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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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후에 잠시 등을 붙였던 침상에서 김구는 벌떡 일어났다. 환국후 3년간 경교장에서 제왕행세를하면서 몸에 붙인 느릿하면서도 틀진 걸음으로 침실안을 거닐기 시작했다. 이제 두어시간 지나면 장군님을 모시고 고위급회담을 진행하게 된다.

장군님께서 조선민족의 장래를 두고 많은 생각을 했다고 말씀하셨으니 필경 자기의 정견도 포함된 대경륜이 민족화합과 통일정부수립의 지침으로 될것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속이 뒤설레는 일이였다.

하긴 자기의 의사를 대변해 조소앙이 제안한 그 7개 조항은 그가 새 출발을 결심하기전에 서울에서 만들어진것이였다. 평양에 들어오기전에 명성높은 한독당의 중진들이 경교장에 모여앉아 며칠간 분분한 론의를 거듭한 끝에 그 7개 조항을 책정한것이다. 자기의 결심을 김규식에게 터놓은 후에 김구는 머리속에 쪼아박은 그 제안의 매 조항을 하나하나 검토해봤다. 련공을 결심한 지금의 눈으로 봐도 잘못된 점은 하나도 없는것 같았다. 첫째 조항은 내부의 대립을 해소해서 외부의 모순을 극복하여 령토분할을 저지하자는 내용으로 되여있었으며 둘째 조항은 남북의 애국자들이 새로운 구상을 설계하여 우방정부에 이의가 없는 통일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되여있었다. 이런 식의 조항이 7개였다.

그 7개 조항전부가 고위급회담에서 수용될수는 없겠지만 절반, 아니 두어조항이라도 받아들여져 민족통일정부수립을 위한 경륜으로 된다면 이 김구도 한몫을 했다고 할수 있지 않겠는가.

김구는 흥분을 다잡을길이 없어 탁상 한귀에 놓여있던 림정의 인장을 책상 한가운데 옮겨놓았다.김일성장군님께서 조직전개하신 무장투쟁을 조국광복을 위한 성전에서 첫째가는 투쟁으로 꼽는다면 림정은 그다음 자리쯤 능히 차지할수 있다고 김구는 생각하고있었다. 그가 림정주석이란 직함을 버리기 어려워하는것도 이때문이였다.

김구는 오늘회담 뒤끝에 자기가 련공을 결심했다는것을 장군님께 말씀드릴 생각이였다. 그때 림정의 인장을 앞에 놓고 말씀드리면 좌석이 더욱 의의깊은것으로 되지 않겠는가. 림정주석이며 한독당위원장인 김구가 련공을 결심했다는것으로 될것이니 자기의 말은 더욱 무게가 있을것이다.

시중을 드는 한독당원이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회담장으로 안내할 북조선측 젊은이가 도착했다고 했다. 김구는 회색두루마기를 입고 복도에 나섰다. 그는 서울에서 타고 들어온 승용차에 올라앉았다. 김규식은 뒤차에 탔다. 자동차에 오른 김구는 그 누가 손을 댈가봐 겁을 내기라도 하는것처럼 인장이 들어있는 함을 무릎우에 놓고 두손으로 거머쥐고 앉아있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앞에서 달리던 승용차는 김구, 김규식을 외장벽이 연노란 오탄여울목옆의 아담한 2층집으로 데려갔다. 넓지 않은 그 집의 앞마당에서 산책하던 장군님께서 환한 웃음이 어린 안색으로 김구, 김규식을 맞이하시였다. 명칭이 고위급회담이니 고위인사 여러명이 동석하여 북조선정권의 위엄을 보일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장군님과 비슷한 년세의 젊은이 한사람이 그이의 뒤에 정중한 자세로 서있을뿐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얼굴이 동그스름한 그 젊은이를 자신의 서기라고 소개를 하시였다. 그렇다면 장군님께서는 이번 회담도 격식없는 간소한 회합으로 되게 하시려는것인가.

회담장 한가운데에는 푸른 색갈의 상보를 씌운 원탁이 있고 그 둘레에 세개의 의자가 놓여져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김구, 김규식에게 자리를 권하고나서 자신께서도 의자에 앉으시였다. 정말로 북조선을 대표하여 그이 혼자 회담에 참가하시려는 모양이였다. 한독당을 대표해서 김구, 민족자주련맹을 대표해서 김규식, 북조선민전산하에 굳게 단결된 북조선정치력량을 대표해서 김일성장군님··· 원탁옆에 놓여있는 책상에 서기가 앉아있기는 했지만 그를 회담참가자라고 할수는 없었다. 북조선정권의 령수인 장군님께서 자기네와 대등한 자격으로 회담에 참가하시다니··· 서울에 들어와서는 말할것 없고 해외에서 림정주석으로 있을 때도 이런 극진한 대접을 받아본적은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담배를 권하고나서 김구, 김규식의 얼굴을 잠시 살펴보시였다.

《김규식선생의 얼굴색이 좋지 않아보이는데 음식이 맞지 않는게 아닙니까? 제 집에 계시는것으로 생각하고 요구할것은 요구하십시오.》

그이께서는 진심으로 걱정하시는 안색이였다.

《나를 위한 숙소의 성의는 참으로 지극합니다.》

《황철에 나갔다 오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무리를 하신것 같습니다. 참관은 무리를 하면서 돌아보라는것이 아닙니다. 남조선대표들이 북조선의 현실을 아는것이 민족단합에 좋을것 같아 본인의 요구에 따라 보고싶은것을 보라는것입니다. 지나친 무리를 하면서 황철에 다녀오신것 같습니다.》

김규식은 몸둘바를 몰라하며 조리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황철은 내가 가봐야 할, 꼭 봐야 할 곳이였습니다. 내 신색이 좋지 못하다면 그건, 그건···》

김규식은 몸을 궁싯거리며 말끝을 맺지 못했다. 우사가 지금처럼 당황해하며 말을 얼버무리는것을 김구는 별로 본적이 없었다. 우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긴 평양에 도착했을 때부터 그의 태도에서는 무엇인가 리해하기 어려운 심상찮은것이 느껴졌다.

《두 선생이 다 민족을 위해 큰일을 하셔야 할분들인데 각별히 건강에 주의하셔야 합니다. 년세가 있지 않습니까.》

김구, 김규식이 담배 한대를 태우고났을 때 장군님께서는 온화하고 나직한 음성으로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26일에 한국독립당과 민족자주련맹에서 제기한 제안을 우리는 심중히 토의했습니다. 선생님들의 의사를 최대한으로 존중하고 참작한 기초우에서 우리는 구국대책안을 내놓기로 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 구국대책안의 기초로 삼은 근본립장과 사상을 말씀하시였다. 김구는 자기가 숭상하고 목적한듯싶으면서도 머리속에서 정리해본적이 없는 말씀을 장군님께서 하시는데 저으기 놀랐다. 사상은 민족자립, 근본립장은 조선민족자체의 힘으로 민족의 리익에 맞게 조선문제를 해결하는것이라고 그이께서는 말씀하시였다.

《남북협상의 성격으로 보아 민족자립에 손상을 주거나 조선민족에게 리익을 주지 못하는 문건이 채택되여서는 안될것입니다. 이 사상과 근본립장을 오늘 회담의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선생님들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지당한 말씀입니다. 응당 그래야 합니다.》

김구는 심중에 옹쳤던 응어리가 탁 풀리는 말씀을 들은듯 기쁨에 넘친 목소리로 찬성했다. 김규식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아 눈길을 돌리니 그는 입을 굳게 다물고 깊은 상념에 잠겨있었다.

《김규식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군님께서는 얼마간 심중해진 안색으로 물으시였다.

《나도 물론 찬성입니다.》

도무지 탈피하기 어려운 무거운 상념의 세계에서 가까스로 깨여난듯 김규식은 나직한 음성으로 말씀드렸다.

《그럼 오늘 회담의 근본원칙은 합의를 봤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합의를 본 기본원칙에 기초해서 26일에 선생님들이 내놓은 제안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앞에 놓인 문건의 첫장을 번지기는 했지만 한독당의 제안중에서 첫번째 조항을 뜬금으로 말씀하시였다.

