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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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방문이 남조선정계의 막을수 없는 흐름으로 전환되자 김구, 김규식도 가만히 앉아있을수 없었다. 그들은 기자들앞에 나타나 북조선의 김일성장군과 여러차례 서찰을 주고받았다는것을 공개하면서 평양측의 초청에 응할 생각이라는것을 공포했다. 미제침략자들의 사촉을 받은 불량배들이 수백명씩이나 경교장과 삼청장에 란입하여 때로는 땅을 치며 우는 흉내도 내고, 때로는 그 누구인가의 지휘를 받으며 《못간다! 북에 가지 못한다! 반공, 반공···》 거쉰 목소리로 부르짖으며 주먹을 내두르기도 했다.

삼청장에 찾아왔던 버치는 불량배들의 이런 란동에 어지간히 놀라 김규식에게 란입자들을 곧 쫓아버리겠다고 하고는 사령부로 되돌아갔다. 그는 회전문이 휘말아넣는대로 사령부현관에 들어서서 사령관실이 자리잡은 7층에 올라갔다. 화려한 사령관실에는 남조선을 강점한 미국의 실권자들인 베닝호프, 언더우드2세, 새로 군정장관으로 취임한 띤, 웬만해서는 공식적인 자리에 얼굴을 내미는 일이 없는 미중앙정보국 남조선지부 정치과장 노불이 싸움을 한탕 벌리고난 후인듯 얼굴들을 찌프리고 하지사령관앞에 둘러앉아있었다.

4월에 들어서면서 더욱 격렬해지는 《단선단정》을 반대하는 남조선민중의 항거며 평양방문이 추세로 된 남조선정국의 동향을 놓고 타개책을 의논하고있는 모양이였다.

버치는 이들의 울적한 기분에 개념할 겨를이 없었다.

《불량배들이 삼청장에 란입했습니다. 김규식선생의 생명이 위험합니다.》

하지사령관이 버치를 마주보며 비웃는 어투로 질책을 했다.

《버치박사, 나는 당신에게 김규식을 미국에 필요한 조선인으로 만들라고 했지 변덕을 부리는 코리언(조선사람)을 만들라고 하지 않았소. 미국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을 땐 비루먹은 강아지만도 못한 말년이 차례진다는것을 알게 해야 하오.》

《김규식선생을 매장하는것은 경솔한 행동입니다. 선생은 영향력있고 권위있는 정치지도자의 직위를 보존하자면 평양에 가는것이 오히려 유리하다고 생각하고있을뿐이지 회담장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겠는가 하는 의사표시를 한 일은 없습니다. 이것은 김규식선생이 로숙한 정치가라는것을 말해줍니다. 정치는 명령으로 모든것을 해결하는 군사행동과는 성격이 다른 복잡한 령역이라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령관각하는 지나치게 극단적인것 같습니다.》

비록 지시를 하달하고 집행하는 상하의 관계에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 돌덩어리같은 머리를 어깨우에 올려놓은 하지에게 순종할 필요가 없다고 버치는 생각한것 같았다.

《이 남조선은 군인정치가 실시되는 군정지대요!》

하지는 버치의 반발에 독살이 뻗쳐 웨쳤다.

《우리가 만일 그 정치란것에 매달리지 않고 엄격한 군사통치를 실시했더라면 현재와 같은 사태가 발생할수 있었겠소? 림정의 법통이 어떻소, 민족의 자주권이 어떻소 하면서 애를 먹일 때 그 김구, 김규식이란것들한테 철권을 안겼더라면 그자들이 지금 평양에 가겠다고 할수 있는가 말이요? 감옥이 아니면 지금 공산군한테 쫓기고있는 장개석을 찾아갔을것이요.》

독살이 뻗쳐 리성을 잃어버린 하지는 민심이 평양에 쏠린것이 마치 정치를 우선시한 베닝호프나 버치의 잘못인것처럼 주걱턱을 잔뜩 추켜들고 웨쳤다. 하지사령관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모인 남조선을 지배하고있는 실권자들모두가 워싱톤의 대조선전략이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되였다고 기뻐하고있을 때 사태가 난듯 그것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모양을 목격하고 그저 아연하고 당황해 어쩔바를 모르고있었다.

