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4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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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동지께서 2층의 회의실로 들어가시자 대기하고있던 평양학원학생들이 일제히 일어나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다. 손벽이 터질 지경으로 박수를 치며 눈빛을 번뜩이는데 벌써 어떤 학생들은 물기에 젖어있었다.

그이께서는 손을 들어 답례하며 주석단으로 향하시였다. 맨 앞줄 김책과 안길에게도 손짓으로 같이 올라가자고 하시였다.

밝은 해빛이 홍수처럼 흘러들고있었다.

이윽고 장내가 정돈되자 그이께서는 밝게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평양학원학생동무들, 오늘 동무들은 토지개혁사업을 협조하기 위하여 각지 농촌들에 파견되게 됩니다. 그만큼 당에서는 동무들을 믿고 큰 기대를 걸고있는데 그것은 바로 동무들이 우리 나라의 첫 군사정치학원학생들이기때문입니다. 이제 동무들이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동무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는것인데··· 무슨 연설같은것을 하겠거니 생각하진 마시오. 격식없이 담화를 하자고 합니다. 동무들의 생각도 들어보면서···》

그이께서는 량옆에 앉은 김책과 안길을 둘러보시며 지금 이 자리에 농촌출신학생들이 몇명 와있는가고 물으시였다.

김책이 대답올렸다.

《절반이상이 농촌출신학생들입니다. 정확히 48명 됩니다.》

《음-》

그이께서는 볕에 타고 바람에 튼 학생들의 거무스레한 얼굴을 쭉 둘러보시였다. 이들중에 한종삼이라는 학생도 와있는가?···

장군님을 우러러 눈빛을 번득이는 그 많은 학생들을 일일이 다 살펴보실수는 없었다.

《내가 왜 그걸 묻는고 하니》 그이께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어제 안악지방에 나가있는 파견원동무가 말이요, 박장춘이라는 항일투사인데 그가 아주 심중한 문제를 보고해오지 않았겠소. 토지개혁법령이 발포되자 그곳 보안서, 자위대의 일부 청년들속에서 동요가 일어났다는것이요.》

한순간 가벼운 속삭임의 파도가 장내를 스쳐갔다. 토지개혁법령이 발포됐는데 그들이 어째서 동요하는가 하는 놀라움이 그들모두의 얼굴에 나타나있었다.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그들이 무엇때문에 동요했는가?!··· 나라에서 밭갈이 하는 농민들에게 땅을 준다고 하니 갑자기 땅이 그리워졌던것이요. 때마침 봄철이겠다 밭갈고 씨뿌리며 제땅에서 마음껏 농사를 지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던것이요. 그래서 어떤 청년들은 총을 바치면서 <난 가서 농사나 짓겠수다. 나를 도루 보내주시우.> 했다고 하오.》

또다시 장내에 일렁이는 술렁임의 파도, 많은 학생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있었다.

《혹시 동무들이》 하고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그런 일에 맞다들었다면 어떻게 하겠는지 누구 좀 말해보시오. 가만, 농촌출신학생동무들가운데서 말해볼 동무가 없소?》

장군님께서는 서로 눈치를 보며 주저하고있는 학생들을 둘러보면서 여기 한종삼이라는 동무가 와있는가고 물으시였다.

한종삼은 다섯번째 줄 맨끝에 앉아있었다. 장군님께서 자기 이름을 부르시자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났으나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 두눈만 슴벅거리고있었다.

《한종삼동무.》 그이께서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뭐 주저할건 없소. 생각하는것을 말해보시오.》

《장군님, 전··· 저라면···》 한종삼은 흥분에 떨린 목소리를 가까스로 짜내고있었다. 《그런 녀석들··· 주두리를 틀어놓겠습니다.》

《주두리를 틀어놓는다?!》

그이께서 소리내여 웃으시자 온 장내가 웃음바다로 화했다.

그것이 한종삼의 용기를 돋구어준것 같았다. 벌거우리해진 얼굴로 곁의 동무들을 둘러보고는 저 역시 헤벌쭉 웃었다.

그이께서 손을 들어 주의를 집중시키시였다.

