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1


 

제 4 장

1

 

나날이 대동강은 소란해졌다. 밤이면 얼음장이 터갈라지는 소리가 대포소리마냥 요란했다. 밀물때이면 한낮의 볕에 녹아 구멍이 숭숭해진 얼음장들이 서로 부딪치고 타고넘고 으깨여지며 기슭에까지 밀려나와 와삭거렸다. 물러가는 겨울이 밤마다 기를 쓰고 살얼음을 덮군했지만 봄의 미소에는 견디지 못하였다. 어느덧 물살빠른 강한복판에서는 잉어와 붕어, 메기들이 미끈미끈한 몸뚱이를 푸들쩍거리며 물우에 솟구쳐올라 은빛비늘을 번쩍이였다. 썰물을 따라 둥둥 떠내려가던 얼음장들도 나날이 줄어들었다. 소리없이 녹아버리는 그 얼음장밑에서, 물오리들의 원무로 잔물결이는 수면우에서, 기슭에 가지를 드리운 버드나무의 뾰족뾰족 움트는 버들개지의 작은 망울속에서 봄이 숨쉬고있었다.

그러나 봄은 꿈과 희망과 즐거운 웃음만을 안고오는것이 아니다. 봄은 약속의 계절이다. 헤아릴수 없이 많은 땀과 눈물, 아픔이 없이는, 그것을 이겨갈 헌신적노력에 대한 약속이 없이는 그 무엇도 기대할수 없다는것을 이 봄을 맞는 사람들은 알고있었다. 그리고 또 사람들은 알게되였다. 이 봄은 심각한 계급투쟁의 봄이기도 하였다.

3월 l일, 평양역전광장에서 있은 3.l운동 27주년 평안남도경축대회때 시위군중이 토지개혁의 실시를 요구하는 프랑카드와 기발들을 높이 들고 구호를 웨치며 주석단앞을 지나갈무렵 돌연히 주석단을 향해 날아든 수류탄이 바로 그 심각한 계급투쟁의 산증거로 되였다.

그날 주석단에는 김일성동지께서 최용진, 무정 등 간부들과 그리고 쏘련손님들인 레베제브, 로마넨꼬와 함께 서계시였다. 시위군중속에 끼여있던 반동놈이 주석단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는 순간 뒤쪽에 서있던 노비첸꼬가 비호같이 몸을 날리며 그 수류탄을 받았다. 했으나 수류탄을 뿌려던질데가 없었다.

눈깜박할사이에 일어난 일이였다. 노비첸꼬는 수류탄을 쥔 손을 배에 깔며 땅바닥에 몸을 던졌다. 순간 수류탄이 폭발하였다. 무수한 파편쪼각들이 그의 외투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수류탄을 쥐고있던 손목을 잘랐다. 다행히 그의 외투주머니속에 들어있던 두툼한 소설책(로씨야영웅들에 대한 전기소설)의 덕분으로 복부와 심장의 치명적인 파렬은 면하였다.

야. 떼. 노비첸꼬- 그의 숭고한 자기희생성으로 하여 김일성동지의 신변안전이 보장되고 로마넨꼬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생명이 구원되였다.

그때 김일성동지께서는 끄떡없이 서계시며 시위에 참가한 군중의 혼란을 수습하고 질서를 유지하도록 고무격려하시였다. 준엄한 안색으로 태연히 서계시는 장군님의 모습에 수천수만의 시위군중이 눈물을 뿌리고 계급적원쑤들을 단죄하며 대오를 지어 격류처럼 흘러갔다.

수류탄이 폭발했을 때 주석단아래에 있던 우리 경위대원들은 수류탄을 던진 놈은 물론 네명의 공모자들을 끝까지 추격하여 체포하였다. 놈들은 서울에서 장군님과 중요간부들을 테로할 특별임무를 받고온 자들이였다. 그러한 테로분자들과 대중적소요, 폭동을 목적으로 잠입한 자들이 수없이 많다는것을 놈들이 고백하였다.

겨울은 쉬이 물러가지 않는다. 두번 세번 맥이 진할 때까지 태질하며 발악을 한다. 그러므로 봄행진도 수월치는 않다. 걸음걸음 눈더미를 녹이고 얼음장을 부시며 꾸준히 줄기차게 전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날도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청사에서는 토지개혁문제가 토의되고있었다.

