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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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는 황철을 참관하러 떠나기전에 김규식의 응접실에 들렸다. 우사를 마주하고앉아 황철에 같이 가자고 하다가 언짢은 기색으로 말했다.

《회의에도 참가하지 않아 바깥출입도 하지 않아 이럴바엔 뭣때문에 평양에 왔나? 우사는 혹시 나한테도 말할수 없는 께름한 일을 안고 평양에 오지 않았나?》

김구는 살갗이 벗겨질만큼 코밑을 세게 문질렀다. 흥분했을 때의 버릇이다. 김규식은 기이는것도 없었고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것도 아니였다. 모두들 회의에 참가한 뒤나 참관을 떠난 후 그는 개화장을 내짚으며 봄꽃이 만발한 정원을 거닐기도 했으며 한번은 시내를 돌아보기도 했다. 그때도 장군님께서 상수리숙소에 오셔서 한 말씀을 되씹느라고 시민들의 밝고 명랑한 표정이며 씩씩한 걸음에 별로 주의를 돌리지 못했다. 그러나 거리를 나다니는 쏘련군장병들의 수자만은 주의를 집중해 세여봤다.

시간을 보낼 방도가 바이 없는 사람처럼 개화장을 내짚으며 정원을 산책하면서는 련석회의에서 채택된 보고와 결정서, 격문, 호소문의 매 문장을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으며 그에 담긴 저의를 찾아내려고 몸부림치는 고심을 했다.

그러나 아직 확고한 견해를 가질만한 결론을 얻은것이란 없었다. 장군님께서 상수리숙소에 오셔서 하신 말씀의 뜻은 명백한것 같았다. 미국의 대조선전략에 조선민족의 단결된 힘으로 맞설 결심을 하고계신게 분명했다. 이 대의를 이룩하자면 민족적자존심을 높여주어야 할것이며 사대의존사상을 배격해야 할것이다. 김규식도 장군님의 이 심원한 뜻에는 깊이 감동되였으며 쌍수를 들고 환영을 하고싶었다. 그러나 조선은 세계의 두 초대국사이에 끼여있는 《약소민족》이다. 만일 민족자립의 리념을 동방조선에 허용한다면 제2차대전을 통해 쏘련이 점유한 동유럽권의 여러 나라들이 저마다 민족자주의 기치를 추켜들것이다.

장군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자심하신 배려에는 김규식도 눈굽이 뜨거워지군 했다. 그러나 조선의 운명과 전도는 세심한 보살핌이나 일시적인 물질적대우로 해결될수 있는것이 아니다. 장군님께서는 조선의 자주독립을 갈구하는 남조선대표들에게 그보다 더한것이라도 주고싶으실것이다. 그러나 북조선에는 쏘련군이 주둔해있다. 그들이 남북협상의 성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겠는지, 협상에 음밀히 영향을 주고있지 않는지, 그것은 아직도 알수 없는 일이다.

김규식이 회의에서 채택된 결정서, 격문, 호소문의 자자구구를 따지는것은 이때문이였으며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몸을 뒤채기다 침대에서 뛰쳐일어나 어스레한 그림자를 끌며 침실안을 끝없이 오가는것도 이탓이였다.

그는 제딴에 주견이 서기전에는 회의참가는 물론 공장, 농촌, 문화기관을 참관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고있었다.

김구의 푸념을 추연한 기색으로 말없이 듣고앉았던 김규식이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나직이 대답했다.

《백범형은 제철소에 다녀오십시오. 내가 숙소에 있는것은 그럴만한 리유가 있기때문입니다. 내가 께름한 일거리를 안고 들어왔다고 하는 백범형의 말이 무엇을 념두에 둔것인지 나도 압니다. 그것이 께름한것인지 민족을 위한것인지 하는것은 시간이 대답해줄겁니다.》

마음의 가책을 받는 기색이란 전혀 없이 자신의 정당성을 오히려 설득시키려는 우사를 김구는 리해하기 어려운 눈길로 마주봤다.

장군님께서 능력있는 의사들을 붙여주고 값진 보약을 보내주시여 서울에서는 생각도 할수 없는 호사를 하는데 김규식의 외모는 초췌해보일만큼 수척해가기만 한다. 무엇때문에 이렇게 심뇌를 하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 참으로 알수 없는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만하면 김규식의 사람됨을 충분히 알고있다고 믿었는데 요즘의 그는 안개자욱한 드넓은 강 대안에 도무지 가려볼수 없는 모습으로 서있는것 같다.

《우사의 탈은 생각이 너무 번다한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세상리치란 사실 따지고보면 별다른것이 아니지 않나? 필시 우사가 부심하는것도 민족이냐? 양놈이냐? 이것이겠는데 뭘 길게 생각할게 있나. 한국사람인 우리는 한민족의 편에 서는게 당연하지 않나. 이 말은 내가 우사에게 한번 꼭 하고싶었던 말이네.》

김구는 훌쩍 자리에서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에서 나가버렸다.

다음날 저녁이였다. 어떻게 해서든 해답을 찾아보려고 몸부림을 치며 애쓰는 김규식의 귀에 만경대를 견학하고 돌아온 대표들의 흥분한 말이 날아들었다.

저녁식사를 앞두고 객실로 리용하던 모양인 홀에 대표들이 모여들어 떠드는 말이였다.

김일성장군님은 천대와 구박을 받는 조선의 평범한 백성속에서 나온 영걸이라느니, 70이 넘은 조부모님에게 험한 농사일을 하게 하는 수령은 없을것이라느니, 만경대의 아름다운 산천경개는 위인을 낳을 지세라느니, 중구난방으로 한마디씩 하는 말을 들은 김규식은 해답을 찾는데 만경대가 도움을 줄것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장군님께서 탄생하신 생가가 있다는 만경대에는 꼭 가보고싶었다.

김규식은 다음날로 소문을 내지 않고 혼자서 조용히 만경대에 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방향도 위치도 모르는터에 혼자 자동차를 타고 훌쩍 떠날수는 없었다. 생각을 굴리던 그는 허헌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이날밤 상수리숙소에 나와있는 영접책임자에게 허헌과 련계를 취할수 있는 방도를 알아가지고 전화를 했다.