평양의 김일성장군과 김구, 김규식사이에 편지가 오고간다는 정보를 처음 입수했을 때 이들은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조짐이 발생하고있는듯한 불안을 느끼지 않은것도 아니였다. 그러나 김구, 김규식의 주변에 박아넣은 첩자들의 자세한 자료를 안받침한 보고는 이들의 불안을 적지 않게 가시게 했다. 김구, 김규식 그중에서도 특히 김규식은 마지 못해 평양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는체 하고있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공산주의자들과 마주앉을 생각을 하지 않고있다는것이였다. 김구는 평양의 호소에 얼마간 적극적인 호응을 하고있는듯 하지만 북조선에 《정치공작대》라는것을 들여보내서 여러건의 테로를 감행하게 한 그가 평양에 간다는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더구나 김구는 미군사령부에 들여댔다가 퇴맞은 림정의 법통인정을 전제조건으로 내걸고있어 이 협상이 이루어질수 없는것은 명백하다고 했다. 하지는 말할것 없고 외교에 쪄들어먹은 베닝호프도 김구와 김규식이 남조선의 민심을 고려해 자기들처럼 정치를 하고있는것으로 생각했다. 공산주의혁명리론에 비추어보아도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이 손을 잡는다는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였다.

하지는 평양측이 대단한 열의를 보이고있는 협상을 역리용해 자기의 몸값을 올리고있는 김구, 김규식의 능란한 정치적롱간에 감탄해마지 않았으며 그를 존경하게까지 됐다.

그런데 갑자기 수십통의 초청장이 남조선의 정당단체지도자들에게 전달되였다는 소식이 들리고 뒤이어 평양에서 방송으로 공개초청을 하더니 김규식도 종래의 태도를 바꾸어 평양에 가겠다는 의사를 표명해나섰다. 하지는 말할것 없고 이 자리에 모인 남조선의 실권자들은 무쇠주먹에 정수리를 드세게 얻어맞은듯한 느낌이였다.

우둔한 사람들이 대체로 그런것처럼 하지는 지난날의 자기의 행동과 사고, 감정을 대번에 잊어버렸다. 한편으로는 총칼을 휘둘러 남조선인민들을 야수적으로 탄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김규식과 같은 《리해력있는》 정치인들을 리용해 무마전술을 써오면서 자기의 정치적수완이 이제는 세련의 극치에 이르렀다고 자못 만족해하던것이 불과 달여전의 일인데 그것을 그는 감감히 잊어버렸던것이다. 자기가 그중 경계하고 미덥지 못하게 여기던 인물이 김규식인것 같았다. 아메리카군인정신의 투철한 소유자이며 《오끼나와의 영웅》인 자기가 김규식과 같은 이단자를 존경할수 없지 않는가,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되여 하지는 분별을 잃을만큼 발작적인 격분에 사로잡히게 됐다. 그는 군정장관을 쏘아보며 추궁하기 시작했다.