2층 회의실에서 밤 10시까지 제5차 확대집행위원회가 계속되였다. 회의에서는 김책, 안길, 김일은 물론 각지방에 파견되여가있던 최현, 류경수, 최춘국, 김경석, 오진우 등도 참가하였다.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을 실현하는 력사적인 사변을 앞두고 그들은 벅찬 흥분속에 잠겨있었다. 그러나 회의가 오래 계속됨에 따라 그들의 흥분은 차츰 의아쩍은 분개로, 나중엔 참을길 없는 격노로 변해가고있었다. 그 무슨 《시기상조론》을 들고나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쏘련에서의 집단화경험을 그대로 옮기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농민들의 처지와 력사적 현실적실태에 비추어 《시기상조론》이나 쏘련식을 그대로 옮기자는 주장의 부당성을 차근차근 까밝혀주시였다. 결론은 명백하였다.

회의는 밤 11시경에야 끝났다.

 

《안길동무, 나 좀 봅세.》

최현이 그를 불러세웠다. 안길은 어쩐지 속이 두근거렸다. 어제밤 안길이 최현의 코수염을 반반히 깎아버렸던것이다. 물론 김책과 류경수, 최춘국 등 동지들의 적극적인 호응과 지지밑에 저지른 일이지만 대노한 최현을 피하기에 하루종일 숨어다니다싶이 했는데 드디여 덜미를 잡혔던것이다. 천둥이 터질것이다. 최현의 떡메같은 성격을 잘 알고있는 그여서 온몸이 긴장되였다.

《무슨 일이요. 최현동무, 난 바쁜데.》

《바쁘긴, 나와 같이 가지구.》

《어데 말이요?》

《글쎄 가자는데.》

안길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 사람이 정말 분풀이를 하려나 하는 생각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놈의 코수염이 그리도 아까운것이였던가?!··· 산에서 싸울 때엔 그 코수염이 최현의 용장다운 품위와 위엄에 어울리는것이였지만 지금 정규적무력건설의 시기엔 거북스러운 덧붙이로 보였다. 특히 보안간부훈련소들의 터전을 잡고 막상 모집사업이 벌어지고있는데 최현이 코수염을 자래우고 훈련생들앞에 나서서 구령을 친다면 가관일것이다.

하기에 장군님께서도 오늘 아침 최현의 달라진 모습에 《아니, 최현동무가 이렇게 잘 생긴 미남자였소? 코수염이 없으니 더 훤해졌구만!》 하고 웃으시였던것이다.

나무잎 설레는 소리가 소란스러웠다. 이른봄의 차디찬 바람이 아직도 가지에 붙어있는 뽀뿌라나무잎사귀들을 극성스럽게 쥐여뜯는 모양이였다. 별빛하나없는 흐린 날씨여서 몸이 오싹오싹했다.

최현이 움직이지 않는 그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왜 말뚝처럼 박혀있소?》

《난 바쁜 몸이라구 하지 않소.》

어쨌든 그를 피해야 했다. 안길은 몸을 돌려가려고 했으나 어느새 최현이 다가와 그의 팔굽을 꽉 움켜잡았다.

《안돼, 같이 가기요. 동무네 집으루.》

《우리 집? 내게 무슨 집이 있소?》

《하- 이 사람이?··· 그래 집구경도 시켜주지 않겠단말이요?》

《최현동무, 이거 왜 이러우, 내야 아직 홀몸인데···》

《?!···》

최현은 꿈쩍 놀란듯 어둠속에서도 그의 두눈이 사뭇 껌벅거리는것이 알렸다. 움켜잡았던 팔을 놓으며 그가 물었다.

《그러니 정숙동무한테서 아직 아무 말도 못들었슴메?》

《정숙동무가?···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거요. 뚱딴지같이.》

《챠 이런, 장님이 귀머거리 나무랜다더니··· 정숙동무가 안길동무의 집을 마련했다는데··· 정말 못들었단말이요?》

《최현동무, 홀로 사는 나한테 집이라니···.》

《여보, 내귀로 직접 들었소. 오늘 아침!》

그랬을수도 있을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 해방된지 여러달이 지난 오늘까지 젊은이들과 같이 합숙에서 살고있는 자신을 위해 여러모로 마음쓰신다는것을 그도 잘 알고있는것이다.

안길이 말했다.

《최현동무, 우리야 지난 밤에도 같이 있지 않았소. 최현동무 코고는 소리에 한잠도 못자긴 했지만.》

바로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손종준부관이 달려나오다가 안길을 띄여보고 말했다.

《장군님께서 부르십니다. 안길동지.》

《알겠소.》

안길은 급히 몸을 돌렸으나 다시 생각하고 최현을 돌아보며 말했다.

《최현동무, 안됐소. 집에 데려다 한상 잘 차려야 하는건데··· 후에 보기요.》

최현은 말없이 팔을 홱 내젓고 돌아섰다.

