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5


 

제 4 장

5

 

무르녹는 봄과 함께 내외의 정세도 일변하고있었다. 특히 동북의 정세는 나날이 험악해지고있었다. 중국공산당은 위기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던 끝에 진운을 조선에 파견하였다.

그 시각 김일성동지께서는 평양학원에 계시였다. 학생들의 학습과 훈련상태를 료해하고 새로 내온 항공과의 사업도 토의하시던중이였다. 김책, 안길, 최용진(교무부원장), 조정철(당책임자)과 리학이도 있었다. 리학이 4대의 비행기를 분해하여 렬차에 싣고 지울리에 도착한것은 이틀전이였다. 그런데 학생대상자들 100명을 선발해오라고 하였는데 지울리에 도착한것은 113명이라고 한다. 비행사반, 기관반, 무선반(무선수 등)에 속할 학생대상자들외 활공반의 13명이 기를 쓰고 따라왔다고 한다.

《그 동무들은》 하고 리학이 죄스러워하며 말씀드렸다. 《평양학원 2기생으로 보내준다고 하는데도 영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평양학원에 따라가서 장군님께 말씀드리겠다고 우겨대기에 하는수 없이 데리고왔습니다. 대체로 나이어린 동무들인데 울며불며 막 야단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래서 열세명이 더 불어났다?!》

《예, 그렇습니다.》 최용진이 말씀드렸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장군님께 꼭 말씀드려 달라고 떼를 쓰면서···》

《비행사가 되려면 그만한 배심이 있어야지. 그렇지 않습니까?··· 받읍시다. 그 동무들을 다 받아 공부를 시킵시다. 어떻습니까. 김책동무?》

《예, 그게 좋겠습니다.》

이렇게 되여 편입된 성원외 13명의 활공반 학생들속에는 후날 가렬처절한 조국해방전쟁에서 공화국영웅으로 위훈을 떨친 백기락도 있었다.

이어 김일성동지께서는 항공반의 훈련을 위한 활주로와 격납고, 기관사, 조수들의 기술기능제고를 위한 대책 등을 협의하시였다.

그때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김책이 전화를 받다가 손으로 송수화기를 막으며 그이께 말씀드렸다.

《허가이동무입니다. 장군님께 급히 알려드릴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송수화기를 넘겨받으신 그이께서는 저쪽의 목소리에 이윽토록 귀를 기울이고계시였다. 마침내 《알겠소. 곧 가겠소,》 하고 송수화기를 놓으시였다.

모든 사람들의 눈빛이 그이께 쏠려있었다. 그이께서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중국당에서 특사를 파견했는데 지금 평양에 와있다고 합니다. 최용진동무와 조정철동무들은 사업토의를 계속하시오. 김책, 안길동무들은 나와 같이 떠납시다.》

진운과 소경광이 그이를 기다리고있었다. 손님들을 안내해온 허가이가 모택동동지의 특사로 온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 전 조직부장이며 현재 동북국의 부서기 진운동지라고 정중히 말씀드렸다. 그는 통역을 대기시키고있었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 진운이 인사올렸다. 《이렇게 만나뵙게 되여 정말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반갑습니다.》 그이께서는 통역이 입을 열기도전에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뒤미처 어느새 눈굽이 젖어들어 인사올리는 소경광에게 말씀하시였다. 《소경광동지와는 구면이지요. 정말 수고가 많겠습니다. 지금도 소화동지랑 함께 싸우고있습니까?》

《아닙니다. 지금 저는 산동군구 사령원으로 있습니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 김일성동지를 다시 만나뵙게 되기를 제가 얼마나 바랐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번에 진운동지를 따라왔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책과 안길을 인사시키고 다들 자리잡고 앉도록 하시였다. 허가이는 맨 끝쪽의자에 따로 앉아 통역의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먼저 진운이 중국당과 군대의 형편을 통보하기로 하였다.

