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8


 

제 4 장

8

 

장춘은 원래 몽골사람들의 방목지였다. 후에 한족들이 개간을 시작하였는데 청나라때엔 중앙기관인 《장춘청》을 설치하였다. 도시로서 처음 번창하기 시작한것은 로씨야가 동쪽의 관성자일대에 철도를 부설하면서(1898년) 여기에 역사를 세웠기때문이였다.

로일전쟁후 로씨야는 강화조약에 따라 장춘이남의 철도를 일본에 이관하였다.

이 철도를 피줄처럼 타고 일본의 세력이 장춘을 휩쓸기 시작하여 남만주철도주식회사를 내올 때,즉 《9.18사변》후 일본은 여기에 괴뢰정부를 조작하고 《만주국》의 수도로 정하였고 도시이름은 《신경》으로 고쳤다. 동북에서 제일 번창한 이 도시의 인구는 《9.18사변》전의 15만으로부터 일본이 패망하던 《8.15》 당시엔 70만으로 늘어났다. 그중 14만명은 일본인들이였다.

장춘은 또 《철갑방선》의 도시이기도 하다. 지난날 일본군은 도시교외에 수많은 영구구조물들을 구축하고 거미줄같이 참호를 파늘였다. 도시의 건물들도 설계로부터 구조에 이르기까지 모두 군사적리용가치에 근거하여 세워졌다. 도시중심부에 있던 관동군사령부, 재향군인회, 공군사령부, 수도경찰청, 대홍공사건물들은 모두 1m두터이의 화강석벽체에 철근콩크리트지붕으로 되여있었다. 건물마다 지하실이 있고 갱도로 다른 건물들과 이어져있었다. 거리폭은 60m이상으로써 시가전을 할 때 화력밀도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높일수 있게 되여있었다.

지금 장춘을 차지한 국민당군의 신1군단 주력부대는 신38사단이였고 위수사령은 장개석의 아들 장경국이였다. 빈약한 무장장비에 무장도 너절한 팔로군을 도처에서 쉽게 밀어낸 국민당군장교들은 한창 《결혼열》에 미쳐 돌아가고있었다. 도시의 이르는곳마다에서 폭죽을 터치고 결혼피로연을 베풀었다. 고대광실의 기둥마다 《喜》(기쁠 희)자들이 나붙고 새 군복에 가죽구두를 번쩍거리는 장교들이 화려한 치마를 입은 귀부인들과 애티나는 얼굴에 복숭아꽃교태를 한껏 피워대는 녀대학생들의 팔을 끼고 유유히 걸었으며 늙다리장교들도 뒤질세라 17살전후의 미인처녀들을 《넷째 부인》, 《다섯째 부인》으로 맞아들여 비둘기처럼 입을 맞대고 구구거리고있었다.

공산당의 괴멸은 시간문제로 생각하고있었다. 전쟁은 끝나가고있었다. 폭죽을 터뜨려라, 징을 울려라, 호궁소리는 왜 그리 청승맞게 울리느냐, 나팔을 불어라!···

 

×

 

돌격나팔소리가 울렸다. 류탄포들이 무게있게 굵은 소리로 도시를 뒤흔들고는 윙-윙 하는 날카로운 파렬음으로 주름잡은 국민당군 장교들의 바지를 찢고 아우성치는 녀인들을 사방 흩어지게 했다.

콩크리트담벽들이 무너지고 전기줄들이 머리타래처럼 길바닥에 엉켜 돌아갔다. 도시의 교외에 파놓은 제1선 참호들에서는 기관총들이 승벽내기로 울부짖었다. 도망치는 적병들을 뒤쫓아 말탄 기병들이 거의 아무 소리도 없이 바람같이 날아들었다. 수류탄의 폭발소리를 누르며 적의 중포들이 달려드는 기병들은 내쳐두고 보병부대들의 머리우에 정신없이 포탄을 퍼부었다. 그래도 전사들은 달려나갔다. 비명소리도 없이 쓰러지는 사람, 담가를 든 위생병, 흙무지뒤에 등을 굽히고 기관총을 쏘아대는 전사, 갈색폭발의 불기둥속에서 뛰쳐나와 눈이 먼듯 헤덤비며 무너진 다리란간너머로 뛰여드는 군마, 어느새 기병들은 적의 포진지로 뛰여들었다. 그 맨 앞장에서 김영걸이 싸창을 빼들고있는것을 박락권은 쌍안경으로 알아보았다.

