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5

 

5

 

상수리숙소에 돌아온 김규식은 침대우에 쓰러졌다. 윤명현이외에는 그 누구도 방에 출입을 하지 못하게 했다. 땀으로 미역을 감으며 온몸을 와들와들 떨면서 알아듣기 어려운 입안의 말로 누구를 타매하는것 같기도 하고 자신을 뉘우치는것 같기도 한 맥락이 닿지 않는 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무슨 일을 칠지 알수 없어 의사선생에게 왕진을 청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윤명현이 내비치면 김규식은 이를 떡떡 마주치면서 화를 내군 했다.

《누구도 출입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지 않았나. 내 병은 내가 알아. 물이나 한고뿌 주게.》

머리맡의 약병에서 알약을 두어알 꺼내 입안에 넣고 윤명현이 들고온 물을 들이키고는 다시 자리에 누워 두터운 입술을 꽉 사려물었다. 약의 힘으로 얼마간 진정이 되면 뼈를 깎는듯한 심정으로 그 무엇을 회억하는듯 눈을 지르감고 중얼거리군 했다.

《이젠 늦었어. 쓰러졌지··· 먼길이였는데 뭣때문에 그 험한 길을 ··· 그렇지만 ··· 나는 소원을 성취해본 일이 없는 사람이지. 허지만, 허지만··· 우리 백의민족은, 불쌍한 내 민족은··· 쓰러졌지, 쓰러졌어···》

창문에서 비쳐들던 현란한 봄빛이 마지막잔광을 끌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저녁식탁에 얼굴을 보여야 할 시각이 다가왔다. 아무래도 석찬을 침실에 날라와야 할것 같아 윤명현이 그런 뜻을 비치자 김규식은 지금까지 침상우에서 모지름을 쓰던 사람같지 않게 몸을 일으켰다. 벽을 짚으며 세면장에 들어가 얼굴을 씻고는 체경앞에 서서 깐깐하게 외모를 갖추는데 신경을 썼다. 걸음이 얼마간 위태롭기는 했지만 방금전까지 침대에서 중병과 싸우던 사람같지 않게 식탁 한가운데의 자기자리에 앉아 여느때없이 포도주를 한잔 청했다. 입맛을 돋구기 위해서였다. 잣죽을 절반도 축내지 못했지만 다른 음식에 저가락을 몇번 대서 여느때와 다름없는 식사를 한듯한 인상을 남기고는 수저를 놓았다.

식당을 나설 때 김구가 김규식옆에 와서 할말이 있다면서 자기의 방에 가자고 했다. 김규식은 군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오늘 어디에 갔었나? 아침에 사람을 보냈더니 방에 없다고 하더군.》

《황해제철소에 갔었습니다.》

황철을 참관한 소감을 물을줄 알았는데 김구는 머리를 수굿하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오늘도 하루종일 생각했네. 우사도 알고있는것처럼 내가 이번 협상을 통해 첫째로 바란것은 내부의 대립을 해소해서 쏘미량국에게 국토분단의 구실을 주지 말자는거요, 다음으로는 림정의 법통을 인정받아 이국땅에 속절없이 묻힌 선렬들의 넋이라도 위안하자는것이 아니였나. 그러나 나는 북에 들어와서 각지를 참관도 하고 김일성장군님을 모시고 몇차례의 회합을 진행하고나니 무엇인가 큰 결심을 해야 할것 같은 생각이 들더란 말일세.》

김구는 코밑을 세게 문질렀다. 흥분했을 때 하는 버릇이지만 지금은 자신에 대한 불만을 참을길 없어 코밑을 문지르는것 같았다.

그는 의례방문에 이어 련석회의, 4월 24일에 진행된 남북 정당, 단체 지도자협의회, 26일에 장군님께서 남조선 정당지도자들을 접견해주시면서 진행한 회담, 김구는 4차례, 김규식은 2차례 회합에 참가했다. 26일 회담에서 조소앙은 김구의 의사를 대변하여 7개 조항의 제안을 내놓았고 김규식은 5개 조항의 제안을 내놓았다. 장군님께서는 난해하고 착잡한 한문투의 한독당의 제안도, 북조선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조항이 담긴 김규식이 내놓은 5개 조항의 제안도 웃음지은 안색으로 끝까지 듣고나서 흔연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선생님들이 조선민족의 장래를 놓고 많은 생각을 하셨다는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애국심의 발로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들의 제안을 충분히 참작한 기초우에서 우리의 회답을 고위급회담에서 내놓겠습니다.》

고위급회담은 래일 열리기로 되여있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연기가 피여오르는 곰방대를 거머쥐고 황혼빛이 어린 창문을 바라보던 김구가 긴 한숨끝에 독백하듯 중얼거렸다.

