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10


 

제 1 장

10

 

안길은 밝고 명랑한 표정으로 서기실에 들어섰다. 장군님께서 그를 부르시였던것이다. 며칠전 그가 도착하여 청진지구에서의 활동정형을 보고드리려 했을 때에는 먼저 병원에 들려 종합검진을 해야겠다고, 그 다음에 사업토의를 하자고 하시던 장군님이시였다. 그리고는 늘 바쁘신 탓인지 안길을 잊고계신듯 했다. 비로소 오늘 찾으실적엔 중요한 일감을 주시려는게 분명했다. 검진결과에 대해서는 미리 보고받으셨을것이다. 그렇지만 안길은 그에 대해서도 대답올릴 말을 준비하고있었다. 리병훈의사한테도 장군님께 과장된 보고를 드려서는 절대 안된다고 오금을 박았지만 그닥 믿을것이 못된다. 중요한것은 그 자신의 밝고 활기에 찬 모습을 보여드리는것, 그리고는 대수롭지 않게 《위탈이 또 말썽을 부리고있습니다. 의사들이 맵고 짜고 굳은 음식을 피하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자칫 하다간 천공이 될수 있다고 하면서.》 하고 말씀드릴 생각이였다. 위탈은 숨길수 없는것만큼 그 정도만은 흔히 있는, 례사로운것으로 말씀드릴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는 눈인사를 하며 일어서는 서기에게 쾌활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밤새 안녕하시오?… 장군님께선 계시오?》

서기는 지금 장군님께서 담화중이라고 했다.

《아 그렇소?》

서기가 낮은 소리로 덧붙였다.

《보안국장동지가 들어가 있습니다.》

《오-》

안길은 이틀전에 조직된 북조선행정10국(산업국, 교통국, 체신국, 농림국, 상업국, 재정국, 교육국, 보건국, 사법국, 보안국)과 국장들에 대하여 알고있으므로 장군님께서 그들과 구체적인 사업을 진행하시는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좀 기다려주십시오.》

서기의 말에 그는 또 밝게 웃었다.

《물론 그래야지.》

자리잡고 앉으려니 한쪽에 기다리는 사람이 또 있었다. 벽쪽의 의자에 앉아 신문을 뒤적거리고있는 사람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아 허가이동지, 오래간만입니다.》

허가이는 류달리 쾌활해진 안길의 얼굴을 놀라서 쳐다보더니 급히 육중한 몸을 일으키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안길동지, 또 이렇게 만났군요. 정말 번쩍번쩍합니다.》

《빨찌산이 아닙니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우리 장군님께서 쓰시던 전법 그대로이지요.》

허가이는 소리내여 웃었다.

《참 안길동진 원래 유명한 고담군, 익살군이라더니 소문 그를데 없군요.》

《소문이란건 다 과장되기마련입니다. 제눈으로 보기전엔 절대 믿지 마시오.》

둘이 같이 크게 소리내여 웃다가 불현듯 입을 다물었다. 장군님께서 담화하시는데 방해가 될수 있는것이다.

허가이옆에 앉았다. 낡은 《쁘라우다》신문이 여러장 탁자우에 놓여있었다. 허가이가 자기의 가방속에 넣고다니다가 심심풀이로 꺼내놓은것 같았다.

안길이 물었다.

《지금 무얼 보시오.》

《예, 유럽정세를 좀…》

《오-》

안길은 말꼬리를 길게 끌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이어 웃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들고 자기만이 알아볼수 있는 갖가지 지명들과 수자들을 열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마치 시험공부에 열중한 학생들처럼 눈을 감고 무엇인가를 외워보기도 했다.

이번엔 허가이가 물었다.

《거기선 무얼 연구하시오.》

《예, 청진정세를 좀…》

방금 허가이가 대답하던 그대로였다. 허가이는 피씩 웃으며 자기가 보던 신문을 훌 밀어놓았다.

