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5


 

제 2 장

5

 

박락권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변천되는 정세를 새겨듣고있었다.

…지난 8월 26일, 쏘련정부가 중국의 장개석국민당정부와 체결한 《쏘중우호동맹조약》이 정식으로 공포된 후 5개월을 시한부로 정한 쏘련군대의 철수가 박두해오자 동북땅을 먼저 차지하기 위한 공산당과 국민당군대의 《철의 마라손경기》는 한창 더 열기를 띠였다.

10월 31일 중국공산당은 동북인민자치군창설을 결정하고 10만의 《동북진격종대》를 편성하여 출발시켰다. 쏘련군대로부터 일본군한테서 로획한 무기들을 넘겨받기로 했으므로 권총과 수류탄을 기본무장으로 휴대하고 밤낮없이 행군했는데 제일 빠른 산동군부대들은 하늘소를 타고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한창 행군을 다그치고있을 때 10만정의 무기를 넘겨주기로 했던 쏘련이 돌연 무기를 줄수 없다고 통고하였다. 《쏘중우호동맹조약》에 따라 국민당군대에 넘긴다는것이였다. 지어 장춘철도와 그 연선의 대도시들도 국민당정부가 접수하도록 결정지었다고 했다.

한편 팔로군보다 50일이나 늦게 출발한 국민당군 8개 정규군단의 30만대군은 신식미국제무기로 무장하고 미국의 함선과 비행기들로 수송되였다. 이때부터 미국은 동북에서의 격전기간 총 14개군단을 수송했는데 그중 3개군단은 공중으로 수송되였다. 이와 동시에 베이징, 천진, 당산, 진황도 등에 미해군륙전대를 들이밀어 국민당군대를 직접 엄호하였다.

하늘과 땅, 바다에서 량측의 수십만대군이 먼지발을 일으키고 구름을 썰고 파도를 헤가르며 생사를 판가름하게 될 경기, 《귀환점》이 없는 《피의 마라손》을 계속하였다. 종착점으로는 다 같이 금주, 사평, 심양, 장춘 등의 대도시들을 정하고있었다.

전보문에는 물론 이상의 내용이 극히 간명하게 요약되여있었다. 그러나 박락권에게는 그보다 더 긴 설명이 필요치 않았다. 눈앞에 오고있던 그날이 아득히 멀리 물러가고있는것 같은 예감에 심장이 옥죄여들었다.

조성된 엄중한 정세에 대처하여 길동분구사령부는 박락권에게 다음과 같은 차후활동방침을 주었다.

첫째, 토비들을 끝까지 추격소멸할것.

둘째, 국민당군대와의 충돌을 예견하고 대오를 확대하며 무장장비를 개선하기 위해 힘쓸것. (로획한 포무기들의 사용방법을 익히고 직속포병중대를 편성할것)

셋째, 부대명칭을 길동분구사령부직속 제1련대로 명명할것. 련대안의 7개 중대를 2개 보병대대, 1개 기병대대로 재편성하되 점차 사단규모로 확대할것을 예견할것. (중대편재는 현재의 500명으로부터 150명으로 줄일것, 철저히 정규군편성에 준하도록 할것)

넷째, 련대안에 문화부를 내오며 정치주임직제를 문화부련대장으로 할것.

마지막으로 강건은 장군님께서 파견하신 림춘추동지(현재 연변전원공서 전원)의 편지를 전문으로 알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영명하신 장군님께서 특별히 강조하신 말씀을 전한다.

박락권동지에게 자신께서 보내시는 인사를 전해줄것을 부탁하였음, 다음으로

건강에 류의할것.

학습을 중단함이 없이 계속할것.

조국의 군건설에 한몫 할 지휘관들을 키울것, 특히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준비시키며 전투의 불길속에서 단련시키도록 힘쓸것,

이상으로 장군님의 당부를 전하며

건투를 바람

림춘추》

 

박락권은 이윽토록 망두석처럼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화토불이 기세좋게 타오르며 수염이 덥수룩한 그의 얼굴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는 마치 열병에 뜬듯 했다. 놀라서 굳어진 처녀의 얼굴을, 아니 그의 머리너머 어둠속 어딘가를 응시하고있는 그의 두눈은 안개가 낀듯 희미해졌고 모가 진 턱은 비틀어져있었다.

그는 지금 꿈속에서처럼 풀덤불에 뒤덮인 한줄기 추억의 오솔길을 더듬고있었다. 장군님곁을 처음 떠나던 그날의 오솔길, 주보중의 요청에 의해 머나먼 북만으로 떠나던 등판의 오솔길이였다.