《그래 종삼동무, 어떻게 한다는건지 좀 자세히 말해보오.》

《장군님!》 한종삼은 갈린 목소리로 웨치듯 했다. 《총을 내놓겠다구 하는 녀석들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해야 한다구 봅니다.》

《어떻게?》

《옛, 혼찌검을 내야 합니다. 그래서 전··· 저 같으면 그런 녀석들에게 <야, 이 시러베아들같은것들, 총을 내놓겠다는건 땅두 집두 다 도로 뺏기겠다는 소리나 같은거야. 장군님께서 땅을 주셨는데 그 땅은 누가 무얼루 지켜? 그래 지주놈들, 반동놈들이 가만 있을것 같애? 그것들이 총을 들구 덤벼들면 바지끈이나 붙잡구 있을텐가. 시라소니 같은것들!> 하구 말입니다.》

또다시 터져나온 웃음, 미간을 찡그리고있던 김책이마저 턱을 쳐들고 《허허···》 하고 웃어댔다.

장군님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어느새 저렇게 자랐는가. 우리의 한종삼, 평양학원 개원식이 있은지 불과 얼마되지 않았지만 우리 청년들은 눈에 띄게 달라지고있다. 평양학원 학제가 너무 짧다고 기웃거리던 사람들이 이들의 달라진 모습을 본다면 뭐라고 하겠는가?··· 우리는 평양학원에서 고등수학을 가르치는게 아니다. 혁명의 원리를 가르치며 항일빨찌산의 정신을, 신념을 심어주고있다. 바로 그것을 위해 이들을 토지개혁사업에, 첨예한 계급투쟁의 불길속에 파견하는것이다!···

장군님께서 한종삼을 자리에 앉도록 하시였다.

《한종삼동무가 옳게 말했소. 총이 없이 토지개혁을 해선 뭣하는가, 분여받은 땅은 누가 무얼로 지키는가?··· 총이 없으면 땅도 없고 집도 없소. 다시 말해서 나라도 주권도 없소.》

장내가 조용해졌다. 타는듯한 눈빛들이 그이께로 집중되고있었다. 창유리로 흘러드는 광선의 기둥마저 그이께로 초점을 모으는듯 했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게 무엇인가? 여기 앉아있는 김책동지나 안길동지한테도 물어보시오. 동무들이 잘 아는 조정철, 심태산, 주도일동지들한테도 물어보시오. 그러면 다들 하나같이 대답할것이요.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것이 총이라고!··· 우리 항일빨찌산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것도 총이라고 말해왔소. 바로 동무들이 메고있는 그 총우에 나라와 인민의 운명이 실려있거든. 우리가 강도일제를 쳐부시고 조국을 해방한것도 바로 그 총을 틀어잡고 싸웠기때문이요. 내가 왜 이 말을 하는가. 그것은 동무들자신이 바로 우리 혁명의 총, 계급의 총이기때문이요. 총이자 동무들이고 동무들이자 곧 총이요. 그래서 토지개혁사업을 잘 돕고 반동놈들의 준동을 짓부시라고 동무들을 파견하는것이요. 지금 반동놈들이 우리의 토지개혁사업을 파탄시키려고 별의별 짓을 다 하고있소.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죽이고 반동요언을 퍼뜨리고···》

장내는 숨소리 하나없이 조용해져있었다. 불타는 눈빛들이 그이께 모여져있었다.

《반동놈들을 철저히 짓부셔야 하오. 그리고 동무들은 농촌에 파견되는 당의 첫 파견원들이라는것을 잊지 마시오. 동무들이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소. 아직 우리 농민들속에서는 지주들의 눈치를 살피며 주저하거나 기를 펴지 못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한사람같이 떨쳐나서게 해야겠소. 차근차근 일깨워주고 잘 해설해주고 토지개혁법령이 정확히 집행되도록 농촌위원회일군들을 도와주고··· 그밖에 별의별 일들이 다 있을수 있는데 당의 뜻을 받들어 힘껏 노력하시오.

한편 동무들은 례의도덕도 잘 지키고 학습도 꾸준히 하면서 자기를 수양하고 단련하는 중요한 계기로 되게 해야겠소. 동무들도 잘 알겠지만 처음 우리는 평양학원 학제를 2년쯤 예견했던것을 1년으로 앞당겼소. 그 다음엔 또 6개월로 정하고··· 그렇지만 1기생들은 이제 그보다 더 앞당겨질수도 있다는것을 알아야 하오. 조성된 정세가 그걸 요구하고있소.

