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6


 

제 1 장

6

 

중국동북에서는 11월 15일부터 류혈적인 내전이 폭발하였다. 미국제 무기로 무장하고 미국의 비행기와 군함으로 수송된 장개석의 국민당군대 30만병력이 공산당의 팔로군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개시한것이였다.

그러나 중국동북에서의 대규모적인 내전이 우리 혁명에 미칠 엄중한 후과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아직 얼마 없었다. 해방열에 들뜬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보려고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미 예견하신 일이였으므로 놀라지 않으셨지만 마음은 납덩이에 짓눌린듯 무거우시였다. 정세의 추이와 장래를 내다보시는 그이의 심중은 착잡하였고 지어 고통스럽기까지 한것이였다.

그날은 11월 17일, 준엄한 겨울을 앞둔 평범한 날이였다. 평양의 거리들은 여전히 활기에 넘쳐있었다. 대동강 선창가의 선박시장에서는 쌀과 남새, 물고기, 소금, 장작단을 가득 싣고온 배들이 물결우에서 흐느적거렸고 장대재의 례배당에서는 교인들을 부르는 은은하고 명상적인 종소리가 울리고 일찍부터 소문난 평화회관에서는 건드러진 륙자배기소리를 축음기로 틀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겨 승용차의 시창밖으로 흘러가는 거리의 풍경을 내다보고계시였다. 이 하루도 열띤 흥분속에서 새날을 맞고있는 평양, 비록 생활은 아직 넉넉치 못하고 곤궁도 적지 않지만 사람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밝고 활기에 넘쳐있었다.

개화장을 짚은 사람이 《명월메리야스》라는 간판이 달린 유리문앞에서 안에 대고 무어라고 소리치고있었고 녹두나물 아니면 콩나물이 들어있음직한 자배기를 머리에 인 녀인이 손가락을 입에 물고 사방을 두릿거리는 계집애를 욕질하며 손목을 잡아끌고 건늠길로 건너갔다.

방금 전차에서 쏟아져내린 사람들이 사방 흩어져가는데 가죽장화가 버들거리는가 하면 꼬리치마밑에서 얼씬거리는 백고무신도 있다. 흙묻은 로동화, 해여진 미투리, 끈떨어진 나막신도 바삐 뛰고있다. 예닐곱쯤 되였을 한 소년은 커다란 왜놈군화에 가느다란 다리를 밀어넣고도 용케 종종걸음을 치고있다.

저 신발들이 걸어온 각이한 인생길,… 거기에 깃든 사연은 얼마나 많은것이랴. 고역의 길, 아픔과 설음 혹은 눈부신 출세의 길, 친일 또는 항거의 길, 아니면 류랑의 길을 걸어왔을 사람들이 오늘은 다같이 해방된 이 거리를 바쁘게 걷고있다. 저 왜놈군화를 무겁게 끌며가는 소년은 지금 어데로 급히 가고있는것일가?… 그가 어데로 가든 소년의 앞길은 탄탄할것이다. 바로 그것을 위해 지금도 그이께서는 차를 달리고계시는것이다.

어제 남포의 김경석으로부터 련락이 왔었다. 룡강군 다미면 지울리에 군사학원으로 쓸만한 건물들이 있다는 보고였다. 도시에서 벗어나있고 교통조건과 전기, 수도망시설을 갖추는데서도 품이 많이 들지 않을것 같다고 했다.

