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장 편집후기

 

종 장

 

김구, 김규식은 승용차에 앉아 귀로에 올랐다. 38°선을 향해 달리는 차중에 앉아있는 김규식은 지금도 머리에 가득차서 심장을 들먹거리게 하는 지난 보름동안의 일들을 돌이켜보았다. 근 70년간 다난하고 곡절많은 길을 걸어온 그에게 있어서 보름이란 순간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과거에 체험한 모든것을 무색케 하는 사변으로 가득찬 나날들이였다.

그는 배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농촌마을이며 거름을 내고 논밭갈이를 하느라고 전야에 널려있는 농민들의 모습을 차창을 거쳐 내다보며 이틀전에 쑥섬에서 장군님을 모시고 진행한 정치협상회의를 더듬어보고있었다.

한사정여울을 한옆에 끼고 햇순이 돋아나는 쑥이 한벌 널린 대동강 한가운데의 모래섬, 한채의 원두막앞의 버드나무밑에서 돗자리를 깔고 진행한 정치협상회의, 비록 자리는 소박하고 수수했지만 얼마나 뜻깊은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은 력사적회합이였던가.

장군님의 접견을 받은 다음날인 5월 2일이였다. 그는 또다시 그이의 부르심을 받았다. 상수리숙소에서만도 김구를 위시해 조소앙, 엄항섭 등 한독당의 상무위원 여럿이 초청을 받았고 민족자주련맹에서도 상무위원 최동오가 동행하게 된것으로 보아 장군님께서는 고위급회담때 제기한 백범의 소청을 참작하신것 같았다. 쑥섬으로 건너가기 위해 평천나루터에 당도해보니 련맹의 2인자이며 민주독립당 위원장 홍명희, 원쑤놈들에게 억울하게 참살당한 려운형의 권능을 대행하는 온건한 좌익의 대표자인 근로인민당 부위원장 백남운도 이미 와있었다. 북조선로동당을 대표하여 김책이 도하장에 도착했다. 김규식은 이날의 모임이 여간만 중요한 회합이 아니라는것을 직감했다.

좌익으로부터 시작하여 중간세력, 우익민족주의진영 대표들의 모임이 분명한데 어째서 초청자의 대부분이 남조선민족주의진영의 지도적인물로 이루어져있는가? 하지전의 차거운 강물에 들어서서 수영도 하시고 친히 반두를 들고 대동강의 숭어를 건져내기도 하시던 장군님께서는 식상이 준비되자 김구, 김규식을 량옆에 앉히시고 버드나무밑의 좌석에 자리를 잡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우선 협상회의에 대한 소감이며 회의에서 미처 이야기하지 못한 의견을 듣고싶다고 하시였다. 우리 민족은 유엔이 생겨난이래 처음으로 그들의 결의를 배격하고 자주권을 행사한 용감한 민족이라고 흥분해서 부르짖는 사람도 있었으며 협상회의참가자들의 일치한 의사를 담아 쏘련군과 동시에 미군도 남조선에서 철거할것을 요구했는데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있는것으로 보아 새로운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장군님의 고견을 듣고싶어 이런 의사를 표명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기 생각에 골몰해있던 한독당의 한 상무위원이 자못 심중한 기색으로 말씀드렸다.

《5. 1절날 군중시위를 할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라는 구호판을 들고 행진해나가는 청년들도 보았고 남조선대표들에게 공급되는 담배갑에도 그런 구호가 인쇄되여있는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장군님께서 그런 국호를 가진 민족단일정권을 수립할 결심이라는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미군은 남조선에서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있습니다. 이런 형편에서 어떻게 민족통일정부를 수립하려고 하시는지 장군님의 말씀을 듣고싶소이다.》

밝은 웃음을 띠운 표정으로 오가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제기된 질문을 심중하게 받아들이기도 하시던 장군님께서 자리를 고쳐잡고나서 잠시 생각을 가다듬으시였다. 그이께서 말씀을 하시련다는것을 안 좌중은 숙연한 빛을 띠우고 장군님께 눈길을 모았다.

