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장


 

서   장

 

아무르강.

배고동소리가 길게 울렸다. 하구로 내려가는 기선의 고물밑에서 물이 끓어번지고있었다. 강을 거슬러오르는 짐배들은 연통이 미여질 지경으로 시꺼먼 연기를 뿜어대고있었다.

끌배를 달고가는 어선의 갑판우에서 계류로쁘며 장대기를 들고있던 로씨야선원들이 강기슭을 향하여 손을 저었다. 볕에 탄 고동색얼굴에 코수염을 기른 한사람은 뒤통수에 젖혀쓰고있던 까르뚜즈모를 벗어 흔들기까지 했다. 강기슭에서 매생이를 끌어내고있는 조선빨찌산들에게 보내는 인사였다.아니면 유독 혼자서 바위우에 올라 명상에 잠긴듯 서있는 최현에게 련대성을 보낸것인지도 모른다.로씨야의 선원처럼 최현도 코수염을 기르고있었다.

안길이 휘동해나온 사람들인 류경수, 장상룡, 주도일, 최용진, 박락권 등은 모래불우에서 두척의 매생이를 끌어내리느라고 안깐힘을 쓰고있었다. 다리를 심하게 저는 조정철이까지 기다란 노를 메고 배에 그물을 끌어올리고있었다.

안길이 최현을 향해 소리쳤다.

《왜 구경만 할테요? 최현동무, 와서 좀 도와줍소!》

최현은 한팔을 홱 내저었다.

《싫소!》

《왜? 굿이나 보다 떡이나 먹는다는거요?》

《굿하구 싶어도 맏며느리 춤추는 꼴 보기싫어 못한당이!》

성난 목소리였다.

사람들이 떠들썩 웃어댔다. 안길이도 《헛허…》 하고 걸걸하게 웃었다. 무엇때문에 최현이 골을 내는지 잘 알고있기때문이다.

방금전 안길이 최현의 코수염을 밀어버리자고 장군님께 직접 말씀드렸던것이다. 그것도 숱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안길은 최용진동무도 코수염을 기르는 사람으로서 이제 곧 해방된 조국으로 가게 되는데 장군님빨찌산의 면모에 손상을 주어서야 되겠는가고 하면서 제손으로 아끼던 코수염을 밀었으나 유독 최현동무만은 아무리 설복해도 막무가내이니 장군님께서 친히 령을 내려주시기 바란다고 말씀드렸다.

그때 최현은 얼마나 분노했던지 두볼을 푸들푸들 떨기까지 했다. 《코수염이 없으면 난 뭐가 되오?》 하고 그는 소리쳤다. 《왜놈들도 코수염이 있는 최현을 무서워했단 말이요!》

사람들이 웃어대고 장군님께서도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일은 그것으로 끝났으나 아직 최현은 분기가 사그라지지 않은것 같았다.

드디여 두척의 매생이를 물에 띄웠다.

어데선가 배고동소리가 또 웅글게 울려왔다. 누군가를 소리쳐 부르는듯한 배고동소리… 사람들이 허리를 펴고 넘실거리는 물결너머 먼곳으로 눈길을 주었다.

가까운 기슭으로 끌배를 단 어선들이 지나갔다. 어선을 따르며 맴돌고있던 갈매기들이 기쁨에 겨워 나팔소리같이 웨치며 수면우에서 겨끔내기로 날개를 푸득거렸다. 연어들의 산란계절이 시작된것이다.

아무르강의 풍어기이다. 매년 이때가 되면 쏘련과 일본간에 북양어업문제로 말썽이 일 정도로 두나라 어획량의 많은 몫을 연어가 차지하고있다. 세상에 알려진 연어의 중심어장은 싸할린과 깜챠뜨까, 북해도방면 그리고 알라스카해역이다.

