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2

 

2

 

학교에서 돌아오던 학생들, 길가던 행인들, 지어 전차를 타고가던 승객들까지 승용차와 뻐스 혹은 걸어서 회의장으로 가는 련석회의대표들을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모란봉극장앞은 남북련석회의를 경축하는 희열의 바다, 열광의 바다가 펼쳐졌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북, 꽹과리, 징을 두드려대는 사나이들, 장고를 두드리는것만으로는 성차지 않아 춤을 추는 녀인들, 새납과 나팔을 볼이 터지게 불어대는 청년들···

련석회의에 참가할 대표들이 높은 돌계단을 올라오면 어린 학생아이들이 달려나가 꽃다발을 안겨주고 청년들은 꽃목걸이를 목에 걸어주었다. 감동된 남조선대표가 허리를 굽히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면 청년들이 달려들어 목마를 태워가지고 극장앞마당을 맴돌았다. 대표들은 너무나 기쁘고 감격해서 두손을 높이 들고 웨쳤다.

《남북협상 만세!》

《통일정부수립 만세!》

한민족이 가슴을 맞대면 이렇게도 눈물겹고 뜨거운 정이 오고가는데 어째서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던가. 38°선때문이다! 미국놈들때문이다! 모란봉극장현관앞에 선 수많은 남조선대표들이 눈물을 흘리며 주먹을 내두르면서 웨쳤다.

《단결된 민족의 힘으로 미국놈을 내쫓고 통일정부를 수립하자!》

그에 호응하는 만세소리, 통일정부를 수립하자는 맹세의 웨침···

4월 19일 오후 6시 남북조선 정당, 단체 지도자들이 등단한 주석단 한가운데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을 모시고 력사적인 남북련석회의는 드디여 막을 올렸다.

김책은 북조선로동당대표로 회의장 맨 앞에 앉아있었다. 대표들가운데 제일 년세가 많은 김월송로인의 개회사에 이어 의제가 채택되였다. 장군님께서 남조선정당, 단체 지도자들에게 보낸 초청장에 씌여있던 바로 그 의안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밝은 안색을 짓고계셨지만 남조선대표석에 시선을 던질 때면 그이의 눈에 한순간 그늘이 비끼는것을 김책은 곧 감촉했다. 김월송로인이 개회사를 하면서 장내에 빈자리가 있는것은 남북협상을 파괴하기 위한 미제와 반동들의 방해책동으로 말미암아 아직 평양에 도착하지 못한 대표들의 좌석이라는것을 알려줬지만 그런 몇마디의 말로 그이의 아픈 마음을 가라앉힐수는 없을것이였다. 빈자리를 그대로 둔채 회의를 시작해야 한다는것은 그이의 의사였지만 그 무슨 메꿀수 없는 허공처럼 보이는 그 빈자리를 내려다보는 장군님의 심정이 어떠하시겠는가. 협상을 위해 바쳐온 그 엄청난 노력이 회억되기도 할것이며 앞으로 바쳐야 할 로고를 생각하시기도 할것이다. 어쨌든 그이께서는 어깨우에 엄청난 중하를 느끼고계실것이다. 김책은 장군님께서 느끼시는 그 중하가 자신의 어깨에도 얹히는듯싶었으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 숨쉬기가 어려웠다.

북조선방방곡곡에서 보내온 축문축전이 우뢰와 같은 박수속에 전달될 때였다. 밖에서 서기부 서기장 허정숙한테 한통의 문건이 들어오더니 곧 장군님께 전달되였다. 첫장을 들치고 건뜻 문건을 내려훑은 장군님께서는 무엇인가 묻고싶은 눈길로 측막이 드리워있는 무대옆을 돌아보시였다.

중요한 문건이 장군님께 전달되였다는것을 김책은 직감했다. 김책은 발자욱소리를 죽이고 복도에 나가 문건을 들여보낸 사람을 찾았다. 휴계실에 들어가는 부부장의 뒤모습이 보여 김책은 뒤따라 휴계실에 들어섰다.

《동무가 장군님께 문건을 드렸소?》

《예, 제가 들여보냈습니다. 김구선생이 38°선을 넘었습니다.》

장군님의 어깨에 실린 짐이 얼마간 덜릴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니 김책의 가슴도 좀 가벼워지는것 같았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무엇을 알고싶어 측막쪽을 돌아보셨을가?

《김규식선생도 김구선생과 함께 38°선을 넘었소?》

《김규식선생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성시백동무가 보낸 사람이 김구선생일행속에 끼여서 들어왔는데 김규식선생의 출발날자는 아직 미정이랍니다.》

장군님께서 김규식의 움직임을 알고싶어하셨으리라는것을 김책은 의심하지 않았다.

《김규식선생은 38°선을 넘지 않았다는것을 장군님께 알려드려야겠소. 김구선생과 함께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북에 들어왔는지 자세히 쓰시오. 회의가 끝나게 됐는데 문건을 빨리 만들어야겠소.》

《알았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부부장이 들여보낸 두번째 보고를 이날 회의를 마감짓는 도중에 받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문건을 들어보이며 온 장내를 향해 말씀하시였다.

《대표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주겠습니다. 김구선생이 원쑤들의 방해책동을 물리치고 38° 선을 넘었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한국독립당계 정당, 단체대표들과 기자들 100여명이 북조선에 들어왔습니다.》

장내는 삽시에 술렁거리는 소리, 박수소리로 가득찼다. 장군님께서도 김구의 입북이 만족한듯 밝은 모습이시다.

장내가 조용해지기를 기다리던 그이께서는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뒤를 이으시였다.

《미제침략자들의 간섭과 훼방때문에 아직 김규식선생일행은 38°선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도 반드시 38°선을 넘어 평양에 올것입니다. 대표 여러분이 알아야 할것은 우리는 원쑤들의 집요한 방해책동을 쳐물리치면서 이 회의를 하고있다는것입니다. 적들의 책동이 얼마나 집요한가 하는것은 이 회의장에 빈자리가 얼마나 많은가 하는것만 보아도 알수 있을겁니다. 적들은 왜 련석회의를 방해하는가? 조선민족이 단결되는것을 바라지 않기때문이며 민족통일정부가 조선에 수립되는것을 원치 않기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이번 협상을 통해 민족대단합을 기어이 달성해야 하며 단결된 민족의 힘으로 미제의 예속화정책을 반드시 짓부셔야 합니다.》

장내에 울려퍼지는 박수소리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던 장군님께서 뒤말을 계속하시였다.

《우리가 가결해야 할 문제가 한가지 있습니다. 먼길을 오신 김구선생이 쉴수 있게 남북협상본회의를 하루동안 휴회하자는것입니다. 선생은 그동안 테로단들에게 봉쇄되여있다가 신발도 신지 못하고 실내화를 끌면서 뒤문으로 해서 38°선을 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선생님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년세가 높은분이 이런 고생을 하며 38°선을 넘은것은 우리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한 선생님의 노력이 지극하다는것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그 뜨거운 애국지성에 응당한 례절을 차릴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결에 붙일것도 없었다. 장내에서는 찬성하는 웨침소리, 열광적인 박수소리가 일시에 터졌다.