《여러분들이 근심을 하는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오늘의 이 모임은 여러분들의 그러한 근심에 해답을 주는데도 목적이 있습니다.》

미군이 남조선에서 철거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미제와 사대매국노들이 남조선단독괴뢰정부를 조작해서 미군의 남조선강점을 합법화하고 조선의 분렬을 장기화하려는 조건에서 미군철거와 남조선단독괴뢰정부를 배격하는 투쟁을 과감하게 전개해나가야 한다고 그이께서는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다음으로 조선민족은 반드시 자주적인 통일정권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미제침략자들이 한줌도 안되는 사대매국노들을 내세워 남조선단독괴뢰정부를 조작해내여 그것이 마치 조선의 합법적정권인듯이 행세하게 하려는 조건에서 진정한 자주적인 민주주의통일정권을 갖는것은 조선민족이 절대로 양보할수 없는 민족적권리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미국놈들이 남조선에서 철거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남북조선인민들은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립법기관을 능히 선거할수 있다고 그이께서는 그 방도에 대해서도 말씀하시였다.

《북조선에서는 직접선거를 하고 남조선에서는 지하에서 비밀리에 대표들을 선거하여 북조선의 어느 한 지역에서 대의원을 선거하는 간접선거를 하면 될것입니다. 미국놈들이 아무리 총칼을 휘두른다고 해도 자주적인 통일정부수립을 념원하는 남조선인민들의 열망을 짓밟아버릴수는 없습니다.》

좌중의 모든 사람들은 경이에 찬 눈길로 그이를 우러러보며 말씀을 들었다. 민족단일정권수립방도까지 장군님께서 설계하고계실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였다.

《그런데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한가지 있습니다. 우리가 채택한 공동성명에는 통일정부수립전야에 남북의 당, 단체지도자들이 다시한번 모여앉아 정치위원회를 갖기로 되여있습니다. 물론 그때에 가서 성명에 있는대로 회의를 열어야 합니다. 통일정부의 합법성을 내외에 천명하기 위해서도 그러한 회의를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회의에 이 자리에 계신 백범선생이나 김규식선생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이 참가할수 있겠는가 하는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들이 민주주의통일정부수립에 관여하면 미국놈들에게 탄압을 받아 신변에 위협을 받을수 있고 남조선에서의 정치활동이 봉쇄당할수 있기때문입니다.》

민족주의진영의 정치인들을 오늘의 모임에 많이 참석시킨 까닭을 김규식은 이제야 비로소 알았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별고없이 보람있게 보내게 해주시려는 장군님의 은정이 하도 고마와 어제 저녁의 연회에서도 김규식은 그이에 대한 경모의 정을 터뜨리고싶은것을 겨우 참았다.

그이께서는 남북협상을 통해 이 세상에 태여난 전민족적인 구국통일전선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강조하시였으며 통일전선에 망라된 정당, 단체들은 자기의 성격에 맞게 활동해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김구, 김규식선생을 비롯한 한독당과 민족자주련맹에 망라된 민족주의진영의 인사들은 원쑤놈들의 테로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능숙하게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오늘의 이 모임을 한차례의 정치협상회의라고 생각하고 회합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민족단일정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할것입니다. 창건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민족을 정부의 주위에 굳게 단결시켜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 동원할것이며 국토완정과 민족통일의 선결조건으로 되는 반미투쟁을 힘차게 벌려나갈것입니다. 백범선생, 김규식선생을 비롯한 이 자리에 모인 민족주의진영의 여러 선생님들은 특수한 형태의 구국통일전선의 지도성원이 되여 우리의 사업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김규식선생하고는 어제 합의를 봤습니다. 백범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주주의통일정부수립과 관련해서는 반대도 찬성도 하지 않는 불간섭의 원칙을 지키면서 남조선단독괴뢰정부를 반대배격하는 투쟁에서 시종 확고부동한 태도를 취해주시겠습니까?》

김구는 장군님께 깊은 절을 드리기라도 할것처럼 그이를 향해 자세를 바로잡고 엄숙한 모습으로 말씀드렸다.

