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3


 

제 2 장

3

 

날이 밝아서야 눈이 멎었다. 해는 아직 솟지 않았지만 흰눈의 세계는 어느새 어둠을 쫓아버렸었다. 보이는것은 온통 눈, 눈이였다. 비행장의 넓은 활주로는 물론 흙으로 두두룩하게 쌓아올린 격납고와 그우의 아카시아나무들에도 하얀 눈이 두텁게 쌓여있었다. 다치면 깨질것 같은 정적, 철조망우에 올라앉은 눈송이들도 층층 소복이 줄지어앉아 무엇인가를 숨죽여기다리는듯 했다. 아직 새들도 깃을 펴지 않고있는 이른 아침이였다. 갑자기 항공역사건물에서 사람들이 뛰여나왔다. 눈가래를 들고 손수레를 밀며 활주로에로 달려갔다. 격납고에로 달려가 비행기우에 쌓인 눈을 쓰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동차가 부릉부릉 발동을 걸고 누군가는 목에 걸고있던 호각을 입에 물고 혀가 눌린 소리로 무어라고 웨쳐대기도 했다. 남달리 키가 큰 리학이였다. 유도로의 눈부터 치라고 소리치고는 별다른 의미없이 호각을 길게 불어댔다.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사람들이 밀려갔다. 그들중 한사람이 뒤를 돌아보며 팔을 내흔들었다.

《대장동문 빨리 차비나 하구려. 여기 일은 걱정 말구요!》

그역시 기쁨에 넘친 웨침이였다. 오늘 비행장에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게 되여있는것이였다.

밤새 장군님을 모실 준비로 복닥소동을 피운 그들이였다. 침실과 강의실도 깨끗이 청소하고 교재들도 진렬해놓고 《평북민보》사에 두번세번 사람을 띄워 신문기자 한명을 꼭 보내달라고 청했는가 하면 도인민위원회청사앞의 《모범당사진관》에 사진촬영도 부탁했다. 밤새껏 잠들지 못하고 창문유리를 닦고 또 닦으며 언제면 눈이 멎는가 하고 빠질빠질 속이 타드는것을 참기 어려워했다. 눈이 계속 내리면 장군님께 시범비행을 보여드리지 못하기때문이였다. 그러나 그들의 간절한 기원이 천상에 닿았는지 드디여 눈이 멎었다. 하늘이 개이고 숨 막히던 가슴들이 문을 활 열게 되였다.

리학은 침실에 들어가 비행복을 갈아입고 거울앞에 나섰다.

누구든 거울앞에 나서면 거울에 비쳐진 자기의 모습은 물론 마음속생각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혹은 흘러간 옛시절의 자기를 지금의 자신과 대비해보며 야릇한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자기자신을 감상하며 그 어떤 즐거움을 맛보는것은 대체로 한창나이 처녀들이나 경박한 젊은이들, 다시말하여 돌이켜볼 추억보다도 꿈꾸는 래일에만 더 관심이 가는 젊은이들뿐이다.

지금 27살의 리학이 역시 피끓는 시절, 젊은이축에 속하는 사람이였다. 그러나 그는 거울앞에서 자기를 감상하는것이 아니라 가늘게 눈을 좁혀 뜨고 코수염을 문지르며 지나온 나날을 더듬고있었다. 그러자 기억은 맨 먼저 11살나던 해의 리학을, 염주(룡천)보통학교 4학년시절의 빤빤머리소년의 얼굴을 지금의 자기 모습앞에 포개여놓았다. 지금의 코밑수염은커녕 날카로운 코마루밑에 솜털도 보이지 않던 소년, 자기의 앞날에 무엇이 기다리고있을지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는 몸이 가는 소년이 숱한 애들과 같이 와와 소리지르며 산과 들로 정신없이 달음쳐 가고있었다. 비행기 한대가 산을 스치듯말듯 날면서 술에 취한것처럼 비틀거리고있었던것이다. 울퉁불퉁한 달구지길에 내릴듯 하더니 우당탕탕하는 거친 재채기소리를 터치며 가까스로 또 날아오르고있었다. 잠자리를 쫓을 때처럼 금시 잡을듯 싶어 달리고 또 달렸는데 벌 한끝까지 20여리나 멀리갔다. 숨이 턱에 닿고 목구멍에서 겨불내가 치밀어올랐다.