태양이 꺼멓게 타며 스러져가기 시작했다. 치솟는 불기둥과 타래치는 초연, 구름처럼 떠도는 먼지속에서 더더욱 기승을 부리는 죽음의 휘파람소리, 총창과 칼들이 번뜩이고 끔찍한 비명소리들이 튀여나왔다.

또다시 나팔소리가 죽음이 휩쓰는 전장을 파고 헤치며 사뭇 랑랑하게 울려퍼졌다. 그러자 대기하고있던 제3대대가 《와-》 하고 함성을 지르며 적의 2참호로 육박해 들어갔다. 뒤에서는 그들을 지원하는 포병들의 집중사격이 또 불덩어리들을 날려보내기 시작했다. 도시변두리의 포대가 무너지고 화광이 충천하는 어느 건물에서는 지진과 같은 굉음이 터져나왔다. 적의 포탄창고가 폭발하는것이였다.

력사에 기록된 제1차 장춘해방전투가 시작된 이날 련대는 도시성벽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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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락권의 련대가 공격을 시작한지 사흘째 되는날 밤 장춘위수사령부 사령 장경국은 이전 만주국수도경찰청의 건물콩크리트벽뒤에 앉아있었다.

시가전이 한창이였다. 하나의 건물, 하나의 바리케트, 하나의 다리를 사이에 두고 맹렬한 포격전과 총격전이 벌어지고있었다. 철근창살을 댄 문밖에서 매캐한 화약내가 숨가쁘게 쓸어들었다.

그는 귀를 틀어막고 앉아있다가 별안간 벌떡 일어나며 나이지숙한 자기의 비서를 소리쳐 불렀다.

《준비됐소?··· 비행기, 비행기 말이요!》

《예, 각하, 대기하고있습니다.》

이때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그는 그것을 들어 바람벽에 집어던지려다가 겨우 자기를 억제하였다.그런데 뜻밖에도 전화를 걸어온것은 어제 비행기로 심양에 날아든 장개석이였다.

《너냐? 그래 공산당이 도시중심부까지 쳐들어온다구?》

《예, 아버지, 신38사단은 죄다 겁쟁이들뿐입니다.》

《아니다. 신38사단은 <왕패>중의 <왕패>부대야. 공산당이 갑자기 쳐들어올줄 모르고 해이되여있었을뿐이지. 사단장을 목매달고 다시 일떠세워야 해. 아직도 늦진 않았다. 항공지원을 할테니 비적들을 다 쓸어버려라.》

《아버지!》 장경국은 그쪽에서 전화를 끊을가봐 다급히 부르짖었다. 《이젠 늦었습니다. 우린 다 망했습니다··· 지금 우리 목을 조이고있는게 어떤 놈들인지 알기나 하십니까!?》

《알고있다. 다 알고있어. 조선인 세개사단이 달려들었다는 보고를 받았어. 죽일놈의 <꼬우리방즈>들!》

《아버지, 나는 벌써 비행기를··· 준비시켰습니다. 사실 전투지휘야 내게 맞지 않지 않습니까.》

《이미 난 신1군단장에게 죽을때까지 도시를 사수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장춘을 지키는것은 곧 심양, 금주, 사평을 구원하는것이야. 지금 거기선 결사전이 벌어지고있어.》

《아버지, 결사전은 여기서도 벌어지고있습니다. 그럼 아버지, 죽어서 천당에서 다시 만납시다.》 《아니다, 천당은 너무 멀어. 거기 가는 길도 우린 모르구···》

장개석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장경국은 아버지가 한 마지막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것일가 하고 머리를 쥐여뜯으며 생각을 굴렸다. 시뻘건 화광이 또 솟구쳐올랐다. 환하게 붉게 타번지며 건물들을 비쳐주더니 재빛의 연기구름속으로 스러져갔다.

