 느낀다는건··· 알만합니다. 환자들의 감각은 때로 엑스광선처럼 너무 깊이 들여다볼 때도 있습지요. 그렇지만 감각이란···》

《원장선생.》

《제 말을 막지 말아주십시오. 제발··· 물론 안길동지 병세는 중합니다. 느낀다는것! 그것도 일리야 있습지요. 그렇지만···》

안길은 더 참고 견딜수 없었다. 나직하나 격한 어조로 그는 말했다.

《원장선생, 내겐 시간이 없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숨박곡질이나 하고있을 새가 없단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원장선생, 나를 내보내주시오. 허락하지 않아도 나는 나갈것입니다.》

《···》

원장은 말이 없었다.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등받이의자에 몸을 잔뜩 젖히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비로소 그는 원장의 직분에 어울리는 침착성과 랭정성을 되찾은것이였다. 안길이 돌변한 태도가, 그의 느닷없는 반발이 류덕호원장을 고통스러운 모대김의 결박에서 풀어주었던것이다.

《나가지 못합니다. 안길참모장동지, 지금 동지는 환자로서 제앞에 있습니다. 그리고··· 안길동지, 이제 장군님께서 전화를 걸어오실겁니다. 협의진단결과를 보고드리게 돼있습니다.》

《예?!》

안길은 다시 주저앉지 않을수 없었다. 불현듯 류덕호원장이 조용하고 침참해보이나 실은 쇠막대기같이 꼿꼿하고 랭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 위생복에서까지 얼음같이 찬 랭기가 풍겨오는듯 했다.

《원장선생, 그럼 한가지만 부탁합시다. 이제 장군님께서 물으시면··· 늘 앓던 위탈이라고, 별일 없을거라고 말씀드려주십시오.》

이번엔 원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에 들고있던 종이장들을 꽉 누르며 반동놈의 정체라도 알아낸것처럼 몸을 떨었다.

《그래 날더러 장군님께 거짓말을?!··· 도대체··· 도대체 이럴수가 있습니까. 의학자로서, 원장으로서, 도대체 어떻게 감히···》

《그래야 합니다, 원장선생.》

《아니 그렇겐 못합니다, 절대로!》

《원장선생!》

《못한다지 않습니까.》 하고 원장은 소리쳤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절대 안됩니다. 안됩니다!》

안길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원장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으며 품속에 손을 넣어 권총을 꺼내들었다. 순간 흠칫 놀라며 뒤걸음치는 원장을, 종이장같이 하얗게 질린 그의 얼굴을 침통한 눈빛으로 쏘아보며 권총을 탁자우에 놓았다.

《이건 뭡니까, 예?!》

원장의 신음소리였다.

《받으시오.》

안길의 속삭임.

《안길동지, 도대체 이건···》

《받으시오. 원장선생. 뭐 놀랄건 없습니다. 원장선생한테 이 총을··· 바치겠습니다.》

안길이 먼저 자리에 앉았다. 숨쉬기가 헐치 않아 모지름쓰며 한손으로 머리칼을 움켜쥐였다.

《나는 압니다, 원장선생.》 하고 그는 거친 숨소리를 내뿜으며 입을 열었다. 《내 생명이 꺼져간다는걸 난 알고있습니다. 이제 한달, 아니면 두석달?··· 원장선생은 말해주지 않아도··· 압니다. 그래서 이걸 가지구 왔습니다. 이 총을··· 이 총을 떼여놓는다는건 내 생명을 내놓는것이나 같습니다. 원장선생, 이 총을 받아두시오. 내 생명을 저 철궤안에 넣어두시오. 그러면 나도 조용히 병원에 갇혀있지요. 알겠습니까?··· 하얀 침대우에 누워있으면 하루이틀새 영영 꺼져버리구 말테니까.》

《?!》

원장은 얼어붙은채 꼼짝하지 못하고있었다. 그의 표정은 분명 죽은 사람의 그것과 같았다. 아니 수백수천년 무덤속에 묻혀있던 미이라의 흉한 모양과 다름없었다.