비행기는 강냉이밭에 내려있었다. 봄철이여서 겨우 잎이 돋기 시작한 강냉이포기들이 불어치는 바람결에 파들파들 떨고있었다.

그처럼 가까이 비행기를 보기는 처음이였다. 쌍날개비행기였는데 밭 한뙈기를 거의 다 덮고있었다. 숱한 애들이 달려갔지만 겁이 나고 말도 통하지 않아 누구도 비행사와 의사소통을 못하고있었다.

리학이 당돌하게 나섰다.

《고장났어요?》

코밑수염을 기른 비행사가 무어라고 했으나 알아들을수 없었다. 두팔을 쩍 벌리고 파란 눈을 꿈쩍거리기도 하면서 비행사는 안타깝게 혀바닥을 굴리는 말을 계속 엮어댔다. 보다못해 리학이 소리쳤다.

《니혼고오 싯떼이마스까?(일본말을 아시나요?)》

《오!-》 비행사의 두눈이 빛났다. 《싯떼이루 싯떼이루. 고레데 다스깠다! (안다, 알구말구. 이젠 살아났구나!)》

쏘련비행사라는데 일본말을 잘했다. 후에 가서야 알게 되였지만 당시 쏘련비행기들은 의주에서 멀지 않은 중국의 대련과 려순을 정기적으로 비행하고있었다. 쏘련비행사는 리학에게 바킹으로 쓸 고무를 좀 얻어달라고 또 앞바퀴쪽의 뚝도 좀 깎아달라고 부탁했다.

숱한 애들이 달라붙어 뚝을 허물고 비행사가 요구하는 바킹감으로는 고무신을 벗어주었다.

쏘련비행사는 리학을 번쩍 안아 운전칸에 앉히고 비행기의 구조, 성능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두개의 좌석이 있는 프랑스제 《안디오》비행기였다.

《비행사는 하늘의 왕이다. 너도 커서 비행사가 되거라.》 그가 리학에게 남긴 마시막인사말이였다. 《하늘에서 또 만나자, 리- 학!-》

드디여 비행기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리학이와 애들이 와- 밀려가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런데 얼마간 날아가던 비행기가 다시 돌아와 애들의 머리우에서 날개를 기우뚱거리며 인사를 보내더니 고공으로 올라가 아득히 사라져갔다. 비행기가 까만 점으로 보일 때까지 손을 저어주던 리학은 돌연 가슴에 꽉 들어차는 풀향기에, 무어라고 형언할길 없는 봄날의 따스한 볕냄새에 숨이 막히는듯 하였다.

《그래, 비행사가 될테야. 하늘을 날겠어. 꼭!…》

그때부터 리학은 하늘을 무심히 보지 못했다. 어린 소년의 마음속 푸른 꿈이 아득한 그 창공에 가없이 펼쳐져있었다.

세월이 흘렀다.

아버지는 그리스도교학교에 갈것을 바랐지만 리학은 일가친척들을 들쑤셔 끝내 일본으로 건너가 나고야비행학교를 나오고 2등비행사 자격을 얻었다.

전 일본땅이 《대륙침략열》에 들떠있던 시기였다. 리학은 징병을 피하기 위하여 《요미우리신붕》사의 련락비행사로 취직했다. 원고도 나르고 취재기자들도 태우며 도꾜-오사까, 도꾜-혹가이도, 오사까-싸할린, 싸할린-대만 사이를 끝없이 날고 날아 비행시간은 천시간, 2천시간에 달하였다. 나날이 비행술도 높아져 그는 새처럼 창공을 날게 되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린 소년의 가슴속에 푸른 꿈을 키워주던 조국의 하늘이 아니였다. 날이 흐를수록 험악해지는 공기속에서, 민족적차별과 멸시속에서 자기가 고이 지니고온 푸른 하늘, 푸른 꿈이 얇은 얼음장같이, 유리장같이 산산이 깨여져버리는것을 의식했다.

l급비행사이며 전 일본의 열명 특급활공사중의 한사람으로서 그는 마리아나군도 점령작전에 특공대로 날아갈 성원으로 뽑히게 되였다.