특히 쏘련의 극동지역 물흐름속도가 빠른 강들에서는 9월부터 겨울까지 연어들이 산란을 위해 무리를 지어 헤여오르군 한다. 어떤 세찬 급류도 뚫고나가며 절대로 먹이를 구하지 않고 오직 앞으로만 돌진하며 3m정도의 수직여울도 거침없이 뛰여오르는 연어, 바다의 신비로 불리우는 연어떼가 수백㎞의 로정을 거쳐 자기가 알에서 까나온 고향, 작은 여울까지 어김없이 끝내 찾아드는것이야말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것들은 어느 바다, 어느 비밀의 수역에서 살다가 자기들이 태여난 고장을 찾아드는것인가?…

바다에서 연어들이 잡히는 일은 거의나 없다고 한다. 오직 산란기에만 나타나 멀고먼 로정을 쉼없이 돌진하며 작은 물흐름밑 모래자갈을 꼬리로 파헤쳐 알을 낳고는 드디여 녹초가 되여 죽어버리군 한다.

이러한 연어떼가 아무르강에 나타난것이다. 이제 얼마후면 아무르강에 합류되는 송화강과 우쑤리강의 상류들에서는 부글부글 물이 끓어번지는것처럼 연어들이 뒤치락거리게 된다. 바다에 나갈 때엔 손가락굵기정도이던것들이 강어구를 떠나서부터 다시 돌아올 때에는 4kg반정도 되는것까지 있으니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고 살아온것인지도 리해할수 없다.

이 불가사의한 연어잡이를 선동한것은 안길이였다.

그럴만한 일이 있었다.

지난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항복선언이 있은후 그들은 주로 여러갈래의 정치강습으로 나날을 보냈다.

그무렵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최후결전을 준비하던 때보다 더 긴장하게 사업하고계시였다. 날이 샐 때까지 장군님께서 계시는 목조건물창가의 불빛은 꺼지지 않고있었다. 때식을 잊고계시는 때가 드문했다.

8월 20일 장군님께서는 군사정치간부들의 회의를 소집하고 《해방된 조국에서의 당, 국가 및 무력건설에 대하여》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이어 건당, 건국, 건군의 3대과업수행을 위한 소조들을 조직하고 소조성원들을 위한 강습도 마련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말씀하시였다.

지금 조국이 해방되자 적지 않은 사람들은 조국을 찾는 일이 어렵지 일단 찾은 다음에 새 사회를 건설하는 일이야 무엇이 어렵겠는가고 생각하고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무장투쟁을 할 때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사업인 새 사회건설에 착수하여야 한다.

우리는 항일혁명을 자신의 힘으로 해낸것처럼 조국건설도 우리자신의 힘으로 해내야 한다. 건당,건국, 건군은 물론 민족경제와 민족교육, 민족문화를 건설하고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포함하는 모든 분야를 우리 인민자신의 힘으로 개척해나가자는것이 바로 우리의 결심이다. 그러자면 인민들을 조직동원할수 있는 혁명의 참모부 당이 있어야 하고 정권이 있어야 하고 새 사회건설을 무력으로 담보할수 있는 군대가 있어야 한다!…

강습에서는 파견지에 가서 수행해야 할 사업내용과 방법은 물론 각 지방풍습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내용들이 취급되였다. 장군님께서 친히 강의의 많은 몫을 맡으시였고 김책과 안길도 출연하였다.

바로 그 강습이 오늘 오전에 끝났다.

인제는 장군님을 모시고 그립던 조국으로 떠나게 되였다.

마침 연어철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안길에게 가만히 귀뜀하시였다.

《안길동지, 조국으로 떠나기에 앞서 수렵대를 조직해서 한상 잘 차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길은 대뜸 두눈을 빛내였다.

《그것참 좋은 생각이요. 합시다. 제길!》

유명한 싸움군, 명사수들이 많은터여서 사냥조를 뭇기는 쉬웠다. 그러나 물고기잡이에서 경험있는 사람은 많지 못하였다. 더우기 아무르강과 같이 큰 강에서 노를 저어본 사람들은 얼마 없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연어잡이에 나갈것을 자원했다. 북만출신들인 최용진, 김룡화, 장상룡은 물론 박락권, 최현까지도 연어잡이에서는 제가 제일이라고 장담했다.