진운은 강소성태생으로서 상해에서 인쇄소의 식자공으로 일하다가 로동운동에 투신하여 26살에 벌써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으로 되였다. 문장가로 널리 알려졌고 30살때 당중앙위원회 조직부장으로 활동하면서부터 조직적수완이 능한 활동가로 인정되였다. 지금은 동북국 부서기(서기는 팽진)이며 민주련군 부정치위원이기도 하다. 모택동은 지난해 9월 팽진과 진운 등을 제일 먼저 동북으로 보내면서 쏘련군대와의 사업상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공산당군대앞에서의 첫 군사칭호를(팽진, 진운은 중장, 오수권은 소장) 수여하였다. 그러나 그는 정치활동가였지 군사전문가는 아니였다. 모택동이 바로 진운을 특사로 파견한것은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모택동동지는 우리 당과 군대의 형편, 특히는 동북의 정세를 존경하는 김일성동지께 상세히 통보해드릴것을 저에게 위임하였습니다.》 하고 진운은 가렬처절한 전장에서 달려온 사람같지 않게 침착한 어조로 말을 떼였다.

《서한은 가지고 오지 못했습니다. 연안의 당중앙과 너무 멀리 떨어져있고 시간도 촉박하여 전보를 받자 곧추 달려왔습니다. 이 점에 대해 량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리해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 하신 말씀이였다. 《함께 피흘리며 싸워온 전우들인데 격식을 차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김일성동지, 그럼 동북에서의 3개국 4개파의 리해관계와 그로부터 산생된 정치, 군사적충돌 그리고 현재 우리가 처하고있는 위기국면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되도록 흥분하지 않으려고 무진애를 쓰고있었지만 가무스레한 볼의 경련적인 떨림은 감추지 못하였다. 안길과 비슷한 나이로서 지금 41살에 이르렀지만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의 기백과 열정은 여전하였다. 그는 김일성동지께서도 잘 아시는 동북정세를 침착하고 무게있게 설명해드리려고 애썼다.

3개국(중국, 쏘련, 미국) 4개파(중국공산당과 국민당, 쏘련, 미국)의 리해관계가 지금 동북에서 류혈적인 내전의 동기로 되였다.

지난해 모택동은 중국공산당 제7차대회에서 한 결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북3성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 당과 중국혁명의 오늘과 미래의 전망으로 보아 만약 우리가 지금 가지고있는 모든 근거지를 잃는 경우에도 오직 동북만 가지고있으면 중국혁명은 공고한 토대를 가질수 있다.》

와씰리옙스끼원수의 쏘련원동군이 대일작전에 참가하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팽진을 위수로 하는 동북중앙국을 창설하고 100개 련대와 간부들을 동북에 진출시킬데 대해 결정하면서 이렇게 지시하였다.

《동북에서 우리 당의 당면임무는 신속히 그리고 견결히 동북을 쟁취하는것이며 동북에서 우리 당을 강대한 힘으로 발전시키는것이다.》

한편 장개석도 동북에 야심에 찬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로회한 타산가인 장개석은 자기의 400만 정예부대들이 중국과 먄마, 중국과 윁남국경에 있었으므로 공산당과 《평화》를 흥정하는 한편 국민당행정원장 송자문과 외교부장 왕세걸을 급히 모스크바에 파견하여 《중쏘우호동맹조약》을 체결하게 하였으며 그 조약원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써넣게 하였다.

《쏘련정부는 동3성을 중국의 한부분으로 인정하고 동3성에서 중국의 주권을 충분히 존중하며 따라서 그 령토와 행정권의 완정성을 전적으로 승인한다.》

그 문구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쏘련붉은군대의 손발을 얽어매놓게한 장개석은 뒤늦긴 했지만 미국의 힘을 빌어 대규모적인 공수 및 해상수송을 시작하였다.