보고를 받으신 그이께서는 모든 사업을 다 미루고 김책, 최용진 등을 데리고 현지로 떠나시였다. 김책은 주도일과 같이 뒤차에 타고있고 최용진은 지금 부관을 대신하여 그이의 승용차 앞좌석에 앉아있다. 그자신이 그렇게 자리를 정했는데 새로 온 운전수를 단단히 가르치려는것 같았다. 잔소리가 많다. 속도가 늦다거니 빠르다거니 차가 들춘다거니… 얼마전까지 그는 중국사람들처럼 승용차의 발디딤판을 딛고서서 달리기를 좋아했는데 그는 차밖에서 강상호는 차안에서 호위임무를 수행하기로 분공돼있다는것을 아신 장군님께서 엄하게 금지시키시였다. 그때문에 최용진은 한동안 볼이 부어다녔다. 김책으로부터 호위사업을 도와줄 과업을 받고있는 최용진이다. 우악스럽고 몰풍스러운가 하면 쾌활하고 주도세밀하고 담찬 최용진, 지금 그는 드센 배짱군인 그답지 않게 계속 운전수에게 잔소리를 퍼붓고있다.

그럴만한 일이 있었다. 그가 우겨서 리오송에게 자동차운전술을 배우게 했었다. 장군님의 승용차는 응당 빨찌산출신이 몰아야 한다고 쇠고집을 썼던것이다. 그런데 전달 초의 어느 흐린 날 리오송이 찦차로 만경대에 갔다오다가 팔동교에서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하는수없이 그를 철직시키고 운전경험이 많은 사람을 골라왔던것이다.

최용진은 경위대사업에 특별한 관심을 돌리고있다. 경위중대일때문에 마음을 놓을수 없다고 김책도 말한바있다. 경위대 대장인 강상호와 주도일, 김명준부관들을 내놓고는 장군님곁에 항일빨찌산 출신대원들이 없기때문이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최용진은 물론 주도일까지 새로 내올 군사학원에 파견할 생각이시다. 최용진은 군사교무부원장자리에 점찍고계신다.

기타 교직원들도 내정되여있다. 당조직책임자로는 조정철, 교무주임으로는 심태산, 후방부원장은 김룡화, 중대장들로는 김증동, 주도일, 최민철 또 김룡연… 학원원장은 물론 김책이다. 지금 그가 맡고있는 사업이 아무리 중하다 해도 군건설의 첫 원종장인 군사학원에는 대비조차 할수 없다.

해가 높이 솟았다. 화살같은 대형을 지은 기러기떼가 멀리 지평선너머로 날아가며 뿔나팔소리로 다가오는 겨울을 예고했다. 그러나 아직 차창으로 흘러드는 빛은 따스하다. 백양나무들이 늘어선 강기슭에서는 사람들이 크고작은 짐을 이고지고 나루배를 소리쳐 부르고있다.

지울리에 도착한것은 오전 10시경이였다.

남포지구파견원 김경석이 남포시적위대일군들과 지울리지구 당세포책임자 등과 같이 기다리고있었다. 벅찬 흥분으로 상기된 사람들이 차에서 내리신 장군님께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장군님께서는 그들 매사람의 손을 굳게 쥐시였다.

지울리지구 당세포책임자와는 그저 《수고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팔이 하나 없는 사람이였는데 병색이 도는 누르끼레한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했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안내를 받으며 건물들을 돌아보시였다. 해방전 왜놈들의 소화전공회사기술원양성소로 쓰던 건물 열한채가 있었다. 거의다 빠넬집이였는데 안벽은 세멘트미장이였다. 화구간이 무너지고 벽에 바른 세멘트가 떨어졌는가 하면 천정을 가로지른 나무들을 뜯어간것이 많았다.

장군님께서는 1호동의 방들을 살펴본후 아무 말씀없이 2호동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시였다. 2호동 어느 방에선가 《가갸거겨》를 외우는 소리가 울려오고있었다.

지구당세포책임자가 말씀드렸다.

《지금 저기선… 건국중학교 학생들이 글공부를 하고있습니다.》

《건국중학교?…》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여기에 중학교를 옮겨왔단 말입니까?》

《아니 그런게 아니구… 글을 모르는 까막눈들을 틔워주려고 림시 학교라는걸 운영해보고있습니다. 청년들을 모아왔는데 수염이 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이께서는 가볍게 미소를 그리시였다. 까막눈들을 틔워준다- 좋은 일이지.지구당세포가 좋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몇명이나 모여왔습니까?》

《저… 한 칠팔십명가량 됩니다. 매일 학생수가 달라서… 자꾸 빠지는 축들이 많습니다.》

《음-》

장군님깨서는 청장년들의 글소리에 한동안 귀를 기울이시다가 다음 건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가끔 속이 빈 팔소매를 바지괴춤에 찌르고있는 안내자의 불편해하고 거북스러워하는 거동을 련민의 정으로 여겨보기도 하시였다.