《늙은 고목에 지나지 않는 과인에게 장군님께서 그렇듯 마음을 쓰시니 나로서는 할말을 찾을수 없소이다. 서울에 돌아가거든 장군님의 가르침을 명심하고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소이다.》

구국통일전선의 특수한 형태의 역할을 원만하게 수행해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도들이 토의되였다.

··· 차창밖에서 일렁이며 흘러가는 전원풍경을 내다보며 김규식은 장군님의 민족자립사상을 대강으로 삼은 민족단일정권이 탄생하리라는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보름전에 서울을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도 용감하게 우리 민족이 자주권을 행사하여 통일정부를 세우게 되리라는것을 상상이나 할수 있었던가. 감개무량한 심정으로 질적으로 비약한 스스로의 내심을 투시해보는 김규식의 얼굴에 느긋한 웃음이 퍼져나갔다.

남북협상을 성과적으로 끝내고 38°선을 넘는 김구, 김규식을 비롯한 남조선대표들을 수백대의 자동차에 분승한 남조선인민들과 정치인들이 분계선가까이에까지 마중나와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김규식을 맞이해준 사람들은 환영군중만이 아니였다. 하지와 서울에 틀고앉은 미국의 실권자들이 파견한 경찰계의 우두머리들도 그를 친절하게 맞이했다. 김규식이 북조선을 비방하는 말을 하고 남조선정권의 대통령자리에 올라앉을 의사를 표명하면 《단선단정》을 반대하는 남조선인민들의 거세찬 항거를 얼마간 눅잦힐수 있을것이라고 타산했던것이다.

그러나 김규식은 김구와 함께 장군님께서 기대하신 그대로 미제의 회유와 위협을 박차고 줄기찬 반미투쟁을 전개해나갔다. 서울에 돌아간 김규식은 김구와 함께 통일독립촉진회를 발족시켰다. 촉진회에 《단선단정》을 반대하고 미군철거를 주장하는 무려 80여개의 정당, 단체들을 망라시켰다. 김구가 주석이 되고 김규식이 부주석이 됐다. 그는 수백명의 기자들앞에서도, 《유엔조선림시위원단》을 만난 자리에서도 《단선단정》의 부당성을 주장했으며 자주적인 정치가 실시되고있는 북조선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김규식이 이렇게 엇서나가는것이 대통령의 권좌에 올려앉히겠다는 자기들의 말을 믿지 못하는데 있다고 생각한 미국의 실권자들은 리승만을 정계에서 몰아낸다는것을 실지 보여주려고 했다. 리승만이 립후보한 서울동대문갑구에 최능진(군정청경무부 전 수사국장)을 립후보로 내세워 리승만을 락선시킬 잡도리를 한것이다. 김규식에게 요구하는것은 남조선정권의 대통령이 되겠다는것과 남조선단독괴뢰정부가 민의를 대변한 정부라는것을 성명해달라는것이였다. 김규식은 이에 대한 거부성명을 내는것으로 대답했다.