《물론 우리도 조선민족이 굳게 단결해서 외세가 우리 나라를 분렬시키지 못하게 하자는 뜻에서 제안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38°선이라는것이 생겨서 우리 나라가 두동강이 난것이 우리 민족내부에 갈등이 있었기때문입니까? 38°선이 생긴것은 미국놈들이 우리 나라를 강점하기 위해 롱간을 피웠기때문입니다. 앞으로도 미제는 남조선을 계속 강점하고있으면서 북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군사기지로 만들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분렬의 비극을 겪고있는것은 미제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엇때문에 내부의 대립을 약화시켜 외부의 모순을 극복하며 령토분할을 하지 못하게 하자는 이러한 조항을 이번 협상에서 채택하겠습니까. 우리 민족의 통일열망과 애국적열의를 과소평가하는 어구를 쓰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부드러운 웃음을 얼굴에 띠우고 말씀하셨지만 음성은 준절했다. 김구는 가슴팍을 세차게 줴질린듯한 심정이였다. 자기의 명의로 제안한 그 첫째 조항은 확실히 조선민족을 모욕한 문구로 되여있었다. 어떻게 되여 그런 문구를 쓰게 되였으며 그런 조항을 첫머리에 놓게 되였는지 알수 없는 일이였다. 그러나 그의 머리에 가득차고 가슴을 뒤설레게 하는것은 면구한 생각이나 쑥스러운감이 아니였다. 조선민족이 모욕당하는것을 참을수 없어하고 이런 문제에서는 촌보의 양보도 하지 않을 결심을 지니신 장군님의 결연한 모습에 김구는 참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민족의 존엄을 지킴에 있어 장군님께서는 얼마나 견결하신가! 민족을 위한 마음에서도, 애국자로서도 얼마나 출중하고 영명한 장군님이신가!

김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군님께 깊이 머리를 숙이고 자기의 잘못을 사죄하고싶었다.

그이께서는 격해졌던 마음을 눅잦힌듯 화기에 넘친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을 이어나가시였다.

한국독립당에서 내놓은 제안중에서 남북의 애국자들이 새로운 구상을 설계하여 우방정부에 이의가 없는 통일정부를 수립하자는 조항이며 유엔상임리사회나 유엔의 새로운 결의로써 조선의 새 정부의 합법성을 인정받자는 조목에 대해서도 장군님께서는 김구에게 될수록 자극을 적게 주시려고 온화하고 나직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이 조항들도 조선민족이 처한 현정세를 념두에 두지 않은 제안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우방정부라면 필경 쏘미량국정부를 의미할것이다. 남조선에 단독괴뢰정부를 세우려고 별의별 음모를 다 꾸미고 남녘땅을 피바다속에 잠근 미국이 민족통일정부를 승인하겠는가. 우리가 앞으로 수립하게 될 민족단일정권은 전민족이 떨쳐나 유엔의 결의를 반대하는 투쟁을 통해 세우게 될 정권인데 유엔에서 어떻게 그 정부의 합법성을 인정하겠는가··· 납득이 가게 부드러운 음성으로 차근차근 말씀하시던 장군님의 안면에서 밝은 웃음이 언뜻 사라졌다.

《우방정부에서 승인을 하건말건, 유엔에서 뭐라고 하건 우리 민족은 반드시 통일정권을 수립해야 합니다. 민족의 자주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일정권이 필요합니다.》

장군님의 안면에는 결연한 빛이 어려있었다.

《우리 민족은 자주적인 정권을 창건할 권한이 있고 자격도 있으며 또 준비도 되여있습니다.》

지금 평양에서 진행하고있는 전조선의 56개 정당, 단체가 참가한 민족대화합회의가 그것을 말해주며 지난해 북조선에서 1947년도 인민경제계획을 초과완수한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며 원쑤들의 가혹한 탄압을 받으면서도 남조선인민들이 《단선단정》을 반대하는 과감한 피의 투쟁을 전개하고있는것이 그것을 립증해주고있다고 장군님께서는 말씀하시였다.

《조선민족은 단결력이 강하며 난관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민족입니다. 또한 세계의 그 어느 민족에 못지 않게 근면하고 성실한 민족입니다. 문제는 령도에 달려있습니다. 이러한 조선민족이 민족통일정부를 세울것을 요구하는데 무엇때문에 미국의 눈치를 보고 유엔의 결의를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김구는 온 방안에 울려퍼지는 장군님의 주장에 넋을 내맡겼다. 민족주의자들의 령수로 자처하면서 림정의 주석자리에 앉아있었지만 조선민족의 우수성을 장군님처럼 이렇듯 확신에 넘쳐 긍지높이 토로한적이 있었던가. 일제에게 예속되여 노예살이를 하는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일제를 타도해야 한다고 말은 했지만 그렇게 할수 있는 힘이 우리 민족에게 있다고 확신해서 한 말은 아니였다. 민족적량심을 버릴수 없어, 일제놈들에게 굴복할수 없어 림정주석에게 어울리는 말을 했을뿐이였다.

《일제놈들은 조선민족이 자주적으로 나라를 관리운영할 능력이 없다고 하면서 조선을 침략했습니다. 미국도 우리 민족이 국가관리능력이 없다는 구실을 붙여 수십년간의 위임통치를 렬강들의 회담때마다 주장해오다가 음모적인 방법으로 38°선을 조작하고 조선을 분렬시켰습니다. 조선민족이 정말로 자주성이 없고 국가관리능력이 없는가? 왜놈들과 싸울 때나 조국에 돌아와 건국을 하면서 우리는 조선민족이야말로 자주성이 강한 민족이며 완전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해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수 있는 민족이라는것을 확신할수 있었습니다.》

만일 일부 사람들이 아직도 각성되지 못해서 민족의 힘을 믿지 못한다고 해도 조선의 정치인은 그들을 민족자립사상으로 무장시켜야 한다고 장군님께서는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서있어야 할 땅은 조선의 땅입니다. 우리가 의거해야 할 력량은 조선민족이외에 다른 력량은 없습니다. 미국이나 유엔에 의존한다는것은 결국 미국에 예속된다는것을 의미합니다. 유엔도 지금 미국의 손탁에서 놀고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혁명을 시작한 첫날부터 민중을 믿지 못하고 민족을 믿지 못하고서는 조국광복을 달성할수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말씀을 끝낸 장군님께서는 커다란 충격을 받은 기색들인 김구, 김규식에게 또다시 담배를 태우라고 권하시였다. 김구는 그이께서 권하시여 고불통에 담배를 다져넣기는 했으나 불을 달 생각을 잊고 물주리를 입에 물었다. 그는 70이 넘은 고령에 이른 오늘에 와서야 장군님께서 조선민족을 강성케 하려고 모든 노력을 다해왔으며 애국의 일념으로 용감무쌍해진 투사들을 이끌고 조국광복의 위업을 이룩하시였다는것을 알았다. 장군님께서 백두산을 중심으로 일제의 경비가 그중 삼엄한 압록강, 두만강을 넘나들며 무장투쟁을 전개하신 까닭도 오늘에 와서야 똑똑히 알게 되였다. 방대한 회원을 가진 조국광복회가 국경지대는 말할것 없고 서울을 비롯한 국내깊이에까지 수많이 조직되였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는데 이것은 장군님께서 그때에 벌써 민족자립의 신념을 조선민족에게 심어주셨기때문일것이다.

38°선으로 해서 분렬된 전조선의 정치인들에게 협상을 호소하여 평양에서 민족대단합회의가 열리게 된것도 민족의 힘을 하나로 뭉치게 하시려는 장군님의 노력의 일환이 아니겠는가. 지난날에는 상상할수도 없었던, 우익민족주의자들의 대표자인 김구, 김규식이 장군님과 마주앉아 회담을 진행하고있는것도 민족의 힘을 키우시려는 장군님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림정주석이였으며 귀국후에는 경교장에 들어앉아 제왕행세를 해온 자기는 어떠했는가? 우선 민족주의자들의 령수로 자처해왔지만 민족을 선도할 심원한 민족관이 없었으며 장군님께서 지니신 거대한 영향력의 100분의 1, 1 000분의 1도 갖고있지 못했다. 그러니 무슨 이렇다할만한 큰일을 할수 있었겠는가.

경무국장으로 들어앉아 림정과 운명을 같이하기 시작한 후 20여년간 한두번의 테로를 조직하여 몇놈의 왜놈을 살상한것이 전부였다. 구태여 공적을 찾자면 림정의 명맥을 부지한것인데 겨레들중에서 상해림정이란것이 존재한다는것을 알고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였던가. 독립운동자들속에서도 파벌이 많아 림정을 지지하는 사람은 불과 수십명, 엄격히 따지면 그만한 수도 안될것이다.

그런데 림정의 법통을 인정해야 협상에 참가하겠다는 전제조건을 내걸었을뿐아니라 평양에 들어와서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그 법통문제를 꺼내서 좌석의 분위기를 흐리게 할번 했다.

(나를 민족주의진영의 령수라고 할수 있는가?)

장군님께서 다시 권하시여 고불통에 불을 달고 담배연기를 페부 깊숙이 빨아들이며 김구는 생각했다. 민족을 위한 경륜도 철학도 없고 민족을 선도할 능력도 없는 자기를 어떻게 민족주의진영의 령수라고 할수 있겠는가.

조선민족을 령도할분은 오직 한분 김일성장군이시다! 통일천하할 위인도 장군님이시다!

