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7


 

제 1 장

7

 

한종삼은 벌써 사흘째 해주바닥을 헤매고있었다. 남들은 다 해방의 기쁨에 들떠있는데 오직 그만이 정처없이 떠돌며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있었다. 이미 그물망태에 들어있던것들을 장마당에 가지고나가 먹을것과 바꾸었고 언젠가 월순이가 매매문서에 지장을 찍고 받은 돈으로 사준 무명옷까지 팔아버렸다. 그것만은 끝까지 간수하고싶었으나 지금은 월순이를 찾는것이 급선무였다.

밤에는 역대합실 한구석에 틀어박혀 새우잠을 잤다. 세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넝마같은 옷차림에 장마당에서 사람들이 짓밟고다니던 헐어빠진 맥고모를 얻어쓰고 창이 떨어져 너덜거리는 지하족을 발에 꿰고있는 그를 보고 조무래기들이 쫓아다니며 《야 꽃제비다!-》 하고 소리치기까지 했다.삼거웃같은 머리에 때국물이 흐르는데다가 정기없는 두눈을 디룩거리는 그 얼빠진듯한 모습을 보고 《꽃제비》라는 전혀 가당치 않은 서정적이고 앙증스러운 이름으로 소리쳐 부르는것이야말로 얼마나 천진한 야유였으랴. 사실 그 애녀석들은 쏘련사람들이 류랑자, 혹은 류랑자들이 거처하는 곳을 가리켜 말하는 《꼬체브니크》, 《꼬체보이》, 《꼬체비예》라는 말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옮긴것인데 한종삼은 그러건말건 종일 정처없이 돌아치기만 했다. 음식점, 리발소, 어물전에도 기웃거리고 학교마당, 장마당, 공설운동장에도 가보군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곡마단을 못 봤수?》, 《암파란 놈을 모르시우?》 하고 묻기에 사람들은 그를 정신병자가 아닌가 해서 슬금슬금 피해 달아나군 하였다.

인제는 해주로 온것을 후회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자들이 주고받는 말에서 해주라는 소리가 나왔으므로 무턱대고 쫓아온것인데 사흘째되는 오늘까지도 종적을 찾을길 없는것이였다.

남포쪽으로 내뺀게 아닐가? 그 개자식이 나를 얼려넘기려고 해주라는 소릴 한것은 아닐가?…

그는 생각하기조차 힘들었다. 지친 다리를 끌며 정거장쪽으로 허척지척 걸어갔다.

저녁무렵이였다. 마주오는 사람들속에서 둥글모자를 쓴 해주역원을 띠여보자 종삼은 주춤거렸다.

《아 이사람, 곡마단을 찾더랬지?…》 역원이 웃으며 하는 말이였다.

《아까 원숭이를 가진 사람들이 차에서 내리더구만.》

종삼은 입을 벌리고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곡마단, 원숭이… 도대체 이건 뭘 말하는거람?…

《원숭이한텐 털옷까지 입혔더라니까. 보물처럼 싸안구서…》 그 사람은 멀거니 자기를 쳐다보는 종삼이의 얼빠진 모습에 놀란듯 했다. 《아니 왜 그러나, 이 사람. 정신나간게 아니여?》

그가 피해가는것을 보고서야 피뜩 정신을 차렸다. 그렇다. 암파란 녀석이 원숭이를 가지고있었지.그래, 그놈이 틀림없다!…

별안간 역원을 뒤쫓아가 팔을 붙잡았다.

《여보시오, 그래 암파란 놈은 못 봤수?》

《아-아, 이거 왜 그래?…》

그사람은 진저리를 치며 그를 뿌리치고 달아났다. 한종삼의 두눈에서 살인이라도 칠것 같은 무서운 빛을 보았던 모양이다. 그래도 종삼은 그의 뒤에 대고 소리치는것을 그치지 않았다.

《녀자들은 없었수? 녀자들말이요!》

오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종삼이를 바라보고있었다. 측은해하는 눈빛으로 혹은 경멸의 빛을 감추지 않고 빈정거리고 수근거리고 가느다랗게 혀를 차기도 했다. 그러나 한종삼은 오직 한가지 생각에만 옴해있었다.

암파무리가 해주에 왔다. 그건 틀림없다. 그것들이 왜 이제야 여기 나타났을가. 모다카를 타고 달아났댔는데!… 그건 그렇고 이제 그것들을 어디 가서 찾는다?…

정신없이 오던 길을 되돌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사방을 두릿거리며 여기저기 닥치는대로 머리를 디밀기도 했다.