어데선가 우뢰소리가 구을러왔다. 세찬 비줄기속에서 비발에 부대끼는 나무가지들의 신음소리가 커졌다. 다시 안길은 눈빛을 번쩍이며 머리를 들었다.

《원장선생? 선생은 그말 한마디를 하기가 쉽지 않았지요? 불치의 병이라고, 이제 얼마 더 못간다고 말하기가··· 하지만 이 총을 내놓는 내 심정은··· 어떤지 아십니까?··· 나는 이 총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총이 없으면 내게 뭐가 남겠습니까. 지금껏 장군님을 총으로 받들어왔구 한생 총을 잡구 장군님을 지켜 싸우겠다구 맹세했는데··· 원장선생은 내게서 총을 빼앗고있습니다. 총을 빼앗구 병원침대에 한사코 눕히자구 하지요. 그렇게 두석달 아니 한 일년쯤 더 살게 하자는거겠지요. 산송장처럼!··· 아니, 원장선생, 잘못 생각하십니다. 원장선생은 우릴 너무도 모르십니다. 우리 장군님의 전사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원장선생, 총을 내놓으면 난··· 못견딥니다. 1년이 아니라 하루도 더 못갑니다. 더우기 지금 새 조선의 군대를 한창 뭇고있는 때 참모장인 내게서 총을 빼앗겠다구요? 하얀 침대우에 백포를 씌워 눕히겠다구요?··· 너무 하십니다. 원장선생, 아무려면 그리도 얼음장같이 랭랭할수야 있습니까. 예?!···》

더더욱 세차지는 비소리, 한순간 눈부신 섬광이 번쩍이였다. 원장은 치를 떠는듯 비틀거렸다. 뒤이어 터진 무서운 천둥소리, 창유리들이 드릉거렸다. 창문 한쪽이 휘딱 열리더니 세찬 바람에 도로 쾅! 하고 닫기였다. 그바람에 원장은 또 한번 흠칫하였다. 창문쪽에 피끗 머리를 돌려보고나서 그는 안길에게 절망어린 얼굴을 돌렸는데 죽음을 선고받은것은 안길이 아니라 그자신인듯 싶었다.

《그러니··· 안길동지, 저더러 어떻게 하라는겁니까, 저더러···》

말끝을 맺지 못한채 그는 무너지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원장선생, 나를 내보내주시면 됩니다.》

《아니 그건··· 안길동지, 저야 의사가 아닙니까. 또 의학자로서···》

《그래서 부탁하는게 아닙니까. 원장선생!》

《안길동지, 제발!···》

《좋습니다. 원장선생, 다시 말하는데 선생은 지금 두길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나의 생명을 앞질러 끊어버리든가 아니면 가능한껏 연장하든가 하는··· 선택하십시오. 의사로서, 의학자로서··· 그리고 그에 대해 장군님께 보고드려주시오. 나는 의사이며 의학자이기때문에 안길에게 백포를 씌워줄수밖에 없었다고··· 그의 생명의 초불이 저절로 꺼지기전에 내가 불어 꺼버렸다고 보고드리시오. 원장선생이야 그렇게 하는게 더 편하겠지요. 안길이야 끝까지 혁명을 하든 말든··· 상관이 없겠지요. 혁명의 리익보다 체면이 더 중할테니까. 너무 모질게 말한다고 하시겠지만··· 아니, 진짜 모진건 선생입니다. 원장선생!》

또다시 번쩍인 섬광, 파아란 번개불이 굳어져버린 그들 두사람을 시꺼멓게 짓태우며 눈이 부시게 번뜩이였다. 쫘르륵거리던 비줄기도 한순간 멎어버린듯 했다. 온 세계가 숨을 죽이고 천둥소리를 기다리고있었다. 그 순간 전화종소리가 먼저 울렸다. 장군님께서 걸어오신 전화일것이다. 류덕호원장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안길은 소스라치며 탁자우의 권총을 손으로 덮었다. 천둥소리가 터진것은 바로 그 순간이였다. 꽈르릉!- 하는 무시무시한 굉음에 벽이 울리고 마루가 흔들리고 그들의 내장까지 온통 뒤집어놓는듯 했다.