한편 미국은 《8.15》후 중국에서 마음대로 거의 모든것을 다 선택할수 있는 힘과 권위를 가지고있다고 자신을 믿어왔다. 한때 그들은 공산당을 선택할수도 있었다. 연안주재 미국시찰조의 보고서에는 공산당을 선택해주었으면 하는 절절한 내용이 담겨져있었으나 백악관의 우두머리들은 국민당을 선택하였다. 그것은 달리될수 없는것으로써 누가 이길수 있는가 하는것보다 누가 이겨야 하는가가 보다 더 중요하였던것이다. 하여 미극동군 총사령관 맥아더는 《중국에 있는 일본군대는 오직 국민당군대한테만 투항할것이다.》라고 엄엄하게 명령했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쏘련의 립장은 미묘한것이였다. 원래 쏘련은 히틀러도이췰란드와 힘겨운 싸움을 앞두고있을 때부터 일본의 씨비리출병을 제일 경계했었다. 그들은 중국이 《안전띠》의 역할을 놀게 되기를 바랐고 장개석에게 제일 먼저 군사원조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8.15》후 미국과 쏘련 두 렬강이 서로 싸우기를 꺼려했으므로 쏘련은 《얄따협정》의 리행이라는 명목으로 장개석과 《쏘중우호동맹조약》을 체결하였던것이다. 국제법상의 이 《체면》때문에 일본군에게서 로획한 무기를 팔로군에게 넘겨주겠다고 한 약속도 어긴것이라고 진운은 설명하였다. 이 말을 할 때 그는 일종의 서글픈, 좀 애처롭게 느껴지는 웃음을 띄우기까지 했다.

집무실창가로는 밝은 해빛이 아낌없이 흘러들고있었으나 그의 얼굴은 어두웠다. 한동안 차거워진 눈빛으로 탁자한끝을 물끄러미 보고있다가 소란스럽게 한숨을 내뿜으며 그는 계속하였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 지금 미국은 장개석군대를 수송해주고있을뿐아니라 신식무기들로 무장시키고있으며 직접 자기 군대를 파견하여 진황도, 청도 등 요충지들을 점령하고 장개석의 공고한 후방기지로 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붉은군대의 참전과 항일련군의 피어린 투쟁으로 얻어진 해방의 열매는 장개석의 수중에 들어갈 위험에 처했습니다. 지난해 가을부터 위기일로를 겪기 시작한 우리의 형편은 나날이 파국적상태에 이르고있습니다. 우리는 계속 퇴각하고있으며 금주, 사평, 심양, 장춘 등 대도시들을 거의 전부 잃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김일성동지께서도 잘 아시리라고 봅니다.단동에까지 오시여 소화사령부를 구출해주시면서 직접 목격하셨으니 말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여전히 한마디 말씀도 없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계시였다. 이제 그가 무엇을 제기할것인가 하고 줄곧 생각하시였다. 위기국면을 강조하는 그의 어조로 미루어 지원을 요청할것이 분명한데 그 내용이 문제였다.

《현 시점에서》 진운이 계속했다. 《렬세에서 우세에로, 퇴각으로부터 공격에로 이전하기 위해서는 김일성동지, 조선의 지원이 절박하게 요구됩니다. 모택동동지께서는 현 상황에서 김일성동지께서만이 우리를 도울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도울수 있겠는지 기탄없이 말해주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미소를 머금고 말씀하셨으나 그는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소경광도 눈길을 내리깔았다. 의미심장한 침묵, 이제 알리게 될 문제의 심각성과 어려움을 강조하는듯한 침묵, 드디여 진운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우리는 남쪽에 있는 부대들을 동북으로 시급히 이동시키려고 합니다. 그러자면 당장 해상수송을 해야겠는데 아시다싶이 동북으로 들어가는 모든 항구들은 미국군대와 장개석군대가 차지하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유일한 길은 귀국경내를 거쳐 이동시키는것입니다. 시간을 놓치면 우리는 동북을 잃게 되며 동북을 잃으면···》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이마엔 진땀이 내돋고있었다. 시종 근엄한 표정을 짓고계시는 장군님께로 얼핏 시선을 옮기고는 또 입술을 깨물었다.

소경광은 여전히 눈길을 내리깔고있었다.