장군님께서 손저어 바래주시였었다. 급기야 몸을 돌려 뛰여온 그들에게 울지 말고 가라고, 동무들이 그러면 나도 못 견딜것 같다고 말씀하실 때 그이의 눈가에 맺혔던 한점 이슬을 생생히 그려보고있었다.

그때부터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던가!…

장군님을 다시 뵈온것은 아무르강기슭의 훈련기지에서였다. 그리고는 또 눈물의 작별… 장군님께서 이끄신 조국개선대오에도 끼우지 못하였다.

그는 가고싶었다. 조국으로, 장군님께로 한달음에 말을 달려가고싶었다.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한 조국, 그리로 가는 길이 이리도 멀고 험할줄은 몰랐다. 어제도 오늘도 왜놈패잔병놈들과 토비들만 다 잡아족치면 가게 되리라고 믿고있었던 그 길… 저릿저릿한 아픔에 살눈섭이 떨려나기 시작했다.

살붙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박락권이였다. 왜놈들의 《토벌》에 일가식솔모두가 불에 타죽고 총창에 찔려죽었다. 아버지는 총창에 찔리고도 왜놈병졸의 두개골을 도끼로 빠개놓고야 쓰러졌다. 머리를 뒤로 젖히고 소리없는 웨침을, 복수의 부탁을 터쳤다.

장군님께서 그를 키워주시였다. 맹호같은 싸움군으로 키우시였다. 장군님곁을 떠나기 아쉬워하는 그더러 용감한 싸움군 지휘관들을 많이 키우라고 당부하시였다. 그것이 바로 조국에서의 군건설에 기여하는것이라고 하시였다. 오늘 림춘추의 편지전문에도 그것이 강조되여있다. 전투의 불길속에서 조국의 군건설에 한몫 할 지휘관들을 키울것!…

그렇다, 실지 싸움터에서 화약가스에 몸이 절고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펄펄나는 싸움군으로 자라난 지휘관감들을 키워내는것, 이것을 놓쳐서는 안된다. 자기뿐아니라 군건설의 기둥이 될 끌끌한 사람들을 이끌고 조국으로, 장군님께로 가야 한다.

드디여 그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전문을 다시 읽었다. 눈시울이 흠칫흠칫 떨렸다. 가슴을 쭉 펴고 싸창갑이 달린 혁띠를 꽉 조여매는 그의 얼굴은 사나와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다시 박락권으로, 용맹한 련대장으로 되돌아온것이였다.

다음날 정희(처녀무선수의 이름을 그렇게 불렀다.)는 이렇게 말했다.

《어제밤엔 정말 무서웠어요. 련대장동지가 꼭 옛말에 나오는 산도적 같은게… 수염이 덥수룩한데다가 우시는것 같기두 해서…》

《난 울줄을 몰라!》

정희는 가만히 그를 곁눈질하며 계속했다.

《그런것 같애요.》

《그래, 지금은 무섭지 않소?》

《좀…》 하고 정희는 저으기 망설이더니 재빨리 입술을 감빨고 계속하였다.

《면도를 해서 그런지 새파랗게 젊어보이긴 해두… 더 엄격해진것 같기도 하구… 련대장동진 늘 그렇게 웃지 않으세요?》

《난 동물 쫓아버릴가 했더랬소.》

《예?!…》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봐야겠소.》

《…》

정희는 말없이 그를 여겨보기만 했다. 새까맣고 주의깊고 무엇인가 그속에서 사물거리고있는듯한 눈으로 그를 깐깐히 훑어보고있었다.

그들은 대오의 앞장에서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있었다. 우중충한 숲속에서 바람이 술렁거리며 가랑잎들을 날렸다. 웅쿠렁이에서 풍겨나오는 썩은 나무잎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날이 밝은지 오랬어도 숲속은 어둑스레했다.

한동안 아무말없이 갔다. 충분히 먹고 휴식을 한 말들이 흥흥 코를 울리고 미끈한 다리를 률동적으로 움직이며 비좁은 소로길을 짓이기고있었다.

박락권은 남복을 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긋한 앞가슴과 짧게 자른 단발과 하얀 목덜미로 류달리 눈에 띄우는 그 처녀가 곁에 붙어있음으로 하여 어쩐지 거북스러움을 느꼈다. 꼭 어린애 같은데 표정만은 너무도 진지하고 심중했다.

《고향은 어데요. 부모들은 있소?》

박락권이 물었다.

