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1

 

제 7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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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남북련석회의가 개최될 4월 19일을 앞두고 회의장을 돌아보려고 모란봉극장으로 향하시였다. 아득히 높은 화강암 돌계단을 휘우듬히 에돌아 올라가는 승용차에 앉아 차창을 거쳐 극장을 바라보는 그이의 심중은 저으기 흥분되시였다. 흰도리기둥에 떠받들려 명상에 잠긴듯한 4월의 봄하늘에 날아오를것 같은 아름답고 수려한 극장, 그것은 민주조선의 앙양된 기상을 그대로 체현한 모습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광복된지 불과 3년도 안되는 짧은 사이에 우리의 기술, 우리의 로력으로 저렇게 수려하고 아름다운 극장을 모란봉중턱에 덩실하게 일떠세웠다. 력사적인 남북련석회의를 어디에서 진행하겠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론의가 분분할 때 그이께서는 모란봉극장을 선택하시였다. 유서깊은 청류벽밑을 맑고 푸른 대동강이 감돌아흐르고 단군이래의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고도의 절승 모란봉중턱에 극장이 자리잡고있는것도 회의장으로 선택된 중요한 리유의 하나였지만 그이께서는 무엇보다먼저 모란봉극장이 새 조선의 건국기상을 체현하고있다는 점을 중시하시였다.

극장정문에서 남북련석회의조직준비위원회 서기장 허정숙이 장군님일행을 맞이했다. 그이께서는 허정숙의 안내를 받으며 극장안으로 들어서시였다. 눈이 번쩍 뜨이게 회의장은 밝고 정갈하고 현란했다. 천정에서는 무리등이 4월의 봄빛과 같은 눈부신 빛발을 내리쏟고 의자에 씌운 백설처럼 흰 카바들은 력사적인 련석회의를 벌써부터 경축하는듯 현란하게 불빛을 반사하고있었다. 밝고 정갈한것을 사랑하는 우리 민족의 구미에 맞게 회의장이 꾸려진것이 우선 그이의 마음에 드시였다. 그이께서는 회의장의 절반을 차지하고있는 남조선대표들의 좌석을 주의깊이 돌아보시였다.

《의자에 어느 당대표 아무개, 이런 식으로 이름을 써서 붙이는것이 좋겠습니다. 물론 안내하는 동무들이 있겠지만 이름을 써서 붙여놓으면 대표들에게 자부심과 책임감을 더 높여주게 될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회의장앞으로 나가 주석단배경을 이윽히 바라보시였다. 푸른빛을 바탕으로 한 배경한가운데 눈부시게 수려한 3천리강산이 부각되여있었다. 금시에 물바래를 날리며 파도가 출렁일것같은 해밝은 푸른바탕, 그 가운데 떠있는 조선의 넋을 지닌듯한 정갈한 흰빛의 조국의 모습, 분렬되지 않은 조국, 백두성산으로부터 한지맥으로 련련히 뻗어내린 3천리강산··· 이번의 민족대화합회의를 시발점으로 하여 분렬되지 않은 통일독립국가를 건설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거기에까지 이르자면 아직도 복잡한 수많은 문제가 놓여있었으며 멀고도 다난한 길을 걸어야 했다.

《주석단배경이 어떻습니까?》

장군님께서는 동행한 김책을 돌아보며 물으시였다.

《우리 나라가 량단될수 없는 하나의 강토라는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배경입니다. 회의참가자들의 애국애족의 정신을 북돋아줄수 있을것 같습니다.》

남북협상을 도저히 성사시킬수 없는 공론처럼 생각하던 사람들이 협상개최가 눈앞에 박두해오자 갑자기 련석회의에 대단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회의장은 평양에서 그중 력사가 오랜 극장이여야 한다느니, 회의는 시내 중심에 자리잡은 큰 극장에서 진행해야 한다느니 하는 분분한 의견이 오갔다. 주석단배경을 두고도 어떻게나 소란스럽게 많은 말을 하는지 조직준비위원회에서는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정치회의의 성격에 맞게 붉은기를 걸어야 한다, 조선의 절경인 금강산을 그려놓아야 한다, 우리의 주장을 내려먹이지 않는다는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무것도 장치하지 않는것이 좋다··· 조직준비위원회에서 주석단배경문제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는것을 료해한 장군님께서는 허정숙을 불러 제기된 견해들을 알아보시였다.

