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2


 

제 2 장

2

 

희부연 해가 구름속에 파묻혀버렸다. 압록강건너 단동시에서 솟구쳐오른 황백색의 불기둥이 점차 암갈색으로 퍼져나가며 재개비를 흩날렸다. 비행기들이 선회하며 차례로 내려꽂힐 때마다 기총소사와 굉음이 뒤따르군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평안북도인민위원회 부장이상 책임일군협의회를 지도하시면서 자주 창너머의 격렬한 폭음에 귀를 기울이군 하시였다. 협의회에 이어 신의주시안의 상공인, 지식인, 종교인대표들을 만나실 때엔 날이 어두웠다. 강건너의 불그레한 화염이 창유리를 불태우고는 스러져버리군 했다. 화재의 불길속에 휩싸인 단동시에서는 간간이 웅근 포성이 굴러오기도 했다.

속담에 강건너 불보듯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지금 그이께서는 강건너에서 타번지는 참화의 불길을 저릿저릿한 아픔속에서 보고계시였다. 일제를 대신하여 기여든 미제, 미국제비행기들이 지금 동북쪽에서도 재난을 몰아오고있다. 지금 그곳에서는 일본군패잔병들도 미처 숙청하기전에 보다 음흉하고 악착한 미제가 장개석군대를 앞세워 총포탄을 퍼부으며 밀려들고있는것이다.

사실 일본군은 8월 15일의 무조건항복이 공포된후 쏘련의 와씰렙스끼원수와 일본관동군사령관 야마다 오쯔조간의 협약(8월 18일)에 따라 전체 관동군의 무장해제를 약속하였다. 그러나 일본대본영은 그후 작전명령 1631호를 련발하여 절대 손에서 총을 놓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패망된 일본군으로서 수치를 당하느니 끝까지 저항하여 싸우다 죽는편을 택하라는것이였다. 그리하여 수많은 일본군이1944년에 관동군사령관 야마다 오쯔조와 참모장이였던 하따히꼬 지로가 극비밀리에 작성한 《히까리작전》(장백산줄기와 로야령산줄기의 견고한 방어선에 근거하여 쏘련군을 저지시키고 포위섬멸하기 위한 작전계획)의 거점들로 내정되여있던 장백산줄기와 통화, 영구의 산악지방으로 물밀듯이 밀려 들었다. 하여 20여만에 달하는 이 패잔병무리를 끝까지 추격소멸하여 동북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피어린 싸움을 벌리는가운데 국민당군대는 오히려 미국을 등에 업고 동북땅을 차지하기 위한 내전을 도발하였던것이다.

준엄한 정세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시안의 상공인, 지식인, 종교인대표들과 민주주의적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한 투쟁에서 힘을 합칠데 대하여 진지하게 담화하신후 이미 대기하고있던 리학을 부르시였다.

코밑수염을 자래운 리학이 벙글써 웃으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뒤미처 김일도 들어섰는데 그의 얼굴은 무엇때문인지 침통한 빛이였다.

키다리 리학과 역시 장대한 체구의 김일은 특별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다. 부농의 아들로 태여나 일본 나고야비행학교를 나오고 요미우리신문사의 비행사, 일본의 특급활공사 10명중의 한사람으로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해방후 서울로, 다시 서울에서 신의주로 온 리학을 제일 먼저 발견한것도 김일이였다. 출생과 복잡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리학의 애국적소행을 전적으로 믿어주고 장군님을 직접 만나뵙도록 기회를 마련해주었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리학에게 일제가 패망하면서 마사놓고간 비행기들의 수리정형과 신의주항공대의 훈련과 학습, 교육기재준비 등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한때 리학이네가 신의주비행장의 비행기들을 수리정비하고 연유창고 등에 대한 관리와 경비조직까지 하고있을 때 갑자기 쏘련군비행부대가 비행장을 봉쇄하고 그들을 쫓아버리려 했었는데 보고를 받으신 그이께서 쏘련군대를 물러가게 한 일이 있으므로 또 해결해주어야 할 문제는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있습니다. 장군님, 꼭 말씀드릴것이 있습니다.》

리학은 지릅떠보는듯한 김일의 엄한 눈초리에는 아랑곳 않고 때를 기다리고있었던듯 재빨리 말씀드렸다.

《뭐요, 서슴지 말고 제기하시오.》

《장군님! 우리 항공대 전체 성원들은 장군님을 모실것을 한결같이 바라고있습니다.》

그이께서는 웃으시였다.

《그게 다요?》

《옛, 장군님. 장군님을 모시면 그때 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또 있단 말이군, 허허… 어쨌든 리학동무 욕심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시였다.