《평양에서 나온 그 정치위원회란것을 색출해내라고 몇번이나 명령했는데 당신은 도대체 뭘하고있소? 당신은 얼마나 많은 수사기관을 손에 쥐고있소?》

하지는 이렇게 웨치며 싸늘한 눈길로 노불을 돌아봤다. 미군사령부에서는 서울을 비롯한 남조선전역을 협상의 회오리바람에 휘말아넣은 이런 일을 한개의 지하조직이나 한두개의 그루빠를 가지고는 도저히 수행해낼수 없는 일이라면서 평양에서 《정치위원회》가 서울에 나와 활동을 개시했다고 생각하고있었다. 하긴 사령부산하의 정보기관, 미중앙정보국과 륙군성에서 꾸려놓은 아리숭한 이름을 붙인 정보체계, 거기에 일제의 경찰기관에서 쪄들어먹은 형사, 사찰계경관들, 우익깡패, 미군에게 붙어먹는자들의 수를 모두 세자면 수십만에 이를것이였다. 그 많은 밀정, 경관, 깡패들이 남조선정계에 침투해있고 민중의 생활속에 스며들어갔는데 평양과 서울사이에 오고가는 김일성장군의 친서가 어떤 경로를 거쳐 누구에 의해 남조선정계의 중진들에게 전달되는지 알아내지도 못하고있으니 하지가 고아댈만도 한 일이였다.

《당신들이 쥐고있는 그 첩보기관이니, 경찰이니, 폭력단이니 하는것들도 정치를 한답시고 모두 평양바람에 휩쓸려들어간게 아니요?》

하지는 정말로 자기가 궁지에 몰린것은 이 자리에 앉아있는 민간인들, 100여명에 달하는 고문들이 어리석은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워싱톤의 지시를 제대로 집행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본국에 송환된 후에 쓴 회상기에서도 자기가 조선에서 실패한것은 종교인들과 고문들을 잘못 둔데 있다고 했다.

독살이 뻗쳐 고아대던 하지가 이젠 얼마쯤 발작이 가라앉은듯 자기의 자리에 앉아서 곰방대를 빨기 시작했다. 괴퍅한 하지의 성미를 잘 알고있는 베닝호프는 로회한 외교관답게 이 기회를 리용해 은근한 목소리로 조리있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령관각하가 말하는것처럼 첩보가 일을 잘못한것도 사실이고 우리가 제구실을 못한것도 사실입니다. 우리가 왜 제구실을 못했다고 자인해야 하는가? 우선 나는 요즘 자기가 조선민족을 잘못 리해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군 합니다. 우리도 원본을 입수한 평양의 김일성장군의 호소를 주의깊이 읽어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있던 공산주의혁명원리와는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공산주의자들은 자본이 국제화되는 조건에서 공산주의운동도 국제적련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하면서 전세계 로동자들은 단결하라!라는 구호를 제창해왔습니다. 그런데 호소문에는 그런 구호보다 민족의 전도문제가 각별히 중요하게 강조되여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 점을 념두에 두지 못하고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을 상대해오지 않았는가? 나는 근래에 이런 생각이 자주 머리에 떠오르군 합니다.》

《베닝호프씨는 이제야 그것을 알았습니까?》

언더우드는 례배당에서의 설법이 이제는 혀바닥에 배여버려 일정한 억양을 붙인 부드러운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분명히 비웃음이 비껴있었다.

《조선민족은 오래동안 강대국에 예속되여 살아왔기때문에 남달리 외세에 대한 경계심이 강합니다. 또한 민족문제에 예민해서 일단 민족적단결을 달성할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쉽게 단합해서 목숨을 아까와하지 않고 항거합니다. 조폭한 일본도 조선민족의 반항에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압니까? 지금 평양에 있는 김일성장군이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백두산을 근거지로 삼고 압록강, 두만강류역에서 싸운것은 민족적단합을 목적했기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리승만과 같이 미국에 충실하겠다고 맹세한 사람을 내세워서 남조선민중을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해온것입니다.》

조선에서 오래동안 살아온 언더우드여서 조선민족의 특성을 비교적 정확하게 봤다고 할수 있는 말이였다.

