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6


 

제 4 장

6

 

안길도 잠들지 못했다. 총과 인연을 맺고 한생을 살아온 그여서 졸지에 마음의 기둥이 무너져내린것 같았다.

총은 언제나 그의 말없는 벗이였고 전우였다. 총을 떠난 자기의 생활을 그는 상상할수조차 없었다. 특히 군건설이 한창인때 10만정의 무기를 보내지 않으면 안되는것이 그를 괴롭혔고 잠못들게 했다. 벌써 보안간부학교터전이 정해지고 안길자신이 현지에서 위치를 확정한 보안간부훈련소들이 도처에 꾸려지고있는데 그많은 청년들에게 메워줄 총이 부족하다.

10만정의 무기이면 10개사단분에 해당되는 무기이다. 이제 그많은 총과 대포를 어디에서 어떻게 마련한단말인가. 청진앞바다에서 기름종이로 싼 기관총을 꺼내였을때 《총이다. 기관총이다!》 하고 목터지게 부르짖던 그였다. 그런데 그무기들도 동북으로 실려가게 된다. 장군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시였고 안길자신도 그에 동의하였다.

지난날 항일무장투쟁시기 장군님께서는 중국동지들을 돕기위해 총은 물론 제일 아끼고 사랑하던 대원들도 보내주군 하시였다. 하기에 안길은 진운이 10만정의 무기지원을 요청했을때 눈앞이 아뜩했었다. 장군님께서 어떤 대답을 주실지 너무도 잘 알고있는 그였으므로 혀를 깨물며 신음소리를 씹어삼키지않으면 안되였다.

궁싯거리며 잠못이루던 그는 끝내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장군님집무실엔 불이 켜있지 않았다. 주도일을 대신하고있는 손종준부관에게 물었더니 장군님께서는 평천리로 가셨다고 한다. 그것도 밤 3시에···

무엇인가 뇌리를 치는것이 있었다. 장군님께서 무슨 일로 평양기계제작소로 급히 가셨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는 무작정 평천리를 향해 걸음을 다우쳤다. 장군님께서는 총때문에 전날의 병기공장을 찾아 밤을 밝히시는데 안길 그자신은 잠자리에서 궁싯거리고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화를 내며 반달음쳐갔다. 목에서 겨불내가 나고 등골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동통이 엄습해왔으나 이를 악물고 달려갔다.

장군님께서는 2호동앞을 거닐고 계시였다. 숨이 차서 달려오는 안길을 보고 저으기 놀라신듯 했다. 급히 마주오며 물으시였다.

《안길동무가 어떻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안길은 아무리 애써도 입을 열수가 없었다. 목구멍을 가득 채우며 솟구쳐 오른 오열을 씹어삼키며 허덕이였을뿐··· 마음속으로만 울부짖듯 했다.

《장군님, 어쩌면 이러실수 있습니까. 무슨 일이든 저희들께 맡겨주시면 될게 아닙니까!···》

장군님께서는 그의 마음속생각을 알아보신듯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그러니 안길동무도 정 잠을 이룰수 없었단말이지···》

《장군님!》 안길은 가쁘게 속삭이였다.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

그것은 그가 하려던 말이 아니였다. 뜻밖에 불쑥 튀여나온 고통스러운 모대김의 웨침이였다.

《안길동무답지 않게···》 장군님께서 가볍게 나무람하시였다. 《이제 지웅도기사장이 깨여나면 우리 같이 의논해봅시다.》

《?!···》

비로소 안길은 장군님께서 새벽이슬을 맞으며 건물앞을 거닐고계신 까닭을 알게 되였다. 지웅도가 잠을 자고있는것이다. 그 셈평좋은 기사장이!···

목구멍에서 금시 고함소리가 터져나올것 같았다. 온몸을 덜덜 떨면서 주먹을 불끈 그러쥐였다. 지웅도, 어디 두고보자. 무례하기 짝이 없는 헌털뱅이 기사장!···

그는 지웅도가 병기수리와 여러가지 걸린 문제들을 안고 장군님을 뵈우러오는것을 몇번 본 일이 있다. 그러나 아직 속을 터놓고 이야기해본적은 없다. 소시민풍의 체소하고 눈이 가늘고 늘 앞이마를 손톱으로 긁고있는 좀 어리숙해보이는 기술자라는 정도로밖에 알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장군님께서 웃으시였다. 분개해하는 안길의 어깨우에 한손을 얹으며 걸음을 옮기시였다.

