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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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님께서는 헌법제정위원회를 구성하시고 나라의 기본법을 제정하는 사업을 정력적으로 밀고나가셨다. 헌법초안이 완성되자 곧 전인민적인 토의에 붙이셨다. 헌법이란 낱말조차 모르던 인민, 나라의 기본법이라는 그 엄엄한 법이 자기들을 위해 제정되였을뿐만아니라 그 법이 옳게 만들어졌는지 의견까지 묻는다는것을 안 북조선인민들은 흥분의 회오리에 휩싸였다. 각급 정권기관, 기업소, 학교와 가두, 농촌··· 북조선의 전체 인민들은 앙양된 열의에 휩싸여 헌법토의사업에 적극 참가했다.

로동자들은 자기들을 나라의 령도계급으로 규정한 헌법을 절대지지찬동하면서 1948년도 인민경제계획과제를 초과완수하겠다고 굳게 결의다졌다. 지난날 고역에 시달리며 무지몽매하게 살아온 자기들에게 땅을 분여해준것만으로도 그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는데 나라의 법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헌법토의에까지 참가시켜주신 장군님의 은정이 너무도 고마와 농민들은 더 많은 알곡을 생산하겠다며 한결같이 떨쳐나섰다. 문화인들의 열의는 남달리 뜨거웠다. 지성인들인 그들은 전인민적토의에 붙인 헌법이 어떤 력사적의의를 갖는가를 알고도 남았던것이다. 인민극장에서 진행된 헌법토의에 참가한 작가, 예술인들은 솟구쳐오르는 뜨거운 격정을 참을길이 없어 장군님께 편지를 올렸다.

···헌법토의사업에 참가한 작가, 예술인들은 일제에게 우리 조국이 강점당한 근 반세기동안의 절통한 과거를 돌이켜보았습니다. 아니 근로하는 대중을 보호해주는 법은커녕 나라의 기강을 명기한 법도 없이 장구한 기간 법밖에서 목숨을 부지해온 우리 인민의 불행한 과거를 돌이켜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인민도 나라의 기본법인 헌법을 갖게 되였습니다. ···작가, 예술인들은 정의를 생명으로 삼고 량심이 불탈 때 비로소 빛나는 창작적결실을 얻을수 있는 특이한 직종에 참가하는 사람들입니다. 장군님께서는 헌법을 인민적토의에 붙이시여 이 헌법이야말로 가장 민주주의적이며 인민적인 나라의 기본법이라는것을 우리로 하여금 가슴뜨겁게 느끼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헌법을 토의하는 과정에 정의와 함께 가슴터질듯한 환희를 체험했습니다. 그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은 바로 눈앞에 박두한 가까운 앞날의 일이라는것을 깨달았기때문입니다.

나라가 두동강이 나 뜻있는 사람이 조국의 앞날을 근심하고있을 때 이러한 일대 경사를 눈앞에 두게 될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 조국의 앞날이 창창한것은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기때문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작가, 예술인들의 뜨거운 숨결이 넘쳐나는 편지를 앞에 놓고 오래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민족통일정부가 창건되리라는것은 의심할나위도 없는 명백한 일이였지만 아직도 많은 난관을 헤쳐나가야 성취할수 있는 앞날의 일이였다. 장군님과 김구, 김규식사이에 오고가는 서신도 응당한 결실을 맺지 못하고있었다. 김구, 김규식 두 선생중의 한사람, 아니 두사람이 모두 참가하지 않는다고 해서 남북협상이 진행되지 못할것도 없었다. 그러나 한생을 민족을 위해 바친 두 선생을 제외한 협상을 놓고 어떻게 전민족적화합을 위한 회합이라고 할수 있겠는가.

그이께서는 생각끝에 김규식만이 아니라 김구와도 직접 대면을 하고 민족의 앞날을 두고 론의를 한적도 있는 허헌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하시였다. 봄빛이 명랑하게 웃는 창밖을 내다보던 장군님께서는 집무탁에 다가서서 송수화기를 들고 책임부관을 찾으시였다.