《세포책임자동무, 아까부터 묻고싶었는데… 한팔을 언제 어떻게 잃었습니까?》

장군님께서 물으시자 그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이윽고 한숨을 길게 내뿜고나서 말씀드렸다.

《10년전 여름 홍수가 났을 때였습니다. 왜놈 헌병들이 나루배로 강을 건느자는걸 물이 불어 위험하다고 거절했더니 다짜고짜 칼로 이 팔을 찍었습니다. 그리고는 강물에 차던졌는데 마을사람들이 건져냈지만…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해서 팔을 자르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지난날의 원한을 더듬는 그의 얼굴은 재빛으로 이즈러지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화제를 돌리시였다.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있습니까?》

《예. 품팔이도 하고 선로반 일도 합니다. 해방후엔 아직 고정된 일자리를 얻지 못했는데 사람들이 당세포사업을 책임지라고 자꾸 권고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뭘 아는게 있다고…》

소박하고 성실한 사람이였다. 갓 창건된 당의 말단세포사업을 책임진 중년사나이, 헐어빠진 철도복을 입은 불구의 몸이였으나 진중하고 끈덕진 성미에 책임성이 높은 사람이라는 믿음이 가시였다.

그이께서 또 물으시였다.

《이곳 청년들은 어떻습니까. 반동들의 꾀임에 속아 여기저기 밀려다니지 않습니까?》

《일부 그런 패가 있었지만 우리가 다 끌어당겼습니다. 저기서 글공부를 하는 청장년들은 다 우리편입니다. 장군님뜻이라면 목숨걸고 나설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 그럼 그들더러 군대가 되라 해도 다들 떨쳐나설수 있습니까?》

지구당세포책임자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해보는듯 했다. 재빨리, 골똘히 생각을 굴리고나서 그는 말씀드렸다.

《그런건 아직 말해본 일이 없지만… 장군님뜻을 따르는데야 경우를 가리겠습니까. 어쨌든 제가 잘 말해보겠습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점점 더 마음에 드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어깨를 잡고 발걸음을 맞추며 간곡히 말씀을 이으시였다.

《청년들과의 사업을 잘해주시오. 좋은 청년들을 골라 여기에 서게 될 군사학원에 보내야 하겠습니다. 하루빨리 해방된 내 나라를 지킬 군대를 키워야 합니다. 지금 저 남조선에서 해방자의 탈을 쓰고 기여든 미국놈들이 지난날 왜놈들이 그러던것처럼 무고한 우리 조선사람들을 마구 학살한다는것을 알고있습니까?… 다시는 원쑤들이 우리 인민의 팔다리를 장검으로 찍고 학살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청년들을 잘 교양해야겠습니다. 무엇보다 총을 잡아야 한다는것, 총만 든든하면 무서울것도 못해낼 일도 없다는것을 다들 알게 해야 합니다. 총이란 군대입니다. 새 조선의 군대, 인민의 군대입니다.》

《예, 장군님. 있는 힘껏 장군님뜻을 받들겠습니다!》

정오가 가까와왔다. 장군님께서는 열한채의 건물들을 죄다 돌아보시였다. 건물보수와 전기시설, 난방시설공사에 적지 않은 품이 들겠지만 매 건물마다 침실, 강의실은 물론 식당과 세목장으로 쓸 방들이 많아서 좋았다. 한때 일본인양성생들만 들였다는 7-8호동은 채광이 좋고 넓고 벽을 두텁게 미장한 방들이 있어 종합강의실 혹은 건국교양실로 리용하기에 적합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건물보수에 소요될 자재와 로력도 타산해보시였다. 김책과 최용진에게 구체적인 보수계획과 명세를 작성하도록 과업을 주시였다.