《안길동문 아마 지웅도기사장을 죽어라하고 욕하고있는것 같은데 그건 괜한 일이요. 그동문 집도 없이 사무실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데 좀전에야 겨우 쪽잠에 들었다고 하오.

기다립시다. 기다리는 일이 다 힘든것은 아니요. 마침 안길동무도 왔으니 잘 됐소. 내 이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들어보겠소? 이제부터 우리 힘으로 기관단총을 만들어보자는거요.》

《기관단총?》

《그렇소. 언제까지나 남들이 줴버린 무기를 수리해쓰겠소. 또 이제 낡은 99식보총이나 만들어가지고 언제 현대적정규무력을 건설하겠소. 대포와 땅크, 비행기, 함선은 어데서 얻어오구?··· 아니, 그래선 안되오. 식민지경제의 락후성에 빙자하지 말고 처음부터 큰 걸음을 내딛자는것이요. 우리 로동계급과 기술자들을 믿고 시작해봅시다. 그걸 지웅도동무랑 토론해보자는거요.》

《?!···》

샐녘이 가까와오면서 날씨는 오싹하리만큼 찼다. 안길은 식은땀이 내배던 잔등이 오싹오싹해나는것을 참을수 없었다. 흐느끼듯 숨을 톺으며 그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장군님, 그런데··· 지웅도기사장이 해낼수 있다고 하겠는지··· 그 량반 노는꼴을 봐선 도무지 믿음이 가질않습니다.》

《그건 지나친 생각이요. 안길동무, 그와 마주앉아 얘기해보시오. 솔직하구 대바르구··· 또 헌신적인 사람이요. 나는 그를 믿소.》

안개가 짙어지고있었다. 소리없이 굼늬며 건물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주물직장의 벌거우리한 불빛도 차츰 희미해졌다. 별들도 빛을 잃고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현관앞에 외투를 어깨에 걸친 지웅도가 나서며 《게 뉘기요?》 하고 가늘게 소리쳤다. 짙은 안개때문에 승용차는 보지 못하고 두런두런하는 말소리만 가려들은것 같았다.

어느새 부관이 달려가 그에게 귀띔했다. 그의 어깨우에서 외투가 미끄러져내렸다. 허둥지둥 달려오다가 우뚝 멈춰섰는데 마치 호되게 얻어맞은것처럼 비칠거렸다.

《장군님!》

《아. 지웅도동무!》 장군님께서 마주가시였다. 《벌써 깨여났소? 그렇게 빨리···》

《장군님께서 와계신줄도 무르구···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말 마시오. 실은 좀 의논할 일이 있어왔는데··· 자, 외투를 걸치시오. 그렇게 자다가 감기에 들면 어쩔려구. 자, 들어갑시다.》

지웅도는 서두르며 장군님을 사무실로 안내해드렸다.

방에 들어가서야 안길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장군님께서는 벽에 걸린 직장별증산경쟁도표를 보고계시였다. 보총, 기관총, 척탄통, 박격포들을 수리한 수자와 소재가공, 주물통들에 대하여 깐깐히 훑어보신후 자리에 앉으시였다.

《기사장동무, 직방 말합시다. 중요한 문제가 있어 그러는데 기사장동무가 날 좀 도와주시오.》

《예, 제가··· 장군님을 돕는단말입니까?》

지웅도는 마치 구원을 청하기라도하듯 안길을 쳐다보았다. 안길은 웃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들며 못본척했다.

장군님께서 물으시였다.