《주의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는게 무슨 말이요? 이번 회의만큼 우리의 주장이 명백하고 또 우리의 요구를 반드시 관철해야 할 회의는 없소.》

장군님께서는 조선지도를 선명하게 그려붙이면 회의정신에 부합되는 배경이 될수 있다고 하시였다. 이런 과정을 잘 알고있는 김책은 주석단배경과 같은 그닥지 않은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련석회의를 오늘에 이르게 하신 장군님의 로고를 깊이 생각하게 되였다.

그이께서는 주석단에 올라가 좌석을 돌아보다 앞탁에 놓여있는 명패를 보고 미소를 지으시였다. 좌익에서는 허헌, 백남운을 비롯한 몇명, 중간파에서는 홍명희, 리극로, 리용··· 우익에서는 김구, 김규식, 조소앙, 최동오··· 항간에서 조선의 7대명인이니 10대명인이니 하는 명성높은 명사들이 거의 모두 이 단상에 앉게 되여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못내 만족하신 안색으로 극장을 나서시는데 언제왔는지 문밖에서 당에서 부부장사업을 하는 일군이 어딘지 모르게 초조하고 근심이 낀 심상치 않은 기색으로 서성거리고있었다. 극장에까지 뒤따라 온것을 보면 여간만 다급한 문제가 제기되지 않은 모양이였다.

《무슨 일이요?》

장군님께서는 부부장가까이에 다가가며 물으시였다.

《부위원장동지를 만나려고 왔습니다. 서울에서 긴급한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오늘의 일정에 예견되여있는대로 북조선대표들의 숙소를 찾아보려고 승용차가까이에 가시던 그이께서는 부부장의 초조하고 심상치 않은 기색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걸음을 멈추시였다. 서울에서 들어온 긴급소식이라면 련석회의와 관련된 문제일것이다. 긴장한 낯빛으로 부부장의 말을 듣고있던 김책이 장군님을 기다리게 하는것이 죄송스러운듯 그이앞으로 왔다.

《련속회의를 파괴하기 위한 미국놈들의 책동이 악랄해지는것 같습니다. 간단히 끝날 보고가 아닌것 같은데 후에 대책을 세워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장군님의 바쁘신 시간을 지체시키는것 같아서 하는 말이였다.

《부부장이 여기까지 찾아온걸 보면 보통 급한 일이 아닌것 같은데 서울에서 누가 들어왔다고 하오?》

《마동삼동무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장군님의 의견을 듣고싶다고 한답니다.》

《난 오후에 대표들의 숙소를 돌아볼 생각이였소. 급한 일인것 같은데 저녁까지 기다릴것 없이 여기에서 들읍시다.》

그이께서는 발길을 돌려 극장안으로 다시 들어가시였다. 허정숙의 안내를 받으며 귀빈실에 들어간 그이께서는 방가운데 서서 부부장에게 물으시였다.

《무슨 문제요?》

부부장은 침착성을 유지하려고 애쓰며 서울에서 벌어지고있는 사태를 말씀드렸다. 김구의 저택인 경교장과 김규식의 숙소인 삼청장을 각각 천여명의 반동깡패들이 철통같이 봉쇄하고있다, 한국독립당계와 민족자주련맹계의 정당 단체 대표와 수원, 기자들 근 2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김구, 김규식의 출발을 기다리고있다, 뜻밖에도 하지가 김규식을 찾아갔다, 하지는 련석회의가 끝난후에 김규식이 서울을 출발하면 그의 안전을 담보해줄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성시백동무는 하지와 김규식사이에 그 어떤 중대한 문제가 론의됐을수 있다고 보면서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는중이라고 합니다.》