《래일 10시경에 나 있는곳에 와주지 않겠소이까?》

《무슨 일이 있소이까?》

《내 극인의 도움을 받을 일이 있소이다.》

김규식이 상세한 말을 전화로 이야기하지 않으련다는것을 눈치챈 허헌은 알았다는 말을 한마디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오전 김규식과 허헌은 한자동차에 올라앉아 만경대를 향해 떠났다.

 

남포방향으로 뻗은 포장도로를 달리던 승용차는 봄물이 오른 싱싱한 애솔나무에 뒤덮인 야산사이를 꿰여나간 곁길에 들어섰다.

달구지길이라고 해야 할 불퉁불퉁한 농촌의 좁은 길이다. 자동차가 들추는대로 몸을 맡기고 앉았느라니 갑자기 왼쪽에 웅장한 건물이 보였다. 김규식이 유심히 바라보는것을 눈치챈 허헌이 차를 멈추었다.

《혁명가유자녀학원이웨다. 한번 들어가보지 않겠소이까?》

허헌이 김규식의 의향을 묻고나서 차문을 열고 밖에 나섰다. 김규식은 학원의 교문안에 들어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긴 그의 몸으로 학원을 돌아보기는 어려울것이다. 허헌은 교문앞에 선채로 짧은 설명을 할수밖에 없었다.

《나라를 찾는 싸움에서 목숨을 바친 혁명렬사들의 자녀들이 공부를 하는 학원이웨다.》

봄하늘을 등지고 정갈한 연회색빛으로 단장한 웅장한 교사, 지난날 불모의 땅이였을 골바닥에 펼쳐진 드넓은 운동장에서는 한창 자랄 나이의 원아들이 공을 날리며 승부를 겨루고있었다.

체육시간인 모양이다. 김규식의 눈앞에 엊저녁에 찾아왔던 김구의 얼굴이 불현듯 떠올랐다.

《림정주석이란 나는 렬사들의 자녀는커녕 가까이에 있는 동지들의 끼니도 제대로 돌봐주지 못하고있는데 김장군께서는 만주광야에 널린 아이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서 공부를 시키고있지 않겠나. 내 아이들을 품에 안고 눈물을 흘렸네만 마음속으로는 면구한 생각이 없지 않았네. 우리가 궁색한 처지에 있는것만은 사실이네만 결심만 했으면 렬사들의 유자녀들이 공부하는 학원 하나쯤 세우지 못했겠나. 그런데 나는 그것을 못했네.》

김구는 금시 눈물을 떨굴것 같은 추연한 얼굴이였다. 끌날처럼 가슴속에 들어와박히는 말이여서 김규식도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종합대학과 함께 혁명가유자녀학원 건설, 오늘만이 아니라 래일을 설계하고계시는 장군님의 신심에 넘친 기상이 가슴에 파고들었다. 바로 그 유자녀학원을 앞에 두고 서있는것이다. 백번 듣는것보다 한번 보는것이 오히려 낫다는 속담 그대로 김규식의 감동은 자못 컸다. 혁명렬사들의 자녀들을 하나하나 찾아다 공부를 시키고있다는 장군님의 의리에도 깊은 감동을 받았지만 광복된지 불과 3년밖에 안되는데 종합대학과 함께 유자녀학원을 이렇게도 웅장하게 일떠세울수 있는 재력에 놀랄수밖에 없었다.

《학교를 세우자면 돈이 있어야겠는데 그것을 어디에서 충당했소이까? 국고가 그렇게 충실해졌소이까?》

김규식은 북조선의 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싶었다.

《나도 서울에서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으니 자세한것은 알수 없소이다. 다만 종합대학과 혁명학원을 건설할수 있는 재력에 대해서는 얼마간 알고있소이다. 요즘 나는 아침 한끼는 재령나무리벌의 옥백미를 먹고있는데 우사는 나무리벌의 옥백미를 맛보지 못하셨소?》

김규식은 장군님께서 상수리숙소에 다녀가신 후에는 서울에 있을 때와 똑같이 잣죽을 먹고있었다. 그렇지만 재령나무리벌의 농민들이 남조선대표들을 환대하는 의미에서 일부러 싣고 왔다고 해서 그 고장의 옥백미밥을 몇숟갈 떠먹어봤다. 밥맛이 어떻게나 좋았던지 그날 저녁에는 잣죽을 밀어놓고 한사발이나 되는 밥을 거의 축냈다.

그런데 나무리벌의 입쌀과 유자녀학원건설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것인가?

허헌이 그의 의문을 쉽게 풀어주었다. 애국미헌납운동이 벌어지게 된 경위와 그것을 대중적인 건국운동으로 전환시키신 장군님의 령도를 설득력있게 이야기해주었던것이다. 농민들이 자진해서 여유량곡을 나라에 바치고 그것으로 학교를 세웠다는 말을 듣고 김규식은 저으기 놀랐다. 농민들이 한푼의 돈도 생각하지 않고 청간에서 낟알섬을 메내다니? 그것도 자그만치 20가마니, 30가마니의 낟알을··· 땅을 분여받은 은혜에 보답해서라고 허헌은 말하지만 그것은 리치에 구애된 말에 지나지 않는다. 북조선농민들이 자기 주머니에 들어온 재부를 리치와 은혜를 생각해서 아쉬움없이 내놓는 마음을 가졌다면 리상향의 무욕의 인간들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그런 인간이 실제로 존재할수 있는가? 어쨌든 북조선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기상이 태동하고있는것만은 틀림없는것 같았다.

허헌과 김규식이 올라앉은 승용차는 조화로운 곡선을 부드럽게 그려낸 야산봉우리를 에돌아 천천히 미끄러져내려갔다. 처마낮은 초가들이 널려있는 평안도에서 흔히 볼수 있는 농촌마을이 눈앞에 나타났다. 야산모퉁이를 에돌던 승용차가 광목치마를 허리춤에 걷어붙인 검실검실한 얼굴의 30대의 농촌녀성옆에 멎었다.

녀성은 삼태기를 옆구리에 끼고 길가에 서있었다. 허헌은 옷차림이 얼마간 깨끗할뿐 농민과 류다른데가 별로 없는 녀인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자동차에서 내려서기까지 했으며 하대하는 투가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대등한 위치에 있는 녀인을 만나 이야기하는듯한 모습이였다.

