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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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신한 아침빛이 사무실에 쏟아져들어왔다. 정교한 꽃문양을 그렸던 창문의 얼음버캐가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의자에 씌운 천들도 눈부신 빛을 반사했다. 생각에 잠긴 김책의 얼굴만이 얼마간 침침한 빛이다.

김책은 지금 앞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정준택한테서 올해 인민경제계획을 초과완수하는데서 난관으로 제기된 일련의 문제들을 보고받고있었다.

《용광로를 빨리 살리지 않으면 황철은 말할것없고 다른 공장들에도 영향을 줄것 같습니다. 48년도 계획작성도 늦어질것 같습니다.》

정준택은 주로 계획문제를 이야기했지만 김책은 철문제가 장군님께서 제기하신 남북협상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고있었다. 전날 장군님께서는 북조선민전의장단회의를 소집하고 온 나라의 정당, 사회단체 지도자들에게 협상을 호소하시였다. 이 회의에 참가한 김책은 력사적인 남북정치인대회합이 성사될 경사로운 그날을 눈앞에 그렸다. 장군님께서 설계하고계시는 민족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조국에 들이닥친 난국을 타개하자고 해도 그렇고 남북협상은 반드시 빛나는 결실을 맺어야 했다. 그런데 정준택이 남북협상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수 있는 황철의 용광로문제를 이야기하고있는것이다.

황철은 이미 해탄로와 평로를 살려서 콕스와 강철을 생산하고있었다. 그러나 해탄로에서 콕스를 구워내는것도 용광로에서 선철을 뽑기 위한것이며 평로도 용광로에서 녹여낸 쇠물을 받지 않고서는 생산을 계속할수 없었다. 지금은 구내에 널린 파철을 넣어 가까스로 생산을 이어가는 형편이다. 용광로가 살지 않은 기업소는 사실에 있어 제철소라고 할수 없었다.

평양에 들어온 남조선정치인들에게 김일성동지의 민족자립사상의 정당성을 인식시키자면 무엇보다 중요한것이 자립적민족경제건설로선이 관철되고있는 현실인데 8천명이나 되는 종업원을 안고있으며 동양에서 손꼽히는 제철소로 알려져있는 황철에서 아직 용광로도 살리지 못해서 계획을 제대로 못한다면 어떻게 북조선에서 자립적민족경제건설로선이 관철되고있다고 말할수 있겠는가.

《하루라도 빨리 용광로를 살려야 하오. 용광로에서 쇠물이 쏟아져나오지 않는 기업소를 무슨 제철소라고 할수 있소. 국장동무가 용광로를 복구할 때까지 황철에 나가있을수 없겠소?》

김책이 성긴 눈섭을 미간에 모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몸이 허약해서 병원에서 살다싶이 하던 산업국장이 자리를 내놓은 후 최부국장이 림시 대리사업을 하고있었지만 일이 서툴러서 정준택이 산업국장까지 겸직하다싶이 하면서 기획국장사업을 해왔다.

《국사업을 인계하고 곧 황철에 내려가겠습니다.》

《그러면 나하고 다시한번 만난후에 내려갈 준비를 하시오. 래일 다시 만납시다.》

이날 저녁 김책은 장군님의 결론을 받아야 할 몇가지 문제를 안고 그이의 집무실에 올라갔다. 손에 든 조그마한 수첩을 들여다보며 황철의 복구대책을 그이께 말씀드렸다.

《황철의 용광로가 빨리 복구되지 않는것은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기때문인것 같습니다. 최부국장이 황철에 나가살다싶이 하는데 일이 잘 진척되지 않습니다. 정준택동무를 용광로를 살릴 때까지 황철에 나가있게 하려고 합니다.》

《황철의 용광로를 하루빨리 복구해야 합니다. 서종현기사를 황철에 내려보낸지도 몇달되는데 아직 용광로를 살리지 못한것을 보면 애로가 많은것 같습니다. 그 기사동무를 도와주는 의미에서도 정준택동무를 내려보내는데 나도 찬성입니다. 그런데 혼자 내려가서 짧은 기간내에 일을 바로잡을수 있을것 같습니까? 복잡한 문제가 있어서 용광로복구가 늦어진다면 혼자 내려가서는 시간이 걸릴수 있습니다.》

저녁어둠이 내려덮인 창밖을 잠시 바라보고계시던 그이께서 문뜩 한가지 해결책이 뇌리에 떠오른듯 뒤를 이으시였다.

《고급지도간부학교 학생들이 졸업시험을 끝냈습니다. 그 학생들가운데서 두세명을 선발해서 방조성원을 붙여줍시다. 그 동무들을 정준택동무가 직접 선발하는것이 좋겠습니다. 명칭은 지도소조라고 하고 증명서도 인민위원회에서 발급하게 합시다.》

김책도 정준택을 도와줄 사람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은것은 아니지만 적당한 일군을 골라내기 어려워 우선 그를 내려보낼 생각이였다. 믿음직한 방조성원들까지 얻을수 있게 되니 한시름 덜어진듯 얼굴에 느긋한 웃음이 피여났다. 일정한 직책에서 사업하던 동무들이니 정준택에게 많은 도움을 줄것이다.

 

평양에서 출발한 남행렬차가 황주역에 멎기바쁘게 전호준이 승강구에서 뛰여내렸다. 그를 뒤따라 물날은 훌쭉한 배낭을 진 두명의 사나이들이 홈에 내려섰다. 황철에 파견되여가는 지도소조성원들이였다. 정준택은 학생들중에서 이미 사업을 통해 파악이 있는 사람들을 소조성원으로 선발하고는 전호준에게 조장의 일을 맡겼다.

새벽차를 타고 황주에 온 그들은 역전의 국밥집에서 조반을 굼때고는 송림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황철에 대해 흥에 겨워 이야기하며 울퉁불퉁한 30리길을 걸었다. 동양굴지의 대제철소복구를 지도방조하는 소조원으로 선발된것이 자못 흡족한 모양이였다. 전호준의 검실검실한 얼굴에도 빙긋이 웃음이 피여있었으며 동무들의 이야기에 동감을 표시하면서 가끔 튼튼한 턱을 주억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다른 소조원들처럼 흥겹기만 한것은 아니였다. 황철이 가까와질수록 머리속에 자리잡은 의문과 근심은 짙어가기만 했다.

서종현이 황철에 있으면서 어떻게 되여 용광로복구가 지연되는가? 대상이 지나치게 방대해서 기술이 딸리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다른 난관에 부딪쳤는가? 최부국장이 황철에 내려와 살다싶이 하면서 복구사업을 지도하고있다니 혹시 그의 방해를 받고있는것은 아닌가?