 

대동강의 유유한 흐름이 미림벌끝에서 솟아오르는 아침해빛에 찬연하게 물들무렵 김구는 대동교를 건넜다. 그는 차창밖을 내다보며 룡악산의 령천암에서 주지를 할 때 동냥을 하려고 몇번 들어와본적이 있는 평양성내의 옛 정취를 찾았다. 은근한 무지개빛을 머금은듯한 아침안개속에 잠긴 모란봉이며 굴복을 모르는 관서의 기상을 자랑하는듯 하늘중천에 용마루를 높이 추켜든 대동문, 절벽우에 올라앉아 대동강의 푸른 물을 굽어보는 련광정··· 비록 도시의 모습은 몰라보게 변했지만 반세기전에 눈에 익혀두었던 바로 그 천하절승 평양이 틀림없었다.

그는 회색 외장을 한 상수리의 2층양옥집에 안내되였다. 태평양전쟁이 터지기전에 미국의 령사관으로 리용되던 건물이였다. 양옥집 철문앞에서 먼저 평양에 들여보낸 《선견대》라고 해야 할 한독당원들이 그를 맞이했다.

김구는 차창을 거쳐 한독당원들의 인원수를 세여봤다. 다섯이 길수라고 해서 다섯명을 들여보냈는데 그 다섯명이 고스란히 철문밖에 서서 허리를 깊이 꺾으며 인사를 차렸다.

그는 려장을 풀기 바쁘게 정원에 나갔다. 누구도 엿들을수 없는 정원에서 《선견대원》들의 말을 들으려는것이다. 상해에서 떠나 류랑의 로정을 거쳐 중경, 그후에는 환국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노복처럼 김구를 섬겨온 백발동갑이의 말을 제일먼저 듣기로 했다. 김구는 저만쯤에서 황송해하는 모습으로 서있는 《선견대원》들가운데서 동갑이를 손짓해서 가까이 오라고 했다.

네댓걸음밖에서부터 무릎걸음을 하듯 자세를 낮추고 김구앞에 다가온 동갑이가 허리를 깊이 꺾으며 인사를 했다.

《그간 귀체만강하옵십니까?》

《그래 고생이 막심하지는 않았나?》

김구는 물었다.

《북조선은 인심이 후하구 겨레를 사랑하는 곳인줄 아룁니다.》

동그란 검은테안경속 김구의 눈이 머리를 깊이 떨군 동갑이의 뒤통수를 내려다봤다.

《어떻게 되여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말을 해보게.》

림정계의 명색없는 단체대표의 명분으로 왔는데 평양에서는 후한 대접을 해주고 련석회의에도 참가시켜주었다고 했다. 어제 첫날회의에서 38°선을 넘은 두령님을 김일성장군님께서 참으로 뜻깊은 말씀으로 높이 평가하셨다는 말도 했다. 동갑이는 남조선대표석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김구를 높이 평가하시는 장군님의 말씀을 들었던것이다.

《임자의 그 말이 적실한가?》

《언감 제가 두령님앞에서 망언을 하겠사옵니까.》

《나를 애국자라고 말씀하셨단 말이지··· 자주독립을 위해 지극한 마음을 바치고있다고 하셨단 말이지···》

김구는 구름다리 저쪽의 둔덕집들을 바라보며 충격을 다잡기 어려운듯 혼자말을 중얼거렸다. 김일성장군님과 여러차례 서찰을 주고받는 사이에 통일구국을 위한 그이의 투철한 뜻과 뜨거운 애국애족의 뜻에 감동되여 평양에 찾아오기는 했지만 《반공》을 정견으로 삼아왔고 북조선에 테로단까지 잠입시킨적이 있는 자기를 북에서 어떻게 맞이해주겠는지 불안한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가 38°선을 베고 죽는 한이 있어도 남북협상에 참가하겠다고 기자들앞에서 공언한것은 미제침략자의 총알에 가슴에 구멍이 날수도 있다는 뜻이 담겨있기도 했지만 38°선을 넘는 순간 북측으로부터 가해오는 《보복》도 각오한 말이였다. 그런데 38°선을 넘어선 자기를 장군님께서 그렇게도 높이 평가해주셨다니 김구는 마음을 진정하기 어려웠다. 집안에서 신던 뒤축이 빠진 끌신을 끌고 뒤문으로 경교장에서 빠져나왔다는것까지 알고 대표들에게 통고를 해주셨다는 동갑의 말은 도저히 풀길 없는 난해한 음양설과 같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수 없는 일이였다. 김구가 뒤문으로 빠져나오는것을 본 사람이란 지금 상수리숙소에 든 측근들가운데서도 두어명밖에 안되였다. 하긴 안중근렬사의 후예라고 해서 돌봐주고있는 조무래기 두엇이 소꿉장난을 하다 눈이 동그래서 쳐다보기는 했다. 그 10살에도 차지 않은것들이 평양에 와서 장군님께 저희들이 본 자기의 기괴한 행차를 알려드릴수는 없지 않는가!

김구가 의문에 사로잡혀 혼자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 동갑이가 용기를 내서 말했다.

《축지법을 쓰시구 승천입지하시는 장군님이 아니십니까? 솔방울을 수백수천의 군사로 현신케 하는 장군님이신데 38°선을 베고 죽을 각오를 한 두령님을 어찌 굽어살피지 않을수 있겠소이까?》

물론 김구는 민중들속에 나도는 전설적인 설화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군님의 지략이 출중하고 천태만상이여서 민중이 지어낸 설화일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끌신을 신고 뒤문을 거쳐 봉쇄속을 빠져나왔다는것까지 알고계신다는 말을 들으니 부지중 동갑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였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의 김구에겐 아무래도 좋은 일이였다. 자기를 휴식케 하기 위해 남북협상을 옹근 하루동안 휴회케 하시였다는 이 놀라운 조치에 어떤 례절을 차려야 하겠는지 우선 이것을 생각해야 했다. 그는 뒤짐을 지고 정원길을 오가기 시작했다. 지극한 애국심에는 마땅한 대접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는 장군님의 말씀, 38°선을 베고 죽을 각오를 하고 북으로 향한 자기를 그렇게도 높이 평가해주신 그이, 그닥지 않은 자기의 애국심을 그렇게도 높이 사주시는 그이야말로 애국의 뜻이 하늘에 닿은 출중한 애국자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구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애국심에는 응당한 례절을 차려야 한다고 하셨으니 자기도 례절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것이다. 서둘러 숙소에 들어가는 그의 머리에 흉중에 묻어두고 38°선을 넘은 욕구가 머리에 번득이였다. 이 기회에 림정의 법통을 인정받을수 있지 않겠는가?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림정의 권위를 과시할 기회를 마련할수 있지 않겠는가?

서둘러 숙소에 들어간 김구는 같이 류숙하고있는 지난날의 림정요인들을 자기 방에 불러들였다.

《북조선에 들어왔은즉 김일성장군님께 례절을 차리는것이 도리인줄 아오. 우리는 한독당을 대표하는것과 동시에 림시정부대표인즉 그에 상응한 외교적절차를 밟아 례절을 차리는것이 마땅한 일일것이요. 될수록 빠른 시간내에 나의 의사를 북측에 전해주기를 바라오. 각자는 맡은바 소임에 따라 행동해야겠소.》

《림정요인》들가운데서 나이도 젊은축에 속하고 리론가라는 말도 듣는 한독당부당수이며 림정의 외교부장이였던 조소앙이 난처한 빛을 지었다. 환국이 늦어져서 막심한 손해를 봤는데 그때의 꼴이 또 반복될것 같았던것이다. 미국인들도 아니고 북조선을 향해 그런 얼빠진 소리를 하다가는 협상에도 참가해보지 못하고 쫓겨날수도 있다고 생각한것이다. 만일 그런 난처한 지경에 이르는 경우 림정은 말할것도 없고 한국독립당도 존재를 끝마쳐야 할 비운의 나락속에 굴러떨어질것이다. 미국인들한테도 버림을 받았고 리승만한테는 천대를 받고있는 림정이 북조선에서 쫓겨나기까지 한다면 무엇에 의지해 명맥을 유지할것인가?···

한번 입밖에 낸 말을 거두어들이는 일이 없는 고집불통인 김구인줄 알면서 조소앙은 말하지 않을수 없었다.

