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2


 

제 3 장

2

 

길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눈이 퀭해서 바라보고있었다. 기세좋게 채찍을 휘두르던 마차부까지 말고삐를 바싹 당기며 속도를 늦추었다. 썰매를 타던 아이들이 바지끈을 추슬러올리며 길량옆을 따라 달려오는데 썰매가 뒤집힌것도 모르고 코를 흘쩍거리며 겨끔내기로 소리치고있다.

《조선군대다, 조선군대!》

《아니야 빨찌산이야!》

《군대다야! 장총 멘거 봐!》

《싸창두 있어. 저거 봐!》

《그건 권총이야.》

《싸창이다야!》

《권총이야!》

《싸창이야!》

아낙네도 늙은이도 젊은이들도 멎어섰다. 전차에 타고있는 사람들까지 창유리에 이마를 바싹 붙이고 내다보고있었다. 그통에 어떤 늙은이는 코가 납작해졌는가 하면 웃고있는 처녀의 두눈이 별스레 찌부러져보이기도 했다.

입을 벌리고 보던 행인들이 수군거렸다.

《어데서 저런 끌끌한 젊은이들이 나타났소. 백두산에서 왔다오?》

《빨찌산이디요, 김장군빨찌산!》

《아따 빨찌산은요 다 시꺼멓다구 해요. 만주바람에 터서.》

《모르는 소리. 김장군빨찌산은 다 새파란 젊은이들이요. 내가 몇번이나 만나봤다구.》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청사에 들어서던 고윤이도 걸음을 멈추었다. 씩씩하게 대렬합창을 하며 돌아오는 경위대원들의 모습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가슴속 깊은곳에서 벌이 쏘는것처럼 뜨끔한 침이 박히는것을 느꼈다. 뻐근한 아픔… 질서정연하고 활기있고 힘찬 대오를, 총멘 전사들의 대오를 아픔없이 볼수 없는 그였다. 그들처럼 목청껏 노래하며 행진하고싶은 마음, 총을 메고 씩씩하게 발맞추어나가고싶었으나 그에게는 그러한 기쁨이 차례지지 않고있다.

그는 두번째 소대의 앞장에서 감때사나운 눈빛을 번뜩이며 지나가고있는 젊은이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한때 그가 처음 소대장으로 임명되여 결패있게 소대를 이끌고나가던 일이 떠올랐다. 저 젊은이처럼 자신만만해있던 그 시절… 오래전일이다.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옛 시절… 그는 손때묻은 붉은군대전투가방을 한손으로 꽉 누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정문앞을 지나 청사현관쪽으로 가던 그는 갑자기 《여, 곽일무!-》하는 웨침소리에 무심코 머리를 돌렸다.

낯 익은 한 청년이 방금 두번째 소대의 앞장에 서서 들어선 소대장을 소리쳐 부르고있었다. 금시 대오를 멈춰세우고 무슨 지시인가를 주고있던 곽일무가 그쪽을 바라보더니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잠간 기다려달라는 의미같았다.

고윤은 다시 걸음을 옮기려했으나 머리를 치는 하나의 기억에 걸음을 멈추었다.

정문쪽에서 고개를 길게 빼들고 들여다보는 청년, 그의 등뒤에 꼭 붙어서있는 처녀… 한종삼이다. 언젠가 평양학원련락소에 찾아와 무작정 군대가 되겠다던 청년, 허가이가 집에 돌아가 농사나 지으라고 좀 모욕적으로 쫓아버렸던 어리숙한 청년… 그후 그를 두번째로 만난것은 평양학원에서였다.

지난해 설을 앞둔 때였다. 그날 고윤은 평양학원모집생들을 인솔하고 지울리로 갔었다.

들끓는 학원이였다. 건물보수, 수도관공사 등이 마감단계에 이르러 학원에서는 작업과 동시에 한쪽에서는 대렬동작과 체육기재훈련이 벌어지고있었다. 고윤은 서툴기 짝이 없는 대렬동작이였지만 구령에 맞추어 대오를 짓고 발맞추어나가는 학생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구령소리며 발걸음소리, 거칠게 내뿜는 가쁜 숨소리 등을 무심히 들을수 없었다. 엄정한 규률과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그 모든것들이 그의 피를 끓게 했고 이루 형언할길 없는 애수를 불러일으켰다.