《나도 청진에 한번 가볼가 했는데… 영 틈을 낼수가 없군요.》

그럴수도 있을것이다. 허가이는 당의 로동부장(좀 더 지나서는 조직부장으로 된다)으로서 화끈 달아오른 난로처럼 정열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이였다. 우즈베끼스딴과 원동의 아무르주당에서 일하였던 그는 커다란 체구에 정수리가 훌렁 벗어진것으로 하여 유표하게 눈에 띄였으며 조직적수완도 높은것으로 알려져있다. 일부 사람들은 그를 격하기 잘하고 조폭하기까지 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안길에게는 그가 틀지고 점잖고 례절도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가 장군님을 모시고 싸워온 항일투사들에게 호감을 가지고있고 깍듯이 존대하기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최현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지난날 각 지방에 파견되여갔던 항일투사들이 그간의 사업정형을 보고하고 중간총화를 짓기 위하여 평양에 올라왔을 때 그와 이야기를 나눈바있는 최현은 정색하여 말했었다.

《머리는 큰데 정신은 좁은 사람입데.》

그날 무슨 일이 있었을가. 최현은 왜 그렇게 말했을가?… 안길은 그것을 알고싶었으나 갑자기 그때 일로 화제를 돌릴수도 없고 하여 여전히 수첩장에 눈길을 박고있었다.

함북도에서의 당장성사업, 각지 인민위원회와 적위대 및 자위대의 조직, 철도국에서의 객화차수리, 청진제철소복구정형, 일본군이 패망하면서 바다에 처넣은 각종 무기(박격포, 기관총, 보총과 수류탄 및 총포탄수자들)를 건져낸 정형 등이 가득 적혀있는 수첩이였다. 이제 그것을 장군님께 구체적으로 보고드릴 생각이였다.

허가이가 그 수첩장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며 은근히 말했다.

《무슨 암호전문이라도 푸는것 같군요. 안길동지, 언젠가 최현동지도 그런걸 펴들고 끙끙 갑자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무슨 숙제문제를 푸는가 하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예, 군사문젤 푸오다->하! 이러질 않겠습니까.》

무료해하던 그여서 기어이 안길을 화제에 끌어들일 작정인듯 했다. 안길은 머리를 들었다. 수첩을 덮으며 《그래서요?》 하고 물었다. 그가 묻고싶었던 일을 허가이자신 끄집어냈던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슨 군사문제인가, 비밀이 아니면 나도 좀 들어봅시다 하고 말했지요. 그가 하는 말이 강계지구에서 수백명의 청년들을 모집하여 군사훈련도 주고 생산활동도 벌린다는게 아닙니까. 나는 놀랐습니다. 그거야 군대를 조직한다는 말인데… 군대를 그렇게 뚝딱거려 만드는거야 아니지 않습니까. 준비된 간부가 있어야 하고 경제적밑천도 있어야 할게 아닙니까. 그렇게 말했더니 갑자기 왈칵하면서… 참, 본의아니게 그만 다투었습니다.》

《음-》

안길은 지금까지 잊고있던 위의 아픔에, 서서히 스며드는 고통에 미간을 찌프렸다. 천천히 숨을 돌려가며 말했다.

《허가이동지, 언제부터 묻고싶은것이 있었는데… 솔직히 말해주겠습니까?》

《아무렴요, 자 어서!》

론쟁을 즐기는 허가이여서 안길이쪽에 의자를 바싹 당겨오기까지 했다.

《듣자니까 어떤 사람들은 쏘련군대가 진주해있는 조건에서 군건설이 뭐 바쁜가. 천천히 제반조건이 성숙된 다음에 해도 되지 않는가 하고 말한다는데… 허가이동지도 그들과 같은 견해입니까?》

허가이는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다혈질인 그는 벌써 목언저리까지 불그레해졌다. 대머리한복판에 작은 쑥섬처럼 돋아있는 머리숨을 손끝으로 긁고나서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자신이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안길동지, 나는 뒤에서나 쑥덕거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뒤소리는 당적원칙과 저촉되는… 위험한 현상입니다.》

안길은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좋습니다. 그럼 좀 말해봅시다. 쏘련군대가 진주해있는 조건과 우리의 군건설이 무슨 상관입니까?》

《상관이 있습니다.》 허가이가 열을 올렸다. 《쏘련군대가 진주해있는 유리한 조건, 다시말해서… 참, 그렇지, 여기 <쁘라우다>에 실린 로꼬쏩스끼원수의 글을 들어보겠습니까?… 지금 로꼬쏩스끼원수는 베를린에 있는데 주둔군사령관 겸 시장이기도 합니다.》

그는 재빨리 신문을 펴들고 안길에게 잘 들어보라는 의미의 눈짓을 했다. 흥분하여 읽기 시작했다.

