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8


 

제 1 장

8

 

경위분대장 곽일무는 자기를 찾아온 한종삼을 처음엔 잘 알아보지 못하였다. 《일무, 날 모르겠어?》 하고 어줍게 말하는 얼굴을 놀라서 쳐다보았다. 인상깊은 주먹코와 두툼한 입술, 송아지의 그것처럼 머룩머룩하는 크고 유순한 두눈… 그가 또 말했다.

《나여, 한종삼.》

그렇다, 곽일무 자기가 불속에서 구원해준 한종삼이 분명했다.

《여여, 종삼이가?…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인가. 왜 이렇게 됐어, 응?!…》

한종삼은 두툼한 입술을 실룩거릴뿐 선뜻 대답을 못했다.

사연을 한두마디로 다 말하기가 쉽지 않은듯 했다. 그리고 그가 바라는것이 무엇인지 곽일무는 제꺽 알아차렸다. 말라터진 입술을 혀로 추기며 커다란 두눈을 애원하듯 슴벅거리고있는것이였다. 이런 억대우같은 시골내기들은 한두끼만 굶어도 꼼짝을 못한다. 그런데 한종삼은 벌써 여러날째 굶고있는 인상이였다.

곽일무는 그를 대기실로 끌고들어가 대원들을 시켜 먹을것을 가져오게 했다.

건빵봉지 몇개와 주전자의 물을 내놓았다.

한종삼의 눈빛이 번뜩이였다. 그처럼 순하게 그 머룩머룩하던 눈이 별안간 달라졌다. 시꺼먼 손으로 먹을것을 움켜쥐고 한입에 넣기 시작했다. 뼈다귀라도 씹어놓을것 같은 희고 든든한 이발들을 미처 놀릴새도 없이 목구멍으로 꿀꺽꿀꺽 삼켜버리군 했다. 주전자의 물도 삽시에 다 마셔버렸다. 곽일무는 기가 차서 웃었다.

원 배집도 크지 저 배를 다 채우려면 우리 분대 접심밥을 다 주어도 모자랄거야. 젠장!…

한종삼은 얼마간 주린 배를 달래고나서야 이쪽을 쳐다보았다.

《일무, 나말이여, 군대가 되겠어.》

《뭐?》

곽일무는 놀랐다.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줄은 몰랐던것이다.

《그럴만한 일이 있었어.》

한종삼은 길게 황소숨을 내뿜고나서 느릿느릿 그간에 있은 일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길지 않게 월순이를 잃게 된 일을 말하였다.

차츰 곽일무의 얼굴은 숯불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 등신같은게 끝내 약혼녀를 죽였구나. 이 소발통같은 자식이!…

알수 없는 증오심이 그를 후려갈기고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했다. 억대우같은 자식이 끝내 무서운 일을 저지른것이다. 우직스럽고 미련한 이 촌뜨기!… 무섭게 욕설을 퍼부으며 멱살을 잡아 태질해버렸으면 속이 후련할것 같았다.

그러나 한종삼의 커다란 두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는것을 보자 그만 맥이 쭉 빠졌다. 쓰라린 련민의 정에 눈시울이 바르르 떨려나는것을 느꼈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부르짖었다.

《에익, 못난것 같으니!》

한종삼은 손등으로 눈굽을 문질렀다. 그리고는 별안간 전기에라도 닿은듯 흠칫하며 굳어졌다. 주먹우에 퍼져가는 진한 눈물을 보고 놀란듯 했다.

《아니 난 울지 않을테여, 울어선 안돼. 그렇게 맹세했어.》

《무얼 맹세했다는건가. 누구한테?…》

《나두 몰라. 어쨌든 보통분이 아니였어.》

《?!…》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한종삼은 어떻게 해야 군대가 되는가고 물었다. 자기를 군대에 받아주겠다고 한 강계의 파견원(최현)을 찾아갈가 하는 소리도 했다.