《그러지 않아도 래일 동무들한테 가기로 했습니다. 지금 정세는 새 조선의 항공대를 빨리 창설할것을 절박하게 요구하고있습니다. 여기서 동무들이 할 몫이 대단히 큽니다.》

그이께서는 창너머 멀리 하늘가를 물들이고있는 화광을 바라보시였다. 별빛 하나 찾을수 없는 시꺼먼 밤하늘, 화광은 잠시 스러져가는듯 하다가도 급기야 확 퍼지며 어둠을 밀어내군 하였다.

《보시오. 전쟁의 불구름이 우리의 하늘에도 번져오고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몸을 돌리며 어느덧 웃음이 가셔진 리학의 기름한 얼굴을 응시하시였다.

《래일 동무들이 훈련하는것도 보겠소. 잘 준비하시오.》

《옛, 장군님, 잘 준비하겠습니다!》

리학이 인사드리고 물러가자 그이께서는 김일에게 물으시였다.

《무슨 일이요. 김일동무?》

《…》

김일은 선뜻 대답을 올리지 못하고있었다. 두툼한 입술을 꾹 다물고 역시 솥뚜껑같은 두손을 꽉 움켜쥐고 숱진 눈섭만 쭝깃거리고있었다. 흔히 《대틀》이라고 하는 김일, 성나도 고함치지 않고 기쁜일이 있어도 떠들썩 웃을줄 모르는 바위같이 듬직하고 거쿨진 그였으나 지금은 달라져있었다. 굵다란 목과 이마언저리에서 피줄들이 맹렬하게 들뛰고있는것으로 미루어 커다란 아픔을 가까스로 참고있는듯 했다. 마침내 속에 재웠던 뜨거운 숨을 가늘게 내뿜고나서 그는 입을 열었다.

《장군님, 제가 파견원으로서 일을 쓰게 못했습니다. 당적책벌을… 받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저으기 놀라시였다.

《그건 또 무슨 말이요?》

《장군님!》 김일의 목소리는 묵직했으나 거기엔 그 어떤 비통한 억양이 숨어있었다. 《오늘 우리 동무들한데서 다섯번이나 전화를 받았습니다. 남포에서, 평양에서, 청진과 함흥… 김책, 안길동무들과 지금 청진에 와있는 정숙동무까지 이번 일때문에 걱정이 큽니다. 그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장군님께서 속히 평양에 돌아가실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제게 부탁하였습니다. 빨리 이곳을 뜨셔야겠습니다. 이건… 우리 혁명의 요구이기도 합니다.》

《우리 혁명의 요구?… 아니 김일동문 언제부터 그런 어마어마한 말을 하게 되였소. 언젠가 김책동무도 그렇게 말하더니…》

김일은 움쩍도 하지 않고 여전히 버티고 서있는것이 마치도 담벽처럼 막아나설 심산인듯 하였다.

《장군님, 아직 이번 학생사건을 일으킨 장도영인가 하는 놈의 패거리를 다 붙들지 못했습니다.놈들이 또 무슨 꿍꿍이를 하고있을수도 있습니다.》

《그따위 쥐새끼 몇마리가 쏠라닥거린다고 대사를 미루겠소. 일제의 100만관동군과도 눈섭하나 까딱하지 않고 싸워온 우리가 아니요. 김일동무답지 않은 말이요.》

《장군님!》

그러나 그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문기척소리와 함께 강상호가 엄숙한 표정으로 들어섰던것이다.

《장군님, 보고드릴수 있습니까. 중국공산당에서 간부 한분이 장군님을 뵙자고 찾아왔습니다.》

어마지두 놀란 김일이 《누구라구?》 하고 큰 소리로 물었다.

《소경광이라고 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들여보내시오.》

 

소경광은 팽진, 소화, 주보중 등과 함께 중국공산당에서 동북에 파견한 중요지도간부들중의 한사람이였다. 그는 물날은 보위색옷차림이였는데 써늘한 찬바람과 함께 초연내까지 몰고들어왔다. 전투장에서처럼 재빨리 큰소리로 보고드리였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 중국공산당동북인민자치군 제4부사령관 소경광입니다. 현재 료녕군구에 와서 사업하고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소경광동지.》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추위에 언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였다.

《동지들이 어려운 싸움을 하고있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자, 앉아서 말씀하십시오.》

강상호가 문을 열고 접대원을 들여보냈다. 따뜻한 차와 과일들이 원탁에 놓여졌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일을 그에게 소개해주시였다. 통역이 필요없었으므로 자유롭게 인사를 나누었다.그런데 소경광은 커다란 검은 눈을 번득이며 안절부절 못하고있었다.

차도 들지 않고 곧장 자리에서 일어서는것을 그이께서 눌러 앉히시였다.