계속 울리는 전화종소리··· 마침내 원장이 엉거주춤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전화기에로 내미는 그의 손은 풍을 만난듯 와들와들 떨리고있었다. 애원에 찬 눈빛으로 안길을 바라보며 혀를 깨무는듯 했다.

《안길동지?···》

《받으십시오, 원장선생.》

원장은 여전히 와들와들 떨며 천근만근 무거운듯이 송수화기를 들었다. 안길이 먼저 징!-하는 전류흐름소리를 들은것 같았다. 뼈속까지 파고드는 그 소리, 원장의 떨리는 목소리는 먼 하늘가 한끝에서 울려오는듯 싶었다.

《원장 류덕호 전활 바-받습니다.》

《원장선생님, 저예요 한송숙이예요.》 쟁쟁 울리는 명랑한 목소리였다. 《선생님께서 인차 알려달라구 하셨죠?··· 부탁하신 론문을 찾았어요. 예, 권준선생님이랑 같이··· 창고안을 다 뒤졌답니다. 거미줄을 들쓰면서··· 호호··· 이제 곧 가져다 드릴가요?···》

원장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안길은 듣지 못했다.

아득히 사라져갔던 비소리가 다시 소연해졌다. 줄기차게 거침없이 퍼부어내리는 대줄기같은 비물, 저 비줄기속을 벌거벗고 뛰여다니던 시절이 안길에게도 있었다. 철없던 어린시절, 그 시절로 다시 되돌아갈수 있다면··· 그러나 곧 안길은 머리를 흔들었다. 되돌아갈 필요가 없는것이다. 되돌아가기엔 그가 걸어온 한생이 너무도 귀중한것이였다. 설사 어린시절로 되돌아가 지금 차례진 이 운명을,이 비극을 그 누가 예언해준다 해도 그는 다른 길을 선택하진 않을것이다.

류덕호원장은 이미 자리에 주저앉아있었다. 고통스러운 침묵, 시간은 덧없이 가고 피나는 아픔과 울분으로 하여, 서로가 겪게 된 고통과 원망으로 하여 기진해버린 두사람의 귀전에 마쳐오는 소란스러운 비소리도 그칠줄 몰랐다.

이윽고 원장이 소란스럽게 한숨을 내뿜고나서 탁자우의 권총을 안길에게 밀어놓았다.

《참모장동지, 건사하십시오.》

《?!···》

안길은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다음 순간 원장의 두눈에 끓고있는 눈물을 저릿한 아픔속에 알아보았다. 원장이 또 말했다.

《건사하십시오.》

《원장선생!》 뜨거운 속삭임에 목이 메였다. 《그러니 절··· 내보낸다는 말이지요. 예?!···》

《당신과 같은 분은··· 처음입니다.》 원장은 눈먼 사람처럼 손을 내저었다. 《난 정말··· 못견디겠습니다.》

안길은 잠시 말없이 서있었다. 그의 고통과 눈물이 리해되였고 자기가 너무 모질게 굴었다는 생각에 목이 잠기는것을 느꼈다. 인제는 자기가 위로의 말을 해야 할것 같았다. 하지만 환자가 의사를 위로한다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바로 그때였다. 복도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분주탕을 피우기 시작했다. 성급하게 뛰여다니는 발자국소리, 문들이 여닫기는 소리, 누군가를 소리쳐 부르는 소리··· 문이 벌컥 열리며 한 간호원이 뛰여들었다.

《원장선생님, 김정숙녀사께서 오셨어요. 참모장동지 병문안을 오셨답니다!》

처녀는 원장과 마주 서있는 사람이 안길참모장이라는걸 알아보지 못하는듯 했다.

원장과 안길은 거의 동시에 문쪽으로 머리를 홱 돌렸다. 그리고는 굳어졌다. 가슴이 널뛰듯 했다.웅성거리는 소음과 발걸음소리들이 가까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