《음, 이제야 제 정신이 들었군 그래.》

곽일무는 어지간히 따뜻해진 눈빛으로 그를 여겨보았다.

이 친굴 경위대에 받도록 제기해볼가?… 하지만 지금까지 경위대원들을 직접 선발해온 최용진동지는 남포에 나가있다. 안길동지한테 말해볼가? 아니 내가 뭐라고, 한낱 분대장인 내가 감히 그런 제기까지 한단 말인가?… 참 평양학원이 어떨가, 학생들을 모집하는 평양학원련락소가 여기서 멀지 않다. 거기로 보내자.

곽일무의 말에 한종삼은 제꺽 동의했다.

곽일무는 그에게 련락소위치와 그리로 가는 길을 대주었다.

직접 데려다주면 좋겠지만 이제 곧 보초병들을 교대시켜야 했다.

《곧추 가다가 농민동맹청사만 찾으면 돼. 그 집 착 옆이니까. 거기 가문 쏘련군대옷을 그냥 입고있는 사람을 만나 여사여사해서 왔다구 해. 좀 딱딱한 사람인데 얼뜬해서 그러지 말구 잘 말하라구.거기서 퇴짜 맞으면 안돼. 아니 그렇게 되면 남포에 직접 가두 될거야. 나를 또 찾아와도 되구.… 알겠지?》

곽일무는 일이 잘 안되는 경우엔 안길에게 말해보리라고 생각했다. 《이 친군 좋은 사람입니다. 최현동지도 군대가 되라구 했습니다.》 이렇게 말할 생각이였다. 한종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꾸 신세만 지는구먼.》

《무어?》 곽일무는 눈살을 찌프렸다. 《그것두 말이라구 해? 젠장!》

《잘 있어.》

그는 갔다.

어스름이 깃드는 거리로 멀어져갈 때까지 곽일무는 점도록 그를 지켜보고있었다. 어쩐지 마음은 어수선했다. 자기와 판 다른 성미를 가진 한종삼에 대한 혈연적인 친밀감과 더불어 야릇한 련민의 정이 스며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가 불쌍했다. 약혼녀를 잃은 한종삼, 그를 좀 더 위해주지 못한것이 후회되였다. 만약 그와 같은 불행을 곽일무 자기가 당한다면 미쳐 날뛸것이다. 그 누구든 물어뜯지 않고는 못 견딜것이다. 홍금옥을 잃는다면!… 가만, 무슨 새빠진 생각을… 홍금옥이 뭐 내 약혼녀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는 별안간 속이 쑤시고 욕지기가 치미는것을 느꼈다. 홍금옥의 아버지- 그 점잔 빼는 늙은이의 메마른 하얀 손과 오무라진 입술을 떨며 내뱉던 말들이 떠올랐던것이다.

에익, 빌어먹을 두상태기. 총을 멘 사람은 절대 제 집문턱을 못넘는다구?… 반동놈의 두상… 한번 만나기만 해봐라. 제밀할!…

 

그 《반동놈의 두상》이 제발로 찾아올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범이 제소릴 하면 온다고 한것은 바로 이런 일을 두고 한 말이였는가?… 보초를 교대시키고왔을 때 멋진 승용차 한대가 정문앞에 와 멎었다. 곽일무는 그것이 조만식의 차라는것을 알아보았다. 언젠가 조만식이 자기 사위인 비서를 데리고 장군님을 만나뵙고자 그 차를 타고왔던것이다. 그런 차는 평양시에 한대뿐인듯 했다.

그런데 차에서 내린 사람은 새까만 두루마기에 털실로 뜬 모자를 쓴 키큰 사람이였다. 손에 든 단장을 옆구리에 끼면서 외등앞으로 다가오는데 그는 바로 홍금옥의 아버지였다.

제정된 질서대로 손님을 알아보러나간 곽일무는 그만 당황하여 굳어져버리고 말았다. 분노도 적의도 느끼지 못했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여서 두눈을 껌벅거렸을뿐이였다.