민주주의통일정권창건을 앞두고 성시백이 평양에 들어왔다. 남북협상을 호소하시던 그때부터 제작을 추진시켜오던 국기, 국장이 최근에 완성되여 장군님께서는 책임부관에게 국기를 한폭 가져오게 하여 곧 성시백의 숙소를 향해 떠나시였다. 성시백은 장군님께서 김규식과 마주앉으셨던 바로 그 연두빛집에 류숙하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석양빛이 가득찬 보통벌이 내려다보이는 그 연두빛집앞의 로송아래에서 성시백과 마주앉으시였다. 성시백은 곧 김구, 김규식이 발족시킨 통일독립촉진회가 남조선에서 진행된 간접선거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있는가를 말씀드리려고 했다. 장군님께서 쑥섬회담에서 말씀하신 남북총선거는 8월 25일에 전국적으로 진행되기로 되여있었다. 그러나 원쑤놈들의 폭압이 살판치는 남조선에서는 15일부터 대표를 선출하는 간접선거(련판장에 이름을 쓰고 지문을 누르는 형식)를 진행하여 대표들이 해주에 모여 8월 25일에 대의원을 선거하게 되여있었다. 그이께서는 웃음지은 안색으로 손을 저으며 성시백의 말을 밀막으시였다.

《그 이야기는 후에 들읍시다. 성시백동무에게 꼭 보여주고싶은것이 있어서 잠간 시간을 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책임부관이 들고 올라온 보자기를 달래가지고 기발을 꺼내드시였다.

《보시오. 우리 국기입니다. 우리 정권이 창건될 때 게양할 국기입니다. 선전부장동무가 가져온 국기를 보니 성시백동무생각이 나서 잠간 시간을 냈습니다. 김구, 김규식선생에게도 기발을 보낼 생각입니다.》

성시백은 국기를 받아들기는 했지만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듯 선뜻 기발을 펴지 못했다. 안경을 벗어 눈굽을 닦은 후에야 천천히 기발을 펼쳤다.

《이 기발이 우리 나라 국기입니까! 이 기발이 우리 정권, 통일정권의 기발입니까!》

성시백은 너무나 감동되여 기발을 들고 부르짖었다. 붉은색을 바탕으로 한 흰 동그라미안에서 찬연한 빛을 뿌리는 오각별, 푸른색, 흰색띠들이 선명한 대조를 이룬 너무나도 아름답고 순결하고 독특한 기발!

《전 이렇게 아름답고 숭엄한 기발을 처음 봅니다. 아, 이런 훌륭한 기발이 우리 나라, 새로 태여나는 민족단일정권의 기발이란 말입니까!》

《마음에 듭니까?》

《마음에 드는 정도가 아닙니다. 세계에 이렇게 아름답고 독특한 기발을 가진 나라는 우리 나라밖에 없을겁니다!》

《성시백동무의 마음에도 든다니 됐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웃음띠운 음성으로 유쾌히 말씀하시였다.

성시백은 기발을 보자기에 싸는 책임부관의 손길을 지켜보며 잠시 주저하는 기색이더니 장군님께 말씀드렸다.

《무엄한 소청인것 같습니다만 이 기발을 저에게 주실수 없습니까?》

《필요하다면 가지시오. 그런데 어디에 쓰려고 그럽니까?》

《장군님께서 아시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영등포방직공장에 조순옥이라는 처녀가 있습니다.》

《내가 왜 순옥이를 모르겠습니까? 허헌선생한테 들어서 알고있습니다. 마동삼동무의 애인이 아닙니까? 허헌선생은 그 순옥동무가 영등포로동자지구에서 대의원으로 선거될것 같다고 하던데···》

성시백은 눈길을 내리깔고 그늘진 얼굴빛으로 나직이 말씀드렸다.

《그렇게 될수 있었습니다.》

성시백은 조순옥의 신상에 들이닥친 불행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영등포로동자들은 조순옥이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하는것을 한결같이 지지했다. 해주에 파견될 대표로 제일 선참 선출된 사람도 조순옥이였다. 페허로 된 어둑시근한 공장에서, 밤에는 미제놈들에게 억울하게 참살당한 선렬들이 묻힌 공동묘지에서, 조순옥은 통일중앙정권창건을 위한 이번 선거의 의의를 유권자들에게 열정에 넘쳐 해설했다. 로동자들은 말할것도 없고 다른 유권자들 대부분도 조순옥을 지지해 련판장에 자기 이름을 쓰고 지장을 눌렀다.