사실 최현은 빨찌산의 맹장으로서 밀림속의 호랑이로는 일러질지언정 물속에서는 꼼짝 못하며 또 놀라울 정도로 물을 싫어한다는것을 다들 잘 알고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우겨댔다. 아무르강도 헤여건늘수 있다고 했다.

떠들썩한 롱담과 웃음속에 그도 연어잡이조에 들었다. 조정철과 주도일 등은 그더러 그물을 당길 때 지휘만 해도 된다고, 그러되 너무 벼락치는 소리를 질러 물고기들이 놀라서 달아나지만 않게 하라고 했다.

그런데 최현은 지금 배에 오를념도 않고있다. 코수염문제로 아직 노염이 풀리지 않은것인가, 아니면 정작 물결세찬 아무르강을 보니 호언장담을 하던 용기가 싹 사라져버린것인가?!…

안길이 마지막으로 또 한번 소리쳤다.

《최현동무, 그럼 여기서 기다리다가 우리가 잡은 물고기밸이나 따시오!》

그에 대한 대답으로 최현은 나무잎이 수북이 깔린 숲속의 오솔길로 걸어갔다. 생각을 달리하여 사냥조로 가버리는것 같았다.

웃음소리, 조정철이 불어대는 하모니카소리, 조국으로 떠나기에 앞서 모든것이 즐겁기만 하다.

태양이 뜨겁게 내리쪼였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시작될무렵이여서 밤은 오싹하리만큼 찼지만 낮에는 여전히 따가왔다.

최용진과 김룡화 두사람이 각기 노를 저었다. 배전너머에서 물결이 철썩거리고 머리우에서는 갈매기들이 끼륵거렸다.

돌연 주도일이 아츠럽게 소리쳤다.

《연어다-아!》

모두가 일시에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배가 뒤집힐듯 했다.

《저거, 저거!》

《히야, 굉장하구나!》

사람들이 기우뚱거리는 배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딩굴면서 물속을 헤가르고있는 고기떼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벼락같은 웨침소리가 날아왔다.

《그물을 던져라!》

최현이였다. 멀리 가버린줄 알았던 그가 어느새 배가 떠밀리는 강기슭에 나와서서 고함을 지르고있는것이였다.

《그물을 치라는데 뭣하구 있어. 빨리, 빨리!》

그제야 사람들은 서둘렀다. 그물을 푸느라고 덤벼치며 저저마끔 상대쪽에서 꾸물거린다고 나무랐다. 그러나 때를 놓쳤다. 물가에서 오락가락하던 최현이 또 뭐라고 소리쳤다.

끌배를 단 로씨야어선이 가까이 지나갔다. 끌배우에서 나무통을 깔고앉아있던 로씨야녀인들이 고기밸을 따는 칼과 갈구리를 두드리며 호함지게 웃어댔다. 조선빨찌산들의 서투른 물고기잡이를 지켜보고있었던것이다.

푸른 수건을 쓰고 고무앞치마를 걸친 뚱뚱보녀인이 손짓, 몸짓을 해가며 뭐라고 소리쳤다.

안길이 맞받아 소리쳤다.

《아, 크라쏘뜨까! 좋아, 좋아, 하라쇼!-》

조선말, 로씨야말범벅인 그 소리에 그쪽의 녀인들이 배를 그러안고 웃어댔다. 크라쏘뜨까란 아름다운 소녀를 두고 하는 말인데 그네들은 모두 몸이 실한 중년녀인들이였던것이다.

사실 안길은 로씨야녀성들만 보면 그가 나어린 소녀이건 처녀이건 또 뚱뚱보녀인이건 가림없이 《크라쏘뜨까》 하고 부르군 했다. 빨찌산의 방면군 참모장의 중책을 지니고있던 엄하고 날파람있는 지휘관이였지만 생활에서는 유쾌한 익살군이였던것이다.

물가에서는 여전히 최현이 발을 구르며 노성을 터치고있었다. 지휘관을 바꾸라는것이였다. 안길참모장을 떼고 주도일이 고기잡이를 지휘하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을 움직이기 시작한것은 역시 유명한 싸움군이며 안길에 못지 않게 우스개대장인 최용진이였다. 저쪽 배에서는 박락권이 나서서 벌써 그물을 치고있었다.