장군님께서는 말머리를 민족자주련맹의 제안에 돌리시였다. 깊은 생각에 잠겨 김구와 나누시는 장군님의 말씀을 듣고 앉았던 우사는 황급히 자리를 고쳐잡았다.

《장군님, 가볍고 불민한 행동인줄 아옵니다만 나의 제안은 없었던것으로 해주시였으면 합니다. 나의 제안에는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사옵니다.》

김구는 스스로를 뉘우치는듯한 김규식의 말을 듣고 어지간히 놀랐다. 한독당의 제안을 사리정연하게 분석하시는 장군님의 말씀을 듣고 신심을 잃었는가···

장군님께서는 정색을 짓고 김규식을 마주보며 물으시였다.

《선생님이 내놓은 5개 조항을 전부 철회하겠다는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중 1~2개 조항을 철회하겠다는것입니까?》

《재산의 사유화를 인정하고 경제의 국가적독점을 금할데 대한 첫째 조항은 북조선에서 중요산업국유화법령이 어떻게 돼서 시행되게 됐는지 알지 못해서 내놓은 제안이옵니다. 그외에도 내가 내놓은 제안에는 오늘회담의 원칙에 맞지 않는 조항들이 있다고 생각하옵니다.》

《우리도 그 조항은 오늘의 회담에서 론의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김규식선생이 철회하시겠다면 더 론의할 필요가 없을것 같습니다. 그러면 선생님들이 내놓은 제안에 대한 우리의 의견은 다 말한것으로 되니 우리의 대책안을 내놓을 차례가 된것 같습니다. 우리의 대책안을 놓고 토의를 하는데 찬성하십니까?》

김구도 김규식도 그렇게 해주시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장군님께서는 팔굽을 원탁우에 올려놓고 손가락을 꼽으며 4대구국대책을 말씀하시였다.

첫째 조항은 쏘련이 제의한대로 미군을 쏘련군과 동시에 남조선에서 철거시켜 조선의 완전자주독립을 위한 실제적조건을 보장하는것이라고 장군님께서는 말씀하시였다.

둘째 조항은 우리 강토에서 외국군대가 철거한 다음에 내란이나 그밖의 무질서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담보하는것이라고 하고나서 그이께서는 왜 그러한 조항을 구국대책안에 넣을 필요가 있는가를 설명하시였다.

《선생님들도 아시는것처럼 오늘 저녁에 남북조선 정당, 단체 지도자들이 모란봉극장 별관에서 공동성명을 채택하게 됩니다. 그 공동성명은 남북협상참가자들의 최종선언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성명은 이 고위급회담에서 합의된 문건을 기초로 삼을것입니다.》

내란이나 무질서가 일어나지 않게 담보한다는것은 협상에 참가한 북과 남의 정당, 단체들이 쏘미 량군이 철거한 후 조선문제를 자체의 힘으로 해결할 확고한 결의를 표명하는것으로 된다고 그이께서는 말씀하시였다.

셋째 조항은 우리 강토에서 쏘미 량군이 철거한 다음 남북조선 정당, 단체들이 참가하는 전조선정치위원회를 소집하여 전민족의 총의를 모은 통일정부를 세울 대책을 세우는것이며 넷째 조항은 남조선단독괴뢰정부는 민족의 의사를 반영한 정권이 될수 없다는것을 명백히 하면서 반대배격하는것이라고 하시였다.

《남북협상에 참가한 남북조선 정당, 단체에 망라되여있는 당원들과 맹원들은 천여만명에 달합니다. 천여만명이 반대하는 남조선단독괴뢰정부가 어떻게 민족의 의사를 반영했다고 할수 있겠습니까. 서울에 세워질 단독정부는 민족을 반역한자들을 긁어모아서 미제가 조작해낸 매국정권에 지나지 않습니다.》

김구는 민족이 나갈 길이 일목료연하게 눈앞에 보이는것 같았다. 장군님의 말씀은 한갖 대책안이 아니라 조선민족이 나갈 길을 명시한 대강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감동되고 흥분한 김구는 곰방대를 쥔 손을 흔들며 명안이라고, 매국노가 아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쌍수를 들고 찬성할 구국대강이라고 웨치듯 말했다. 장군님께서는 어떻게 전혀 의견이 없겠는가고 하며 말을 하라고 거듭 권하시였다. 김구는 말할것 없고 김규식도 의견이 없다고 하며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장군님께서는 호방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씀하시였다.

《응당 의문을 품어야 할 문제가 있는데도 말씀들을 안하시니 우리가 말을 하겠습니다. 우리가 내놓은 구국대책에는 쏘련이 제의한대로 쏘미 량군이 철군한 후에 공동성명에 서명한 정당, 단체들이 해야 할 과업이 명기되여있습니다. 그런데 미군은 남조선에서 철수할 의향을 전혀 보이지 않고있습니다. 반대로 괴뢰정권을 조작해내서 미군의 남조선강점을 합법화하려고 하고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미군은 남조선에서 철수하기는커녕 북조선까지 침략하려고 하고있다는것입니다. 공동성명에서 천명했다고 해서 철군에 대해서 생각하지도 않는 미군이 나가기를 기다리면서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남조선괴뢰정부가 조작되면 미국은 선참으로 이 매국정권을 승인할것이고 유엔도 괴뢰정부의 합법성을 인정할것입니다. 이런 때에도 미군이 철수할 때까지 민족통일정부를 세우는것을 미루어야 하겠습니까?》

김구의 가슴속에서는 참을길 없는 분격이 소용돌이쳤다.

《조선민족의 총의를 담아 요구를 해도 미군이 남조선에서 철군하지 않을것으로 장군님께서는 확신하십니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믿을만한 근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협상은 해서 무엇하며 성명은 내서 무엇합니까?》

《민족자체력량을 꾸리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오늘저녁 우리가 서명하게 될 공동성명에는 조선문제를 공명정대하게 해결할수 있는 방안이 담겨있으며 전체 조선민족의 요구가 반영되여있습니다. 그 성명을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것은 조선민족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기 나라의 리익을 위해 조선을 희생시킬 결심이라는것을 말해줍니다. 앞으로는 단결된 조선민족과 침략자인 미국과의 투쟁이 전개될것입니다.》

김구는 숙연한 감정에 휩싸여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도 이번에 진행되는 남북협상이 민족단합을 목적하고있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좌익으로부터 우익까지 정견이 다른 각당각파, 전민족을 단결시켜 민족자립을 위한 투쟁에 불러일으키기 위한 성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얼마나 웅대하고 심원한 구상밑에 민족을 이끌어나가는 위인이신가!

김구는 얼혼을 잃은 사람모양 그저 경모의 마음을 담아 젊으신 장군님을 이윽히 마주보기만 했다.

그이께서는 미군이 남조선에서 철거하지 않는 조건에서 어떤 투쟁을 전개해야 하겠는가, 이 문제를 구국대책안에 반영하지 않은것은 북조선에서 해야 할 과업과 남조선에서 해야 할 과업이 다르고 또 정당들과 단체들마다 투쟁방법이 달라야 하기때문에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고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남북협상에 참가한 모든 정당, 단체들이 접수할수 있는 대책안을 내놓았습니다. 고위급회담에서는 근본적인 구국대책을 론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선생님들이 미군이 철거하지 않는 조건에서 어떤 투쟁을 전개하겠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우리와 토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다시 또 마주앉을 기회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기회를 다시한번 가졌으면 합니다. 그때는 한국독립당 상무위원들이 모두 참가했으면 좋겠습니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자기와 같이 산전수전을 다 겪은 늙은이를 그렇게도 감동시키는 장군님과 마주앉을 기회를 다시한번 갖고싶었다.

《의사를 소통할 필요가 있다면 1번만이 아니라 2번, 3번이라도 시간을 내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김구의 청원을 시원스럽게 받아들이시였다.

 

김규식은 백범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회담이 끝났는데도 백범이 자리에서 일어날 기색을 보이지 않아 김규식은 먼저 숙소에 돌아왔던것이다. 련공을 결심했다고 했으니 필경 장군님께 여쭐 말이 있어 의자에 눌러앉아있었을것이다.

아직도 아퀴짓지 못한 번거로운 상념을 안고 응접실안을 거닐던 그는 김구의 승용차가 철문안으로 들어서는것을 띠여보았다. 자동차는 곧바로 김규식이 들어있는 숙소를 향해 달려왔다. 김규식은 백범을 맞이하려고 응접실문을 열고 복도에 나섰다. 김구는 보자기에 싼 인장함을 들고 활개치며 복도를 걸어오고있었다. 그는 응접실에 들어서더니 인장함을 원탁우에 놓고 쏘파에 몸을 던졌다. 우선 서둘러 곰방대를 꺼내여 고불통에 담배를 다져넣었다. 이윽고 담배연기를 내불며 애써 흥분을 눅잦힌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대한민국림시정부인장을 장군님께 바칠 결심을 하고 뒤에 남았었네.》

김규식은 여간만 놀라지 않았다. 림정의 인장을 바칠 생각을 하다니? 자기 목숨보다 더 귀중하게 여겨오던 인장을 바칠 결심을 하다니?··· 3. 1봉기의 결실로 림정이 태여났다고 생각하면서 림정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백범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던가. 인장을 바친다는것은 림정을 바친다는것을 의미하는데 30년간 명맥을 유지해온 대한민국림시정부의 인장을 바칠 결심을 할줄은 생각도 못했던 일이였다. 남북협상에 응하면서도 림정의 법통을 인정해줄것을 전제조건으로 삼은 백범이 아니였던가.