《예, 싸할린에, 거기서 나서 자랐어요.》

《그-래?!》

처녀가 자기처럼 조국을 멀리 떠나 나서 자랐다는것이 그를 다시 보게 하였다.

《무전치는건 언제 배웠소?》

《그건 좀, 긴 얘긴데… 고기잡이하는 아버지를 돕다가 폭풍을 만났어요. 겨우 구원되여 나호드까에 갔는데… 거기서 내가 로씨야말, 중국말, 일본말까지 아는 조선사람이라고 해서 무슨 특수기관에 데리고 가더군요. 일본놈들이 싸할린섬을 차지하고있는데다가 조선사람, 로씨야사람, 중국사람, 할것없이 다 함께 살다보니 여러 나라 말을 배웠지요.》

《그러니 쏘련군대 무선수가 됐겠소?》

《아니 그저 훈련만 받았어요. 한번도 써먹진 못하구… 만주에 나오자 벌써 다 해방이 되였거든요. 마침 강건동지가 와서 훈련받은 우리 조선사람 몇을 데려갔어요.》

《음-총을 쏠줄도 알구?》

《예, 특수훈련을 받았으니까요.》

《그거 참 좋군, 좋아!》 박락권은 버릇처럼 손바닥으로 턱을 문댔으나 더는 부스러져내릴것이 없었다. 지난밤 화토불가에서 련락병이 준 면도칼로 품을 들여 반반히 밀어버렸던것이다.

《우리 사람들한테 글공부도 배워줄수 있겠군. 그렇지?》

《글공부말입니까?》

《그럼!… 우선 우리 글부터 익히구 그담… 수학, 력사, 지리… 아는껏 다 배워주라구, 나도 배우구… 나도 혼자 짬짬이 공부하느라군 하지만… 빌어먹을, 어찌나 힘든지…》

정희는 상긋 웃었다. 웃을 때의 그 모습이 류달리 아름답게 보이는데 그는 놀랐다.

《중학교졸업정도면 되겠습니까? 련대장동지?》

《좋지, 동무한테선 중학정도로 배우구… 그담 조국에 나가 또 해야지. 글공부를 하는것-이것도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이요.》

김일성장군님께서요?》

《한때 내가 글공부를 죽어라 싫어한다고 장군님께선 엄하게 꾸지람 하셨소. 에에-그때 얼마나 진땀을 뺐던지…》

《예-》

처녀가 또 상긋 웃었다.

《왜 웃소?》

《참 이상하지요. 인젠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련대장동지 말입니다.》

《나도 그렇소. 동문 아주 제때에 잘 왔소. 짬만 있으면 련대내 소대장이상 지휘관들을 다 배워줘야겠소. 싸움은 잘하지만 까막눈인 소대장, 중대장들이 적지 않아. 그래가지구야 어떻게 현대전에 필요한 정규군의 지휘관으로 되겠소. 이건 장군님께서 주신 두번째 과업이요.》

《예, 그러세요? 그럼 세번째 과업은요?》

《꼭 살아서 돌아올것!》

《호호호…》

박락권도 싱긋 웃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동물 놔주지 않겠소. 이제부턴 내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마오. 아니 내가 동무한테서 떨어지지 말아야지. 선생님한테서!…》

그들은 뒤쪽에서 바투 붙어 따라오는 련락병 왕진이 늙은이처럼 이마살을 찌프리며 그 무엇을 경고하기라도 하는듯 목누른 기침소리를 내군 하는것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충실한 련락병이고 제아무리 잽싸고 성실하고 용감하다 해도 단숨에 천리밖까지 날아갔다 날아오는 전파를 당해낼수는 없다. 더더욱 지휘관들에게 글공부를 가르칠수도 없는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더욱 중요한데 그는 비록 열여덟살이였지만 자기보다 두세살밖에 더 나이들어보이지 않는 이 처녀, 왕진이라는 제 이름처럼 정희라는 두자이름을 가진 별로 잘난데도 없는 이 처녀가 그 매혹적인 조용한 웃음으로 그리고 대번에 사람을 끄당기는 알수 없는 녀성의 그 무엇으로 조만간에 아니 벌써부터 자기를 밀어내고 지금껏 그가 차지하고있던 그 위치에 넌떡 들어서고있다는것을 온몸의 직감으로, 살을 저며내는듯한 아픔으로 느끼고있는것이다. 그리도 따르고 존경해왔건만… 지금껏 《박탄장》은 오직 왕진에게만 《내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말라》고 해왔건만… 그는 거의나 증오에 가까운 심정으로 가슴을 허비는듯한 시샘과 노여움에 겨워 소리없이 웃고있는 처녀를, 볕에 타고 여위여 영 볼품이 없는 처녀무선수를 지꿎게 훔쳐보고 노려보고있었다.