《지금 공장에 기술자가 몇명이나 있는지 그것부터 알고싶습니다.》

지웅도는 전문교육을 받은 기술자는 한명도 없고 공장에서 일하며 자습하여 자격을 얻은 사람이 둘, 고급기능공 7-8명정도뿐이라고 했다.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은 없는가라는 물으심에 역시 딱해하는 표정으로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 자신이 설계가이고 기사장이며 지배인이기도 한것이다.죄스러운듯 무릎우에 두손을 포개고 머리를 떨구는 지웅도를 지켜보며 장군님께서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이윽고 한손으로 가볍게 책상을 두드리시더니 《기사장동무,》 하고 조용히 부르시였다. 지웅도는 어느새 수첩과 만년필을 꺼내들고있었다. 장군님께서 말씀하시였다.

《기사장동무, 내가 부탁하자는건 다름이 아니라 이 공장에서 기관단총을 만들었으면 하는것이요.》

《예, 기관단총···》 지웅도는 손끝으로 눈섭을 비벼대고나서 별스레 입을 딱 벌렸다. 《저··· 그러니 자동총을··· 말씀하시는것입니까?》

《그렇소. 자동총이요. 자동총을 만들어보자는것이요.》

《아니 그건?···》

지웅도의 그 다음말은 목구멍으로 도로 기여들어갔다. 때이르게 벗어지고있는 이마를 손톱으로 긁어대고는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왜 그러시오?》 장군님께서 또 물으시였다. 《내가 불가능한것을 요구하고있습니까?》

《장군님, 전··· 전···》

지웅도는 손에 쥔 만년필을 수첩장우에 힘껏 그루박고있었다. 검푸른 잉크가, 그의 마음속 괴로움이 수첩장 한가운데에 얼룩을 진하게 그리며 퍼지고있었다. 그는 마치 무서운 꿈을 꾸다가 놀라서 깨여난 사람같았다. 입귀를 실룩거리며 자기자신도 알아듣지못할 말을 우물거리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여전히 낮게 그리고 부드럽게 또 말씀하시였다.

《물론 쉽게 대답할 일은 아니요. 그렇지만 지웅도동무, 우린 꼭 기관단총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도 빠른 시일내에!》

《장군님!》 지웅도는 뜨거운 속삭임에 목이 메인듯했다. 《전··· 별로 재간도 없는··· 보통 기술자에 불과한데다가 우리 공장도 겨우 망가진 무기나 수리하고있지 않습니까.》

《옳소. 그걸 몰라서 하는말이 아니요. 그렇다고 늘 망가진 총이나 수리하겠는가. 아니, 그럴순 없소. 지웅도동무, 목표를 높이 정합시다.》

《장군님, 보총이래도 모르겠는데 당장 기관단총을 만든다는건···》

《만들어야 하오. 앞으로 강력한 국방공업을 창설해야겠는데 쬐쬐하게 망가진 총이나 수리하는것으로 만족해서야 안되지. 처음부터 통이 크게 일판을 벌려봅시다. 생각해보시오. 지난날 외래침략자들이 신식소총과 대포를 쏘아대며 쳐들어왔을때 녹쓴 창이나 활로 맞서던 력사를 말이요. 기사장동문 그러한 력사가 되풀이되기를 바라는것은 아니겠는데···》

《장군님!》 그는 거의나 애처롭게 부르짖었다. 《그것만은··· 기관단총만은 정말 자신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제가··· 장군님께서 부탁하시는데···》

그의 말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안길은 더이상 참고 견딜수없었다. 입술을 깨물며 지웅도를 쏘아보았다. 이보, 기사장, 도대체 그게 무슨 말본새인가. 장군님께서 지금 얼마나 마음이 무거우신지 알기나 하는가.