최용진이 나서니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였다. 연어떼가 밀려드는 물곬에 그물을 치고 장상룡, 김대홍 두사람이 힘껏 노를 저었다.

안길은 뒤전에 밀려나 구경만 했다.

《여보 대홍동무, 아무래도 간부사업을 다시 해야 할것 같구만. 동문 조국에 가서 수산부문을 맡으라구. 내 장군님께 말씀드리겠소.》

안길의 그 말에 최용진이 반대했다.

《대홍동문 명사수이니 군대에 더 필요하우다. 내가 점찍구 있는 동무인데…》

《저런!》 안길이 혀를 찼다. 《이 안길도 모르는 그런 간부사업권한을 누가 줬소?》

《그야 뻔하지요. 장군님께서 이 최용진을 제일 믿고계신다는걸 아직 안길동진 모르시오?》

《핫하하…》

안길이 너털웃음을 터치자 다른 사람들도 맘껏 웃어댔다. 그물을 끌어당기는것도 잊을 정도였다.다들 열을 내여 조국에 가서 해야 할 일, 자기가 하고싶은 일들에 대하여 말하고싶어 했다.

그만큼 꿈도 많고 희망도 컸다.

누구는 당일군이 적합하고 림춘추는 교육자가 제격이고 조정철은 부상당한 다리부터 고쳐야 하고 주도일은 세심하니 의료부문이 알맞을것이라는 등 제멋대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럼 나는?》 안길이 물었다.《나한텐 무슨 일을 맡기겠소?》

주도일이 먼저 소리쳤다.

《참모장동지야 물론 군대지요!》

《아니, 당사업을 해야 돼!》 최용진이 떠들었다. 《군대가 되겠다는 사람은 너무 많아, 최현동무, 최광동무, 여기 김대홍이 그리구 저 박락권같은 사람도 군사밖에 모르니 김책동지나 안길동지같이 학식있는 사람들은 당사업을 해야 된단 말이지, 장군님께서도 내 의견에 찬동하실거요.》

그는 비록 무게있게 결론을 내렸지만 여러 사람들이 반대했다. 저마끔 자기 생각을 말하며 웃음판을 펼쳤다.

저쪽에서 박락권이 소리쳐서야 그물안의 고기들이 거의다 새여나간것을 알았다.

박락권의 매생이에서는 벌써 두번째로 그물을 치고있었다. 팔뚝만한 연어들이 은빛비늘을 번쩍이며 푸들쩍거리고있었다.

그쪽을 넘겨다보던 최용진이 입술을 깨물며 신음소리를 내였다. 아무 일에서나 남에게 뒤지기를 싫어하는 걸싼 성미의 최용진이였다.

《표뒤장!》

최용진이 박락권을 향해 웨쳤다. 중국식으로 《표뒤장(박대장)》이라고 부른것은 그가 오래동안 주보중의 경위중대장으로서 중국인부대에 가있었기때문이였다.

《우리 내기를 하자구. 어느편에서 제일 큰놈을 잡는가!》

박락권은 그 인상적인 시꺼먼 눈섭을 쭝깃거리며 벌씬 웃었다.

《좋소. 그런데 거기서 지면 뭘 내겠소?》

《조국에 나가서 군건설사업에 참가하도록 주선해주지.》

《핫하!-》 박락권은 토막웃음을 내던졌다. 《구미가 동하는걸!》

《그대신말이요.》 최용진이 을러메듯 말했다. 《표뒤장이 지면 내 막내누이동생한테 장가를 들어야 해!》

이번엔 량쪽배에 탄 사람들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끝없는 익살과 롱담, 조정철의 멋들어진 하모니카소리와 장상룡의 목쉰 노래… 조국으로 떠날 시각이 눈앞에 다가오고있었다.

어느새 배들은 기슭을 멀리 떠나있었다. 기슭을 오락가락하던 최현이 팔을 내저으며 무어라고 웨쳐대고있었건만 《오- 아!- 》 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최현의 곁에 또 한사람이 붙어있는것을 보고 안길이 무엇인가 생각하다가 구령치듯 웨쳤다.