언제 평양에 올라왔는가? 회의에 참가하면서도 눈이 나빠 보지를 못했다. 상대를 위원장이라고 하는 허헌의 말을 듣고 김규식은 이야기가운데 끼우고싶어 차에서 내렸다.

허헌이 그 녀인에게 김규식을 소개했다.

《이분은 김규식선생이시오. 위원장아주머니도 대표로 련석회의에 참가했으니 알고있겠지요?》

녀인은 허리에 걷어붙였던 치마를 내리고 머리를 비다듬으며 허리를 얼마간 굽혀 인사를 차렸다.

《장군님께서 말씀이 계셔서 선생님이 평양에 오셨다는것은 알고있었지만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서 몰라봤습니다. 몸이 좋지 않으시다는 말을 들었는데 차도가 있으십니까?》

개화장을 짚고 서있는 김규식의 몸을 일별하며 촌녀자답지 않게 례절이 밝은 말을 했다.

어딘지 모르게 회의에 참가하지 않는것을 섭섭하게 여기는 기색이였지만 김규식은 녀인의 그런 태도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아주머니는 어느 계통의 대표로 회의에 참가하셨소?》

《녀맹대표로 참가했습니다.》

《어느 농촌의 녀맹위원장이시오?》

녀인은 부끄럼을 머금은 표정으로 머리를 숙였다. 허헌이 옆에서 김성란을 소개하는 말을 했다.

《이 아주머니는 평북도 대령군의 군인민위원장인데 장군님께서 각별한 관심을 돌리시는 녀성이웨다. 우리 유식인들은 흔히 학식이나 문벌, 재산으로 사람을 평가하는데 위원장은 이 편견을 깨뜨린 대표적인물이라고 할수 있쉐다.》

《극인은 북에서 오래 살지 않은것으로 알고있는데 어떻게 이 아주머니에 대해 그렇게도 자상히 아시오?》

김규식은 앞에 선 녀성을 깊이 알고있는것이 이상해서 허헌에게 물었다.

《내가 불가피한 사정으로 북에 들어온것은 지난해 말이웨다.

신병으로 해서 병석에 누웠다가 자리를 털고일어난것이 금년 3월인데 그때 북의 현실도 알겸 우리들이 앞으로 토의하게 될 헌법도 익힐겸 해서 지금 우리앞에 서있는 김성란위원장이 있는 군에 갔었습니다.》

남북협상참가자들은 앞으로 민족단일정권의 기본법으로 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헌법(초안)을 토의할 예정이였다. 허헌은 그 헌법이 우리 말로 된 누구나 다 리해할수 있는 인민적헌법이 되게 하는데서 김성란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김규식에게 이야기해주었다. 김규식은 저으기 놀라며 김성란의 모습을 다시한번 유심히 살펴보았다.

해볕에 그을은 광대뼈가 두드러진 녀인, 강냉이알같은 든든한 이가 드러나군 하는 두툼한 입술··· 아무리 보아야 지난날의 《군수》라고 할수 있는 군위원장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더구나 나라의 기본법인 헌법에 대해 그 무슨 식견을 가졌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그는 김성란에게 몇마디 말을 던져보기로 했다.

《아주머니는 헌법이 어떤 법인지 알고있소이까?》

《헌법토의사업이 있기전에는 그런 법이 있는줄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헌법의 체모를 바꾸어야 한다는 그런 제기를 어떻게 할수 있었소이까?》

《장군님께서는 나라의 주인은 인민이라고 늘 말씀하고계십니다. 주인이 집안의 기본법에 의견이 있으면 제기를 하는것이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위원장은 인민이 아니라 군의 어른이 아닙네까? 광복전의 말을 빌리면 군수라고 할수 있지 않습네까?》

《저는 가난한 농사군이였습니다. 지금도 집에서는 농사를 짓습니다. 그리고 우리 북조선에선 군위원장이 인민의 심부름군입니다. 그래서 광복전에 로동자, 농민을 막 부르던 일군이란 말을 씁니다.》

일군, 인민의 심부름군, 김규식은 또 하나의 두터운 문을 열고 새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것 같은 심정이였다.

《그런데 평북도에서 군위원장을 하는 아주머니가 여기에 와서 무엇을 합니까?》

《길에 떨어진 거름을 줏고있습니다.》

김규식은 너무나 뜻밖의 말이여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녀인의 발치에 놓여있는 삼태기를 굽어봤다. 삼태기에는 개똥, 소똥이 반쯤 담겨져있었다.

《이걸 주어서 뭘합네까?》

《칠순이 넘은 장군님의 조부모님이 아직도 농사를 짓고계십니다. 우리 북조선대표들에게 며칠간 틈이 생겨서 할아버님, 할머님이 감자싹을 내실 때 놓을 두엄을 모아드리자고 나왔습니다.》

이 또한 전혀 예견치 못했던 대답이였다. 고령의 장군님 조부모님께서 농사를 짓고계시여 타관의 군위원장이 만경대에 와서 길에 떨어진 두엄을 줏고있다? 혹시 만경대일가와 친척벌이 되는것이 아닐가?

허헌이 옆에서 김규식의 리해를 도와주려고 했다.

《조부모님은 이미 칠순이 넘었는데 만경대에 계시는 한에 있어서는 농사를 지어서 농량을 대야 한다고 하면서 일손을 놓지 않고계십니다. 나이가 높은 늙은이들을 그대로 둘수 없어 아래사람들이 무얼 좀 갖다주면 장군님께서도 엄한 말씀이 계시군 한답네다.》

허헌의 말이 끝나자 김성란이 뒤를 이었다.

《저희 집에도 늙은 시부모님이 계시는데 아직 환갑나이이지만 사실은 일을 놓고계신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평양에 올 때마다 대체로 만경대에 와보군 하는데 할아버님, 할머님들이 장손이 정사를 보는데 농사로 도와야 한다면서 어떻게나 힘들여 농사를 짓는지 저희들 보기에도 민망해서 조금씩 도와드리군 합니다.》

《그러니까 위원장아주머니는 장군님댁과 아무 인연도 없단 말입네까? 이를테면 친척벌이 아닌가 말이웨다.》

이번에는 김성란이 두리두리한 검은 눈을 크게 떴다.

