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8


 

제 2 장

8

 

설명절이 가까와왔다. 조국해방후 처음으로 맞는 설이여서 모두가 명절준비로 바빴다. 어느덧 거리들에는 꽃테프를 늘이고 장식등을 내걸었다. 전차의 앞머리도 꽃으로 장식되였다. 화신백화점과 3.l극장, 평화회관 등 많은 건물들에는 장군님의 초상화와 함께 《조선인민의 영명한 수령 김일성장군 만세!》라고 쓴 프랑카드가 드리우고 도처에 솔문들이 세워졌다. 거리를 달리는 전차의 종소리는 더 높이 명랑하게 울렸고 사창장마당과 대동강의 선창에서는 사람들이 붐비였다. 추운 밤에도 야시장에서는 불빛이 환했다. 육고집, 잡화점들은 종일 문을 닫지 않았고 어물장수들은 머리우에서 놋대야를 내릴새가 없었다.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청사에도 련일 사람들이 들락날락했다. 김책, 안길, 김용범, 최용건 등 간부들은 물론 치스챠꼬브사령관과 일본공산당간부 노사까 산조도 왔다. 주도일부관이 특히 분주했다. 경위중대 대원들도 여러가지 일들에 자주 동원되였다. 설을 맞으면서 각 지방 파견원들인 항일투사들이 다 모인다는 말도 있었다. 모두가 열병에 뜬것처럼 분주했다.

그러나 오직 한사람 곽일무만은 벌레씹은 상을 하고 합숙식당의 화구간에서 어정거렸다. 그의 손엔 늘 탄삽이나 불갈구리, 정대 아니면 탄재를 담은 낡은 바께쯔가 들려있었는데 분주히 뛰여다니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그의 눈빛은 침울하고 감때사나와 보였다.

그는 아침부터 밤까지 늘 시꺼먼 고민에 휩싸여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가 하면 땅바닥에 누구도 알수 없는 그림문자로 자기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써놓기도 하였다.

바로 그날 홍근수목사를 쫓아버린것이 사달이였다. 지금도 그때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때부터 곽일무는 처벌로 화구당번을 섰다. 일하고 생각하고 일하고 공부했다. 장군님께서도 그에 대해 자주 보고받으신다고 한다. 밤이면 안길이 그의 하루일과를, 학습정형을 료해하고 총화짓군 했다. 지금도 그는 혼자서, 시꺼먼 얼굴로 땅바닥에 불갈구리로 저만이 아는 무엇인가를 써갈기며 입을 꾹 다물고있다. 식당과 합숙방의 화구에서는 새파란 불길이 너울거리고있고…

아침이였다. 경위대 대장 강상호가 그를 불러 즉시 몸을 씻고 군복을 갈아입으라고 했다. 안길이 그렇게 지시했다고 한다.

급히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회수했던 총까지 그에게 돌려주었다.

《바지주름도 잡소. 면모가 나게!》

강상호가 그의 옷차림을 깐깐히 살펴주었다. 이제 곧 간부동지들과 같이 역에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무슨 일로 간부동지들을 따라가야 하는지는 그 자신도 알지 못하고있는듯 했다.

차비를 끝내고 청사현관문앞에 갔을 때 곽일무는 풍친 차 두대가 발동을 걸고있는것을 보았다.

눈이 내리고있었다.

주도일부관이 그를 향해 손짓했다. 그가 차 있는 곳으로 걸어가자 마침 현관문을 나서던 김책, 김용범, 안길 세사람이 의미있게 눈짓하며 소리없이 웃었다. 김책이 곽일무를 여겨보며 말했다.

《음, 괜찮아. 군대맛이 나거든.》

안길은 주의깊은 시선으로 그를 살펴볼뿐 아무 말도 없었다.

역에 이르자 주도일부관이 어데론가 급히 가더니 홍금옥을 데리고왔다. 김책이 무어라고 묻자 홍금옥은 밝게 웃으며 《10분후에 도착합니다.》 하고 쟁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음-10분이면 아직 시간이 있군.》 김책이 처녀에게 곽일무를 눈짓하며 말했다. 《그새 도끼모태나 만나보지. 응?!》

《어마나!》

처녀가 기겁한듯 가늘게 부르짖었다.

곽일무는 입술을 꽉 악물고 눈길을 돌렸다. 홍근수목사에 대한, 처녀의 아버지에 대한 풀길없는 노염이 그의 눈빛을 차겁게 번득이게 했다.