전호준은 서종현기사가 황철에 내려오기전에 몇번 상종을 했다. 서종현이 루명을 벗고 평양에 다시 올라올것은 뻔한 일이여서 전호준은 서말재밑의 그의 집을 매일이다싶이 찾아갔다. 고급지도간부학교에서 공부를 하기 시작한지 한달쯤 되는 어느날 저녁이였다. 화물자동차에서 방금 이사짐을 끌어내린 그의 집에 전호준은 들어섰다. 부엌세간이 들어있는 궤짝을 끌어들이느라고 끙끙거리는 서종현과 아주머니를 한옆으로 밀어내고 그는 궤짝을 닁큼 들어서 부엌안에 들여놓았다. 토방에 되돌아나온 그는 섬약한 서종현의 손을 넉가래같은 손으로 움켜쥐고 거쉰 웃음을 터뜨렸다.

《어떻게 돼서 이제야 올라왔소? 난 좀더 빨리 올라올줄 알았소. 아무튼 그동안에 고생이 많았겠소.》

이렇게 말한 그는 어디에 간다는 말도 없이 대문밖으로 나갔다. 잠시후 모판을 어깨우에 올려놓은 음식점의 심부름군을 뒤에 달고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한되들이 소주병이 들려있었다. 이사짐을 한옆에 밀어놓고 서종현의 귀환을 축하하는 긴급환영연이 시작됐다. 조그마한 술잔으로 홀짝거려서는 성이 차지 않는다면서 아주머니에게 보시기를 달래가지고 전호준은 먼저 한보시기 들이켰다.

《기사동무가 어떻게 돼서 평양에 다시 올라오게 됐는지 아오?》

서종현이 보시기의 술을 훌쩍훌쩍 들여마시며 대꾸를 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소. 화물자동차를 내려보내서 다시 올라와도 된다니 올라왔을뿐이요.》

《장군님께서 관심을 돌려주셔서 올라온거요. 시보안서에 들어가있는 기사동무를 석방하게 하신분도 장군님이시오. 일부 <얼마우제>들이 장군님 모르게 장난질을 하지만 어림이 있소?》

서종현은 안주를 집으려던 저가락을 손에 든채 불깃해진 전호준의 얼굴을 어리둥절해서 마주봤다. 이 세상에 별로 존재할 가치가 없는 불우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자기와 같은 인간에게 장군님께서관심을 돌리시다니?··· 그는 전호준의 말을 곧이 들을수가 없었다.

《나도 출당철직을 당할번했소. 장군님께서 단호한 대책을 세워주시지 않았으면 지금쯤 탄광에 내려가서 탄을 캐고있을게요.》

비록 심산속의 광산에 내려가있었지만 전호준이 하마트면 시련을 겪을번했다는 이야기를 서종현도 들었었다. 반쏘소요에 참가한 어떤 기술자를 탄광에 숨겨둔것이 문제로 되여 출당을 당할번했다는 소문이였다. 그 말을 들은 서종현은 더욱 몸을 사리고 지냈으며 말수도 적어졌었다.

《최부국장은 아직 산업국에 있소?》

딱 집어서 말할수는 없지만 전호준이 된탕을 맞을번한것도 자기가 박해를 받는것도 최부국장탓인듯이 서종현에겐 생각되였던것이다.

《산업국장대리를 한다는것 같소.》

오랜만에 마신 술로 해서 유쾌해지던 기분이 말끔히 흩날려버린듯 서종현의 얼굴에 컴컴한 빛이 비꼈다.

《그 량반의 구박을 받으면서 산업국에서 일을 할바에는 덕산광산에 있는게 나한테는 더 좋소.》

전호준의 흥겨운 기분도 순식간에 사위여버렸다. 최부국장과 같이 반쏘란 말만 들어도 길길이 뛰면서 함부로 사람잡이를 하는 그의 밑에서 서종현이 일을 하기는 어려울것이다.

《기사동무는 이번에 누구의 지시를 받고 올라왔소? 산업국의 지시요?》

전호준이 술상에서 물러나 앉으며 물었다.

《아니요. 김책부위원장동지의 부관이 화물자동차를 가지고 광산에 내려와서 내게 이런 문건을 주었소.》

서종현은 부시럭거리며 양복안주머니에서 개봉한 봉투를 꺼내서 전호준에게 내주었다. 전호준은 한장의 종이장을 펴들고 주의깊이 읽었다. 서종현을 강직시킨것은 부당한 결정이였다는것이 판명되여 소환한다는 두줄의 문장이 씌여있는 문건에는 김책의 서명이 있었다.

문건을 쥐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전호준이 권고를 했다.

《이런 문건을 받았으면 김책동지를 먼저 찾아가는건데 그랬소. 부관하고 같이 올라왔겠는데 자동차를 인민위원회앞에 대달라고 할수 있지 않소. 래일아침 첫시간에 부위원장동지를 찾아가오. 그 더부룩한 수염은 밀구. 내앞에서 속타는 소리를 하지 말고 부위원장동지앞에 가서 속을 터놓소.》

보시기를 들어 한모금의 술을 훌쩍거리고난 서종현이 중얼거리는듯한 소리로 대꾸했다.

《문건에 서명을 했다고 해서 나를 만나주겠다는것은 아니지 않소. 김책동지같은 큰 간부가 나같은 사람을 일일이 만나서야 일은 언제 하겠소. 일단 소환을 했으니 이제 련락이 있겠지···》

헤여진지 두해도 안되는 사이에 자기를 비하하는데 습관된듯싶은 주눅이 든 서종현을 전호준은 동정이 넘친 서글픈 눈길로 지켜봤다.

《기다릴 생각을 하지 말고 찾아가오. 부당한 처벌을 벗겨서 소환해주었는데 례의를 차려야 할게 아니요. 결의도 다지구.》

전호준은 목이 타는듯 한보시기의 술을 또 단숨에 들이키고나서 옆에 내려놓았던 문건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김책동지가 서명한 이런 문건이 있는데 기사동무는 왜 주접이 들어서 그러오? 무엇때문에 최부국장을 겁내는가 말이요. 그 사람이 밸뚜가지 사납게 굴면 이 문건을 내대면 되지 않소.》

그는 김책부위원장을 찾아가라고 거듭 설복을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호준의 권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종현은 다음날 오전중 내내 방안에 들어앉아 바재이다가 늦은 오후에야 김책을 찾아갈 결심을 했다. 수염을 반반하게 밀고나서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대동교를 건너갔다. 인민위원회 현관안에 들어서서 접수구에 김책의 서명이 있는 문건을 들여밀고는 면담을 하려고 왔다고 했다. 해사한 얼굴의 녀성은 두말없이 곧 송수화기를 들었다. 기껏 일이 잘되여야 면담할 날자와 시간을 약속받고 되돌아가게 될줄 알았는데 접수구의 녀성은 문건을 내주면서 상냥한 말씨로 잠간 기다리라는것이였다. 2~3분도 지나지 않아 서종현과 엇비슷한 나이의 청년이 나오더니 먼저 인사를 하면서 김책부위원장동지의 서기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자기따위는 감히 발을 들여놓을수 없는 범접하기 어려운 세계라고 생각했던 이곳 사람들의 친절한 태도에 서종현은 어리벙해졌다.