《도착한 즉시에 지나치게 강경한 태도를 취하면 북에 올 결심을 한 선생님의 용단에 흠이 가는 상서롭지 못한 일이 발생할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범선생이 례의절차를 밟고싶어한다는 정도의 모가 나지 않은 말을 통고하는것이 어떻습니까?》

김구는 조소앙의 말을 별로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일축했다.

《내 말대로 하오. 내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말이요.》

퉁명스러운 말을 뱉어낸 김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침실에 들어가버리였다. 조소앙은 김구의 훈령을 리행할수밖에 없었다. 그는 응접을 책임지고 상수리숙소에 나와있는 듬직해보이는 젊은이에게 김일성장군님께 도착인사를 드리고싶은데 이 소원을 성취하자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가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화를 하면 됩니다. 내가 전화를 련결해드리지요.》

젊은이는 가까이에 있는 전화기옆에 가서 송수화기를 들고 몇번 들었던것 같은 이름을 찾아가지고 조소앙의 말을 조심스럽게 전달했다.

상대자가 전화를 바꾸라고 한듯 젊은이는 조소앙에게 송수화기를 넘겨주었다. 조소앙은 김구의 말을 얼마간 부드럽게 만들어 이야기했다.

《김구주석님을 위시해 림시정부요인들인 동시에 한국독립당 고위인사들이 평양에 들어왔으니 김일성장군님을 의례방문하는것이 례절을 차리는것으로 될것이고 또 마땅한 도리인줄 압니다. 시간과 장소를 상론하고싶어 접촉을 요청했습니다.》

상대방은 잠시 생각에 잠긴 모양 수화기에서는 전류의 흐름만이 들렸다. 한국독립당의 고위인사들이라고 해도 될 일인데 그앞에 림시정부요인이란 말을 붙였으니 상대는 긴장해지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더구나 김구가 지금까지 협상조건으로 림정의 법통을 인정해줄것을 고집해왔다는것을 아는 사람이면 더욱 그럴것이다.

잠시후 상대방은 자신을 김책이라고 소개하고나서 그 말이 김구선생의 의사인가고 물었다. 조소앙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고 잠간 기다려주십시오.》

조소앙은 송수화기를 놓고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눅잦히며 담배를 한대 피웠다. 이어 전화종소리가 다시 울렸다. 응접책임자가 전화를 받다가 송수화기를 조소앙에게 넘겨주었다. 수화기에서 김책의 말이 흘러나왔다.

《김구선생에게 휴식할수 있는 시간을 드리기 위해 회의를 휴회하기까지 했는데 의례방문을 생각하셨다고 장군님께서는 크게 근심을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김구선생의 요청이니 거절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자리를 같이하기로 하셨습니다. 방문은 아무때라도 좋은데 장군님께서 자주 자리를 뜨시니 시간을 오늘 오전 10시로 정했습니다. 내가 사전에 말씀드릴것은 남북간의 래왕을 다른 나라와의 래왕처럼 외교적절차나 행사처럼 갖는것을 장군님께서는 일체 금하고있다는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외세에 의해 강토가 량단됐는데 동족끼리 외국인행세를 하겠는가고 장군님께서는 말씀하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남과 북을 한강토, 한민족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제일 좋지 않게 생각하십니다. 말이 길어져서 안됐습니다.》

김책은 전화를 끊었다. 조소앙은 송수화기를 내려놓은 후에도 한동안 그 자리에 돌미륵처럼 굳어져 움직이지를 못했다.

북조선정권의 요인인 김책이 애써 부드러운 음성으로 완곡하게 이야기했지만 그의 말에는 남이요 북이요 하면서 민족적단합에 해를 주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어째서 그가 이런 말을 했겠는가? 자기의 말에서 민족적화합에 유해로운 요소가 있다는것을 감촉한탓일것이다. 그것은 림시정부요인이니 뭐니 하는 말에서 받은 인상일것이다. 조소앙은 자기가 공연한 말을 했다고 뉘우쳤다.

그런데 백범은 어째서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림정의 법통문제를 꺼내는가? 남과 북을 량단된 조국이 아니라 한강토, 한민족으로 생각하신다는 김일성장군님의 신조는 민족주의자들이 찬성해야 할 대강이 아니겠는가. 백범은 당리를 생각하지 말아야 할 의례방문에 림정의 법통을 인정받자는 욕구를 개입시켰다. 이것은 결국 민족적화합에 해를 주는 태도이며 동족간의 단결에 저애를 주는 행동이 아니겠는가. 그는 김책의 말을 김구에게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소앙은 빠른 걸음으로 백범의 침실에 들어갔다. 우선 이날 오전 10시에 김일성장군님께서 김구를 만나주겠다고 하신다는 말부터 전했다.

《엉? 10시에?》

그 무슨 생각에 골몰해 방에 들어온 조소앙을 돌아보지도 않던 김구가 화닥닥 놀래 고개를 돌렸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렇게 빨리 접견해주실줄은 생각하지 못했던것이다.

《그건 어디서 온 답변인가?》

《김책이란분한테서 온 회답인데 그분은 북조선요인들중의 한사람입니다. 머지 않은 곳에 장군님이 계시는지 잠간사이에 상론하고 답변을 했습니다. 행차를 하기전에 할말이 있습니다.》

조소앙은 김책한테서 들은 말을 그대로 전했다. 조소앙의 말을 들은 김구는 생각이 궁했을 때 늘 그렇게 하는것처럼 책상우에 꺼내놓은 붓을 들고 만지작거렸다. 지나치게 서둘러서 면박을 받는 꼴이 되였지만 일단 쏟아놓은 말을 이제와서 거두어들일수는 없었다. 어쨌든 림정이란 간판을 내들지 않고서는 자기를 내세울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곧 의례방문에 참가할 림정요인들(한독당의 고위층)이 모여들어 이번 행사에서 류의해야 할 사항들을 의논했다. 림정의 법통건을 어느 정도 내놓겠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하자 김구가 앞에 나섰다. 그 문제는 자기에게 맡기라는것이였다.

행차를 될수록 요란스럽게 꾸리느라고 온 상수리숙소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잠시후 김구는 서울에서 타고들어온 승용차에 올라앉고 나머지 수행원들은 북측에서 보내온 두대의 자동차에 나누어 앉아 북조선로동당청사를 향해 떠났다. 종로네거리에서 우측으로 꺾어든 승용차들은 해방산둔덕을 한옆에 낀 밋밋한 차도를 얼마쯤 달렸다. 광복전에 학교였던 모양인 회색건물앞의 넓은 운동장안으로 자동차들은 미끄러져 들어갔다.