《원숭이를 가진 사람들을 못 봤수?》

《곡마단이 여기 오지 않았수?》

《볼따구에 칼자리가 난 사람을 못 봤수?》

조무래기들이 또 뒤쫓아오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꽃제비를 못 봤수?》

《곡마단꽃제비가 오지 않았수?》

웬 사람이 애들을 소리쳐 쫓고나서 종삼이를 불렀다.

《무슨 일로 곡마단을 찾소? 칼자리가 났다는 사람은 또 뭐요?…》

옆구리에 책보자기를 끼고있는 안경잡이 젊은이였다. 한종삼은 두서없이 떠듬거리며 사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안경잡이 젊은이는 머리를 기웃거렸다.

《그래 반동놈들이 분명하오?… 그럼 어물거리지 말고 보안서에 찾아가보우. 거기서라면 무슨 수가 있겠지, 그러지 않고 혼자서야 무슨 용빼는 수가 있겠소?…》

그리하여 종삼은 그가 가리켜준 보안서쪽으로 급히 달려갔다.

맨 처음 만난 보안서원들에게 여사여사한 사정을 오래 설명하고 뒤늦게야 나타난 서장에게 또 같은 내용을 한참이나 걸려 말해주었다.

몸이 빼빼마른 보안서장은 몹시 신경질적인 사나이였다. 잠을 못자 부석부석해진 얼굴을 찡그리고 마지못해 듣고있다가 지루한 설명에 역증을 내며 말하였다.

《도대체 무슨놈의 감투끈인지 알아들을수가 있소?… 동무, 우린 바쁜 사람들이요. 그따위 헛소문이나 믿고 총부리를 내댈 우리가 아니란말이요. 어서 가보우, 우린 동무의 약혼녀를 찾아줄 의무까지 지고있진 않아, 알겠소?》

땅거미가 졌다.

눈앞이 어질어질해났다.

종삼은 자기가 어데로 가는지도 알지 못하며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찬바람이 불어치며 가랑잎과 쓰레기들을 휩쓸어갔다.

어느 철책앞에 기대여서서 숨을 돌렸다. 허기진 배속에서 꾸르룩 거리는 소리가 났다. 개들이 사납게 짖어댔다. 시꺼먼 그림자처럼 철책에 붙어있는 한종삼을 도적으로 알고 짖어대는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고 인젠 어떻게 할가? 하고 맥없이 생각을 굴리고있었다.

돌연 안쪽에서 마차바퀴소리가 났다. 《조심히 가세요!》 하는 녀자의 목소리.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았다. 례배당앞에서 십자가를 목에 건 녀자가 손을 저어주고있었다. 풍친 마차안에서 한 사나이가 목을 빼들고 《잘 있소. 다시 오겠소!》 하고 소리치는데 례배당불빛에 얼추 비쳐든 그 얼굴이 무던히도 낯익었다. 다음순간, 심장이 흠칠 했다. 암파다, 그놈이다!…

어느새 마차는 큰길로 달리고있었다.

《암파다, 저놈 잡아라-》

별안간 터져나온 웨침소리였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의 귀전에나 겨우 미칠 억눌린 울부짖음이였다는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종삼은 어둠에 덮인 거리를 정신없이 달려갔다. 마차바퀴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뛰다가는 멈춰서고 또 숨을 헐떡이며 뛰다가는 바람소리사이로 겨우 들려오는 그 소리를 애써 붙잡군 했다.

끝내는 놓치고말았다. 정처없이 헤매다가 그놈이 바다로 내뺄수 있다는 생각이 펀뜩 들었다. 어찌하여 그런 생각을 미리 하지 못했던가. 바보, 시라소니, 얼뜨기같은것!…

바다가로 달려갔다. 멀리서 등대불이 호흡하듯이 껌벅이며 그를 부르고있었다. 도래굽이로 가는 길에서 총멘 젊은이를 만나 암파를 보지 못했는가고 숨이 차서 물었다. 자위대원인 젊은이는 수상한 사람들이 도래굽이로 가기에 뒤를 쫓는중이라고 하면서 암파란게 무언가고 물었다.

《반동놈이여!》 한종삼이 허덕거렸다. 《그놈을 쫓아가자- 잡아족치면…》

길게 설명할 새가 없었다. 다짜고짜 자위대원을 떠밀며 울부짖듯 했다.