《…평화에 대한 우리의 립장은 시종일관하다. 평화는 투쟁으로써만 진취되는바 인간이 안정과 행복을 얻기 위해 로동을 필요로 하는것처럼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피를 흘리며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하여 쏘련사람들은 막대한 희생의 대가로 유럽과 세계의 평화를 전취하였다.

그러나 절대의 안정이란 없다. 절대의 평화도 없으며 또 있을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피로써 전취한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유럽의 장구한 안정을 위하여 자기의 무력을 여기에 주둔시키고있다.

이제부터 도이췰란드사람들은 전쟁의 위협을 모르는 새 생활을 누릴것이다. 위대한 쏘련의 무장력 즉 평화의 기치이며 정의의 총검이 지켜서있는 한 유럽의 각국 인민들은 공고한 평화와 안정을 담보받게 될것이다.…》

허가이는 손가락으로 한줄한줄 짚어가며 읽던 신문을 내리고 번득이는 눈빛을 안길에게로 던졌다.

《안길동지, 나는 바로 이 <정의의 총검>을 두고 말하는것입니다. 이 총검이 지켜서있는 한 평화는 담보됩니다.》

《그러니 허가이동진 언제까지나 쏘련군대가 계속 이 땅에 남아있어달라고 간청하겠습니까?》

《아니지요. 국제협약에 따라 정해진 시간표대로 철수하게 될것입니다.》

《그럼 그 다음은?…그때 가서 군건설을 시작한다?… 그렇게 주장합니까?》

《그래도 늦진 않습니다.》

안길은 입을 벌리고 걸탐스럽게 공기를 마시는데 벌거우리한 빛이 그의 두볼을 물들이고있었다. 웬일인지 속이 그냥 떨리고 뾰족한 아픔이 위에서부터 가슴쪽으로 파헤치며 번져지는것을 참을수 없었다.

사대와 교조에 눈이 흐려진 허가이, 당의 요직에 있는 사람까지 이 모양이니 장군님께선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으시랴!…

《머리는 큰데…》 하고 그는 저도 모르게 최현이 한 말을 중얼거렸다.

《가만 안길동지, 이제 뭐라구요?》

《머리속에 불쑥 떠오르는것이 있어서…》 하고 안길은 커져가는 아픔을 참으며 말했다. 《두 친구가 숲속을 지나다가 곰을 만났는데 한사람은 날쌔게 달아나고 다른 사람은 땅에 엎드려 죽은체 했습니다. 곰이 죽은 사람은 다치지 않는다던 말을 생각했지요. 곰이 다가와 냄새를 맡더니 돌따서 가버렸습니다. 그러자 달아났던 친구가 돌아와 이자 곰이 자네 귀에 대고 뭐라 했는가고 물었더니 그가 하는 말이 <자네 친구를 믿지 말게 하더구만.> 하고 말했다지요. 널리 알려진 우화이지요. 쏘련어린이들이 공부하는 교과서에도 있는!…》

허가이는 심각해졌다.

《그러니 안길동진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정신을 의심하는겁니까?》

《천만에요! 쏘련을 무장으로 옹호하여 피흘려 싸운 우리가 왜 그걸 의심하겠습니까. 나는 자신이 아니라 친구에 대해서 말하고있습니다. 실례로 허가이동지, 당신이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정신으로 아무리 무장했다고 한들 내가 앓는 위탈을 대신 앓아줄수야 없지 않습니까.》

허가이는 숨이 찬듯 벌거우리하게 달아오른 얼굴을 실룩거렸다. 교양있고 례절있는 사람답게 애써 흥분을 누르며 힘겹게 말했다.