김구는 차에서 내려서며 무심중 청사쪽을 바라보았다. 활짝 핀 밝은 웃음이 온 얼굴에 넘쳐나는 젊은분이 두어명의 수원들과 함께 현관앞에 서계시였다. 그이의 얼굴에 비낀 밝은 웃음이 순간에 김구의 가슴에 흘러드는듯싶었다. 만고의 영걸로 조선의 기상을 온 세상에 떨친 김일성장군이 과연 저분이신가! 포악한 왜놈들을 그리도 통쾌하게 답새기며 령활무쌍한 항일전을 전개한 김일성장군님이저분이란말인가! 저렇게도 젊은분이 남북정치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협상을 할데 대한 대담한 발기를 하시고 마침내 그것을 성사시킨 김일성장군님이란말인가! 장군님께서 약관의 년세라는 말은 들어왔지만 저리도 젊은분이 남북3천리를 손에 쥐고 흔드시다니···

김구는 손에 든 단장을 미처 내짚지도 못하고 장군님앞으로 급히 다가갔다. 장군님께서도 마주 걸어오시였다.

그이께서는 김구앞에 오시여 조상전례의 례법을 따른 인사를 하시였다.

김일성입니다. 먼길을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았겠습니다. 쉬시지 않고 이렇게 찾아주어서 고맙습니다. 사실 젊은 우리가 먼저 찾아뵈여야 하겠는데 휴식하실수 있는 시간을 드리기 위해서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령인 선생님이 먼저 어려운 걸음을 해주어서 젊은 사람이 제집에서 나이든분을 맞게 되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조금도 격식이 없이 겸허하고 스스럼없이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김구의 뒤에 선 요란스럽게 차려입은 늙은이들과도 한사람한사람 각근히 인사를 나누시였다.

《저희들은 이번 협상을 집안일을 의논하는 동족간의 회합으로 생각하고 번잡한 의례행사를 될수록 간략하기로 했습니다.》

김구에겐 장군님의 말씀이 힐책으로 들렸다. 그러나 이쯤한 의견상이는 있으리라는것을 각오하고 평양에 온 김구였다. 그는 속다짐을 더욱 굳게 하며 장군님의 다음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이렇게 례의를 갖추고 찾아와주시니 우리의 성의가 부족한것같이 생각됩니다. 젊은 사람들의 생각이니 널리 량해해주십시오.》

분명 당리를 먼저 생각한 자기의 허물을 나무라는 말씀인데 어쩌면 이렇게도 스스럼없이 겸허하게 이야기하시는가. 자기의 수행원이 여덟이나 된다는것은 자동차를 보내주시여서 모를수 없으시겠는데 장군님의 뒤에는 옷차림에 얼마간 마음을 쓴 외에 류다른 준비가 없었던것 같은 두명의 간부들이 서있을뿐이였다.

의례방문에서부터 림정의 위세를 시위해야 한다고 생각한 김구는 자기가 지나치게 조급해한것 같은감이 들기는 했지만 일단 내짚은 걸음을 후회할 그가 아니였다.

장군님께서는 곧 김구일행을 집무실로 안내하시였다.

《제가 일을 보는 사무실입니다. 방이 좁아서 불편한 점이 있겠지만 아직 건국도상의 어려운 때니 량해를 해주십시오.》

장군님의 집무탁에 붙여놓은 앞탁을 두고 김일성동지와 방문자들이 마주앉았다. 김구의 일행모두가 한줄로 앉을수 없어 따로 자리를 마련해야 했다. 방안이 정돈되자 일행의 이름과 직책을 김구가 장군님께 소개해드렸다. 림정에서는 어떤 요직, 한국독립당에서는 무슨 직책 이런 식으로 조소앙, 조완구, 엄항섭··· 등 차례로 말씀을 드렸다.

장군님께서는 조선독립운동과 민족주의운동에서 그들이 논 역할을 평가하면서 림정요인들을 개인의 자격으로 귀국시킨 미제침략자들의 무지막지한 행동을 비난하시였다.

《여러분은 조선독립을 위해 일제의 악독한 폭압밑에서도 굴하지 않고 싸운 애국자들입니다. 조선독립을 위한 선생님들의 투쟁은 누가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지는것이 아닙니다. 미국놈들은 선생들의 투쟁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북조선인민들은 선생들을 애국자로 존경심을 가지고 대할것입니다. 그것은 이번 남북협상에서 김구, 김규식선생을 비롯한 선생님들의 역할에 큰 의의를 부여하고있는것만 봐도 알수 있습니다.》

김구가 통솔하는 림정계의 정당, 단체들이 주석단에 앉게 될 좌석수를 말씀하시였다. 특히 한국독립당은 남북에서 제일 영향력이 큰 정당과 똑같이 4개의 좌석을 차지하게 됐으며 일반대표석에는 수십개의 자리를 내놓았다고 하시였다.

《이것은 우리가 마음대로 정한 좌석수가 아니라 남북조선 정당, 단체 예비회의에서 결정한것입니다. 미제놈들은 선생님들의 애국적활동을 인민들이 알지 못하게 방해를 하고 탄압을 했지만 우리 민족은 애국자들을 몰라보는 우매한 민족이 아닙니다. 특히 북조선인민들은 그렇습니다.》

이때야말로 림정의 간고한 20여년간의 력사를 화제에 올릴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가? 림정의 법통문제를 론의케 할수 있는 적절한 자리가 아닐가? 이런 생각이 김구의 머리속을 스쳐지났다. 걸상의 팔걸이를 굳게 움켜잡은 자기의 손을 내려다보던 김구는 등받이에 기댔던 웃몸을 일으켜세우고 입을 열었다.

《우리 한국독립당을 그렇게 높이 쳐주시니 고맙기 이를데 없소이다. 한국독립당은 림시정부의 여당이였으니 서찰을 통해서도 언급한바 있는 림정의 법통을 인정한다는 말씀으로 들어도 되겠는지, 이것을 알고싶소이다.》

김구는 둥근테안경속의 두눈을 한껏 긴장시켜 장군님의 모습을 마주보며 고집스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장군님께서는 의연히 밝은 웃음을 띠운 안색으로 김구의 말을 듣고나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선생님이 편지에서 표시한 그런 의사에 우리가 답변을 하지 않은것은 민족대단합을 달성하려는 우리의 목적에도 맞지 않고 또 현시기 론의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때문입니다.》

서울에서 미군사령부나 군정청을 상대할 때는 미제의 군정을 인정하지 않는다, 조선민족의 자주권을 존중하라는것이니 김구선생이 내댈만한 주장이였다고 장군님께서는 말씀하시였다.

《지금 선생님일행과 우리가 이렇게 마주앉은것은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미제가 조작하려는 남조선단독괴뢰정부와 조국의 장기분렬이라는 엄혹한 정세를 타개하기 위해서입니다. 단결하기 위해 마주앉았다는것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남북협상장에서 론의할 성질이 아닌 문제를 가지고 옳다거니 긇다거니 하고 론의를 해야겠습니까?》

어째서 협상장에서 론의할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가? 장군님께서는 설득력있게 말씀하시였다. 상해림정의 법통을 인정한다는것은 앞으로 수립될 민주주의통일정부가 상해림정의 전통성을 인정한다는것과 같다. 이런 결정을 내릴 권한을 우리 민족은 아직 그 누구에게도 준적이 없다. 이 문제는 앞으로 선거를 통해 대의원을 선출하게 될 인민들만이 갖고있다.