안길이 김책에게 둘사이가 남다르다는것을 언제 알았는가고 묻고있었다. 김책은 언젠가 《희망단》패들이 쌀을 실어가려고 싸움을 걸었을 때 바로 이 처녀(홍금옥)가 제때에 알려주어 충돌을 막은 일이 있는데 그때 곽일무와 남다른 사이라는것을 눈치챘다고 했다.

안길은 그저 머리를 끄덕이였으나 김용범은 처녀를 곽일무쪽으로 밀며 어서 만나보라고 했다.

둘이 남자 곽일무는 숨이 차오르는것을 느끼며 괜히 총부혁만 자꾸 비틀어댔다. 처녀가 얼마전에 있은 일을 알고있는지, 알고있다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싶었지만 혀가 얼어붙은듯 했다. 또다시 치밀어오르는 홍목사에 대한 분노, 목사의 딸 홍금옥에 대한 야릇한 불신 그리고 바로 이 처녀를 만나게 해주려고 자기를 데리고나온것은 아닐가 하는 황당한 생각에 속이 언짢아졌다.

《난 바쁘오.》

퉁명스레 말했다.

《예-》

애매하게 길게 끄는 처녀의 대답에 까닭없이 화가 치밀었다. 애처롭게 들리기까지 한 그 목소리도 언짢았다.

《빨리 가봐야겠소.》

《예-》

역시 꼭같은 대답이였다. 아는지 모르는지 속시원히 말이나 했어도… 곽일무는 총부혁을 바싹 잡아당겼다.

《후에 말해보자구.》

그는 마치 쳐녀에게는 전혀 가당치 않는 한쪼각 선물이라도 던져주듯이 시뚝해서 말하고는 간부들이 나간 홈으로 급히 달려갔다.

눈송이들이 사르륵거리며 꽃잎처럼 흩날렸다. 그는 간부들이 서있는 곳으로 다가가며 생각하였다. 누가 오시는가, 큰 간부들이 마중나왔을적엔 귀한 손님이 오시는게 분명한데…

홈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있었다.

김책과 안길, 김용범은 역명판앞에서 조용히 말을 주고받고었다.

주도일이 그를 불러 한쪽으로 끌고갔다.

《여기에 있소. 될수록 남들의 주의를 끌지 않게. 그리구… 잘 살피오. 난 저쪽에 가있겠소.》

홈에 세워진 역명판과 멀찍이 떨어져있는 곳이였다.

곽일무는 긴장해졌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쪽에 눈길을 던졌다. 엇비듬히 흩낟리는 눈송이들도 더는 그의 마음을 끌지 못했다. 사람들에게서 철길너머로, 또 먼 곳으로 눈길을 옮겼다.

그때 가까이에서 기적소리가 울렸다. 어느새 기차가 원방신호기를 지나왔는지 놀라왔다. 그는 꽥!- 하는 그 울부짖음소리에 흠칫했다. 《조심해라, 일무!》 하고 그 소리는 웨치고있었다. 《까딱 움직이지 말고 주위를 잘 살펴라, 너는 경위대원이다!》

어느덧 기관차가 구내에 들어섰다. 곽일무의 몇걸음앞에서 멎어서더니 칙-칙 증기발을 내쏘았다. 그의 온몸을 후덥게 휘감아버리는 증기발, 마치 구름속에 파묻힌듯 했다. 이윽고 증기발이 걷히자 홈에서 떠드는 소리와 덤벼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뚜렷해졌다. 서로서로 소리쳐 이름을 부르는가 하면 어느새 벌써 부둥켜안고 울고웃는 사람들도 있었다. 역명판앞에 서있던 김책의 일행이 곽일무가 서있는 앞쪽으로 급히 오며 맨앞 차칸의 승강대에서 내리는 누군가를 소리쳐 부르고있었다.

《여기요. 여기!…》

기쁨에 찬 김책의 목소리, 순간 곽일무는 자기의 본분도 잊고 두눈을 슴벅거리며 한걸음 두걸음 그쪽으로 다가가고있었다.