《가미가제(신풍)》비행사, 소위 특공대로 불리우던 결사대원으로서 죽음의 길로 떠나야 했다.

리학은 그것이 어떤 길인지 잘 알고있었다.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죽음의 길, 한잔 술로 목을 추기고 손을 들어 작별을 고할 때 《대일본제국》은 비장한 노래로 그의 출전을, 그의 최후를 축복해줄것이다.

 

사나이라면 사나이라면

죽음을 앞두고 내 남아의 기개로

일장기 품고서 나아가노니

사나이라면 죽음이 두려울소냐

 

그러나 조선청년인 리학이 《일장기 품고서 죽음에로 나아》갈 리유는 없었다.

진정 이날을 위해 오랜 세월 꿈을 키워왔던가?… 절망에 몸부림치던 그 순간 피뜩 머리를 치는 기억이 있었다. 비행기의 단파무선기를 수리하던 어느날 우연히 다이얄을 돌리다가 조선말방송을 들었던것이다.

《여기는 울라지워스또크 대조선방송입니다.》

밤 10시였다. 그는 남들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무선기를 기름걸레에 싸안고 려관으로 달려갔다.문을 닫아걸고 주파수를 맞추자 때마침 만주에서 김일성장군항일유격대의 전투승리소식을 끝맺고있었다.

《…안도현 태평구습격전투와 연길현 서북하습격전투, 화룡현 서화동전투가 련이어 전개됨으로써 일제의 동만토벌부대는 거의 괴멸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아울러 동만각지의 동포들속에서는 김일성장군님께서 조선독립을 이룩하실 광명의 날이 멀지 않았다고 기쁨에 넘쳐 환호를 올리고있다고 합니다. 이상 만주에서 입수된 일본관동군 정보처장 기리시마 노보루의 보고서내용을 알려드렸습니다.》

그때 들은 방송원의 말마디들이 불덩어리처럼, 이글이글 타는 석탄쪼각처럼 머리를 지지며 파고들었다. 가슴 들먹이던 그날의 환희가 이번엔 창끝같은 결심으로 뜨겁게 벼려졌다.

그는 밤중으로 시모노세끼행렬차에 올랐고 사흘후에는 부산항에, 다시 이틀후엔 서울에 이르러 보통학교시절의 옛 스승의 집에 몸을 숨겼다. 기회를 보아 북으로, 만주로 들어갈 결심이였다. 1945년3월 중순이였다. 그러나 해방을 맞을 때까지 스승의 뒤골방에서 한 걸음도 내짚지 못하고 말았다.그의 행방을 탐지하기 위해 헌병과 경찰들이 그와 면식이 있던 모든 사람들을 취조하고 피눈이 되여 감시하고있었기때문이였다.

해방후엔 매일같이 서울역으로 달려나가군 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서울로 오신다고 메가폰을 들고 웨쳐대고 공시문을 내붙이고 기발과 프랑카드, 꽃다발을 들고 시위행렬처럼 사람들이 밀려가군 하였다. 북에서 오는 차라면 객차이건 화차이건 가림없이 뛰여나가 환호를 올리군 했었다.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신의주로, 비행장으로 왔다. 비행장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을 모아 쇠몽둥이를 들고 아직 버젓이 경비를 서는 일본놈들을 내쫓았다. 그다음부터는 비행기를 뜯어가는 장사군들을 쫓아야 했다. 경비도 서고 비행기들도 수리하고 사람들의 생활문제도 풀어야 했다.

도인민위원회를 찾아갔다. 위원장을 만나 비행장을 관리운영하고 비행사들도 키워야겠다고 강실과 합숙으로 쓸수 있게 적산가옥 몇채만 내라고 했다.

그때 위원장앞에 문건을 내밀고 수표를 받던 사람이 갑자기 눈을 흡뜨며 부르짖었다.