《학생모집사업도 다그쳐야겠습니다. 평양과 여러 지방도시들에서 운영하는 청년학교, 로동자학원들에서도 뽑고 각 지방당조직들을 통해서도 좋은 청년들을 선발하여 보내도록 해야겠습니다. 늦어도 한달후엔 학원개원식을 가지도록 합시다.》

이윽고 열한채의 건물들이 손바닥처럼 내려다보이는 둔덕우에 올라 지형을 료해하시였다.

모든 면에서 안성맞춤인 지대였다. 장군님께서는 두손을 허리에 얹고 말씀하시였다.

《여기는 위치상으로 훈련하기에도 괜찮은 지대입니다. 김책동무, 보시오. 저기선 비행훈련도 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김책은 뜻밖인듯 했다.

《비행훈련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활주로를 닦고 비행훈련도 합시다. 나는 이미 군사학원에 항공과 혹은 항공반 같은것을 내올 생각을 가지고있었는데… 이곳 지형조건이 괜찮습니다. 드디여 우리는 군사간부들을 대대적으로 키울수 있는 터전을 잡았습니다. 이제 곧 여기에 정규적혁명무력의 첫 원종장을 꾸립시다.》

어데선가 염소울음소리가 났다. 둔덕아래의 과수원에서 고삐 끌린 염소가 깡충깡충 뛰더니 또 한번 《매애!-》 하고 턱수염을 쳐들며 울었다.

장군님의 만면에 밝은 웃음이 피였다.

《저 과수원을 잘 가꾸면 학생들에게 맛좋은 사과도 공급할수 있을것입니다. 학원위치가 아주 좋습니다. 대동강을 끼고있겠다 전기와 물문제도 풀수 있고 교통조건, 훈련조건도 나무랄데 없겠다 이제 학원이름만 달아주면 되겠습니다. 내 생각엔 평양학원이라고 하는것이 좋을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더 좋은 안이 있으면 말해보시오.》

《평양학원!》

김책과 최용진, 김경석 등이 거의 동시에 그것을 외워보면서 눈빛을 번쩍였다.

《정말 좋은 이름입니다.》 김책이 말했다.

《예. 아주 좋습니다, 마음에 꼭 듭니다.》 최용진이 소리쳤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김경석은 손가락마디를 딱딱 꺾고있었다.

《그럼 됐습니다.》 장군님께서 말씀하시였다. 《그렇게 부르도록 합시다. 그리고 한번 본때있게 내밀어봅시다. 건물들도 보수하고 과정안도 짜고 좋은 청년들도 모집하고… 정말 할 일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정규무력건설은 벌써 첫 걸음을 뗀셈입니다.》

정오가 퍽 지났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시간의 흐름도 감감 잊고계시였다. 원동의 훈련기지에서부터 구상하시던 군건설의 가장 중요하고 절박한 간부문제해결의 첫 걸음이 시작된것이였다.

최용진이 김경석에게 뭐라고 소곤거렀다. 김경석이 눈짓하자 적위대일군 두사람이 어데론가 급히 달려갔다.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무슨 일이요?》

《장군님!》 최용진이 말씀드렸다. 《점심시간이 퍼그나 지났습니다.》

《벌써?》 그이께서 시계를 보시였다. 《음- 어느새 이렇게?… 그렇지만 돌아가서 할 일이 많으니 좀 늦더라도 평양에 가서 식사를 하도록 합시다.》

최용진은 난색을 보였고 김경석은 김책에게 몸짓으로 도움을 청했다. 김책이 나서며 그냥 돌아가면 이곳 일군들이 몹시 섭섭해할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시계를 보며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얼마후 길가의 크지 않은 초가집앞에 차를 세웠다. 평안남도일대에서 흔히 볼수 있는 벼짚이영을 얹은 수수한 외통집이였다. 작은 뜨락을 둘러싼 수수바자우에 나래를 입히고 곱새를 얹은 담장과 그밑의 빈 닭우리와 짝지발이, 지게며 헌 삼태기 등으로 미루어 가난한 농가가 분명하였다.