그날도 그는 자기의 넋이 군사적조직성과 규률성에 깊이 뿌리박고있다는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탐험가들이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얼음산에 기여오르는 리유를, 곡마단의 교예사들이 시퍼런 칼끝우에 올라서면서도 야릇하게 웃음짓는 리유를 그는 생각하였다. 위험에 매력을 느끼는, 그리고 공포를 쾌락으로 삼는 모험심과 현혹의 도취… 그처럼 고윤은 군대의 조직성, 엄격한 규률과 질서를 사랑하였던것이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과, 심한 구속을 동반한 질서, 피땀을 뿌리는 훈련과 전투를 그는 그리워했다. 그래서 오늘처럼 훈련하는 학생들을 부러움에 가득찬 눈길로 바라보고있었다.

그때 소달구지에 모래를 가득 싣고오던 한 청년이 앞에 이르자 꾸벅 인사를 했다.

《절 모르시겠나유?… 아 접때 밤중에 갔댔지유. 두억시니 같은 꼴루… 어떤 뚱뚱한 사람이 와서 마우재말을 하지 않았나유.》

《아!-》

비로소 생각났다. 그를 잡아끌며 운동장곁의 바위우에 앉아 어떻게 여기 오게 됐는가고 물었다.

《거기서 쫓겨난 다음.》 하고 한종삼은 어줍게 웃으며 말했다. 《곧장 여기루 왔지유. 곽일무라는 친구가 대줘서… 김책원장선생님을 만나니 그분은 반가와 했어유. 내가 어떻게 군대가 될 생각을 다했는가고 물으시겠지유. 그래서 다 말했어유.…》

그는 더 길게 말하지 않았다. 련락소에 찾아왔을 때 그런 이야기를 했던것 같다.

고윤은 그의 달라진 모습을 살펴보기만 했다. 몸에 잘 맞지 않는 색날은 군복을 입고 왼쪽 가슴팍엔 네모꼴학원표식을 달고있는 그더러 지금 무슨 일을 하는가고 물었다. 한종삼은 어줍게 웃으며 달구지를 끈다고, 종일 공사에 쓸 물자를 나르는데 매일 총화때마다 칭찬을 받는다고 했다.

글쎄… 그런 일이나 하겠지… 하고 그날 고윤은 생각하였다.

억대우같은 그가 일은 잘할것이다. 하지만 군대가 된다는것, 더우기 지휘관감으로 자라난다는것은 아무리해도 미덥지 않았다. 그렇지만 일이 잘되기 바란다고, 공부를 착실히 하라고 점잖게 말해주었다.

그 한종삼이 또 여기에 나타났다. 처녀까지 달고…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닐가?…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지 않고는 견딜수 없었다.

고윤은 그쪽으로 걸어갔다. 곽일무의 손을 붙잡고있던 한종삼이 급기야 굳어져 버리는듯 했다. 자기쪽을 눈빗질하고있는 고윤을 알아본것이였다. 그는 뒤걸음치고있었다. 다음순간 같이 온 처녀를 잡아끌며 울담저쪽으로 휭하니 사라져버렸다.

고윤은 곽일무를 찾아 한종삼이 왜 여기 나타났는가, 그와 같이 온 처녀는 누구인가, 무슨 말을 하던가 하고 따져물었다.

《난 평양학원련락소에서 일하는 고윤이요.》

《예, 알고있습니다.》 곽일무가 말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다짜고짜 이거 큰일났어 하더니만 달아나지 않겠습니까. 고윤동지를 보고 그러는지… 하여튼 무슨 일이 있는것 같습니다.》

《음-그런것 같소.》 고윤은 그가 학원에서 도주한것 같다고 말하려다가 혀끝을 깨물며 말을 바꾸었다. 《내 지금 안길동지를 만나러 왔는데 학원에 련락해서 알아보겠소. 무슨 일이 있는지.…》

그가 현관으로 들어서는데 안길이 마주 나오며 반갑게 말했다.