《작업 그만! 빨리 돌아가야겠소.》

짐배들이 오르내렸다. 어선들가운데엔 나나이족사람들이 타고있는 돛배도 있었다. 그들은 배전까지 물에 잠길 지경으로 많은 물고기를 끌어올리고있었다. 그러나… 부럽지 않다. 우리는 조국으로 간다!…

힘껏 노를 저어 기슭으로 나아갔다. 최현과 나란히 서있던 리을설이 안길에게 보고를 했다. 장군님께서 모두 수렵을 그만두고 돌아오라고 하셨다는것이였다.

급히 대오를 지어 떠났다. 잡은 물고기는 장상룡, 김대홍 등이 그물에 싼채로 둘러메고갔다. 최광이 리을설을 곁에 불러 무슨 일이 생겼는가고 나직이 물었다. 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귀동냥해 듣고있던 박락권이 머리를 기웃거렸다.

사령부목조건물앞에는 준마들을 메운 삼두마차가 서있었다. 말들이 대가리를 주억거리며 발을 저겨디딜 때마다 방울소리가 짤랑거렸다. 말들에게 먹일 귀밀짚을 안고있던 중국인마부가 박락권을 알아보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아, 왕진!》

박락권이 소리치며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주보중부대의 제일 나이어린 대원으로서 박락권은 그의 생명의 은인이였던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상봉을 미소를 그리며 지켜보고있었다.

안길은 목조건물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앞에 차렷자세로 서있던 손종준이 거수경례를 붙였다.

《장군님께서 계시오?》

《옛.》 손종준이 대답했다. 《김책동지, 최용건동지, 강신태(강건)동지랑 함께 계십니다. 지금 손님과 담화중입니다.》

《음.》

안길은 옷매무시를 바로하였다. 손님이 누구인가는 묻지 않았다. 이미 리을설을 통하여 주보중이 중국공산당대표의 명의로 와있다는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

 

그날밤 사람들은 잠들지 못하였다. 가슴부푸는 희망과 달콤한 공상, 꿈같은 념원을 하나하나 펼치며 궁싯거렸다. 소곤거리던것도 그만두었다. 조국에서 자기들을 기다리고있을 온갖 기쁨의 환영속에 끝없이 잠겨들어갔다.

달이 밝았다. 푸르스름한 달빛은 마구간뒤쪽의 건초더미며 로씨야식목조건물의 뙤창과 저멀리 제분소의 뾰족한 지붕을 그리고 숲속의 공지로 이어진 한줄기 오솔길 등을 샅샅이 더듬고있었다.

숲속에서는 하이얀 옷을 입은 봇나무들이 나직이 술렁거리며 물러가는 여름철에 대한 애절한 추억을 속삭이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봇나무잎사귀를 뜯어 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진하게 풍겨오는 숲속의 향기, 발밑에서 부근부근 밟히는 나무잎들의 감촉, 아무르강쪽에서 발동선이 반디불같은 불빛을 가물거리며 움직이는것이 보였다. 연어잡이로 밤을 새우는것 같았다.

지금도 자기들이 알에서 까나온 작은 물가를 향해 쉬임없이 돌진해가고있을 연어, 신비스러운 그 자연본능에 대하여 대원들이 떠들썩 론쟁하던 일이 떠오르시였다.

그것들이 멀고먼 바다에 나가 살다가 어떻게 수백㎞나 되는 제고향 물가를 찾아오는가?… 주도일은 냄새로 안다고 했고 김대홍은 눈에 익혀둔 길을 찾아오는것이라고 했다. 두편으로 갈라져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댈 때 안길이 나서서 엄숙하게 결론을 주었다.

《그것들이 알긴 어떻게 알아. 그 먼길을 다 냄새로 알수도 없고 지도를 그려서 기억해둘수도 없지 않는가!… 그저 본능적으로 찾는거란 말이요. 말하자면 물고기의 몸속에 특수한 감각기관이 있다고 봐야지. 그렇지만 사람들은 다르거든. 만리타향에 가서도 잊지 못해하는것이 제가 난 고향과 고국산천이란말이요. 노래에도 있지 않는가.