《계속하십시오.》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우리 나라 경내를 통하여 남방에 있는 군대를 이동시킬것을 바란다. 그것이 첫째요. 그럼 두번째는 무엇입니까. 서슴지 말고 말해주시오.》

《예, 김일성동지, 마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두번째 문제는··· 귀국으로부터 10만정의 무기를 지원받자는것입니다.》

《10만정?!》

누가 이렇게 부르짖었는지··· 김책의 목소리였는지 안길의 흐느끼는듯한 부르짖음이였는지 그이께서는 알지 못하시였다. 혹시는 너무도 뜻밖의 요청에 놀라지 않을수 없는 내심의 웨침이였는지도 모른다.모든 사람들이 머리를 들고 굳어져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탁자우의 흰 종이우에 《무기 10만정!》라고 써놓으시였다. 그리고는 손으로 그 글자들을 덮으시였다. 무기 10만정을 보내면 우리한테 남는것은 얼마이며 현대적정규무력건설은 무엇으로 하는가?···

《물론》 하고 진운이 무거운 침묵을 깨뜨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도 귀국의 사정을 모르지 않습니다. 갓 해방된 어려운 실정에서 우리를 도울만한 형편이··· 넉넉한 형편이 못된다는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그렇다.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오두막같은 집과 헐벗은 아이들 그리고 장군님께 식사한끼 대접할수 없어 눈물짓던 한 녀인의 모습 등을 상기하시였다. 이런 형편에서 군건설을 시작하고 한걸음한걸음 내짚고있는데 10만정의 무기를 요구하고있는것이다.

진운은 허가이를 지꿎게 보고있었다. 조직부장으로서 무슨 말이든 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의미같았다. 허가이도 그 의미를 알아챈듯 머리를 기웃하더니 용기를 내여 입을 열었다.

《진운동지, 지금 우리의 철도와 해상운행은 아직 정상화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사실대로 말하면 뒤죽박죽입니다.》

그는 통역이 쩔쩔 매는것을 보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급기야 얼굴을 붉히며 성난듯 계속하였다.

《나라가 해방된지 얼마안되는 조건에서 우리의 전반적경제형편은 매우 어렵습니다. 일본놈들이 패망하면서 산업시설들을 죄다 파괴하였습니다. 아시겠지만···》

《예, 알고있습니다.》

진운의 말은 풀이 죽어있었다. 허가이는 좀더 열을 올려 계속하였다.

《이런 조건에서 수많은 군대를 수송하며 식량과 피복 등을 보장하는것도 어려운 일인데 10만정의 무기까지 지원한다는것은 실로 아름찬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진운동지, 지금 미국놈들은 우리 조국 남쪽에 틀고앉아 우리까지 집어삼키려고 미쳐날뛰고있습니다. 그러므로 해방된 새 조선을 지키기 위해 정규무력건설을 다그치고있는데··· 정말 말하기 힘들지만··· 어쩌겠습니까. 제 개인적생각으로서는 그 제의를 수락하기가 어렵다고 보아집니다. 물론 제 개인의 생각입니다만···》

김일성동지께서는 허가이를 놀랍게 보시지 않을수 없었다. 엊그제까지만해도 쏘련군대가 진주해있는 조건에서 정규무력건설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경제적밑천이 생긴 다음에 천천히 해도 된다던 그가 지금 미국의 침략위협과 정규군건설의 절박성에 대하여 힘주어 말하고있다. 김책과 안길 등이 그의 귀에 대고 군대와 총에 대하여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해준 결과인가?···

장군님의 시선을 느낀 허가이는 면구스러운듯 얼굴을 붉히였다.

또다시 무거운 침묵이 계속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여전히 눈길을 내리깔고있는 소경광을 바라보시였다. 저 사람은 왜 한번도 눈을 들어 바라보지 못하고있는가. 진운의 동행자로서 오직 말없이 긍정하고 입술을 깨물며 고통을 참아가는것밖에 달리 할수가 없는듯 하였다.

《진운동지,》 그이께서 조용히 부르시였다. 《더 하실 말씀이 없습니까?》

그 한마디 말씀에 진운은 재빨리 말라들던 입술을 혀로 감빨았다. 희망의 빛이 꺼져들고있던 두눈도 생기를 띠는듯··· 그는 말했다.

