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4


 

제 3 장

4

 

희뿌연 태양이 뉘엿뉘엿 지고있었다. 집집의 물매진 지붕에서 녹고있던 눈더미에 불그레한 빛이 얼씬거렸다. 처마끝에 매달린 고드름들도 창끝처럼 다시 얼어붙기 시작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시였다. 어깨우에 흘러내린 목도리를 다시 감으며 평양학원에서 만나보신 젊은이들을 생각하시였다. 낡고 허름한 옷들을 입고있던 청년들, 그들이 신고있던 신발은 더더욱 한심했다.

창이 떨어진 로동화를 가는 삼바오래기로 칭칭 감고있던 한종삼… 그러한 모습을 보시며 장군님께서는 얼마나 가슴이 쓰리고 아프셨으랴.…

김정숙동지께서는 다시 걸음을 옮기시였다. 날이 저물고있으므로 서두르셔야 했다. 거리에서 좀 벗어난 보통강기슭으로 빨리 가셔야 했다. 좀전에 녀성들의 집회에 참가하고 나오실 때 곽일무가 풍친 차를 가지고왔었다. 안길이 그를 보내면서 잘 모시고 오라고 했다는것이다. 녀사께서는 그러한 특전을 질색하시였다. 차는 물론 곽일무도 등을 밀어 돌려보내시였다. 장군님의 경위대원을 자신께 불잡아둘 권리가 없다고 보신것이였다.

처마를 맞대고 비좁게 들어앉아있는 집들사이로 나가시였다. 늦지 않도록 지름길을 택하신것이였다.

땅바닥에 떨어진 고드름이 발밑에서 부석거렸다. 어느집 부엌문에서 매운 연기가 쓸어나왔다. 탄불을 살리고있는듯했다.

또 걸음을 멈추시였다. 귀덮개모자를 쓴 웬 중년사나이가 히물거리며 다가왔던것이다. 한손을 조끼안주머니에 넣고있는데 그속에서 시계줄이 비죽 내밀려있었다.

《회충시계를 사시죠. 값은 눅게 드릴테니.》

사나이는 두눈을 끔쩍거리며 조끼주머니속에 들어있는것이 아주 값진 물건이라는것을 암시했다.

《시계요?》

《예, 자 보시려우? 스위스제 고급시계입죠.》

녀사께서는 웃으며 사양하시려했다. 그러나 다음순간 사나이가 비틀거렸다. 소리없이 나타난 곽일무가 그를 자기쪽으로 홱 잡아돌렸던것이다.

《썩 물러가우. 어서!》

《아- 이거 왜 이러시우. 예?!…》

사나이는 눈살이 꼿꼿해지며 무어라고 소리치려했으나 군복입은 곽일무의 사나운 눈빛에 기가 질린 모양이였다. 혀아래소리로 두덜거리며 어느새 골목길로 사라져버리고말았다.

《동문 왜 또 왔어요?》 녀사께서 놀라며 물으시였다.

《그리구 그건 뭐예요. 다짜고짜 사람을 밀치면서… 그러라구 총을 메워준줄 아세요?》

《저… 수상한 사람이 다가들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하마트면…》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예요.》

《잘못했습니다.》

《그럼 돌아가세요.》

《아니 그건 안됩니다.》 곽일무는 또 눈빛을 번득이였다. 《혼자 가시면 안됩니다. 전… 임무를 받고왔습니다. 잘 모셔오라구 했는데… 같이 가게 해주십시오. 전 돌아갈수 없습니다.》

곽일무가 이렇게 나올 때엔 그 어떤 힘으로도 돌려세울수 없다는것을 녀사께서는 잘 알고계시였다. 고집을 쓰기 시작하면 바오래기로 잡아끌어도 앙버틸 곽일무였다.

《이후부턴 각별히 조심하세요. 장군님의 경위대원이라는걸 언제든 잊지 마세요.》

《예, 꼭 명심하겠습니다.》

땅거미가 졌다. 눈더미들이 희끗거렸다. 교외로 뻗어간 길은 눈보라가 흽쓸어간것처럼 반반했다. 행인들도 뜸해졌다. 곽일무는 자주 긴장한 눈빛으로 사방을 휘둘러보군했다.

녀사께서 웃으며 물으시였다.