서기의 뒤를 따라 수수한 사무실안으로 들어서던 그는 문뜩 못박힌듯 그 자리에 굳어졌다. 량수책상을 마주하고 앉아 펜대를 쥐고있는 사람은 신문에서 자주 본 김책이였다. 김책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가운데까지 걸어나와 서종현의 손을 잡아쥐고 의자에 눌러앉히더니 자신도 옆에 앉았다. 왜 광산에 내려가게 됐을 때 찾아오지 않았는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서야 서종현문제를 해명하기 시작했다, 장군님께서도 많은 걱정을 하시였다, 시간이 좀 걸려서 고생이 많았을것이다··· 대동교를 건너오면서 몇번이나 머리속에서 굴린, 김책앞에서 결의를 다지려던 말을 입밖에 낼 겨를도 없었다. 그저 눈앞이 뿌옇게 흐려져서 얼굴을 들수 없을뿐이였다. 나같은것때문에 장군님께서 근심을 하시다니··· 아편장사군의 자식이라면서, 반쏘반혁명분자라면서 인간의 마지막존엄까지 마구 짓밟힌 자기, 자기와 같은 보잘나위 없는 한 기술자의 재생을 위해 그이께서 마음을 써주시다니?! 서종현은 가슴속에 그득히 고인 눈물을 쏟아놓고싶은 충격을 느꼈다.

《장군님께서는 서종현동무에게 중요한 사업을 맡기고싶어 하시오. 그것은 황철복구를 기술적으로지도하는 사업이요. 전기동력을 전공한 서종현동무에게는 지나치게 아름찬 대상이라는것을 장군님께서도 알고계시지만 지금의 우리의 처지에서는 전공을 따질 형편에 있지 못하니 어떻게 하겠소. 난 서종현동무가 장군님께서 맡겨주시는 이 중요한 사업을 접수했으면 하오.》

서종현은 자기가 언제 자리를 차고 일어났으며 어떻게 되여 결의를 다지듯 웨치게 됐는지 알지 못했다.

《하겠습니다! 제철소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있는 노력을 다 바치겠습니다.》

김책의 얼굴에 밝은 웃음이 피여났다. 그는 마디굵은 억센 손으로 서종현의 손을 힘있게 움켜잡으며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내 그럴줄 알았소. 장군님께서도 기뻐하실거요. 황철에 가기전에 장군님께 인사를 드리는것이 좋겠소. 나하고 같이 올라갑시다.》

마음을 다잡기 어려울만큼 흥분한 상태인데다 김책이 너무나 쉽게 말을 해서 서종현은 자기가 지금 어디로 가고있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사무실을 나서기전에 김책이 벽에 걸려있는 거울앞에 서서 옷차림새를 바로잡고 숱적은 머리에 빗질까지 하기에 부위원장이 방금 말한 이야기는 장군님을 뵈러 가자는것이 아닐가? 이런 생각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기는 했지만 그는 자기의 생각을 도무지 믿을수가 없었다. 그는 꿈속에서 해빛에 물든 구름을 휘감고 걷듯 행복에 취해 발이 어디에 놓이는지 알지 못하면서 김책의 뒤를 따라 층계를 올라갔다.

김책이 문을 열고 어느 한 방에 들어서니 부관한테서 모자를 받고계시는 젊은분이 서계시였다. 해빛을 눈부시게 반사하는듯한 만면이 환하게 빛나는 얼굴, 번쩍이는 안광, 그이의 존안을 더욱 자애로와 보이게 하는 량볼의 오목한 볼우물··· 서종현은 어망결에 상체를 깊이 숙여 큰절을 드렸다.

《서종현기사동무가 황철의 기술지도를 책임지겠다고 결의를 했습니다.》

너무나도 갑자기 맞다든 행복, 흥분으로 해서 깊이 숙인 웃몸을 들지 못하고있는 서종현의 귀에 김책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렇습니까? 아주 좋은 결심을 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손에 들었던 모자를 부관에게 도로 넘겨주며 가까스로 상체를 일으켜세운 서종현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시였다. 서종현은 무아중에 그이의 손을 모두어잡았다.

《여기서 이럴것없이 내 방에 들어갑시다.》

분명히 예정된 사업이 계시여 밖에 나가시던 길인듯싶었는데 그이께서는 다시 집무실안으로 들어가시였다. 몇번이나 앉으라고 권하셔도 그대로 서있는 서종현을 김책이 손을 잡아끌다싶이 해서 의자에 앉혔다. 담배가치를 쥐여주며 손수 성냥까지 켜주셨지만 서종현은 후들후들 떨리는 손에 담배를 쥐고있을뿐 종시 불을 달지는 못했다.

몹쓸말을 듣고 광산에 내려갔으니 그동안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겠는가··· 자못 침중한 음성으로 그이께서는 말씀하시였다. 어제 올라왔다는 말을 들었는데 식구는 몇이나 되는가? 어린것이 둘이 있을뿐인 네식구라는 말을 서종현은 어망결에 말씀드렸다. 황철에 내려가면 두벌이사를 하는셈이여서 곤난이 많을것이다.···

너무나도 다심하고 자애에 넘친 말씀이여서 눈굽에 맺힌 눈물을 훔치기만 하던 서종현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말씀드리였다.

《황철이 추설 때까지 가족을 평양에 그대로 두겠습니다. 다행히 제가 비여놓고 떠난 집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김책부위원장이 서말재밑의 그 사택을 그대로 비워두라고 해서 산업국에서 손을 대지 못했다고 장군님께서는 말씀하고나서 뒤를 이으시였다.

《로동자들과 함께 자고 함께 먹으면서 일을 하겠다는건데 그것도 얼마동안이지 어떻게 그런 생활을 계속하겠소. 기사동무가 먼저 내려가서 자리를 잡겠다니 그렇게 할수도 있겠지만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닐거요.》

책임부관이 들어와 회의시간이 다됐다고 장군님께 말씀드렸다. 그이께서는 아쉬운듯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시간이 있었으면 이야기를 더 했으면 좋겠는데 안됐소. 하긴 황철은 가까운 곳에 있으니 만날 기회가 또 있을거요.》

장군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을 나서며 우리 당의 자립적민족경제건설로선을 관철하는데서 황철이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에 대해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부관이 내주는 모자를 손에 들고 복도에 나서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 나라에는 황철과 같은 종합적인 대제철소를 운영해본 기술자가 없소. 우리 인민의 피땀을 짜내서 일떠세운 민족의 재부인데 어떻게 해서든 살려내야 할것이 아니요. 우리는 이 중대한 과업을 서종현동무에게 맡기기로 한것이요. 나는 기사동무가 우리가 맡겨준 과업을 틀림없이 수행해내리라고 생각하오.》

장군님께서는 뒤따라내려온 서종현의 섬약한 손을 다시한번 굳게 잡아주고나서 현관을 나서시였다.