먼저 달려갔던 안내원(적위대일군)들이 몹시 난처해하는 표정으로 부엌문앞에 서있었다. 약간 열려진 지게문안쪽에서 50살안팎의 주인내외가 방금 망질을 시작하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부엌문앞 기둥에 매달린 드레박과 그 아래쪽의 뒤웅박도 무심히 보실수 없었다. 처마밑이나 벽체기둥에 매달려있어야 할 뒤웅박이 토방우에서 딩굴고있는것이다. 분명 그속에 넣어두었던 량곡이나 메밀종자를 금시 쏟았을것이다.

주인내외가 엉거주춤 일어서며 지게문을 열었다.

《저… 루추하지만… 어서 들어오십쇼.》

장군님의 흐리신 안색에 몸들바를 몰라하던 최용진이 먼저 토방에 오르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 이거 메밀국수를 누르려는게 아닙니까?》

《예.》 집주인이 공손히 대답했다. 《귀한분들이 오신다기에… 이럴줄 알았으면 뭘 좀 준비해둘걸 그만…》

장군님께서는 아릿해지는 심정을 누르며 애써 우선우선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페를 끼쳐 안됐습니다.》

《원 별 말씀을… 보매 혁명군어르신들 같은데 이렇게 찾아주셔서 정말 반갑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방에 들어가 안주인과도 인사를 나누시였다. 시우쇠장식을 한 바리농짝우에 얹은 이부자리며 구석쪽에 대충 밀어놓은 화로와 다듬이돌, 반짇고리 등을 일별하신 그이께서는 안주인더러 어서 부엌일이나 보라고 말씀하시였다.

《대신 제가 망질을 하겠습니다.》

두 내외가 당황하여 만류하였지만 일없다고, 이전에 머슴살이할 때 해보고는 몇십년만에 처음이라고 하시였다. 머슴살이라는 말에 주인내외와 적위대일군들이 두눈을 흡뜨는것을 보고 그이께서는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혁명을 하려니 무슨 일인들 못해 봤겠습니까.》

수원들이 또 막아나섰지만 장군님께서는 자리잡고앉으며 망자루를 잡으시였다. 집주인과 같이 망을 돌리며 그이께서는 이 고장에서 얼마나 오래 사셨는가, 자식들은 몇이며 지금 무엇을 하는가 하는것 등을 물으시였다.

아들만 셋이라고 한다. 그런데 맏아들은 징용에 끌려나간 후 아직 소식이 없다고 한다.

《나라가 해방되여 숱한 사람들이 제집으로 돌아오는데 우리 맏이만은 종무소식입니다. 불귀의 객이 됐는지 원….》

장군님께서는 문득 부엌문앞 벽체기둥아래에 놓여있던 뒤웅박이 떠오르시였다. 거기에 가득 담겨져있었을 메밀… 풀죽을 먹으면서도 그것만은 다치지 않고 맏아들이 돌아올 그날을 기다려왔을것이다. 그러던것을 아낌없이 털어 지금 매돌에 갈고있다.

가슴이 뜨거우시였다.

《기다리는 마음이 크면》 하고 그이께서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언제건 꼭 옵니다. 이제 두고보십시오.》

《고맙습니다. 그렇게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이어 화제는 농사문제며 남포앞바다에서 성행하는 북과 남장사군들의 물물교역 등으로 번져갔다.

집주인이 제일 관심하는것은 토지문제였다. 각지에서 김일성장군님께 땅을 분여해주실것을 청원하는 편지를 올리고있다는게 사실인지, 장군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고계시는지 혹시 알고있는게 없는지, 혁명군어른들이 장군님을 뵙게 될 때 좀 물어봐주실순 없겠는지 하면서 가늘게 눈귀를 좁혔다.