《내 차로 허헌선생을 모시고 오시오. 선생을 여기에까지 올라오게 하지 말구 현관앞에서 기다리오.》

얼마후 허헌을 태워온 승용차를 인민위원회 현관앞에 세워놓았다는 책임부관의 보고를 받은 장군님께서는 어제밤에 받은 김구, 김규식의 세번째 회신을 안주머니에 넣고 집무실을 나서시였다.

그이께서는 자동차에 오르면서 허헌에게 허물없이 인사를 보내시였다.

《외지에 나가 다니자니 불편한 점이 많았겠는데 건강은 어떠합니까? 헌법토의사업에 참가한 인민들의 의견도 들을겸 날씨가 좋아 선생님하고 교외를 한번 돌아보자고 해서 이렇게 오시게 했습니다. 오늘같은 쾌청한 날에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은데 교외에 한번 나가봅시다.》

《정말 희한한 날씹니다. 봄이 왔다는것이 알립니다.》

허헌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자기를 부르신 장군님의 진의도를 알고싶은듯 그이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장군님께서는 허헌의 눈길을 감촉했지만 다른 말씀이 없이 운전수에게 교외에 나가자고 이르시였다.

허헌이 평양에 들어온것은 석달전 지난해 그믐달이였다. 그는 일어나 앉기도 어려울만큼 극도로 쇠약해진 몸으로 38°선을 넘었다. 성시백이 평양에 와있는 사이 그를 미행하는 정체불명의 사나이들의 추적은 하루가 다르게 악랄해졌다. 매일과 같이 아지트가 습격을 받군 하여 조석으로 은신처를 바꾸어야 했다. 때로는 랭혹하게 추운밤 담장밖에 뛰여나가 실골목을 꿰여나가야 할 때도 있었다. 만일 영등포방직공장 로동자들이 목숨을 내대고 그를 호위해주지 않았더라면 허헌은 적의 추적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것이다. 이런 다급한 형편에서 이미 로년기에 들어선 선생이 어떻게 건강을 유지할수 있겠는가. 묵은병은 도지고 지나친 긴장으로 해서 잠을 청할수 없었으며 음식도 제대로 들지 못해 몸은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졌다. 장군님께서는 유능한 의료진을 붙여 운신하기도 어려운 허헌의 건강을 회복케 하시였다. 뿐만아니라 매일처럼 테로분자들한테 생명의 위협을 받던 선생의 일가족을 서울에서 평양에 데려오게 하여 오랜만에 단란한 가정의 행복을 누리게 해주시였다. 선생의 일가는 맏딸 허정숙선전부장네 집에 들어있었다.

10여일전의 일이였다. 이제는 뜨락에 나올만큼 건강이 회복된 허헌이 장군님을 긴하게 만나뵐 일이 있다면서 허정숙을 거쳐 접견을 요청해왔다. 장군님께서는 바쁜 시간을 내서 그를 찾아가시였다.

그이께서는 지난해 허헌이 류숙하던 바로 그 방에서 선생과 마주앉으셨다. 허헌은 그동안 자신과 일가족에게 베풀어주신 장군님의 자심한 은정에 깊은 사의를 표하고나서 곧 기본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신문에서 보기도 하고 정숙이한테서 듣기도 하면서 장군님께서 전인민적토의에 붙이기로 하신 헌법을 두고 나는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민족통일정부수립을 위한 사업이 얼마나 심도있게 진행되고있는지 깊이 알지 못하고있는 허헌이여서 헌법토의를 진행하는것은 지나치게 빠른감이 난다는 의견을 제기하려는줄 아셨는데 손까지 내저으며 자기는 절대찬성이라고, 단 한마디도 보탤말이 없다며 흥분해서 말하는것이였다.