우리 조국 남쪽땅에 기여든 미국놈들이 북반부까지 집어삼키려고 괴뢰군창설을 미친듯 다그치고 동북에서는 미제의 부추김을 받은 장개석군대가 대규모적인 내전을 벌려놓았소.

그러니 우리가 어찌 편히 앉아서 흥타령만 부르고있겠는가. 이제 곧 보안간부훈련소들이 조직되는데 그 많은 청년들을 누가 교육을 주고 훈련을 시키겠소, 동무들이요. 동무들이 나가서 가르쳐주어야 하오. 그러니 동무들, 인젠 동무들을 왜 각지 농촌들에 파견하게 되는지 알수 있으리라고 보는데 그 목적은 두가지요. 첫째, 토지개혁실시를 적극 도우며 반동놈들의 준동을 짓부시는것, 둘째는 실지 사업과 생활을 통하여 정치학습과 군사훈련에서 배운것을 공고히 하고 자신을 단련하는것이요. 동무들에 대한 당의 기대가 큽니다. 무슨 말인지 알만합니까?》

《알겠습니다, 장군님!》

전체 학생들이 격정에 넘쳐부르짖었다. 열띤 목소리들의 대합창이였다. 이어 그이께서는 춘기파종을 성과적으로 보장하도록 선전활동을 벌리는 문제, 성인학교운영, 우역예방사업협조 등 농촌에 나가서 해야 할 구체적인 활동방향에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이어 안길이 따로 남아 조직사업을 하였다.

평남도, 황해도 등 파견지들이 확정되고 인솔자들이 임명되였다.

 

×

 

장군님께서는 이날도 분망한 하루를 보내고계시였다. 토지개혁사업에 동원되는 평양학원 학생들과 담화하신데 이어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상무위원회를 지도하시였다. 회의에서는 춘기파종을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대책이 토의되였다. 회의가 끝나자 차를 준비시키시였다. 대동군 남곳면으로 가시는것이였다.

떠나기에 앞서 전화를 거시였다. 청진에서 출발한 기차가 언제 평양에 도착하는가고 물으시였다. 아직 미정이라고 한다. 아침에 도착하리라던 기차가 한정없이 늦어지고있다.

남곳면으로 차를 달리시였다. 오랜시간 남곳면인민위원회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며 토지개혁법령이 정확히 집행되도록 아래일군들을 잘 도와줄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그곳을 떠나오셨을 때에는 어스름이 깃들고있었다.

집무실에 들어서자 서기에게 물으시였다

《소식이 없소?》

장군님께서 무슨 소식을 기다리고계시는지 잘 알고있었으므로 서기는 《예, 있습니다.》 하고 대답올렸다. 이어 벽시계를 재빨리 바라보며 이렇게 덧붙였다.

《이제는 역에 들어섰을것입니다.》

《그래?!··· 늦어지긴 했어도 도착했다니 됐소. 그런데 누구 마중나간 사람은 없겠지?》

《김정숙동지께서 나가셨습니다.》

《정숙동무가?》

《예, 손종준동무와 같이 한 30분전에 나가셨습니다.》

《음-》

장군님께서는 마음이 놓이시였다. 정숙동무가 나갔으니 모든 일이 잘될것이다. 앓고있다는 애들의 치료대책도 다 세웠을것이다. 집은 이미 마련되였고 살림살이에 필요한 모든것들도 정숙동무가 다 장만해놓았다. 이제는 본인에게 알리는 일만이 남았다. 정숙동무는 꿈같은 상봉을 위해서 지금껏 본인에게 알리지 않았다. 바로 오늘을 위해서였다. 그동안 사처에 사람을 띄우고 청진, 혜산 등지의 파견원들에게도 안길의 가족을 찾아보라고 부탁해온 그였다. 마침내 최춘국이 안길의 가족을 찾았다고 련락해왔을 때엔 얼마나 기뻐했던가!···

《안길동문 지금 어데 있소?》

장군님께서 물으시자 서기는 저으기 딱해하는 표정이였다. 힘들게 대답올렸다.