《안길동지, 쏘련은 첫 사회주의나라이며 레닌, 쓰딸린당에 의해 령도되는…》

《아, 허가이동지.》 안길이 그의 말허리를 끊었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만합니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주시오. 쏘련군대의 철수와 함께 중국동북에서는 내전이 터졌습니다. 쏘련은 여기에 개입할 명분이 없습니다. 내가 앓는 위탈을 허가이동지가 대신 앓아줄수 없는것처럼. 내가 말하자는건 그저 그런 뜻입니다.》

허가이는 무슨 생각인가 골똘히 하는듯 자근자근 입술을 깨물고있었다. 그를 바라보면서 안길은 지난달 각지 파견원들인 항일투사들과 담화하면서 장군님께서 《나무는 보면서도 숲은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하시던것을 상기하였다. 그날 장군님께서는 미국을 해방자라고 보는 사람들의 환상적견해가 제일 위험하다, 미제국주의의 침략적본성을 사람들에게 깨우쳐주어야 한다, 미제가 지금 남조선에서 괴뢰군창설을 미친듯 다그치고있다는것을, 그 위험성을 알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어떤 애로와 난관도 박차고 군건설을 다그쳐야 한다!… 고 힘주어 말씀하시였었다.

《또 있습니다.》 안길이 계속했다. 《허가이동지도 들었겠지만 지금 미국놈들은 남조선에서 괴뢰군창설을 미친듯 다그치고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았습니까?》

허가이가 막 입을 열려는 때 집무실문이 열리며 최용건이 나왔다. 안길은 그와의 접촉이 드물었다. 북조선민주당 부위원장으로서 또 보안국장으로서 그의 활동령역이 좀 다르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최용건은 지릅떠보는듯한 눈빛으로 두사람을 일별하고 곧장 서기실을 나가버렸다. 안길도 허가이도 알아보지 못한듯 했다. 그를 흥분시킨 중대한 일이 있는것 같았다. 안길은 긴장해졌다.

그새 집무실로 들어갔던 서기가 나오며 속삭임처럼 낮게 말했다.

《두분 다 들어오시랍니다.》

…장군님께서는 전화를 받고계시였다. 손짓으로 두사람에게 자리잡고 앉도록 하시고 말씀을 이으시였다.

《어제 북조선행정10국일군협의회에서도 말했지만 소금문제를 소홀히 해선 안됩니다. 인민들에게 소금을 원만히 공급하기 위한 긴급대책을 세우시오. 김장이 늦어지지 않도록!… 좋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그이께서는 신중한 표정이시였다. 송수화기를 놓고 허가이에게 물으시였다.

《강선제강소 강서분공장에 나가보았습니까?》

허가이는 그곳에 나갔다온 길이였다. 로동자들의 취업과 봉급문제, 공장경비문제 등 얼마전 장군님께서 현지지도하신 후의 실태를 그가 보고드렸다. 안길이 들어보건대 그는 정확하고 일목료연하게 보고드리고있었다. 이어서 평양로농정치학교 교재문제,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인 유일당증을 내오는데서 제기된 문제들도 그는 간명하게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 그가 일을 책임적으로, 정력적으로 집행하고있는데 대하여 만족해하시자 벅찬 흥분에 잠긴 그는 두두룩한 앞가슴을 풀떡거렸다.

장군님께서 말씀하시였다.

《내가 알기에 허가이동무는 우리 당조직위원회 제2차 확대집행위원회에서 토의된 13가지문제중에서 로동조합문제를 비롯하여 3가지문제를 직접 맡고있는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힘에 부치지 않습니까?》

허가이는 여전히 선자리에서 숨이 찬듯 씨근거리고있었다. 다혈질인 그여서 불그레해진 얼굴을 사뭇 실룩거리며 성급히 말씀드렸다.

《장군님, 전… 일감이 많을수록 더 벅차구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장군님께서 주시는 과업이라면 그 무엇이든 다…》

장군님께서 웃으시였다.