《헌법에 관통되여있는 국가리념에 나는 크게 감동되였습니다. 이런 헌법을 가진 나라가 조선말고 또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정숙이한테서 헌법작성과정을 알아보니 그게 조국광복회10대강령과 창립선언에 기초해서 작성된 헌법이라고 해서 내 생각하는바 참으로 컸습니다. 조국광복회에 대해서는 나도 익히 아는바 있었고 강령도 모르는바 아니였지만 그것이 새로 태여나는 우리 나라의 헌법의 기초로 될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흥분을 잠시 자제하는 빛이던 허헌이 정색을 짓고 장군님께 청원을 드렸다.

《이 헌법은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법적기초를 마련하기 위한것으로 나는 알고있습니다. 통일정부라면 남조선도 포함한 온 나라 정부일것이 아닙니까? 그런즉 남조선인민들도 응당 헌법토의에 참가해야 할줄 압니다. 이제는 건강도 회복됐으니 내가 남조선에 나가 헌법토의를 추진시키겠습니다. 수일내로 평양을 떠났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남조선에서 헌법토의를 진행할 방도를 놓고 생각해오던 장군님이시였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해주니 정말 고맙습니다. 나도 남조선에서 헌법토의를 시작하는데 찬성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평양에 그대로 계셨으면 합니다. 선전사업을 책임진 리현상동무가 있지 않습니까?···》

《남조선인민들은 피를 흘리면서 싸우고있는데 평양에 그대로 눌러앉아있는게 미안해서 그럽니다.》

허헌은 역시 량심인이였다. 평양에 들어와 장기간 몸을 붙이고있는 이른바 남로당의 《간부파》사람들도 있었지만 38°선을 넘나든다는 말을 별로 듣지 못하시였다.

《적들이 제일 노리는 대상이 선생님인데 만일 불상사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통일정부수립을 위해서도 그렇고 앞으로 조국통일을 달성하자고 해도 그렇고 선생님은 없어서는 안될분입니다. 또 우리가 선생님에게 맡기고싶은 사업도 있습니다.》

허헌은 장군님을 마주보며 뒤말을 기다렸다.

《평양에도 법학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선생님을 당할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선생님도 아다싶이 헌법제정이란 보통 중요한 사업이 아닌것만큼 우선 헌법을 완성하는 일을 맡아주었으면 합니다. 또 앞으로 있게 될 남북협상에서도 선생님의 위치는 아주 중요합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허헌은 커다란 충격을 받은 기색으로 장군님을 우러러봤다. 자기는 량심의 충동을 받아 고작 생각했다는것이 싸우는 남조선민중속에 뛰여들어 헌법토의를 추진시켜야겠다는것이였지만 장군님께서는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사업에서 자기가 해야 할 직분까지 생각하고계시였다. 허헌은 머리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허헌은 헌법토의사업을 책임진 지도소조를 이끌고 10여일간 공장, 기업소, 농촌, 정권기관을 돌아다녔다. 그 사이에 아직 생소한 북조선인민들의 드높은 혁명적열의와 변화된 생활도 료해할수 있었다. 그는 어제 자못 흥분된 마음을 안고 평양에 돌아왔다. 그 사이에 병도 말끔히 털어버렸다.

《헌법토의를 지도하는 과정에 인민들한테서 제기된 의견은 없었습니까?》

평양교외의 밋밋한 구릉지대를 뒤덮은 흰눈을 어루쓸며 눈부신 해빛이 가물거리는 모양을 차창을 거쳐 내다보던 장군님께서 고개를 돌리며 물으시였다. 해빛과 노닐며 아지랑이가 명랑하게 웃고있는 전야의 풍경은 그이로 하여금 벌써 봄이 찾아왔다는것을 완연히 느끼게 하였다.

《모두 절대찬성입니다. 인민을 나라의 주인으로 내세워주는 헌법인데 무슨 의견이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해서 해설도 하고 토론을 듣기도 했는데 의견이 전혀 없을수 없지 않습니까. 자그마한 의견이라도 좋으니 말해주십시오.》

장군님의 말씀이 너무나 진지하여 한참 생각을 굴리던 허헌이 마지 못해 입을 열었다.