손님이 점잖게 말했다.

《목사 홍근수올시다. 장군님을 뵙고저 왔다고 전해주시오.》

《?!…》

불빛을 마주하고선 그는 아직 곽일무를 알아보지 못하고있는듯 했다.

곽일무는 천천히 숨을 내그었다. 목사라구?… 홍근수목사!… 그래 이제야 알겠어. 총 가진 사람이 질색이라구 했더랬지. 그런데 지금은 총멘 사람앞에서 점잔을 빼구?…

《왜 그러시오?》 홍근수가 불안한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어서 전갈해주시오.》

《…》

여전히 곽일무는 입을 꽉 악물고있었다. 점차 머리에 꽉 들어차는 쓰라린 증오에 몸을 떨었다.

지금 장군님께서는 계시지 않는다. 어딘가 멀리 출장을 가셨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장군님께서 지금 계시지 않는다고 손님을 돌려보낼수도 있었다. 녀간첩사건이 있은후부터 특히 장군님을 만나뵈러오는 사람들을 철저히 확인할데 대한 지시가 있었다. 보초장은 경위대대장 강상호에게 보고하게 되여있다. 그러나 지금 곽일무는 사무친 증오에 몸을 떨고있을뿐이였다. 발밑에서 가랑잎들이 와슬렁거렸다. 그는 마침내 악문 이새로 배앝듯 말했다.

《목사님, 나를 모르시겠습니까?》

홍목사는 태연했다. 어깨를 으쓱하며 웅근 목소리로 말했다.

《알지, 왜 모르겠나 우리 집에 왔던 젊은이를.》

《예?!》 곽일무는 호되게 후려맞은듯 했다. 《그때 날… 내쫓았지요?》

《그랬지.》

《?!…》

그 뻔뻔스러움… 또다시 치밀어오르는 욕지기에 곽일무는 허덕이였다. 무엇인가 진득진득한것이 속에서 역한 냄새를 풍기며 끄물끄물 타고있는것 같았다.

숨이 막히고 눈이 깔끔거리기 시작했다.

《총 가진 사람은 안된다구… 질색이라구 하더니만…》

곽일무가 숨이 차서 헐썩일수록 이 고약한 목사는 더욱더 태연해졌다.

《그건 지금도 같으이. 그가 누구든 총 가진 사람은 우리 집엘 들일수 없소!》

《그럼… 여긴 어떻게 왔소다?》 곽일무는 드디여 거칠게 소리쳤다. 《우리도 초- 총 가진 사람을 내쫓는 목사는 쫓아버릴수 있지오다!》

북관사투리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더 달아오르면 주먹이 날아갈런지도 모른다.

《이보게 젊은이.》 홍목사의 두눈이 차겁게 번득이였다. 《난 장군님을 만나뵈러왔소. 젊은이와 싱갱이질이나 하려온게 아니란 말이요.》

《당신같은 사람은 장군님을 만나뵐수 없소다. 절대 안돼, 알겠소다?》

홍목사는 슬픈듯 머리를 저으며 탄식했다.

《아- 이럴수가 있나.》

곽일무는 자기를 다잡기 위하여 무던히도 애쓰지 않으면 안되였다. 슬픔에 잠긴듯한 늙은이의 목소리도 역겹고 천천히 머리를 저으며 곽일무 자기를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고있는듯한 모양도 참을수 없이 가증스러웠다. 부득부득 이발을 갈고있는 그를 여겨보며 홍목사는 옆구리에 끼고있던 단장을 손에 쥐고 땅바닥을 딱딱 쪼았다.

《젊은인 무례하구만.》

《무례한건 당신이요, 돌아가시오. 당장!》

《난 이걸… 참을수 없소. 난…》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단장을 쳐들고 홍목사는 전날 곽일무를 내쫓을 때처럼 그것으로 그의 앞가슴을 겨누었다.