장군님집무실에는 김책과 허정숙이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전화로 누군가와 말씀하고계시는데 엄한 기색이시였다.

《동무, 회의에서도 말했지만 동문 솔직하지 못하오.》 그이의 음성은 높지 않았지만 준렬하시였다. 《동무가 <평북신보>에 낸 담화라는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거기에서 동문 은근히 지주들의 의사를 대변하고있었소. 왜 농민들의 숙망은 외면하고 지주들의 편에 서는가, 왜 당정책을 시비질하는가. 말해보오. 동문 도대체 누구편이요?》

구차하게 변명하는 가늘고 새된 목소리가 수화구에서 흘러나오고있었다. 안길은 상대가 누군지 짐작되였다. 실밥이 드러나기 시작한 허름한 가죽잠바를 입고있는 그의 뻔뻔스럽고 좁은 이마우에 밭고랑처럼 깊이 패우는 주름살까지 보는듯 했다.

장군님께서 계속하시였다.

《여기 허정숙동무가 가져온 <평북신보>가 있소. 그걸 읽어주어야 인정하겠소?··· 그러니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도 꾸며낸것이라는거요?··· 솔직하지 못하오, 동문 왜 좌경에서 우경으로, 우경에서 좌경으로 비틀거리며 왔다갔다하는가. 토지개혁은 온 나라 농민들이 학수고대하고있는 절박한 문제요.

전국각지에서 매일 수많은 청원서들이 들어오고있다는것을 동무도 잘 알고있지 않는가. 그런데도 동문 <시기상조>요 뭐요 하면서 계속 왼새끼를 꼬고있는데 무얼바라고 그러는거요. 회의때 그만큼 좋게 말해주었으면 됐지 왜 계속 엇드레질이요. 동무의 사상이 위험하오!》

새된 음성이 차츰 죽어드는듯 했다. 안길은 마음속으로 전화를 받는 그쪽의 파렴치하고 비굴한 사람을 노려보고있었다. 늘 하던 버릇대로 코를 쿨쩍거리며 이발로 손톱을 물어뜯고있을것이다. 자신의 《혁명적원칙성》과 《프로레타리아트적성격》의 의상인 허름한 가죽잠바를 연신 손바닥으로 문다지며 구구히 변명하고있을것이다.

《그렇게 하시오. 말로써가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주시오.》

장군님께서는 전화를 놓고 안길에게 자리를 권하시였다.

《안길동무, 밤이 깊었지만 몇가지 의논해야 할 일이 있어 불렀소. 자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그러나 그이께서 말씀을 이으시려는데 또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예. 김일성입니다. 아-강진건선생!··· 밤이 깊었는데 왜 아직 쉬시지 않습니까? 예, 나는 괜찮습니다. 습관이 돼나서··· 예, 예. 토지개혁문제··· 곧 법령을 발포하기로 했습니다.··· 예. 그렇게 하십시오. 아울러 <농민신문>도 내왔으면 하는데 선생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농민동맹위원장인 강진건은 무던히도 느리게 말을 잇고있었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미소를 담고 주의깊게 들어주시며 말씀하시였다.

《좋습니다. 당선전부에서 돕도록 하겠습니다. 마침 여기 허정숙동무도 와있습니다. 예, 좋습니다.》

전화가 끝나자 그이께서는 허정숙에게 농민신문을 내오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기자, 편집원들을 꾸리는 문제, 자재보장대책 등을 맡아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알았습니다. 장군님!》

허정숙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군대식으로 대답올렸다. 장군님께서 웃으시였다.

《이젠 군대식으로 하지 않아도 되오.》

그러나 굳어진 습관을 버린다는것은 헐치 않은 일이다. 지난 12월 중순경 연안에서부터 동북을 거쳐 평양에 이르는 멀고먼 행군을 이어왔을 때 허정숙은 물날은 낡은 군복차림에 볕에 타고 꺼칠했었다. 그러나 광활한 중국의 대지를 밟으며 신사군의 선전일군으로 활약한 그여서 신문 《정로》의 기자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장군님의 건국로선을 받들고 정열적으로 사업하였다. 군대식으로 맡겨진 일을 철저히 끝까지 수행하였고 군대식으로 먹고자고 생각하였다. 얼마전엔 장막염으로 생사기로에서 헤매였지만 병에 차도가 있자 배에 고무호스를 꽂은채로 병원문을 나와 장군님께서 엄하게 질책하신 일도 있었다.

방금 장군님께서 전화로 비판하시던 그 《혁명가》와 이 녀성일군은 얼마나 판이한가. 장군님의 말씀을 곧 법으로 아는 안길이여서 모든 사람들을 그 하나의 기준으로 갈라보는데 습관되여있는것이다.