《정숙동무!》

《김책동지, 아 안길동지도 나왔군요.》

《정숙동무, 인사하시오. 이분은 김용범동지이시오.》

《반갑습니다. 김용범동지, 성함을 익히 들었습니다.》

《김정숙녀사! 이렇게 뵙게 되니 이 기쁜 마음 무슨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반갑습니다. 기다렸습니다!》

곽일무는 자석에라도 이끌린듯 한걸음 또 한걸음 다가갔다. 저쪽에서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웨침소리도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전설적인 항일녀장군 김정숙녀사의 웃고계시는 모습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불꽃처럼 웃음이 샘솟는 광채어린 눈빛, 밝고 순결하고 정겨운 미소.…

녀사의 머리우에 흰눈송이들이 앞을 다투어 살풋이 내려앉고있었다. 그 모든것이 곽일무의 마음을 뜨겁고 정답고 황홀하게 했다.

김책이 녀사께 말씀 드리고있었다.

《장군님께선 지금 서울에서 온 한 인사와 담화하고계십니다.》

《김책동지.》 녀사께서 진중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이전처럼 지휘관으로서 말씀해주세요. 전… 거북합니다.》

《아-》

김책은 머리를 흔들었으나 곧 어색한 웃음을 띄우고 오른손 손가락으로 중절모밑의 이마를 탁탁 두드렸다.

《그럽시다. 그런데 정숙동무, 정말 안타까운 일이요. 얼마전 장군님께서는 총폭탄이 쏟아지는 중국 단동에까지 다녀오셨소. 또… 룡천군을 현지지도하시고 당사업, 토지문제, 청년운동때문에 평안남도, 황해도까지 나가시군 하는데… 장군님을 보좌해드릴 사람들은 적지… 게다가 부관들까지 다 평양학원에 보내겠다고 하시오.》,

김용범이 소란스럽게 한숨을 내뿜었다.

《어디 그뿐입니까, 문돌쩌구에 불이 일게 사람들이 찾아들고있으니 어느 하루도 편히 쉬신적이 없습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심중한 표정이시였다. 눈송이들만이 지꿎게 하염없이 녀사의 머리우에 내려앉고있었다.

《어찌겠어요.》 녀사께서 하신 말씀이였다. 《장군님께선 벌써 이미전에 왜놈들을 무찌르기보다 새 조국건설은 더 어렵고 복잡할거라고 하시지 않았어요. 그러니 우리가 힘껏 일하여 장군님의 건군사업을 잘 도와드려야죠.》

《옳습니다.》

안길의 말에 이어 김용범이 뒤를 달았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곽일무는… 그처럼 무엄한 짓이 또 어데 있으랴. 녀사의 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며 흐느끼듯 가쁘게 숨길을 톱고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도 손우 누이들도 다 잃고 따뜻한 정에, 사랑에 주려있던 곽일무여서 녀사의 몸전체에서 풍겨오는 후더운 인정을 봄빛처럼 받고있는듯 했다.

녀사께서 가까이 다가선 곽일무를 돌아보시였다. 순간 녀사의 두눈에서 따스한 미소가 불을 켰다.

《동문 누구세요. 경위대원인가요?》

《예.》 곽일무는 헉하고 토막숨을 내뿜었다. 《경위대원 곽일무입니다.》

뜨거운 인사말을 꼭 드리고싶었는데 별안간 혀가 굳어지는듯 했다.

《참 름름하고 의젓한게… 정말 반가와요.》

녀사의 그 말씀에 눈앞이 흐려지고 목에서 경련이 이는듯 했다. 이눔아, 정 올릴 말씀이 없단 말이냐, 쓸개빠진 녀석, 이 못난 도끼모태야!… 마음속에선 격렬한 웨침이 터지고있었으나 여전히 입술을 실룩거리고만 있었다.

때마침 안길이 나서며 녀사께 말씀드렸다.

《계속 이렇게 서있을 작정이시오? 그러다 모두 눈사람이 되고 말겠습니다.》

《참 먼길을 온 정숙동무를 이렇게 밖에 세워놓다니.》 김책이 녀사를 이끌었다. 《어서 갑시다.》

녀사께서는 곽일무에게 다시금 정겨운 미소를 지어보이고 김책을 따라 걸음을 옮기시였다.

김책이 숨을 활 내뿜으며 하는 말이 들려왔다.

《정숙동무가 왔으니 이젠 마음이 놓입니다.》

녀사께서 웃으며 무어라고 말씀하시자 여럿이 일시에 큰소리로 웃어댔다. 사연깊고 행복한 아침이였다. 곽일무는 얼마후 주도일부관이 소리쳐 불러서야 피뜩 정신을 차리고 퍼붓는 눈발속으로 달음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