《난 이 사실을…》

더는 참을수 없었다. 곽일무는 가슴앞에서 떨고있는 단장을 쳐갈기고 어깨에 메고있던 총을 벗어들었다.

《가지 못하겠소. 정말 혼나볼테요?》

총을 겨누고 홍목사를 밀어갔다. 례배당의 종소리같은것이 귀안에서 징징 울렸다. 분노한 하느님이 무서운 경종을 울리는듯… 그럴수록 곽일무는 이를 갈면서 홍목사는 물론 당치 않게 편역을 드는 하느님까지 사정없이 몰아대였다.

제밀할것들, 썩 사라져라. 이 누린내나는것들!… 무슨 욕설인들 퍼붓지 않았으랴. 이 세상 제일로 험한 욕은 다 골라가며 속으로, 시꺼먼 입을 쩍 벌리고 고함을 쳤다.

후과가 두렵게 느껴진것은 얼마후의 일이였다. 오한이 나기 시작했다. 어쩐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리라는 예감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 두상은 총멘 경위대원을 모욕했었다. 총 가진 사람은 절대 제 집에 들일수 없다고 쫓아냈었다. 그 두상이 반동분자가 아닌지 누가 안단 말인가. 그런것들을 쫓아버리는것은 응당한 일이다, 그따위것들은! …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곽일무는 저도 모르게 흠칫하며 굳어졌다. 두번째, 세번째로 계속 따르릉거리는 그것을 쏘아보다가 숨을 활 내긋고 송수화기를 거머쥐였다.

《예, 보초장입니다.》

《곽일무라고 있소?》

쩡쩡 울리는 목소리였다. 드디여 자기를, 일을 저지른 곽일무를 찾고있는것이였다. 곽일무는 소리없이, 비틀려진 입술을 벙긋하며 나직이 웃었다. 정작 자기를 찾으니 마음은 편해졌다. 별안간 마음속으로 뾰족한 고드름처럼 차디찬 반발심까지 치미는것을 느꼈다.

《예, 제가 곽일무입니다.》

《아 그래?… 마침 만났군, 동무 한종삼이라구 아오?》

한종삼?… 한순간 그는 자기가 잘못듣지 않았나 해서 송수화기의 잔구멍들을 들여다보기까지 했다. 다음순간 엉거주춤 일어서며 소리쳤다.

《예, 압니다. 잘 압니다!》

《강계에서부터?…》

《예, 강계서부터.》

《알겠소.》

전화는 끝났지만 곽일무는 이윽토록 귀전에 수화구를 꽉 눌러댄채 무엇인가를 기다리고있었다.

하여 그것이 왔다. 기다리던 무서운것이 시꺼먼 구름장처럼 소리도 없이 밀려왔다.

 

×

 

한밤중에 있은 일이였다. 안길이 곽일무를 불렀다. 평양학원에 필요한 전기줄 등을 실어다주고 돌아오자바람으로 경위대대장 강상호한테서 보고를 받았던것이다.

안길은 최용진과 같이 정원뜰안에 서있었다. 거칠게 내뿜는 숨소리만으로도 벌써 무서운 벼락이 떨어지리라는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벼락은 단번에 치지 않는다. 검은 구름장들을 몰아오고 비방울을 뿌리며 먼 우뢰소리로 울러메고서야 비로소 펑끗! 번개불을 던져 시꺼먼 하늘을 쫘-악 찢어발긴다.

안길도 그러했다. 《무어라구? 장군님을 뵈러온 손님을 내쫓았다구?》 하고 악문 이새로 내뱉듯이 가까스로 물었다.

만약 그때 곽일무가 전날에 받은 모욕에 대한 앙갚음으로 분별없이 처신했다고 잘못을 빌었으면 벼락을 맞는 일까지는 없었을것이다. 그러나 고집불통인 곽일무는 뿔난 염소같이 오히려 제 편에서 갈개였다. 상대가 격해지면 그보다 더 사나와지는 곽일무였다.