《안길동무,》

장군님께서 그를 부르시였다.

《옛.》

자기 생각에 묻혀있던 그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니 오늘은 웬일이요. 안길동무까지 차렷하구있으니.》

장군님의 그 말씀에 다들 소리내여 웃었다. 안길은 저으기 쑥스러운 표정으로 허정숙을 마주보며 같이 자리에 앉았다.

《이제부턴 안길동무가 평양학원사업을 맡아보아야 할것같습니다.》 장군님께서 말씀하시였다.《김책동무가 이제 산업국사업도 해야 하므로 안길동무 일감도 늘어나게 되였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장군님!》

저도 모르게 또 벌떡 일어섰다. 가벼운 웃음, 장군님께서도 웃으시며 그를 손짓으로 자리에 앉도록 하시였다.

《그럼 먼저 토지개혁준비에서 아직 론의되지 않았던 문제들을 토론합시다. 우선 토지개혁법령이 발포되면 그 실시를 감독할 검열그루빠를 조직해야겠습니다. 평양학원학생들도 동원하여 각 지방에 파견하고 해설문도 준비하고 작가, 예술인들의 활동과 선전원들을 위한 제강과 사업계획도 준비하고··· 할 일이 많습니다.》

바로 그때였다. 창밖의 어둠속에서 《누구얏!》 하는 야무진 웨침소리와 함께 성급히 달려가는 발자국소리들이 들려왔다. 뒤미처 《땅!》 하는 총성, 동시에 자동총의 련발사격이 터졌다. 《곽일무, 추격하라!》 하고 웨치는 소리, 분명 강상호의 목소리였다.

모두가 일시에 자리에서 벌떡 뛰쳐일어나 장군님을 쳐다보았다. 그이께서는 창밖에 피끗 시선을 주시더니 책상서랍에서 권총을 꺼내드시였다. 김책과 허정숙이 어느새 창곁으로 달려가고 안길은 장군님을 몸으로 막으며 소리쳤다.

《장군님, 위험합니다.》

《일없소. 총소리가 멀어지고있지 않소.》

그이께서는 권총을 서랍에 도로 넣으시였다.

《장군님, 제 잠간 나가보겠습니다.》

문을 열고 뛰쳐나간 안길은 아래층으로 계단을 세개 네개씩 뛰며 성급하게 달려갔다. 경위대병실에서 총멘 대원들이 달려나와 강상호의 구령에 따라 어디론가 달려가고있었다. 해방산기슭으로 멀어져가는 총소리, 아마도 곽일무소대장이 놈들을 추격하는듯 했다.

《어떻게 된 일이요?》

안길이 보초병에게 소리쳐 물었다.

《반동놈이 나무우에··· 기여올랐습니다. 그런걸 소대장동무가···》

나무우에 기여오르던 놈은 바닥에 떨어져 즉사했다. 여러 사람들이 쓰러진 놈이 가지고있던 무기를 주어들고 웅성거리는데 합숙에서 달려나온 최현이 갈범처럼 뛰며 고함치고있었다.

《뭐라구, 어떤 놈들이라구?··· 그래 저 나무꼭대기에 올라가있었어? 그런데두 모르구있었다?··· 경위대장이 어데 갔어. 당장 도끼를 가져와. 내 그녀석 대갈통을 박산내구 말테다. 도끼를 가져오라는데, 빨리!···》

그는 맨내의바람이였다. 무섭게 날뛰는 그의 입에서 허연 입김이 쏟아져나오고있었다. 어둠속에 솟아있는 느티나무를 쳐다보고 죽어넘어진 놈과 높지 않은 담장너머를 살펴보고 멀어져가는 총성을 따라 서문재쪽으로 달려가려다 피꿋 머리를 돌렸다.

《도끼를 가져오라는데 왜 멍하니 있어. 엉?··· 강상호는 어디에 숨구, 대관절 이게 무슨 일본새야. 백두산에서 자란 범새끼들은 다 어데가구 바지저고리들만 남아있는거야. 엉? 왜 말들이 없어?!》

안길이 죽은 놈을 끌어가라고 지시했다. 비로소 안길을 발견한 최현이 목터지는듯한 소리로 노성을 터쳤다.

《안길이! 이게 동무가 하는 일본새야? 안길이 여게 있으면서 장군님신변에서 총소리가 나게 해?!》

최현은 한 대원이 들고온 도끼자루를 빼앗다싶이 하고는 그것을 꽉 거머쥐였다.