《좋습니다. 그러리라 믿고 한가지 일을 더 맡기기로 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평양시를 비롯한 각지의 로농정치학교와 로동조합들에서 믿음직한 청년들을 선발하여 새로 내오는 평양학원에 보내주도록 해야겠습니다.》

《예. 장군님, 힘껏 노력하겠습니다.》

《참, 평양학원련락소에서 일하는 고윤이란 동무를 허가이동무가 추천했다던데 사실입니까?》

《예, 장군님, 매우 절재있고 결단성있는 사람입니다. 쏘련붉은군대 소좌였습니다. 그에 대해선 전적으로…》

《보증한단 말이지요?》

《예, 장군님!》

《음-》 장군님께서는 잠시 생각하신후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좋습니다. 허가이동무가 보증한다니 일을 맡깁시다. 나도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안길은 놀라움에 가득찬 눈빛으로 허가이를 보고있었다. 이렇듯 소탈하고 대범해보이는 사람이 아까는 왜 그처럼 근시안적으로 나온것일가. 《머리는 큰데 정신은 좁은 사람입데.》 최현이 한 말을 또 상기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머리를 기웃거리고있었다. 그는 물론 허가이가 이제 어떤 운명의 길로 가게 될것인지 알지 못하고있지만 무엇인가를 느끼고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찍어말하기는 어려웠다.

허가이는 자리에 앉았다.

장군님께서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안길에게로 먼저 눈길을 주시는데 근엄한 표정이시였다.

《할일은 산더미같은데 준비된 간부들은 너무도 적습니다. 방금 보안국장동무가 보고해왔는데 평북도정세가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반동놈들이 날치고있습니다. 기차를 습격하고 반동요언을 퍼뜨리고… 미국놈들이 우리의 건국사업을 파탄시키려고 별의별 간계를 다 꾸미고있습니다. 그런데 적위대, 자위대, 보안기관을 책임진 일군들의 수준이 어리고 또 일부 불순분자, 야심가들이 틀고앉아 있다보니 무쇠주먹을 다지는 일에서 커다란 장애를 받고있습니다. 그저께 황해도 해주에서는 반동들이 자위대원을 포함하여 몇사람을 무참히 살해하고 바다를 통해 남으로 내뺐습니다. 강계에서부터 그자를 뒤쫓은 한 청년이 제때에 신고했지만 그곳 보안서장이 믿지 않고 덮어버린 후과라고 합니다. 보시오, 얼마나 엄중한가, 이런 의미에서도 우리의 첫 군사정치간부양성의 모체기지인 평양학원창설을 다그쳐야 합니다. 평양학원은 우리의 군건설의 첫 주추돌로 될것입니다. 주추돌이 든든히 놓이면 건물은 끄떡없습니다.》

안길은 뜨거워지는 마음으로 장군님을 우러르고있었다. 어떻게 하면 장군님의 수고를 덜어드릴수 있을가 하는 생각을 골똘히 했다. 항일투사들의 거의 전부가 각 지방에, 중국동북의 전장에 가있으므로 3몫, 10몫 짐을 져야겠다고 다짐하고있었다.

《자 그럼.》 장군님께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허가이동무, 중한 일감을 또 하나 맡아 힘겨울것이지만… 어쩌겠습니까. 힘껏 노력해주시오.》

《장군님, 있는 힘껏 해보겠습니다.》

허가이가 정중하게 인사드리고 물러가자 장군님께서는 안길이쪽에 미소어린 눈빛을 돌리시였다.

《검진결과는 이미 들었소, 안길동무가 의사들에게 침을 놓은것 같은데… 아니, 변명하지 마시오.어쨌든 치료를 받아야 하오. 안길동문 왜놈들이 바다에 처넣은 무기들을 건져내느라고 열흘나마 신고했는데 그래서 위탈이 더 심해졌을거요.》

《?!…》

안길은 울대뼈를 움씰거릴뿐이였다. 불같은것이 목구멍으로 치밀어올랐던것이다. 장군님께서 나직이 말씀을 이으시였다.

《박격포 여덟문에 기관총만 해도 열두정, 수백정의 보병총, 기병총과 수많은 포탄상자, 탄약상자 등을 건져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오. 그것만해도 한개의 정규군보병대대는 넉근히 무장시킬수 있거든. 큰일을 했소.》

정규군보병대대 하나에 해당한 무기,… 지난날 한자루의 총을 얻기 위해 피를 흘리며 싸워온 안길이로서는 장군님의 기쁨이 충분히 리해되였다. 아울러 장군님께서 군건설문제로 얼마나 마음쓰시는가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여 가슴이 뜨거워났다.