그는 화를 내며 그놈의 두상이 전날 자기가 총멘 사람이라 해서 집에서 내쫓았다는것, 그가 반동이 아니라고 볼수 있겠는가, 그래서 내쫓았다고 이를 갈면서 떠들었다.

《뭐 뭣이 어쨌어?》 드디여 안길이 가늘게 부르짖었다.

《그래서 총부리를 들이대기까지 했다는건가?… 그게 어떤 총이라구… 동문 자격이 없어. 경위대원자격이!…》

《?!…》

이번엔 곽일무도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무서운 일격이 가해진듯 했다.

경위대원자격이 없다니, 그것도 부모를 대신하는 안길이 그렇게 말했다.

《어따 대구 총을 내대는거야 엉?!》 안길이 격하여 계속했다.

《그 총을 누구한테 내댔는가, 바로 그 사람도 지켜줘야 할 총이야!》

《예?!》 곽일무는 허덕이였다. 《그따위 두상태기까지 지켜준다구요? 총 쥔 사람을 미워하는 예수쟁이목사까지… 그렇게 하라문… 난 총을 내놓겠습니다.》

《뭣이? 총을 내놓겠다구?》 드디여 벼락이 치기 시작했다. 《그게 어떤 총이기에, 어떤 총이라구…》

어둠속에서도 그가 두볼을 푸들푸들 떠는것이 알렸다. 입을 쩍 벌리고 몸을 떨더니 별안간 달려들어 곽일무의 어깨에서 총을 벗겨들었다.

《이 자식, 죽여버릴테다!-》

곽일무는 비칠했고 그들 두사람사이에 뛰여든 최용진이 팔을 벌려 막았다.

《비켜서우. 비키라는데!》

안길이 목 쉰듯 웨쳤다. 최용진이 그의 팔을 꽉 틀어잡으며 거칠게 씨근거렸다.

《이러지 마시오. 제발!》

귀가 멍멍했다. 눈앞이 아찔했다. 잔등을 훑어내리는 전률, 온몸이 얼어들다 못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듯 했다. 12월의 찬바람을 불길처럼 삼키며 곽일무는 허덕이였다. 마침내 눈을 떴을 때, 분노에 질린 안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을 때 그는 별안간 목이 칼칼해서 거칠게 뿜어대는 무서운 선고를 들었다.

《가라, 이 녀석! 저갈대루 가라, 여겐… 너 같은게 필요없어, 썩 사라져라!》

하여 그는 갔다. 어데로 가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갔다. 걸음마다 그 무엇인가에 발을 걸채이며 비틀비틀 술취한 사람처럼 걸어갔다.

행인들도 드물어진 차디찬 밤의 골목길이였다. 별안간 머리가 지끈하며 무수한 별찌들이 눈앞에서 아물거렸다. 벽돌담장곁의 가로수에 머리를 들이받았던것이다. 피가 흐르는것 같았다. 그러나 그까짓게 무슨 대수랴. 가슴속에 흐르는것은 그보다 더 진하고 더 쓰겁고 더 맵짠 피눈물이였다.

그는 손바닥으로 터진 이마를 붙잡고 또 걸어갔다. 끓어번지는 생각이 그의 머리속에서 사납게 고패치며 맴돌았다. 추위에 몸이 얼어드는것도 알지 못했다. 《이 자식, 죽여버릴테다!》 하고 가늘게, 신음소리처럼 웨치던 안길의 얼굴이, 차가운 별빛에 비쳐지던 푸르뎅뎅하고 강철로 부어놓은것 같던 얼굴이 사라지지 않았다.

멀리서 외등이 생기없는 빛으로 껌벅거리며 그를 오라고 부르는듯 했다. 바람이 휙 불면서 머리우의 나무가지를 흔들어댔다.