하긴 그럴것이다. 사령관이 김규식의 안전을 담보해주겠다는 말을 하려고 일부러 삼청장을 찾지는 않았을것이다. 장군님의 마음속에서 회의장을 돌아볼 때의 흥분, 만족감은 어느새 사위여버렸다. 김규식과 하지사이에 어떤 문제가 론의됐을것인가? 그이께서는 잠시 귀빈실을 오가시다 발에 밟히는 한줄기 해빛이 너무나 밝고 눈부시여 문뜩 눈길을 드시였다. 창문에서 4월의 찬연한 해빛이 비쳐들고있었다. 방금 회의장을 돌아볼 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마음속에도 봄빛이 가득한듯싶으시였었다. 그런데 지금은 봄빛에 관심을 돌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도 크나큰 정력을 바쳐 마침내 개최를 눈앞에 둔 련석회의가 또 미국놈들한테 롱락을 당하게 됐다고 생각하시니 장군님께서는 분격을 삭이기 어려우시였다.

《성시백동무는 김구, 김규식선생들의 입북결심을 어떻게 보고있다고 하오?》

《하루이틀 시간이 늦어질수 있지만 김구선생의 입북결심에는 변함이 없을것이라고 합니다. 김규식선생도 일단 의사표시가 있었으니 입북할것으로 생각되지만 하지와의 밀담후에 태도를 달리하지 않겠는지 그것이 걱정된다고 합니다. 현재 리극로선생이 삼청장을 나들면서 김규식선생의 출발을 촉구하고있다고 합니다.》

김규식을 민족자주련맹위원장으로 내세우는데 한몫을 한 책임감으로 해서 리극로는 끈질긴 설복을 들이대고있을것이다. 원래 베를린종합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수여받은 학자이면서 조국에 귀국하여 민족어를 고수하기 위해 조선말규범을 만들고 대사전을 편찬하는 간고한 언어학자의 길을 택한 애국자, 완강한 의지의 소유자로 알려진 그의 노력도 별로 효험을 보지 못하고있다면 김규식이 미국놈들의 롱간질에 단단히 걸려든 모양이였다.

리극로와 쌍벽을 이루고 남조선중간계에서 활동하는 홍명희는 김구일행과 평양에 들어올 차비를 하고있다고 한다.

봄빛이 비쳐들어오는 창문가에 서계시던 장군님께서는 몸을 돌리며 단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김규식선생의 입북결심이 흔들리지 않게 가능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하지가 선생에게 어떤 말을 했는가 하는데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말고 신심을 가지고 대담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마동삼동무가 빨리 서울에 나갈수 있게 모든 편의를 다 보장해주시오.》

부부장이 귀빈실에서 나가자 김책이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이미 대부분의 대표들이 평양에 와있는 조건에서 회의개최날자를 더이상 연기하기는 어려울것 같습니다.》

《회의는 더 연기하지 못합니다. 대표들에게 이미 닷새동안 회의를 연기한다고 공포했는데 이제 또 연기하면 남북협상이 미국놈들한테 롱락당하는것으로 됩니다. 회의는 회의대로 해야 합니다.》

원래 회의개최날자는 4월 14일로 예정되여있었다. 그러나 그날까지 남조선의 우익진영과 그들과 보조를 맞추기로 한 중간계 대표들이 미제침략자들의 악랄한 방해책동으로 해서 38°선을 넘지 못해 회의를 5일간 미루기로 했다. 그사이 남조선대표들이 만난을 무릅쓰고 적지 않게 평양에 도착하여 김구, 김규식계와 홍명희, 리극로일행이 평양에 들어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회의사이에 진행하기로 한 참관과 관람날자를 연기합시다.》

회의사이란 본회의, 지도자협의회, 고위급회담들을 가리키는 말씀이였다.

《회의기간을 10여일, 한 보름쯤 잡자는것입니다. 이만한 기간이면 미국놈들이 아무리 방해를 한다고 해도 김구, 김규식선생들은 말할것 없고 협상에 참가하고싶은 남조선사람들이 모두 평양에 들어올수 있을겁니다.》

김책은 빙그레 웃었다.

련석회의준비위원회에서는 회의들을 진행하는 기간에 남조선대표들이 장군님의 시책을 알수 있게 공장, 기업소, 농촌, 문화시설 등을 참관하게 할 예정이였다. 그런데 참관대상이 너무 많아 어느것을 빼고 어느것을 넣어야겠는지 가리기 어려워 론의를 거듭하고있었다. 회의기간이 길어지면 참관대상을 줄일 필요도 없고 회의어간에 참관과 견학, 공연관람을 적당하게 끼워넣으면 대표들이 련일 회의를 하느라고 피곤해하지도 않을것이며 건국기상이 끓어번지는 북조선의 현실과도 더욱 친숙해질것이였다.