《저··· 안주지구로 나갔습니다. 반동놈들이 토지개혁사업을 파탄시키기 위해 무장폭동음모를 꾸미고있다는 련락을 받고 평양학원학생들을 직접 인솔하고 나갔습니다. 장군님께서 계시지 않아 김책동지와 토론이 있었다고 합니다.》

《?!》

장군님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집무실로 들어가시였다.

전화로 김책을 찾으시였다.

그의 보고에 의하면 반동놈들이 벌써 무장습격을 시작했다고 한다. 농촌위원회들을 습격하고 안주녀자중학교도 점거하였다. 그곳 지하실에 숱한 무기와 탄약들을 끌어들이였다. 그놈들을 제때에 일망타진하지 않으면 엄중한 후과가 초래될것이므로 안길이 자청하여 그곳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장군님께서는 이번에도 역시 아무 말씀없이 전화기를 놓으시였다. 물론 사태는 엄중하다. 분초가 새로운 위급한 정황이였다. 하지만 꼭 안길이 가야만 했던가?··· 안길이 아니면 그 누구든 가야 할것인데 그러면 누가 적임자인가?··· 그 누가 가든 장군님께서는 마음을 놓지 못하실것이니··· 참으로 모순된 감정이 아닐수 없었다.

그처럼 귀중한 혁명동지들을 해방된 조국에 와서까지 잃게 된다면 그이의 가슴은 아픔에 더 견디지 못할것이다.

···밤이 깊도록 안길에게서는 소식이 없었다. 그처럼 자주 울리던 전화종소리도 끊어진지 오래다. 장군님께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몇번이나 침묵을 지키고있는 전화기쪽에 눈길을 던지군 하시였다. 전화종소리를 기다리시는 한편 그것을 바라지 않기도 하시는 마음··· 역시 모순된 감정이시였다.

물론 안길이 아무런 타산도 없이 갔을수는 없다. 지난날 빨찌산의 방면군 참모장으로까지 활동한 지혜롭고 담대한 지휘관인 안길··· 그러나 지금 새로 꾸린 그의 집에서는 그가 그처럼 애타게 기다리던 안해와 자식들이 와있다. 기차를 타고올 때 고열로 의식을 잃군했다던 그의 딸애도 지금은 고요히 숨쉬며 잠들었다고 한다. 그새 정숙동무가 단천, 함흥, 고원, 양덕 등 기차가 멎는 중요역마다 전화를 걸어 치료대책을 세웠던것이다. 안길은 그것도 모르고있다. 꿈같은 행복이, 눈물겨운 상봉이 그를 기다리고있다는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있다.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있을가. 제일 근심되는것은 그가 단신으로 놈들의 총구앞으로 거침없이 나서는것이다. 안길은 그럴수 있다. 자기의 담찬 기개와 위엄으로써 놈들의 기를 꺾어버리려 할수 있다. 10년전 어느 봄날 그가 지휘하는 부대가 녕안현 삼도하자부근에서 활동할 때에도 위만군 한개 중대를 그렇게 무장해제시킨적이 있었다.

안길은 이번에도 그럴수 있다. 전투경험이 없는 몇사람만을 데리고 총격전을 벌리기보다는 갑자기 벼락같이 달려들어 놈들을 기절초풍케 하려고 할것이다. 아니면 뻐젓이 거침없이 놈들의 총구앞으로 다가서며 무섭게 으름장을 놓고 손들게 할수도 있다.

장군님께서는 밖으로 나서시였다.

그이께서는 실실이 드리운 버드나무가지를 끄당겨 가는줄기 하나를 꺾으시였다. 새싹이 돋은 그것을 찬찬히 여겨보고 냄새도 맡으시였다. 희미하게 풍기는 새삶의 향기, 상긋하고 슴슴한 향기를 머금은 그 가지끝에서 달콤한 물이 방울을 짓고있었다. 그때 가벼운 발자국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왔다. 조용히 내짚고있는 발걸음··· 장군님께서는 그 발자국소리만으로도 누구인지 잘 아신다.