장군님께서는 광복후 림시인민위원회로부터 북조선인민위원회로 발전해온, 인민정권건설의 력사적뿌리인 항일대전시기 창조된 진정한 혁명전통에 대해 말씀하실수도 있었다.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 정식화된 그 전통이 있음으로 하여 해방직후에 수립된 림시인민위원회는 토지개혁을 비롯한 제반 민주개혁을 단행할수 있었으며 그후 인민위원회로 발전하여 북조선을 건국의 믿음직한 민주기지로 튼튼히 다져나가고있다. 우리 나라에 이런 거창한 위업을 이룩한 정권이 그 언제 있어본적이 있었던가. 그러나 그이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여 단합의 분위기를 흐리게 하고싶지 않으시였다. 김구도 진실로 림정의 법통이 계승되리라고 생각해서 그러한 말을 한것은 아닐것이다. 자기네 권위를 높여보자고 해서 하는 말일것이다.

웃음띠운 부드러운 안색에 낮고도 온화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장군님을 김구는 어줍은 눈길로 마주보았다. 장군님의 말씀을 듣고나니 법통문제를 꺼낼 자리도 아닌 장소에서 그것을 내든 자신이 후회되였다.

《선생님은 민족이 맡겨준 무거운 의무를 충분히 알고계시리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미제의 교활한 음모를 짓부시고 평양에 오실수 있었겠습니까.》

김구는 몸둘바를 알수 없었다.

《김규식선생도 곧 평양에 도착하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요즘도 삼청장에 미국놈들이 뻔질나게 드나든다고 합니다.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경교장, 삼청장은 말할것도 없고 리승만도 찾아간적이 없는 하지가 삼청장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김규식선생의 량심을 믿습니다. 그래서 특별렬차를 38°선가까이의 마지막역에 대기시켜놓았습니다. 협상을 끝내고 남조선대표들이 남으로 나갈 그 시각까지 대기하라고 했습니다. 무거운 병을 안고계신 김규식선생에겐 렬차가 더 편할것 같아 기차를 대기시켜놓았습니다.》

김구는 가슴을 욱질린것 같은 충격을 받고 눈길을 들었다. 여전히 웃음이 어려있는 장군님의 안색은 신심에 넘쳐있었다. 하지가 삼청장을 찾아갔다는것까지 알고계시면서 우사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것이라고 확고히 믿고계시다니···

김구는 개성으로 오는 도중 한 기자한테서 하지가 삼청장을 찾아갔다는 말을 들었다. 경교장에도 하지보다 급이 낮은 양놈이 찾아와 한 말이 있어 하지가 무엇때문에 삼청장에 찾아갔는지 대체로 짐작할수 있었다. 아직도 미국에 기대를 걸고있는 우사가 놈들이 던진 미끼를 받아물었으면 어떻게 할것인가? 만일 그렇게 되였다면 김구는 오랜 정치적동반자를 잃어버리는것으로 될것이며 이번 협상에서도 민족주의진영의 발언권은 대폭 감소될것이다.

이것이 우려되여 평양으로 오는 도중 김구는 질금질금 자동차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군 했다. 그래 개성에서 평양까지 하루밤이나 걸렸다.

《선생님은 서울을 출발하기전에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걸음은 반드시 성공할것이며 그것은 전민족의 성공일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남북협상의 성공은 반드시 전민족적문제를 해결하게 될것입니다. 이런 회합에 김규식선생이 빠지려고 하겠습니까. 또 하찮은 당리에 구애되여 협상의 앞날을 우려하게 해서도 안될것입니다. 우리는 서울을 출발하기전에 발표한 성명을 보고 선생님이 참으로 큰뜻을 품고 평양에 오신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빛나는 웃음이 어린 눈길로 김구를 바라보시였다. 김구의 얼굴에도 빙긋이 웃음이 피여났다. 협상에 림하는 자기의 태도를 섭섭해하시는 장군님의 말씀을 들었는데도 김구는 옹색한 생각에 사로잡힐수가 없었다. 마음이 흥그러워지고 가슴이 탁 트이는것 같았다. 이번 걸음에 반드시 민족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를 품고 서울을 떠날 때의 큰뜻이 가슴을 뿌듯하게 채웠다.

김구가 갑자기 림정의 법통문제를 꺼내 얼마간 긴장되였던 분위기는 씻은듯 사라지고 화기에 넘친 분위기만이 장내에 가득찼다.

 

회의에 참석하려고 두루마기를 입던 김구는 정원안으로 미끄러져들어오는 승용차들을 보았다. 현관앞에 붙인 차에서 눈에 익은 중절모자가 먼저 보이더니 나직한 키에 허리통이 굵은 김규식이 내리였다. 왔구나! 비록 이틀 늦기는 했지만 우사가 평양에 왔을적엔 양놈의 롱간을 뿌리치고 서울을 출발했을것이다. 김구는 우사한테 달려가 그간 소식을 듣고싶었다. 그러나 나이를 봐서도 그렇고 림정주석이며 한독당위원장의 직책을 생각해서도 그렇고 김규식이 찾아오기를 기다려야 할것이다. 담배를 한대 태웠다. 그러나 김규식일행이 찾아오는 수선스러운 발자욱소리는 좀해 들리지 않았다. 하긴 려장을 풀고 한숨 쉬려면 시간이 좀 걸릴것이지만 오늘 회의에 참석하려면 서둘러야 할것이 아닌가. 조소앙, 엄항섭이 들려 회의장에 가지 않겠느냐고 재촉을 겸한 말을 했을 때도 김구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서 그대로 눌러앉아있었다. 혹시 오늘 회의가 있다는것을 모르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장군님께서 내주신 특별렬차를 타고왔으면 회의와 관련해서 누구에게서건 말을 들었을것이다. 가슴에 재가 앉는 심정으로 김규식을 기다린 지난 이틀간의 일들이 머리에 얼씬거리면서 노여운 생각이 일기 시작했다.

누구든 불러 자기는 먼저 회의에 간다는 말을 우사에게 전하고 방을 나서려는데 복도에서 발자욱소리가 들리더니 사무실문을 두드렸다. 김구도 여러번 상종한적이 있는 윤명현이 방에 들어섰다. 김규식이 보내서 온 모양이였다. 우사가 찾아오지 않은것이 어쩐지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내색할수는 없었다.

《언제 왔나?》

그들의 도착을 모르는체 할수밖에 없었다.

《이젠 반시간쯤 됐습니다. 밖에서 조소앙, 엄항섭선생들이 기다리던데 선생님은 회의에 가시지 않습니까?》

자기들은 회의에 관심이 없는듯한 말투였다.

《우사는 회의에 갈 차비를 하지 않던가?》

《선생님은 자리에 누우셨습니다.》

《도중에 병을 얻었나?》

《그런게 아니라 본회의에는 참가하지 않을 생각인것 같습니다.》

김구는 말을 알아듣기 어려워 재기가 넘쳐나는 퉁트무레한 윤명현의 얼굴을 마주봤다. 혹시 하지한테 그 무슨 다짐을 받고 들어온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스쳤지만 회의불침을 너무나 거침없이 터놓으니 도무지 가늠을 할수가 없었다. 한숙소에 들었으니 숨길 필요가 없다고 여겼을수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것은 한참후의 일이였다.