《나는 언더우드씨의 견해에 반대입니다. 만일 목사님이 조선민족을 그렇게 평가했다면 민족적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방향에서 사업해야 옳지 리승만과 같이 자기 민족을 버린자를 계속 옹호하면 반미기운만 높아질게 아닙니까. 리승만은 이미 조선사람들한테 버림받은 인간입니다. 더구나 지난해에 미국에 가서 한짓들과 자기 처를 죽여버린것때문에 리승만은 인간으로서 이미 매장되여버린 산 송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리승만은 지난해 자기를 대통령으로 내세워달라고 미국에 구걸행각을 떠날 때 친일매국족속들로부터 아편장사군에 이르기까지 돈냥깨나 있는 200여명의 남조선자산가들한테서 2억원이란 돈을 갈퀴질해서 가져갔다. 당시 전조선에서 류통되는 화페가 88억원이라는것을 념두에 둘 때 2억원이란 상상하기도 어려운 천문학적인 거액의 돈이였다. 그런데 후에 알려진데 의하면 조선은행에 보관되여있던 여러개의 금덩어리까지 횡취해서 미국으로 실어갔다고 한다. 만일 이만한 돈으로 쌀을 구입하거나 공장기업소들을 돌렸다면 남조선인민들이 오늘과 같이 기아선상에서 헤매지 않았을것이다.

그런데다 최근에는 양년을 끼고 돌아온 이 민족반역자에게 그의 귀국을 수십년동안이나 기다린 박씨성을 가진 본처가 동대문밖에서 살고있다는것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리승만은 자기에게 불리한 이런 소문이 나돌게 된 근본을 아예 없애버릴양으로 본처를 불귀객으로 만들어버렸다. 인륜을 저버린 이 죄행까지 세상에 알려져 이젠 항간의 아낙네들까지 리승만이라면 침을 뱉고 돌아서는 판이였다.

버치는 이런 리승만을 미국이 조작해낼 정부의 수반자리에 올려앉히는것은 민족적자존심이 강한 조선사람들을 자극해서 수습할수 없는 사태를 빚어낼수 있다면서 언더우드의 견해를 반대해나선것이다.

《당신이 정치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내 생각을 반대합니까? 조선민족의 마음속에 깔려있는 가장 강렬한 열망은 통일독립입니다. 만일 이 열망이 분출할수 있는 자그마한 틈이라도 생기는 경우에는 미국의 강대한 무력으로써도 어쩔수 없는 사태가 터지게 됩니다. 평양의 김일성장군은 바로 이것을 알고있어 민족적단합을 호소한것입니다. 그래 이러한 때 우리에게 어떤 조선인이 필요하겠습니까? 바로 리승만과 같이 조선사람의 얼굴생김에 아메리카정신이 골수에 가득찬 인간이 필요한것입니다.》

《나는 언더우드씨의 고견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침울한 생각에 잠겨있던 베닝호프가 담배연기를 날리며 한마디 했다. 좌중의 사람들은 베닝호프의 말에 저으기 놀랐다. 비록 언더우드가 수석고문의 자리를 차지하고있었지만 그의 견해를 일고의 가치도 없는 하찮은것으로 곧잘 일축해버리군 하던 베닝호프였다.

《평양에서 조선민족의 열망을 고려해서 정책전환을 했다는 그 점은 아주 예리한 판단입니다. 나는 언더우드씨가 고견을 피력해준데 대해 경의를 표하면서 동감을 표합니다.》

베닝호프는 일단 언더우드의 견해를 지지했다.

《그러나 리승만을 우리가 앞으로 세우게 될 서울정부의 수반으로 올려앉혀야 한다는데 대해서는 반대입니다. 그것은 언더우드씨가 말한 바로 그 민족단결을 할수 있는 틈을 조선인민들에게 만들수 있게 하기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남북협상을 어떻게 하면 파탄시키겠는가 하는 머리아픈 과제가 우리앞에 제기되고있는 때 그런 말을 다른 장소에서 피력하는 경우에는 남북협상을 성사케 하는 일종의 성원으로 될것입니다.》

베닝호프는 언더우드를 마주보며 웃음지은 얼굴을 주억거리기까지 하면서 보기 좋게 강타를 안겼다.