김일성동지.》 여전히 큰소리로 그는 말씀드렸다. 《저는 료녕군구사령원 소화동지와 진지하게 협의하고 우리가 처한 어려운 형편을 김일성동지께 알려드리기로 하였습니다. 여기 소화사령원동지가 쓴 편지도 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가 내미는 편지를 받아드시였다. 급히 서둘러 쓴 편지였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

김일성동지께서 가까운 신의주에 와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소경광동지에게 우리의 실태를 알려드리도록 부탁하였습니다.

지금 단동시교외에서는 국민당군의 맹렬한 공격을 저지시키기 위한 결사전이 벌어지고있습니다. 우리 료녕군구사령부, 정치부, 공급부, 경위부대의 약 1천여명은 2만여명의 적의 포위속에 들어 악전고투하고있습니다. 게다가 미국제비행기들이 철수하는 아군부대와 피난민들에게 미친듯이 기총소사를 가하고있습니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 어려운 걸음이지만 김일성동지께서 여기 단동에 오시여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지금 우리의 생사는 오로지 김일성동지께 달려있습니다.

경례!

료녕군구사령원 소화올림

1945년 11월 27일 단동》

 

김일성동지께서는 편지를 다시한번 훑어보신후 김일에게 넘겨주시였다. 근엄하신 표정이였다.그이에게서 한시도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던 소경광의 볕에 그을은 두볼이 홧홧 달아오르는듯 했다.호흡이 절박해진듯 가쁘게 숨을 헐떡거리며 그는 또 김일에게로 초조한 눈빛을 던졌다.

잠시후 편지를 읽고있던 김일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편지를 움켜쥔 그의 손이 중풍이라도 만난듯 후들거렸다.

《장군님! 안됩니다. 거긴 절대 못 가십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흥분을 드러내지 않던 그였으나 지금은 자제력을 잃은듯 했다. 거칠게 황소숨을 내뿜고나서 그는 또 부르짖었다.

《거긴… 총포탄이 쏟아지는 전선입니다. 장군님!… 이제 더는 장군님께서 그런 사지판으로 가시는걸 보고만 있을수 없습니다. 왜놈들과 싸우면서 15년동안이나 험지험로를 헤쳐오셨는데… 해방된 오늘까지 또 전장에 나가시다니… 안됩니다. 제가 살아있는 한 그일만은… 절대 안됩니다. 장군님!》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볍게 머리를 저으시였다.

《너무 그러지 마시오. 김일동무, 중국은 우리의 이웃이 아닙니까. 좋은 일이 생겨도 가야 할 사이인데 하물며…》

《아니 그것만은 안됩니다! 꼭 가야 한다면 저를 보내주십시오!》

소경광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도 모르게 움쭉 일어났으나 아무 말도 할수 없어 긴장해진 눈빛으로 거의나 험악해진것 같은 김일의 얼굴을 쳐다볼뿐이였다. 조선말을 모르는 그였으나 온몸의 감각으로 알아듣고 얼어붙고있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일이 움켜쥐고있던 편지를 당겨가시였다. 마구 구겨진데를 정히 펴면서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가야하오. 김일동무, 피로써 맺어진 조중 두 나라인민의 형제적우의를 위해서도 그렇고 우리의 뒤문에 미국의 총과 대포가 겨누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가야 하오.》

《장군님!》

《김일동문 여기서 할 일이 많소. 뒤수습을 잘해주시오. 새벽녘엔 꼭 돌아오겠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그이께서는 어느새 말코지에 걸린 외투를 벗기며 말뚝처럼 박혀있는 소경광에게 미소를 보내시였다.

《갑시다, 소경광동지.》

《예?!…》 소경광의 두눈이 기쁨으로 확 타오르는듯 했다. 《고맙습니다. 김일성동지, 정말 고맙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강상호만을 데리고 떠나시였다.

밤하늘에서는 눈꽃이 날리고있었다. 어둠속에 홀로 남은 김일의 모습은 조각상인듯 마치도 력사에 길이 전해질 이날의 증견자, 기념비인듯 무겁게 뿌리박혀있었다. 하늘하늘 춤추듯 내리는 작은 눈송이들이 그의 머리우에, 뜨겁게 달아오른 이마와 널직한 어깨우에 소리없이 내리며 무엇인가 정답게 끝없이 속삭이고있었다.

 

×

 

단동시 초입에 들어서자 소경광이 대기시켜놓았던 한개소대의 무장인원들이 어둠속에서 나타났다. 권총을 든 두명의 날파람있는 팔로군병사가 그이께서 타신 승용차의 량쪽발판에 올라섰다. 기관총을 실은 마차 한대가 앞에 나서고 뒤에도 역시 기관총 등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마차우에 올라 따라섰다. 소경광의 지시로 말탄 병사 하나가 채찍소리를 울리더니 어둠속으로 질주해갔다. 사령부에 련락을 띄운것 같았다.