《나는 협상에 참가하기 위해 38°선을 넘으면서도 한가지 문제에서만은 확신을 가질수 없었네. 수많은 정당들이 란립해있고 거기에다 남북으로 분렬되여있는 조선민족이 화합할수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오늘 전민족을 단합시킬뿐만아니라 외세와 싸워서 나라의 자주독립을 도모할 위인이 바로 김일성장군이라는것을 확실히 알게 되였네.》

김구는 자못 흥분하여 장군님께서 고위급회담의 기본원칙으로 삼은 사상과 립장의 정당성을 곰방대를 쥔 손을 내두르며 부르짖듯 이야기했다.

《우리가 무엇때문에 림정을 지켜왔나? 우리가 환국해서 무엇때문에 하지나 리승만과 싸워왔나? 조선의 자주독립을 위해서가 아니였나. 그런데 우리에게 자주독립을 위한 지론이 있었나? 없었다는것은 어페겠지만 저급한 생각을 했다는것은 오늘 회담에서 여실히 증명되지 않았나.》

한독당에서 7개 조항을 마련하느라고 당의 중진들이 닷새동안이나 론의를 거듭했지만 조선민족을 모욕하는 어구가 담겨있는줄 알지도 못하고있었다고 김구는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내 경교장에 들어앉아 령수행세를 하기는 했네만 사실 나는 조선민족이 미쏘 량국에 또다시 롱락을 당할 비운에 처했다고 생각해왔네. 우사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네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단 말이네. 마지막기대를 이번 협상에 걸고 평양에 와서 7개 조항을 제안했네. 장군님께서는 우리의 제안에 기초해서 대책안을 내놓았다고 하셨네만 우리의 제안에 참작할만한 점이 뭣이 있었나. 왜 이렇게 됐나? 나에게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조선민족을 선도할 방략도 지론도 없었기때문이네. 나는 38°선을 넘어오면서 북조선을 쏘련에 먹히운 땅이라고 생각했네. 북조선을 민주기지라고 하니 공산주의자들의 전국적화를 위한 기지일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남조선처럼 외세가 좌지우지하는 조국의 절반땅이라고 생각했단 말일세. 그런데 사실은 어떤가. 나는 북조선을 조선의 완전자주독립을 위한 기지로 보았네. 우사는 어떻게 보았는지 모르겠네만 나는 그렇게 보았네.》

백범이 자기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는것을 안 김규식의 생각은 더욱 깊어졌다. 형님대접을 하면서도 그를 고루하고 완고한 고집으로 해서 정계에서 밀려날 날이 머지 않았다고 김규식은 생각하고있었다. 그런데 북조선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한것은 말할것도 없고 결단성있는 결심까지 했다. 자기는 아직 그 어떤 결심도 하지 못하고 모대기고있는데 백범은 그렇지 않았다.

김구는 담배연기를 힘있게 빨며 결연한 음성으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결국 림정의 법통을 인정받자고 한것은 조선민족을 단합시키시려는 장군님의 성업을 훼방하는 행동이였다는것을 나는 깨달았네. 법통을 인정받을것이 아니라 림정에 의거했던 애국지사들을 장군님의 성업에 합류시키는것이 옳다고 나는 생각했네.》

《그런데 왜 인장을 도로 가지고 왔습니까?》

김구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가 감동에 휩싸인 음성으로 말했다.

《장군님께선 참으로 웅심깊고 도량이 넓은분이시네.》

김구는 담배연기를 날리며 때로는 상념에 잠겨 스스로의 말을 음미하기도 하면서 인장을 다시 들고오게 된 사연을 이야기했다.

인장을 바칠 결심을 하게 된 자기의 심정을 말씀드리는 김구의 이야기를 그이께서는 주의깊이 들으시였다. 그이께서는 김구의 말이 끝났을 때 백범의 손을 힘있게 부여잡으시였다. 그동안에 여러차례 편지를 주고받기도 하고 회담도 여러번 했지만 우리의 마음을 이렇게 깊이있게 리해하고 믿어줄줄은 몰랐다고 하시는 그이의 음성은 도간도간 갈리군 했다. 보자기를 푼 그이께서는 함뚜껑을 열고 인장을 꺼내들고 손기름이 밴 손잡이며 새겨놓은 글자들을 하나하나 주의깊이 뜯어보시였다. 인장을 다시 함안에 넣은 그이께서는 뚜껑을 닫고 림정이 걸어온 다난하고 고난에 찬 력사를 말해주듯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장식쇠가 우그러들기도 한 함을 자세히 살펴보시며 상해로부터 중경에 이르는 험난하고도 아슬아슬한 길을 이 인장과 함께 운명을 같이한 백범선생의 고생을 자신께서도 알고계신다고 하면서 림정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애국적인 행동이라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림정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였을 때는 인장을 앞에 놓고 새로운 결심을 다졌을것이라고 생각깊은 음성으로 말씀하신 장군님께서는 인장함을 다시 보자기에 싸시였다.

《우리는 이 인장을 받을수 없습니다.》

그이께서는 인장함을 김구앞으로 밀어놓으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30년간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고 지켜온 인장을 우리에게 맡기고 남조선에 나갈 결심을 한것은 고맙게 생각하지만 인장을 받을수는 없다고 하시였다.

《우리는 선생님의 그 마음이면 됩니다. 이 인장은 선생님에게 더 필요합니다. 협상회의에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고 해도 이것은 투쟁의 시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실 백범선생의 위치가 중요한것은 림정주석이였기때문이 아닙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말씀에 큰 충격을 받은 모습으로 장군님을 우러러보며 앉아있던 김구는 간절한 소원을 담아 인장을 바칠 결심을 하기에 이른 또 다른 리유를 말씀드리였다. 미국놈들과 리승만은 남조선에 수립될 단독괴뢰정부가 림정-인장에 밝혀있는바와 같이 대한민국림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기라도 한것처럼 그 무슨 이양의식을 할 잡도리를 하고있다. 리승만이 경교장에 찾아와 그런 뜻을 이미 내비쳤다.···

《그럴수록 인장이 더욱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인장을 맡기고 나가면 선생님은 우리와 손을 잡았다고 비방을 받게 될것입니다. 심한 경우에는 우리한테 인장을 뺏기고 서울에 돌아왔다고 악선전을 할수 있습니다. 인장을 갖고계셔야 선생님은 림정주석의 직권을 행사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선생님이 앞으로 투쟁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장을 갖고 서울에 나가셔야 합니다.》

김구는 고불통의 재를 털며 북받치는 감개를 누를길 없는듯 말했다.

《이 김구가 이름이 전혀 없지 않은 민족주의진영의 령수로 자처하는 사람인데 장군님께서는 인장을 받으려고 하시지 않더란 말이네. 그것도 대한민국림시정부의 인장을 말이네.》

김구의 말을 들은 김규식은 놀람과 감동,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격정에 휩싸였다. 정계에 이런 숭고하고도 눈물겨운 도의라는것이 언제 있어보았던가. 백범이 림정의 인장을 장군님께 바쳤다는것을 신문과 방송을 통해 보도하면 일대 선풍을 불러일으킬것은 더 말할것도 없고 남북협상이 어떤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는지 알게 하는 충격적인 사변으로 될것인데 인장을 받지 않으시다니··· 장군님께서 인장을 돌려주신것은 김구의 앞으로의 활동에 큰 기대를 걸고계시기때문일것이다. 북조선의 단결된 정치력량과 남조선의 좌익과 중간파가 련합을 하면 남조선 우익의 력량은 별로 대단한것도 아닌데 자기들의 역할을 그렇게도 중시해주시는가. 김규식은 순결한 애국심의 새 경지를 새롭게 발견한것 같았으며 자기의 사명감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깊이 생각하게 되였다.

 

다음날은 전세계로동계급의 전통적인 명절인 5. 1절이였다. 이날 열병식이 있다는 말을 들은터이지만 로동계급의 명절이니 얼마되지 않는 수백명의 군인들이 로동자시민들속에 섞여 이날을 경축할것이라고 김규식은 생각했었다. 장군님께서는 휴계실에서 잠시 쉬는 사이에 김규식의 건강을 념려해주기도 하고 김구, 김규식을 위해 푹신한 의자를 주석단에 놓으라고 일군들에게 지시도 하시였다.