김책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북조선인민위원회를 나선 서종현은 아직도 자신이 꿈을 꾸고있는것 같았으며 눈부시게 빛나는 행복의 너울을 휘감고 걷는듯싶었다. 자기가 방금전에 체험한 그 모든것이 실지 있었던 현실속의 생활이라고는 도저히 믿을수가 없었다. 그렇게도 천대받고 박해를 받던 자기와 같은 인간에게 어떻게 되여 이런 영광과 행복이 불시에 찾아들었는가? 옆을 지나는 행인들이 돌아볼만큼 벙글거리며 대동교를 건넜다. 땡땡거리며 달려온 전차가 종착점에서 되돌아서느라고 뽈대를 돌려대고있었다. 서종현은 한가지 생각이 머리에 번개쳐 문뜩 걸음을 멈추었다. 장군님께서는 무엇보다먼저 용광로를 복구해야 한다고 하시였다. 황철구내에서 위용을 자랑하는 그런 대형용광로를 복구할 능력이 자기에게 있는가? 고공시절에 실습을 하느라고 내려가본 황철에는 대형용광로가 3기, 그외에 중형용광로들도 있었다. 그 많은 용광로를 한꺼번에 복구할수는 없는것이지만 화학석유공장과 유선탄광에서 왜놈들이 얼마나 악랄하게 생산설비를 파괴하고 달아났는지 이미 보아온 그는 이 용광로들이 어떤 상태에 처해있겠는지 능히 짐작할수 있었다. 김책부위원장의 말이 있었을 때 어째서 용광로의 파괴상을 돌아보고 와서 답변하겠다고 하지 못했는가.

그랬더라면 가능성여부를 딱히 알지 못하는 문제를 가지고 장군님께 확답을 드리는것 같은 무엄한짓을 하지 않았을게 아닌가. 부위원장이 너무나 친절하게, 그렇게도 갈구해오던 인격을 존중해주는 말을 하며 권고를 하는 서슬에 그만 흥분해버리고말았다. 기술자의 타산과 리성도 그 순간에 마비되였다. 이 무모한 행동을 어떻게 수습해야 한단 말인가.

그의 눈앞에 웅틀뭉틀한 전호준의 정력에 넘친 얼굴이 떠올랐다. 이런 어려운 문제를 갖고 의논할 상대라군 그밖에 없었다. 서말재마루턱에 자리잡은 고급지도간부학교에 찾아가 전호준을 불러내서 운동장끝의 풀숲으로 끌고갔다.

서종현의 말을 들은 전호준은 환성을 내지르며 와락 손을 움켜잡았다.

《장군님께서 만나주셨단 말이요? 황철을 복구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구··· 됐소! 혹시 이런 일이 있지 않겠는가 생각은 했지만 믿지를 못했는데··· 됐소! 얼마나 큰 영광이요!》

서종현은 엉뎅이를 들썩거리며 웨치는 전호준을 무릎을 내리눌러 겨우 진정시켜가지고 자기의 근심을 이야기했다.

《내가 타산도 없이 결의를 다졌단 말이요. 그만 흥분해서 황철을 복구하겠다고 말씀드렸단 말이요. 그런데 나는 용광로에 대해서 깊이 알지를 못하오.》

《누구던 황철을 살려야 한다고 장군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지 않았소. 황철과 같은 큰 제철소를 운영해본 기술자는 우리 나라에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하지 않았소. 그 과업을 서종현동무가 받아안았는데 뭘 그러오? 이건 누구나 받아안을수 없는 영예로운 과업이요.》

전호준은 근심에 싸인 서종현의 그늘진 얼굴을 리해하기 어려운 눈길로 마주봤다.

《일을 성사시켜놔야 영예로운 과업이지 만일 내가 황철을 살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겠소? 난 무모한 결의를 다진것 같단 말이요.》

전호준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장군님앞에서 다진 맹세를 다리를 하나 건너와서 의문을 품는단 말이요? 그런 말을 내앞에 와서 하면 내가 받아줄줄 알았소? 장군님앞에서 맹세를 다지지 않았다고 해도 그이께서 바라시는 일이면 목숨을 내대고 뛰여들어야 할판인데 동요가 뭐요? 동요가! 서종현동무가 이런 사람인줄 아셨으면 장군님께서 만나주지도 않으셨을거요.》

부리부리한 불거진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여 손을 내저으며 웨친 전호준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기사동무는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어도 장군님앞에서 다진 결의를 완수해야 하오. 다시는 나를 찾아와서 그런 시시껄렁한 소리를 할 생각을 하지 마오.》

전호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기숙사를 향해 걸어갔다. 너무나 모진 말을 던지고 몸을 돌린것 같아 며칠후에 그는 서종현의 집을 찾아갔다. 기사는 이미 황철에 내려간 뒤였다.···

전호준은 황철로 뻗은 울퉁불퉁한 길을 걸으며 학교에 찾아왔던 서종현의 모습을 눈앞에 그렸다. 용광로복구가 늦어지는것이 서종현의 나약성탓인지 그렇지 않으면 최부국장의 방해때문인지 알수가 없었다. 어쨌든 그는 다른 소조원들처럼 흥겨운 기분에만 잠겨있을수가 없었다.

전호준일행은 우선 정준택의 사무실을 찾았다. 정준택은 결원인 당위원장실에 림시사무실을 두고있었다.

《나도 어제 저녁에 도착했소. 이제부터 일에 착수할 생각이요. 우선 용광로복구가 늦어지는 리유를 알아내야 하겠소. 나는 청사에서 간부들을 만날테니 동무들은 현장에 들어가는것이 좋겠소. 전호준동무만 해도 지배인으로부터 국장사업까지 해본 동무이니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무엇부터 시작해야겠는지 알지 않겠소.》

일행은 정준택의 림시사무실에 배낭을 벗어놓고 밖에 나왔다. 다른 소조원들은 현장에서 로동자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실정을 알아보기로 했으며 전호준은 서종현기사를 만나기로 했다.

용광로복구가 늦어지고있다고 해서 손을 털고 나앉아있는가 했는데 그런것은 아니였다. 용광로주변에서는 남녀로동자들이 모여앉아 흰 입김을 내불며 열성스레 연마석으로 내화벽돌을 갈고있었다. 왜놈들이 불을 죽이고 달아나 굳어붙어버린 쇠를 모두 뜯어낸 뒤에 지금은 로벽축조가 한창이였던것이다. 남녀로동자들이 호호 흐하 웃으며 내화벽돌을 연마하는것은 로벽에서 뜯어낸 벽돌가운데서 쓸만한것을 재생시키느라고 그런 역사를 하고있는것이였다.

기세도 드높이 일을 하는 로동자들을 보니 전호준은 우선 몸이 근질거려 견딜수가 없었다. 서종현은 후에 만나기로 하고 연마작업을 하는 사람들속을 비집듯 하며 내화벽돌적재장으로 다가갔다. 무져놓은 판자지게를 하나 주어 멜바를 어깨에 걸치고나서 벽돌을 지게에 올려놓는 로동자에게 등을 돌려댔다. 앞사람의 뒤를 따라 작업대우에 올라가 짐을 부린 전호준은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작업장을 휘둘러봤다. 반장쯤 되는 모양인 중년이 호각을 손에 들고 작업을 지휘하고있었다. 전호준은 그옆에 다가가 굽석 절을 하고는 물었다.