드디여 전진하기 시작했다. 소경광이 신의주로 올 때 타고왔던 풍친 승용차가 맨 선두에서 전조등을 휘저으며 나아갔고 앞뒤로 중무장한 마차들의 호위를 받는 그이의 승용차가 천천히 뒤따랐다.

속도를 낼수 없었다. 도처에 파괴의 흔적들이 너저분했다. 깨여진 벽돌장들, 넘어진 전주대, 짐을 가득 실은 하늘소들이 앞을 막고있어 가끔 멎기도 하고 미국비행기의 폭격으로 무너져내린 건물의 잔해를 에돌아가기도 했다. 담가를 멘 사람들, 커다란 보따리를 꽁져안고있는 피난민들, 대오를 지어 달려가는 팔로군병사들…

또 하늘소, 하늘소가 특히 많았다. 산동지방에 하늘소가 많았으므로 소화사령부가 동북으로 올 때 그것들을 많이 끌고온것 같았다. 먹이타발이 없고 적게 먹는데다가 짐을 많이 싣고도 산을 잘 타며 병에도 잘 걸리지 않는 하늘소이다. 조선의 옛말과 속담에서도 어엿한 몫을 차지하고있으며 특히 옛날의 갓 쓴 조선량반들을 두고말할 때엔 결코 떼여놓을수 없으리만큼 익숙해진 하늘소였다. 하지만 눈내리는 이국의 거리에서 총멘 병사들이 그것을 타고있는것을 보시려니 어쩐지 기이한 느낌이 드시였다.

승용차가 또 멎었다. 마주오던 차가 멎고 거기에서 뛰여내린 사람이 달려오고있었다. 련락을 받고 황황히 마중을 나온 소화사령원이였다. 정치일군인 소경광과 달리 그는 성급하고 격한 사람 같았다. 몸은 갱핏하나 전투속에서 단련된 힘과 의지와 결패가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있었다.

《고맙습니다, 김일성동지!》 하고 그는 쩡쩡 구령처럼 웨치며 잽싸게 거수경례를 올렸다. 《료녕군구사령원 소화입니다. 이제 사령부에 가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출발!》

그이께서 손을 내미실 기회도 그는 주지 않았다. 어느새 자기 차 있는데로 뛰여가며 빨리 전진하라고 다급히 팔을 내저었다.

사령부에 이르러서야 그는 비로소 정식으로 인사를 올리였다.

소화의 림시사령부는 2층짜리 건물이였다. 아래층 넓은 홀에 사령부와 직속부대들, 경위대의 지휘관들이 둘러서서 일제히 거수경례를 올렸다. 가운데 놓인 원탁에서 두개의 초불이 가물거리며 가까스로 어둠을 밀어내고있었다. 벽은 성에가 하얗게 끼고 구석쪽에 밀어놓은 탁자우에는 서류와 차잔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여러 지휘성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보내며 소화가 이끄는 원탁으로 가시였다. 도중에 걸음을 멈추고 낯익은 한사람의 얼굴을 눈여겨보시였다.

《황옥청?!…》

《그렇습니다. 장군님!》

키큰 사람이 목메여 부르짖었다. 그이께서 주보중과 함께 쏘련 하바롭스크에서 와씰렙스끼, 말리놉스끼원수들과 대일작전문제를 토의하실 때 통역을 하던 사람이였다. 중국공산당에서 쏘련에 파견하여 레닌군사학원에서 공부하던중 주보중의 요청으로 그때 통역임무를 맡아했던것이다. 조선의 항일투사들처럼 《장군님!》 하고 목메여 부를 정도로 이미 친숙해진 그였다.

《황동무, 그새 잘 있었소?》

《고맙습니다. 장군님, 이렇게 오실줄… 믿고 기다렸습니다.》

어느새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끓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여러 지휘원들을 둘러보며 말씀하시였다.

《이 황동무와는 이전부터 잘 아는 사이입니다. 이렇게 강건너 지척에 있는것도 미처 모르고있었습니다.》

그이께서는 황옥청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황동무, 원동에 있을 땐 일제와의 최후결전을 준비하느라고 너무 바빠 이야기도 변변히 나누지 못하고 헤여졌는데 이렇게 만나니 정말 반갑습니다. 그래 가족들은 다 무고하시오?》

《…》

황옥청이 미처 대답을 올리지 못하는것을 보신 그이께서는 안색을 흐리시였다. 소화사령원이 기침소리를 내며 안절부절했다. 그렇다. 정황은 위급하고 시각은 분초를 다투고있는것이다.

《그럼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그이께서는 소화사령원이 이끄는 두 자루의 초불앞으로 나가시였다. 난방이 없는 방안은 한산하고 어둑스레하고 또 랭기에 차있었다. 소화사령원을 비롯한 지휘성원들 모두의 얼굴도 그늘이 져있고 그 어떤 침통한 빛으로 굳어져있었다. 두자루의 초불만이 가물가물 힘겹게 어둠과 랭기를 밀어보려고 헛되이 애쓰고있었다.