조순옥은 련판장을 지고 다른 2명의 대표들과 함께 무사히 개성교외의 천마산줄기에 이르렀다. 천마산의 서남쪽경사면을 리용해 38°선을 넘을 생각이였다. 그들은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려 가파로운 비탈을 톺아오르기 시작했다. 이 산을 넘으면 근로하는 인민이 주인이 된 북조선땅이라는 생각에 가슴을 들먹거리며 걸음을 다그쳤다. 산등성이에 거의 올라섰을 때였다. 고함소리와 함께 야무진 총성이 울렸다. 남조선에서 선거된 수많은 대표들이 각이한 통로를 거쳐 북으로 들어간다는것을 눈치챈 미제침략자들이 경찰과 깡패들까지 총동원하여 38°선일대에 덫을 쳤던것이다. 3명의 대표는 있는 힘을 다내여 산등성이를 향해 달려올라갔지만 탄알의 속도를 당해낼수는 없었다. 원쑤놈들은 탄막으로 앞길을 차단하고 추격해왔다. 3명의 대표들이 이 심산속에서 희생되여야 할 급박한 정황이였다. 조순옥은 비장한 결심을 했다. 등에는 철창도 죽음도 가혹한 시련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를 대표로 선출해준 찬성자명부(련판장)가 있었다. 순옥이는 등에 졌던 련판장을 옆에서 달리는 남성로동자등에 지워주며 부르짖었다.

《련판장이 원쑤놈들의 손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돼요! 뒤일을 부탁해요!》

남성대표는 조순옥이를 붙들려고 했지만 그는 이미 숲이 우거진 산비탈로 달려가며 일부러 돌을 굴리고있었다. 그 소리를 듣고 조순옥을 뒤쫓아가는 한무리의 검은 그림자가 얼씬거렸다. 몇방의 야무진 총성이 울리더니 조순옥의 발걸음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조순옥은 다리에 부상을 입고 체포되였다. 그는 피칠갑을 한 다리를 끌며 개성시내 한복판을 걸어가면서도 시민들을 향해 견결히 부르짖었다.

《나는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북으로 가던 남조선인민들이 선거한 대표입니다. 우리 민족의 유일한 합법적정권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니다. 모두다 통일정부를 절대지지합시다!》

개성에 있는 막내동생이 긴급통보를 해주어 성시백은 이 사실을 당일에 알수 있었다.

《그러니까 옥중에 있는 조순옥동무에게 공화국기발을 들여보내주겠다는것이겠습니다?》

《38°선을 무사히 넘었으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돼서 평양의 하늘에서 펄럭이는 공화국기발을 볼수 있었겠는데, 옥중에서라도 우리 나라 기발을 보게 하고싶습니다.》

보라빛어둠이 안식을 찾아 내려앉기 시작한 풀숲을 밟으며 무거운 걸음을 옮기던 장군님께서는 준절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옥중에서라도 공화국기발을 보게 해야 합니다. 나는 성시백동무의 생각에 찬성입니다.》

장군님께서는 기발을 성시백에게 돌려주게 하시고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성시백동무는 조순옥동무가 체포됐으니 대의원이 될수 없는것처럼 말하는데 그럴수 없습니다. 유권자들이 조순옥동무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할 의향이였다면 옥중에 있건, 그 어디에 있건 대의원으로 선거해야 합니다. 허헌선생을 성시백동무에게 보낼테니 조순옥동무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할 방도를 의논해보시오.》

장군님께서는 무거운 걸음으로 산비탈을 걸어내려가시였다.

 

8월 25일 총선거의 날, 온 북조선의 마을과 거리, 집들마다에서는 어둠이 아직도 청신한 새벽대기를 물들이고있을 무렵부터 법석 끓어번졌다. 산뜻한 나들이옷으로 단장한 사람들이 행복과 희망에 넘친 얼굴을 빛내며 벌써부터 북과 장고를 두드리고 새납과 나팔을 불어대는 선거장으로 몰려갔다. 선거장의 앞마당에 들어서는 길목에는 영명한 령도자 김일성동지를 칭송하는 구호를 모신 푸르청청한 솔문이 서있었다.