《서종현기사를 만나자구 현장에 나왔는데 보이지 않는군요. 어데서 일하는지 모르겠습니까?》

《기사동무는 며칠전부터 현장에 나오지 못하우.》

황철에 걸어들어올 때 머리에 비꼈던 근심이 되살아올랐다.

《앓는가요?》 그는 물었다.

《차라리 그러면 좋기나 하게요. 사상투쟁에 걸려들어서 단련을 받고있수다.》

이런 경우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무엇을 잘못했기에 단련을 받고있는가? 전호준은 다우쳐물었다.

《기사동무가 왜 사상투쟁의 대상이 됐습니까? 사고라도 쳤습니까?》

《아직 용광로도 살리지 못했는데 사고는 무슨 사고겠소. 도에서 내려와서 오라가라 하더니 며칠전부터 아주 일에서 떼서 회의에 참가시키고있지요.》

반장은 분명히 서종현을 일에서 뗀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고있었다. 전호준은 우선 서종현의 신상에서 벌어지고있는 일부터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호준은 부시럭거리며 외투안의 저고리 안주머니에서 자기들에게 발급해준 증명서를 꺼내 반장의 손에 쥐여주었다. 반장은 어지러운 장갑을 낀 손에 증명서를 들고 들여다보다 급히 장갑을 벗고 다시 증명서를 읽는다. 증명서에는 지도소조성원으로 파견한다는 한줄의 글이 씌여있을뿐이지만 그밑에 북조선인민위원회의 명판과 함께 시뻘건 도장이 찍혀있었다. 비록 장군님의 존함은 모셔있지 않았지만 북조선인민위원회의 명판이 찍혀있으니 그이께서 파견한 사람으로 봐야 한다고 반장은 생각한것 같았다.

《내 원래 성미가 거칠다보니 몰라봐서 안됐습니다. 그런데 무얼 알자고 하는지?》

반장의 말투는 대번에 달라졌다.

《용광로복구가 왜 늦어집니까? 서종현기사에 대해서도 말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반장은 눈에 생기를 띠우고 웅틀뭉틀한 전호준의 네모진 얼굴을 잠시 마주봤다.

《알겠습니다. 어디 좀 들어가 이야기를 합시다.》

지금까지 터놓고싶어도 터놓을수 없었던 가슴속의 안타까운 생각을 쏟아놓을 기회가 급기야 찾아들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였다. 부반장한테 뒤일을 맡기고 휴계실에 들어가 전호준과 마주앉은 반장은 곧 속을 터놓기 시작했다.

··· 용광로복구가 늦어진 근본원인은 기술에 걸렸기때문이다. 일제놈들은 기능로동이나 정밀로동에 조선로동자들을 될수록 인입시키지 않았으며 기술자명색의 조선사람들도 중요한 기계설비를 조작하는 일에는 관여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니 용광로를 살리기 위해 녹아붙은 쇠를 설사 까낸다고 해도 여러가지 규격에 성분이 각이한 수천t의 내화벽돌을 쌓아올리는 로벽축조는 누가 하며 어림짐작으로 로벽을 쌓는다고 해도 수천마력짜리 전동기와 대형변압기가 달려있는 송풍기를 비롯한 각종 설비들을 누가 살려내겠는가? 황철의 로동자들이 용광로를 살려낼 결심을 선뜻 하지 못한것은 이때문이였다. 이런 때 장군님께서 서종현기사를 황철에 보내주시였다. 그이께서 황철의 용광로가 빨리 복구되기를 바라신다는것을 안 로동자들은 자신들을 뉘우치며 정대와 함마를 들고 로안에 뛰여들었다. 서종현은 기술문건을 찾기 시작했다. 문건과 도면만 있으면 제철소의 기술지도를 능히 할수 있을것 같았던것이다. 왜놈들이 문건과 도면을 죄다 태워버리고 달아났다는것을 알게 된 서종현은 너무나도 엄청난 난관앞에서 어찌할바를 몰랐다.

황철의 수천명 종업원들은 말할것 없고 송림의 주민들까지 일제놈들의 악랄한 죄행에 격분하여 치를 떨었다. 하루는 나이 지숙한 로동자가 찾아와서 서종현이 복구를 다그쳐야 할 송풍기 변압기계통을 알만한 사람이 황주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왜놈의 기사장밑에서 소사를 하며 공부를 한 사람이라고 했다. 기사장네 집에 가서 아이를 업어주고 목욕물을 끓여주면서 책을 빌려본 사람이라고 한다. 직심스럽게 공부를 한탓으로 기사장이 자리에 없을 때는 그닥지 않은 일들을 대신할수 있게 됐으며 일제말기에는 기술과의 계장을 했다고 했다. 이것이 문제가 되여 광복직후 징용에 끌려갔다 돌아온 청년들한테 친일파라고 매를 맞았다고 한다.

서종현은 곧 황주에 나가 그 계장을 제철소에 데려왔다. 체계적인 공부는 못했지만 눈으로 보면서 경험을 쌓은 기술자여서 제철소의 실태를 휑하니 꿰뚫고있었다. 서종현이 반드시 알아야 할 지하구조물이며 왜놈들이 어느 중요 요소들을 파괴하고 달아났는가 하는것도 대체로 알고있었다. 서종현은 그를 앞세우고 다니며 필요한 도면을 그리고 문건도 만들었으며 변압기, 송풍기도 살려나갔다.

하루는 서종현이 변압기실에서 광복전의 계장과 마주앉아 지하구조물의 도면을 그리고있는데 최부국장이 지배인을 뒤에 달고 들어왔다. 그는 로씨야말을 뒤섞어가면서 로동자들이 내쫓은 친일파를 어째서 제철소에 끌어들였는가고 고아댔다. 서종현의 허물을 잡아쥐였다고 생각해서 고아대는게 분명했다. 그는 광복전의 계장을 그대로 황철에 둘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제철소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지금까지 해오던 사업을 도중에서 그만둘수도 없었다. 그는 왕복 60리를 오고가며 하던 일을 계속할 생각으로 광복전의 계장을 황주에 도로 데려다놓았다. 사실 서종현은 그후 한주일에 두세번 황주에 오고가며 기술문건을 계속 완성해나갔다.

《장군님께서 기사동무를 보내주셔서 우리는 자신심을 가지고 용광로복구를 다그쳐왔습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기사동무를 떼버리면 우리는 헛고생을 한것으로 됩니다.》

전호준은 울기가 치밀어올라 뒤덜미가 뻣뻣해지고 관자노리의 피줄이 풀떡풀떡 뛰였다.