《아 마침 잘 왔소. 지금 장군님께서 기다리고계시오.》

《예?!…》

그는 갑자기 흠칠했다. 너무도 뜻밖의 충격에 헉-하고 흐느끼며 굳어져버렸다.

장군님께서 자기를 기다리신단 말인가. 이 고윤이를 장군님께서?… 선뜻 믿어지지 않았다. 자기가 준비한 문건들을 기다리신다는 말이 아닌가?!…

《왜 그러오?》 안길이 말했다. 《빨리 갑시다. 김책동지도 와있소.》

그는 마치 구름속을 걷는듯 안길을 따라섰다. 높은 층계를 밟고오르며 한손으로 가슴팍을 꽉 눌러대기까지 했다. 가슴이 쾅쾅 울리는것이 금시 심장이 튀여나오려고 모지름쓰는듯 했다.

장군님집무실로 어떻게 들어섰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며 몸에 밴 군사적관습대로 거수경례를 올렸으나 《장군님!…》 하고는 혀가 굳어져버렸다.

《아, 고윤동무가 왔구만!》 장군님께서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의 손을 잡아내리시였다. 《반갑소. 얘긴 많이 들었는데 듣던것처럼 총대같이 꼿꼿하구만.》

별안간 고윤은 눈굽이 쑤셔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총대같이!… 그 어떤 치하의 말씀도 이보다 더 흉벽을 울리진 못할것이다.

장군님께서 그에게 자리를 권하시였다.

《앉으시오. 앉아서 얘기합시다. 고윤동무가 그새 평양학원학생모집사업과 교육강령작성을 위해 밤잠도 제대로 못잤다는데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이제 곧 평양학원개원식을 하자고 합니다. 그래서 고윤동무도 참가시켜 몇가지 문제를 최종검토하기로 하였습니다.》

고윤은 숨쉬기가 헐치 않았다. 《고윤동무도 참가시켜》 《최종검토하기로》라고 하신 장군님의 그 말씀을 거듭 속으로 뇌이며 크나큰 기쁨에 그리고 계속되는 뻐근한 아픔에 허덕이고있었다.

《그럼》 하고 장군님께서는 말씀하시였다. 《먼저 학원문제를 토론합시다.》

안길이 일어섰다.

《장군님께서 평양학원의 학제를 1년으로 당겨보라고 하신 말씀에 따라 다음과 같이…》

장군님께서 그를 자리에 앉도록 하시였다.

《안길동무, 교육강령이 준비됐으면 그걸 놓고 의논해 봅시다.》

안길이 가져온 문건을 받으며 장군님께서는 필통에서 연필을 하나 골라드시였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비로소 안길은 고르롭게 숨쉬기 시작했다. 장군님께서 드신 연필이 《삼천리》표라는것과 집무탁 한끝의 소책자제목도 분간해볼수가 있었다. 해빛밝은 집무실, 숙연한 정적, 장군님께서 종이장을 번지시는 소리와 이따금 색연필로 줄을 그으실 때의 사각거리는 소리뿐, 창밖의 처마밑에서 볕에 녹는 고드름들이 물방울을 떨구는 소리도 멀리 흘러간 어린 시절의 추억에서처럼 아득하게 들려오고있었다.

이윽고 장군님께서 눈길을 드시였다.

《정치학습과정안이 잘되였습니다. 연구를 많이 했다는것이 알립니다. 내가 늘 말하는것이지만 평양학원의 교육강령에서 기본은 정치과목입니다. 사실 학원에는 우리 글도 제대로 깨치지 못한 학생들이 적지 않은데 맑스-레닌주의고전에 치우치는것보다 조선력사와 조선혁명에 대하여 알기쉽게 잘 가르치는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항일빨찌산의 혁명정신으로 철저히 무장시키는것, 이것이 기본입니다. 우리의 정규무력은 오직 항일빨찌산의 정신으로 숨쉬고 움직이는 군대 즉 항일의 혈통을 이은 군대로 되여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안길동무랑 준비를 잘하였습니다. 그런데… 1년학제를 좀더 앞당길수는 없겠는지…》

모두가 놀란 눈빛이였다. 특히 고윤은 오한이라도 나는것처럼 어깨를 떨구었다. 4년제를 1년제로 줄인다는것자체도 아직 리해를 따라세울수 없어 줄곧 머리털을 쥐여뽑고있던 그였다. 그런데 그 1년제마저 또 앞당길것을 요구하고계신다. 그러한 기적이 과연 가능할것인가?…

장군님께서 조용히 계속하시였다.