북조선의 그 어디에서나 일대 경사를 맞이한 명절분위기에 휩싸였지만 승호지구의 23호선거구의 인민들은 남다른 감격과 흥분을 안고 이날을 맞이했다. 지난해 11월 3일 경애하는 장군님을 북조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한 자랑을 안고있는 이 선거구의 인민들은 올해에도 그이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하는 영광을 또다시 지녔다. 북조선에서 제일 선참으로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립후보자로 추천한 승호리세멘트공장 로동자들, 이곳 농민들과 각계각층 인민들의 열망을 받아들인 그이께서는 이틀전에 현지에 나오시여 수만군중들앞에서 연설을 해주시였다. 이런 영광을 받아안은 이곳 인민들이 어떻게 날이 새기를 기다릴수 있겠는가. 연회색어둠이 아직도 이 땅을 떠나기 아쉬운듯 청신한 대기를 물들이고있을 때부터 유권자들과 아이들이 새납과 나팔소리가 새벽대기를 뒤흔들며 울려퍼지고 장고와 징을 두드리며 춤을 추는 선거장 앞마당에 모여들었다.

이러한 흥분, 이러한 희열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멀리 두만강가의 유선탄광선거구에서도, 평북도의 대령강가의 외진 산골군의 선거장에서도 끓어번졌다. 유선에서는 전호준이 대의원립후보자로 추천되여 대의원으로 선거되였다. 산간에서도 궁벽한 대령군에서는 김성란이 립후보자로 등록되여 유권자들의 한결같은 지지를 받았다.

북조선의 도시, 벌방, 산간 그 어디에서나 인민들은 민주주의통일정부를 세우게 된 감격과 기쁨을 안고 선거에 참가했으며 온종일 환희에 넘친 명절기분에 휩싸여있었다. 북조선에서는 유권자의 99. 97%가 선거에 참가했으며 98. 49%가 립후보자에게 찬성투표했다.

바로 이날 해주극장에서도 21일부터 시작된 나흘동안의 토의를 끝내고 남조선에서 추천된 1 002명의 대표들이 간접적인 방법으로 360명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을 선거했다. 원래 1 080명이 대표로 추천됐지만 조순옥처럼 38°선을 넘지 못한 대표들이 78명이나 되였다. 대표들은 남조선유권자 77. 52%의 지지를 받아 사선을 헤치고 해주에 왔다. 선거된 대의원들가운데는 남조선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홍명희, 백남운, 리병남, 리극로, 류영준과 같은 명사들이 들어있었으며 조순옥도 대의원으로 선거되였다.

 

전민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북련석회의가 개최되였던 그 수려하고 아름답고 유서깊은 모란봉극장에서 민족단일정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을 위한 최고인민회의 제1차회의가 드디여 막을 올렸다. 주체37(1948)년 9월 2일이였다. 남북련석회의때처럼 주석단 한가운데 앉아 회의장을 가득히 채운 대의원들을 내려다보는 장군님의 심중은 류다르시였다.

광복후 자주적인 국가건설을 우리 당의 총로선으로 제시하신 장군님의 뜻이 마침내 성취되였으니 어찌 감회가 깊지 않을것이며 마음이 뜨겁지 않겠는가! 지난 3년간 얼마나 복잡다난한 수많은 문제들이 총로선관철을 방해하고 얼마나 엄청난 난관들이 앞을 가로막았던가. 그러나 그이께서는 길림감옥에서 무르익히고 카륜에서 선포한 주체사상, 그 심오한 철리를 민족문제해결의 리념으로 삼고 완강한 투쟁을 전개해오시였다. 장군님께서도 인간일진대 어찌 고뇌가 없을수 있으며 좌절감이 마음을 파고드는 때가 어찌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이께서는 철석같은 의지를 지니고 민족자주만이 조선이 갱생번영할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확신을 품고 전민족을 오늘에로 이끌어오시였다.