《지난해 11월 20일을 시한부로 했던 쏘련군대의 철수도 이제는 끝났습니다. 내전은 본격화되고있는데 우리에게는 죽창과 칼을 들고있는 전사들도 많습니다. 이러한 형편에서 우리는 현대적무기로 장비한 적들과··· 참, 이런 실정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그만 또 같은 말을···》

서기가 과일과 차를 들여보냈다. 진운은 힘들게 이어가던 말을 멈추고 진땀이 내배고있는 이마언저리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손수 차잔을 손님들에게 들려주시였다.

《차를 들면서 얘기합시다. 지난해 초여름엔 내가 소화사령부에서 차를 대접받았는데 그 맛이 참 좋았습니다. 진운동지, 소경광동지, 어서 드십시오.》

비로소 소경광이 눈길을 들었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 그때엔 정말 인사불성이였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들은 잊지 않고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 약속드린것을 말입니다.》

《곰발통료리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김일성동지를 만나뵙고 한달후인 12월말 제가 팽진, 고강동지들과 같이 연안에 갔을때 모주석과 당중앙에 그날있은 일들을 죄다 보고드렸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보고를 받고 모택동동진 감동되여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김일성동지께서만이 그처럼 위험한 전장에 찾아오실수 있다고 하면서 이제 우리가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는가고 하기에 제가 곰발통료리이야기도 했습니다.》

《저런!》

그이께서 웃으시자 소경광은 두눈을 빛내였다.

《그때 모주석은 물론 주덕, 류소기동지들까지(주은래동지는 중경에 담판하러가고 없었습니다.)그 약속만이라도 절대 잊지 말고 꼭 지켜주자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러니 곰발통료리약속은 후날 모택동동지한테서 받아내야 하겠구만.》

그이께서 호탕하게 웃으시자 김책, 안길은 물론 진운까지 처음으로 소리내여 웃었다. 그의 가늘고 성긴 눈섭이 이마언저리로 쳐들리고 재빛의 두눈에도 웃음이 비꼈다.

방안의 분위기는 대뜸 밝고 후더워졌다. 허가이가 손님들에게 과일을 권했다. 소경광도 더는 눈길을 내리깔지 않았다. 이제 더이상 딱한 문제를, 난처하기 그지없는 10만정의 무기문제 등을 꺼낼수는 없을것 같았다. 진운과 소경광에게 다시 그 말을 반복하게 한다면 차라리 불을 뿜는 적의 화점을 향해 달릴지언정 그 말만은 더 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은 없어도 그것은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고있었다. 조선경내를 통한 대군의 수송과 10만정의 무기는 중국혁명의 생사를 가르는 문제인 동시에 조선에서의 군건설이 계속되는가 아니면 지연되는가 하는 중대사였다. 하기에 누구도 그것을 머리속에서 지워버릴수 없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그럼 본론을 계속합시다.》

그 한마디 말씀이 우뢰소리처럼 울린듯 진운은 불시에 몸을 떨었고 소경광은 어깨를 움츠리며 굳어져버렸다. 차잔에로 손을 내밀던 허가이도 굳어졌다. 안길은 피가 날 지경으로 입술을 깨물며 그이께 하소하는듯한 눈빛을 보냈다. 김책만은 그린듯 앉아있는것이 그 무엇인가에 귀를 기울이며 정신을 가다듬고있는듯 싶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계속하시였다.

《본론을 계속합시다. 이자 우리 조직부장동무도 말했지만 지금 우리의 사정은 매우 어렵습니다.일제놈들이 다 파괴해버렸기때문에 공장, 기업소들이 아직까지 숨을 죽이고있고 철도수송 역시 마비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습니다. 이런 실정에서 정규무력건설까지 내밀고있는 우리로서는 한자루의 총이 금보다도 더 귀한 형편입니다.》

진운의 얼굴에 비껴든 어두운 그림자가 더욱 짙어졌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색이 바랜 자기의 팔소매를 자꾸 쥐여만지는가 하면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추기기도 했다. 드디여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있었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 그래서 모택동동지도 우리가 제기한 문제를 조선동지들이 접수하기 힘들어할수 있다면서 비록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 해도 절대 달리 생각하지 않을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려달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볍게 미소를 그리시였다.