《한 6개월정도 앞당길수 없겠는지 생각해봅시다. 지금 조성된 정세가 그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이제 그보다 더 앞당길수도 있는데 그에 맞게 교육강령을 짜야 합니다.

지난날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때처럼 집중적으로, 본격적으로 들이대면 되지 않겠는가.… 마당거우밀영에서 군정학습을 하던 때처럼!… 그때 우리는 비록 아주 짧은 기간이였지만 다른 나라 군사아까데미야에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정치군사교육강령을 수행하였습니다. 우리 혁명에 절실한 문제들을 배우고 준엄한 전장에서, 실천투쟁속에서 공고히 했습니다. 그렇게 배우며 자란 동무들이 지금 광복된 조국에서 당 및 국가건설, 군건설의 중추적역할을 하고있다는것을 생각해보시오. 그들은 변변한 공책 하나, 연필 한자루도 없이 혁명을 배우고 우리 혁명의 골간으로 되였습니다. 그러니 놀라와할건 없습니다. 평양학원은 철저히 항일유격대식으로! 이것이 우리의 구호입니다. 어떻습니까?》

김책과 안길은 힘차게 《알겠습니다, 장군님!》, 《장군님! 그렇게 짜보겠습니다.》라고 대답올렸지만 고윤은 네모지게 입을 벌리고 무엇인가 도저히 가댈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보는듯 어안이 벙벙해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고윤이 만든 규정초안들도 주의깊게 보아주시였다. 안길이 몇번 검토한것들이였다.

《음, 수고했소.》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밤을 패며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기본적으로 잘 됐는데… 일부 쏘련식, 번역투의 말들이 있는것들을 고쳐야겠소. 철저히 우리 식으로!…》

장군님께서는 연필을 들고 여러 개소들에 표식을 하시였다. 고윤은 멈출길 없는 기쁨에 목메여 눈시울을 떨며 생각하였다. 드디여 첫 걸음을 떼였구나, 첫 걸음을!… 인제는 장군님께 말씀드려도 되지 않을가?… 군건설사업에 직접 참가하고싶다고, 직접 구령을 치고 훈련을 하며 정규군창설에 적으나마 한몫하고싶다고!…

그럴 기회가 온것이다. 장군님께서 쾌히 승낙하실것이다. 평양학원의 교관으로 혹은 중대장, 소대장으로 파견하실지도 모른다.

그때 서기가 들어와 장군님가까이 다가서며 무엇인가 귀속말로 알려드렸다. 차츰 그이의 안색이 흐려지시였다.

《도주?》 그이께서 나직이 물으시였다. 《언제 없어졌다구?… 약혼녀와 같이… 엊저녁에… 그래 그 동무의 이름이 뭐라구 하오?… 한종삼!… 한종삼이라… 음… 알겠소.》

서기가 물러가자 장군님께서는 손에 쥐고있던 연필로 한동안 탁자를 가볍게 울리시였다. 마침내 김책에게 나직히 말씀하시였다.

《평양학원에서 보고가 왔는데 학원에서 도주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예?!》

김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안길도 어마지두 놀란 표정으로 굳어져버렸다.

장군님께서 계속하시였다.

《어제저녁 나간 뒤로 아직 소식이 없다고 합니다. 김책동무가 여기로 올라온후 벌어진 일이여서 최용진동무가 몹시 당황해하는것 같습니다.》

《장군님!》 김책이 머리를 흔들었다. 《절대 그런 일은… 있을수 없습니다. 평양학원에서 도주라니…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역시 굳어져 버렸던 고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주자가 바로 그 한종삼인것이다. 방금전 정문앞에서 줄행랑을 놓던 청년, 그가 달고다니는 처녀… 어쩐지 미심쩍게 여겨지던 그였다. 그런줄 알았으면 경위대원들을 풀어서 체포했어야 하는것을!…

그는 세차게 입술을 깨물고있었다. 자기가 제때에 손을 썼더라면 장군님께서도 마음쓰시지 않을것이였다.