《김구선생은 나이가 많으시고 김규식선생은 무거운 병을 갖고계시니 편안하게 앉아계실수 있는 의자를 올려다놓으시오.》

김규식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벅찬 감동을 느끼며 그이의 존안을 마주보았다. 젊은 나이에 늙은이의 고충을 헤아리기란 쉽지 않은데 어쩌면 이렇게도 세심하신가! 그는 장군님의 부축을 받으며 주석단에 올라갔다.

김규식은 깜짝 놀랐다. 드넓은 역전광장에 현대적무기로 무장한 조선의 군대가 질서정연하게 대오를 짓고 부동의 자세로 서있는데 끝을 가려볼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는 시력을 긴장시켜 네모진 밀집대형을 형성한 대오들을 깐깐하게 훑어봤다. 특히 지휘관들에게 주의를 집중했다. 고문명색으로 군인들을 훈련시킨 쏘련군장교나 하사관이 중대장, 대대장옆에 서있지 않는지 알아보려는것이다. 한명의 쏘련군인도 눈에 띄지 않았다. 주석단을 둘러봤다. 남조선에서 진행되는 각종 명색의 열병식에는 미군장령, 장교들이 태반을 차지하고 조선사람이란 김규식급의 명인 2~3명에 또 그만한 수의 고위급 조선군인들이 주석단에 등단하는것이 통례였다. 그런데 오늘의 이 주석단에는 장군님옆에 단 1명의 쏘련군장령이 서있을뿐이였다. 이 자리에서도 김규식은 새로운 발견을 한것 같은 느낌이였다. 장군님옆에 서있는 쏘련군장령은 직급으로 보아 북조선주둔군사령관이 분명한데 자기들에게는 나이대접을 하며 의자에 앉게 하시였지만 쏘련군사령관은 서있게 되여있었다. 남조선이라면 이러한 일이 있을번이나 한 일인가. 김구, 김규식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있는 주석단에 하지에게 서있으라고 한다면 그는 례의고 뭐고 가릴 생각을 하지 않고 사령부로 가버렸을것이다. 이날이 전세계 로동계급의 전통적인 국제적명절이여서 장군님께서는 쏘련군사령관을 초청한것 같았다.

열병식이 시작된다는것을 알리는 랑랑한 나팔소리가 숙연한 정적에 휩싸여있던 역전광장에 울려퍼졌다. 조선인민군의 창건자이신 김일성장군께 보고를 드리는 의식절차가 진행된후 보병대렬이 지축을 울리며 보무당당하게 주석단앞을 행진해갔다. 수백명을 한사람의 의지로 하나같이 움직이게 하는 대오의 선두에 선 지휘관들도 분명히 조선청년이였고 그들의 구령소리도 조선말이였으며 총을 비껴들고 마치 장쾌한 선률에 맞추어 춤을 추듯 씩씩하게 행진해나가며 만세의 함성을 웨치는 군인들도 조선청년들이였다. 정규적인 민족군대를 무어주신 장군님께 경모의 마음을 담아 삼가 인사를 드리며 자동총부대, 경기관총부대··· 조선의 군력을 긍지높이 자랑하는 무장대오가 끝없이 흘러갔다. 정미년(1907)에 조선군대가 마지막으로 일제놈들한테 해산을 당할 때 너무나도 통분하여 가슴을 치던 조선민족이 이렇게도 위력한 민족군대의 탄생을 보게 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김구가 격정을 참을길 없는 모습으로 궁싯거리며 앉아있다가 장군님께 물었다.

《정규군대를 건설하자면 필요한것이 많은중에서도 지휘관문제를 해결하는것이 제일 어려운 일인줄 알고있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서 이 막강한 무력을 창립하셨소이까? 항일전을 하실 때 데리고 싸우던 지휘관들을 모체로 삼으셨소이까?》

《우리가 조국에 돌아올 때 데리고온 유격대지휘관들이 군건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본은 인민들의 열의가 높은것이였습니다. 북조선청년들은 군대가 되는것을 첫째가는 영예로 생각하고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말파리에 중기관총을 싣고 주석단앞을 지나가는 대오에 답례를 보내고나서 기관총의 손잡이를 틀어쥐고 행복한 웃음으로 해서 터지게 부푼 얼굴로 그이께 경모의 인사를 드리는 한 청년을 가리키시였다.

《지금 우리쪽을 바라보며 웃고있는 청년군인이 있지 않습니까? 저 동무의 이름을 최성근이라고 하는데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머리태를 늘이고 서당공부를 하고있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최성근이 이 열병식에 참가하기까지의 한해도 안되는 짧은 사이에 어떤 운명적인 전환이 있었는가를 간단히 말씀하시였다. 김규식은 만경대에서 김성란한테 들은 말이 있어 장군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뜻을 더 깊이 리해할수 있었다.

《우리는 군대를 단순히 조국보위를 위한 력량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건국위업을 달성하기 위한 중요한 동력으로, 청년들과 가정을 낡은 사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교양장으로 보기도 합니다. 저 최성근동무의 아버지가 아들이 열병행진을 하는것을 보겠다고 평양에 올라왔다니까 지금 관람대에 있을겁니다.》

김성란이 애쓴 보람이 있어 최로인이 련석회의대표들과 함께 관람석에 서있을수 있는 행운을 지니게 됐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시였다. 김규식은 최로인을 찾느라고 애쓸것도 없었다. 주석단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마련된 대표들을 위한 관람대의 좌측 계단에 마치 춤을 추듯이 두손을 높이 들고 내두르며 뭐라고 웨치는 늙은이가 내려다보였다. 한손에는 거치장스러워 벗어든 갓을 들고 다른 손에는 장죽을 든 령감이 나이도 잊고 아들의 이름을 웨치고있었다. 자기를 좌상으로 한 최씨일가의 운명적인 전환이 너무도 기뻐 만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춤을 추고있는것 같았다. 그옆에 최성근에게 손을 흔드는, 웃음이 한껏 피여난 김성란의 해볕에 그을은 얼굴이 보였다.

제철소, 궁벽한 산간벽지의 씨족마을, 지어 군대까지 민족자립을 위한 장군님의 리념실현을 위한 변혁의 터전으로 되고있다는것을 김규식은 알수 있었다.

김구가 또 물었다. 무기는 어떻게 해결하셨는가? 쏘련군한테 이양받았는가고 장군님께 물었다. 장군님께서는 호방하게 웃으며 아무리 친선적인 나라라고 해도 무상으로 무기를 넘겨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하시였다. 무기를 무상으로 넘겨받은 군대는 그 나라에 예속된 군대가 되기 십상이라고 하면서 일부 경무기는 자체로 생산한것이며 아직도 우리 나라에서 만들수 없는 기동수단이나 중무기, 포화력 같은것은 무역을 통해 사들여온것이라고 하시였다.

김규식이 놀랍게 생각된것은 옆에 쏘련군사령관이 있으며 그뒤에는 통역원들이 서있는데 장군님께서 거침없이 민족자립에 대해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이것은 방대한 무력을 북조선에 두고있는 쏘련도그이의 리념을 묵인 혹은 지지할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 아니겠는가. 김규식은 아직도 명치끝에 매달려있던 채 풀리지 않은 체증이 순간에 풀려 온몸이 날아오를듯 가벼워지는것 같았다. 그의 결심을 방해하던 체념과 의혹, 주저 그 모든것이 마지막 찌끼까지 걷어안고 흩날아버린듯싶었다.

갑자기 갈마바람에 날려온 매지구름이 하늘을 뒤덮더니 콩알만한 비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김규식은 얼굴을 때리는 비방울을 감촉하기는 했지만 별로 마음을 쓰지 않았다. 자기의 운명을 결심해야 할 이 마당에서 비발에 옷을 적시는것쯤 무엇이 그리 대수로운 일이겠는가. 문득 비방울을 느낄수 없게 되고 머리우에서 긴장한 사색을 방해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젖히고 눈길을 들었다. 수수한 양복차림의 젊은이가 우산을 펼쳐들고 서있었다. 옆에 앉아있는 김구를 돌아봐도 그의 뒤에 우산을 펼쳐든 청년이 서있었다. 김구가 놀란 눈으로 장군님께서 서계시는쪽을 바라보자 김규식도 고개를 돌렸다. 장군님께서는 대줄기처럼 퍼부어대는 비를 그대로 맞으시며 서계시였다. 로천대회장인 주석단에 푸근한 의자를 깔고 앉아있는것만도 송구한데 비를 맞고계시는 그이를 옆에 두고 우산밑에 들어앉아있다는것이 말이 되는가. 김규식은 황황히 뒤를 돌아보며 젊은이에게 말했다.