《웬일이요, 이 밤중에?》

그이의 봄외투를 들고나오신 김정숙동지께서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장군님, 아직 밤날씨는 찹니다.》

어깨우에 걸쳐지는 봄외투, 온몸을 감싸주는 훈훈한 감촉, 그이께서는 한손으로 흘러내리는 봄외투깃을 꼭 잡으시였다. 더 묻지 않으신다. 피곤하겠는데 왜 자지 않고 나왔는가고 물으실 필요는 없다. 아무 말씀없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신다. 조용히 따라서는 발자국소리, 이럴 때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침묵이 더 많은것을 말해주고있다. 침묵속에서 오고가는 뜨거운 마음··· 불현듯 1941년 타향에서 봄을 맞으며 기념사진을 찍던 그 잊을수 없는 봄날이 떠오르신다. 미풍에 설레이던 봇나무숲, 봄철답게 열심히 지저귀던 새소리, 가슴속 가득히 밀려들던 훈향··· 지금도 봄이다. 해방된 조국땅에서 맞는 첫해 봄이다. 그러나 정숙동무는 여전히 휴식을 모른다. 그날에 차고있던 그 권총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있다. 그날처럼 여전히 사령부를 지켜 밤을 밝히고있다. 어제는 대동군에 나가 토지를 분여받은 농민들과 함께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오늘은 또 곡산공장에 갔었다고 한다. 끊임없는 담화, 강연, 녀성들의 집회, 경위대의 훈련, 혁명가유자녀들을 찾기 위해 밤과 낮이 따로없이 애쓰면서도 밤이면 밤마다 집무실창가의 불빛이 꺼질 때까지 어둠을 지키군 한다.

그에게 다문 한시간이라도 맘편히 휴식을 주지 못하는 마음, 정숙동무, 미안하오. 계속 이렇게 고생만 시키고있으니··· 별찌 하나가 또 하늘 전폭을 가르며 포물선을 긋더니 나무우듬지를 넘어 알수 없는 먼곳으로 떨어져내린다. 그이께서 걸음을 멈추고 하늘가에서 눈길을 돌리신다. 그이를 따라서던 하현달도 나무우듬지너머 아득한 공간에 멎어서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오?》

《안길동지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그에게 미리 알려주는게 더 좋지 않았을가 하고 말입니다.》

《그건 왜?》

《처자들이 와있는줄 알면 어떤 위험도 이겨내고 무사히 돌아올것 같아서···》

《그는 꼭 돌아오오. 안길이 어떤 사람이라고.》

《예,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 그러면서도 왜 그런지···》

말끝을 흐리는 그 젖어든 음성에 그이께서는 가슴이 뭉클해지는것을 느끼신다. 그는 온통 동지들에 대한 생각뿐이다. 자신을 떠나서 동지들부터 위하는 그 뜨거운 마음, 지금도 그의 푸른 수첩엔 희생된 동지들의 무덤, 고향과 주소, 자녀들의 이름이 가득 적혀져있다. 그들의 자녀들을 다 찾기전에는 고향 회령에도 가보려하지 않는다. 혈육들중에서 유일한 오빠의 가족들도 찾을념을 못하고있다. 그도 인간이며 더우기 녀성인데 왜 고향이 그립지 않으며 혈육들이 그립지 않겠는가.

《정숙동무.》 그이께서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정숙동무도 인젠 가족을 찾아봐야지.》

《아닙니다, 장군님. 전 자나깨나··· 희생된 동지들의 부탁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눈을 감으며 자식들을 부탁한다고··· 장군님께 자식들을 맡기고간다고 하던 그들이··· 그걸 생각하면 정말 잠들수 없습니다.》

《···》

장군님께서는 다시 밤하늘로 눈길을 옮기시였다. 그 하늘에서 무수히 빛나는 금빛눈들이 두분을 지켜보며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있는듯···

《장군님!》 한결 밝아진 음성, 그윽한 미소. 《부디 제 걱정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전··· 오늘같은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이제 안길동지가 처자들과 만날것을 생각하면··· 벌써 막 눈물이 나는게···》

장군님께서는 가슴이 찌르르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으시였다. 진정 정든 사람들과의 리별이란 얼마나 큰 고통이며 슬픔인것인가. 그런데 이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리별의 아픔과 고통을 맛보아야 한단말인가?!···

부모와 친척들, 남편과 안해, 오빠와 동생들이, 한가족, 한겨레가 영영 갈라지려하고있다. 그것을 막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손에서 총을 놓지 못하고있다. 그때문에 안길은 처자들과의 상봉도 뒤로 미루고 자기의 가슴을 겨눈 총구앞으로 걸어가고있다.