《제가 그만… 잘못하였습니다. 좀전에 그 한종삼이라는 청년과 웬 처녀가 정문앞에까지 온것을 보고도 그만…》

장군님께서 놀라신 눈빛을 돌리시였다.

《그를 봤단 말이요?》

《예.》

하여 그는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정문앞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기 시작했다.

장군님께서는 여전히 손에 쥐고있던 연필을 그루박고계셨지만 김책은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창유리로 흘러들던 따스한 볕의 홍수가 별안간 줄기 시작하였다. 김책의 그림자가 벽 한면을 가득 채우며 커지고있었다. 여전히 벌어진 일을 믿을수 없어 모지름쓰는 그의 무거운 마음이 그 벽면에 비쳐지고있는듯싶었다.

《좀 어리숙한데가 있긴해도.》 김책이 한숨을 내뿜었다. 《아주 믿음이 가던 동무댔는데… 일은 또 얼마나 잘했겠습니까. 밤에도 쉬질 않았습니다. 쉬면서 하라고 몇번이나 말했는데도… 계속 달구지를 끌고다니며 애쓰던 그가 도주하다니…》

《음-》 장군님께서 나직이 물으시였다. 《둥글넙적한 얼굴에 유순해보이는 청년이 아닙니까? 입술이 두툼하고 주먹코이구… 힘꼴이나 쓰게 생겼지요?》

《예.》 하고 대답올린것은 김책과 고윤 두사람이였다.

《그 동무가 옳긴 옳구만!》 장군님께서는 그 무엇인가로 더듬고계신듯 했다. 《그런 동무가 도주를 했다- 그렇게 단언할수 있는 근거가 있겠는지… 알아 봅시다. 그리고 어떻게 대책하겠는지…》

고윤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생각하였다. 괴로운 일이지만 도주자는 엄벌에 처해야 한다. 군사규정은 엄격하고 지어 가혹하기까지 하다. 왜냐면 사소한 에누리도 그것이 규정을 허물고 대오를 좀먹고 전투력에 엄중한 손상을 끼치기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을 징벌하고 각성시키기 위해서도 엄하게, 가차없이 취급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가 비록 선서를 하지 않았다 해도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 그를 용서해주면, 그러한 전례를 만들어놓으면 다른 수많은 근거들이 만들어지고 그만큼 도주자들이 늘어나기때문이다.

그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전투장에서 얻은 피의 교훈들을 상기하지 않을수 없었다. 잊을수 없는 격전장들, 용감하게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 전우들도 많거니와 비겁하게, 너절하게 값없이 죽어간 자들도 적지 않았다. 순간의 공포때문에 도주자, 변절자로까지 락인된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떠오르는 까르빠찌야산줄기의 한 전투장.…

고윤이 속한 제2우크라이나전선군이 로므니아땅에로 물밀듯이 진격해들어가던 그때, 깊고 험한 계곡의 외통길- 철다리로 패주하던 도이췰란드군의 땅크들이 급작스럽게 돌진해왔었다. 도이췰란드군의 그 기계화사단을 계곡의 유일한 외통길에서 저지시키지 못하면 제2우크라이나전선군의 마르띄노브군단익축이 무너지고 결국엔 전반적공격이 좌절될수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정황이였다. 사전에 그 철다리를 폭파할 임무를 예브스찌그니예브라는 빨래줄같은 이름을 가진 땀보브출신 공병중위에게 주었는데 그들이 폭약을 설치하기전에 도이췰란드땅크들이 돌입해왔던것이다.

마르띄노브군단장이 직접 대대장 고이완(고윤)을 전화로 찾았다.

《어떻게 된거요, 대대장?》

그는 고윤이 대답할 기회를 주지않고 소리쳤다.

《이름이 뭐라구?! 고이완?… 대대장, 어떤 일이 있어도 놈들을 저지시키오. 계곡이 돌파당하면 총살하겠소!》

그때엔 총살하겠다는 말을 하루에 열번, 스무번도 더 들어야했다.