《장군님께 왜 우산을 받쳐드리지 않으시오? 장군님께서 우산을 쓰시지 않으면 나도 우산을 쓰지 않겠소.》

우산을 들고 서있는 젊은이가 김규식을 납득시키려들었다.

《장군님께서는 군중들이 비를 맞고있을 때 우산을 쓰시는 일이 없습니다. 장군님께서 선생님들에게 우산을 받쳐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람이 사나와서 옷이 젖을수 있는데 숙소에 돌아가면 곧 마른 내의를 입을수 있게 준비를 하라는 말씀도 계셨습니다.》

김규식은 뜨거운 격정이 가슴속에서 치밀어올라 더 말을 못했다. 비를 그을수 있게 우산을 펼쳐들고 서있게 하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속옷걱정까지 하시는 장군님! 군중들이 비를 맞을 때 우산을 쓰는 일이 없으신 령도자···

사나운 비발이 쏟아져내렸지만 장엄한 군중시위는 시작되였다. 장군님께서는 비를 맞으며 주석단 한가운데에 서서 발을 구르고 두손을 내두르며 앞을 지나는 37만 평양시민들의 환호에 밝은 웃음을 지은 안색으로 손을 들어 답례를 보내시였다. 주체37(1948)년도 인민경제계획을 기어이 초과완수할 결의를 보여주는 가장물과 구호판을 들고 목소리를 합쳐 웨치기도 하고 환호도 하며 주석단앞을 지나는 로동자, 농민들, 황철에서 정준택이 말을 할 때는 그저 귀결에 흘려들었을뿐이던 수자들, 자립적민족경제건설을 목적한 공작기계를 비롯한 생산항목들이 이제는 단순한 수자와 항목이 아니라 민족의 래일을 말해주는 생동한 화폭으로 눈앞에 안겨왔다. 남북협상의 성과를 축하하는 구호판과 가장물을 들고 평양시민들이 남조선대표들에게 두팔을 높이 쳐들고 내두르며 목청을 돋구어 환호를 보내면서 주석단앞을 지날 때 김규식은 갑자기 눈앞이 뿌잇하게 흐려졌다. 창창한 미래를 확신하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행진하는 청년학생들··· 김규식은 장군님을 돌아봤다. 머리와 얼굴은 말할것 없고 옷도 흠뻑 젖어있었다. 시위군중들도 그 모양으로 전신이 물투성이였지만 모두들 환희에 넘쳐 목청을 다해 장군님께 최대의 경의를 드리고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령도자와 인민이 한마음한뜻으로 단합된 눈물없이는 대할수 없는 아름답고 감격적이며 장쾌한 대화폭이라고 해야 할것이 아닌가!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시는 장군님, 인민이 비를 맞을 때에는 자신께서도 비를 맞으시고 인민들이 조밥과 죽으로 끼니를 에울 때는 자신께서도 그런 음식을 드시며··· 장군님께서 어째서 이런 로고를 바치시겠는가? 령도자와 인민이 한뜻으로 뭉치지 않으면 건국위업을 성취할수 없다는 철리를 신념으로 삼고계시기때문이 아니겠는가. 자신께서는 인민들과 함께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도 남조선의 고위대표들을 각별히 우대해주시는것은 외세의 간섭을 배제한 민족통일정부를 수립하자면 전조선민족의 단결, 바로 이 단합된 민족의 힘에 의거하는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굳게 믿으시기때문이 아니겠는가!

김규식은 비를 맞으며 군중에게 답례하시는 장군님의 모습에서 눈길을 뗄수가 없었다. 도저히 그 성과를 기대할수 없다고 여겼던 남북협상이 장군님께서 바라는 민족대화합을 이룩하고 페막을 앞두게 된것도, 8. 15후 불과 3년사이에 그렇듯 막강하고 정예화된 현대적정규무력을 창건할수 있은것도, 북조선의 전체 인민이 민족의 자주위업을 완수하기 위해 일신을 바칠 결심을 하고 그이께 삼가 충성의 결의를 다지는것도 장군님께서 그렇듯 투철한 리념을 지니고 로고를 다해오신 결과가 아니겠는가.

갈마바람에 밀려들었던 무거운 매지구름은 북동방향으로 날려가면서 컴컴한 색갈이 한결 밝아졌다. 비발이 가늘어지면서 실비로 변해갈즈음에 시위는 끝났다. 흠썩 옷을 적신 장군님가까이에 다가서기가 면구했지만 김규식은 출입문쪽으로 향하시는 그이옆으로 급히 걸어갔다.

《소청이 있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장군님께서 김규식의 머리로부터 신발까지 일별하시였다. 무릎도리가 얼마간 젖었을뿐 전체로는 마른옷인것을 본 그이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비꼈다.

《계단이 급해서 도와드리고싶은데 제 옷이 이렇게 젖어서··· 무슨 일입니까?》

《장군님께서 오늘 얼마나 큰 수고를 하시는지 나는 봤습니다. 생각같아서는 소청을 후날로 미루고싶소이다만 내 마음이 조급해 청을 드리는것이옵니다. 내게 시간을 좀 내주실수 없겠소이까? 많은 시간을 침범하지는 않겠소이다. 반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김규식이 한발자욱 앞으로 나서서 장군님의 젖은 손을 덥석 부여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장군님께서는 참으로 큰것을 성취하였소이다.》

그이께서는 김규식이 무엇인가 비상한 결심을 했다는것을 감촉하시였다.

《나는 젊은 사람이니 지금이라도 시간을 낼수 있지만 오늘은 날씨가 사나와서 고생이 많으셨겠는데 선생님이 지나친 무리를 하시게 되지 않겠습니까?》

우산아래서 푸근한 의자에 앉아 조선의 앞날을 확신할수 있는 참으로 감동적인 화폭을 보게 해주시고도 고생을 했다고 하시는것이다. 눈굽이 뜨거워져 눈을 슴벅거리고 서있는 김규식을 지켜보던 장군님께서 말씀하시였다.

《점심때는 푹 쉬십시오. 선생님이 급하게 할말이 있다고 하시니 좀 늦은 오후에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4시쯤에 사람이 갈것입니다.》

김규식은 일대 소원이 성취되였다는 안도감속에 웃음이 어린 눈으로 장군님을 우러러보다 머리를 숙이였다.

정각 4시에 점잖은 젊은이가 승용차에 앉아 상수리숙소를 찾아왔다. 비를 머금은 먹장구름은 갈마바람에 갈가리 찢어져 북동쪽 멀리로 날려가버리고 그뒤에 매달린 꼬리모양의 가벼운 구름사이로 초여름의 찬연한 해빛이 쏟아져내리고있었다. 뒤설레는 마음을 눅잦히려고 애쓰며 정원을 거닐던 김규식은 곧 승용차에 올라앉았다.

승용차는 물로 씻어낸듯한 모란봉의 깨끗한 산책길을 천천히 에돌아 드넓은 보통벌을 부감할수 있는 연두빛 2층집앞에 이르렀다. 젊은이는 옷매를 바로잡으며 연두빛집에 들어갔다 나와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이의 전용차가 현관밖에 서있는데 장군님께서는 집안에 계시지 않는 모양이였다. 문득 등뒤에서 장군님의 음성이 들렸다. 김규식은 급히 몸을 돌렸다. 그이께서는 소낙비에 씻긴 신록이 짙은 다복솔과 잡관목사이의 산책길을 걸어내려오고계셨다.

《산보를 좀 하느라고 늦었습니다. 초여름 청취가 어떻게나 희한한지 시간가는줄을 몰랐습니다. 들어가십시다.》

장군님께서는 손에 들고내려온 꽃들을 젊은 일군에게 넘겨주며 말씀하시였다. 계단을 오를 때는 김규식을 부축해주며 발밑을 조심하라고 하신다.

장군님과 김규식이 들어선 넓지 않은 방에는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눌수도 있고 손을 맞잡을수도 있을만큼 두개의 쏘파가 마주 놓여있었고 쏘파옆에 차탁이 붙어있을뿐 얼굴을 마주보는데 방해가 될 가구는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았다. 차주전자가 놓인 원탁도 방구석으로 밀려나있었다.

《격식이 없이 이야기를 나누자면 이런 자리가 필요할것 같아 좁은 방에 준비를 시켰습니다. 속을 터놓고 말을 나누는것을 무릎을 맞대고 이야기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말씀도 하시고 담배도 태우면서 하고싶은 말을 다 하십시오. 선생님과 내가 언제 이렇게 마주앉을수 있는 기회를 얻겠습니까.》

장군님자신부터 속을 툭 터놓을 결심인듯 밝게 웃으며 우선우선 말씀하시였다. 김규식은 장군님을 만나뵐 결심을 할 때 자기의 루추하고 어리석은 주저, 편협한 의문같은것은 일체 입밖에 내지 않을 생각이였다. 후회막급한 지난날을 사죄하는외에 할말이 없다면 구태여 장군님께 소중한 시간을 내달라고 청원을 드릴 필요도 없을것이다. 말없이 38°선을 넘어가 스스로의 잘못을 민중앞에서 사죄하고 목숨을 끊어버리면 그만일것이다. 그가 면담을 요청한것은 새 출발을 결심한탓이며 이를 위해서는 장군님의 조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자기에게서 그 무엇인가 중대한 말을 들을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시며 정말로 무릎을 맞대고 이야기할수 있는 이런 오붓한 자리를 일부러 마련해주시니 김규식은 그저 황송하기 그지없을뿐이였다.