자지러진 기관총소리, 움푹움푹패인 아스팔트길로 굴러가는 포차의 부르릉소리, 악에 받친 웨침, 《뭣들 하는거야, <표뒤장>(박대장)이 코밑에 와있다. 빨리, 빨리!···》

그렇다, 박락권은 이미 코밑에 와있는데 천당은 아득히 멀고 또 멀다. 그리로 가는 길도 모르고··· 비로소 그는 아버지가 한 말뜻을 알아차렸다. 고마운 아버지, 생명을 구하는 길은 그도 알고있지 않는가. 그리도 가까운, 지척에 있는 그 길, 그 길을 두고 천당을 찾아 헤맬 미욱스러운 자는 아마 이 세상에 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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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째되는 날엔 송미령이 끌어들이고 직접 지휘한 항공대가 장춘의 거리들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하였다. 태양은 하루종일 시꺼먼 연기속에 삼키워져있었다.

한편 남쪽을 증원하기 위해 떠났던 신1군단의 다른 사단들은 급기야 장춘을 구원하기 위하여 돌아섰으나 최광의 제2련대에 저지되여 공주령부근에서 치렬한 싸움에 허덕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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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춘역앞 광장을 사이에 두고 맹렬한 총격전을 벌리던 적아 쌍방이 모두 일시에 사격을 중지하였다. 말탄 사람 하나가 광장 한복판을 뻐젓이 지나가고있는것이였다. 군복은 불에 타고 찢겨져 너덜너덜 했는데 모자도 없는 머리엔 내의를 찢은 헝겊이 두툼하게 감겨져있었다. 머리칼도 불에 타 없어지고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것이 헨둥했다. 두손으로 말갈기를 거머쥐고 어덴가 먼 곳, 피처럼 타는 태양쪽으로 머리를 들고있는데 눈을 싸맨 헝겊 한끝이 바람에 날리고있었다.

어느 담벽, 어느 골목에서 나온 사람인지, 적인지 아군인지도 알수 없었다. 갈기갈기 찢어진 군복은 색도 형태도 분간할수 없었다. 짙은 초연속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그의 모습은 옛말에 나오는 망령과도 같았다. 어지러이 널린 시체들을 에돌며 그를 태운 가라말은 광장한복판에서 갈 길을 몰라 어정거리고있었다. 인제는 투덕거리는 말발굽소리도 가려들을수 있었다. 그러자 역사앞 모래포대를 쌓은 국민당군 신38사단 127련대 바리케트쪽에서 기관총이 뚜루룩거리며 위협사격을 했다.

《누구야, 넌 어느편이야?》

말탄 기수의 앞뒤에서 불꽃들이 튕겨났다. 놀란 말이 깨여진 포석을 걷어차며 뒤걸음쳤으나 말탄 사람이 갈기를 꽉 틀어잡은때문인지 대가리를 높이 쳐들며 푸르릉거렸다. 화재의 검은 연기에 가리웠다가 다시 나타났을 때 그는 이미 말잔등에 머리를 틀어박고있었다. 가라말이 네굽을 놓으며 기관총이 뚜루룩거리던쪽으로 달려들고있었다. 구보로부터 습보로 금시 모래포대안쪽의 기관총수들을 편자신은 발로 걷어찰듯이 날아들었다. 기관총과 신식미국제소총들이 일시에 불을 토한것은 다음순간의 일이였다. 모래포대들을 날아넘던 가라말이 푹 고꾸라지며 네다리를 버둥거리고 앞못보는 그 사람은 바리케트너머로 휙 뿌리워졌다. 그리고는 잠잠해졌다. 다음순간 요란한 폭음이 터지며 산산쪼각이 난 시체들과 기관총들을 뿌려던졌다. 앞못보는 그 사람이 폭약을 안고있었던것이다. 황갈색의 화염이 솟구치고 불연기속에서 재개비가 흩날리자 다시없을 절호의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김영걸의 기병대원들이 광장을 꿰지르며 역사건물로 돌입하였다. 무시무시한 함성이 그뒤를 따랐다. 수많은 희생자를 내면서도 발목이 묶이워있던 제3대대 전사들이 뒤따라 돌진해나간것이였다.