동무의 단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찬이슬내리는 밖에서 한시간나마 기다리셨다는걸 알기나 하는가 말이요. 그래 동문 장군님의 옷섶이 젖어있는것도 보지 못하는가. 동무를 믿고 야밤삼경에 오셨는데··· 그래 동무가 뭐길래 감히 못한다 안된다하고 넉두리를 하는가말이요. 헌털뱅이 같은것!···

그는 분했다. 자기에게 도면을 그리고 기계를 다루는 재간이 없는것이 분했다. 장군님께서 그처럼 마음무거워 꼬바기 밤을 밝히시는데 기쁨을 드릴 말한마디 올릴수 없는것이 한없이 분했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여전하시였다.

《그렇게 서둘러 단정하진 마시오. 기사장동무, 자신을 믿으시오. 그리고 함께 일하는 로동자들을 믿으시오.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고 의논하고 잘 타산해보시오.》

지웅도는 거의나 숨도 쉬지 못하는듯 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창유리가 훤해지고있었다. 날이 밝고있는것이였다. 장군님께서 시계를 보시였다. 그리고는 또다시 탁자 한끝을 손으로 가볍게 두드리시였다.

《기사장동무, 정 대답하기 힘든것 같은데 그럼 무엇이 제일 걸리는지 말해보시오.》

지웅도는 목이 잠긴듯 끙끙 갑자르며 걸리는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특수강, 고강도용수, 정밀가공설비, 기술과 경험의 부족 등을 꼽으며 다 들자면 끝이 없을것이라고 중얼거렸다.

《아니, 끝은 있소.》 그이께서 미소하시였다. 《남들이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것이 뭡니까. 기술적락후성은 결코 민족의 렬등성을 의미하는것이 아니요. 우리가 락후해진것은 봉건왕조의 쇄국정책과 사대매국행위의 후과로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인민의 슬기와 재능이 짓밟혔기때문입니다. 기사장동무도 모욕과 멸시를 받으며 기술을 익혀왔다고 했지요. 순전히 눈치로 익혔다고··· 그 왜놈들이 보란듯이 기관단총을 만들어봅시다. 다시는 외래침략자들이 우리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어떻소. 기사장동무?》

《···》

지웅도는 손에 틀어잡은 만년필로 계속 수첩장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럴수록 안길은 분노를 참기 어려워했다. 보통 다감하고 락천적인 안길로 알려져있지만 한번 격하면 칼끝같이 날카로와지는것이다. 장군님께서 가끔 무섭게 변모되는 그의 해쓱해진 낯색을 여겨보실때마다 입술을 악물지 않으면 안되였다.

《신심을 가지시오.》 장군님께서 계속하신 말씀이였다. 《우리가 산에서 싸울때 왜놈들은 우리를 <창해일속>이라고 하였소. 그만큼 수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대비도 되지않았던것이요. 그렇지만 우린 신심을 잃지 않았소. 기어이 싸워이겨야하며 또 이길수 있다는 신념, 그것이 없었더라면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을것이요. 그래서 우리 항일빨찌산들은 하자고 결심만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고 말해왔소. 기사장동무, 힘이 모자라면 힘을 보태주고 기술이 딸리면 전국의 기술자들을 전부라도 붙여주겠소. 용기를 내시오. 그렇지만 절대로 강요하진 않소. 이걸 잊지 마시오. 그저 부탁할뿐이요. 바로 내가 이 김일성이 부탁하고 인민이 부탁하고 있다는것을.》

《장군님!-》

드디여 지웅도는 목메여 울부짖었다. 금시 무릎꿇고 엎드려 빌려는듯 했다. 그의 두볼로 눈물이 줄지어 흘렀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듯 허우적거리는 그를 장군님께서 잡아 일으켜주시였다.

《기사장동무, 나는 동무를 믿소. 믿기때문에 부탁했던것이고··· 그럼 오늘은 이만합시다. 로동자들과 잘 상론해보고 결심하시오. 기다리겠소.》

 

안개가 자욱했다. 승용차는 안개낀 거리를 미끄러져갔다.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던 장군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안길동문 아직 분을 삭이지 못해 그러는것 같은데 거듭 말하지만 지웅도기사장은 좋은 사람이요. 진실하구 량심적이구···》

안길은 입을 꾹 다물고있었다.