《놓치면 안되우! 빨리, 빨리!…》

두사람은 도래굽이로 뛰여갔다. 바위벽을 때리는 파도소리가 음산한 밤의 어둠을 뒤흔들었다. 기계배 한척이 시커먼 물우에 떠서 흔들거리고있는것이 보였다.

바위들이 널린 모래불에서 매생이를 끌어내는 검은 그림자들, 웅성거리는 소음이 가까와왔다. 암파가 독촉하고있었다.

《썰물이 질 때다, 빨랑빨랑!…》

《저놈이여!》 한종삼이 소리쳤다. 《저놈이 목재더미에 불을 놓았소.》

자위대원이 총을 벗어들었다.

《서라,》 총소리가 터졌다. 《서라, 이놈들!》

검은 그림자들이 놀라서 굳어진듯 했다. 녀자의 흐느끼는듯한 비명, 순간 종삼은 《월순이!》 하고 부르짖었다. 급기야 내닫다가 어푸러졌다. 돌멩이를 걷어찬듯 했다. 저릿한 아픔이 발끝에서부터 장딴지까지 칼로 째는듯 퍼져올랐으나 또 일어섰다. 앞서가던 자위대원이 헉- 하고 멎어서며 비틀거리는것도 알지 못했다.

《월순이, 나여, 나, 종삼이여!-》

검은 그림자 하나가 매생이에서 뛰여내렸다.

《종금이 오빠!-》

월순이였다. 온통 새까만 옷을 입은 날씬한 그림자가 바람같이 달려오고있다.

《월순이!》

소녀같이 작고 연약한 검은 그림자, 아니 그것은 그림자가 아닌 맹렬하게 화살같이 날아오는 그의 약혼녀 월순이였다. 마주 달려간 종삼의 눈앞에서 흠칫하더니 비틀거렸다. 종삼이 그를 부둥켜안았다. 꽉 껴안고 머리를 젖혀 파리하고 해쓱한 처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월순이!》

《종금이 오빠…》 가는 속삭임, 《오-빠…》

그리하여 한종삼은 월순이를 되찾았다. 구름속에서 헤염쳐나온 초생달이 눈물이 고인 처녀의 두눈을 더듬었다. 파도가 소란스럽게 흐느꼈다. 얼마만이냐, 어떻게 되찾은 월순이냐!… 인젠… 인젠 어데도 못가, 절대 놔주지 않겠어, 내가 살아있는 한… 절대 안돼!- 처녀의 두눈이 스르르 감기고있었다. 되찾은 사랑이, 꿈같은 행복이 처녀의 온몸을 잠들게 하는듯… 《오-빠- 내 오빠!…》 하고 처녀는 힘겹게, 모기소리처럼 가늘게 속삭이였다. 오싹해지는 추위에 부르르 몸을 떨고는 거칠게 숨을 내뿜고있는 종삼의 가슴에 머리를 묻었다. 풀어헤쳐진 긴 머리칼들이 그의 턱밑을 간지르며 바람에 흩날렸다.

《그래, 그래, 인젠 마음을 놓아도 돼. 내가, 월순이 오빠가 월순이를 지켜주구…. 아무렴, 걱정하지 말아. 월순이를 지켜주구 또…》

순간 그는 와뜰 놀라며 처녀의 잔등을 어루쓸던 손을 뗐다. 심장이 흠칫했다. 저도 모르게 또 한번 손을 가져갔다. 월순이의 잔등에 꽂힌 단검자루, 손바닥을 적시는 뜨거운 피…

《월순이!》

기겁하여 소리쳤으나 맥이 진한 처녀는 기신없이 스르르 미끄러져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끔찍한 참변에 억이 막혀 미친듯 처녀를 다그어안았으나 어느덧 애처롭게 바르르 떨리던 엷은 입술조차 얼음처럼 차겁게 굳어져버렸다. 고개를 뒤로 젖히며 종삼의 팔과 손등을 머리칼로 뒤덮는데 공허하게 흡뜬 두눈은 시꺼먼 구름장사이에서 깜박이는 작은 애기별쪽에 견주어져있었다. 처녀가 마지막으로 눈에 담으려고 모지름 쓴 그 애기별조차 다시 구름장에 묻히고 말았다.

종삼은 무섭게 고함을 쳤다.