소화사령원이 머밋거리며 말씀드렸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 이 위험한 전구에까지 찾아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아 이젠 인사말을 그만 합시다.》

《그런데… 》 소화는 소란스럽게 한숨을 내뿜었다. 《따근한 차 한잔 미처 올리지 못하여… 죄송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뒤늦게야 준비를 시켰습니다만…》

《사령원동무.》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그래도 난 중국의 유명한 곰발바닥료리라도 준비해놓고 청하는가 해서 왔는데 아 이거 잘못 왔구만!》

그이께서 호탕하게 웃으시자 다들 소리내여 웃어댔다. 지금까지 노상 얼굴을 찌프리고있던 소화까지 덩달아 웃었다.

《후에 오시면 꼭 대접해드리겠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러니 자주 와야겠구만.》

《예, 김일성동지. 혁명이 승리하면 또 오십시오. 계속 오십시오.》

《좋습니다. 자, 그럼》 그이께서 자리를 잡고앉으며 말씀하시였다. 《이젠 시간을 아낍시다. 우선, 정황부터 들어보기로 합시다.》

소화사령원이 버릇처럼 옷소매를 쭉 잡아다리며 그이앞에 일어섰다. 그림자처럼 얼른거리던 초조감이 사라져버린 얼굴이였다. 정색해서 근엄한 어조로 그는 조성된 정황을 보고드리기 시작했다.

소화가 인솔하는 산동군구(지금은 료녕군구로 불리우고있다)사령부, 정치부, 공급부, 경위부대의 천여명이 이곳 동북땅에 이른것은 지난 10월 상순이였다. 쏘련군대로부터 일본군에게서 로획한 무기들을 넘겨받게 되여있었으므로 그들은 경무장을 하고 하늘소들을 타고왔었다. 농촌마을에서 나들이를 갈 때 타고다니는 하늘소를 타고 떠났으니 그들의 초기준비상태가 어느 정도였는가는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쏘련군대의 태도가 갑자기 일변하였다. 쏘련군인들이 따발총을 겨누며 그들이 도시에 들어서는것을 막아나서던 끝에 억지로 밀어내기까지 했다. 처음엔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오해가 있는줄 알았으나 맑스, 엥겔스, 레닌, 쓰딸린과 동시에 모택동의 이름을 웨치고 《인터나쇼날》의 노래를 불렀어도 막무가내로 밀어내는 판이였다. 보다 아량있는 고급군관들인 경우에조차 두팔을 쩍 벌리며 어쩌는수가 없다는 뜻을 표했다. 당시 쏘련은 국제법상의무에 따라 《쏘중우호동맹조약》체결 당사자인 장개석의 국민당정부와만 조약의 리행을 담보하게 되여있었던것이다.

이후에 벌어진 모든 사태들은 쏘련이 중국공산당에 대한 모든 지지와 방조를 소문없이 묵묵히 진행하고있음을 보여주었다.

50년 세월이 지난 뒤 중국에서 출판된 《3년간의 동북해방전쟁에 관한 조사자료》와 여러 출판물들은 당시의 동북정세를 분석하면서 《붉은군대의 이러한 방조와 지지는 때에 따라 아주 진실하고 매우 책임적이며 무척 성실한것이였다.》고 하면서 《연안에서는 하늘이 낸 이 기회를 꿰뚫어보고 이미 관동으로 들어가는 모든 부대들에 <우리는 붉은군대가 견결히 반대하는 일을 극력 삼가하며 붉은군대에게 국제법상 난처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할것이다.>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밝히였다. 그리하여 얼마후 제4야전군은 중국공산당군대들중에서 제일 장비가 그쯘하고 현대적이여서 모택동도 《인젠 동북의 우리 군대가 부자로 되였소.》 하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당시의 많은 중국사람들은 돌변한 쏘련의 태도에 의문을 품었고 그 어떤 《배신감》에 분개하였다. 소화사령원을 비롯한 료녕군구의 지휘성원들도 그러했다. 지금 그들은 실망과 패배에서 오는 침통한 고뇌로 시퍼렇게 질려있었다. 소화는 계속하였다.

《이렇게 되여 우리 당중앙에서는 이미 심양, 사평, 길림, 장춘을 비롯한 도시들과 교통중심지들을 차지할것을 명령하였지만 지금 우리는 도시에서 계속 밀려나고있습니다. 우리 사령부만 하더라도 심양과 사평간의…》

그는 성급히 참모장에게 지도를 부탁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손을 들어 제지하며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십시오. 지도는 필요없습니다.》

진정 그이께서는 소화의 장병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동북의 지명을 환히 꿰들고계시였다.