《오늘 또 무기를 한 몇십정 얻을수 있다는 소식을 받았소.》 장군님께서 계속하신 말씀이였다. 《글쎄 만경대삼촌이 달려와 알려주는게 아니겠소. 안길동무랑 오기 좀전에.》

《형록삼촌 말입니까?》

《그렇소, 우리 할아버님이 대동강과 순화강합수목에 왜놈들이 던져넣은 무기를 찾았다고 하오. 며칠전부터 수상한 사람들이 쪽배를 타고 그 어방을 뒤지는게 이상해서 그쪽을 잘 살폈다고 하오. 언젠가 왜놈들이 망할 때 총을 내다버렸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서 말이요. 그래서 물속에 쌓여있는걸 발견했지… 헌데 수상한 사람들이 찾고있는것 역시 그 무기들이 아닌지 모르겠소.》

안길은 긴장해졌다. 빨리 손쓰지 않으면 반동분자들의 손에 들어갈수도 있다. 군건설에 절실히 요구되는 무기들이 반동놈들에게 쥐여져서는 안된다. 절대 안된다! …

《장군님.》 안길은 벌써 흥분으로 하여 얼굴이 상기되여있었다.

《당장 그 무기들을 건져오겠습니다. 제가 이제 곧…》

《덤비지 마오. 최용진동무에게 말해줬으니 그가 사람들을 보낼거요. 안길동문 당에서 결정한대로 서기장사업을 하면서 평양학원의 학제와 교재, 각종 군사규정들을 작성하는 일도 좀 맡아주시오. 군사학교를 관리운영해본 사람이 없는 형편에서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요.》

《알겠습니다. 장군님, 그런데 그 무기들은…》

불현듯 그는 입을 다물었다. 장군님께서 안색을 흐리며 어두워지는 창밖으로 눈길을 옮기시였던것이다. 그이께서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너무 그러지 마오. 안길동무, 다들 제 몸은 돌보지 않고 그렇게 무리하면 어쩐다는게요, 응?… 그러다 쓰러지면… 나혼자 그 많은 일을 다 떠맡으라는거요? 아니, 그러지 마시오. 부탁이요. 어제저녁 김책동무가 며칠만에 왔댔는데… 내가 협의회를 끝내고 나가보니 글쎄 그 사람이 벽에 기대여선채 잠들어있는게 아니겠소. 학원건물보수작업을 하며 며칠밤 꼬바기 새웠던 모양이요. 오죽 피곤했으면 벽에 기대여선채 잠들었겠소. 쏘파에 누우면 깨여나지 못할가봐 그랬겠는데… 정말이지 눈물이 나는걸 겨우 참았소. 그를 깨울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 선채로 자게 할수도 없고!… 해방된 조국에 와서까지 이렇게 고생을 시켜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막 저려들었소. 그래서 무조건 하루밤 푹 쉬고 가게 하려고 했는데 그는 사업보고를 하자 어느새 떠나가버렸소. 집에는 들리지도 않고…》

창밖에서는 바람이 윙윙거리고있었다. 11월의 차디찬 바람에 전선줄이 떨고있는것인지도 모른다. 안길은 장군님의 눈가에서 번득이는 한점 이슬을 숨죽여 보고있었다. 마음속에 속절없이 갈마드는 뜨거운 격정, 눈앞이 부잇해졌다.

《안길동무.》 장군님께서 그에게로 몸을 돌리시였다. 《부탁하는데 내 심정도 좀 리해해주오.내가 오늘과 같이 복잡하고 어려운 때, 돈 한푼, 쌀 한톨없이 군건설을 시작했을적엔 누굴 믿고 한것이겠소. 동지들을 믿고 시작했소. 20여성상 생사고락을 같이해온 동지들을 믿고!… 바로 항일혁명전사들이 나의 기둥이고 군건설의 제일 큰 밑천이란 말이요. 그런데… 다들 살을 깎으며 일하는걸 보면 가슴이 쓰려 못 견디겠소. 더구나 안길동무같이 집도 없이 홀로 사는걸 보면…》

장군님께서는 더이상 말씀을 잇지 못하시였다. 애달픈 침묵, 어두워지는 창밖의 바람소리만이 귀전을 아프게 울릴뿐… 이윽고 장군님께서는 아주 낮게 속삭이듯 말씀하시였다.