《나는 분에 넘친 대접을 받을 사람이 못되옵니다.》

김규식은 자기의 결심을 뒤로 미루고 말의 서두를 이렇게 뗐다.

《어째서 자신을 그렇게 낮추십니까? 선생님은 자신을 낮출 필요가 없는분입니다.》

《그것은 장군님께서 한없이 너그러우시고 또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직 다 모르기때문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나는 장군님의 민족자립의 대경륜을 불신했고 남북협상을 쏘련의 적화방략일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련석회의에 일부러 얼굴을 보이지 않은 사람입니다.》

《우리도 선생님의 생각을 대체로 짐작하고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생님이 량심인의 고민을 하고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문제에 크게 개의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처럼 해외에서 오래동안 망명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시련을 겪은분이 어떻게 우리의 사상을 쉽게 받아들일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선생님의 고민을 민족을 위해 여생을 보람있게 바치기 위한 탐색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탐색과정이라고 간주하셨단 말씀입니까? 그러니까 상수리숙소에 오신것도 나의 탐색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습니까?》

《무거운 병을 갖고계신 선생님이 평양에 오셨으니 문병을 하는것이 도리라고 생각해서 찾아가긴 했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선생님이 말한 그런 목적이 없었던것은 아닙니다.》

김규식은 밝은 웃음을 띠우고 말씀하시는 장군님의 존안을 놀란 눈으로 마주봤다.

《나는 지금까지 조선민족을 긍지높은 자주적인 민족으로 되게 하시려는 장군님의 위업을 방해해왔다고 해야 할 사람입니다. 나의 이런 어리석고 협착한 행위를 량심인의 고민으로 간주하셨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노여움이 없이 나를 용서하셨단 말씀이신데 정말 그러하셨다면 장군님께서는 너무나 관대하셨소이다.》

부끄럼을 타며 눈길을 떨구어야 할 이야기를 하면서도 김규식은 밝은 빛이 타는듯한 안청으로 장군님을 우러러보며 말했다.

《노엽게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안타깝기는 했습니다. 내가 노엽게 생각하지 않은것은 선생님이 민족을 위해 오랜기간 노력을 바쳐오셨구 광복후 탈선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미국놈들의 롱간에 걸려든것이지 선생님의 본심은 그렇지 않았다고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김규식의 무게있는 자세가 비로소 허물어졌다. 맑은 빛으로 불타던 수북한 눈섭밑의 검은 눈도 바르르 떨리는 눈시울에 반쯤 가리우고 유난히 큰 머리도 밑으로 처져내렸다. 입가의 깊은 주름이며 두툼한 입술도 고통스러운 속죄를 결심한 사람의 몸부림이 느껴졌다. 문뜩 얼굴을 든 그는 통통하고 자그마한 손을 부르쥐고 마음의 균형을 잃은 사람의 성급한 목소리로 다급히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소이다. 장군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것은 나에 대해 너무나 너그러우셨기때문이옵니다. 나는 남조선정권 대통령이 될 생각을 하고 평양에 온 사람입니다. 하지가 찾아와서 담보를 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어서 대통령이 될 생각을 한것은 아니오이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남조선민중에게 다소라도 유익한 일을 할수 있을것 같아 그런 결심을 한 사람이웨다. 나는 리승만과 경쟁을 해서 그를 꺼꾸러뜨릴 결심이였소이다.》

장군님께서는 뜻밖의 말에 저으기 놀라시였다. 성시백한테서 하지의 담보가 있었다는 통보를 받기는 했지만 그이께서는 그것을 한옆에 밀어놓고계시였다. 《민주의원》, 《과도립법의원》을 통해 미국이 어떤 롱간을 부리는지 알고있는 김규식이 남조선을 미국놈들한테 내맡기는 하수인이 되려고 할것인가? 도저히 그럴것 같지 않으시였다. 그가 북조선정책에 아직도 의혹을 품고있는것은 리해의 부족에서 오는것이지 권력을 탐내거나 대결을 결심해서가 아니라고 그이께서는 믿고계시였다. 그런데 김규식은 리승만과 목숨을 건 싸움을 해서라도 남조선괴뢰정권의 대통령이 될 생각을 했다고 한다.

김규식도 자기가 얼마나 엄청난 이야기를 했는지 알고있는듯 격한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온몸을 후들후들 떨었다. 집안에서 가끔 신경발작을 일으키군 한다는것을 알고계신 장군님께서는 우선 그의 흥분을 눅잦히려고 옆탁에 놓여있는 《봉화》담배곽을 김규식옆으로 내밀었다.

《아직 말씀의 시작을 뗐을뿐인데, 담배를 태우면서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김규식은 담배에 불을 붙여 짙은 연기를 내뿜고나서 절통한 후회를 하듯 말했다.

《나의 생각이 얼마나 용렬했는가 하는것을 나는 근간에 와서야 알았소이다. 장군님께서 탄생하신 만경대에 가보고 나는 참으로 큰 충격을 받았소이다. 내가 장군님을 알게 된것은 그때부터라고 해야 할것이웨다. 그러나 나는 북조선의 자립성에 의연히 의심을 품었소이다. 황철에 갔을 때 내 자식과 다름없는 서종현이 나에게 큰 충격을 주는 말을 해주었소이다.》

김규식은 장군님께서 서종현에게 하신 말씀을 반복했다. 《대국이 득세를 한다고 굴복하겠는가? 민족적량심을 버리겠는가?》 그는 불민한 자신의 과거가 민망하고 부끄러워 앓아눕기까지 했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김규식은 짙은 담배연기와 함께 긴 한숨을 내쉬고나서 말을 계속했다.

《나는 지금까지 강자들의 영향력에 대해 그릇된 견해를 갖고있었소이다. 그것이 아무리 정당한 진리라고 해도, 석벽에 새겨진 철리라고 해도 있는자와 권력의 소유자들에 의해 그 뜻이 외곡되고 전도되기도 한다는것은 내가 한생을 방황한 끝에 얻은 교훈이였소이다. 나는 장군님의 리념에 공감하면서도 조선의 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소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 바로 그 조선의 힘을 보았소이다.》

김규식은 채 타지 않은 담배를 재털이에 비벼끄고는 새로운 발견을 한 학자의 희열, 번뇌에 시달리던 정치인이 마침내 새 경륜을 찾은 기쁨, 한생을 모지름쓰며 찾던 확고한 진리를 체득한 사람의 격정이 한데 어울린것 같은, 흥분을 다잡지 못한 얼굴을 들고 70이 불원한 늙은이의 눈같지 않은 맑은 빛이 불타는 안청으로 장군님을 마주보며 웨치듯 말했다.

《굴복하지 않고 싸우는 령도자가 어떤 힘을 창조하는지 나는 오늘 보았소이다. 조선민족은 결코 약소민족이 아니라는 장군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도 깨달았소이다. 나는 굴종을 버리고 새 출발을 하기로 결심했소이다. 내가 새 출발을 하자면 장군님의 조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시간을 내주실것을 소청드렸소이다.》

장군님께서는 김규식을 와락 그러안고싶은 심정이시였다. 그렇게도 바라신 바로 그 종착점에 김규식이 도달한것이다. 7~8쯤 나이차이가 있다고 해도 생사를 같이하며 함께 싸운 운명의 동행자였더라면 그이께서는 김규식의 오동통한 손이라도 힘있게 부여잡으시였을것이다.

《선생님들은 높은 식견을 가진분들이고 오래동안 정치활동을 해온분들인데 무슨 조언을 드릴 말이 있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겸허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을뿐이였다.

《그런데 선생님은 서울에 나가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대통령출마를 그만두는것은 말할것도 없고 반미구국투쟁에서 민족주의진영을 선도하겠소이다. 북의 실상을 민중들에게 알려주면서 반미민중투쟁의 앞장에 서겠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민족주의진영을 반미구국투쟁에 합세시켜야 한다는것은 옳지만 선생님들은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안색으로 말씀하시는 장군님의 어조는 단호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반미구국전선을 편성하는것이 현시기 조선의 정치인들의 초미의 과제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김규식선생, 김구선생들까지 테로의 대상이 될수 있는 모험적인 투쟁을 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열정적으로 말씀하시였다.