장군님께서는 웃으며 농민들의 생각이자 김장군의 생각이라고, 이제 꼭 농민들의 숙원이 풀릴것이라고 하시였다.

《과시 우리 장군님이시지.》 하고 주인은 눈시울을 슴벅거리며 말했다. 《아직 한번도 장군님을뵙진 못했지만 성함만 들어봐도 얼마나 훌륭한 함자이시오. 듣자니 그리도 젊으시구 관옥같이 잘나신분인데 우렁우렁하신 음성에 또 웃으실 땐…》

장군님께서 웃으시는 모습을 여겨보던 주인이 별안간 목에 걸린것을 꿀꺽 삼키는듯 했다. 말을 멈추고 이상한 눈빛으로 굳어져버렸다.

장군님께서는 화제를 돌려 이제 맏아들이 돌아오면 세 아들을 다 농사일을 시키겠는가고, 세 아들이 다 끌끌한 젊은이들로 자랐다니 아들 하나쯤 나라에 바칠 생각이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주인은 웬일인지 다시금 이상한 눈빛이였다. 걷잡을길 없이 북받쳐오르는 놀라운 충동에 못 이겨서인지 망질하던 손을 멈추고 무릎을 꿇으며 금시 절을 올릴 자세였다.

그이께서 놀라서 물으시였다.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

흥분으로 하여 검붉게 상기된 주인의 량볼이 움씰거렸다. 목소리는 갈리고 숨찬듯 헐썩이였다.

《용서하십시오. 혹시 제가… 장군님을 뵙고있는게 아니온지… 어쩐지 자꾸만 그런 생각이…》

장군님을 모시고온 사람들의 남다른 태도에서 받은 느낌인지 아니면 범상치 않은 그이의 모습에서 받은 직감인지 주인은 벌써 구들바닥에 두손을 짚고있었다.

장군님께서 그의 손을 잡으시였다.

《인사가 늦어서 안됐습니다. 제가 김일성입니다.》

《장군님!》 주인이 부르짖었다. 《제가 미처 알아뵙지 못하구… 죄송합니다.》

《아 이러지 마십시오.》 그이께서는 절을 올리는 주인을 잡아 일으키시였다. 《같이 망질이나 계속합시다. 허물없이 얘기도 나누고.》

《아니올시다. 제 이제 자식들을 다… 바치겠습니다. 아들 셋을 다 나라에 바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그럼 농사는 누가 짓겠습니까. 그리구… 아직 주인장은 그 아들에게 무슨 일을 시키려 하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걸 알아선 뭘 하겠습니까. 장군님슬하에만 둔다면 그보다 더 복된 일이 어데 있겠습니까, 장군님, 무슨 일이든 시켜주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 인민의 마음이다. 소박하고 성실하고 진실한 마음… 장군님께서는 주인의 북두갈구리 같은 손을 부여잡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부엌에서는 벌써 국수를 누르고있었다. 최용진이 안주인을 도와 국수분틀우에 올라 앉아있는데 무슨 우스개소리를 하고있는것 같았다. 뽀얀 증기발이 방안으로 흘러들고있었다.

이윽고 늦어진 점심식사가 있었다. 비록 꾸미도 국물도 변변치 못한것이였지만 장군님께서는 진짜 평양국수맛이라고 안주인을 치하하시였다. 부엌에서 정지간을 들여다보고있던 녀인이 장군님의 그 말씀에 흠칫 눈굽을 떨더니 치마폭으로 얼굴을 감싸는것 같았다.

장군님께서는 김경석과 남포시적위대일군들에게 절량농가들과 도시극빈자들의 생활문제를 풀기 위한 대책을 의논하시고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그런데 안주인이 보이지 않았다. 문밖의 토방에서 가느다란 신음소리 같은것이 들려왔다. 혀를 깨무는것 같은 억눌린 흐느낌소리…

장군님께서는 지게문을 여시였다. 다음순간 돌쩌귀를 잡으신채 굳어지시였다.