《평북도의 대령군에 가서 군인민회의를 열고 해설을 했는데 거기 군인민위원장이 회의끝에 나를 찾아와서 한 말이 있습니다.》

《김성란동무가 의견을 제기했습니까?》

김성란이란 장군님께서 지어주신 김모라니의 새 이름이였다.

《예, 그런 이름이였습니다. 일은 잘한다는데 학식은 밭은것 같았습니다. 헌법에 한문자가 많고 어려운 대목들이 있어서 자기처럼 공부를 하지 못한 농민들은 리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말했습니다. 위원장도 사본을 받기는 했지만 읽지 못했다고 합니다.》

장군님의 안색은 금시에 심중해졌다. 허헌은 자기가 공연한 말을 해서 이른봄의 해빛을 즐기려고 교외에 나오신 그이의 심중을 무겁게 한것 같아 송구하기 그지없어 했다. 서둘러 뒤말을 이었다.

《헌법은 법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나라의 기본법인것만큼 어려운 대목들이 좀 있어야 정중한 맛이 납니다. 개명한 나라들에서 과학용어를 흔히 라전어로 표기하는것도 일반용어와 구별해서 정중한 맛을 주기 위해섭니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헌법용어라고 해서 일부러 어려운 용어를 써서 법을 만듭니다.》

《나는 김성란동무가 아주 중요한 제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헌법의 첫머리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인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인민의 나라라고 명기해놓고 인민들이 읽을수 없는 헌법을 제정한다는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오늘 돌아가면 헌법제정위원회 일군들에게 말해서 우리 나라 글로 알기 쉽게 헌법을 고치게 해야겠습니다. 인민들의 좋은 의견을 알려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산간군의 촌아낙네에 지나지 않는 일개 군의 인민위원장의 의견을 이렇게 심중하게 받아들이시는데 허헌은 어지간히 놀랐다. 그는 헌법제정과 같은 나라의 대사는 고명한 학자, 정치인들만이 관여하는 중대사로 생각해왔다. 그런데 북조선전역에서 헌법토의사업이 진행되고있으며 며칠후에 소집될 북조선인민회의 제4차회의에서는 헌법제정문제를 중요안건으로 상정시키기로 되여있는데 학식이 밭은 평백성들도 읽을수 있게 수정을 하게 하시겠다니?···

김성란의 의견을 대수롭지 않게 대한 자신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로동자, 농민을 비롯해 인민대중을 계급적으로 해방하기 위한 투쟁에 목숨을 바칠 각오까지 한 허헌이였지만 인민의 요구를 장군님처럼 민감하게 받아들였던것 같지는 않았다. 조국과 사회, 계급과 인민에 대한 견해에서 민중과 식자간에는 차이가 있을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그들의 의견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때는 없었던가?··· 그런 경우가 적지 않게 있었을것 같았다.

봄빛이 찬연한 빛을 뿌리는 차창밖의 순결한 설경을 내다보시던 장군님께서 안주머니에서 봉함편지를 꺼내들며 말씀하셨다.

《선생님을 모시고 교외에 나온것은 봄빛을 즐기면서 중요하게 의논할 문제가 있기때문이였습니다. 우선 이 편지를 보십시오.》

자책감과 함께 조선의 백성들이 이제야 참다운 인민의 수령을 모시였다고 크나큰 감격에 취해있던 허헌이 장군님께서 주시는 편지를 받아들었다. 봉투속에서 편지를 꺼내서 주의깊이 읽어나가는 허헌의 얼굴은 점차 긴장해졌으며 나중에는 놀라고 격분한 빛이 안경속의 눈에도 볼에도 력력히 비꼈다.