《왜 안절부절 못하는거예요?》

《여긴 위험합니다.》

여전히 곽일무는 한손으로 권총집을 꽉 잡고있었다.

《걱정 말아요. 아무 일도 없을테니… 그건 그렇구… 경위대소대장으로서 한번 말해보세요. 지금 우리가 어데로 가고있어요?》

《고무공장쪽으로 갑니다.》

녀사께서는 저으기 놀라시였다.

《여기에 고무공장이 있다는걸 어떻게 알았어요?》

《모릅니다. 생판 처음 와보는곳입니다. 그렇지만 고무타는 냄새루 짐작해보았습니다. 그다음 또 한가지는… 녀사께서 평양학원에 다녀오신후 몇번이나 학원학생들의 옷과 신발이 형편 없더라고 근심하셨습나다. 한종삼 그 친구 얘기도 하시면서…》

녀사께서는 코마루가 날카로운 그의 얼굴을 새삼스럽게 여겨보시였다. 드세고 성급하고 배짱이 센 이 젊은이가 그새 몰라보게 자라났음을 기쁘게 생각하시였다. 그렇지만 화약통같이 무섭게 터지군하는 그 격한 성미만은 고쳐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상서롭지 못한 일을 저지를수 있다. 장군님을 뵙고자 찾아왔던 홍근수목사를 문밖에서 쫓아버린 일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윽고 개인기업가가 차려놓은 자그마한 고무공장에 이르시였다.

널대문에서 방울소리가 짤랑거렸다. 잠시후 누빈 솜옷을 걸치고 동그란 백테안경을 낀 체소한 사나이가 나타나 경계하는 투로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는가요. 일이 끝났는데요.》

《주인님을 만나 좀 상론할 일이 있어 왔습니다.》

《나를요?》

《그러니 주인님이시군요. 안녕하세요?》

《헌데 저 사람은?…》

주인은 곽일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예, 저와 같이 왔습니다. 미안하지만 좀 들어가서 얘길 해도 됩니까. 몹시 춥군요.》

그래도 주인은 곽일무를 미심쩍게 훑어보았다.

《혹시 보안서에서 오셨수?》

곽일무가 피씩 웃었다. 주인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동그란 안경알이 싸늘하게 번득이였다.

《혁명군 같지두 않구…》

이번엔 녀사께서도 웃으시였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보면 다 알지요. 기업을 하려면 두눈을 밝혀야 합니다. 나를 속여넘기려 왔는가 동업자가 되려구 왔는가?… 그래서 두눈이 있는겁죠. 거짓과 진실을 잘 가려보라구요.》

그가 이렇게 사설을 늘어놓는것은 어느정도 마음이 풀렸다는것을 의미했다. 아닐세라 추운데 어서 들어가자고 뒤늦게나마 친절하게 말했다.

휑뎅그레한 작업장에서 숨막히는 고무냄새가 풍겨왔다. 온몸에 타르칠을 한것처럼 새까만 로동자들 몇이 아직도 뒤거두매를 하고있었다.

주인은 손님들을 사무실로 안내했다. 탄내가 지독했다. 방금 난로에 탄을 덮은것 같았다. 주인은 책상우의 장부책과 수판을 밀어놓고 백테안경을 바로잡으며 손님들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도수높은 안경알속에서 가늘게 쪼프린 두눈이 상대편의 속내를 탐지하려는듯 주의깊게 내다보고있었다.

《보시다싶이 작구 보잘것 없는 공장입지요. 공장이라구 말할나위도 없는!…》

손님들에게 볼품없는 나무의자를 권하고나서 주인은 손을 내밀었다.

《자 그럼 거래를 해봅시다. 용건을 말하시죠. 이 손에 무엇을 쥐여주겠습니까?》

《쥐여주다니요?》 녀사께서 목도리를 풀다말고 물으시였다. 《무슨 말씀인지…》

《아 내 눈은 속이지 못합니다. 이자도 말했지만 두눈이 있지 않습니까. 척 보면 다 압지요. 그래 돈을 대겠습니까 아니면 자재를 맡겠습니까, 어느쪽입니까?》

녀사께서는 웃으시였다.