앞못보던 그 전사의 시체는 찾을 길이 없었다. 그가 누군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수많은 전사들이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한 광장 변두리의 불타는 화물역건물쪽에서 그가 나왔던것이다.

역사를 점령한 2대대에서 그에 대해 전화로 보고해왔을 때 박락권은 며칠동안 불연기를 삼키며 목이 꽉 메여있었으나 무섭게 성을 내며 쌕쌕거리는 웨침소리를 짜냈다.

《꼭 알아내야 돼, 알겠소? 어떻게 해서든··· 알아 내시오.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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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대가 점령한 역사건물에 정희는 남아있었다. 련대장 박락권은 도시중심부쪽으로, 돌격이 좌절된 대동거리의 1대대로 말을 달려나갔다. 그와 떨어져있기는 처음이다. 아무것도 하는 일없이 말고삐를 잡고 공급중대의 전사들이 마차에 짐을 싣고 부리며 분주히 뛰여다니는것을 보고있었다. 박락권은 정희와 마사원 리복만을 떼여놓으며 말했었다.

《동문 여기 남소. 전투가 끝나면 사람을 보내겠소. 사령부에 무전을 칠 준비나 하오.》

그러나 무전을 칠 준비에 많은 시간이 필요되는것은 아니다. 그가 무엇때문에 자기를 남겨두었는지 정희는 잘 알고있다.

적비행기들이 또 날아들었다. 천지를 진동하는 폭음이 여기저기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화강석으로 쌓은 역사의 홀도 무너져내렸다. 삼단같은 불길이 치솟고 매캐한 불연기가 복도를 휘감으며 폭풍쳐왔다.

나이지숙한 리복만이 정희의 말고삐를 나꿔채고 그를 힘껏 깨여진 어느 문짝안으로 떠밀었다. 숨막히는 불연기속에서 눈이 쓰려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서 정희는 비칠거렸다. 이윽해서야 유리창이 부서져버린 창턱을 붙잡고 밖의 공기에 타는듯한 목을 내밀수 있었다.

이렇듯 무서운 맹타격을 처음겪는 정희였다. 광장앞 멀리 솟아있던 교회당의 철탑이 보이지 않았다. 숱한 건물들이 무너지고 박산나고 세찬 불길을 토하고있었다. 사람들이 아우성치며 타래치는 불구름속에서 허우적거리는것이 보였다. 포병들이 대통로로 류탄포를 밀고갔다. 담가를 든 위생병들이 허리를 구부정하고 달려가는데 대체로 리복만과 같이 수염이 시꺼먼 사람들이였다.

비행기들이 또 내려꽂히고있었다. 련대장이 달려간 그쪽이다. 땅을 뒤번져놓는듯한 굉음, 귀따갑게 울리는 기총소사, 또다시 폭음, 폭음··· 지진이 일어나고있다. 검은 구름이 도시의 상공을 무겁게 짓누르고있다. 치솟는 불길··· 그속에 련대장동지가 있다. 거의나 재빛으로 험상궂게 변해버린 그, 인제는 목이 쉬여 말도 제대로 못하는 그이가 저속에 있다. 공격이 시작되기전에 잠시 단둘이 마주앉아 보고는 다정한 말한마디 나눌새 없었다. 그때 그는 말했었다.