《이 사람들이 로망이 들어도 분수가 있지···》

편지를 든 허헌의 손은 물론 두툼한 입술까지 경련이 인것처럼 푸들푸들 떨렸다.

《선생님, 밖에 나가 걸으면서 이야기하지 않겠습니까. 봄빛이 내리비치는 흰눈을 밟으면서 걷는것도 별맛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먼저 자동차에서 내리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허헌은 그이의 뒤를 따르면서 답신을 쥔 손을 내두르며 계속 부르짖었다.

《남북협상을 자기네가 발기한것으로 해달라니 이런 발칙한 요구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글체를 보니 서신은 우사가 초한것 같은데···》

《김구, 김규식 두 선생이 의견을 모아가지고 편지는 김규식선생이 쓴다고 합니다.》

《내 그런줄 알았습니다. 우사 저같은게 미국놈들한테 붙어사는 처지에서 어떻게 남북협상같은 대사를 생각한다는겁니까? 이 사람이 이젠 체면도 량심도 가릴수 없는 지경에 이른것 같습니다.》

《김규식선생은 우리의 제기를 받아들인것으로 하면 탄압을 받을수 있기때문에 그런 요구를 했다고 합니다.》

민족대단합을 이룩할수만 있다면 협상을 누가 먼저 발기했는가 하는것은 큰 의의가 없는 문제라고 여기여 장군님께서는 이런 별치 않은 문제에 개념할 생각이 없으시였다. 그이께서 알고싶으신것은 김규식이 신의를 지키는 정치인인지 그렇지 않으면 부르죠아정계에서 흔히 볼수 있는 권모술수에 습관된 정객인지 하는것이였다. 지금에 와서 그이께서 이런 문제에 관심을 돌리게 된것은 서신을 주고받는 과정에 김규식에게서 경계해야 할 측면이 있지 않는가 하는 우려를 갖게 되셨기때문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결심하신대로 정중한 친서를 성시백을 통해 김구, 김규식에게 전했다. 정향명이 무역을 주업으로 한 장사군이 된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던 김구, 김규식은 얼혼이 날아날만큼 놀랐지만 어쨌든 그들은 김일성동지의 서한을 자못 정중히 받아들였다. 특히 일제의 오랜 학정밑에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고 싸워온 그들을 높이 평가하시면서 통일구국을 위한 성스러운 사업에 손잡고 싸워나가자는 장군님의 호소에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였다.

그러나 그들은 낡은 사회의 이른바 정계의 관습을 버리지 못한 답신을 장군님께 올렸다. 그들은 답신에서 70이 넘은 백범(김구)이나 고질로 해서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자기(김규식)는 먼길을 오고가기 어려우니 협상을 서울에서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전제조건을 내놓았다. 물론 남북정계의 지도적인사들이 수백명이나 참가해야 할 대회합을 폭압이 살판치는 서울에서 개최할수 없다는것은 명백한 일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이런 당치 않은 전제조건이 부르죠아정계의 관례로 되고있는 흥정이라는것을 이내 간파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두번째 친서에서 그들이 제기한 전제조건이 부당하다는것을 모를 박아 까밝히시였다. 민족을 위한 력사적위업을 성취하자면 종래의 정치활동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그이께서는 찍어서 강조하시였다.

···지난날의 정치인들은 자기의 주의주장을 어떻게 해서든 고집하여 득세하는것을 업으로 삼아왔지만 우리들이 성취하고자 하는 민족적대업은 종래의 정치활동에서 벗어나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자기를 바칠 각오가 되여있어야 이룩할수 있는 대업이다, 선생들은 이 점에 특히 류의하여 협상을 성사시키는데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알려주기 바란다, 우리는 선생들의 제기를 뜨거운 동포애적마음을 가지고 받아들일것이며 그의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할것이다.···