《선생님들은 민족주의진영에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로세대지도자들입니다. 선생님들이 테로의 희생이 되면 민족자주련맹은 어떻게 되고 한독당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선생님들은 그 명성과 함께 자신을 보존해야 합니다.》

《아!》

김규식은 가슴밑바닥에서 솟구쳐오르는 감동을 어떻게 주체했으면 좋을지 알수 없었다. 버려도 아까울것이 없는 구새먹은 나무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 말년을 장렬한 싸움에 바치려고 했는데 명성과 함께 목숨을 오래동안 보존해야 한다고 하시다니! 그의 눈앞은 갑자기 뿌잇하게 흐려졌다.

《장군님, 저희들로 해서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나나 백범이나 이미 인생을 다 산 늙은이들입니다. 사실 저희들은 장군님의 사상과 적대되는 정견에 의거했던 사람들입니다. 정계의 법칙에 의거해본다면 생명이 없는 산송장과 다름이 없는 패자로 되여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다행히 장군님께서 관용을 베풀어서 환생시켜주셨습니다. 인생말년에 찾은 진리를 위해 진정한 조선민족의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청춘의 혈기를 되찾은 지금 좀 떳떳한 투쟁에 나섰다가 최후를 맞이한다고 해서 아까울것도 없고 후회될것도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백범이나 내가 나서면 한독당이나 민족자주련맹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뒤를 따를것입니다. 정세가 급박한 이때 목숨의 보존을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담배가치를 손에 들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장군님께서는 그것을 옆탁에 놓으며 말씀하시였다.

《선생님들이 자신을 보존하면서 민족을 위해 효과적인 정치활동을 전개할 방도가 있을것 같습니다. 내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기탄없이 말씀해주십시오.》

현재 남조선에는 조선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자협의회라는 단체가 있다. 현재는 별로 하는 일이 없지만 이 단체의 명칭을 통일독립촉진회라고 바꾸어달고 이 단체에 남북협상에 참가한 우익과 중간 정당, 단체, 그리고 남조선단독괴뢰정부수립을 반대하는 반미, 반리승만세력을 전부 망라하면 참으로 많은 일을 할수 있는 위력한 통일전선체로 될것이다.···

《김규식선생과 김구선생이 반드시 이 통일전선체의 의장, 부의장이 되여야 합니다. 비록 반미구국전선이라는 명칭은 달지 않았지만 그것은 명백히 반미투쟁을 전개하는 특수한 형태의 구국전선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것입니다.》

김규식은 그저 감탄해서 장군님의 존안을 덤덤히 마주볼뿐이였다. 자기가 반미구국전선의 일원이 되여 우익진영을 선도해나가겠다고 말씀드린지 10여분도 안되는데 그 유명무실한 독립운동자협의회를 반미구국전선의 별동대로 만들 생각을 하시다니··· 그이의 비상한 사고력에 김규식은 그저 놀랄수밖에 없었다.

《구국전선의 특수한 형태라고 해도 어차피 민족통일정부수립을 지지해야 하고 남조선괴뢰정부를 반대해야 할것이 아니겠소이까. 미군철수를 요구해야 할것은 더 말할것도 없을것입네다. 미국인들은 우리를 즉시에 탄압할것입네다.》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 대해서는 반대도 지지도 하지 않는 불반대불찬성의 립장을 지켜야 합니다. 촉진회의 활동은 남조선에 한정되여야 합니다. 선생님이 대통령출마를 그만두면 리승만이 대통령이 될것은 틀림없지 않겠습니까. 남조선괴뢰독재정권을 반대한다, 미군의 철거를 요구한다, 이것은 반미구국전선의 투쟁목표와 비슷한것이 아닙니까. 그렇지만 민족주의진영에서 응당 추켜들어야 할 정강이 아닙니까?》

김규식은 격렬한 감동으로 해서 뇌수의 기능이 마비된것 같았다. 놀라고 감동된 휘둥그래진 눈으로 밝게 웃고계시는 장군님의 얼굴을 한동안 마주보기만 했다. 수십년간 감동이란것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얼어붙고 늙어빠진 심장을 어쩌면 이렇게도 뒤흔들게 하시는가! 며칠후 서울에 나가서 장군님의 자주적인 시책과 경이적인 성과, 남조선과는 정반대인 활력에 넘친 자립적민족경제의 건설정형, 식량을 자급자족하게 만든 북조선농민들의 애국적열의, 그 무엇보다도 경이적인 로동자, 농민, 지식인들의 성장과 의식변화··· 몇마디의 말로 다 이야기할수 없는 북조선의 현실과 영명한 김일성장군의 걸출한 령도를 기자들앞에서 피력하면 폭풍같은 반향을 불러일으킬것이며 민족통일정부는 더 많은 남조선민중의 지지를 받으며 수립될것이 아닌가.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자기와 백범이 려운형과 같은 참혹한 최후를 맞이할가봐 쉬운 길을 택하게 하려고 하신다. 김규식이란 이 사람과 김구가 그렇게도 값있는 존재였던가.

김규식은 떨리는 손을 장군님의 무릎우에 놓고 눈물에 흠씬 젖은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나라는 인간이 무엇이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라고 그리도 아껴주십니까. 백범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되옵니다. 장군님의 경륜실현에 몸을 바친다한들 후회될것이 없는 몸들이온데 어쩌면 이리도 귀히 쳐주시옵니까. 내 오늘 사나운 비속에서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시위군중을 보면서 울었습니다. 그때의 울음은 장군님을 중심으로 하고 굳게 단결된 민족의 모습에 감동되여 울었지만 지금은 장군님의 덕망과 경륜으로 빛날 래일의 3천리강산이 눈앞에 보여서 눈물을 흘리옵니다.》

말을 끝낸 김규식은 그 어떤 령감이 머리에 번개친듯 수북한 눈섭밑의 검은 눈이 열정에 넘쳐 황황히 불탔다. 장군님을 이윽히 마주보는 그의 눈이 불이 달린 심지인양 불꽃을 날렸다. 그는 독백하듯 혼자말을 중얼거렸다.

《장군님께서는 외세의 간섭과 악랄한 책동을 짓부셔버리고 민족대단합을 이룩한 위대한 령도자이시옵니다. 약소민족으로 알려진 조선민족에게 위대한 미래를 안겨준 령수이십니다. 내 시 한수를 읊겠소이다.》

김규식은 장군님의 응답도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은근하면서도 온 방에 울려퍼지는 음성으로 시를 읊기 시작했다.

 

작은 꿈도 미처 채우지 못해

꿈에 시달리며 살던 불우한 겨레여

큰 꿈을 품은자는 발디딜 땅이 없었더라

내 안고 모대긴 겨레속에

위대한 꿈을 안은이 그 몇이던가

민족에게 위대한 꿈을 심어준 위인을

내 일찌기 알지 못했어라

힘이 모자라 불우한 운명을

구슬픈 노래에 담아보낸 나의 겨레에게

불우한 운명을 털고 일떠세운 기적의 위인

내 뵈였나니 유구한 옛 도읍 서경에서

그이는 우리의 장군

김일성장군!

 

수많은 군중을 앞에 둔듯 틀어쥔 주먹을 머리우에 높이 추켜들고 결구를 웨친 김규식은 장군님께 말씀드렸다.

《오늘 저녁에 있기로 된 연회에서 내 이 시를 읊겠소이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부드러운 미소가 어린 모습으로 장군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시였다.

《우선 그 시는 나에 대한 지나친 찬사이고 다음엔 선생님이 나하고 약속한것을 어기는 일이기때문에 그래선 안됩니다. 통일독립촉진회 부의장이 취해야 할 범위를 평양에서도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김규식은 무너지듯 주저앉으며 장군님의 손을 덥석 모두어잡았다. 그는 혼신의 힘을 바쳐 부르짖었다.

《그러하다면 우리 민족을 위대한 꿈, 위대한 사상의 소유자로 만들었다는것만이라도 인정해주시오이다.》

장군님께서는 다른 한손으로 김규식의 손을 굳게 잡으며 겸허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그것도 선생님의 지나친 평가입니다. 우리 민족은 원래 성실하고 근면하며 용맹할뿐아니라 단결력이 강한 우수한 민족입니다. 지금까지 위정자들이 이것을 보지 못하고 계발하지 못해서 망국의 설음을 체험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다만 정책을 내놓고 계발했을뿐입니다. 아직 시작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북조선에서 얼마간의 성과를 달성했다면 그것은 우리의 공적이 아니라 인민의 공적입니다. 우리 인민의 공적이라고 봐야 정확합니다.》

김규식은 모두어잡았던 장군님의 손을 놓고 그이앞에 무릎을 꿇었다. 유난히도 큰 머리를 깊이 떨구고 꿇어앉아 량어깨를 후두둑후두둑 떨며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감개를 바이 표현할 방도를 찾을수 없어 뒤늦은 례의를 이제야 차리오니 저의 절을 받아주시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