남조선을 강점한 미제의 집요한 침략책동, 민족리간행위, 조국의 량단, 남과 북을 차지한 쏘미량군의 존재로 하여 창궐하는 외세의존사상··· 자주적인 정권을 건설하려면 안으로는 우선 사대주의를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뿌리뽑아야 하였다. 무능한 봉건통치배들이 장구한 기간 부식시킨 사대주의로 하여 정계에서 내노라는 사람들도 민족문제를 우리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때묻지 않은 근로하는 인민들을 믿었으며 단결력이 강하고 용감한 조선민족을 믿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민족자립사상을 민족의 재생과 번영의 대강으로 높이 추켜들고 전민족을 자주를 위한 투쟁에로 불러일으키시였다.

그리하여 오늘 통일중앙정권의 탄생을 내외에 엄숙히 선포하기 위해 570여명의 남북의 전조선대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았다.

남조선에서 진행된 총선거는 장군님께서 추켜드신 민족자립사상을 전민족이 지지한다는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장군님께서는 첫날회의에서 받아안은 흥분과 감회를 안고 이미 인민적토의를 걸친 헌법을 지지찬동하는 대의원들의 토론도 듣고 의정에 포함된 여러가지 안건들을 통과시키는 회의도 지도하시였다.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은 격동적인 감동에 휩싸여 두손을 높이 들고 우뢰와 같은 박수를 치며 목이 쉬게 만세의 환호를 웨치며 김일성장군님을 내각수상으로, 국가수반으로 추대했다. 장구한 기간 항일대전을 전개하여 조국을 광복하신 전설적영웅, 국토가 분렬된 어려운 조건에서도 민족단일정권을 탄생케 하신 영명한 령도자, 그이를 조선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갈 민족의 위대한 수령으로 높이 추대하기를 열망해온 념원이 실현된것으로 하여 대의원들은 두볼을 적시며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9월 9일 장군님께서는 정부를 구성한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온 세계를 향해 엄숙히 선포하시였다. 김책, 홍명희들이 부수상으로 임명되였으며 정준택은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의 중책을 지녔다. 최용건은 민족보위상, 허정숙은 문화선전상, 백남운은 교육상, 리용은 도시경영상, 리병남은 보건상, 리극로는 무임소상허헌은 최고인민회의 의장으로 선거되였다. 전호준은 산업성 부상으로 등용되였다.

공화국정권의 탄생을 온 세상에 알리는 국가의식이 모란봉극장 앞마당에서 진행되였다. 애국가의 장중한 선률이 모란봉기슭은 말할것도 없고 평양시내에까지 울려퍼졌다.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은금에 자원도 가득한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

반만년 오랜 력사에

···

 

의식에 참가한 대의원들, 방청자들은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 옷깃을 여미고 엄숙한 자세를 취했다. 이미 지난해 7월에 완성되여 기쁠 때나 괴로우실 때나 장군님께서 수없이 자주 불러온 노래, 조국에 대한 한없이 깊은 사랑이 담긴 노래, 애국의 넋이 응결된 숭엄하고 장중한 조선의 노래··· 애국가가 완성된후 맑고 아름다우면서 장중한 이 노래를 인민들에게 보급하고싶어하는 일군들의 제기를 그이께서는 계속 막아오시였다. 남북협상참가자들에게만이라도 조선선률로 된 우리 나라 국가를 들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제기도 밀막으시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을 선포하는 이날을 기다리며 그이께서 마음속으로 수없이 불러오신 노래가 바로 이 애국가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국기게양대에 이르러 아름답고 선명하며 순결한 공화국기발을 애국가의 주악에 맞추어 서서히 하늘높이 게양하시였다. 감격과 격정을 참기 어려워 대의원들속에서는 흐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장군님의 눈앞도 뿌잇해지시였다. 몽롱한 안개속에서 붉은 오각별만이 찬연한 빛을 뿌리며 창공을 향해 솟아오르는듯싶었다. 문득 안개가 걷히면서 남북조선 삼천리에 나붓기는 수십만의 공화국기발의 바다가 눈앞에 보이는듯 싶으시였다. 공화국기발을 받은 김구, 김규식도 이날 민족단일정권의 창건을 선포한다고 알려줬으니 지금쯤 평양의 하늘을 바라보고있을것이다. 기발을 받은 조순옥은 어떻게 하고있을가? 철창밖으로 기발을 내두르며 공화국창건 만세를 부르짖고있을것이다.