 

아 눈에 삼삼해

 

정말 눈을 감으면서도 그리운 조국이요 내고향 산천과 겨레들이 아니겠소.》

열정적이면서도 다정다감한 안길이여서 이렇게 노래까지 부르며 떠들썩하던 론쟁을 정서적으로 마무리짓는통에 다들 입을 다물고 별안간 추억의 세계에, 애틋한 상념의 세계에 잠겨들고 말았다. 지금도 그들은 그윽한 미소속에 꿈을 꾸고있을것이다.

꿈은 소중한것이다. 사람은 꿈을 꿀줄 알아야 하며 언제든 꿈을 잃지 말아야 한다. 꿈을 잃으면 인생은 어두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우리는 절대로 마음의 탕개를 늦추지 말아야 하며 비상한 각오를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해방된 조국에서는 눈물겨운 상봉과 기쁨만이 아닌 헤아릴수 없이 많은 고난과 시련, 아픔과 눈물도 있을수 있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 9월 2일 도꾜만에 정박하고있던 미국전함 《미쑤리》호 함상에서 일본외상 시게미쯔와 참모총장 우메즈가 항복서에 서명하는것과 함께 참혹한 제2차세계대전은 종결되였지만 전쟁의 불티들은 도처에 널려진채 아직도 끄물끄물 연기를 피우고있다. 특히 조선반도와 그 주변정세는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있다. 미국군대가 조국의 38°선이남에 진주하게 되는것이다.

쏘련과 미국 두 대국의 군대가 주둔하면 우리 나라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장으로 화할수 있다.

흘러간 력사의 사변들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있다. 갑오농민전쟁때 일본과 청나라가 우리 나라에 각기 군대를 출병시킨결과 청일전쟁이 터졌고 이 나라 강산은 전란에 부대껴 황페화되고 말았다. 그러한 전례가 다시 반복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우리 조국땅에서 두 렬강이 맞서게 되면 우리의 민족력량도 좌익과 우익, 애국과 매국으로 갈라져 당쟁이 성행하고 당파와 외세가 결탁되면 우리 민족은 또다시 망국의 피눈물을 삼키게 될것이다. 그것을 막아야 한다. 편히 쉴새가 없을것이다. 당, 국가 및 무력건설에 즉시 착수하여야 한다. 특히 무력건설에 선차적주목을 돌려야 한다. 수난의 우리 민족사는 주먹이 약하면 그것으로 눈물만 씻게 된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고 새 민주조선건설을 믿음직하게 담보할수 있는 강력한 민족군대, 정규화된 혁명군대건설을 위하여 백방으로 분투하여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당도 창건하고 국가건설도 다그치면서 강력한 정규무력 즉 륙군과 공군, 해군 및 여러 병종들을 그쯘히 갖춘 정규적혁명무력을 제때에 건설한다는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여러 나라들에서 혁명군대를 조직한 전례를 보면 대체로 낡은 군대의 력량을 돌려세우고 로동자, 농민의 새 부대들을 편성보충하였다. 로씨야에서 사회주의10월혁명이 승리한 후 짜리군대의 《민주주의화》를 실현하여 그 력량을 리용한것도 그렇고 중국에서 제1차국내전쟁때 공산주의자들의 영향하에 있던 국민혁명군부대들로 무장폭동을 일으키고 그들을 주력으로 대규모혁명무력을 창건한것도 그러한 실례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나라의 구체적실정으로부터 출발하여 소규모의 유격대를 조직하고 무장투쟁과정을 통하여 경험을 쌓고 대오를 확대해왔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을 대규모의 정규적혁명무력으로 확대강화발전시켜야 할 절박한 문제를 떠안고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지휘성원, 간부문제를 빨리 해결하여야 한다. 남들처럼 돌려세울 군대도 없고 교양하여 리용할 낡은 군대의 지휘관, 군사전문가들도 없는 실정에서 우리는 오직 항일혁명투사들을 골간으로 하고 로동자, 농민출신의 우수한 청년들로 륙해공군건설에 필요한 군사정치간부들을 대대적으로 키워내야만 한다. 군사지휘관, 정치일군들의 양성기지를 내오고 그것을 모체로 각 병종과 전문병부문의 지휘성원, 기술일군들을 양성하는 간부학교도 내와야 한다. 동시에 강력한 국방공업창설에도 힘을 넣어야 한다.