《평양은 언더우드씨가 말한 미국의 강대한 무력도 어쩔수 없는 바로 그 민족적단결의 돌파구를 열어놓았습니다. 만일 남북협상이 성사되면 거기에서는 서울정권을 미국이 만들어낸 괴뢰정권이라고 비난할것이고 통일정부를 세울데 대한 결정이 반드시 채택될것입니다. 또한 협상자들은 자기들이 세우는 정부를 남북조선을 대표한 전조선민족의 합법적정권이라고 주장할것입니다. 말하자면 미국은 유엔을 리용해 조선을 점유할 생각을 했다면 그들은 남북협상을 통해 조선의 통일정부를 세워서 민족통일을 달성할 생각을 하고있다는것입니다. 만일 그들의 의사대로 민족적합의에 기초한 통일정부가 수립되는 경우 세계의 여론은 어느쪽을 지지할것 같습니까?》

베닝호프는 위엄있는 모습으로 좌중을 에둘러 보았다. 자기의 론리를 반대할 사람이 있으면 한번 말해보라는 도고한 모습이였다. 사실 하지사령관으로부터 시작해서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너무나 명백하고, 너무나 놀라웁고 또 몸서리칠 그의 예언에 그만 기가 질려버렸다.

《이런 때는 대담한 결심을 해야 합니다. 나는 우리가 이 자리에서 즉시에 두가지 문제를 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조선사람들의 민심을 얻을수 있는 인물을 선택해서 서울정부의 정상자리에 올려앉힐 결심을 하는것이 첫번째 문제입니다. 다음 문제는 만일 우리가 김규식박사를 서울정권의 정상자리에 올려앉히는데 견해의 일치를 본다면 그 사람을 평양에 보내야 한다는것입니다.》

하지도 언더우드도 군정장관 띤도 버치도 뭐라고 고함을 칠듯한 놀란 얼굴로 베닝호프를 마주봤다. 만일 음울한 노불이 손을 들어 다른 사람들의 말을 제때에 제지하지 않았더라면 사령관실은 저마끔 자기의 주장을 세우느라고 고함을 치는 소란스러운 론쟁터로 되였을것이다.

《나는 베닝호프씨가 자기의 견해를 좀 더 조리있게 구체적으로 피력해주었으면 합니다.》

베닝호프는 실눈을 짓고 버쩍 마른 노불의 얼굴을 잠시 마주봤다. 언제나 그 무슨 근심에 잠긴듯한 노불의 얼굴표정을 봐서는 그가 자기의 견해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왜 서울정권의 정상자리에 김규식을 올려앉혀야 하며 그 사람을 왜 평양에 보내야 하는가? 그것은 김규식만이 서울정권을 전조선민족의 의사에 의해 수립된 조선의 정부라는 인상을 줄수 있기때문입니다. 김규식이 남조선정계의 중견이라는것은 조선은 물론 주변나라들에서도 대체로 다 알고있습니다. 또 평양에서는 김규식의 협상참가를 대단히 중시하고있는게 확실합니다. 그가 38°선을 넘어서면 북에서는 반드시 귀빈으로 환영도 하고 접대도 잘할것입니다. 이러한 김규식이 남북협상에 참가해서 모호한 태도를 취하다가 서울에 돌아와서 북의 정치체제를 부정하고 그가 주장한바 있고 지금도 그 견해를 버리지 않은 유엔의거론을 다시 주장하기 시작하면 사태가 어떻게 번져지겠습니까? 남북협상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것으로 될것이며 서울에 서게 될 정부는 조선의 량심인들의 의견을 모은 조선사람들의 정부라는 인상을 줄수 있지 않겠습니까? 김규식에게 대통령자리를 주는것을 미타하게 생각하거나 과남하게 생각할것은 없습니다. 한때 연해주에서 만들어낸 조선인들의 망명정부인 조선공화국의 정상직에 취임한적도 있고 림정부주석이였으며 광복후에는 민주의원, 립법의원을 만들어냈고 좌우합작도 주도해온 명성이 높은 정치인이 아닙니까?》

베닝호프는 김규식이든 리승만이든 어차피 미국이 배후조종할건 뻔한데 지금과 같은 때 미국에 유리한 인물을 선택하는것이 좋다고 했다.