김구, 김규식은 부드러우면서도 사리정연한 장군님의 서한을 받고 적잖게 충격을 받은 모양이였다. 그러나 두번째 답신에서도 전도를 우려하지 않을수 없는 조항들이 들어있었다. 그들은 남북정치인이 수백명이나 참가하는 번거로운 회담을 통해서는 실리를 얻기 어려우니 남에서는 김구, 김규식, 북에서는 김일성장군 이외의 또 한명의 대표가 참가한 4자회담을 갖자고 했으며 상해림시정부의 법통을 인정해달라는 말도 첨부되여있었다. 또한 그들은 남북협상을 지나치게 서두를것이 아니라 전민족적인 총선거가 일정에 오른 때에 개최해도 되는 일인줄로 안다는 말도 했다.

이 또한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요구였지만 장군님께서는 초지를 조금도 굽히지 않고 회답을 보내셨다. 4자회담은 남북협상을 진행하는 도중 하나의 일정으로 이런 회합을 갖는데 찬성한다고 하였으며 남북협상의 개최날자는 그 성격으로 보아 북과 남의 정당단체지도자들과 협의해서 결정할 문제라고 하며 그들의 요구를 완곡하게 거절하시였다.

세번째 답신이 허헌이 방금 내리훑고 격분한 조항이 담긴 편지였다. 김구, 김규식은 조국의 완전독립을 성취하기 위한 민족적대업을 이룩해나가는 이런 때에조차 그 무슨 흥정을 개입시키려는것 같았다. 지금은 서면우에서의 론의이지만 협상도중에 우익령수급인물들인 김구, 김규식이 이런 루추한 행동을 한다면 민족대화합에 적잖은 영향을 줄수 있었다. 김구, 김규식 그중에서도 특히 김규식의 동향에 그이께서 새삼스럽게 우려를 품으신것은 이때문이였다.

장군님께서는 허헌을 부축해주기도 하고 손을 잡아 이끌어주기도 하면서 흰눈이 수북이 쌓인 밭뚝길을 걸으시였다. 그이께서는 깊은 골안으로 들어가면서 김구, 김규식과 3차례에 걸쳐 주고받은 서한의 내용을 허헌에게 자세히 알려주시였다. 그동안 자신께서 전개한 우익민족주의자들과의 사업을 통보해주면서 허헌이 깊이있는 사색을 할수 있게 하시려는것이였다.

《우리는 김구, 김규식선생들의 태도가 섭섭하긴 하지만 남북협상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에 깊은 주목을 돌리고있습니다. 시간만 허락하면 편지를 주고받는 과정에 합의에 도달할수도 있을겁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시간이 없습니다. 적들이 단선날자를 5월 10일로 공포한 조건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선생님은 김구, 김규식 특히 김규식선생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신의를 지킬줄 아는 정치인인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정치적지반을 튼튼히 하기 위해 급급해하는 사람같습니까?》

허헌은 안경속의 눈은 말할것 없고 관골이 두둑한 얼굴근육까지 한껏 긴장시켰다. 자기의 몇마디 말에 김규식의 운명이 결정될수 있다는것을 감촉한것이다.

《우사가 갈피를 잡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사가 신의가 없는 시정배같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자기가 일단 결심한 정견을 좀해서는 버리지 못하는 고집이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장군님께 드리는 답신에 당찮은 전제조건을 붙이는것은 남북협상에 다른 의도가 달리지 않았는가 하는 의혹을 풀지 못하고있는데 원인이 있다고 나에게는 생각됩니다. 우사의 일생으로 말하면 대국들에게 속히운 불우한 력사라고 할수 있습니다. 광복후 환국해서 미국놈들편에 붙은것 같지만 내 생각에는 그 사람들한테 리용당하고 속기도 하는줄 알면서 미국의 영향을 배제할수 없다고 생각하는 여기에 우사의 비극이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일단 믿으면 자기의 리론을 여간해서 버리지 않는것이 우사입니다. 우사는 신의를 지킬줄 아는 사람입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아주 귀중한 말씀을 해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마지막결심을 이야기해주어야겠는데 우리의 생각이 옳은지 확정을 해야 하겠기때문에 선생님을 이렇게 모시고 나왔습니다. 좌우합작을 할 때 김규식선생한테 속았다고 생각한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는걸 보면 신의가 있는분이 확실한것 같습니다.》