《제가 장군님댁과 친척벌이 된단 말입니까?》

김성란은 너무나 뜻밖의 질문이여서 말을 할수 없는 모양이였다.

김규식은 허망한 말을 했다는것을 알았다. 그러나 생각은 더욱 깊어졌다.

칠순이 넘어서도 농사를 짓는다는 조부모님, 그분들의 수고를 덜어드리려고 평양에 올 때마다 만경대에 나오군 한다는 군위원장··· 아무리 인민의 심부름군이라고 해도 광복전의 군수라고 할수 있는 녀인이 길에 널린 거름을 줏고있다. 만일 이것이 보편적현상이라면 북조선에서는 령도자와 아래사람들간의 뉴대가 보통 밀접하지 않다는것을 말해줄것이다. 장군님의 조부모님들을 한시바삐 뵙고싶었다.

《극인, 나를 장군님의 조부모님과 상면할수 있게 해주겠소?》

김규식이 조급한 심정을 안은 사람마냥 물었다.

《그거야 어려운 일이겠소. 조부모님은 이 마을의 보통농민이시오. 나도 병석에 있을 때 잠간 나와 본 일이 있을뿐이니 인사를 드려야겠소. 이제 산굽이를 돌아서면 조부모님이 계시는 집이자 장군님께서 탄생하신 생가가 있쉐다.》

허헌과 김규식은 자동차에 올라앉았다. 김성란은 허헌이 강권하다싶이하는데도 두엄이 담긴 삼태기때문인지 자동차에 올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치마자락을 날리며 지름길을 달려갔다. 손님이 찾아온다는것을 선통할셈인것 같았다.

잠시후 승용차는 처마가 처져내린 한채의 초가집옆에 멎었다. 허헌의 뒤를 따라 차에서 내린 김규식은 사립문밖에서 소박하다 못해 허수해보이기까지 하는 초가집앞에서 그만 온몸이 굳어졌다.

장군님의 조부모님이니 의례히 넓은 대청이 끼우고 용마루가 덩실한 기와지붕에 사랑채가 달린 집에서 사실것이며 솟을대문밖에는 경비병이 서있을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경비병이 보이지 않는것은 말할것 없고 솟을대문은커녕 수수울바자에 사립문이 달려있을뿐인데 그것도 활짝 열려져있었다. 집도 말그대로 초가삼간 오막살이이다.

늙은 조부모님이 논밭을 뚜지며 살자면 집을 개축할 여유가 없을것은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장군님께서도 인간이신데 늙은 조부모님이 이런 곤궁한 생활을 하는것을 보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실것인가. 그러나 나라의 정사는 하나의 법에 기초해서 실현되여야 한다고 생각하시여 그이께서는 고령의 조부모님을 고생시키면서도 엄정한 정치를 펴고계실것이며 조부모님을 도와드리는 일을 극력 삼가하고계실것이다. 김규식은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다. 자기를 비롯해 김구, 리승만 그외에 이른바 독립운동을 해왔다는 사람들이 조국에 귀국한 후의 행동을 돌이켜보지 않을수 없었다.

그들모두는 귀국하자 생활상특전을 받으려고 얼마나 급급해했던가.

자기만 해도 친일족속인 민규식이 제공해준 요란한 양옥집에서 살고있으며 재벌들이 정치자금명색으로 보내주는 돈으로 궁색하지 않게 지내고있다. 김구도 친일족속인 광산《왕》 최창학이 제공해준 저택에서 살고있으며 리승만에 이르러서는 더 말할것도 없었다.

자기에게 만일 조부모님이 계신다면 농촌에서 이렇듯 처마가 처져내린 초가마가리에서 곤궁한 생활을 하게 하겠는가. 김규식은 자기네와 김일성장군 사이의 차이를 다시한번 통절하게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자, 들어가서 조부모님께 인사나 드립시다.》

김규식은 허헌의 독촉을 받고 발걸음을 뗐다.

할아버님은 집뒤에서 수수바자를 겨루고계셨다.

김규식은 중절모를 벗어들고 머리를 숙였다.

《제 김규식이라는 사람입니다.》

《아, 그러시오. 김규식선생이 평양에 왔다는 말은 들었는데 어떻게 되여 선통도 없이 이렇게 루추한 집을 갑자기 찾으셨소?》

《장군님께서 어떤 집에서 탄생하시구 할아버님, 할머님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싶어서 이렇게 갑자기 왔습니다.》

허헌이 말씀드렸다.

《선생은 뉘시오? 몇달전에 한번 왔다간분이로군. 우리 집 장군이 일을 보는데서 선전부장을 하는 그 허가성을 가진 녀자부장의 부친이 아니요?》

《기억력도 좋으십니다. 제 허정숙의 아버지 허헌입니다.》

《옳아, 외자이름이래서 잊지 않고있쉐다. 그때는 서울에서 미국놈하구 싸우다가 병을 얻었다고 했는데 이제는 쾌차하셨소?》

《네, 장군님께서 보살펴주셔서 병을 털었습니다.》

허헌과 이런 대화를 나누시는 김보현선생의 손이며 헌 무명천버선에 짚신을 신은 발이며 옷차림을 김규식은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한결 살이 빠졌지만 일생 농사로 늙은 험한 손이였으며 짚신이며 버선을 보아 조반전에 밭일을 하고 들어온 모양이였다.

해볕에 그을은 얼굴에는 농사일에 시달린 거치른 주름이 가득하다.

김성란위원장이 모지름을 쓰며 멍석을 끌어다 폈다.