《아직 제말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이께서는 손으로 덮고있던 종이장을 앞으로 밀어놓으시였다. 《무기 10만정》이라는 글자들에 사람들의 눈길이 모여졌다. 기대와 의혹, 안타까움과 모대김이 실린 눈빛들이였다.

《우리는 혁명가들이고 또 공산주의자들입니다.》 그이의 표정은 차츰 근엄한 빛으로 변해가고있었다. 《협애한 민족리기주의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공산주의자들입니다.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를 말로써가 아니라 실지 투쟁과정에서 피흘려싸우며 지키고 키워온 우리들이 아닙니까. 지난날에도 그러했던것처럼 오늘도, 앞으로도 우리는 언제나 중국동지들과 어깨겯고 함께 싸울것입니다. 우리는 의리를 귀중히 여깁니다. 의리를 모르고서야 무슨 혁명가이고 공산주의자겠습니까. 우리는 당신들이 겪고있는 어려운 형편을 강건너 불보듯 할수 없습니다.》

그이께서는 김책에게 눈빛을 옮기시였다.

《어떻습니까. 김책동무?》

김책은 생각을 더듬으며 천천히 말씀드렸다.

《그렇습니다, 장군님. 피흘리며 함께 싸워온 계급적형제들이고 전우들인데 어떻게 수수방관할수 있겠습니까.》

입술을 깨물고있던 안길도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장군님!》

《음-》

그이께서는 혈색좋은 얼굴에 놀람의 빛을 가득 싣고있는 허가이쪽으로 시선을 주시였다. 그는 모지름쓰는듯 했다. 작은 두눈을 깜박거리며 손톱으로 탁자모서리를 긁어대더니 마침내 용기를 내여 큰 소리로 말씀드렸다.

《전 언제든 장군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보시오. 지난날 한자루의 총을 얻기 위해 목숨까지 내대던 김책, 안길동지들도 저와 같은 생각입니다. 모든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있습니다. 바로 그것을 믿고 모택동동지도 우리에게 도움을 청한것이 아니겠습니까. 힘자라는껏 돕겠습니다. 내가 우리의 어려운 사정을 강조한것은 그 무슨 덕을 강조하거나 값을 높이 부르자고 한것이 아닙니다. 장강이남의 대군이 우리의 경내를 통과하여 동북전장에까지 진출할수 있게 필요한 모든 대책을 세우겠지만 식량과 피복, 철도운행 등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닐것이라는것을 미리 알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지만 담보할수 있는것은 제때에 신속히 이동할수 있게 보장하리라는 그것입니다. 10만정의 무기도 실어보내겠습니다.》

《예?!》

진운과 소경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기까지 했다. 진운은 마치 별안간 강렬한 섬광에 눈이 부신듯 했고 소경광은 너무도 크나큰 충격에 심장이 마비된듯 허덕이고있었다.

《소경광동지, 기억납니까?》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단동에서 우리가 만났을 때 이미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조선은 당신들의 믿음직한 후방이라고.》

《장군님!》

소경광이 부르짖었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

진운은 목이 메여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검붉은 볼을 후들후들 떨었다. 그이께서는 겨우 그들을 자리에 눌러앉히시였다.

《우리는 남을 도와주는것을 락으로 여깁니다. <손기리인>이라고 자신을 희생시켜 남을 리롭게 한다는 중국의 성구를 생각해보시오. 그리고 중국혁명과 우리 조선혁명은 서로 직결되여있는것이 아닙니까. 모택동동지에게 전해주시오. 우리는 중국동지들이 바라는것 이상으로 도와줄것입니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진운은 갈린 소리로 이렇게 부르짖고는 목에 경련이 이는듯 울대뼈를 또 움씰거렸다. 어느새 그의 두눈에서는 물기가 번득이고있었다.