《그렇게 하면 민족대화합을 위한 협상의 목적을 달성하는데도 유익할것 같습니다.》

김책이 만족한 기색으로 말씀드렸다.

《허정숙동무에게 좌석정리를 좀 하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주석단좌석이 비여있으면 보기에도 좋지 않을것 같구 일반대표석도 적잖게 빈자리가 생기겠는데 자리를 치워놓았다가 대표들이 도착한 다음에 의자를 들여놓게 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 귀빈실을 나서시려고 할 때 김책이 말씀드렸다. 빈자리들이 있으면 회의장이 엉성해보일것 같았던것이다.

그이께서는 김책의 견해를 단호히 부인하시였다.

《빈자리를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련석회의에 참가하겠다고 의사를 표명한 사람들이 제날자에 평양에 오지 못하는것은 미국놈들때문인데 무엇때문에 빈자리를 없애겠습니까? 미국놈들은 민족대화합을 이렇게 방해하고있다, 자주독립국가를 세우는 사업은 미국놈들과의 첨예한 투쟁을 통해서만 성취할수 있는 대업이다, 련석회의도 미국놈과의 첨예한 싸움속에서 진행되고있다··· 오늘의 복잡한 현실을 직관적으로 보여줄수 있는 빈자리를 무엇때문에 없애겠습니까.》

그이께서는 주먹을 틀어쥐며 준절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빈자리를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김책은 미제와의 격전속에서 남북협상을 진행하게 된다는것을 새삼스럽게 절감하고 엄숙한 심정에 휩싸였다.

《문제는 평양에 온지 벌써 한주일이나 되는 대표들을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것입니다. 내 생각엔 서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있는지 그대로 알려주는것이 좋겠습니다. 나는 북조선대표들을 찾아볼테니 김책동무는 남조선대표들을 방문하시오.》

귀빈실을 나선 장군님께서는 허정숙의 안내를 받으며 농민대표들이 들어있는 려관으로 향하시였다. 농번기에 들어선 때에 농민들이 20여일이나 평양에 올라와있으면 농사에 지장이 있지 않겠는지 걱정되시였던것이다. 농민대표들이 들어있는 려관은 담장너머로 거무칙칙한 기와지붕이 보이는 조촐한 단층집이였다.

고려호텔, 해방호텔, 동양려관과 같이 설비가 비교적 좋은 려관들은 남조선대표들과 기자들에게 배정되여있어 북조선대표들은 학교기숙사가 아니면 그닥지 않은 려관들에 들어있었다.

한발 먼저 려관에 들어갔던 허정숙이 널대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밖으로 나와 승용차에서 내리시는 장군님께 말씀드렸다.

《김정숙녀사께서 나오셔서 농민대표들과 담화를 하고계십니다. 녀사께서도 농사가 걱정되여 나오신것 같습니다.》

김정숙동지의 세심한 활동에 장군님께서도 자못 감탄하실 때가 한두번이 아니시였다. 남북협상을 앞둔 요즘도 그랬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남조선대표들이 들어있는 숙소를 찾아다니며 민주주의 새 사회가 눈부신 속도로 건설되고있는 북조선의 현실이며 광복전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북조선녀성들의 처지를 해설해주면서 대표들이 애로를 느끼고있는 미세한 점까지 찾아내여 해결해주군 하시였다. 그의 한 실례가 38°선을 넘느라고 옷주제가 말이 아닌 남조선대표들에게 20여벌이나 새옷을 지어주신것이였다.