《루추하지만 여기에 앉아서 말씀하시지요.》

허헌과 김규식은 신발을 벗고 멍석에 앉아 김보현선생님과 잠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손이 장군님이신데 왜 평양에 들어가 편안한 여생을 보내시지 않고 여기서 농사를 지으면서 고생을 하십니까?》

《내 아직 오금을 놀릴수 있는데 농사군이 농사를 지어야지 장손이 정사를 본다구 얹혀살아서야 되겠소.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라고 하였은즉 우리가 한알의 낟알이라도 더 거두어들여야 장군을 돕는것으로 되지 않겠소. 하긴 우리 집 녀장군이 강권해서 며칠간 장손네 집에 가있었수다. 한생 일로 늙은 사람이 비자루질이나 하면서 우두커니 앉아있자니 답답하기도 했지만 장군은 점심, 저녁때식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정사를 보는데 할아버지란 사람이 우두커니 앉아있을수 있겠습데까. 어떤 날은 밤을 밝히면서 정사를 봅데다. 내 보다 못해 하루는 깊은 밤에 장군이 일을 보는 방에 찾아들어갔쉐다. 내 장군에게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물었쉐다. 급한 일이 그렇게도 많은가? 사람의 몸이 무쇠로 되지 않은 이상 쉬기도 해야 할것이 아닌가? 어리석은 소견에 이런 말을 했쉐다. 그런데 장군은 우리 집안이 왜놈들한테 어떤 구박을 받았구 어떤 참혹한 일을 겪었는가? 할머님은 20년만에 집에 들어서는 내 손을 붙들고 왜 혼자 오느냐고 하면서 울음을 터뜨리지 않으셨습니까. 내 주변에 사람이 있어서 웃는 얼굴을 지었지만 가슴속에는 피눈물이 고이는것 같았습니다. 부모들은 어째서 단명으로 세상을 떠나구 동생은 갓 20에 유해도 남기지 못하고 죽어야 했습니까? 삼촌은 어째서 옥사를 해야 했습니까? 나라가 망한탓이 아닙니까. 미국놈들이 우리 나라를 또 집어삼키자고 합니다. 이런 때 끼니를 번지고 밤잠을 좀 자지 못하는것이 무엇이 큰일이겠습니까. 우리 집안이 당한 구박과 천대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우리 민족모두가 당한 일입니다. 이렇게 말하는것이 아니겠소. 내 정신이 번쩍 들었습네다. 맏아들 김형직이 독립운동을 하다 남의 나라 땅에서 숨을 거두고 셋째 김형권이 파발리사건이란것을 일으켜가지구 서울감옥에 끌려가구 장손이 백두산에서 싸우기 시작한 후 우리 집앞에는 왜놈순사들이 틀고앉아서 하루 24시간 떠나지 않았쉐다. 집앞의 나무그늘에 떡 들어앉아가지구 술을 처마시면서 농사를 짓는 나같은 사람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갖구 트집을 걸고 야료를 부리지 않겠쉐까? 오죽하면 우리 형록이가 그놈들에게 그늘을 던져주는 나무를 찍어버리고말았겠습니까. 장손이 나라를 찾은 다음 반드시 집에 돌아온다는 생각이 없었으면 왜놈 한두놈을 도끼질해서 죽여버리고 우리도 죽고싶은 생각이 불끈 치밀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쉐다.》

할아버님은 억이 막힌 지난날을 이야기하느라니 격한 마음을 달랠길 없는듯 장수연담배를 짧은 담배대끝에 달린 대통에 흙살이 오른 터실터실한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다져넣으셨다.

《여기에 괜찮은 담배가 있습니다.》

김규식은 《봉화》담배를 김보현할아버님앞에 내놓았다. 할아버님은 김규식이 내놓은 담배에는 눈길도 돌리지 않고 대통에 불을 달았다.

《장군의 말을 들은 다음날 로친네를 끌고 만경대로 나왔쉐다.》

이렇게 말하고는 수수바자를 다시 겨루기 시작하는데 할아버님의 눈굽은 분명히 질벅하게 젖어있었다. 김규식은 시뻘겋게 단 쇠몽둥이가 가슴속을 지지는듯한 충격을 받았다. 자신도 일제의 야수적만행을 몇번 목격하고 조부모님이 방금 말씀하시는 그런 절통하고 참을길 없는 비분을 느낀적이 있었으며 그때 받은 상처는 지금도 가슴속에 깊은 자욱을 남기고있었다.

그러나 자기는 오다가다 몇번 목격한데 지나지 않은 참변들이였다.

그러나 할아버님께서는 아들형제가 일제에게 항거하여 싸운 독립운동자들인데다 장손은 왜놈들을 공포속에 몰아넣으며 항일전을 줄기차게 전개한 영걸이셨으니 일제놈들의 박해는 얼마나 가혹했을것인가. 형틀에 올라설 각오를 하고 왜놈들의 대가리를 박산내고싶으셨다는 말씀은 더없이 진실한 표현일것이다.

《제 집을 좀 돌아보겠습니다.》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 묵묵히 앉아있던 김규식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촌집에 무엇이 볼게 있겠다고 그러시오. 집을 보기 위해 일부러 오신것 같으니 보지 말라구는 못하겠지만 루추한 촌집이웨다.》

김규식은 품을 들여 장군님께서 태여나 어린시절을 보내신 삼간초가를 주의깊게 돌아보았다.

회떡을 두텁게 이겨붙인 장독대의 독, 곤궁한 농촌집에서 흔히 볼수 있는 농쟁기들··· 그는 헛간에 들어가 쌀독뚜껑을 열어봤다. 중독에 좁쌀이 절반쯤 있었고 작은 항아리에 흰쌀이 절반쯤 담겨있었다. 이것이 햇곡식이 날 때까지의 농량의 전부일것이다. 움에 들어가보니 무우동침 반독이 있을뿐이였다. 방안은 장판도 아닌 노전이 깔려있었으며 방 한가운데 장군님께서 어렸을 때 공부를 하셨을 너무나도 작은 책상 한개, 웃방에는 평안도 산골의 군위원장이 싹을 낼 때 놓아줄 두엄을 줏는다던 바로 그 고구마싹이 파랗게 자라고있었다. 청빈이라는 말을 쓰기도 어려운 극빈한 농민의 집이였다. 김규식은 장군님께서 인민들과 그렇게도 친근하게 지내고 그들을 불러일으키는 특출한 령도력을 지니시게 된 까닭을 어렴풋하게나마 알수 있을것 같았다. 뒤울안에 다시 돌아온 김규식은 할머님과 함께 부엌에서 무엇인가를 끓이고있는 김성란에게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했다.

군위원장이 되기까지의 경위를 알고싶었던것이다.

멍석우에 올방자를 틀고앉은 김규식앞에 김성란은 다소곳이 모꺾어앉았다.