소화는 자기들의 퇴각로와 국민당군대 배치정형, 기동상태, 진격로와 현재 포위상태에 이르기까지의 엄혹한 정황을 보고드렸다. 그들은 더이상 물러설데도 없는 낭떠러지에 서있는 셈이였다. 게다가 사령부지휘성원들의 가족일행이 탄 렬차까지 할빈으로 후퇴하던중 국민당군대의 습격을 받고 남으로 도로 끌려오고있었다.

김일성동지》 소화사령원은 무엇인가 심장을 뜨끔하니 깨무는듯 한손으로 가슴을 두드리고나서 계속했다. 《2만의 적들이 우리를 포위섬멸하려고 맹렬히 공격하고있습니다. 우리는 조성된 위기를 타개하고 도시를 고수하기 위해 벌써 몇차례나 토의를 거듭했지만 출로를 찾지 못하고있습니다. 력량대비가 너무 심한데다가 장비도 부족합니다. 게다가 우리 부대는 동북실정에 밝지 못한 관내출신이 절대다수입니다. 그야말로 고성락일(외로운 성에 해 떨어지다.)의 형세입니다. 단동의 운명은 시간문제입니다.

조언을 주십시오. 지금 우리를 구원해주실분은 오직 김일성동지 한분밖에 없습니다.》

메마른 그의 얼굴에 내비친 암담한 애수와 고통의 빛을 여겨보시며 그이께서는 참모장쪽으로 손을 내미시였다.

《지휘관들모두가 관내출신이라니… 지도를 놓고 토론해봅시다.》

가물거리는 초불아래 지도를 펴놓았다. 소화, 소경광 등 전체 지휘관들이 그이의 두리에 다가와 지도에 눈길을 박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소경광이 내미는 색연필로 적아쌍방의 력량배치를 표시하신후 단동이라는 두글자우에 동그라미를 진하게 그으시였다. 이윽고 연필을 지도우에 던지시고 가까이 둘러선 사람들을 바라보며 류창한 중국말로 결연히 말씀하시였다.

《동지들, <말잔등에 붙은 모기가 하루밤에 천리를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속담입니다. 우리도 하루밤에 천리를 가봅시다. 그러나 말잔등에 붙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두발로, 적들이 상상도 못하는 지름길로 가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선 단동시를 내주어야 하겠습니다.》

모두가 구령이라도 받은듯 일시에 놀란 눈빛을 들었다.

김일성동지,》 소경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연안의 당중앙에서는 중요도시들을 먼저 차지할데 대한 지시를…》

그이께서는 말끝을 맺지 못하고 괴롭게 숨길을 톱고있는 그를 따뜻한 미소어린 눈길로 바라보시였다. 그가 무엇을 우려하고있는지 너무도 잘 아시는 그이이시였다. 소경광… 그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동북에 파견한 중요지휘성원들중 한사람으로서 그가 차지하고있는 위치는 소화사령원보다 훨씬 더 무게있었다.

《알고있습니다.》 그이께서는 조용히 이으시였다. 《그러나 <중요도시들을 먼저 차지>하라고 했지 끝까지 고수하라고 하진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 물론 그 지시는 동북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전달에 하달한것이긴 합니다만…》

《그동안 정세는 급변하였습니다. 쏘련군대로부터 넘겨받기로 한 무기들이 국민당군대에 넘어간것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이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전체 지휘성원들에게 힘주어 계속하시였다.

《변천된 정세는 도시를 고수할것이 아니라 력량을 보존할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력량을 보존하고 끊임없이 강화하여 주동적인 공세에로 이전할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동지들? …방금 소화동지도 말했지만 한달전엔 중요도시들을 먼저 차지하는것이 급선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농촌지역들에 강력한 근거지를 꾸리고 그에 의거하여 적후에서 대부대기동전과 유격전을 널리 전개하는것이 필요합니다. 모든 부대들은 농촌에 들어가자!… 이것이 당면한 전략전술적구호로 되여야 할것입니다. 그리하여 적들의 보급로를 차단, 봉쇄하고 끊임없이 적의 력량을 약화소멸하는 한편 대오를 부단히 확대강화할 때 전국의 근본적전환을 위한 유리한 국면이 열리게 될것입니다. 그때는 <고성락일>이 아니라 새 아침의 태양이 솟아오를것입니다.》

소화사령원의 충혈진 두눈에서 불꽃이 명멸하고있었다. 소경광과 기타 지휘원들도 가슴속깊이 깔려있던 무거운 숨을 소란스럽게 내뿜었다. 소화가 격동되여 부르짖었다.

《옳습니다. 정말 현명한 방책입니다. 김일성동지!》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물론 강대한 적과 싸우려니 어려움도 많을것입니다. 동지들, 싸우다 정 곤난하면 백두산으로 들어가시오. 조선은 언제든 당신들의 믿음직한 후방으로서 강력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것입니다!》

초불들이 흐느적거렸다. 거센 숨결들이 퍼부어지고있었다.