《너 리장수 아들 아냐?… 옳지, 왜놈앞잡이가 왔구나. 모가질 비틀어도 씨원치 않을 이 왜놈의 개비행사야. 이놈! 개새끼처럼 매달아 가죽을 벗길테다.》

도망쳐나오지 않을수 없었다. 이번엔 도당청사로 도당책을 찾아갔다. 폭주가이며 웅변가인 유명한 《김휘동지》는 그때 몹시 피곤한 기색이였다. 주독이 올라 새빨개진 코언저리를 엄지손가락끝으로 긁어대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조선사람비행사도 있는가?… 그래 쏘련서 배웠소?… 아니 뭐 일본에서?… 그러니 일본군대비행사로 복무했겠소? 만주도 치구, 남경, 상해, 비률빈(필리핀)도 치구. 응?!… 아, 아 믿어지지 않소. 어쨌든 좀 알아보기요… 헌데 그 코수염은 히틀러를 본딴거요, 아니면 야마시다 호붕대장을 본딴거요?…》

치솟는 분격에 인사도 없이 문을 열고나설 때 전화기를 들고 웨치는 《김휘동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비수처럼 날아왔다.

《보안국장을 찾소, 빨리!》

도당청사정문을 나와 터벌터벌 걷고있는데 보위색군복차림을 한 장대한 체구의 사람이 그를 쫓아왔다.

《동무가 비행사요?》

리학은 얼어붙고 말았다. 안개가 낀듯 눈앞이 흐려져 가까스로 버티고섰다. 무엇인가 상서롭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있다는 예감에 목이 타고 한없는 피로와 시진한 혐오감에 속이 메슥메슥해졌다. 이렇듯 빨리 도보안국장이, 암담한 재난이 뒤쫓아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것이다.

불면때문인지 눈이 충혈진 그 사람이 두툼한 입술을 놀리며 엄하게 또 물었다.

《왜 그러오. 동무가 도당책을 찾아왔던 비행산가 말이요?》

《예.》

《이름이 리학이지?》

《예.》

《난 김일이라고 하오. 파견원이요.》

며칠후 김일이 군용코트를 걸친 쏘련군관을 데리고 비행장에 왔다.

《오늘중으로 평양에 가야겠소. 혼자가면 시끄러운 일이 있을수 있으니 쏘련군인 한동무를 따라 보내려고 하오. 막씨모브소좌동무요. 인사하시오.》

김일은 그에게 《평안남도공산당책 김용범동지앞》라고 쓴 편지도 주었다.

그때까지도 리학은 얼마나 아름찬 행복이 지금 자기를 기다리고있는지 다 알지 못했다. 평양에 가면 많은 애로가 풀릴수 있다는 희망에 들떠있었을뿐이였다. 그는 재빨리 99식중간련습기에 올라 발동을 걸었다.

평양문수비행장에 내리자 기관단총을 든 십여명의 쏘련군인들이 비행기를 포위하고 위협적으로 소리쳤다. 당장 쏴갈기기전에 빨리 내렷, 이 일본놈아! 하는 소리였다. 그때 쏘련공군대좌가 탄 승용차가 바람같이 달려왔다. 차가 멎기 바쁘게 비행기로 뛰여온 대좌가 코트를 입고있는 막씨모브《소좌》에게 거수경례를 붙이며 뭐라고 보고했다. 막씨모브가 몇마디 이르자 또 잽싸게 거수경례를 붙이며 리학을 자기가 타고온 차에 태웠다.

모든것이 꿈만 같았다. 공산당본부에서는 모두가 그를 알고있는듯 했다. 싸창을 찬 빨찌산이 그를 김용범에게 안내하고 편지를 읽은 김용범이 또 그를 데리고갔다.

김일성장군님부대 정치위원동지가 동무를 부르시였소.》

그가 하는 말이였다. 응접실에 들어가 조금 기다리는데 밖에서 차경적소리가 울리였다. 군복입은분이 차에서 내리시더니 장화를 벗고 현관으로 들어서시였다. 회색 가까운 닫긴형의 보위색군복차림이였는데 웅대한 체격과 불을 뿜는듯한 안광에서 벌써 리학은 주눅이 들어버렸다.