장군님께서 대문안에 들어가시자 김정숙동지의 두리에 모여 이야기를 듣고있던 농민들이 희열에 넘쳐 만세를 웨치며 그이앞으로 달려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잔잔한 웃음을 얼굴에 띄우고 토방밑에 서계시였다. 그이옆에 김성란이 서있었다. 그이께서는 어서 장군님앞으로 나서라고 성란의 등을 떠밀고계시였다. 그러나 성란은 김정숙동지와 함께 장군님을 뵙고싶은듯 그이의 손을 붙잡고 뭐라고 간청을 하는 모습이다. 장군님께서는 만세를 웨치고 깊은 절을 드리는 농민대표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며 인사를 나누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토방밑을 뜨시려고 하지 않자 김성란은 급한 걸음으로 장군님 가까이에 달려와 사람들을 헤집고 대표들의 앞에 나서서 그이께 정중히 인사를 드리였다.

《김성란동무도 왔구만.》

장군님께서는 밝게 웃으며 인사를 끝내고 얼굴을 드는 성란에게 손을 내미시였다. 성란이는 장군님의 손을 모두어 잡았다.

《부모님들은 다 건강합니까? 아이들도 잘 있구?》

《네. 잘 있습니다.》

《그 학봉리의 최로인은 어떻게 지냅니까?》

《로인님은 군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됐습니다. 최성근동무가 평양에 올라와서 열병식훈련을 한다는 말을 듣고 로인님도 아들이 장군님앞을 지나는것을 보겠다구 날자를 저에게 알려달라구 부탁을 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번 협상기간에 자주독립국가의 초석인 정규화된 우리의 무장력의 위력을 보여줄셈으로 열병식을 준비하고계시였다.

《우리가 온것도 그 날자때문입니다. 우리가 오기전에 회의개최가 연기되여 농사에 지장이 있지 않겠는지 론의를 한것 같은데 대표동무들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회의는 래일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회의기간이 예정보다 길어질것 같습니다. 그것은 미국놈들의 방해가 심해서 일부 남조선대표들이 제 날자에 평양에 도착할수 없을것 같기때문입니다.》

김구, 김규식을 평양에 오지 못하게 하려고 경교장과 삼청장을 1 000여명이나 되는 반동깡패들이 에워싸고있으며 미국놈들은 그들의 만행을 배후에서 조종하고있다고 장군님께서는 마당에 가득찬 농민대표들을 둘러보면서 말씀하시였다. 대표들은 분격을 참을길이 없어 일시에 웅성거렸다. 몸은 체소하지만 손은 넉가래만큼 큼직한 한 농민이 번뜩이는 눈길로 장군님을 우러러보며 담찬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김정숙녀사께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우리도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 협상인지 알고있습니다. 한달이라도 우리는 평양에 있을수 있습니다. 우리가 떠나올 때 농사걱정은 말구 회의를 잘하고 오라고 동네사람들은 부탁을 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농민대표들은 모두 모범농민들이구 핵심들인데 농사에 지장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영향이 있을것 같으면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김성란이 손을 광목치마에 문대기며 쭈밋거리다 한발자욱 앞에 나서서 장군님께 아뢰였다.

《올해농사에 지장을 받지 않을수 있는 대책을 김정숙녀사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는 미국놈들과 싸우는 심정으로 남조선대표들을 기다리고있다, 그렇다고 해서 농사를 소홀히 할수도 없다, 자주독립국가를 세우자면 무엇보다 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 이런 전화를 대표를 파견한 군에 하기로 했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 이렇게도 깊이있게 농사걱정을 하고있을줄은 장군님께서도 미처 생각하지 못하셨던 일이였다. 그이께서는 만족한 미소를 만면에 띄우시였다.

《좋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전화를 받은 군에서는 미국놈들과 싸우는 심정으로 알곡증산을 위해 떨쳐나설겁니다. 전화를 누가 하기로 했습니까? 김성란동무가 하기로 했습니까?》

김성란은 불깃해진 얼굴을 숙였다.

《제가 그런 전화를 할 자격이 있습니까. 김제원아주버니가 전화를 하는것이 좋겠다고 김정숙녀사께서 말씀이 계셨습니다.》

김제원이라면 들에서 호미질을 하는 농촌아낙네로부터 시작해서 인민학교 아이들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그의 이름으로 전화를 하는것이 가장 합리적일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 농민대표들의 숙소에 나와 요긴한 대책을 다 세워놓은 뒤이니 이 려관에서 더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다고 장군님께서는 생각하시였다.