그이를 우러러 모여진 번득이는 눈빛들,… 그이께서 또 그들의 시선을 지도우에로 이끄시였다.

《자, 그럼 어떻게 하루밤새 천리를 가겠는가. 지름길을 찾아봅시다. 바로 이 길로 해서 가도록 합시다. 여기… 이곳을 거쳐 초산, 중강… 여기서 장백으로 빠지면 우리 사람들이 있는 길동분구사령부와 우리의 해방지역, 혁명근거지에 이를수 있습니다. 사령부와 직속부대들 그리고 가족들도 함께 떠나도록 합시다. 그런데 할빈으로 후퇴하던 가족일행은 몇명이나 됩니까?…》

지휘성원들의 가족들 거의 전부가 그 렬차에 타고있다고 했다.

《렬차가 남으로 도로 끌려온단 말이지.》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용히 뇌이시였다. 《지금 거기 돈화쪽에서 우리 박락권동무가 토비숙청을 하고있겠는데…》

순간 《장군님!》 하고 부르짖는 소리가 울렸다. 뒤켠에 서있던 황옥청이 앞으로 비집고 나오고있었다.

《장군님, 박락권동지소식은 저도 들었습니다.》

《그렇소?》

《예, 얼마전 제가 공급중대를 데리고 심양에 갔다오다가 항일련군시절의 한 중대장을 만났는데 지금 박탄장이 토비를 숙청하면서 나루훈까지 나와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 토비들은 박탄장이 온다! 하는 말만 들어도 혼비백산해서 들구 뛴다고 합니다.》

《음-》

반가운 일이였다. 이런 정도의 소식만이라도 무등 반갑고 기쁘시였다. 그리고 또 저릿한 아픔이 스며드는것도 어쩔수 없으시였다. 자신께서 아끼고 사랑하시는 용맹한 싸움군 박락권, 그는 멀리 있지 않다. 말을 달려도 하루동안이면 가댈수 있는 거리이다. 그러나 그는 그리도 가까운 조국으로 오지 못하고 여전히 피어린 싸움을 계속하고있다. 언제면 자기를 불러줄가 하고 손꼽아 기다릴것이다.

그이께서는 마음속 아픔을 가시려는듯 가볍게 머리를 저으시였다. 박락권동무, 조금만 더 참소.이제 꼭 동무를 불러오겠소. 군건설에서 한몫 단단히 해야 할 동무들이 아니요. 강건동무나 최광동무도 그렇고 동무들이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여전히 생각 깊은 어조로 황옥청에게 물으시였다.

《황동무도 우리 박락권동무를 잘 알던가?…》

《예, 잘 압니다. 여러번 만나보았습니다.》

드디여 결심하시였다.

《그럼 황동무, 이렇게 합시다. 황동무가 직접 박락권동무를 찾아 련락하시오. 우리가 평양에서 청진을 거쳐 안도, 연길쪽의 길동분구사령부에 련락하고 거기서 박락권동무를 찾는새면 일이 다 틀어지고 맙니다. 황동무가 직접 내 명령을 전하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렬차를 탈취하고 가족들을 구원할것, 단 한사람도 상하지 않게 할것!… 이렇게 전하면 되오.》

《예, 알겠습니다. 장군님!》

황옥청이 울부짖듯 했다. 피를 터치는듯한 그의 웨침에 참고 참아오던 지휘성원들모두가 일시에 목메여 부르짖었다.

김일성동지!… 고맙습니다.》

김일성동지, 무어라고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황옥청은 줄곧 《장군님!… 장군님!》 하고 부르짖으며 눈물을 쏟고있었다. 그의 가족들도 그 렬차에 타고있었던것이다.

쿠궁- 쿵-쿵!- 포성이 창유리를 흔들었다. 도시에 대한 적들의 야간공격이 또 시작된듯 하였다. 모든 지휘성원들이 일시에 그이께로 눈길을 던졌다. 그이의 신변안전을 념려하는 불안에 찬 눈빛들이였다.

소경광이 소화에게 말했다.

김일성동지의 신변안전을 위해 한개 대대를 돌립시다. 제가 지휘하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 말씀하시였다.

《내 걱정은 마시오. 그대신 시간을 놓치면 안됩니다. 제일 큰 위험은 지체하는데 있습니다. 사령원동무, 어서 지휘원동무들에게 임무를 주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알았습니다. 김일성동지!》

소화가 몸을 돌리자 전체 지휘원들이 차렷자세로 섰다. 소화는 재빨리 철수할 부대들과 질서, 방차대의 임무와 차후행동방향을 주었다. 임무를 받은 지휘성원들이 김일성동지께 인사올리고 달려나갔다.