고윤은 계곡으로 달려갔다. 도중 흙빛이 된 얼굴에 공포와 절망이 얽힌 예브스찌그니예브중위와 열세명 대원들이 도망쳐오는것을 만났다.

《서라!》 고윤은 권총을 빼들고 고함쳤다. 《서지 않으면 개처럼 쏴죽일테다. 서라!》

자기네 대대장의 무섭게 질린 얼굴을 보고서야 그들은 멈춰섰다.

《대대장동지.》 예브스찌그니예브중위가 거품을 문 입을 쩍 벌리며 고함치듯 보고했다. 《도이췰란드땅크들이 달려들었습니다. 우린 미처… 어쩔수 없어서…》

《그래서 도망치고있단 말이야?》

《대대장동지, 우린… 사실 적들이 달려들어서…》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총탄이 그의 목구멍을 꿰뚫었다. 그가 쓰러져 최후의 모지름을 쓰며 꿈틀거리는것을 본 병사들이 몸서리쳤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병사의 자각과 의무감을 되찾았고 수치감과 공포감에 굳어져 콩알같은 땀방울만 뚝뚝 떨구고있었다.

고윤은 비겁한 중위때문에 똑같이 도피분자로 된 대원들에게 누가 폭약을 실은 자동차를 몰고 철다리가운데로 가겠는가고 소리쳐 물었다. 그것은 누가 죽으러나가겠는가 하는 물음이기도 했다.

《내가 가겠습니다.》

맨 처음 하사관 한명이 나섰다.

《그럼 나두 같이 가세.》

《나두 가겠소.》

세명이 나섰다. 역시 죽음에로 가게되여있는 운전사가 발동을 걸었다. 나머지대원들은 반땅크수류탄을 거머잡았고 기관총, 기관단총을 들고 엄호에 나섰다. 그리하여 폭약을 만재한 《지스》자동차는 도이췰란드땅크들이 줄지어 들어서고있는 철다리로 날아들어갔다. 그러나 철다리 한 경간우에서 도이췰란드땅크가 내쏘는 기관총의 몰사격에 벌둥지처럼 되였다. 둔중한 폭음이 터졌다. 운전사와 세 《도피분자》는 산산이 부서져 하늘높이 흩날리는 자동차의 잔해와 함께 화염속에 사라져버렸다. 철다리 이쪽 경간이 무너져 아찔한 계곡의 물속에 떨어져내렸다.

그후 형체도 없이 사라진 운전사와 세사람은 《도피분자》로부터 용감한 병사로, 영웅적으로 전사한 전투원들로 훈장이 내신되였고 나머지대원들 역시 전투공로에 따라 표창되였다.

마르띄노브군단장은 보고를 받자 《잘했소, 고이완!》 하고 씹어뱉듯 말하고나서 전화를 끊었다.그때 군단장은 무엇을 두고 《잘했》다고 한것일가. 도이췰란드기계화사단의 불의적인, 치명적인 반돌격을 저지시켰기때문인가, 아니면 비겁분자, 도피분자를 제때에 가차없이 처단하고 다른 사람들을 징계했기때문인가?…

군인정신이란 말로써가 아니라 피와 땀으로 새겨지는것이다. 순간의 공포때문에 용감한 전사, 영웅으로도 될수있었던 사람들이 반역자로 총살되지 않으면 안되는것은 바로 그를 죽이고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인것이다. 하기에 고윤은 한종삼을, 그가 어떤 리유를 가지고있었든 관계없이 그를 결단코 엄하게, 무자비하게 벌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고있었다.

안길이 침통한 어조로 《평양학원개원식을 앞두고 이런 일이 생기다니…》 하고 신음소리처럼 중얼거렸다. 무르팍을 허비고있는 그의 손등우에서 퍼릿한 정맥이 꿈틀거리고있었다.

《제가 일을 쓰게 못해서…》 김책이 한 말이였다. 아픔에 젖은 목소리였다. 《정말 이런 일이 생기리라군 상상도 못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보시던 문건을 덮으시였다.