《월순이, 이게 웬일이여?-》

그러나 아무 기척도 없다. 미친듯 흔들어보았지만 길게 드리운 머리칼만 흩날릴뿐…

《누가 이렇게 했어.- 누가?!…》

그제야 종삼은 암파를 생각하였다. 이 급살을 맞을 반동놈의 새끼, 네가 월순일 죽였구나, 월순이를!?…

마구 헤덤비며 모래불을 더듬었다. 손에 잡히는대로 움켜쥐고 또 쥐여뿌리며 금시 파도우에 떠오른 매생이를 향하여 무섭게 돌진해갔다. 그러나 무엇인가에 발을 걸채여 앞으로 어푸러졌다. 두팔굽과 턱이 뭉클한 몸우에 미끄러졌다. 자위대원의 몸뚱이에도 두세개의 비수가 박혀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끈적끈적한 피가 손가락짬에 엉키고있었다. 그는 몸서리치며 자위대원의 머리쪽에서 손에 잡힌 총을 들었다.

《서라-, 암파 이놈, 서-라-아!》

총을 들고 물속으로 뛰여들었다. 금시 밀려온 파도가 그의 정갱이를 휩쓸며 모래불을 파헤쳤다.

총을 쏘고싶었으나 어떻게 쏘는지 알지 못했다.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잡아뽑고 쥐여당겨보았으나 무심한 쇠막대기는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매생이는 기계배쪽으로 멀어져가고 파도는 쉼없이 밀려가고 밀려오며 철썩이였다. 그는 몸부림쳤다. 피처럼 진한 눈물이 그의 얼굴을 뒤덮었다. 분노와 절망의 발작에 명치끝이 얼얼해났다. 머리털을 쥐여뜯으며 몸부림치고 처음으로 황소영각소리처럼 목놓아 울었다.

총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달려왔을 때 그는 거의나 실성한 사람 같았다. 불에 타는 봇나뭇껍질처럼 온몸을 비틀며 고함을 치고있었다.

《내가 월순일 죽였구나.- 이 미욱스러운게 월순일 죽게 했어.-》

사람들이 그를 보안서로 끌어갔다. 알고보니 그날 반동놈들이 등대지기도 무참히 살해했는데 사건현장에 있은것은 한종삼 그 한사람뿐이였던것이다. 그를 보증할수 있은 두사람 월순이와 이름모를 자위대원은 이미 숨져있었다.

다행히 그를 아는 보안서원들이 있었다. 불면으로 하여 사뭇 쫑긋거리는 눈섭을 손끝으로 한참 비벼대고나서 보안서장은 혀아래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참, 이런 일이 벌어질줄이야…》

한종삼은 아무 말도 못하고있었다. 쓰라린 눈물만이 때국물이 오른 그의 얼굴을 하염없이 적시고있을뿐이였다.

 

×

 

그는 갈곳이 없었다. 고향으로도 돌아갈수 없었다. 약혼녀까지 죽이고 그냥 간다면 동네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시러베아들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그는 걷고있었다. 대동군에 사는 외삼촌한테 가 숨어살며 농사나 지어야 할것 같았다. 다시는 머리를 들고다닐수 없는 한종삼이였다.

한낮이였다. 가을걷이를 한지 오랜 전야에서 아직도 이삭주이를 하는 처녀애들이 보였다. 소잔등에 올라탄 더벅머리 총각애가 휘청거리며 걷고있는 그를 말끄러미 쳐다보고있었다. 그 애한데 길을 물었다. 그리고는 방축길에 올라서서 또 머리를 수그리고 털썩털썩 걸어갔다.

별안간 빵- 빵- 하는 차소리에 와뜰 놀라며 머리를 들었다. 새까만 승용차가 길이 막혀 소리치고있었다. 두마리의 황소가 무슨 지랄이 났는지 길가운데서 뿔질을 하고있는것이였다.

방축아래 내가에서 빨래를 하던 아낙네가 악악 소리치고 싸움질하는 소들곁에서는 종아리가 가는 처녀애가 발을 동동 구르고있었다.

한종삼은 그리로 달려갔다. 땅바닥에 끌리고있는 고삐끈을 감아쥐고 젖먹던 힘까지 다 짜내여 한쪽소를 잡아끌었다. 한쪽놈이 대가리를 휘젓는 틈을 타서 재빨리 바오래기를 팔에 걸었다.

그러나 힘장사로 소문난 한종삼이로서도 독이 오른 황소를 당해낼수는 없었다. 한쪽이 조금 밀리며 떨어질듯 했으나 저쪽놈이 허연 입김을 날리며 골받이를 해댔다.