《의논을 해봅시다.》

《아, 그래야지요. 의논을 해얍지요.》 하고 그는 또 사설쟁이처럼 열이 올라 떠들기 시작했다. 《글쎄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지. 보통분이 아니라는걸 전 벌써 알아봤습지요. 옷차림은 소박하지만 대단한 분이시라는게 대뜸 알리지 않겠습니까. 그럼 말씀하시죠. 무얼 바라십니까?》

《로동화 천컬레, 며칠내로 말이예요.》

《며칠내로?… 그것도 천컬레씩이나!… 아 우린 아직 고무신이나 만드는 작은 공장인데요. 로동자들도 열명뿐인데다가 천도 없구.…》

《천은 대주겠어요. 황금정에 사는 리성찬이라는 포목상을 아시죠?… 약속했어요.》

《아-니 그 량반… 구두쇠로 유명한 그 사람 약속을 믿으시다니… 그건 안됩니다.》

그는 수판을 들어 절컥거렸다. 그 수판알들이 황금정에 사는 포목상 리아무개의 금새를 다 계산해 두고있다는 의미같았다.

녀사께서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그 포목상도 처음엔 보잘것 없는 이 고무공장엔 천을 대주지 못하겠다고 하더군요. 믿을수 없다구요. 그렇지만 끝내는 약속했습니다. 요구대로 질긴 신발천을 대주겠다고 말이예요.》

주인이 소리쳤다.

《그 량반이? 오히려 나를 못믿겠다구요?… 헛참… 그런데 그 구두쇠가 무얼 바라고 동의했습니까?》

《바라는건 없어요.》

《아니 그럴수 없습니다. 잘못보셨습니다!》

녀사께서는 얼어든 손을 난로에 쪼이며 그가 흥분을 가라앉히기를 기다리시였다.

이윽고 김일성장군님의 조국개선연설을 상기시키시였다.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새 민주조선건설에 이바지하라고 호소하시지 않았는가. 그래서 리성찬이라는 포목상도 동의해나선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수백벌의 군복을 짓겠다고 나선 기업가도 있고 여기보다 큰 고무공장주인인 박아무개는 앞으로 수천컬레의 로동화를 생산하기로 했다. 그들모두가 장군님의 뜻을 받들겠다고 결의해나섰다고 차근차근 말씀하시였다.

주인은 물고기처럼 입만 벙긋거리고있었다. 마침내 두눈을 사뭇 껌벅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니 천컬레의 로동화는… 그걸 만드는것도 장군님의 뜻을 받드는것이란 말씀이신가요?》

《그러문요.》 녀사께서 밝게 웃으시였다. 《고무신이나 만들던 작은 공장에서 며칠내로 천컬레나 되는 로동화를 생산한다는게 쉽지 않을거예요. 그렇지만 장군님께서 그걸 바라고계신다는것을 잊지 마세요. 천뿐아니라 재봉기며 기능공들도 있어야겠으니 걱정되시겠는데 그 문젠 제가 장군님께 말씀드려 해결해보겠어요.》

《예? 장군님께 말씀드린다구요?》

주인의 얼굴이 실룩거렸다. 다시금 눈여겨 녀사를 살피며 거의나 고통스러운 빛으로 가늘게 속삭이였다.

《저… 뉘신지?…》

《아, 제가 미처 자기 소개를 못해 미안합니다. 김정숙이라고 합니다.》

《?!…》

별안간 그는 호되게 얻어맞은듯 했다. 부지불식간에 터져나온 신음소리를 삼키며 목멘듯이 떠듬거렸다.

《그러니 빨찌산의 녀장군이신 김정숙녀사분을… 아, 아니 그 말씀을 왜 이제야 하십니까. 그런줄도 모르구 이 미욱한것이… 정말 이럴법이 어데 있습니까.》

녀사께서는 허리굽혀 인사올리려는 그의 두손을 잡으시였다.

《인사가 늦어서 미안합니다. 허지만 오늘 좋은분을 알게 되여 정말 기쁩니다.》

《원 무슨 말씀을… 돈밖엔 모르는 이 못난것을 용서하십시오.》

《아닙니다. 주인님은 지금 우리 인민들의 신발문제를 풀기 위해 애쓰고있지 않습니까. 좀더 힘을 내여 더 많은 신발을 만들어주세요, 아직은 이 부탁밖에 더 드릴것이 없습니다.》

주인의 안경알이 뿌옇게 흐려졌다. 안경을 벗어닦으며 목갈린 소리로 말했다.