장군님께서 계속하시였다.

《그가 쉽게, 아무런 타산도 없이 대답했다면 오히려 나는 실망했을거요. 아무런 괴로움도 없이 힘든 일을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들을 나는 믿지 않소.

아첨하기 좋아하는 속물들만이 그렇게 비위를 맞추지 못해 기회만 엿보는 법이지. 하지만 량심적인 사람들은 다르오. 힘들게 말하고 말한것은 기어이 실천하고··· 아마 그는 지금 몹시 괴로워할것이요. 가슴을 쥐여뜯으며 고민하고 있을테지.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이니까.》

잠을 깨는 도시의 소음이 점차 커가고있었지만 눈에 보이는것은 짙은 안개뿐이였다. 집집의 굴뚝들에서 쓸어나온 연기마저 안개발우에 덮씌워 승용차는 더디게 움직여갔다.

청사에서는 김책이 기다리고있었다. 손님들이 한번도 깨지않고 지금까지 내처 자고있다는것과 식사준비 등에 대하여 간단히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김책에게 손님들과 같이 기차로 출발할 준비를 해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가던길에 성진제강소에 들려 특수강생산문제를 알아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전번에 말하던 그 동무를 평양기계제작소로 즉시 올려보내주시오.》

《현무광동무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김책동무가 말하던 그 로동자출신 당책임자가 당장 필요합니다. 그를 평양기계제작소지배인으로 임명합시다. 성진제강소 당사업을 하던 동무이니 국방공업창설사업에서 한몫 할것이라고 보는데···》

《예, 장군님.》 김책이 말씀드렸다. 《손탁이 세고 성실한 동무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평양학원사업은 안길동무가 맡아주시오. 당장 보안간부학교진영도 꾸려야겠는데··· 정말 할일은 많고 준비된 일군들은 너무도 적어 안타깝습니다. 보안간부학교를 책임지고 운영할 사람이 당장 필요한데···》

안길이 말씀드렸다.

《최용진동무가 어떻겠습니까. 장군님!··· 안주에 나가있는 오진우동무도 소환했으면 합니다.》

《그것 보시오.》 장군님께서는 무거우신 음성이였다.

《여기서 뽑아 저기에 맞추고 저기서 뽑아 여기를 막고··· 아무래도 동북전장에 가있는 강건, 박락권, 최광 등 간부들을 소환해야겠는데··· 진운동지에게 위기국면만 타개되면 보내달라고 해야겠습니다. 중국당에서도 충분히 리해할것입니다.》

안길은 물론 김책도 가만히 숨죽여 듣고있었다. 간밤도 꼬바기 밝히신 장군님의 로고를 생각할때 쓰라려나는 심정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던것이다. 그런데 장군님께 지워진 짐을 덜어드려야할 많은 사람들이 지금 동북의 전장에서 피흘리며 싸우고있다.

침묵은 오래 계속되였다.

날은 완전히 밝았지만 안개는 걷히려하지 않았다.

 

×

 

지웅도는 닷새가 지났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평양학원일로 눈코뜰새없는 안길이였지만 매일 서기에게 전화를 걸어 그가 나타났는가고 묻군 하였는데 기다리는 좋은 소식은 끝내 없었다.

생각다 못해 김정숙동지께 전화를 걸었다. 지금 장군님께서 총때문에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실터인데 헌털뱅이같은 그 사람만 믿고있으면 되겠는가, 정숙동무가 혹시 비상대책을 생각해둔건 없는가고 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웃고계시였다.

《안길동지, 먼저 좋은 소식부터 알려드리지요.》

《아니 좋은 소식이라니. 지웅도가 나타났습니까?》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김정숙동지께서 그리도 밝게 웃으실적엔 기쁜 소식이 있는것이 틀림없었다. 안길은 조급해났다.