혹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허망한 꿈이라고 코웃음칠런지도 모른다. 그 많은 자금이 어데서 나오는가,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먹이고 입히겠는가, 그 많은 무장장비는 어데서 구해오는가, 공장에 가보라, 일제놈들이 다 파괴해버렸다, 금고를 열어보라, 빈 장부책밖에 없다, 그래 사람들만 모아놓으면 군대가 되는가, 그마저도 배가 고파 다 달아날것이다!…

그렇다. 경제적밑천이 없다.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한시도 지체할수 없는것이 군건설이다. 중국동북의 실태를 보라. 지금 그곳에서는 새로운 류혈참극이 준비되고있다. 얼마전 중국의 국민당정부와 쏘련정부가 체결한 《중쏘우호동맹조약》이 공포되여 쏘련군대가 만주로부터 철수하게 되여있다.

이제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 지역을 쟁탈하기 위해 국민당과 공산당간의 피어린 싸움이 벌어질것이다. 그때문에 오늘 주보중이 왔다갔다. 우리에게서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국민당에 앞서 동북의 일제패잔병들과 토비들을 숙청하고 인민혁명정부들을 세우며 강력한 근거지-해방지구를 꾸리는데 적극 협력해달라는것이였다.

그리하여 강신태(강건), 최광, 박락권 등을 파견하기로 했다. 주보중이 직접 이름을 찍어 요청한 사람들이다.

한사람의 준비된 간부가 귀중한 때 왜 그들을 파견하는가?…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적의리의 견지에서도 그렇거니와 동북의 안정이 우리 혁명에 필수적이기때문이다. 조국의 남쪽땅에 미군이 주둔하고 우리의 등뒤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는 장개석의 국민당군대가 총포를 겨눈다면 우리 혁명은 더더욱 간고해질것이기때문이다. 실태는 바로 이러하다. 세계가 눈물의 환호를 올리며 평화의 도래를 노래하고 춤추고있을 때 해방된 조국의 하늘엔 검은 구름이 드리우고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지 못하고있을뿐이다.

하기에 동북으로 파견되게 된 박락권은 눈물을 머금고 말했었다.

《장군님, 저도 장군님을 모시고 조국으로 가고싶었습니다. 자나깨나 이날만을 기다려왔는데… 정말 이렇게 될줄은 … 몰랐습니다.》

그의 목소리도 눈물에 젖어있었다. 어찌 그렇지 않으랴. 한번도 조국땅을 밟아보지 못한 박락권,오랜 세월 주력부대를 떠나 싸워온 그였다.

《조국에 돌아가면… 군건설에 한몫하겠다고 단단히 별러왔는데…》

끝내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말았다.

《박락권동무, 동무의 그 심정을 왜 모르겠소. 그렇지만 이제 곧 돌아오게 돼. 그리고 동북에서도 군건설에 이바지하면 될게 아닌가. 실전을 통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키우오. 끌끌한 지휘관감들을 한 백명 거느리고오면 내 동무를 업고다니겠소. 정말이요!》

그렇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힘을 다하여 군걸설을 다그쳐야 한다. 오늘 미루면 래일은 늦는다. 늦지 않게 제때에, 우리 식으로 건설해야 한다.

한때 쓰딸린은 파쑈도이췰란드군대가 일시적우세를 차지한것은 붉은군대에 비하여 사단의 수가 많고 준비된 장교와 병사들로 사단이 구성되였기때문이라고 보았다. 하여 쓰딸린은 사회주의조국방위전쟁의 승리를 위한 항구적요인들중의 하나를 《사단의 량과 질》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인적요인과 물적요인을 다같이 념두에 둔것이였다.