다음날 아침에야 나루훈근처에 이르렀는데 뜻밖의 일이 박락권을 기다리고있었다.

 

무성한 새초숲너머 등판쪽에서 물기를 머금은듯 한 기관총소리가 뚜루룩거리고 이따금 수류탄 튀는 소리가 대기를 휘저으며 울려왔다. 자지러지게 울부짖고는 마치 동정을 살피기라도 하는듯 뚝 그치고 귀를 기울이고는 또 발작적으로 울부짖는 기관총소리, 그 속에서 띠염띠염 울려오는 보총과 권총의 사격소리는 힘이 진한듯 맥없이 애처롭게 들렸다.

박락권은 척후병들이 말을 달려오는것을 보고 전투준비를 명령했다. 척후병들의 보고에 의하면 세명의 팔로군을 국민당군대와 《송나라미인》토비들이 추격하고있다고 했다.

박락권은 추격해오는 적의 력량이 한개 소대가량의 국민당군과 토비 100여명이라는 말을 듣자 곧장 등판쪽으로 말을 내몰았다. 총포성은 언제나 그의 피를 끓게 하고 이마의 피줄들이 푸들푸들 뛰게 했다.

저쪽 숲가에서 재빛의 그림자들이 얼씬거리며 불꽃을 번뜩이였다. 세명의 팔로군병사들이 말을 달려오는데 등판쪽에서 산개대형으로 말을 타고 쫓아오는 토비무리가 구름처럼 솟아오르더니 인차 잦아들었다. 개활지대를 앞질러 포위하려는 시도였다. 그런줄도 모르고 팔로군병사들은 박락권의 기마중대가 있는 수림속으로가 아니라 개활지대로, 죽음의 덫을 향해 정신없이 달리고있었다.

박락권은 김영걸중대장에게 소리쳤다.

《제일 날쌘 사람을 보내서 저 사람들을 이쪽으로 돌려세우오.》

김영걸이 팔을 들어 무슨 신호를 하자 한사람이 말잔등에 몸을 딱 붙이고 새초밭을 질러 달려갔다. 잠시후 김영걸중대장이 휘파람을 홱 불자 80여명의 전사들이 숲속에서 달려나왔다. 말한마디 없었으나 기병중대는 그의 손짓과 휘파람으로만도 모든것을 알아차리고 정확하고 신속하게 움직이는것이였다. 지금 그들은 토비들을 역습하려고 말고삐를 든든히 감아쥐고있었다.

박락권은 나머지 대원들을 저쪽 숲가의 국민당군쪽으로 말머리를 돌리게 했다.

얼마후 팔로군병사들을 뒤에 달고온 전사가 날카로운 휘파람소리를 내질렀다.

때가 왔다. 박락권의 《백전마》가 몸을 부르르 떨며 갈기를 세웠다. 돌격을 앞둔 주인의 흥분을 뻑뻑하게 곧추 펴는 다리의 힘살과 등자를 꽉 딛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의 경련적인 떨림으로 알아차린것이였다.

바로 그 순간 싸창을 빼든 정희가 옆에 다가왔다. 전투의 흥분이 해쓱해진 처녀의 얼굴을 살얼음처럼 뒤덮었다. 어찌나 입을 꼭 옥물었던지 그러지 않아도 작은 입이 새파란 반점같이 보일 지경이였다. 박락권이 소리쳤다.

《동문 남소!》

《련대장동지, 전…》

《남으라는데!》 이렇게 재차 소리친것은 련락병 왕진이였다.

《명령대로 하시오!》

그때 벌써 박락권은 새초숲을 짓이기며 말을 달리고있었다. 150여명의 말탄 전사들이 두패로 나뉘여 시꺼먼 구름떼처럼 밀려나갔다. 돌격의 웨침도 함성도 없다. 말발굽소리의 불의적인 기습, 갈기들이 날리고 허연 입김들이 날렸다. 수백명의 소고대가 일시에 급작스레, 미친듯이 두드려대는듯 등판과 새초숲너머로 휩쓸어가는 말발굽소리의 격류에 적들은 입을 쩍-벌리고 굳어져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총부리를 돌렸을 때에는 이미 결단이 나고있었다. 무섭게 갈개는 말들이 한쪽에서는 국민당군대의 보병소대를, 다른쪽에서는 말탄 토비무리 한복판으로 뛰여들어 사납게 울부짖고 차던지고 짓뭉개기 시작했다. 전사들은 기병총과 싸창으로 혹은 채찍으로 쏘고 때리고 후려치고있었다. 순식간에 전투는 끝나버렸다.