안주인이, 귀밑머리가 희슥해지기 시작한 녀인이 토방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있었다. 장군님의 장화를 안고 치마자락으로 정히 닦으며 하염없이 흐느끼고있었다. 그 울고있는 모습이, 흙묻은 장화를 닦으며 아픔과 눈물을 씹어삼키고있는 녀인의 모습이 장군님의 마음을 찌르르 울려주었다.

장군님께서는 묻는듯한 눈길로 주인을 돌아보셨으나 그는 입귀의 주름살을 떨며 그린듯 서있을뿐이였다.

《웬일입니까.》 그이께서 녀인에게 나직히 물으시였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흐느낌소리가 더 커졌다. 입술을 깨물고 북받치는 오열을 삼키며 온통 눈물로 젖은 광대뼈어름을 손바닥으로 훔치고 녀인은 목메여 말씀드렸다.

《죄송합니다. 장군님! 왜놈들을 몰아내구 나라를 찾아주시느라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셨을 장군님께 진지상 하나 변변히 차려드리지 못했으니 정말 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저으기 놀라시였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제 방금 말하지 않았습니까. 진짜 평양국수맛이였다고.》

《아니올시다. 장군님, 장군님께서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잘 압니다. 쇤네가 섭섭해할가봐 우정 맛있게 드신듯이 말씀하시는줄 왜 모르겠습니까. 용서해주십시오. 장군님, 이렇게 루추한 집에 모신것만도 죄스러운 일인데…》

장군님께서는 불현듯 눈굽이 저려드는것을 어쩔수 없으시였다. 급히 허리굽혀 녀인을 일으키시였다. 목이 잠기여 힘겹게, 가까스로 말씀하시였다.

《이러지 마십시오. 그 어떤 산해진미인들 이보다 더 맛있게 들겠습니까. 우리 인민이 해주는 음식이면 보리밥 한덩이에 된장 한술만 있어도 됩니다.》

장군님께서는 여전히 어깨를 떨고있는 녀인을 여겨보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울지 마십시오. 가슴을 쭉 펴고 크게 웃으십시오. 피눈물 뿌리던 지난날은 영영 가버렸습니다. 희망을 가지십시오. 이제, 잘살게 됩니다. 그 어떤 놈들도 더는 우리를 숙보지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장군님의 눈가에서도 뜨거운 이슬이 번뜩이고있었다.

이것이 우리의 실태이다. 우리의 군건설밑천도 바로 이러하다. 귀한 자식을 위해 남겨둔 뒤웅박의 메밀… 일부 사람들이 돈한푼 없이, 아무런 경제적밑천도 없이 어떻게 정규무력을 건설하는가고 머리를 기웃거리는것이 결코 우연치 않다. 그러나 그런것만이 밑천이겠는가, 이 주인내외와 같이 순박하고 성실한 사람들, 귀한 자식 셋을 다 나라에 바치려는 그처럼 헌신적인 인민의 마음이 있지 않는가!…

바로 그 소박한 진정에 장군님께서는 가슴이 뜨거우시였던것이다….

이틀후 김책은 갖가지 건설자재들을 실은 자동차를 가지고 지울리로 떠나갔다. 최용진은 첫 학원모집생들을 인솔하고 가기로 했다.

현지에 도착한 김책은 남포지구에서 150여명의 로동자들을 동원하여 전기공사, 수도공사 등을 시작하였다. 모집되여오는 학원생들도 현지에 도착하는 즉시 공사에 인입하기로 했다. 긴장한 공사의 나날들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김책은 거의나 눈을 붙여볼 새가 없었다. 갓 창건된 당과 정권기관에서는 김책과 같은 로숙한 일군을 절실히 요구하고있었지만 그는 평양학원을 꾸리는데 전적으로 몸을 잠그고있었다. 그토록 장군님께서 평양학원을 중시하시였던것이다.

그 무렵 청진에서 안길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