《아 정숙동무, 빨리 말해주시오. 무슨 소식인지, 예?!》

《안길동지, 평양학원 전체 학생들의 여름군복을 해결했어요. 이제 곧 실어보내겠어요.》

《?!···》

그는 속이 뭉클해나는것을 느꼈다. 김정숙동지께서 매일과 같이 공장과 농촌, 녀성들의 집회, 학교와 병원 등을 찾으며 담화도 하고 강연도 하고 지어 땅을 뚜지고 등짐도 지면서 사람들을 새 조국건설에로 불러일으키신다는것을 그는 잘 알고있었다. 그처럼 바쁘신가운데 어제는 신발문제를 풀어주시고 오늘은 또··· 그는 목구멍에 걸리는것을 꿀꺽 삼켰다.

《왜 아무말도 없으세요?》 김정숙동지께서 물으시였다. 《기쁜 소식이 아닌가부지요?》

《아니, 그런게 아니요. 절대로!》

《그럼 두번째소식을 알려드리죠. 어제 성진제강소 당사업을 맡고있던 동무가 평양기계제작소 지배인으로 임명되였어요. 가자마자 지웅도동무랑 밤새껏 기관단총생산문제를 토론했답니다. 로동자들속에서 좋은 안들이 많이 나왔어요.》

《그러니 정숙동무도 그들과 같이 밤을 새웠겠구만.》

《아니, 그걸 어떻게?》

《보나마나 정숙동무성미에··· 뻔한 일이지요. 고맙습니다, 정숙동무.》

다시 이틀이 지나서야 그는 평양으로 올라가게 되였다.

무르녹는 봄날, 정오였다.

전야마다 밭갈이, 씨뿌리기가 한창이였다. 분여받은 새땅에서 농민들이 일하고있었다. 가대기를 끄는 누렁소가 질질 느침을 떨구고 머리에 질끈 광목수건을 동인 농군의 손에서는 채찍이 건들거렸다. 보습날우에서 번져지는 젖은 땅, 삼태기에 담은 거름을 뿌리는 녀인들, 개울가에서는 한 사나이가 용드레로 물을 퍼올리고있다. 어데선가 거쉰 소리로 뽑아대는 노래소리가 바람에 실려왔다.

 

얼럴루 상사디여

가물이 들건 억수장마 지건

얼럴루 상사디여

이 한배미에 열섬은 날거라

 

페부를 찌르는듯한 알싸한 황토냄새에 안길은 눈시울을 흠칫거렸다.

해방된 조국의 이 행복을 지키기 위해 장군님께서는 건군사업에 온갓 로고를 다 바치고계신다고 생각하니 눈굽이 저려드는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집무실에 계시지 않았다. 서기가 말했다.

《장군님께선 김정숙동지와 같이 노비첸꼬의 병문안을 가셨습니다.》

《노비첸꼬?!》

《예. 가신지 한시간가량 되였습니다. 이제 곧 오실겁니다.》

《···》

그는 망설이다가 서기실에서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장군님께서 노비첸꼬의 병문안을 가셨으면 인차 돌아오시지 못할것이다.

그는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머리속에서 고패치는 갖가지 생각들- 모택동의 특사 진운이며 10만정의 무기로부터 평양학원의 교육내용, 시간할당, 새로나온 항공과의 과정안과 훈련 그리고 대안리에 터전을 정한 중앙보안간부학교문제 등을 하나하나 더듬었다. 생각은 끝없이 밀물처럼 쓸어들었고 밤바다의 파도소리처럼 웅글게 그의 가슴을 울리며 메아리쳤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별안간 벌떡 일어섰다. 장군님께서 들어오시였다.

《마침 안길동무도 와있구만.》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신다. 《보시오. 누가 왔는가.》

장군님을 따라 지웅도기사장이 들어왔다. 그뒤로 처음보는, 체격이 크고 두툼한 입술에 선량한 미소를 그린 사람이 들어섰다.

지웅도는 까만 쎄루직양복에 회색 넥타이를 매고있었는데 마치 은쟁반이라도 받쳐든듯이 손에 중절모를 들고있었다.