《내게 어떻게 군위원장이 됐는지 자세히 말해줄수 없겠소이까?》

김성란은 곧 입을 열지 못하고 생각을 가다듬는 표정인데 할아버님께서 대통의 담배재를 털며 느닷없이 말씀을 하셨다.

《저 위원장은 이제 더 큰일을 하게 될겁네다. 내 그것을 장담할수 있쉐다. 우선 나라잃은 백성의 슬픔을 어머니 배속에서 태여날 때 벌써 알았으니 그렇고, 그동안 우리 집에 와서 일하는 품을 보니 몸을 아낄줄 모르니 그렇다는거웨다.》

세상에 태여날 때부터 나라잃은 슬픔을 알았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김규식은 물었다.

할아버님은 성란이가 군위원장을 할 때까지 김모라니라는 별스러운 이름을 갖고있은 그 기막힌 사연을 띠염띠염 이야기하시였다.

김규식은 할아버님의 말씀을 듣고 얼혼이 나간 사람의 기색으로 군위원장을 다시한번 뜯어봤다.

자식을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세상빛을 보이지 않을 생각을 하다니? 우리 겨레가 이렇게도 참혹하게 살아왔던가? 자신도 너무 배가 고파 벽지를 뜯어먹기까지 했지만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기를 희생하는것도 서슴지 않는것이 어머니의 본성인데 갓 태여난 딸을 이 세상에서 몰아낼 생각을 하다니? 하기는 어머니이기때문에 그런 독한 마음을 품을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의 불쌍한 과거를 상징하는 이름을 장군님께서 성란이라고 고쳐주셨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담배를 빠는것마저 잊었다. 산간벽지의 군위원장의 이름을 고쳐주실 때 장군님께서 체험하셨을 기쁨을 짐작할수 있을것 같았다.

장군님께서는 억이 막힌 불행속에서 민중을 구원해주시는 그 기쁨을 체험하시며 간고한 항일전을 전개한것이 아닐가. 광복후 시책도 그런 기쁨속에 태여난것이 아닐가?···

《위원장아주머니는 애국미를 얼마나 헌납했소이까?》

문득 김규식이 물었다.

《겨우 8가마니를 했습니다.》

대령군이 얼마나 궁벽한 산골이며 땅이 얼마나 척박한 고장인지 알지 못하는 김규식은 20가마니, 30가마니의 낟알을 냈다는 농민들보다 수자가 지나치게 적은것 같이 느껴졌다.

김보현할아버님께서 바자를 겨루며 넌지시 말씀하시였다.

《군위원장은 애국미헌납운동때에도 참으로 큰 성의를 바쳤쉐다.》

제사때와 시부모의 생일에 쓸 쌀을 내놓고 한해농량을 거의 전부 바치다싶이 하고 집에서는 죽물을 우렸다는 이런 사정을 안 장군님께서 쌀을 보내주시며 애국미헌납운동은 죽을 쓸 결심을 하고 진행하는 대중운동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셨다는것···

《어째서 그런 고생을 결심하면서 애국미를 낼 생각을 했소이까?》

김성란은 김규식의 의문을 오히려 이상하게 여기는것 같았다.

《장군님께서 관심을 두시는 일인데 어떻게 우리가 가만있을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위원장아주머니는 장군님께서 의도하시는 일은 어떻게 해서든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는거겠소이다?》

《그럼요, 우린 달리 생각할래야 생각할수 없습니다.》

조금도 의심할나위가 없는 당연한 일처럼 말하는 김성란의 얼굴을 김규식은 덤덤히 마주보았다.

어쩌면 이렇게도 명백한 대답을 할수 있을가? 생각이 단순한탓일가? 궁핍을 겪으며 살아온 녀인은 앞날을 타산하지 않을수 없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자신도 이국에서 생활에 쪼들릴 때는 생계를 타산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면 무엇이 한해농사를 내놓다싶이 하는 그런 엄청난 결심을 하게 했을것인가? 언뜻 해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가지 해답을 찾기는 했으나 그것은 사람이 수많은 실패와 탐구를 거쳐 마침내 도달할수 있는 믿음의 세계, 신념을 자기의것으로 만든 사람이 그런 결심을 할수 있다는 생각이였다. 곤궁속에 살아온 녀인이여서 그런 엄청난 결심을 했을것인가?

《위원장아주머니는 쉽게 말하는데 그런 결심을 한것이 무엇인것 같습니까? 생활상타산입니까? 믿음입니까?》

김성란은 별로 깊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장군님에 대한 믿음이라고 했다.

《어떻게 돼서 그런 믿음을 갖게 됐는지 말해줄수 없겠소이까?》

김성란은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나서 조리있는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땅을 분여받았을 때의 고마움, 글눈이 텄을 때의 기쁨, 이런 희한한 일을 혼자 누릴수 없다고 생각해서 문맹자들의 글눈을 틔여주려고 뛰여다닐 때의 행복, 제일먼저 문맹퇴치군을 만들어냈다고 표창을 받을 때 비로소 세상에 태여난 보람을 가슴벅차게 느끼던 일, 자기와 같은 녀성들이 정권기관사업을 해야 한다시며 장군님께서 군인민위원회 일군으로 사업하게 해주실 때의 감격···

북조선에서는 새로운 인간들이 태여나고있구나! 새형의 인간으로 탄생한 사람들이 광대뼈가 두둑하고 입술이 두터운 이 녀성만이겠는가? 우선 재령나무리벌의 김제원이란 농민이 그럴것이다. 아니, 종합대학과 학원, 농기계임경소를 일떠세울수 있는 막대한 낟알을 헌납한 대다수의 농민들이 그런 재생의 희열을 체험했을것이다.

김규식은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벅찬 현실에 맞다든 심정이였다. 심장은 감격하고 흥분하지 않을수 없는 새 세계의 발견을 예감한듯 들먹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앞에 앉아 울바자를 겨루시는 할아버님의 주름깊은 얼굴이며 수수한 옷, 흙살이 두텁게 앉은 손, 처마낮은 소박한 초가삼간을 새로운 눈으로 에둘러보았다.

이 소박한 초가집에서 태여나 민중의 괴로움을 느끼시며 성장할 때 이미 가슴에 스며들기 시작했을 민중해방의 큰 뜻이 오늘날 새로운 인간상을 수많이 만들어내고있지 않겠는가.