《나는 중대한 결심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네. 회담장에서 장군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느끼는바 컸지만 각지를 참관하면서 종래의 내 생각을 돌이켜보지 않을수 없었네. 북조선에서 시행되는 정치가 공산주의적인 정치가 옳은가? 이런 생각이 들더란 말이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공산주의자란 어떤 사람들이였나? 민족도 조국도 례의도덕도 안중에 없이 그저 싸움질만 하는 망종이 아니였나? 그런데 내가 북조선에 들어와서 본 사람들은 모두 례의에 밝을뿐아니라 조국부강을 위해 매진하는 사람들이라는것이네. 우리가 조선이 부강해지기를 얼마나 갈구했나. 나는 련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네. 내 나이에 이제 와서 정견을 바꾼다는것은 늦은감이 없지 않지만 이것이 민족을 위한 일일진대 무엇을 주저하겠나. 나는 결심했네. 우사의 생각은 어떤가?》

김규식은 결연한 음성으로 끝을 맺는 김구의 말을 듣고 우선 놀랐다. 김구의 성격에서 첫째가는 특징은 완강성이다. 자기가 한번 옳다고 생각한 신조를 좀해서 바꾸지 않았다. 정견은 말할것 없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러했다. 그는 강성하는 자주적인 조선민족으로 되게 하기 위해서는 공산주의세력을 제거해야 한다는 신조를 정견으로 견지해왔다. 반공민족주의자라고 하면 그의 령수로 우선 김구를 첫째로 꼽았다. 그런데 북조선에 들어와 불과 며칠을 지냈을뿐인데 종래의 정견을 버리고 련공주의자로 되겠다는것이다. 이것은 지난 20여년간의 정치신조를 아쉬움도 없이 버리고 새 출발을 하겠다는 말이였다. 70이 넘은 고령의 김구가!

그런데 더욱 놀라운것은 김규식자신의 생각이였다. 김구의 말이 놀랍기는 했지만 그리 깊이 생각한것도 아닌데 그가 응당 이르러야 할 결론을 찾아쥔것처럼 여겨지는것이였다. 자기가 받은 그런 충격을 백범도 체험했다면 새 출발을 결심하는것은 의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과단성있는 백범이니 자기보다 한발 앞섰을뿐일것이다.

《백범형 좋을대로 하시지요. 나도 정리해야 할 생각이 있어서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김구의 응접실에서 나온 김규식은 개화장의 도움을 받아 푸근한 주단처럼 정원길에 깔린 진곤색 황혼빛을 밟으며 자기가 우선 생각해야 할것은 무엇인지 그것부터 찾아내려고 애썼다. 자기도 역시 30여년간 망명생활을 하면서 민족을 위해 무엇인가 하느라고 했다. 그런데 어째서 말년에 이르러 인생전환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궁색한 처지에 이르렀는가? 북조선산업의 90%나 되는 재부를 되찾아주신 장군님의 로고를 두고 말하면 전민족이 노래에 담아 구가하고 력사에 금문자로 아로새겨야 할 일인데 자기는 감히 경제체제에 걸어 이의를 제기하기까지 했다. 그가 26일회담에서 제안한 5개조항중의 한 항목은 개인의 소유를 인정할데 대한 경제체제와 관련되여있는 조목이였는데 중요산업국유화는 지나치게 급진적인것 같다는 견해를 피력했던것이다. 이것이 단순히 장군님의 로고를 알지 못한 무식에 기인하는 일이라고 할수 있겠는가? 남조선에서 《적산》이 군정청의 수중에 장악된 후 산업이 전멸되였다는것을 알고있는 자기가 어째서 이런 제안을 했던가. 민족의 대단합이란 사실에 있어 실현될수 없는 한낱 공론에 지나지 않으며 민족통일정부수립도 한갖 념원일뿐 탄생을 보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데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북조선에 들어와 불과 수일을 보냈을뿐인데 스스로도 믿기 어려울만큼 마음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루어질수 없으리라고 여겼던 의혹은 뒤전으로 밀려나고 협상이 목적하는 민족적위업을 반드시 성취해야 한다는데로 생각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개화장을 내짚으며 정원등이 희미한 빛을 내리비치는 소나무밑의 의자에 다가가 지친 몸을 앉혔다. 남조선정부의 대통령이 될 결심을 지금의 자기로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것인가? 그는 리승만과 목숨을 건 대결을 결심하고 38°선을 넘었다. 하지의 말은 그도 한낱 낚시군의 얼림수쯤으로 생각하고있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는 미국의 줌안에서 노는 꼭두각시 대통령이 될 생각은 꼬물만큼도 없었다. 그는 리승만이 립후보한 바로 그 선거구에 출마해서 승부를 겨룰 생각이였다. 물론 테로단들이 그의 생명을 노릴것이며 친일친미매국족속들은 검질기게 출마를 철회하라고 위협을 할것이다. 그러나 민중은 자기를 지지할것이였다. 38°선을 넘을 때까지는 민족을 위해 자기가 취할수 있는 마지막방도는 이 한길이 있을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만경대견학에 이어 황철에 간 그는 서종현한테서 일생을 두고도 잊을수 없는 참으로 귀중한 말을 들었다.