《난 동무가 걱정이구만. 괜히 붙잡아둔게 아닌가?!···》

정희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날 붙잡지 않았으면 난··· 견디지 못했을거예요.》

《그건 왜?》

《련대장동지가 날 버리나 해서···》

《원 바보같이···》 그는 피식 웃었다. 《난 그걸 몰랐거든.》

《그거라니요?》

그는 정희의 말을 듣지 못한듯이 화제를 돌렸다.

《이제 조국에 돌아가면··· 그때 잔치를 하자구. 장군님께 동물 데리구가서 말씀드리겠소. 제 안해입니다 하구.》

《에그머니! 그런 말까지 어쩜··· 장군님께···》

《장군님께선 기뻐하실거요. 그건 틀림없소. 그건 내가 잘 안다니까. 그러니 정희, 그날까지··· 몸 조심하오. 알겠지?》

《그러나 거기서두··· 부디 조심하세요.》

《난 죽지 않소. 별의별 일을 다 겪었지만 이날까지 끄덕없지 않소. 맘 놓으라구. 정희만 무사하면 돼.》

아니다. 나 같은건 백이나 천이 있어도 그를 대신할수는 없다. 그야말로 장군님께서 제일 아끼시는 사람이 아닌가. 그를 혼자 있게 해선 안된다. 그는 무서운 싸움군이긴 하지만 수염난 어린애와도 같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 그곁에는 내가 있어야 한다. 내가 그를 지켜주어야 한다.

드디여 정희는 리복만을 찾아 복도로 달려나갔다. 무작정 리복만의 손에서 말고삐를 잡아채고 뛰여가는데 그가 소리쳤다.

《어델 가려구, 응?··· 안돼, 못가! 이보라구 무선수, 련대장동지가 나더러 동물 단단히 붙잡아두라구 했어. 내말을 듣나?》

정희는 밖에 나서자 무선기가 든 배낭을 살펴보고 말잔등에 뛰여올랐다. 황황히 뒤쫓아나온 리복만이 앞을 막아나서려 했지만 벌써 그는 대통로쪽으로 말머리를 돌리며 등자에 발을 꿰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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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거리는 장춘에서 제일 크고 넓은 거리이다. 남쪽으로는 이전 신경일보사, 만주국통신사, 서공원 등이 있고 이전 일본모직청사앞에서 화강석기둥들이 옛 로마의 원형극장모양으로 세워진 강덕회관을 지나면 곧 중앙은행, 전기회사, 방송국과 이전 수도경찰청건물들로 둘러싸인 대동광장이 있다. 광장을 지나 중앙공원에 이르면 관청거리가 이어지는데 적들은 대동거리를 최후의 지탱점으로 맹렬히 저항하고있었다.

1대대는 전기회사건물과 방송국을 점거했으나 광장 맞은켠의 중앙은행과 이전 수도경찰청(어제 비행기로 도주한 장경국이 틀고앉아있던 시위수사령부)에서 미친듯 발악하는 적들을 제압하지 못하고있었다. 박락권이 말을 달려갔을 때 1대대장 전호웅은 포화에 끄슬려 험상궂게 된 얼굴로 고함치듯 보고했다.

《련대장동지, 저놈의 화점들때문에 숱한 우리 사람들이 쓰러졌습니다. 벌써 다섯번이나 공격을 들이댔지만··· 어쩔수 없었습니다.》

박락권은 전투장에서 우는 소리를 하는 지휘관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적의 저항이 강하다느니, 화력이 세다느니, 력량대비가 안된다느니 하는 따위 말들은 승리한 후에나 필요한 양념감들일뿐 실패를 변명하는 구실로는 되지않는것이다.

그는 정황을 살펴보고 적들의 총탄이 비자루 쓸듯하는 광장을 돌파하는것이 제일 난사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무모한 공격으로는 희생만 더할뿐이다. 그는 1대대장 전호웅의 귀를 잡아비틀며 자기 눈앞으로 끌어갔다. 그리고는 바람새는 풍구소리처럼 쉭쉭하는 거쉰 소리로 격하게 부르짖었다.