《그래 군위원장은 장군님을 자주 만나뵈시오?》

김규식은 리성을 갈아세우려고 애쓰며 물었다.

《군에서 일을 하는 제가 어떻게 장군님을 자주 뵐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세번 뵈웠습니다. 이번 남북협상회의때와 같이 회의장에서 뵌것 말구 개별적으로는 세번입니다.》

장군님처럼 다망하신 정치적수령이 산골군의 한 녀성을 세번 만나셨으면 그이께서는 언제나 인민들속에 계신다고 해야 할것이다.

《장군님을 대하면서 제일 인상깊었던 때가 언제인지 말해줄수 없겠소이까?》

김성란은 잠시 생각을 더듬는 기색이더니 장군님께서 친히 지어주신 새 이름을 받아안았을 때라고 했다. 그 당시 자기는 정권기관에서 사업을 시작한 후 가장 어려운 시련을 겪고있을 때라고 하면서 어떤 시련을 겪었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봉건이란 말을 듣는 최로인을 옹호했다고 하는데 그 로인은 어떤분이시오? 군위원장은 왜 그 로인을 옹호하셨소?》

김규식은 자못 흥미를 느낀듯 물었다. 비록 머리우에 상투를 틀고 한개 마을을 씨족마을로 꾸리고 유교교리를 설교하고있었지만 최로인은 일제시기 마을앞의 울창한 솔밭을 지켜냈으며 대령과 같은 궁벽한 산간농민들의 생활향상에 관심을 보이고있었다. 만일 시대의 변천을 최로인이 깨닫지 못한다면 문중의 숱한 청소년들이 봉건교리의 희생자로 될수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그 최씨문중도 민주조선의 한 성원이 되여 건국에 이바지하기를 바라시였다. 그 문중의 최성근이란 청년을 군대에 입대시켰다. 그 최성근이 며칠후에 진행될 열병식에 참가한다. 최로인은 열병식에 참가한 아들을 보려고 평양에 올라오겠다고 하고있다. ···

한사람의 농촌녀성을 구원해주려고 큰 간부를 파견하여 잘못을 가리게 하셨을뿐아니라 기구하고 불행한 운명을 상징하는 이름을 버리게 하고싶어 새 이름까지 지어주시다니··· 그러니 위원장이 운명을 의탁한 령도자로 장군님을 받드는것은 의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자기를 서슴없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하던 김성란의 말이 새로운 뜻을 띠고 김규식의 머리속을 오갔다.

수천년간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며 질곡과 천대속에서 살아온 녀성들을 나라의 주인으로 키우려고 그런 노력을 기울이셨구나··· 그런데 협애한 일군들한테 《봉건》이란 말을 들으며 솔밭속에 붙박혀살던 최로인과 같은 사람도 북조선의 인민들과 똑같이 나라의 주인대접을 받고있다고 한다.

북조선에서는 타도대상이 되고있는줄로만 알았던 봉건교리의 신봉자 최로인까지 장군님의 정치에 공감하고있다는것은 열병식에 참가한 아들을 보려고 평양에 올라오겠다는것만 보아도 알수 있다.

그러니 북조선의 전체 인민이 그이를 흠모하고 따르고있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명상에 잠겨 담배를 태우고난 김규식은 멍석에서 일어섰다.

《제 다시한번 집을 돌아보겠소이다.》

허헌도 자리에서 일어나 김규식의 뒤를 따랐다.

김규식은 가난이 내밴 가장집물이며 농쟁기 하나하나에서 새로운 뜻을 찾아내여 오래동안 걸음을 멈추군 했다. 조선의 가난이 그대로 내밴듯한 앉은책상, 농짝, 노전, 장독과 보습··· 이런 가난을 털어버리고 새 기상이 약동하는 조국건설을 위해 노력을 다하시는 청년장군! 3천만 조선인민이 그이의 원대한 뜻을 받들고 한결같이 떨쳐나서게 하시려고 그리도 큰 로고를 바치는 그이!

《나는 만경대에 와서 참으로 큰것을 깨달았소이다! 태동하는 새 조선을 안것 같소이다.》

《나도 오늘 많은것을 알았소이다. 헌법에 나라의 주인은 인민이라고 명기되여있어 그것을 그저 장군님의 리념으로 받아들였었는데 내 생각이 짧았습네다.》

허헌은 벅찬 감동에 휩싸인 음성으로 말했다.

《그 리념은 이 초가집에서 시작되였다고 해야 할것이웨다. 리념을 생각해내기도 어렵지만 그 어려운것을 장군님께서 실현해나가고계십니다그려.》

《지당한 말씀이웨다.》

장군님의 사상을 납득시키려고 그렇게도 애썼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물러났었는데 이젠 김규식이 그것을 깨달았다고 봐야 할듯싶었다. 허헌은 어깨가 가벼워지는듯싶었다.

《장군님께서는 김규식선생은 믿을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더니 오늘을 내다보시고 하신 말씀같쉐다.》

《극인에게도 그런 말씀을 하시였소?》

김규식의 머리에 백범이 안타깝게 곱씹던 말이 떠올랐다. 38°선근처의 마지막역에 특별렬차를 두고 협상이 끝나는 마지막날까지 자기를 기다리라고 하셨다는 말씀, 그러나 자기가 장군님께서 기대하시는 그런 사람으로 될수 있는가? 김규식은 갑자기 고독감을 느꼈다. 그이의 아량과 신임이 지극하다는것도 알고 그이께서 걸출한 령도자라는것을 안 지금에도 거리감을 느끼는 자기야말로 불우한 인간이라고 해야 할것 같았다. 그 거리감이 어디에서 오는것인지 알수는 없다. 앞으로 남과 북의 정상으로 38°선을 사이에 두고 마주 대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인가? 아직도 지난날의 주견을 고집하고있는탓인가? 수십년간 뇌수를 물들인 불우한 《약소민족》정치인의 피해의식을 버리지 못해서인가? 어쨌든 그는 새것을 감수한 깊은 감회를 안고있는 지금도 스스로를 외로운 존재로 느끼고있었다.