그렇지만 인적요인도 경제적밑천도 없는 우리의 실정에서는 전적으로 《우리 식》으로 하여야 한다. 다시말하여 항일의 전통으로 무장한 군대, 정치사상적으로 무장된 군대를 건설하는데 전력을 다하여야 한다. 우리의 혁명적무장력에 그 어떤 다른 나라 방식도 섞여서는 안된다. 오직 《우리 식》이다. 사람을 중심에 놓고 사람들의 사상의식이 노는 역할에 기초하는 우리 식!…

그이의 사색은 샐녘까지도 계속되였다. 숲속공지의 부근부근하던 나무잎들이 다져졌다. 몇번이나 공지를 돌고 도셨는지 모른다. 도처에 봇나무잎사귀들이 떨어져있었다.

부락에서는 벌써 첫닭이 홰를 치며 울고있었다. 우악스럽게 찢어진 목청으로 기를 쓰고 웨쳐대는데 어데선가 기다리고있었던듯 보다 굵고 기적소리같이 거쉰 수닭의 울음소리가 그에 화답하였다. 그립던 조국, 해방된 조국으로 떠나갈 뜻깊은 새날, 새아침이 밝아오고있음을 알리는 청높은 웨침소리들이였다.

등뒤에서 발자국소리가 났다. 김책과 안길이였다.

《무슨 일입니까?》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아직 날이 밝으려면 멀었는데 왜 자지 않고 나왔습니까?》

김책이 조용히 말씀드렸다.

《잠들수 없었습니다, 장군님! 다들 일어나 차비를 하고있습니다. 원동쏘련군총사령부에서 련락군관 대좌가 왔는데 수송기재들을 다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자동차들과 특별렬차도 대기시켜놓고있다고 합니다.》

《음-》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그래 그것때문에 나왔습니까?》

《장군님!》 안길이 나섰다. 《조국으로 떠나면서 다들 열병식을 하였으면 합니다.》

《열병식?… 많은 사람들이 쏘련군대와 련합작전을 위해 별동대, 선견대로 나가있는데 우리만 열병식을 한다?!…》

《장군님!》 안길은 덤벼치기 시작했다. 《그저 분렬행진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장군님을 모시고 조국으로 떠나면서 장군님께서 사열해주시기를 바라고있습니다. 이제 조국땅에 들어서자마자 우린 모두 파견지로 흩어져갈게 아닙니까. 그래서 다들 그렇게 제기하고있습니다.》

그 심정이 리해되시였다. 자신의 곁을 떠나기 아쉬워 눈물을 머금던 박락권의 모습이 떠오르시였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달린 녀대원들… 그들은 얼마후에야 떠나게 될것이니 더더욱 그것을 바랄것이다.

그이께서는 조용히 미소를 그리시였다.

《좋소, 열병식을 가집시다. 조국개선열병식을!》

그리하여 얼마후 9월의 태양이 불끈 솟아올라 수림을 불태우고 아무르강의 물결우에 붉고붉은 비단필을 펴놓을 때 사령부목조건물의 앞뜨락에서는 전설적인 조선빨찌산의 소박한 열병식이 진행되였다.

그것을 열병식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웠다. 광장을 대신하는 작은 뜨락, 군기도 없고 군악대도 없다. 표기병들은 물론 장검을 찬 종대지휘관들도 군종병종들의 대오도 없다. 그러나 새 조선의 혁명적무장력의 골간들이 울고 웃으며 발을 구르고 목청껏 만세를 웨쳤다.

김일성동지께서 손을 들어 답례를 보내시였다. 볕에 타고 그을린 사람들, 수많은 피의 언덕을 넘어온 투사들, 저 한사람한사람이 이제 련대와 사단을 이끌고나갈것이다. 저들 매사람들이 이제 당과 국가, 군대의 대들보가 될것이다. 이렇듯 억센 기둥들이 있는 한 새 민주조선은 거연히 일떠설것이다.

혈전만리를 헤쳐온 투사들이 장군님을 우러르며 발걸음높이 행진해갔다. 해방된 조국으로의 힘찬 개선행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