《포차들을 끌어와, 당장!··· 적들거든 우리거든 다 끌어오라구, 포들두 다! 망가진 포라두 일없어. 방패가 있어야지!》

그가 생각한 방패란 포차의 고무바퀴들과 포의 방순이였다. 불타는 포차들과 못쓰게 된 포들까지 다 끌어왔다. 성한 포차 여섯대중에는 연유도람통을 가득 싣고있는 차도 있었다. 운전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그것들도 다 밀고나가게 했다. 먼저 휘발유, 디젤유 등이 들어있는 도람통들을 광장의 포석우로 굴려보내고 뒤미처 열한대의 자동차, 수십문의 포들을 일시에 끌어냈다. 성한 포들로는 포탄이 자라는껏 적진을 향해 쏴갈겼다.

한편 기병중대들을 불러 모두 총을 등에 지고 손에 수류탄을 쥐게 했다. 한개 중대는 광장의 좌측, 다른 중대는 우측변두리를 따라 번개같이 달려나가도록 했다. 박락권자신이 한개 기병중대를 직접 인솔하였다.

그것은 무모한 객기였던가 아니면 역경을 역전시키기 위하여 지휘관이라면 당연히 그럴수밖에 없는 용감성의 발휘였던가?!···

두개의 싸창을 빼든 련대장이 돌격전의 선두에 나서는것을 보자 전체 대대(수천명에 달하는 보병,기병, 포병전사들)가 무서운 함성을 지르며 탄우속으로 돌진해갔다.

광장은 삽시에 생지옥으로 화했다. 수십개의 도람통들이 펑-펑! 터지며 적황색의 불길을 솟구쳐올렸다. 온통 불바다, 시뻘건 불길이 란무하는 화염의 바다였다. 그속으로 굴러가는 포차와 포의 방순들에는 불덩이들과 적탄들이 들씌워졌다. 앙칼진 쇠소리, 돌격의 함성과 도탄되는 탄알의 아츠러운 울부짖음소리··· 기병중대들이 광장의 좌우측에서 폭풍처럼, 해일처럼 휩쓰는 화염속을 돌진해간것은 그 순간이였다.

땅이 타고 하늘이 타고 사람들도 불에 탔다. 시꺼먼 구름이 광장을 덮었다. 터지고 찢겨지고 엿가락처럼 쭈그러들고 비틀리면서 화염을 뿜어대는 포차와 미친듯 울부짖으며 불에 타는 갈기를 날리는 군마들··· 돌격전의 앞장에서 달리던 박락권은 한순간 뜨끔한 타격을 받으며 말에서 떨어졌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뜨거운 화염이 페부까지 짓태우는듯 했다. 백전마가 주인을 찾으며 화염속에서 미친듯 갈개였다.

뒤따르던 보병들이 《련대장동지!-》 하고 울부짖으며 그를 에워쌌다. 누가 그를 일으켜세웠던지··· 박락권은 필사의 힘을 다 짜내여 거쉰 소리로 웨쳤다.

《말, 내 말!···》 그리고는 보병전사들을 향해 팔을 내저었다. 《돌격, 돌격하라!-》

자신이 치명상을 당했다는것을 알았으나 그것을 숨겨야 했다. 련대장이 쓰러졌다는것을 사람들이 알게해선 안된다. 한순간이라도 돌격이 정지되여서는 안된다!···

어떻게 또 말에 올랐는지··· 벌써 저 앞쪽 콩크리트건물과 바리케트들에서는 수백, 수천개의 수류탄이 터지고있었다. 한치앞도 분간할수 없는 불구름속에서 돌격대원들이 악-악 웨치고 말들이 울부짖었다. 누가 어떻게 적의 화점에 날아들고 누가 어떻게 버둥거리는 말배때기우에서 철갑모를 쓴 적병과 맞붙어 딩굴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총탁이 부서지고 철갑모들이 나딩굴었다.