《안길이! 조정철, 김증동이, 심태산, 주도일이 다 어데루 갔어. 어제밤 내 수염을 싹 깎아버린건 참을수 있어두 이런 꼴을 만든건 용서치 못해. 장군님을 모시구있으면서··· 이럴 땐 어떻게 하는지 동무두 알구 있겠지. 어디 죽어봐라, 죽어봐!》

시퍼런 도끼날이 눈앞에서 펀뜩했다. 격노한 입에서 퍼부어지는 허연 입김과 황소숨을 몰아쉬는 거친 소음, 뒤미처 텅!- 하고 무엇에 박히는 도끼날소리, 까딱하지 않고 굳어져있는 안길의 머리우로 말라버린 잎사귀들이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누군가 《악!-》 하고 부르짖고는 혀를 깨문듯 가늘게 신음했다.

《죽어봐라, 안길이!》 최현이 씨근거리며 울부짖었다. 《죽어봐라, 죽어봐라, 죽어봐라!》

싯허연 도끼밥들이 파편처럼 날았다. 쩡쩡 느티나무 밑둥을 찍을때마다 가지들이 휘청거리고 나무잎사귀들이 흩날렸다.

안길이 소리쳤다.

《이보 최현이, 어째 내 목을 치지 못해. 응?》 갈가리 찢어진 웨침이였다. 《그 도끼로 이 목을 치라구. 이 못난놈의 목을 치란 말이요.》

《네 목을 치는거야. 해방된 조국에 와서까지 장군님을 위험속에 계시게 했으니 너는 살아 뭣하구 나는 살아 뭣한다는거야. 그래서 네목도 치구 내목도 치는거야!》

이번엔 어찌나 세게 쳤던지 도끼날이 잘 빠지지 않는듯 했다. 느티나무가 몸부림쳤다. 찬바람이 휘익 불면서 발밑의 가랑잎들을 쓸어갔다. 그 순간 다시 도끼를 쳐들던 최현이 헉- 하고 숨을 내뿜더니 굳어졌다. 장군님께서 가까이 오셨던것이다.

《최현동무, 그만두시오.》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애꿎은 나무하군 왜 해보는거요. 아까운 나무를 찍다니.》

《장군님!》 최현이 부르짖었다. 《반동놈들이 이 나무에 올라서 총을··· 총을 겨누었댔습니다.》

《그렇다고 나물 찍다니··· 그러지 마시오. 쥐새끼들이 쏠라닥거린다고 백전로장들이 놀라서야 되겠소?》

최현의 손에서 도끼가 떨어졌다. 후들후들 몸을 떨며 안길을 치떠보는데 동무는 왜 가만있는가, 입이 얼어붙었는가 하고 웨치는듯 했다.

《최현동무.》 장군님께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까짓 놈들엔 신경쓰지 마오. 우리 경위대도 만만치 않소. 두고보시오. 오늘 습격해온 반동놈들을 다 잡아족칠거요.》

《그렇지만···》 최현의 눈가에서 무엇인가 번득이고있었다. 《장군님, 제 한가지 청을 드려도 되겠소다?》

그의 입에서 북방사투리가 나올때엔 흥분이 극도에 이르고있다는것을 의미한다. 안길은 긴장해졌다. 도끼로 목을 치겠다고 덤벼들 때처럼 무슨 생뚱같은 소리가 나올것 같았다. 최현이 억눌린 목소리로 계속했다.

《장군님, 아무래도 담장을 높이 쌓던지 위병소를 길건너까지 쑥 내밀던가 해야겠소다. 안길동무도 저와 같은 생각이오다.》

안길은 펀뜩 머리를 돌렸다. 이건 또 뭐야. 나는 왜 꺼드는거야! 하고 생각했으나 그가 무섭게 쏘아보는통에 하는수 없이 그렇다는 의미로 《예.》 하고 나직이 외마디소리를 짜냈다.

《아니 그래선 안되오.》 장군님께서 하신 말씀이였다. 《담장을 높이치면 인민들이 뭐라고 하겠소. 왜 우리가 인민들과의 사이에 장벽을 쌓는단 말이요?··· 그럴순 없소.》

《장군님!》

《최현동무, 너무 흥분해서 그러지 마시오. 최현동무도 잘 알면서 뭘 그러오. 어서 들어가 맘편히 쉬시오. 래일 보안간부훈련소문제와 관련한 토론이 있는데 최현동무, 어떻게 하면 나라의 성벽을 더 든든히 쌓겠는지 그거나 더 연구해봅시다.》

이어 그이께서는 안길을 향하여 이젠 들어가 사업토의를 계속하자고 하시였다. 장군님뒤에 서있던 김책과 허정숙이 자리를 비켜드리자 장군님께서 현관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