《반장동무 보기엔 어떻습니까? 그 산업국 부국장이 황철에 내려와서 일을 제대로 하는것 같습니까?》

《다른 직장은 모르겠는데 우리 용광로는 지도라는것을 받아본 일이 없습니다. 기사동무하구 우리가 이마를 맞대고 의논을 해서 일을 해왔습니다. 요란스러운 간부숙소에 나들면서 술을 마시는게 업인데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간부숙소란 뭡니까?》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의 푸른 물결이 내려다보이는 야산턱에 일제시기 제철소의 소유자였던 자본가놈이 한해에 한두번 찾아오군 하던 요란한 집이 있다고 했다. 지배인은 그 집을 간부숙소라고 하면서 한해전부터 품을 들여 꾸리기 시작했는데 밖에서 들여다볼수 없게 내화벽돌로 높은 담장을 둘러치고 부엌바닥, 움까지 내화벽돌로 매닥질을 했다는것이다.

《요새는 무슨 일을 또 벌려놨는지 매일 내화벽돌을 내라는겁니다.》

《그 간부숙소엔 어떤 사람들이 듭니까? 어제 저녁 정준택국장이 황철에 내려왔는데 국장동무는 합숙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배인이 그 집에 자주 드나들고 최부국장이 황철에 내려오면 그 집에 든다는것은 알고있는데 지켜보지 않았으니 그외엔 어떤 사람이 드는지 우리야 모르지요. 김책부위원장동지가 내려와도 그 집에 가지 않는것으로 봐서 마음이 통하는 몇사람이 나드는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전호준은 우선 그 간부숙소의 내속을 밝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화벽돌을 연마하는 로동자들속에 들어앉아 웃고 떠들며 일을 하는 소조성원을 손짓을 해서 작업대우에 불러올렸다.

《나하고 같이 내려온 동무인데 이 동무에게 그 간부숙소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십시오.》

전호준은 소조성원에게 간부숙소의 속내를 자세히 알아내라고 하고는 사상투쟁회의가 진행되고있다는 제철소회의실을 향해 급한 걸음을 옮겼다.

최부국장이 고아대는 왜가리청이 복도에까지 울려나왔다. 말뜻은 알수 없었지만 누구인가를 비판하고있는것 같았다. 전호준은 뒤문을 소리나지 않게 열고 회의장에 들어섰다. 퍼그나 너렁청한 회의실에 어깨를 비비적거려야 할만큼 사람들이 가득 들어앉아있다. 전호준을 놀라게 한것은 서종현이 머리를 떨구고 연단에 서있고 최부국장이 집행부에서 팔을 내두르며 웨치고있는것이였다.

《저 사람은 함북도에서 각성되지 못한 로동자들을 선동해서 반쏘를 한 사람이요. 반쏘란 뭐요? 반혁명이 아니요? 그러나 당에서는 관대히 용서하여 황철에 파견했소. 그런데 여기에 와서 이번에는 친일파하고 붙어돌면서 이마를 맞대고 쑥덕거렸단 말이요. 기술문건을 만들기 위해서 친일파하고 붙어다녔다고 하는데 이마를 맞대고 무슨 말을 했는지 누가 알겠소. 저 사람이 송풍기를 살린것도 우리는 계급적립장에서 똑똑히 가려봐야 하오. 자기 정체를 숨기기 위해 기계 하나쯤 살려놓았는지 모르지 않소. 지금은 계급적원쑤들과 무자비한 투쟁을 전개해야 할 혁명의 시대요. 혁명의 시대! 동무들, 경각성을 높여야 하오!》

전호준은 자리를 차고일어나 부국장의 턱없는 망발을 반박하고싶었다.

그런데 안타까운것은 당자인 서종현이 도전이나 반박을 아예 단념해버린 사람모양 그저 방심한 표정으로 연단에 서있는것이였다. 사업은 물론 인생까지 단념해버린듯싶은 서종현의 모습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전호준의 등골로 싸늘한 전률이 줄달음쳤다.

정준택의 림시사무실에 지도소조원들이 모일 시간이 다 되였지만 전호준은 회의장밖에서 서종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허옇게 언 겨울해가 용광로의 웅장한 위용을 더욱 부각시키며 저 멀리 서쪽으로 떨어져내린 뒤의 어슬녘이였다. 서종현은 회의참가자들이 모두 흩어져간 후에도 이윽해서야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그림자처럼 회의장에서 걸어나왔다. 전호준을 보고도 웃음비슷한 표정을 잠간 입가에 피웠을뿐 별로 반가와하지도 않는다. 정준택국장과 지도소조가 황철에 내려왔다고 해도 관심을 돌리는 기색이 없었다.

《내 오후 내내 회의에 참가해서 기사동무가 비판을 받는걸 봤소.》

전호준은 허울처럼 바람에 날리기라도 할듯이 비칠거리군 하는 서종현과 보조를 맞추며 말했다.

《다른건 앞으로 해결을 한다고 해도 기사동무가 황철에 와서 진행한 모든 사업이 반혁명적인 행동인것처럼 줴치는 부국장의 말을 왜 반박하지 않소?》

잠시 말없이 걷던 서종현이 중얼거렸다.

《반박은 해서 뭘하오? 여긴 그 사람이 판을 치는 세상인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숱한 사람들앞에서 암해분자취급을 하는데 말을 할건 해야 할게 아니요.》

서종현은 긴 한숨을 내쉬고나서 말머리를 돌렸다.

《반가운 손님이 왔는데 난 주인구실을 할 형편에 있지 못하오. 량해를 해주오. 난 이 길로 가야 하오.》

어둠속에 묻힌 관리부청사의 옆길을 가리켰다.

《기사동무의 숙소는 어디요? 우린 합숙에 있소. 국장동무사무실은 당위원장실이요.》

《내가 있는데는 손님들이 찾아올만한데가 못되오.》

서종현은 앞으로 찾아오겠다는 말도 없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전호준은 그를 뒤쫓아가 무엇때문에 부국장의 전횡에 순종을 하느냐고 어깨를 왁살스럽게 그러잡아 흔들며 웨치고싶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었다. 또 서종현의 태도로 보아 몇마디의 말로 해결지을수 있는 일도 아닌것 같았다.

하루사업을 총화하는 자리에서 전호준은 서종현이 어떤 처지에 빠져있는지도 말하고 최부국장이 황철에 있는한 용광로를 빠른 시일내에 복구한다는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주장도 했지만 정준택은 괴로운 표정으로 말을 들을뿐 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도 청사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였다. 이날 밤늦게 합숙에 돌아온 정준택이 심중한 얼굴빛으로 전호준을 찾아와 래일아침 첫시간에 지도소조성원전원이 자기의 사무실에 와야겠다는 말을 하고 돌아갔다.

이튿날 소조성원들은 제정된 시간에 정준택의 림시사무실로 갔다. 해탄로에서 콕스를 쏟아내서 황철구내는 온통 연분홍빛으로 물든 아침이였다.