《나는 김구도 부대통령쯤 시키겠다고 미끼를 던져서 북에 들여보내는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베닝호프씨는 김규식이란 사람을 잘 모르고있습니다.》

제일먼저 언더우드가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만일 그 변덕스러운자가 북에 갔다와서 우리에게 유리한 말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소?》

하지는 아무래도 미덥지 못한듯 반신반의하는 태도였다.

《그럼 사령관각하는 현 상태에서 김구, 김규식을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감옥에 처넣겠습니까? 만일 그렇게 하면 그 사람들의 반미사상은 확고한것으로 될것이구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남북협상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세상에 공포할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평양은 그 사람들의 의사를 대변해서 자기들에게 유리한 조치를 취할것입니다. 이것은 북조선에 전조선을 얻을수 있는 마술열쇠를 섬겨바치는것과 같은것입니다.》

이쯤 말했으면 하지가 서뿔리 입을 열수 없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다음엔 언더우드에게 얼굴을 돌렸다. 사령관에게 이야기할 때와는 달리 따지듯 모가 난 말투였다.

《천상에 있는 하느님을 섬길 때는 모호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야 하지만 정치란것은 그런것이 아닙니다. 한마디의 말, 한자의 글자를 후환이 없게 따져야 하는것이 정칩니다. 김규식을 반대하는 리유는 뭡니까? 지금은 성격이나 감정을 앞세우면서 말할 때가 아닙니다. 어떤 방안이 미국에 유리한가, 이것을 우선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언더우드의 얼굴에 가면처럼 덮여있던 성직자의 온후하고 부드러운 표정은 어느새 씻은듯 사라졌다. 모욕당한 불쾌감과 자격지심으로 얼굴은 날카로와졌다.

《나는 어떻든 반대요!》

《이 자리에서는 어떻든이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명백한 론리와 빈틈없는 대책만이 론의의 대상으로 될수 있습니다.》

베닝호프는 담배를 갈아대며 숨돌릴 틈을 주지 않고 계속 언더우드를 다몰아댔다.

《만일 남북협상이 성사돼서 남북에서 그들방식의 선거가 진행되고 평양에 통일정부가 수립되는 경우 미국의 대조선전략은 실패를 면할수 없다는것을 생각해봤습니까?》

《미군이 주둔한 남조선에서 어떻게 선거를 한단 말이요?》

하지는 역시 우둔한 사령관이였다. 자기들이 어떻게 되여 궁지에 몰려 이 자리에 모였는가 하는것도 생각해본것 같지 않았다.

《남조선정계에 이름이 알려진 정객들에게는 대체로 우리의 첩자들이 붙어있습니다. 그런데도 수십통의 초청장이 어떻게 전달됐는지 우리는 알지도 못하고있습니다. 선거란 형식상 일반 백성들의 의사를 묻는것인데 남조선의 모든 사람에게 첩자를 붙일수는 없지 않습니까. 선거는 초청장이 발급되는것과 같은 음페된 방법으로 진행될것입니다.》

이런 말을 던진 베닝호프는 다시 언더우드에게 얼굴을 돌렸다.