소화와 소경광만이 남았다. 따끈하게 끓인 차가 나온것은 그때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소경광이 따르는 차잔을 들며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이제부터는 차후행동방향을 토론합시다. 목표가 뚜렷해진 이상 조직적인 철수를 신속정확히 수행하는것이 중요합니다.》

그리하여 또 오랜 시간에 걸쳐 협의하시였다. 소화사령원은 완전히 자기를 되찾고 침착해졌다. 민활하게 사고하고 정확하게 분석하였다. 사실상 그는 결코 성급하고 과격한 사람이 아니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얼굴에 떠오르는 순진한 미소를 정겹게 바라보군 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소화와 소경광 등 다시 뛰여온 지휘성원들의 전송을 받으며 귀로에 오르신것은 새벽 4시였다.

그새 굵어진 눈발이 밤하늘을 가득 메우며 내리고있었다. 압록강철교우에, 시커먼 물결우에, 승용차의 시창우에 그리고 단잠에 든 신의주의 거리들에도 갓난애기 주먹만한 눈송이들이 하염없이 퍼부어지고있었다.

우리쪽 철교 한끝에 이르렀을 때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가만 차를 세우시오.》

전조등불빛에 눈을 들쓴 하나의 형체가, 교각끝에 망두석같이 굳어져있는 한사람의 모습이 비쳐진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차에서 내리시자 허우대 큰 눈사람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김일이였다.

《장군님!》 그가 부르짖었다. 《무고하셨구만요.》

그의 왼쪽 눈시울이 사뭇 떨리더니 초물같이 진한 이슬방울이 굴러내렸다. 그 눈물을 씹어삼키며 김일은 헉헉 단숨을 내뿜었다.

《두번 다시 그런 길을 가시면… 안됩니다.》

밤새도록 가슴을 쥐여뜯으며 기다리고있었을 김일, 안도감과 기쁨에 떨고있는 그를 보시려니 뭉툭한 아픔이, 불같은 뜨거움이 그이의 가슴을 세차게 울려주었다. 그이께서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김일동무, 내가 이번에 가기를 정말 잘했소. 이번에 동북의 준엄한 정세를 보면서 얼마나 생각이 많았는지 아오?… 우리가 군건설을 제때에 내밀기를 얼마나 잘했는가!… 우리의 결심이 옳았다는것을 절감하게 됐소. 그리구… 그 어떤 난관이 겹치더라도 중단함이 없이 계속 힘있게 정규군건설을 다그쳐야겠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소. 뭐니뭐니해도 이 일만은 결코 양보하지 않을것이요. 절대로!…》

《장군님!》

《됐소, 김일동무, 동무의 심정을 내 왜 모르겠소. 온밤 여기서 밝히고있었으니…》

그이께서는 떨고있는 그를 다정히 안으시였다. 그러자 김일의 모자우에, 어깨우에 수북이 내려앉았던 눈송이들이 그이의 외투앞섶으로 쏟아져내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눈송이들은 계속 퍼부어졌다.

《몸이 꽁꽁 얼었구만.》

갈리신 그이의 말씀에 김일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통에 거구의 몸 전체가 흔들리는듯 했다. 애써 웃어보인다는것이 두툼한 입술을 움씰거리며 목이 칵 메인 소리로 그는 중얼거렸다.

《산에서 싸울 때도 이렇게 떨어본적은 없는데… 원!…》

그이께서는 머리를 돌리시였다. 전조등불빛속에 쏟아져내리는 눈송이들을 손에 받으시였다.

《함박눈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구 했지. 어릴 때부터 노래처럼 들어온 말인데… 아마 새봄에는 좋은 소식이 더 많을것이요. 그래서 우리가 밤낮이 따로 없이 일하고있는것이고… 김일동무, 왜 아무말도 안하시오?》

《장군님, 어서 돌아가 푹 쉬셔야겠습니다. 그렇게 무리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또 그 소리요?》 그이께서 나직이 웃으시였다. 《이제 돌아가면 리학동무가 찾아오겠는데… 약속한대로 그 동무들한테 가야지. 오늘 신의주항공협회를 결성하자고 하는데 아무리 즐거운 휴식인들 그보다 더 좋을수야 없지, 안그렇소. 김일동무?… 우리 나라의 첫 항공대가 무어진단 말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두손을 허리에 얹고 청신한 공기를 가득 들이키시였다. 포연을 마시던 가슴이 한껏 열려지는것을 느끼신다. 피로는 쌓이고 겹치였지만 마음은 거뿐하시였다. 새날, 새 아침엔 군건설의 큰 발걸음을 또 시작하게 된다. 좋은 아침이다. 희망찬 새날이다.

그이께서는 갖가지 미묘한 음향으로 가득찬, 눈송이들의 속삭임으로 가득찬 대기를 마시며 조용히 미소를 그리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