정준택과 소조성원들이 나무의자에 엉뎅이를 붙이고 앉아있는 사무실에 부국장, 지배인과 함께 어제 회의장에서 본 비대한 중년사나이가 들어섰다. 부국장은 전호준이 방안에 앉아있는것을 보고 어지간히 놀란 빛이였으나 곧 표정을 수습하고는 푹신한 쏘파에 몸을 던졌다. 정준택이나 전호준따위는 안중에 없는듯 사무실에 들어오기전부터 떠들고있던 모양인 이야기를 왜가리청으로 고아댔다.

정준택은 부국장이 뭐라고 하던 일체 관심을 두지 않고 책상우에 펼쳐놓은 문건을 들여다보면서 부지런히 계산척만 놀렸다. 부국장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나서 정준택에게 건방진 어조로 말했다.

《우리는 오늘도 회의를 해야겠는데 시간이 없소. 할 말이 있으면 빨리 해주시오.》

정준택은 대꾸없이 깨알같은 수자를 횡선지에 써넣었다. 서종현이 얼굴을 수굿하고 방에 들어섰다. 정준택이 눈길을 들고 가볍게 충고했다.

《앞으로는 회의에 늦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정준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우리가 황철에 내려온 목적을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빠른 기일안에 용광로를 복구할 목적으로 내려왔습니다. 장군님께서 관심을 두시는 사업인것만큼 모든 문제를 여기에 복종시켜야 하겠습니다.》

정준택은 별로 표정의 변화도 없는 담담한 모습으로 말했다.

《우선 서종현기사동무를 본신사업을 할수 있는 본래의 직책에 돌려보내야 하겠습니다. 이 문제는 사상투쟁을 위해서 도에서 내려온 동무와 이미 토의가 있은 문제이니 다시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서종현동무가 알아야 하겠기때문에 이 자리에서 말을 하는겁니다.》

머리우에 벼락이라도 떨어진듯 와뜰 놀란 부국장은 울적한 낯빛인 비대한 사나이를 돌아봤다. 정준택의 다음말을 들은 그는 더욱 놀라 국장이 앉아있는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다음은 최부국장동무문제인데 부국장동무는 오늘중으로 산업국에 올라가야겠습니다. 내가 황철을 당분간 책임지기로 했으니 부국장동무는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무슨 큰 모욕이라도 당한듯 얼굴이 지지벌개서 앉아있던 부국장이 퉁명스러운 말을 내뱉았다.

《나는 용광로만이 아니라 다른 문제도 있어서 황철에 내려온 사람이요. 산업국사업에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내가 지금 말하는 모든 문제는 김책부위원장동지에게 보고된것입니다. 결속짓지 못한 문제가 있으면 나한테 인계하고 올라가시오.》

정준택은 두말을 할수 없게 부국장의 말을 눌러버렸다. 여간해 성을 내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는 정준택이 이렇게 맵짜게 부국장을 눌러버릴줄은 전호준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였다. 정준택은 얼굴에 개기름이 번지르르하게 흐르는 말상인 지배인을 마주봤다.

《동무는 오늘부터 건국사상총동원회의가 끝난후에 나한테 와서 하루사업을 총화해야 하겠습니다. 오늘부터 회의는 근무시간후에 하기로 했습니다. 도당에서 지시가 있었지요?》

정준택의 마지막말은 비대한 중년사나이에게 던진것이였다. 도에서 내려온 사나이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대꾸를 했다.

《지시가 있었습니다.》

정준택이 취한 조치가 불만이기는 하지만 도당의 지시니 할수없이 응한다는 태도였다. 원래부터 부국장패인지, 그렇지 않으면 간부숙소의 맛을 봐서인지 최부국장과 한속인것이 틀림없었다. 정준택은 이런 반응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듯 뒤말을 이었다.

《나와 함께 북조선인민위원회에서 파견한 지도소조가 내려왔습니다. 이 소조를 전호준동무가 책임졌습니다.》

전호준은 의자에서 일어나 모두거리로 인사를 했다. 부국장이 심술이 잔뜩 뻗친 눈으로 쏘아봤지만 전호준은 웃음이 어린 눈으로 그를 스쳐봤을뿐이다.

《전호준동무만 남고 다른 동무들은 돌아가도 좋습니다.》

서종현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부용을 꺼내서 무릎우에 놓고 두툼하게 말기 시작했다.

《나한테 할말이 있습니까?》

담배연기를 날리며 앉아있는 서종현에게 정준택이 물었다. 한참 담배를 피우며 앉았던 서종현이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국장동무가 나를 생각해주는건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나를 지나치게 동정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나는 서종현동무를 동정해서 본신사업에 돌린것이 아닙니다. 용광로복구가 급하기때문에 대책을 취한겁니다.》

《나도 그만한것은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황철은 리치가 통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래 서종현동무는 나한테 무슨 말을 하자는겁니까?》

정준택은 음성이 얼마간 거칠어졌다.

《국장동무는 나같은것때문에 모험을 해서는 안된다는겁니다.》 서종현은 여전히 생각에 잠긴 침울한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국장동무는 우리 나라의 장래를 위해 현재의 직위에서 계속 사업해야 할 간부인데 공연히 험한 판에 끼여들어서 피해를 볼 필요가 없다는겁니다.》

전호준이 노여운 음성으로 서종현의 말을 반박했다.

《기사동무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요. 국장동무가 그 <얼마우제>한테 밀려날수 있다는거요? 난 기사동무가 이럴줄은 몰랐소. 혁명을 같이할 동무라고 생각했소. 그런데 어제 회의에서 취하는 태도를 봐도 그래, 이 자리에서 하는 말을 들어도 그래, 그게 뭐요? 부국장이 그렇게도 무섭소?》

《난 아무도 무섭지 않소. 광복전에 나는 이미 목숨을 내댈 각오를 한 사람이요. 장군님께서 날 구원해주셔서 살아나기는 했지만 사실 나는 보안서에 갇혔을 때 끝장이 날 사람이였소. 황철에서 나에게 가해지는 모든 모욕도 사실 나는 크게 생각하지 않소. 나는 이 세상에 용납될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해온지 오래단 말이요. 나와 같은 운명의 소유자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치다가 피해를 볼 필요가 어디 있소? 그래 나와 같은 사람에게 관심을 돌리지 말라는것이요.》

전호준은 끓어오르는 분격을 가까스로 가라앉혔다. 장군님께서 신임을 하셔서 황철에 파견한 서종현이 어째서 이 모양이 됐는가? 보안서와 덕산광산에서 겪은 시련때문에 이렇게 됐는가?

《기사동무는 확실히 사람이 변했소. 유선에서 나하고 같이 일할 때하고는 사람이 달라졌단 말이요. 사람이 왜 그 모양이 됐소? 일그러져도 보통 일그러지지 않았단 말이요. 왜 그 모양이 됐소?》

굵직하게 만 부용을 다 태우고난 서종현은 별로 서두르지 않고 담배를 또 말기 시작했다.