《부탁하는데… 치료를 잘하시오. 이제 안해와 자식들을 데리고 재미나게 살게 될터인데.》

안길은 불을 삼키는듯 공기를 들여마셨다. 울대뼈가 또 움씰거렸다. 부지불식간에 목이 꽉 메여 《장군님!》 하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입밖으로 새여나간것은 억눌린듯한 신음소리, 흐느낌소리였다.

병치료와 집, 안해와 자식들… 언제 한번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있었던가. 그럴새가 없었다. 아니 그것을 생각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가 마지막으로 안해를 본것은 3년전 소부대활동을 벌리던 어느날에 있은 일이였다.

겨울을 앞둔 북방의 차디찬 가을, 하늘에서는 생기잃은 태양이 희뿌옇게 떠올랐었고 황량한 산등성이에서는 누렇게 비틀린 나무잎들이 우수수 바람에 흩날리고있었다. 훈춘의 시골막바지 옹석촌,그가 살던 집을 가까이 지나면서 늙으신 어머니와 안해를 만나고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그러나 왜놈들이 훈춘현의 모든 거리와 마을마다 안길의 사진과 함께 현상금을 내건 방을 붙이고 일가친척들을 끌어내여 《귀순》공작까지 미친듯 벌리고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으므로 그저 먼 발치에서 굴뚝의 연기라도 보고싶었다. 솔가리 타는 냄새를 맡으며 꿋꿋이 살고있을 그리운 사람들을 그려보고싶었다.

하여 집가까이 다가갔다. 웬 녀인이 등판에서 삭정이단을 끌어내리는것이 먼저 눈에 띄였다. 잡관목에 걸려있는 나무단을 겨우 들어 머리에 이고있었다. 그 순간 안길은 그가 자기의 안해임을 알아보았다. 저도 모르게 《여보!》 하고 소리를 죽여 불렀다.

나무단이 떨어졌다. 땀에 젖은 얼굴을 돌려 황황히 주위를 살피다가 숲속에서 머리를 내민 남편의 모습을 발견한듯 싶었다. 후려맞은듯 비칠거리며 한걸음 내짚고는 《아-》 하고 눈을 가렸다. 아마도 꿈을 꾸고있는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에 믿어지지 않았을것이다. 다음순간 손을 떼고 또 보았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달려오더니 별안간 벼락이라도 친듯 우뚝 멎어섰다. 개짖는 소리가 났다.

안길은 안해가 풀썩 앞으로 쓰러지는것을 보았다. 무너지듯 허리를 꺾으며 어푸러지더니 한팔을 내뻗치며 부르짖었다.

《여보, 뛰세요. 놈들이 와요!-》

악에 받친 고함소리와 개짖는 소리가 애처로운 웨침소리를 눌러버렸다. 놈들이 집을 감시하며 매복해있었던것이다.

《어서 피하세요, 여보!》

피를 토하는듯한 웨침소리, 총탁에 맞아 뼈가 으깨여지는듯한 아츠러운 소리, 《생포하라, 안길이다!》 하고 웨치는 소리와 함께 땅땅!… 총소리가 터졌다. 싸창을 빼든 안길이 마지막으로 본것은 시꺼먼 경찰복들에 가리워 겨우 이쪽을 향해 목을 빼들고있던 안해의 피가 랑자한 얼굴과 풀어헤쳐진 머리였다.

그후 그의 집은 불타 없어져버렸다. 어머니도 안해도 자식들도 생사를 알길이 없었다. 이젠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온지 오랬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잘못되였다는것이 확인되지 않은 이상 끝까지 찾아보아야 한다고 하시며 훈춘과 동만 각처에 사람들을 보내시여 끝끝내 찾아내시였다.

장군님께서 말씀하시였다.

《인젠 가서 식사를 합시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갔는가?!》

안길은 장군님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서며 손바닥으로 눈언저리를 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