도랑을 따라 순결한 눈우에 깊은 발자욱을 찍으며 골안으로 들어가던 장군님께서는 눈석이물이 졸졸 흐르는 도랑가에 문뜩 오금을 꺾고 앉으시였다. 엄동의 횡포한 전횡에 움츠러든 마른풀과 잡목들이 뿌리를 박은 어수선한 도랑가였다. 수집은 웃음을 웃고있는 연두빛버들개지를 손으로 조심스럽게 어루쓸던 장군님께서 밝은 웃음이 비낀 얼굴을 드시였다.

《이것 보십시오. 벌써 버들개지가 폈습니다.》

허헌도 그이곁에 오금을 꺾고앉아 순결무구한 갓난애의 웃음을 웃는듯한 야들야들한 버들개지를 들여다봤다.

《사람도 이래야 합니다. 시련과 난관이 있어도 과거에 집착할것이 아니라 힘차게 전진해서 꽃을 피울줄 알아야 한다는겁니다. 김규식선생은 이것을 모르는것 같습니다. 난관을 지나치게 크게 생각한 나머지 의혹에 사로잡혀서 꽃피울 생각을 못하는것 같습니다.》

허헌은 장군님의 말씀을 듣고나니 참다운 봄의 훈풍을 비로소 느끼는듯한 심정이였다. 그는 약동하는 봄기운을 가슴가득히 느끼며 지금도 서울에서 울적한 나날을 보내고있을 김규식을 생각했다. 한포기의 들버들을 앞에 놓고 김규식을 생각하시는 이 자애로운 기대를 어째서 알지 못하는가. 시련과 난관속에서도 봄을 감수하는 장군님의 억센 기상에 어째서 의지하려 하지 않는가. 한달음에 달려가 그이의 믿음이 얼마나 뜨겁고 진실하며 장군님의 억센 기상에 의거함으로써만 일신은 말할것 없고 조국도 약동하는 봄을 맞이할수 있다는것을 말해주고싶었다.

장군님께서는 도랑길우에 올라서서 봄빛이 가득찬 골안을 잠시 둘러보시였다. 옆에 올라와선 허헌을 돌아보며 안타까운 심정이 담긴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우리도 믿고 허헌선생도 믿는데 어째서 김규식선생이 결심을 못하는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결심만 하면 민중이 존경하고 또 민족사에 남을 인사가 될수 있겠는데 어째서 한발자욱을 내짚을 생각을 못하는지 안타깝단 말입니다. 일생동안 시련속에서 살아온 선생이여서 지나치게 조심하는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통일정부를 수립해야 할 절박성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있는것 같습니다. 조심할 생각만 하고 의심만 하다나니 정작 생각해야 할 민족의 전도문제를 생각하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깊은 숫눈을 헤치며 골안을 나서시던 장군님께서는 허헌의 말을 심중히 받아들이시는 안색이였다.

《편지를 봐도 확실히 그런것 같습니다. 절박감을 느낄수 있게 대책도 취하고 선생이 봄기운을 느낄수 있게 봄바람도 일구어야 할것 같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그이께서는 활달하게 손을 내저으며 드높은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장군님의 뇌리에 그 어떤 대책이 번개친게 틀림없었다. 허헌은 앞날을 확신하시는 장군님의 밝은 웃음이 비낀 존안을 우러러보며 생각했다. 김규식이 제아무리 주저를 하면서 잔롱간을 피운다고 해도 대해와 같은 장군님의 품속에서 재롱을 떠는 어린애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을것이였다. 김규식도 조만간에 그이의 억센 품에 안겨 꽃을 피울것이다.···

 

이날 허헌과 함께 교외를 산책하며 성숙시킨 문제를 장군님께서는 곧 현실로 전환시키기 위해 정력적인 사업을 전개하시였다. 헌법제정위원회 일군들에게 헌법을 알기 쉬운 우리 말로 고쳐쓸 과업을 주신 그이께서는 서기와 허정숙을 집무실에 부르셨다.