《외세가 득세를 한다고 해서 그편에 서겠는가? 민족의 편에 서겠는가?》

서종현이 전해준 장군님의 말씀은 련공을 할 생각이라는 백범의 말과 함께 지금도 그의 뇌리속을 누비며 맴돌고있었다. 서종현이 장군님의 믿음을 목숨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며 자립적민족경제건설을 위해 일신을 바치고있는것도, 자기의 앞날을 의탁할수 있는분은 오직 장군님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백범이 련공을 할 생각을 한것도 결국 사상과 정견을 초탈케 하는 위대한 견인력을 장군님께서 지니고계시기때문이 아니겠는가. 그 견인력은 어디에서 비롯된것이겠는가? 김규식은 그간에 자기가 느낀 충격과 감동, 새롭게 발견한 세계를 돌이켜봤다. 장군님께서는 조선이 또다시 수난의 길에 들어서지 않게 하시려고 세심하고도 깊이있게, 보통사람들은 상상도 할수 없는 강철의 의지로 완강한 노력을 기울이고계시였다. 한마디로 말해 장군님께서는 애국애족의 숭고한 리념을 지니고 민족을 선도하고계시였다. 이런 령도자에게 일신을 의탁할 생각을 하는것은 응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자기만 해도 조선민족을 약소민족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던 장군님의 말씀이 이제는 리해될뿐아니라 응당한 신조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사이에 자기도 확실히 달라졌다. 량단된 불행한 조국을 보는 견해, 민족의 현재와 앞날을 보는 안목이 새로와졌다.

(이런 경우를 두고 정신적갱생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지··· 아직 갱생이라고 할수는 없어도 그 전야에 있다고 할수는 있지 않겠는지? ···)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던 김규식은 한가지 생각이 머리에 떠올라 몸을 후두두 떨었다. 리승만을 제끼고 남조선정권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결심한 자기의 생각이 머리에 번개쳤던것이다. 의자에서 일어나 정원등이 어스레한 빛을 깔아놓은 산책길을 오가며 생각을 이어갔다.

남조선정권의 대통령이란 어떤것이겠는가?

《민주의원》이나 《과도립법의원》을 만들어낸 후의 환멸을 또다시 느끼게 할 그런것이 아니겠는가? 몇명의 비서와 보좌관은 대통령의 권한으로 선발할수 있을지 모르지만 고문명색의 숱한 떨거지들, 대신급의 중신들은 미국의 수중에 장악되여있는 간신들일것이며 미국의 첩보계에서 박아넣은 밀정들의 감시속에 자기는 들어있을것이다. 대통령이 결심할수 있는 정책이란 또 어떤것이겠는가? 서울주재 미국대사, 강점군사령부, 바다건너 미국의 국무성, 국방성, 상하국회, 대통령의 특사, 밀사···

《민주의원》이나 《과도립법의원》을 만들어낸 후의 환멸이 즈분한 물안개처럼 머리속에 가득찼다. 그는 단장끝을 정원길에 박고 그자리에 굳어졌다. 달뜨기전의 시커먼 하늘이 무한대한 장막처럼 머리우에 드리워있었다. 끝도 깊이도 알수 없는 그 장막이 자기를 파묻어버릴양으로 떨어져내리는것 같다. 야심가형의 독재광인 리승만을 물리치고 자기가 대통령의 권좌에 올라앉으면 겨레를 위해서도 남조선민중을 위해서도 무엇인가 리익이 되는 일을 할수 있을것 같았는데 이번에도 미국의 손탁우에서 노는 꼭두각시노릇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그는 소나무밑의 의자에 되돌아가 개화장의 손잡이에 이마를 얹고 오래동안 굳어진듯 앉아있었다. 꼭두각시놀음을 하는 대통령이 어떻게 북조선정권과 련계를 가질수 있겠는가. 장군님께서 미국의 손탁에서 노는 남조선정권의 대통령에게 손을 내미시겠는가? 더구나 그이께서는 민족통일정부를 수립할 결심이시다. 그렇게 되면 관계는 더욱 어렵게 될것이다. 자기는 무엇을 향해 새 출발을 해야 할것인가? 김규식은 절망의 진회색장막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