《이제 우리 당에서 토론하겠지만》 그이께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가능한 더 많은 지원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김일성동지께서는 얼마후 새로 편성된 포부대와 공병부대를 동북전장에 출동시키고 흥남비료공장에서 성능높은 《황색폭약》을 대량 생산하여보내주시였다. 조중 두나라 공병들은 동북전장만이 아니라 해남도를 해방하는 국내전쟁의 전기간 그 폭약으로 수많은 적들의 화점과 포대들을 까부시고 부대의 진격로를 열게된다. 중국의 국내전쟁참가자들치고 《황색폭약》의 덕을 크게 입었다는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기에 후날 중국의 주은래총리가 당시의 흥남비료공장을 찾아 그곳 로동계급에게 사의를 표시하고 친선의 정이 넘친 연설을 한것이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그 자리에 주은래총리의 동상을 세우도록 하신것은 실로 의의깊은 일이 아닐수 없다.

···

회견은 두시간이나 지나서야 끝났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손님들을 김책의 집에서 쉬도록 하시였다.

《아직 우리에게는 귀한 손님들을 받을만한 호텔은 고사하고 객실하나 변변한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찌겠습니까. 불편한대로 참고 쉬여주시오.》

《아 아닙니다. 김일성동지!》 진운이 황급히 말씀드렸다. 《지금 모택동동지나 주은래, 주덕동지들도 토벽집에 들어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린 영빈관에서 호사하는셈입니다. 정말입니다.

《그렇다면 됐습니다. 부디 편히 쉬게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모든것이 다 끝났다. 제일 어려운 10만정의 무기문제도 락착되였다. 손님들은 려로의 피로를 풀며 맘편히 쉬게 될것이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만은 모든것을 다시 시작하셔야 했다. 마음속생각도 처음부터 다시 이어가셔야 했다.

실은 지금 동북에서 피흘리며 싸우고있는 강건, 최광, 박락권 등을 한시바삐 소환하여 군건설의 일익을 담당케하려고 하셨는데··· 그들에게 새로 내오는 보안간부훈련소들을 하나씩 맡겨주실 생각이였다. 그 보안간부훈련소들의 위치도 확정되였다. 회령, 남신의주와 정주, 개천··· 그새 안길이 걸음을 걸은것만도 수천리에 달한다. 그 보안간부훈련소들에서 래일의 정예사단들이 자라게 된다. 그들을 지휘할 적임자들중에 최현, 류경수, 최춘국은 물론 강건, 박락권, 최광도 들어있었는데 그들의 소환은 고사하고 10만정의 무기까지 실어보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이자신이 결심하신것이다. 달리는 할수 없기에 단호하게 결심하시였다. 그렇다고 군건설을 미룰수는 없다. 단 한시도 미룰수 없다. 오늘 한시라도 그것을 미룬다면 래일은 다시 돌이킬수 없는 엄중한 국면에 처할것이다. 래일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초미의 과제가 정규무력건설이라는것을 리해하지 못하는것이다.

밤이 깊도록 잠들지 못하시였다. 끝내는 평천리로 차를 달리시였다.

대동강쪽에서 안개가 흘러오고있었다. 아직도 밤날씨는 찼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장막처럼 서리고있는 안개발속에서 도시는 고요히 잠들고있었다. 먼곳에서 기차의 기적소리가 밤의 적막을 깨뜨리며 울려왔다. 조차장에서 차갈이를 하는것인지 아니면 멀고 먼 북방으로 금시 떠난것인지··· 아무튼 새 생활의 궤도는 줄기차게 이어져가고있다.···

승용차는 어느덧 평천리의 옛 병기공장(평양기계제작소)정문앞에 이르렀다. 보초를 서던 자위대원이 다가와 거수경례를 올렸다.

《어데서 오셨습니까.?》

장군님께서 가볍게 미소를 그리시였다. 그새 경위대원들이 훈련을 준 보람이 있어 자위대원의 행동거지는 의젓하였다.