《언더우드씨는 남조선에 축적한 막대한 재산과 기득권을 념두에 두고 자기의 앞날을 별로 걱정하지 않는것 같은데 평양에 조선의 통일정부가 수립되고 미군의 남조선주둔이 비법이라고 주장해나설 때 언더우드씨의 그 재산과 기득권이 그대로 존재할것 같습니까? 물론 나는 어떠한 방법으로든 서울정권은 수립될것이구 미군이 남조선에서 물러나는 일은 없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디디고있는 이 땅은 미국이 아니라 조선입니다. 조선민족이 단합돼서 미국을 반대할 때 어떤 사태가 빚어질것 같습니까? 미국이 아무리 강대한 초대국이라고 해도 만능이 아니라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반드시 명심할것은 조선에서 실패하는 경우 워싱톤은 그 책임을 반드시 우리를 놓고 계산하리라는것입니다. 이것은 명백합니다.》

《그래 베닝호프씨는 어떻게 하자는거요?》

번거로운 론쟁은 사변가들의 일이라고 생각하고있는 하지는 신경이 곤두선 모양이였다.

《우리가 명령을 하달할 때는 작전적목적을 제시할뿐아니라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술적방도를 구체적으로 말해주어야 하오. 김규식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납득시키겠는가? 그를 효과적으로 리용하기 위해 어떤 보조수단을 강구하겠는가? 이런 문제들이 발견되지 않을 때는 작전적목적이 아무리 정당하다고 해도 명령하달을 일단 보류해야 하오. 그래 베닝호프씨는 이런 전술적방도까지 생각해봤소?》

《물론 생각해봤습니다. 이 사업은 보통 중요하지 않은만큼 사령관각하가 직접 김규식을 만나 우리의 의사를 전달해야 합니다.》

베닝호프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하지의 얼굴은 희옇게 바랬으며 손에 들었던 곰방대를 내동댕이치며 자리에서 뛰여일어났다.

《나는 조선에 파견된 미군사령관이요. 그래 미국의 대표자가 그 변덕쟁이를 이 사령관실에 불러서 구걸을 한단말이요. 나는 못하겠소.》

《사령관실에 부를것이 아니라 찾아가야 합니다. 사령관각하이외에 이 남조선에서 미국을 대표할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버치는 사령관각하와 동행해서 김규식박사가 우리의 결심을 믿도록 가능한 노력을 다해야 하오.》

어수룩해보이던 베닝호프가 두말을 할수 없게 찍어 말했다.

《물론 내가 가야지요. 내 생각이 옳았다는것이 증명된 오늘과 같은 날에 나 이외에 누가 가겠습니까?》

버치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의자에서 일어나 발뒤꿈치춤이라도 한바탕 출것 같았다.

《그런데 리승만에게 의거하라는 마샬의 지시는 어떻게 하겠소?》

노불은 역시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물었다.

《장관, 대통령 이런 사람들은 정치인이지 문제를 실지 집행하고 처리하는 실무가는 아닙니다. 국무부에서는 사리에 밝고 리해력있는 현명한 실무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내 곧 미국에 가겠습니다. 조선을 담당한 제꼽스키는 내밑에서 일하던 사람인데 아주 실무에 밝은 현명한 사람입니다. 마샬은 조선문제처리에서 리승만의 의견을 중시하라고 했지 서울정부의 대통령자리에 올려앉히라고 말한 일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런 방향에서 보조를 맞추겠소. 그런데 김구한테는 누가 간다? 사령관은 그 완고한 민족주의자하구 여러차례 싸웠으니 적임자 같지는 않구···》

언더우드는 앵돌아져 오고가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것 같지도 않았다.

《노불씨가 한번 솜씨를 보이지 않겠습니까? 김구가 북조선에 정치공작대를 침투시킬 때 상종한 일이 있는것 같은데···》

《그럼 내 김구한테 잠간 들렸다가 삼청장에도 가보겠소. 사실 조선에 김규식만한 정치인이 없는건 사실이요. 내 그 사람의 동향을 2년이상이나 주의깊이 지켜봤는데 정치인으로서 그만큼 처신이 능한 사람은 조선은 물론 주변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것이요.》

노불은 이미 모든것이 결정된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는 자기가 김규식을 찾아갈수밖에 없게 됐다는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