박락권은 가까스로 자기를 껴안다싶이 하고있는 왕진을 가려보았다. 왕진은 불에 탄 얼굴을 험상궂게 이즈러뜨리며 정희를 소리쳐 부르고있었다.

정희, 정희가 여기에 있단말인가. 왕진이 잘못본게 아닌가?··· 말들이 사납게 갈개였다. 불길과 고무타는 냄새에 미쳐버린듯했다.

한순간 박락권은 그을음과 눈물범벅이 된 정희의 얼굴을 본듯싶었다.

《왜 왔소?》 하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역하고 진한 시꺼먼 연기를 삼키며 가까스로 내뱉은 신음소리에 불과했다. 다음순간 그는 무거운 머리를 떨구며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순간 대기를 찢던 총소리며 웨침소리며 온갖 앙칼진 소음들이 멀리, 아득히 사라져가는것을 느꼈다. 눈앞에 어룽거리는 피빛의 불길··· 안깐힘을 다하여 울부짖고있는 정희와 자기를 붙안고있는 왕진의 퀭해진 두눈을 어렴풋이 보았다.

한없는 피로, 머리속을 휘젓는 어지러움, 눈을 뜨고싶었으나 천만근 무거워진 눈시울을 들수가 없었다. 처음 어깨죽지를 호되게 때리던 세찬 충격이 있은 이후로 거의나 아픔도 몰랐으나 차츰 숨이 차올라 견딜수 없었다. 무엇인가 펑 뚫린 가슴한쪽으로 끝없이 쿨럭이며 빠져나가는것을 느낀다. 그래도 몸은 둥둥 떠서 구름에 실린듯 움직여가는것만 같다. 불같이 뜨거운것이 내장을 쑤시고 지져대는가 하면 광장에서 타래치던 불뭉치가 벌려진 입으로 사정없이 쓸어들기도 한다. 그 지독한 뜨거움과 중유타는 냄새, 그는 가물거리는 의식을 안깐힘을 쓰며 붙들고있었다. 무쇠같이 단련된 그의 육체도 그렇게 쉽사리 거꾸러지려고 하지 않았다. 2분, 3분, 5분··· 엄습해오는 죽음의 독가스를 마지막 최후의 기력을 다하여 힘껏 불어낸것 같았다. 한순간 정희의 뜨거운 입김이 자기의 벌려진 입으로, 페부로 퍼부어지는것을 느꼈다.

《련대장동지, 이러지 마세요. 그러문 안돼요. 예? 련대장동지. 제발 눈을 뜨세요!-》

왕왕 울음을 터치고있는것은 분명 왕진의 목소리였다.

《이걸 어쩌문 좋습니까. 예?··· 이제 난··· 난 어떻게 하라는겁니까. 련대장동지!》

그는 담가에 실려가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서두르고있었다. 1대대장 전호웅, 그가 옆에서 《빨리 빨리!》 하고 독촉하는가 하면 조심하라고 사납게 웨쳐대기도 했다. 병원으로 가고있는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생명이 꺼져가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마지막으로 한번 확 타오르고는 순시에 꺼멓게 죽어버리는 한점 불티처럼 마지막기력이 의식을 되살린것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아니 지금 그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고있었다.

그는 모지름쓰며 한손을 들려고 했다. 한손을 들어 《가만!》 하고 웨치며 사람들을 멈춰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겨우 손가락을 오무작거렸을뿐이였다. 그것을 맨먼저 정희가 알아본것 같았다.

《세우세요. 련대장동지가!···》

정희의 새된 부르짖음에 발걸음소리들이 멎고 투덕거리던 말발굽소리도 멎었다. 박락권은 자기의 머리우에 수그린 정희의 얼굴을 느꼈다. 흐트러진 머리칼이 이마를 간지르고 뜨거운 입김이 또다시 그의 입가에 느껴졌다.