《그럼 임자네들은 모두 회의에 불침할 작정을 하고 들어왔단 말인가?》

김구는 눈을 흡뜨며 되물었다. 만일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협상을 파괴하는 행동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선생님은 참가하지 않더라도 저희들은 회의에 참가할 생각입니다.》

김규식의 행동에서 무엇인가 미심쩍은것이 느껴졌다. 만일 우사가 평양에 다녀왔다는 면목이나 세우려고 38°선을 넘었다면 이것은 벌써 미국놈의 롱간질에 걸려들었다는것을 뜻하지 않겠는가. 미국놈의 손탁안에서 논다는것은 민족을 반역하는 길에 들어섰다는것을 의미한다고 김구는 생각했다. 김구는 끝내 노여움을 폭발시키고야말았다.

《임자는 삼청장사람이니 우사를 도와줘야 할것이 아닌가.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지. 나는 평양에 들어오면서 온밤 로상에서 우사를 기다렸네. 그래 나한테 와서 늦은 사연을 말해주면 못쓴다던가?》

《그건 제 잘못입니다. 백범선생에게 찾아뵙지 못해서 안됐다는 인사를 전하라시는걸 제가 그만 딴말을 하다보니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고현! 한울안의 이 집이 천리밖인가, 만리밖인가? 임자가 경교장사람이라면 볼기를 쳤겠네. 우사를 그렇게 모시면 못써!》

애꿎은 윤명현에게 가슴속에서 부글거리는 분을 폭발시킨 김구는 팔을 후들후들 떨며 옷걸개에 걸어놓았던 두루마기를 입었다. 방을 나서다말고 뒤말을 보탰다.

《우사에게 이르게! 남북협상은 참가해도 되고 참가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회합이 아니라구 하게. 반드시 오늘부터 회의에 참가해야 한다고 이 백범이 말하더라고 전하게!》

김구는 격한 목소리로 웨치고는 복도에 나섰다.

개회시간이 림박해 회의장에 도착한 김구는 곧 장군님을 모시고 주석단에 나갔다. 뒤늦게 회의장에 도착한 김규식계의 대표들이 자리에 들어앉다 말고 갑자기 터지는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 열광적인 환호소리에 어리둥절해 주석단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들도 열정적으로 박수를 쳤으며 밝은 웃음이 얼굴에 비낀 장군님을 더 자세히 보려고 키돋움을 했다. 몇몇 대표들은 주석단배경에 눈길을 던지기도 한다.

김구도 주석단에 나서다 무대배경을 보고 말할수 없이 큰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민족대단결을 목적한 남북련석회의라고 해도 공산주의자들의 관례를 따라 회의장을 꾸렸을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흰빛으로 눈부시게 부각된 3천리강산이 무대배경을 아름답게 장식하고있지 않는가! 붉은 기폭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었다. 김구는 너무나 충격이 커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얼혼이 나간 사람모양 부각상을 바라보다 자기의 자리에 가앉았다. 옆의 의자에 와 앉는 사람이 없어 이런 경사로운 큰 회의에 누가 개회시간을 맞추지 못하는가 해서 옆좌석앞의 명패를 보았다. 김구는 숨이 칵 막히는듯 했다.

 

민족자주련맹위원장 김규식

 

정성스럽게 씌여진 명패가 앞탁에 놓여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우사가 반드시 회의에 참가하리라는것을 확신하고 그의 좌석을 마련해놓은채 회의를 진행하시였구나! 그것도 장군님 가까이의 맨 앞줄의 좌석을, 그런데 우사는 지금 병에 빙자하여 숙소에 누워있다. 회의장에 가득찬 남북조선대표들은 이 사실을 어떻게 생각할것이며 서울에서 들어온 숱한 기자들은 이것을 어떻게 전할것인가. 무엇인가 께저분한것이 느껴지는 김규식의 행동은 필경 자기자신뿐아니라 서울에서 들어온 민족주의자들의 처지를 난처하게 만들것이다. 김구의 가슴밑바닥에서 노여운 생각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불손하고 방자하다고 해야 할 우사를 언짢게 여길 대신에 그의 평양도착을 높이 평가해주시는것이였다. 이날의 회의일정이 시작되기전에 그이께서는 대표들에게 말씀하시였다.

《김규식선생과 80여명의 대표들, 수원들, 기자들이 오늘아침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김규식선생의 도착이 늦어진것은 여러가지 어려운 일이 많았기때문입니다.

선생님은 먼길을 오기 어려운 묵은 병을 갖고계시고 그사이 무리를 해서 오늘의 이 회의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과 함께 평양에 온 대표들은 회의에 참가했습니다.》

잠시 술렁거리던 장내에서 박수소리와 환호가 터졌다. 김규식의 허물을 감추어주시는 장군님의 한량없이 너그러운 아량에 김구는 가슴속이 뭉클했다. 이렇게도 너그럽고 후더운 덕망을 지닌 장군님께서 정치를 펴시는 북조선에 한때 《정치공작대》를 파견하고 《림정》의 법통을 전제조건으로 내들려고 한 자신을 생각하니 김구는 민망하기도 하고 옹졸한 견해로 해서 하마트면 대사를 그르칠번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는 어제 북조선로동당에 의례방문갔을 때의 감동을 되새기면서 자기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있는 변화를 흐뭇한 심정으로 음미해봤다.

사회자는 이날 회의에 남북의 56개 정당, 단체대표들 695명이 참가했다는것을 대표들에게 통보하면서 민족대화합과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력사적남북련석회의 둘째날 회의의 개회를 선포했다.

 

낮휴식시간이였다. 김구가 회의장을 나서는데 함께 평양에 들어온 홍명희가 옆에 와서 장군님께서 김규식을 찾아가시는것 같다고 넌지시 귀띔해주었다. 김구는 대번에 긴장했다. 비록 회의장에서는 그리도 너그럽게 우사의 허물을 감싸주셨지만 그이의 심정이 지금 어떠하시겠는가? 한개의 특별렬차를 38°선의 마지막역에 대기시켰다가 호사스러운 려행을 하게 했는데 병에 빙자하며 회의장에 얼굴도 내밀지 않았으니 신의를 짓밟은 그를 장군님께서 어찌 좋게 보실수 있겠는가? 더구나 장군님께서는 하지가 삼청장을 찾아갔다는것까지 알고계시지 않는가. 김구는 마음이 황급해졌으며 장군님께서 우사를 만나시는 자리에 자기가 붙어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규식의 변덕스러운 행동거지를 두고 말하면 노여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것은 집안일이였다. 민족주의진영의 령수로 행세하는 김구는 우사의 허물을 감추어줄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급히 차에 올라앉은 그는 이미 출발한 장군님의 승용차를 운전수에게 가리켜보이며 뒤를 바싹 따르라고 일렀다. 상수리숙소의 철문앞에 이르렀을 때는 장군님의 승용차뒤에 잇달리다싶이 했다. 김구는 장군님의 승용차옆에 댄 차에서 허둥거리며 뛰여내려 승용차에서 내리시는 장군님앞에 가서 머리를 숙이며 말씀드렸다.

《우사가 장군님의 노여움을 살수 있는 행동을 했다고 나도 생각합니다. 허나 우사로 말하면 특별렬차에 누워왔다고 해도 병약한 그에게는 과한 려행을 했다고 할수 있습니다. 오후에도 회의가 있고 본회의 이후에 다른 회담들을 갖기로 되여있지 않습니까. 몸에 좀 무리가 가더라도 회합에 참가하게 할터이니 장군님께서는 제 시간에 점심을 드셨으면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저으기 놀란 기색으로 머리를 떨구고 서있는 김구를 지켜보시였다.