《해얍지요. 아니 꼭 해내겠습니다, 예.》

그새 밖에서는 바람이 세차지고있었다. 보통강기슭의 버드나무들이 휘청거리며 잔가지들을 머리칼처럼 날렸다. 별빛 한점없는 밤이여서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앞서 가던 곽일무가 미끄러지며 눈더미속에 빠졌다. 녀사께서 끌어내여 눈사람같이 된 그의 옷을 털어주시자 곽일무는 성칼사나운 그답지 않게 맥없이 중얼거렸다.

《안길동지가 이걸 알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날 가만 두지 않을겁니다.》

《그건 걱정 말아요. 내가 비밀을 지켜줄게. 그럼 되지요.》

곽일무는 불에 덴것처럼 펄쩍 뛰였다.

《아니, 그건 안됩니다. 제가 어떻게 거짓말을… 그럴수 없습니다.》

《누가 거짓말을 하라구 했어요. 가만 있으라구 했지.》

이번엔 녀사께서 앞서시였다.

《나를 따라오세요. 우린 또 한군데 들려볼데가 있어요.》

곽일무는 울상이 되였다. 래일로 미루면 안되는가고 애원하기에 이르렀다.

《아니, 오늘 가야 해요. 어데로 가겠는가 아까처럼 맞혀봐요.》

《모르겠습니다.》

불부은 소리였다.

녀사께서는 즐겁게 웃으시였다. 경위대의 소대장이 왜 그렇게 볼부은 소리를 하는가고 하시며 그가 쓴 모자를 꾹 눌러놓으시였다.

《조금 더 가면 유명한 온돌공아바이가 있다구 해요. 거기 잠간 들려보자요.》

《온돌공아바이는 또 뭡니까?》

《전번에 평양학원에 가보니 불이 잘 들지 않는 침실들이 있더군요. 이 추운때 여북 고생이 많겠어요?… 참, 일무동무가 잘 아는 한종삼동무네 침실도 랭방이였어요. 그대로 겨울을 나게 할수야 없지 않아요.》

곽일무는 잠자코 있었다. 생각이 깊어진 모양이였다. 묵묵히 걷고있다가 조용히 물었다.

《평양학원학생들이 그렇게 많습니까?》

《그건 무슨 말이예요?》

《아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로동화 천컬레를 며칠내로 만들자구.》

《오-》 녀사께서는 드디여 큰길로 나서시였다. 《이제 거기로 항공대성원들도 가게 됐어요.》

《항공대도 있습니까?》

《그래요. 항공대가 있어야 조국의 하늘을 지킬게 아니나요. 장군님께선 벌써 오래전에 항공대를 무으셨어요. 코수염을 달고있는 유명한 비행사를 일무동문 보지 못했어요?… 두고 보세요. 일무동무와 같이 젊고 씩씩한 수많은 청년들이 우리의 땅과 하늘, 바다를 지키게 될거예요. 그때문에 우리 장군님께서 얼마나 마음쓰시는지 동문 아마 다 모를거예요. 장군님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려야겠는데…》

곽일무는 말없이 먼 하늘가를 눈겨눔하고있었다. 마치도 그곳에서 은빛으로 번쩍이는 새 조선의 비행기를 발견하려는듯 싶었다.

녀사께서 또 물으시였다.

《어때요. 인젠 더 래일로 미루자는 말을 하지 않겠지요?》

《예, 날이 샐 때까지라도 함께 있고싶습니다. 정말입니다. 사실은 아까두 제가 모셔오겠다구 자청했댔습니다.》

《그럼 됐어요.》 녀사께서는 비뚤어진 그의 모자를 바로 씌워주시였다. 《우리 노래를 부를가, 어때요?》

《좋습니다!》

《그럼 혁명가요!… 그런데 조용조용 부르자요. 시내에 들어섰는데…》

녀사께서 먼저 선창을 떼시자 곽일무도 새된 목소리를 합쳤다.

 

설한풍이 휩쓰는 험한 산중에

결심품고 싸워가는 우리 혁명군

 

멀리서 전차의 종소리가 울려왔다. 어느 벽돌담너머에서 외로이 빛을 뿌리던 가로등이 호흡하듯이 껌벅거렸다. 바람에 날리던 눈가루들이 그 불빛속으로 날아들며 은빛으로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