《너무 그러지 마시오. 우선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겠는지 의견들을 말해보시오.》

그이께서 고윤이쪽에 눈길을 주시자 그는 구령이라도 받은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고윤동무생각은 어떻습니까. 전선군인답게 솔직히 말해보시오.》

《장군님!》 그는 혀가 잘 돌지 않는것처럼 힘들게 말을 번졌다. 《저는… 그를 엄하게 벌해서 전체 학원생들이 교훈으로 새기도록 했으면 합니다. 더우기 개학식을 앞두고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용서치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혹시 그 동무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면?… 이제라도 학원에 돌아온다면… 그래도 엄하게 벌을 주어 쫓아버려야 한단 말이요?》

《예.》

고윤은 거의나 입속말처럼 이렇게 대답올렸다. 자기가 생각한바를 그대로, 솔직히 말하는데 습관되여있는 그였다. 장군님께서 계속하시였다.

《이자 고윤동문 그를 벌해서 다른 학생들에게 교훈을 새겨주자고 했는데… 피의 교훈이란 어떤것을 념두에 둔것이요?》

《장군님, 제가 너무 과장된 표현을 한것 같지만 실은…》

장군님께서 조용히 미소하시였다.

《아니, 일없소. 계속하시오.》

장군님의 미소에 용기를 얻고 고윤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 머리를 높이 들었다.

그렇다, 장군님앞에서는 진실만을 말씀드려야 한다. 진실만을!… 자기의 마음속생각까지, 그것이 비록 비뚤어진것이라 할지라도 죄다 솔직히 털어놓고 마땅한 질책을, 엄한 꾸중도 받는것이 옳다!…

하여 그는 말씀드렸다. 까르바찌야산줄기의 어느 계곡에서 예브스찌그니예브중위를 도피분자로 총살하던 일을 꺼들이며 이렇게 계속하였다.

《…그때 그를 벌하지 않았더라면 열세명의 대원들모두가 그처럼 도피분자로 벌을 받았을것입니다. 장군님, 그때부터 저는 군인정신이란 곧 절대복종의 정신이라는 피의 교훈을 새기게되였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것을 평양학원의 전체 학생들에게 새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있습니다.》

《군인정신이란 사랑에 뿌리를 두고있는 정신이요!》 장군님께서 하신 말씀이였다. 근엄한 안색으로 주의깊게 그를 여겨보며 계속하시였다. 《복종이란 의무이지 정신은 아니요. 동문 그걸 잘못 리해하고있소. 그리고 알아두시오. 우리 항일빨찌산대오에서 제일 중시한것은 상하일치였소. 복종하되 신뢰하고 명령하되 무한히 아끼고 사랑해야 하오. 그래서 군인정신이란 사랑에 뿌리를 두고있다고 말하는것이요. 총잡은 군인의 마음속엔 언제나 피를 나누는 동지들에 대한 사랑, 자기 조국과 인민에 대한 사랑으로 꽉 차있어야 하오.

고윤동무, 이걸 명심하시오. 한사람을 총살하여 열세명을 정신차리게 한것은 물론 옳았소. 그렇지만 그 한사람까지 정신차리게 했었더라면 더 좋았을것이 아니겠소. 즉석에서 쏴갈길것이 아나라 그한데 반땅크수류탄을 쥐여주며 피로써 죄를 씻으라고 할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그랬더라면 그 한사람 역시 도피분자의 치욕을 안고 개죽음을 당하진 않았을거요. 떳떳하게, 용감한 붉은군대 지휘관답게 최후를 마쳤을것이요.

어떻소, 고윤동무?!… 동문 피어린 전장에서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사랑과 증오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체험해온 동무이니… 깊이 생각해보시오. 우리가 총을 들고 피흘려 싸운 궁극의 목적이 과연 무엇이겠소?…

나라를 찾고 인민을 해방하기 위해서였는데 인민이란 바로 한종삼이라는 그 순박한 농촌젊은이까지 포함한 내 동무들이고 우리 이웃들이고 겨레인것이요. 그들을 아끼고 사랑해야 하오. 모르는것은 깨우쳐주고 잘못된것은 바로잡아주되 억울한 희생뿐아니라 치욕도 막아주어야 하오. 이것이 바로 우리 혁명가들의 의무인것이요. 우리 항일빨찌산들이 철칙으로 삼고 싸워온 정신이요. 바로 그 정신, 그 혈통을 평양학원이 잇고나아가서 새로 건설될 우리의 정규군대가 잇도록 하자는것이요!…》

창밖에서 고드름이 녹아떨어지는 물소리가 똘랑똘랑 뚜렷이 들려오고있었다. 고윤은 숨을 딱 멈추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자기의 응어리져있던 마음이, 얼어붙어있던 마음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있는것인지도 모른다.