려관을 떠나기전에 그이께서는 김성란을 가까이 다가오게 하여 나직한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군위원장이 어떻게 돼서 농민대표로 올라왔소?》

《저는 본래 농사군이 아닙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군인민위원장이 아니요? 남북협상과 같은 중요한 회의에서 오해를 받을수 있는 일을 하면 안됩니다. 협상회의에 참가할 충분한 자격이 있는 동무이긴 하지만 길을 헛갈린것 같습니다. 이 려관에 있지 말구 녀맹대표들이 든 려관으로 옮기시오. 숙소를 옮긴 다음 남조선녀맹위원장을 만나시오.》

《김정숙녀사께서도 말씀이 계셨습니다. 숙소를 녀맹대표들이 든 려관에 옮기고 오늘중으로 남조선녀맹위원장을 찾아가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김정숙동지께서 이 려관에 오신것은 농번기에 들어선 때에 오래동안 평양에 올라와있게 된 농민대표들을 두고 근심을 하시는 장군님의 말씀때문이기도 했지만 남조선에서 들어온 류영준이 녀성해방의 혜택을 입은 북조선의 전형적녀성을 만나볼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받은때문이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김성란이야말로 류영준이 만나고싶어하는 그런 녀성이라고 생각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미 류영준을 만나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신 뒤였다.

류영준은 저혼자 38°선의 험한 길을 넘었다. 이렇게 된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성시백의 처남인 민병홍이 서장자리를 타고 앉아있는 종로경찰서에 남조선민전관계자들이 체포되여 류치장살이를 하고있었다. 미국놈들이 민전을 해산시키면서 간부급에 속하는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철창속으로 끌어갔던것이다. 허헌은 북에 들어오기전에 성시백을 만나 그 민전관계자들이 어떻게 해서든 석방될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제일 먼저 꼽은 이름이 리병남, 류영준이였다. 리병남도 민전상무위원이며 량심적인 과학자, 의학자들의 사회조직의 위원장, 부위원장이라고 해서 종로경찰서에 수감되여 말할수 없는 고초를 겪고있었다. 민병홍은 《단선단정》을 반대하는 구국투쟁이 치렬하게 전개되면서 류치장이 차넘치자 학술단체에서 말이나 몇마디 하고 어머니배속에서 나오는 아이를 받아준 녀의사같은것을 류치장에 처넣었다면서 그러루한 사람들을 몇명 경찰서밖으로 내쫓게 했다.

리병남, 류영준은 경찰서문을 나서자 그 길로 북으로 향했다. 리병남은 서울시내를 벗어나자 농사군의 옷차림에 짚신을 신고 북을 향해 떠났으며 류영준은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을 만나볼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택시에 무작정 올라앉아 몸에 붙어있는 가락지, 시계같은것을 내주며 자기는 류영준이란 산파인데 경찰의 추격을 피할수 있게 38°선가까이까지 실어다달라고 부탁했다. 운전수도 그가 쌀과 미역을 들고다니며 가난한 집 아이들을 받아준다는것을 알고있어 가락지, 시계 같은것을 받지도 않고 38°선부근까지 실어다 주었다. 이때부터 그는 허름한 촌아낙네의 옷차림을 하고 걷기 시작했다. 불과 두어키로메터의 38°선지대를 이틀이나 걸려서 넘었다. 리병남은 산악지대를 리용하느라 짚신을 2컬레나 판내고는 내의를 찢어서 발에 감고 북조선땅에 들어서기는 했으나 허기를 이겨내지 못해 산중 오솔길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를 농민들이 달구지에 실어다 군인민병원에 입원시켰다. 의식을 차린 리병남은 북조선보건련맹위원장 리호림에게 전화련계를 맺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지금까지 만난적은 없지만 의학계의 권위자들이여서 서로 이름은 알고있었던것이다. 리호림위원장은 리병남이 산중에 쓰러진 경위를 듣고 곧 그를 평양으로 후송해오게 했다. 그는 지금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였다. 류영준은 다행이 병을 얻지 않아서 해방호텔에서 휴식하고있었다.

장군님께서 려관대문을 나서시는데 왈랑절랑거리는 소방울소리와 함께 소를 몰아대는 숨찬 목소리가 들렸다.