장군님께서는 국기게양을 끝내고 몸을 돌려 대의원들의 앞에 서있는 내각성원들을 바라보시였다. 좀해서는 눈물이라는것을 모르는 김책의 눈에도 맑은 이슬이 그득히 고여있었다.

조선민족을 위한 진정한 민주주의통일정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찬연한 빛을 뿌리며 세상에 태여났다. 북과 남 3천리강산 그 어디에서나 조선인민은 오각별 빛나는 공화국기발밑에 굳게 뭉쳐 외세의 간섭이 없는 부강한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계속 힘차게 싸워나갈것이다.

 

편집후기

 

작가 김수경은 오늘의 평양시 순안구역 재경리의 한 빈곤한 간이학교 교원가정에서 맏아들로 태여나 어린 시절을 평양에서 보내고 8. 15전에 남강원도로 이주하였다. 그는 조국해방전쟁시기 의용군에 입대하여 7년간의 군대복무를 끝내고 제대된후 작가동맹기관지 《문학신문》에서 10년, 문예출판사에서 10년간 기자편집원생활을 했다. 그 기간에 수많은 실화문학과 함께 독자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작품 《무호섬》을 썼다. 소설이 많지 못한것은 결코 창작적재능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시기 그렇게도 구하기 어려운 쪼박종이를 앞에 놓고 소설습작을 해온 그가 어떻게 창작을 외면할수 있겠는가. 작가가 제대와 함께 《문학신문》기자가 될수 있은것은 군대생활을 할 때 작가동맹에 단편소설을 투고하군 한것이 인연으로 되였기때문이였다. 20년간 소설을 많이 쓰지 못한것은 당에서 맡겨준 본신임무 이외에 다른것을 생각할줄 모르는 외골박이성미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머리에 흰서리가 내린 50고개를 넘었을 때에야 청년시절부터 품어온 소설창작을 전업으로 하는 작가생활을 시작하게 되였다.

한편의 장편소설을 창작한후 영예롭게도 수령형상작품을 전문으로 창작하는 4. 15문학창작단의 작가로 되여 환갑을 넘긴지도 세해째되는 주체83(1994)년에 혁명소설 《승리》를 세상에 내놓았다.

작가의 올해 나이는 예순아홉이다. 그러나 총서 《불멸의 력사》중 장편소설 《삼천리강산》이 보여주는것처럼 붓은 조금도 무디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작가로서 더욱 원숙해졌다는것을 느끼게 한다.

소설가 김수경은 뒤늦게 창작계에 발을 들여놓은 아쉬움을 남은 여생으로 보충할 결심인것 같다.

우리는 작가가 이 소원을 로당익장의 열정으로 반드시 성취하리라고 믿고있다.

독자들은 이번에 출판한 총서 《불멸의 력사》중 장편소설 《삼천리강산》을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어떻에 이 세상에 태여났는지 더욱 깊이 알게 되였으리라고 생각한다.

편집부는 장편소설 《삼천리강산》이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령도를 받들어 김일성조선, 사회주의 내 조국을 강성대국으로 빛내여나가기 위한 투쟁을 벌리고있는 우리 인민을 힘있게 고무추동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있다.

 

편 집 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