《선생님은 뭔가 오해를 하고계신것 같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김규식선생이 먼길을 오셨는데 주인인 내가 문병을 하지 않으면 도리에 어긋난 일이 아닙니까? 나는 잠간 병문안을 하려고 왔습니다.》

머리를 든 김구는 흔연하게 웃으시는 장군님을 눈을 크게 뜨고 마주보았다. 남북협상을 방해하고있는것과 다름이 없는 김규식을 문병하시다니. 마음속에 38°선이 들어앉은 사람을 제일 싫어하신다는 장군님께서 우사를 병문안하시겠다니··· 이번 회의를 격식을 차리지 않는 회합으로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지만 개인관계에서나 정당간의 관계에서는 높낮이를 따지는 격식과 관례가 있는것인데 온 민족이 우러러받드는 장군님께서 미국놈의 롱간에 넘어가 애를 먹이는 김규식의 병문안을 하시다니?···

《김구선생도 김규식선생을 만나보지 못하고 회의에 참석하셨겠는데 같이 들어가서 문병을 합시다.》

장군님께서는 김구의 허리를 팔로 감아안고 현관계단을 오르시였다.

장군님께서 찾아오셨다는 선통을 받은 김규식은 거느시 기댔던 쏘파에서 뛰여일어나 어쩔바를 몰라하며 덤벼쳤다. 예고도 없이 장군님께서 오시다니? 외교란 회의장소, 대표단의 급수와 인원, 안건, 지어 말의 색갈과 표정, 몸자세··· 미묘한 이 모든것이 주고받는 대화 못지 않게 중요한 의의를 갖는것인데 북조선정권의 령도자이며 민족의 령수이신 그이께서 외교의 관례, 절차 같은것을 전혀 무시하고 자기의 숙소를 찾아오시다니? 김규식은 장군님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겠는지 알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옷차림을 갖추며 한편으로는 자기가 취해야 할 태도, 말을 생각하느라고 경황이 없는데 활짝 열리는 문으로 장군님께서 김구를 한옆에 끼고 방에 들어오시였다.

김규식은 자세를 바로잡으며 령도자에게 표시해야 할 응당한 례절을 차리느라고 장군님앞으로 다가가며 머리를 숙였다.

《몸이 부실해서 회의에 늦게 왔을뿐아니라 평양에 당도해서도 려독을 푸느라고 회의에 참가하지 못한것을 널리 량해해주십시오.》

《나이가 높으신분이 젊은 사람에게 뭘 이러십니까? 몸이 편치 않으시다면서 왜 일어났습니까? 어서 편히 앉으십시오.》

장군님께서는 김규식의 손을 이끌다싶이 하여 쏘파에 눌러앉히시였다. 김구도 장군님옆에 자리를 잡았다. 김규식은 너무나도 허물없이 대해주시는 장군님의 소탈한 태도에 어리둥절해서 한편 놀라면서도 긴장했던 얼굴기색이 저으기 풀려 웃음비슷한 기색이 얼마간 어렸다.

《이번 남북협상은 비유해 말하면 한마을에 위험이 닥쳐와서 김구, 김규식선생님들과 같은 나이가 많은 좌상들을 모시고 닥쳐온 위험을 어떻게 하면 방비하고 동네의 안전을 도모하겠는가? 이런 문제를 멍석을 깔고 마주앉아 의논을 하는것과 같은 회의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공식적인 직책을 생각하면서 우리를 간격을 두고 대하면 의사를 소통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호방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장군님을 김구는 감동된 눈으로 바라봤다. 그이께서는 김규식앞에 놓인 앞상을 보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선생님은 장죽으로 담배를 태우시는것으로 알고있는데 어째서 장죽이 보이지 않습니까?》

김구는 그제야 김규식의 앞상에 협상참가자들에게 공급된 《봉화》담배만이 놓여있는것을 보았다. 그는 김규식을 두둔해 몇마디의 말을 할수 있는 기회가 차례진것 같아 급히 이야기가운데 끼여들었다.

《중국에 있을 때 우사는 장죽으로 담배를 태우지 않았습니다. 서울에 와서 양놈들한테 시달리다못해 생각해낸것이 장죽입니다. 미국놈들을 힘으로는 당해낼수 없으니까 긴 장죽을 상대의 턱밑에 들이대서 이를테면 담배연기로 미국놈들과 싸우기로 한셈입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장군님께서 김규식을 돌아보며 물으시였다.

《담배연기를 갖고 미국놈들과 싸운다는것은 사실에 있어 약소민족의 쓸데없는 놀음이지 그것이 무슨 효험이 있는 일이겠습니까? 제 마음을 위안하느라고 시작한 일인데 이제는 습관이 됐을뿐입니다.》

《내 말은 그런 뜻에서 물은 말이 아니라 평양에 들어올 때는 장죽을 갖고 들어오지 않았는가 하는것입니다.》

《안해가 려장을 꾸릴 때 짐속에 넣기는 했는데 좀전에 려장을 풀 때 어째서인지 그 장죽을 내놓고싶지 않았습니다. 앞상에 담배갑이 놓여있어서 들어보니 봉화라는 담배인데 거기에 민족대단결로 통일정부 수립하자라는 글이 인쇄되여있지 않겠습니까. 그래 한대 피워보니 담배맛이 어떻게나 좋은지 나를 위해 담배를 만든것 같은 생각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그럼 됐습니다. 우리에게 담배연기를 끼얹을 생각이 없다는 말씀인데 그러면 문제를 해결할 전망이 확실하다는것을 말해줍니다. 좋은 말을 들으니 김규식선생이 봉화담배를 피우는걸 한번 보고싶습니다. 우리가 보는데서 담배를 피워보십시오.》

장군님께서는 담배 한대를 꺼내 김규식에게 쥐여주시였다. 그리고는 성냥을 그어 담배불을 붙여주려고 하시였다. 이 순간 김구는 하마트면 탄성을 입밖으로 토해낼번 했다. 민족의 화합을 위해 이렇게도 마음을 쓰시다니! 김규식도 화닥 놀라 밝은 웃음이 어린 장군님의 모습을 마주본다.

《아니 왜 이러십니까? 장군님께서 내게 담배불을 붙여주시겠단 말씀입니까?》

《나이가 젊은 내가 년세가 높은 선생님에게 담배불을 붙여주는것이 잘못된 일입니까? 어서 담배불을 붙이십시오.》

김규식은 끝내 담배불을 붙이지 못하고 담배가치를 앞상에 놓았다.

《아무리 한민족이 한자리에 모였다구 해도 상하가 있고 관례가 있는 법인데 북조선정권의 령수인장군님에게서 일개 당련합체의 위원장에 지나지 않는 내가 어떻게 담배불을 받겠습니까?》

《우리는 이번에 그것을 깨자는것입니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격식을 갖추지 않을수 없으니 관례를 따른다구 해도 지금과 같은 사사로운 자리에서는 조선민족의 한 성원으로 마음을 툭 터놓고 이야기를 하자는것입니다. 나라가 있고 민족이 있어야 혁명도 하고 독립도 할수 있을게 아닙니까? 조국땅이 둘로 갈라지고 종당에는 미국놈들한테 3천리강산을 빼앗길 위험이 닥쳐온 때 담배불을 주고받는것이 무엇이 그렇게 큰일이겠습니까? 이 김일성이 켜댄 불에 담배불을 붙이십시오.》

그이께서는 《봉화》담배갑에서 담배 두대를 다시 꺼내 김구와 김규식에게 나누어주시였다. 성냥을 다시 그어 형벌인 김구에게 먼저 불을 달아주고 다음에 김규식이 문 담배에 불을 붙여주시였다. 김규식의 숱많은 시커먼 눈섭이며 두둑한 볼, 담배가치를 쥔 손이 떨리는게 알렸다. 김구도 눈을 슴벅거리며 담배불을 받았다.