《눈을 뜨세요. 련대장동지, 다들 기다리구있지 않아요. 예?!··· 련대장동지! 제발 눈을 뜨고 보세요. 우린 끝내 이겼어요. 장춘을 해방했어요!》

하여 그는 힘겹게 혼신의 힘을 다 짜내여 눈을 떴다. 눈물범벅이 되여있는 정희, 처음엔 정희의 얼굴만이 시야에 꽉 차있었다. 울지마오. 정희, 제발 웃어주오. 난 동무의 웃는 모습을 보는때가 제일 좋더군. 그러니 울지 마오. 제발 울지 마오!···

《련대장동지가.》 가늘게 웨치는 정희의 목소리였다. 《련대장동지가 눈을 떴어요!》

웅성거리는 소음, 아니 바람소리인가, 흐느낌소리인가.···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어린 눈들이 우물속에서처럼 올려다보였다. 왕진, 김영걸, 전호웅, 리복만··· 수백수천에 달하는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파도치듯 웅글게 밀려오던 목메인 흐느낌소리가 멎었다.

그는 또다시 한손을 옴지락거리며 무엇인가를 말하려 했다. 정희가 입에 닿을듯 머리를 숙이며 속삭이였다.

《예? 뭐라구요. 련대장동지, 뭐라구요?》

정희는 마침내 그의 입놀림으로 말뜻을 알아차린듯 했다. 싸창 두개를 꺼내여 그의 가슴우에 올려놓았다.

《이걸 말이죠? 련대장동지, 그렇지요?》

그래, 그래, 바로 그거요. 정희, 이걸 전해주오. 우리 장군님께··· 그리고 말씀드려주오. 이 박락권은 꿈에서도 조국을, 장군님을 뵈왔다고··· 말씀드려주오. 조국에 돌아가 군건설에 한몫하고싶었다고··· 그런데 이렇게 될줄이야··· 이 총 두자루만이라도 장군님께서 세우시는 우리 군대에 보탬이 되였으면··· 나의 이 마음을 전해주오. 정희, 나의 사랑하는 정희!···

자꾸만 흐려지는 두눈을 흡뜨며 자기를 둘러싼 사람들을 바라본다.

호흡이 절박해졌다. 그러나 정든 사람들을, 피를 나누며 함께 싸운 귀중한 사람들의 얼굴을 기를 쓰고 바라본다.

넝마같이 너덜너덜해진 옷소매로 눈굽을 훔치는 사람들, 피와 땀, 눈물에 얼룩진 얼굴을 벗어쥔 모자로 문지르며 흐느껴우는 사람들··· 잘 있소, 정희, 사랑하는 사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의 심장을 뜨겁게 달구어준 정희, 부디 잘 있소. 내 마지막당부를 장군님께 전해주오. 그리고 나를 대신해서··· 나의 아들이 장군님군대가 되게 해주오. 이 말만은··· 이 말만은 꼭 해야겠는데··· 왜 이렇게 서두는가. 그렇게도 여유를 안준단말인가?!··· 잘있으라, 왕진, 너는 내 동생이였다. 잘 싸우라. 부디 행복을··· 전우들, 나의 귀중한 동지들, 기어이 조국으로, 장군님께로 승리하고 돌아가주오. 나를 대신해서··· 동무들, 부디!···

드디여 그는 흠칫 몸을 떨며 최후의 숨을 몰아쉬였다. 더이상 견딜수없이 온몸이 꺼져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한없는 피로, 모든 피로를 넘어선 마지막피로··· 그는 《백전마》의 울부짖음소리를 최후로 들었다. 말에 올라 노을이 불타는 먼먼 하늘가로 소리없이 번개같이 날고있었다. 시뻘건 태양이 눈부신 빛과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그를 받아안았다. 자기를 흔들며 째지게 울부짖는 정희의 웨침과 수백수천에 달하는 전사들의 목멘 흐느낌소리도 듣지 못하고 그는 거대한 태양의 품속으로 거침없이 녹아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