장군님께서는 그를 자리에 앉도록 하시였다.

《무슨 일인들 없겠소. 아직 단련이 부족한 청년들인데… 그렇지만 그들은 모두가 진실하고 순박한 사람들입니다. 오랜 세월 일제식민지통치하에서 인간이하의 고역과 민족적멸시속에 살아온것만큼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기위하여 총을 멜것을 결심한 사람들이요. 믿읍시다. 동무들, 물론 이러저러한 곡절은 있겠지만 요는 우리 인민, 우리 청년들을 믿는것이요. 그 믿음에 잠시나마 금이 간다면 우리의 군건설은 곤난해질것이요.

믿읍시다. 나는 그 한종삼이라는 청년을 믿습니다. 그는 꼭 돌아올것이며 우리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훌륭한 군사정치일군으로 자라날것이요!》

김책과 안길은 가슴을 쭉 펴고 숨을 활 내뿜고있었지만 고윤은 가슴이 오그라드는듯 온몸을 옹송그리고있었다. 뼈저린 후회가 가슴을 찔렀다. 얼마나 미욱한 생각이였던가. 얼마나 속되고 용렬했던가!… 그러면서도 군건설에 한몫하고싶다고 말씀드리려했었다. 전선군인답게, 붉은군대 보병대대를 거느리던 지휘관답게 문건놀음이 아니라 훈련장에서 직접 대오를 이끌며 군창업에 기여하고싶다고 했었다.…

서기가 들어와 평양학원으로 조동된 주도일이 떠날 준비를 갖추고왔다고 말씀드렸다.

《들여보내시오.》

장군님께서 흔연히 말씀하시였다.

그 소식을 처음 듣는 김책은 놀라 옆에 앉은 안길을 흘깃 쳐다보았고 안길은 고통스럽게 이마를 찡기며 눈길을 피했다.

주도일이 활달하게 걸어들어와 보고드렸다.

《장군님! 평양학원 제2중대장 주도일 출발준비가 되였습니다!》

《음-》 장군님께서 밝게 웃으시였다. 《그렇게 인상을 펴니 얼마나 좋소. 아침까지만 해도 울상이 돼있더니… 그래 경위대원들의 실탄사격훈련은 잘 되였소?》

《예, 장군님, 인젠 마음이 든든합니다. 김정숙동지께서 직접 지도해주셔서… 다들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렇다-좋은 일이지. 그럼 학원에 가서 한번 본때있게 일해보오. 어제도 말했지만 우리의 군건설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철저히 우리 식, 항일유격대식으로 해야 한다는것을 잊지 마시오. 학생들에게 항일유격대의 정신을 깊이 심어주시오. 이것이 기본이요.》

《알았습니다. 장군님!》

장군님께서는 친히 그를 문밖에까지 나가 바래워주시였다. 그동안 고윤은 심각한 낯빛으로 망두석같이 서있었다. 언제 자리에서 일어났던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똑똑히 깨닫고있었다.그것은 자기의 간절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평양학원에서는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것, 자기의 규률성, 용감성 그리고 몸에 익힌 군사적관습조차 장군님께서 말씀하시는 《우리 식》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는 그것이였다. 하다면 《우리 식》이란 어떤것인가?… 사랑의 정신, 복종과 신뢰, 명령과 믿음… 또 무엇이 있었던가?… 두고두고 깊이 생각해보아야 했다.

그는 장군님께 다시 거수경례를 올리며 눈굽이 쿡 쑤시는듯 눈시울을 바르르 떨고있는 주도일을 선망에 찬 눈빛으로 부럽게 그리고 저릿저릿한 아픔속에 바라보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