《힘을 써라! 이놈의 소새끼, 힘을 쓰라는데두!》

달구지바퀴소리가 갑자기 빨라지는것으로 보아 소엉뎅이에 회초리를 안긴 모양이였다.

자동차에 오르려던 장군님께서는 너무나 괴이한 광경에 잠시 걸음을 멈추시였다. 양복차림에 와이샤쯔를 입고 넥타이까지 맨 김제원이 소잔등에 연신 회초리를 안기며 다급한 걸음으로 달려오고있었다.

김제원은 장군님앞에 오더니 얼굴에 맺힌 땀발을 손등으로 훔치며 꾸벅 절을 했다. 장군님께서는 김제원이 차려입은 양복을 웃음어린 시선으로 내리훑고나서 물으시였다.

《저 달구지엔 뭘 실었소?》

《전 평양에 와서야 이번 회의가 보통회의가 아니라는것을 알았습니다. 통일정부를 수립하려구 회의를 하는데 빈손으로 올라왔으니 이게 어디 주인구실을 하는겁니까? 그래 나무리벌쌀맛을 보이려구 재령에 내려갔다오는 길입니다.》

김재원은 말을 끝내고는 이번에는 양복소매로 얼굴의 땀을 뻑 문대겼다.

《그 양복도 이번에 내려가서 새로 지어입은거요?》

양복에 넥타이를 맸을뿐아니라 양말에 가죽구두까지 신은 김제원의 모습을 장군님께서는 웃음지은 안색으로 다시 한번 여겨보며 물으시였다.

《그렇습니다. 서둘러 지어서 그런지 제가 양복을 입을줄 몰라서 그런지···》

김제원은 혼솔이 벌써 터져서 실밥이 보이는 어깨노리며 넙적다리께를 가리우기라도 할것처럼 커다란 손을 가져가며 어줍은 기색으로 말씀드렸다. 여러군데 혼솔이 터진 양복을 입고있는것을 보기가 민망해 장군님께서 물으시는것으로 생각했던것이다.

《무엇때문에 갑자기 양복을 입을 생각을 했소?》

《서울에서 큰 정치가선생들이 들어온다는데 바지저고리를 입고 회의에 참가해서는 북조선대표의 체면이 설것 같지 않아서···》

장군님께서는 김제원의 말을 통해 남북련석회의에 대한 북조선인민들의 커다란 기대를 감수할수 있으시였다. 이것이 어찌 북조선에 한한 일이겠는가? 남조선인민들은 미제와 목숨을 걸고 싸우고있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안고 남북련석회의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를 바라고있을것이며 통일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수립되기를 열망하고있을것이다. 일시 사위였던 가슴뿌듯한 흥분과 감동이 그이의 심중에 되살아올랐다.

장군님께서는 김제원에게 말씀하시였다.

《김제원동무가 쌀을 싣고 올라온것은 잘한 일이요. 그러나 양복을 입을 생각을 한것은 이번 회의가 어떤 회의인지 몰라서 잘못 생각을 한것 같소.》

김제원동무는 농민대표라고 장군님께서는 말씀하시였다.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구두까지 신고 회의에 참가하면 김제원동무를 어떻게 성실한 농사군으로 보겠소?》

김제원은 자기의 실책을 깨닫고 머리를 숙였다.

《그래 김제원동무는 어떻게 하겠소? 래일부터 회의가 시작되겠는데 집에 내려갔다 올 시간은 없을거구···》

《장군님을 모시고 인민회의를 할 때 입었던 옷을 가져왔습니다. 남조선대표들이 참가하지 않는 회의에는 그 옷을 입고 참가할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그거면 되오. 그런 옷을 입어야 합니다.》

호방하게 웃으며 말씀하신 그이께서는 김제원이 가져온 지원물자를 남조선대표들에게 맛보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허정숙에게 말씀하시였다.

《애국미헌납운동의 발기자인 김제원농민이 남조선대표들을 위해 달구지에 싣고 온것이라고 하시오! 북조선의 농민대표들은 바쁜 농사철인데도 미제와 싸우는 심정으로 남조선대표들이 모두 평양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는것도 말해주는것이 좋겠소.》

장군님께서는 밝은 웃음이 어린 안색으로 려관을 떠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