또 멎어섰다. 앞쪽에서 골목길로 꺾어들어서던 승용차의 전조등불빛이 두눈을 때렸던것이다. 그는 피로 즐벅해진 손바닥을 내밀어 불빛을 막았다. 그러나 웬일인지 불빛이 사라지지 않았다. 차는 멎어있었고 환하게 던져지는 전조등불빛에 웬 사람이 나와서 버티고있었다.

안길이였다. 불빛을 등지고 서있는 그의 모습은 무서웠다. 곽일무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그런데 그쪽에서도 까딱하지 않고있었다.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는듯 했다.

돌연 전조등이 꺼졌다. 그러자 눈알을 빼간듯 아무것도 가려볼수 없었다. 겨우 어둠에 눈이 익었을 때 코앞에 와있는 안길을 보았다. 안길이 손수건을 꺼냈다. 한동안 아무말없이 지켜보더니 치째진 그의 이마언저리에 손수건을 꼭 눌러대였다.

《그새 내가.》 하고 마침내 안길이 갈린 소리로 말했다. 《잘 돕지 못했다. 너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놨으니… 너희 부모들앞에 면목이 없구나.》

그것은 모진 아픔에 신음하는 갈린 목소리였다. 늙은이의 그것처럼 석쉼하고 거칠기까지 했다.

곽일무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비로소 안길의 두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보았던것이다. 몸이 떨리고 심장이 떨렸다. 아저씬 어째서… 어째서 우시는거오다?… 쓰라린 아픔이 가슴을 허비고 긁어대였다. 그는 비틀거리며 한발을 내짚고 그만에야 참을길 없는 오열에 흑흑 느끼며 안길의 가슴에 안겨들었다.

차라리 매질이라도 했으면 이렇듯 쓰리지는 않을것이다. 아까처럼 총으로 쏴죽이겠다고 고함을 쳤으면 눈물이 끓진 않았을것이다. 왜 우시는거요. 예? 아저씨가 우시면 난 어쩌라는거요. 아저씨, 제발… 제발 눈물만은… 못 참겠소다. 못참아요!…

안길이 그를 꽉 껴안았다.

《이 녀석, 네가 그렇게 속을 태우다니. 너까지 그럴줄은… 네 아버지,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아시면 뭐라구 하시겠니. 날 두고… 얼마나 원망하겠느냐 말이야, 이 자식아!》

곽일무는 그의 품에 안긴채 울고 또 울었다. 어떤 경우에도 눈물을 모르던 그였으나 쓰라린 후회와 격렬한 충동을 이길수 없어 소리내여 울었다. 안길이 목멘 소리로 계속했다.

《다신 그러지 말아. 아무때나 밸통머리 사납게 굴지 말구…. 넌 경위대원이야. 총을 메구 장군님을 보위하는 경위대원!… 그런데 뭐 총을 내놓겠다구?… 속이 뒤틀려 결김에 한 소리겠지만… 그것만은 절대 용서할수 없어.》

전조등불빛이 껌벅거렸다. 안길이 뒤돌아보며 그냥 돌아가라는 의미의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곽일무를 붙안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안길의 손이 불같이 뜨거웠다.

대동강쪽에서 맵짠 바람이 불어왔다. 그때에야 곽일무는 자기의 온몸이 꽁꽁 얼어들고있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여전히 속은 뜨겁게 달아있었다. 종전까지는 까닭모를 분노와 수치심이 불길보다 연기만 더 피우며 속을 휘저었다면 지금은 벅찬 충동이 숯불처럼 속을 달구고있었다.

천천히 발맞추어 걸었다. 안길은 말하고 곽일무는 듣고있었다. 얼마나 많이 말하고 들었으랴. 총에 대하여, 부모들의 마지막부탁에 대하여, 또 총에 대하여, 총쥔 전사의 지조에 대하여…

끝까지 곽일무는 한마디 말도 없이 듣기만 했다. 두눈에서 끓고있는 눈물이 그의 대답을 대신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