《두분이 우리 담배를 피우는것을 보니 나는 큰 시름을 놓은것 같습니다. 나도 담배를 피웠으면 좋겠는데 사실 나는 담배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정 속이 탈 때 담배를 입에 대기는 하는데 그저 담배를 피우는 흉내를 낼뿐입니다. 그래서 담배를 태우지 않으니 량해를 해주십시오.》

소탈하게 웃으며 하시는 말씀이였다. 비록 말씀은 간단했지만 장군님의 진심이 느껴져 김구는 말할것 없고 김규식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 김규식선생에게 말씀드릴것이 있습니다.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자고 했으니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줄 알면서 말을 하겠습니다.》

김구도 김규식도 담배를 손에 쥔채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상수리숙소에 찾아온 본문제를 이야기하시려는줄 알았다.

《나는 김규식선생이 우리 민족을 약소민족이라고 하는 그 말을 앞으로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우리 민족이 어째서 약소민족이라는겁니까. 우리 민족은 강성대국인 고구려를 건설한 민족입니다. 남북을 합치면 3천만의 인구를 가진 나라입니다. 또 우리 민족은 근면하고 슬기로운 용감한 민족입니다. 강성대국을 건설한 력사를 가지고있고 근면하고 슬기로운 3천만의 인구를 가진 우리 민족을 약소민족이라고 해야겠습니까?》

분명히 김규식의 민족관을 반대하는 말씀을 하고계셨지만 그이의 만면에 어떻게나 밝고 부드러운 웃음이 차넘치고있었던지 장군님께서는 그 어떤 중대한 문제가 마침내 합의에 도달하여 자못 만족해 말씀하시는듯한 모습이였다.

《우리 나라가 약화되기 시작한것은 사대주의가 봉건통치배들속에 만연되기 시작한 때부터입니다. 리조는 사대를 국시로 삼기까지 했는데 이것은 리왕조가 결국 무능했다는것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항일을 할 때나 광복후 건국사업을 하면서 체험한데 의하면 사람들의 능력과 잠재력을 보지 못하고 남에게 의존할 생각을 하는 일군은 어김없이 무능한 사람들이였습니다. 한민족, 한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사대를 하면 우수한 민족성도 알지 못하게 되고 통치자들자신도 머저리가 된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리조가 망국의 길을 걸은것은 결국 사대를 한데 있습니다.》

김구도 김규식도 장군님의 독특한 민족관과 력사관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담배를 빠는것마저 잊고 그이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명장밑에 약졸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전해오는 한낱 격언을 국가건설이나 민족문제해결의 대강으로 삼을수 없다는것은 명백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격언에는 확실히 우리가 참작해야 할 진실이 담겨있습니다. 자기 힘을 믿을 때, 자기 사업의 정당성을 확신할 때 사람의 힘은 배가된다는것, 심지어 기적이 창조된다는것을 우리는 항일을 할 때 한두번만 체험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에 있어 전민족의 의사를 대변하는 56개의 정당, 단체대표들 근 700명이 외세의 간섭을 물리치고 자주독립국가를 수립할수 있다는것을 확신하게 된다면 우리는 약소민족이란 말을 듣는 나라가 아니라 자립성이 강한 강유력한 나라를 능히 건설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초대강국이 들씌우려고 하는 분렬의 비극을 감수하지 않을 결심을 한 민족이 자립적인 국가를 건설하지 못한다면 어떤 민족이 자립적인 나라를 세우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김규식선생!》

장군님께서는 미소가 담뿍 어린 안광으로 김규식을 바라보며 물으시였다. 김규식은 답변은 고사하고 얼굴에 미소조차 지을수가 없었다. 그는 우선 장군님의 말씀에 답변을 드릴 마음의 준비가 되여있지 못했다. 조선의 망국이 사대를 한데 있다고 말씀하시는것을 보면 조국의 완전독립은 민족적자립을 이룩하는것으로부터 시작되여야 한다고 확신하고계시는게 분명했다. 북조선정권의 령도자이신 장군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할 때 김규식으로서는 응당 찬성해야 할것이였다. 그러나 전국적인 범위에서 문제를 고찰할 때는 민족자립이 가능하다는 말을 할수는 없었다. 미쏘와 대결을 해야 성취할수 있는 그 자립을 연약한 날개를 가진 조선민족이란 작은 새는 그런 위업을 도저히 이룩할수 없다고 김규식은 생각하고있었다. 그는 솔직한 답변을 드릴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장군님의 깊은 뜻을 쌍수를 들고 찬성하고싶습니다. 내가 윌슨의 민족자결론을 믿고 빠리에 갈 때의 천진한 청년이라면 장군님의 말씀을 두말없이 찬성했을겁니다. 그러나 나는 70이 불원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늙은이입니다. 2차대전기간 명맥을 부지한 나라들도 진정한 의미에서 자립적인 독립국가행세를 하기가 어려운데 근 반세기동안이나 망국의 비운을 체험해야 했으며 현재는 세계의 두 초대국의 대결장으로 되고있는 조선이 자립을 할수 있겠는지 나로서는 믿기 어렵소이다.》

김구는 우사의 답변이 참기 어려울만큼 불만스러웠다. 련석회의를 불손하게 대하는 그를 탓하지 않고 숙소를 찾아주신 장군님의 은정을 생각해도 그렇고 민족자립을 믿지 않는 그의 사상도 어쩐지 미심쩍게 여겨졌다. 남북협상이란 사실에 있어 민족자체의 힘으로 엄혹한 현 난국을 타개해나가자는 회합인데 민족자립을 믿지 않는다면 무엇때문에 평양에 왔는가? 그러나 장군님의 안면에는 김규식의 말을 섭섭해하거나 나무랍게 여기시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의연히 눈부신 웃음이 빛을 뿌리고있을뿐이였다.

《민족자립을 반대하지 않으신다니 그거면 됩니다. 그 다음문제들은 이번 회담을 통해 해결할수 있을겁니다. 사람도 집단도 그리고 민족도 어떤 신념을 갖고있는가에 따라 기상도 체모도 많이 달라진다고 우리는 확신하고있습니다. 또 사람이란 결심해서 못하는 일이 없다고 우리는 믿고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호방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김구와 김규식에게 또다시 《봉화》담배가치를 나누어주시였으며 성냥을 그어 불을 붙여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셨다. 성시백에게 애용하는 회중시계를 준 후에 새로 마련하신 시계였다.

《잠간 문병을 하고 돌아간다는것이 너무 오래 앉아있은것 같습니다. 김구선생은 오후회의에 참석하자면 점심도 들고 좀 쉬기도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돌아가겠습니다. 김규식선생은 오후에도 려독을 푸시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오후에는 주로 문건을 채택하게 되는데 그 문건들을 선생님에게 전하게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김규식은 깊은 사색에서 비로소 깨여나 간단한 말을 한마디 했다.

《폭넓고 근본적인 말씀을 해주셔서 정녕 감사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상수리숙소를 책임진 관리일군을 불러 김규식선생의 건강이 악화되지 않게 오후에도 충분한 휴식을 하게 하라고 지시를 주고 숙소를 떠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