말탄 토비들중 일부만이 청교자로 달아날수 있었다. 청교자는 높고 두터운 토성으로 둘러싼 촌락이였다. 박락권은 추격하는 전사들을 멈춰세웠다. 토성앞에 너비 4m, 깊이 2m나 되는 물도랑이 있고 기관총을 설치한 화점들과 지어 90mm야포, 류탄포까지 있다는것을 그는 알고있었다.

세명의 팔로군병사들만 아니라면 불의적으로 토성안의 토비무리를 잡아족치려 했었는데 일이 틀려진것이다. 인제는 보병중대들까지 다 끌어다놓고 전면포위공격이 아니면 력량상우세로 위협하여 손들게 하는수밖에 없다.

구원된 팔로군병사들이 말을 달려왔다. 그들중 한사람이 무던히도 낯익어보였다.

《박락권동지, 절 모르겠습니까?》 그가 반갑게 소리쳤다. 《황옥청입니다.》

《황옥청!…》

말에서 내려 서로 부둥켜안았다.

《이게 얼마만이요. 훈련기지에서 보군… 그새 잘 있었소?… 그런데 무슨 도깨비바람이 불어 예까지 왔소. 난 동무가 연안에 가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황옥청은 연안에서 산동으로, 산동에서 또 동북으로 오게 된 경위를 간단히 말하고 다시금 박락권의 두손을 부여잡았다.

《박락권동지, 난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만나니 얼마나 기쁜지… 하마트면 국민당놈들과 토비들한테 걸려 산채로 껍질을 벗기울번 했습니다. 다행히도… 정말 고맙습니다.》

박락권은 그러한 인사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총쥔 사람들의 우애는 피로써 맺어지는것이다. 더우기 전쟁터에서는 생명을 구해주고 구원받는 일이 례상사이다. 그런 일로 상대방이 거북해할 정도로 감사의 말을 퍼붓는것은 군사답지 못한 일이다.

《그런데》 하고 박락권은 물었다. 《나를 찾아왔다는건 무슨 소리요? 우정 찾아왔다고?》

《예, 바로 탄장동지를 찾아왔지요. 존경하는 김일성동지께서 박락권동지를 찾아가라고 하셨습니다.》

《?!…》

박락권은 머리를 기웃하고나서 히죽이 웃었다. 분노를 터치기전에 그는 늘 이렇게 웃군 했다.

《롱담을 해도 분수가 있지. 황동무, 어째서 왔는지 그거나 말해주오.》

《아 박락권동지, 제가 롱담을 한다구요? 이건 사실입니다.

우리 동무들한테 물어보십시오. 우린 정말 그저께밤 장군님을 만나뵈웠습니다. 믿지 못하겠지요. 그렇지만… 들어보십시오. 우리들도 정말 꿈을 꾸는것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장군님을 만나뵙게 된 사연을, 장군님께서 위기국면에 처한 소화사령부에 찾아오시여 타개책을 세워주시고 사령부지휘성원들의 가족들을 구원하기 위한 전투임무를 박락권동지에게 전하라고 하시던 일을 크나큰 감동속에 눈물을 머금고 이야기했다.

어느새 숱한 전사들이 그들을 둘러싸고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장군님》 《장군님께서》 하고 속삭이는 소리가 불길처럼 번져갔다.

박락권은 목쉰듯 한 소리로 힘겹게 물었다.

《그래 그담 또… 무슨 말씀이 계셨소?》

더 듣고싶었다. 처음부터 다시 반복하게 하고도 성차지 않아 자꾸만 캐여물었다.

심장이 쿵쿵 울렸다. 소스라치듯 흐느끼며 목구멍 가득히 치밀어오르는 오열을 씹어삼켰다. 손가락으로 꺼슬꺼슬한 머리털을 쓸어넘기며 저 멀리 조국의 하늘가로 밀려가는 구름더미를 바라보았다.바람이 세차지면서 숲을 설레게 했지만 추위도 느끼지 못했다. 등성이너머로 뻗어간 한줄기 오솔길, 새초숲을 꿰질러 분명치 않게 멀리 사라져간 그 오솔길이 그가 갈 길을 암시하며 불러주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