《동무가 신의주에서 비행기를 타고온 리학동무입니까?》

그분의 물으심에 리학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예, 제가 리학입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반갑습니다. 나는 빨찌산 정치위원입니다. 김일동무한테서 얘길 들었습니다.》

《…》

리학은 여전히 돌부처같이 굳어져있었다. 그처럼 잘나신분을 처음 보는듯 했다. 기골도 좋으시고 위엄과 따뜻함이 넘쳐흐르는 남다르신 용모에 웃음을 지으실 때 약간 패이는 불우물과 우렁우렁하면서도 갈리신 음성은 30살안팎의 젊으신 그분을 대뜸 영웅으로, 무적의 장군으로 생각케 했다.

소박한 방안이였다. 구형의 키낮은 책상우에 놓인 전화기, 다다미우의 방석들이 전부였다. 그이께서 리학을 이끄시여 자리에 앉게 하시였다. 키낮은 책상을 마주하고 방석우에 앉으시자 그이께서는 우리 나라에 비행사는 몇명이나 있는가, 비행기정비원들은 얼마나 되며 항공대를 조직할수 있는 고장으로서는 어데어데가 적당한가 하는것 등을 물으시였다. 리학이 비행복안주머니에서 조선지도를 꺼내여 짚어가며 평앙은 물론 신의주, 함흥, 회령, 청진 등에 항공대를 세울수 있을것 같다고, 그곳 비행장들에 비행기기관정비원들과 비행사들도 얼마간 있을수 있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그 모든것을 빠짐없이 수첩에 적으시였다.

《좋습니다. 이만하면 새 조선의 항공대를 창설할수 있는 밑천은 쥐고있는셈입니다.》 그이께서 만족하여 하신 말씀이였다. 《물론 어렵겠지만 우리 함께 손잡고 힘껏 내밀어봅시다. 의주비행장에서부터 시작합시다. 리학동무, 이제 돌아가면 비행대를 운영하면서 명칭은 신의주항공대라고 하시오. 동무가 할 일이 많습니다. 김일동무한테 말해주겠으니 통이 크게 한번 잘해봅시다. 복잡한 문제가 제기되면 아무때라도 좋으니 제기하시오.》

리학은 차츰 어려움도 잊고 제기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말씀드리기 시작했다. 비행사양성문제,건물과 비품, 교육기재문제, 연유 및 식량공급문제… 나중엔 쏘련사람들이 뒤늦게 와가지고는 독판치기를 하고있는 실정까지 말씀드렸다.

《원 저런!… 도와주지 못할망정…》 그이께서는 웃으며 곧 전화를 드시였다. 로마넨꼬라는 이름이 불리워지고 리학이 알아들을수 없는 로어로 엄하게 말씀하신후 전화를 놓으시였다. 《됐습니다. 이제부턴 동무들이 비행장을 맡으시오. 누구의 눈치를 볼것도 없고 기대를 가질것도 없습니다. 동무가 주인입니다. 조선사람들이 전적으로 주인노릇을 해야 합니다.》

《고맙습니다. 정치위원선생님!》

그저 앉아서 감사의 인사를 올리기가 송구스러워 리학은 몇번이고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으나 매번 그이께서 눌러앉혀 주시였다.

퍼그나 시간이 흘러 저녁식사시간이 되였다. 리학이 려관으로 가려했으나 이번에도 그이께서는 그를 잡아 이끄시였다.

《우리가 동무같은 비행사를 얼마나 찾았다고… 그냥 보낼수가 없지. 우리 저녁식사를 같이 합시다. 별식은 없어도 여럿이 둘러앉아 먹으면 더 맛있는 법입니다. 자 허물하지 말고 어서 나앉으시오.》

식사를 끝낸후 그이께서는 중요한 회의를 지도하시였다. 밤 12시가 넘어서야 돌아오신 그이께서 또 리학을 찾으시였다.

《아직 쉬지 않고있었다니 오늘은 나와 같이 자면서 이야기나 좀 나눕시다.》

그이께서는 주춤거리는 리학을 한사코 이끄시였다.

밤이 새도록 그이께서는 리학의 고향이며 부모형제 친척들, 리학의 경력에 대하여 물으시고 귀담아 들으시였다. 리학이 가정환경과 과거경력때문에 속을 썩인다는것을 아시고 그이께서는 말씀하시였다.