《장군님!》

그 부름소리에 그이께서는 머리를 돌리시였다.

《인젠 쉬셔야겠습니다. 밤이 너무 깊었습니다.》

《음-》 그이께서는 봄외투깃을 다시 잡아당기시였다. 《얼마나 좋은 밤이요. 그런데도 우린 쉴새가 없구만. 해야 할 일은 늘어만가고···》

《그럴수록 몸을 돌보셔야 하지 않습니까. 장군님께서 건강하셔야···》

《아, 알겠소.》

《부탁합니다, 장군님!》

《고맙소, 정숙동무. 난 정숙동무가 곁에 있으면 온갖 피로가 다 가셔지군 하는데··· 대신 정숙동무를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없구만. 예나 지금이나.》

《아이참, 장군님, 무슨 말씀을··· 저는 장군님께서 웃으시면 온갓 시름이 다 달아납니다. 정말입니다.》

《그렇소? 그렇게 쉬운 방법을 여태 몰랐구만.》

그이께서는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웃으시면서 여전히 부드럽고 따스한 눈빛에서, 그 어떤 비애도 고통도 강잉히 누르는 정겨운 그 미소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안길은 날이 밝아서야 돌아왔다. 불면으로 시달려온 두눈은 충혈져있었으나 얼굴엔 만족한 옷음이 가득했다. 장군님께서 근엄한 표정으로 맞이하였으나 그는 짐짓 모른체하며 청을 높여 보고했다.

《장군님, 안주녀자중학교에 들어박혔던 반동놈들을 다 잡아족쳤습니다. 총 한방 쏘지 않고 말입니다.》

《어떻게?··· 혹시 모험을 한게 아니요?》

《아닙니다. 그저 좀 으름장을 놓았을뿐입니다.》

그는 더이상 설명을 피하며 자기가 타고온 화물차를 가리켰다.

《기관총 두정에 보총 30정, 권총 세자루, 수류탄 다섯상자와 각종 탄약 열두상자를 로획해왔습니다. 놈굴이 서울의 지령을 받고 폭동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래 안길동무가 꼭 가야 했단말이요?》

《장군님!》 분명 그는 유쾌한 표정을 애써 강조하고있었다. 《김책동지와 사전에 토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야 평남도당사업도 맡고있지 않습니까. 제 관할구역에서 벌어진 일인데 누구한테 청하겠습니까. 강계에 있는 최현동물 불러올수도 없구···》

그는 이 말도 미리 준비해두고있은것 같다. 그이께서 노하시리라는것을 알고 변명할 말도 준비했거니와 우정 유쾌하게, 자기의 기쁨을 과장하여 목청을 돋구어 떠들려고 잡도리했을것이다. 여느때 같으면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로획한 무기 얼마 하고 간단히 보고하였으련만··· 이렇게 그가 나오는것을 보면 자기의 병세를 감추기 위한것인지도 모른다. 이마에 내돋고있는 땀방울이 그것을 귀띔해주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저릿한 아픔에 잠시 눈길을 돌리시였다. 그러자 안길이 별안간 태도를 일변하여 낮은 음성으로 말씀드렸다.

《철기가 바뀔 때마다 좀 애를 먹군합니다. 장군님, 위탈이란 그저 그렇게 지나가는 법입니다.》

그이의 안색에서 안길은 벌써 모든것을 읽었던것이다. 역시 방면군참모장 안길다운 감각이였고 판단이였다. 믿을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그의 이 말에 그이께서는 저으기 마음이 놓이는것을 느끼시였다.

《수고했소. 안길동무, 인젠 집에 가서 좀 쉬시오.》

《예? 집?···》

《그렇소. 손종준동무가 안내해줄거요.》

《장군님, 저···》

《어서 가보오. 정숙동무가 거기서 기다리고있소. 가보면 안다는데.》

장군님께서는 웃으며 그를 문밖으로 떠미시였다.

대기하고있던 손종준이 의미있게 씩 웃으며 거수경례를 붙이고 앞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