《오늘부터 이틀쯤 밤을 새워야겠소. 남조선의 정당단체지도자급정치인들 70여명에게 초청장을 보내자고 하오. 초청장은 김구, 김규식선생들에게 보낸것 같이 우리 나라에서 생산된 인견사에 타자를 쳐야겠소. 내가 일흔이 넘는 초청장을 쓰기 어려울것 같아 타자를 치자는것이요. 서둘러야겠소. 초청장을 보내야 할 대상은···》

장군님께서는 손을 드시고 초청장을 보낼 대상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아나가셨다. 우익에서는 김구, 김규식, 조소앙, 최동오··· 거의 20명이나 되는 이름을 꼽으시였다. 그이께서는 홍명희, 리극로, 리용, 김창준··· 중간파정계에서 활동하는 명사들의 이름도 거의 20명을 꼽으시였다. 좌익에서는 허헌, 백남운, 류영준, 장권··· 20명이 좀 넘는 사람들의 이름을 드셨다.

장군님께서는 13개 정당협의회에 망라된 정당단체지도자들을 비롯해 리승만계의 민족반역자들을 제외한 정치인들에게 초청장을 보내서 남북협상을 단선단정을 반대하는 투쟁과 함께 막을수 없는 시대적대세로 전환시킬 결심을 하신것이다. 이것이 허헌에게 말씀하신 봄바람을 남조선정계에 휘몰아넣는 방도였다.

이날부터 타자수들은 밤을 밝혀가며 인견사에 장군님께서 초하신 편지를 쪼아박았다.

 

 

우리 민족의 완전한 자주독립은 오직 우리 인민자신의 거족적인 투쟁에 의해서만 해결될것입니다. 우리는 단합된 민족의 힘으로 국토를 량단하고 민족을 분렬시키려는 외래제국주의자들과 그들에게 조국을 팔아먹으려는 민족반역자들의 책동을 분쇄하고 통일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힘차게 투쟁하여야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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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석회의순서는

1. 조선의 현정치정세에 대한 의견교환

2. 남조선단독정부수립을 위한 반동선거실시에 관한 유엔총회의 결정을 반대하여 투쟁할 대책수립

3. 조선통일과 민주주의조선정부수립에 관한 대책강구 등으로 하려고 합니다.

···

장군님께서는 타자수며 관계일군들과 밤을 밝히며 비교적 긴 편지형식의 초청장들을 하나하나 검토하시였다. 초청장은 곧 정당단체지도자들과 개별적인사들에게 전해졌다. 장군님께서 초청장을 보내셨다는 소식은 삽시에 정계는 말할것 없고 언론계, 로동계, 학계 지어 항간의 주민들속에서까지 폭풍같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초청장을 받지 못한 정치인들은 자기가 민족지상의 위업에서 소외된것 같아 어떻게 해서든 초청장을 손에 넣어보려고 뛰여다녔다.

남조선정계의 이러한 동향을 보고받은 장군님께서는 즉시에 방송을 통해 공개초청을 하도록 하시였다. 초청장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도 남북협상에 참가하여 조국의 통일과 민족단일정권수립을 위한 대책토의에 참가할 의사가 있는 사람이면 그 누구든 초청장을 받은 사람과 똑같은 대우를 받을것이라고 선포하게 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조선문제를 우리 민족자신의 손으로 해결하려는 뜨거운 열풍이 온 남조선땅에 차넘치게 됐으며 정치인, 로동운동관계자, 학자, 문화인, 종교인들이 앞을 다투어 만난을 무릅쓰고 평양을 향해 38°선을 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