《동무가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나 일본에서 비행사로 일해온 일에 대해선 이미 김일동무를 통해 들었습니다. 그런 일때문에 마음쓰진 마시오. 나는 동무를 믿습니다.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언제든 동무를 믿겠습니다.》

리학의 인생행로는 이렇게 결정되였다. 푸른 하늘이 가없이 열리고 어린 가슴을 부풀게 하던 푸른 꿈이 칠색무지개에 실려 날아오르게 되였다.

리학은 그날 자기가 만나뵈온분이 그토록 뵙고싶던 김일성장군님이시라는것을 장군님의 개선연설후에야 알게 되였다. 지난 10월 14일 장군님께서 개선연설을 하신 보도가 사진과 함께 《평양민보》에 실린것을 보았을 때 그는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신문을 가져온 김일에게 볼이 부어 푸념을 했다.

《이런 법도 있습니까. 파견원동지, 오늘에야 <정치위원>이 김일성장군님이시라는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게 되여있었소.》 하고 김일은 웃었다. 《규률이거든.》 리학은 웃고있는 그의 얼굴을 놀라서 바라보았다. 그가 웃고있는것을 그때 처음 보았기때문이였다.…

 

차비가 끝나자 리학은 밖으로 나갔다. 장군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만 있을수 없었다. 미리 말해두었으므로 화물자동차 운전사는 발동을 걸어놓고있었다. 파르스름한 배기가스가 고르롭게 뿜어나와 높다랗게 쌓아올린 눈더미우로 기여오르고있었다.

활주로의 눈치기작업은 거의 끝나가고있었다. 8시가 가까와왔다. 불덩어리같이 솟아오른 태양이 흰눈에 뒤덮인 대지우에 눈부신 금빛을 휘뿌리고있었다.

너무 이르지 않을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리학은 곧추 차 있는데로 걸어갔다. 지금 이 시각을 놓치면 행복의 꿈이 영영 깨여져버릴것처럼 조바심치는 심정이였다.

별안간 걸음을 멈추었다. 뒤에서 누군가 그를 찾고있었다.

《리학씨!》

맑고 챙챙한 처녀의 목소리, 겨울아침의 챙챙 울리는듯한 대기를 흔드는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피끗 돌아다보니 낯익은 얼굴이, 꿈에 자주 보이던 아릿다운 처녀가 방그레 웃고있는것이였다. 까만 모직외투에 하얀 목도리를 두르고 털신까지 신고있는데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것은 웃고있는 처녀의 코언저리에서 숨쉬듯 오르내리는 주근깨들이였다. 그것들까지 기쁨에 울고 웃고있는듯 했다.

《나예요. 리학씨, 라옥주예요.》

《옥주!》

성급히 달려갔으나 별안간 멎어서서 다시금 처녀를 눈여겨보았다.

《어떻게 왔소?》

《아이참, 그러니 날 기다리지 않았는가보죠?》

리학은 게면쩍게 웃으며 털장갑에서 빼내는 처녀의 손을 꼭 잡아쥐였다.

《몰랐소. 이렇게 여기까지 올줄은…》

《그럴줄 알았어요. 그저 리학씬 비행기밖에 모르셔.》 하고 옥주는 곱게 눈을 흘겼다. 《그래 지금 어데로 가는 길이세요?》

《나?…》 갑자기 뇌리를 치는 생각에 처녀의 손을 놓았다. 《응- 나말이요. 아주 급한 일루… 지금 어디에 자릴 잡았소?》

《려관에요. <압강려관> 2층 5호실.》

《그럼 거기 가있소. 내 저녁에 찾아갈게.》

《아유! 저녁까지!…》

《안됐소. 가서 기다려주- 지금은 정말 시간이 없소.》

옥주가 더이상 말을 못하게 손을 들어 막으며 벙긋 웃었다. 그는 지금 그 처녀가 전날의 추억과 애틋한 순정만이 아닌 고통과 실망과 쓰라린 아픔까지 안고왔다는것을 알지 못하고있었다.