《불뭉치, 불뭉치를 가져와!》

그는 소리쳤다. 허겁지겁 달려 올라온 아낙네와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있는 처녀애한테 성냥이 있을리 없다는것도 생각지 못하고 이마에 피대줄을 돋구며 고아댔다.

《이- 이놈들 똥줄을 싸갈기게 할테다. 빨리 불뭉치를 가져오라는데!》

바줄을 감아쥐고 괜히 비지땀을 흘리며 용을 쓰고있는 그한테 누군가 불뭉치를 내밀었다. 벼짚뭉치에 불을 단것이였다.

미친듯 싸움질하는 소들을 떼놓는데는 불방망이이상 없다. 불달린 벼짚뭉치를 황소꼬리에 갖다대니 기승을 부리며 날뛰던 한놈이 먼저 기겁하여 달아났다. 다른 놈은 느침을 질질 흘리며 가쁜숨을 헐썩거렸으나 감히 뒤쫓을념을 못하였다. 한종삼이 활활타는 짚뭉치를 내던지자 그놈 역시 황겁하여 후닥닥 뛰고말았다.

등뒤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한종삼은 씩씩거리며 피끗 뒤돌아보았다. 새까만 양복을 입으신분이 한손을 허리에 짚고 웃고계시였다. 그분의 정채도는 눈빛과 환하신 용모에 대뜸 주눅이 들어버렸으나 그는 곧 머리를 흔들며 걸음을 떼였다. 그저 끝없이 가고 또 가고싶었다. 이렇게 가고가다가 굶주리고 어혈진 마음의 고통에 못 이겨 쓰러져버릴지언정 아무데건 정처없이 가야만 할 그였다.

《가만!》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그를 못 박아 세웠다. 《어데까지 가는지 같이 가기요. 이리 와서 차에 타오.》

그는 돌아섰다. 아니 몸을 돌리고 뒤걸음쳤다.

《싫어유, 난…》

그분의 따뜻한 미소를 마주볼수가 없었다. 거지같은 꼴루 어떻게 차에 오른단 말인가. 그것은 정녕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이였다.

《동무.》 그분께서 웃으며 마주오시였다. 《먼 길을 온것 같은데 어데까지 가오?》

《?!…》

그는 입이 얼어붙은듯 했다. 웬일인지 가슴이 두근거리며 눈이 바로서지 않았다. 지금 자기에게로 얼마나 아름찬 행복이 마주오고있는지 알지 못하고 창이 떨어진 로동화로 애꿎은 땅바닥만 허비고있었다.

《하- 힘장사청년이 왜 이렇게 꼴기가 없소.》 그분께서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옷주제랑 말이 아니구… 왜 그렇게 됐소?》

별안간 눈굽이 쿡 쑤시는것을 느꼈다. 다정하신 그 음성이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었다.

누구실가, 어떤분이실가?… 이렇듯 따뜻하고 친근하신 음성을 여태 들 본적이 없었다. 이분앞에서라면 그 무엇이든 다 터놓고 하소연도 할수 있을것 같았다.

하여 그는 떠듬거리며 말씀드리기 시작하였다. 월순이를 찾으려고, 월순이를 구원하려고 모지름쓰던 일들을 죄다 말씀드렸다.

어느새 눈물이 앞을 가리는것을 느꼈다. 월순이를 죽이고 (그는 마치 자기가 월순이를 죽인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억이 막혀 몸부림치던 일을 말씀드리려니 목이 꺽꺽 막혔다.

그분께서는 잠시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근엄한 안색으로 물기에 젖어있는 한종삼의 얼굴을 이윽토록 지켜보고계시였다. 아픔이 실려있는 그분의 눈길에 종삼은 손등으로 눈굽을 문질렀다.

《해방된 조국땅에서 이런 가슴아픈 일이 벌어지다니…》 그분께서 혼자말씀처럼 비통하게 뇌이시였다. 《아니, 더이상 이런 일이 반복되게 해서는 안된다, 절대로!…》

찬바람이 불었다. 넝마쪼각같이 널려있던 구름장들이 어데론가 황황히 밀려가고있었다.

《한종삼이라고 했지?》

그분의 물으심에 종삼은 목 쉰것처럼 《예.》 하고 대답올렸다.