부관이 뛰여내려 뭐라고 나직이 말하자 그는 황황히 쇠사슬을 벗겼다. 그리고는 턱을 잔뜩 쳐들고 차렷자세로 굳어졌는데 조각상같이 영영 움직이지 않을것같은 모습이였다. 승용차는 자위대원의 눈앞을 미끄러지듯 지났다.

밤이 깊었지만 공장에서는 야간교대로 일하는 로동자들이 적지 않았다. 대체로 소재를 깎는 선반공들이거나 주물공들이였다. 지웅도기사장은 사무실에서 도면을 그리다가 지금 쪽잠에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말씀드린것은 나이지숙한 부기사장이였다. 금시 완제품창고로 수리를 끝낸 기관총을 옮겨가던중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안내를 받으며 기름칠까지 해놓은 각종 보총, 기관총, 박격포 등을 주런이 세워둔 창고를 돌아보시였다. 오래도록 아무 말씀도 없이 새것이나 다름없는 무기들을 주의깊게 살펴보시였다. 이제 이 무기들가운데서도 많은것을 동북의 전장에 실어보내야 한다. 이것들까지!···

가슴이 아리시였다. 부기사장이 그간의 무기수리정형에 대하여, 그 수자들까지 자랑스럽게 꼽아갈수록 어떤 허전함이 찬바람같이 가슴속깊이 스며드는것을 어쩔수 없으시였다. 끝내 아무 말씀없이 창고를 나서시였다.

2호동 2층의 기사장사무실에 들어서니 지웅도는 도면우에 머리를 박고 잠들어있었다. 어린애처럼 쌕쌕 코를 울리며 이따금 괴롭게 몸을 뒤틀기도 하였다.

아직도 밤엔 날씨가 차진다. 장군님께서는 말코지에 걸린 지웅도의 옷가지들중에서 외투를 벗겨 그의 어깨우에 쒸워주시였다. 그런 다음 발끝걸음으로 조심히 방을 나서시였다.

지금 지웅도는 지배인사업까지 겸하고있다. 장군님께서는 한시바삐 내밀성있고 공장관리운영을 책임적으로 맡아할 사람을 골라보내주어야겠다고 생각하시였다. 그리고 즉시 그의 살림집도 보장해주어야 한다. 지금처럼 무리하게 일하다가는 몸을 상할수 있다.

밖에서는 부관이 어둠속을 살피며 차곁을 오락가락하고있었다. 주물직장의 화광이 네모난 창유리를 통하여 벌거우리한 불빛을 내뿜군했다.

한동안 묵묵히 그 불빛만 바라보신다. 공장이 살아숨쉬고있다. 나날이 숨결이 커가고있다. 하지만 저 불빛이 충천하는 화광으로 온 공장구내를 환히 밝힌다해도 단숨에 10만정의 무기는 만들어내지 못할것이다. 그러면 그 공백을 무엇으로 어떻게 메꾼단말인가?··· 지웅도를 깨워 의논하고싶으시였다.

하지만 지금은 안된다. 그를 편히 쉬게 하자. 중국당의 손님들과 같이 이밤만이라도 꿈을 꾸며 쉬게 하자.

그이께서 돌아보시자 기다렸던듯이 부기사장이 재빨리 다가왔다. 여태 장군님께서 한마디 말씀도 없으신데 대하여 이상하게 여기며 차츰 멀찌기 물러서던 그였다.

장군님께서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기사장동무가 깨여나면 내게 알려주시오. 난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뜻밖의 말씀에 부기사장은 깜짝 놀란듯 했다.

《아니. 장군님, 어떻게 그렇게야 하시겠습니까. 제가 들어가서 기사장동물 깨우겠습니다.》

《그러지 마시오. 지금 곤하게 쉬는데··· 난 일없습니다. 산보삼아 천천히 걸으며 생각도 하고··· 이게 더 좋습니다. 절대 깨우지 마시오.》

《?!》

새벽이 가까와오고있었다. 수양버들을 넘어 헤염쳐가던 달이 저쪽의 키높은 백양나무우듬지에 걸려 멎어섰다. 천궁의 별들만이 끝없이 사물거리며 영원한 궤도를 따라 소리없이 움직여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