자동차로 뛰여갔다. 운전칸에 오르자 문짝을 쾅 닫고 창유리로 손을 저어주었다. 자동차는 유도로를 따라 정문으로, 시내에로 뻗은 큰 길로 눈발을 하얗게 날리며 달려갔다.

…이날 리학은 저녁에 려관으로 찾아가겠다고 한 자기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있었다. 라옥주가 서울에서 북변의 신의주까지 자기를 찾아왔다는것도 비록 잠간이긴 하지만 뜻밖에 나타난 처녀를 놀랍게, 반갑게 만났다는것도 잊고있었다. 그런것까지 잊지 않고 새겨두기엔 너무도 벅찬 하루였었다.

리학이 호텔 3층으로 뛰여올라갔을 때엔 장군님께서 금시 세수를 하고 방으로 들어서고계시였다.

《장군님, 밤새 안녕하십니까?》

리학이 명랑한 목소리로 인사 올렸다.

《아, 우리 비행사!… 벌써 왔구만.》

《예, 우리 항공대는 장군님을 모실 준비를 다 하였습니다.》

《벌써 다 모였단 말이요?》

《예.》 리학은 자기네들이 밤새워 준비했다는것은 말씀드리지 않았다. 《다 모였습니다.》

강상호가 눈발을 찌프리는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웃옷을 입으신 장군님께서는 강상호더러 외투를 가져오라고 이르시였다. 강상호가 딱해하며 말씀드렸다.

《장군님, 아침식사를 드시고 떠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일없소. 항공대에 가서 먹지.》

그때에야 비로소 리학은 장군님께서 아직 아침식사도 드시지 않았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리고 썩 후에야 그전날 밤 장군님께서 한잠도 주무시지 못하고 위험한 전장을 다녀오셨다는것을 알고 얼굴을 붉히였으나 달리하는 수가 없었다. 한시바삐 장군님을 모실 생각에 얼마나 미욱한 짓을, 죄스러운 짓을 저질렀는가 하는것을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기쁨이 크고 행복에 취해있었다.

장군님께서 물으시였다.

《동문 자동차를 타고왔습니까?》

《예, 화물자동차를 타고왔습니다.》

《음- 됐구만. 우리도 그 차를 타고갑시다.》

《예?!…》

리학은 장군님께서 왜 굳이 화물자동차를 타고가시려 하시는지 알지 못했다. 강상호와 뒤늦게 달려온 김일이 당장 운전수를 깨우겠다고 하는것을 장군님께서 그러지 말라고 푹 쉬게 놔두라고 하시는 뜻도 알수가 없었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화물자동차를 타고 의주비행장으로 가시였다. 당황하고 송구스러워 어쩔바를 몰라하는 리학에게 김일이 눈을 부라리며 무섭게 으름장을 놓았다.

《리학이, 동무 이제 두고보자.》

그러나 김일도 자기가 리학을 단단히 혼쌀내주리라고 벼르었던 일을 까맣게 잊은것 같았다. 장군님께서 그토록 만족해하시고 항공대원들모두의 기쁨과 감격이 너무도 커서 이여의 모든것이 잊혀지고 사라져버렸다.

식당과 침실, 강의실들을 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허름한 교구비품들과 교재들까지 다 만족하여 살펴보시였다. 리학의 시험비행과 잘 수리된 14대의 각종 비행기들… 그 비행기들의 기술상태도 료해하시고 장군님께서는 과분한 치하의 말씀을 주시였다.

이어 장군님을 모시고 진행된 기념촬영, 2층 합동강의실에서 하신 장군님의 연설… 외투를 입으신채 강의실을 거닐면서 항공대성원들 한사람한사람의 경력까지 물으시며 새 조선의 항공대가 나아갈 길을 밝혀주시였다. 감격의 눈물, 목메인 환호… 곡절 많던 지난날의 설음과 아픔은 저 멀리, 아득한 과거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들모두의 눈앞에 펼쳐진 미래는 너무도 밝고 창창한것이였다. 사사로운 모든것이 다 잊혀졌다. 이날 새 조선의 첫 항공대가 자기의 탄생을 온 세상에 높이 공포하였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