《우사가 까다로운 전제조건을 내걸면서 협상참가를 미루고있을 때 장군님의 심뇌가 어떠했는지 아시오?···》

사려깊은 사색에 습관된 김규식의 검은 눈에 한순간 그늘이 졌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하긴 그때는 장군님을 너무나 몰랐어.···》

김규식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이젠 떠나지 않겠소이까? 가던 길에 유자녀학원에 들려보고싶소이다.》

《학원에 들리자면 서둘러야 할것 같쉐다.》

떠나겠다고 하직인사를 하는 허헌, 김규식을 김성란은 손을 붙들다싶이하면서 지금 고구마를 삶는중이라고 했다. 조부모님께서도 모처럼 찾아왔다가 때식전에 떠나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나무라다싶이 하시였다. 김규식에게 고질이 있어 일체 바깥음식을 들지 못한다는 말로 강권을 사양하고 허헌, 김규식은 사립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무거운 걸음으로 응접실에 들어선 김규식은 몸을 지탱하기 어려운듯 털썩 쏘파에 주저앉아 등받이에 웃몸을 지그시 기댔다. 잠시 눈을 지르감고 그 어떤 생각을 추적하는듯싶던 그는 웃몸을 일으켜 담배갑을 손더듬으로 찾아서 한가치를 입에 물었다. 연기를 날리며 모지름을 썼지만 생각은 여간해 종잡히지 않았다.

만경대에서 돌아오는 차중에서 머리에 거칫거리던 검은 빛갈의 그 의혹이 그의 사색을 한사코 방해했다. 체념과 의혹에 습관된 늙어버린 자기같은 사람의 심장도 청춘의 활력을 되찾은듯, 희망을 예감한듯 들먹거리게 하던 만경대에서 받은 충격을 사색의 그물에 려과시키려는데 문득 뇌리를 스쳐지나는 한가지 생각이 있었다. 장군님께서 인민 매개인을 자각된 새 인간으로 성장시키려고 크나큰 로고를 바치고계신다고 해서 현재의 우리 나라가 과연 민족의 자주권을 확립할수 있겠는가? 이런 의혹이 그의 머리에 검은 그늘을 던졌던것이다. 들먹거리던 심장은 금시에 활력을 잃고 잦아들었다. 숙소에 돌아와 늦점심을 들 때는 어쨌든 만경대에서 받은 그 충격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기에 이르렀지만 심장은 다시는 높뛰지 않았다. 김규식의 머리에 또다시 체념과 의혹의 회색장막이 뒤덮인것이다. 그는 종착점이 없는 착잡한 사색에 시달리며 응접실안을 오가기도 하고 쏘파에 앉아 담배연기를 날리기도 했다. 아무도 만나고싶지 않아 손기척소리에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윤명현이 방안에 들어섰다. 속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 수제자여서 내버려두었다.

《만경대에서 무슨 일을 당했습니까?》

스승의 얼굴에 비낀 고뇌의 빛을 감촉한 모양이였다. 김규식은 얼굴도 들지 않고 무거운 음성으로 중얼거리듯 대꾸했다.

《만경대하구는 상관이 없는 일이네.》

수난자의 괴로움을 안고있는듯한 쏘파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김규식을 내려다보기가 안타까운듯 윤명현은 긴숨을 내쉬고나서 말을 했다.

《평양에 들어온 후에 모두들 얼굴색이 환해졌는데 선생님은 어째서 그렇게 무거운 표정을 짓고계십니까? 하지가 던진 미끼를 생각하는게 아닙니까? 그건 롱간질입니다.》

《지금의 나로서는 그 문제를 생각할 여유가 없네.》

《그럼 무엇을 두고 그렇게 심뇌를 하십니까?》

김규식은 힘겹게 쏘파에서 일어섰다. 자기를 제일 깊이 알고있는 수제자가 번뇌의 일단도 리해하지 못하고있다고 생각하니 화가 났다. 응접실안을 오가며 불만이 어린 목소리로 몇마디의 말을 던졌다.

《자넨 나의 고뇌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지금까지 내옆에 있었나? 민족자주, 그것이 가능하면 그 가까이에라도 우리 겨레를 끌어가고싶은것이 내 소원이네. 내가 북에 들어와서 본것이 무엇인줄 아나? 민족자립을 희망하는 남북 정치인들의 갈구이구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성취하려는 노력일세. 내가 만경대에 나가서 감복한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그 갈구와 노력에 속한다고 해야 할것이네. 그래 자네는 희망과 갈구, 노력으로 세계 량초대국의 간섭을 물리칠수 있다고 생각하나?》

윤명현은 김규식이 얼마나 심각한 고뇌에 빠져있는지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는 스승의 번뇌에 동감도 추종도 하고싶지 않았다. 그 길에 들어서는 날에는 파멸이 있을뿐이라는것을 그는 알고있었다.

《황해제철소에 나가보시지 않겠습니까? 거기 가면 힘이 솟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윤명현이 권고했다.

《어떻게 돼서 힘이 솟는다는건가?》

《황철은 북에서 시행하는 자립적민족경제건설에서 큰 몫을 담당한 제철소입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그 제철소 하나를 보구 우리 민족이 자립할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단 말인가?》

어쩐지 자기를 비웃는것 같아 윤명현의 심중에서 반발심이 꿈틀거렸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선생님도 가보시면 느끼는바가 클겁니다.》

한개 제철소를 돌아보고 민족자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니 청년의 혈기가 좋다는것은 무모성때문이 아닌가싶다. 제자의 무모한 확신을 받아들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경도 할겸 울적한 고뇌에서 일시 탈피도 할겸 한번 가볼수도 있지 않는가?

《자네들은 그 제철소에 아침에 떠나서 저녁에 돌아왔지?》

《대접을 받느라고 시간이 늦었습니다.》

지식을 늘이려고 책도 보는것이니 제철소를 돌아보는것도 나쁠것 같지 않았다.

《래일 아침에 그 제철소에 가보기로 하세. 나하고 자네 둘이서 가세. 소문을 내지 말구.》

《우리는 손님들인데 일단 북조선측에 사전통고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자네가 알아서 조처하게. 후한 대접을 받느라고 시간을 바쳤다니 하는 말이네. 우리는 그런 페를 끼치지 말자는것이네.》

《래일 아침 떠날 때 간단하게 통지하는 형식을 취하겠습니다.》

다음날 김규식과 윤명현은 한 자동차에 올라앉아 상수리숙소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