《한종삼… 그래 얼굴을 들수 없어 고향에도 갈수 없다구? 그래서 어데 숨어서 살겠다는거요?… 숨긴 왜 숨겠소. 어데 숨어있다구 상처입은 마음이 아물겠는가. 약혼녀의 복수는 또 누가 해주고?… 아니 그래선 안돼오. 모두가 동무처럼 움츠러든다면 반동놈들이 더 날칠게 아니요. 그다음은 또 동무의 누이동생을 해치고 고향마을을 불태우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은 왜 못해봤소?… 원쑤들은 간악하오. 지주, 자본가,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은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걸 바라지 않소.

동무의 약혼녀를 앗아간 그 암파란 놈만해도 그렇지. 그런놈들이 어디 한둘뿐인줄 아오? 지금 저 남조선에 기여든 미국놈들이 그런 반동놈들을 긁어모아 군대를 뭇고있다는 소릴 동문 들어본적이 없소?… 왜 그러는지 모르겠소? 우리를 먹어보려고 그러는거요.》

《예? 우릴 먹어보려구요?…》

《그렇소. 지주, 자본가들의 세상을 만들어보려구 말이요. 그래 종삼동무, 또다시 노예살이를 하고싶은가, 날 죽여주소- 하고 머리를 땅에 박고있겠는가 말요?》

《아니 그럴순 없어유, 절대루!…》

그분께서는 한종삼의 손을 끄당겨 쓸어보시였다.

《이것 보오. 종삼동무, 돌덩이같은 이 커다란 주먹이 눈물에 젖어있어서야 되겠소?… 꽉 부르쥐라구. 꽉 !… 자기 운명을 이 손에 꽉 틀어쥐란 말이요. 그리구 그 어떤 원쑤놈들도 법접을 못하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

종삼은 대답을 올릴수 없었다. 부지중 눈물로 얼룩진 자기의 큰 주먹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그것을 빼내고싶었으나 그이께서는 점점 더 힘주어 감싸쥐시였다.

《숨어버릴 생각을 말고 이 주먹을 부르쥐고나서란 말이요. 동무도 지금 많은 청년들이 이 손에 총을 틀어잡고 자기 공장, 자기 고향을 스스로 보위하고있다는걸 알겠지?… 그런데 동문 뭐요, 그들처럼 했더라면 왜 자기 약혼녀하나 지켜주지 못했겠소. 잊지 말라구. 종삼동무. 해방이 됐다구 해서 행복이 저절로 찾아오는건 아니요. 행복한 새 나라를 세워야 할거구 또 그것을 지켜야 할게 아닌가!…》

《!…》

아까부터 승용차옆에서는 군복을 입고있는 한 젊은이가 초조하여 서성거리고있었다.

언젠가 불속에서 자기를 구원해준 곽일무와 비슷한 젊은이였다. 아니 곽일무보다 더 드세고 단단해보였다.

그러면 이분은?… 영채도는 눈빛은 한종삼의 마음속생각까지 다 들여다보시는듯 했다.

우렁우렁하신 그 음성은 한종삼의 온 심장을 단박에 단쇠처럼 뜨겁게 달구어주고있었다. 마디마디 가슴을 쾅쾅 울려주는 그 말씀을 계속 듣고싶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시간이 없으신듯 했다. 아쉬운듯 시계를 들여다보며 같이 차를 타고가면서 이야기를 계속하자고 하신다.

종삼은 펄쩍 뛰였다.

《아니예유. 난 다 왔어유. 저-기 외삼촌집이 고대입니다. 정말이예유.》

《그럼 종삼동무, 명심하시오. 그리구 약속하기요. 다시는 이 주먹이 눈물에 젖지 않게 하겠다는것을!…》

《예, 그렇게 하겠어유. 꼭!…》

드디여 그분께서는 차에 오르시였다. 마지막으로 한종삼을 향해 손을 들어주실 때 그는 허리를 굽혀 진정어린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승용차가 멀리 사라져갈 때까지 한자리에 그냥 못박힌듯 서있었다. 비로소 눈앞이 확 트인듯 했다. 슬픔과 아픔으로 하여 짖눌려있던 가슴이 활 열린듯 했다. 인제는 자기가 무엇을 해야겠는지 잘 생각해보아야 했다. 인제는 자기가 어데로 찾아가야 하겠는지 다시 결정지어야 했다.

누군가 그를 소리쳐 부르는듯… 그는 눈을 비비고 먼 하늘가 한끝으로 눈길을 들었다. 철새들이 날고있었다. 질서정연한 대오를 지어 자기들이 목적한 머나먼 고장으로 거침없이 날아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