《지웅도기사장은 잘 아는거구.》 장군님께서 말씀하시였다. 《성진제강소에서 온 현무광동무요.지금은 평양기계제작소 지배인이구···》

현무광과 악수를 나누었다. 쇠집게같이 드세게 잡아쥐는 떡살이 앉은 손아귀에서 30살전후의 억센 로동자다운 힘과 의지를 느낄수 있었다.

장군님을 따라 집무실로 들어갔다. 마침내 좋은 소식이 온것같다. 안길은 지웅도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장군님.》 지웅도는 손에 들고있던 중절모를 마구 주물러놓고있었다.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저를 욕해주십시오. 어떤 벌이라도 다 달게 받겠습니다.》

《벌을 받겠다!-》 장군님께서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벌을 받겠는지 상을 받겠는지 그건 기관단총을 만들어놓고 봅시다. 어쨌든 할수 있다는 신심을 가졌으니 됐습니다. 그럼 지금 걸리고있는것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말해보시오.》

《저··· 한 둬가지 문제가 걸리고있습니다.》

《아니 둬가지밖에 안된단 말이요? 전번날엔 그걸 다 꼽자면 끝이 없다고 한것같은데···》 장군님께서는 얼굴을 붉히는 그를 자리에 앉도록 하시였다.

《그래 어떤것들이요?》

《저··· 첫째는 특수강이고 둘째는 복좌용수문제인데 그것도 사실은 특수강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한가지가 걸린셈이구만. 특수강!··· 그건 우리가 해결해보겠소. 정밀가공설비까지··· 어제 밤 성진제강소에 가있는 김책동무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이전 고주파공장에서 일하던 로동자, 기술자들이 특수강문제는 꼭 해결하겠다고 결의해나섰다고 하오. 참 그 문제야 현무광동무가 잘 알텐데.··· 그렇지 않소?》

현무광이 웅근 목소리로 대답올렸다.

《저보다 더 경험많은 동무들이 거기엔 많습니다.》

《그것 보시오. 하자고 결심만하면 못해낼 일이 없소. 지웅도동무, 인젠 그 말의 뜻을 알만하오?》

《예, 장군님. 인젠 알겠습니다.》

《물론 처음 해보는 일이니 쉽지 않을거요. 별의별 일들이 다 있겠지. 하지만 신념이 중요하오.기사장동무, 손탁이 센 지배인도 왔겠다 우리 다같이 힘을 합쳐 내밀어봅시다. 우선 기관단총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현대적무기들까지 만들어보잔 말이요. 그러면 우리의 후대들은 두고두고 감사를 드릴것이요. 우리가 제때에 강력한 국방공업의 주추돌을 쌓았다고!···》

지웅도의 눈가에서 번득이는 한점 이슬을 바라보면서 안길은 뜨거운 물결이 가슴가득 흘러드는것을 느꼈다.

사흘후 중국동북으로 가는 특별렬차가 편성되여 출발하였다. 수만정의 무기를 실은 그 렬차의 호송대장은 강상호였다. 안길이 역에 나가 그들을 바래주었다. 소문없이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야밤을 타서 떠나가는 렬차, 이제 함흥과 청진 등에서 새로운 방통들이 거기에 더 달릴것이다.

세찬 증기발이 역구내를 뒤덮었다. 기적소리가 울렸다.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의 고귀한 정신을,형제적우의와 숭고한 의리를 격하게 부르짖는 거세찬 웨침소리였다.

안길은 렬차가 멀어질 때까지, 어둠속에 가뭇없이 녹아버릴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평양의 이기적소리가 광활한 동북의 대지에 메아리쳐가는것을 그는 듣고있었다. 시련을 겪고있는 중국동지들은 물론 그들과 어깨겯고 공동의 적을 반대하여 싸우는 강건, 박락권, 최광, 전윤필, 남창수 등 보고싶은 전우들도 이제 그 기적소리를 듣게 될것이다. 눈굽이 젖어들었다. 멀리 사라져가는 렬차를 따라 그의 마음도 머나먼 그곳, 피의 격전장으로 달리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