《내가 달라진게 아니라 세상을 더 알게 됐을뿐이요. 내가 아무리 긴 말을 한다고 해도 전호준동무는 나를 리해하지 못하오. 나는 목사의 아들이요. 어떤 사람은 나를 아편장사군의 아들이라고 했소.》

서종현은 이런 말을 서글픔이나 고뇌의 빛도 없이 뿌연 안개에 휩싸인듯한 덤덤한 표정으로 나직이 엮어나가는것이였다.

《이런 사람이 몰린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건 없지 않소. 발버둥을 친다고 해서, 반항을 한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이 걸머진 운명에서 벗어날수 있을것 같소?》

《서종현동무는 장군님께서 맡겨주신 영예로운 과업을 받아안은 기술자가 아니요? 이것이면 됐지 무엇때문에 시시한 생각을 하오?》

전호준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서종현에게 희망을 안겨주지 않으면 스스로도 숨을 제대로 쉴수 없는 중하를 어깨에 걸머지고 살아야 할것 같았다.

《그 말은 옳소. 나의 생존의 가치는 바로 거기에 있소. 그렇기때문에 나는 용광로복구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있소. 그렇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이 달라질게 뭣이 있소? 최부국장은 전횡을 계속 부릴것이구 나는 박해를 계속 받아야 할것이 아니요. 황철에서 벌어지고있는 일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소.》

《용광로복구를 위해 전력을 다한다는 사람이 며칠씩이나 회의장에 끌려가서 친일파소리를 듣고있었소? 어째서 기술자를 황주에 두고 60리를 걷소? 이것도 운명이요?》

착잡한 궤변과 같은 서종현의 말을 듣다 못해 전호준이 자리에서 뛰여일어나며 웨쳤다. 정준택이 손짓을 하며 전호준의 다음말을 밀막았다.

《전호준동무는 나가보오. 동무들이 기다리겠소.》

정준택의 얼굴에 괴롭고 서글픈 빛이 어찌나 짙게 어려있었던지 전호준은 혀끝에 매달린 말을 삼켜버렸다.

《다른건 몰라도 다시는 기사동무가 황주에 가는 일은 없어야 할것 같습니다.》

전호준은 한마디의 말을 내뱉고 정준택의 사무실을 나서고말았다. 관리부청사의 긴 복도를 걸어가는 전호준의 눈앞이 갑자기 뿌잇하게 흐려졌다. 자신이 최부국장한테 모욕을 받고 입심을 당한듯이 분하고 억울했다. 잔뜩 주접이 든 주제에 말롱간을 부리려들어 분통을 터뜨리기는 했지만 얼마나 어질고 성실한 서종현이였던가. 이런 사람이 무엇때문에 소요에 말려들어가지고 최부국장과 같은 사람한테 박해를 당하는 《운명》을 걸머졌는가? 하기는 성실하고 량심적인 기술자이니 의분이 북받쳐 전후를 가리지 못했을것이다.

전호준이 창가에 서서 눈굽에 맺힌 눈물을 말리고있을 때 정준택은 책상서랍에서 담배를 꺼내들고 서종현옆에 가앉아 위안도 하고 달래기도 하며 말했다.

《전호준동무의 말을 노엽게 생각하지 마오. 전호준동무니까 그런 말을 하지 누가 그런 말을 해주겠소. 전호준동무의 솔직성은 기본계급출신간부의 특징이라고 나는 생각하오.》

정준택이 권하는 가치담배를 돌아보지도 않고 부용을 또 말면서 서종현이 대꾸를 했다.

《압니다. 알아도 잘 알지요. 나는 전호준이를 통해 조선의 로동계급을 알게 된 사람입니다. 나는 유선에 가서 처음으로 조선의 탄광로동자들이 광복전에 어떤 기막힌 생활을 했는지 알았는데 그중에 나를 감동시키고 눈물을 흘리게 한 사람이 전호준이였습니다. 전호준은 자기가 광복전에 어떤 인간이하의 취급을 당했는지 말하면서 그런 생활을 다시는 하지 않기 위해 로동자가 주인이 된 나라를 건설하고싶다고 했습니다. 나는 유선의 탄광로동자들과 같은 사람들이 나라의 주인구실을 할수만 있다면 뼈가 부서져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황철에 와서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집도 일제놈들의 탄압을 받긴 했지만 로동자들과 같이 목숨을 이어나가려고 참기 어려운 천대와 모욕을 받으면서 살기 위한 싸움은 하지 않았습니다. 나자신은 로농대중을 위해 기술을 바칠 결심이 되여있지만 기를 쓰고 추적을 하면서 못살게 구니 나의 비극은 여기에 있는것입니다.》

서종현은 목이 꺽 막혀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얼굴을 들면 눈굽에 맺힌 눈물을 보일것 같았다.

《나는 서종현동무가 지나치게 자기 처지를 비관하는것 같소. 장군님께서는 인테리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하시구 보호해주고계시오. 나는 서종현동무가 어째서 우리 당의 인테리정책을 믿지 못하는지 모르겠소.》

《국장동무는 그렇게 생각할수밖에 없을겁니다.》

서종현은 별로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대꾸를 했다.

《기획국장이고 장군님의 신임도 두텁고 재능이 출중하니 감히 누가 건드리겠습니까. 내가 검열국에 불려가서 처벌을 받을 때 국장동무도 머지 않아 제거될것이라고 그 <얼마우제>들은 줴쳤습니다. 그들이 떠벌이는 이런 말을 국장동무도 들었으리라고 생각하기때문에 말하는겁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장군님의 신임이 두텁고 또 기술자들이 앞으로 많이 양성된다고 해도 국장동무와 같은 인재가 태여난다는건 쉽지 않으니까요.》

《나를 장군님의 인테리정책이 낳은 표본이라고 생각할수 있지 않소.》

《나를 동정해서 공연한 노력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도 현재의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엔 고민도 했고 자신을 채찍질하기도 했다는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미련이나 고뇌에서 초탈한듯한 서종현은 잠시 생각을 가다듬는듯싶더니 한숨을 내쉬고나서 말을 계속했다.

《고대의 제신들처럼 력사도 제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습니까. 나도 국장동무와 같은 두뇌를 가지고 태여났으면 최부국장과 같은 저능아한테 시달리지 않는건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에겐 그런 행운이 차례지지 않는걸 이제와서 투정질을 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 아닙니까?》

웃음을 피우려고 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괴로움을 짓씹으며 흐느껴우는듯한 일그러진 표정이 비꼈을뿐이였다.

《황주에 있는 그 계장을 제철소에 데려오는것이 어떻소? 기사동무가 계속 황주에 오고갈수야 없지 않소.》

자리에서 일어날셈인듯 부용봉지를 거두어 주머니에 밀어넣던 서종현은 이외의 말을 들은듯 얼굴을 들었다.

《내가 고생을 좀 하면 되겠는데 무엇때문에 그 사람을 데려오겠습니까? 권한을 가지고 내리누르니까 부국장이 평양에 올라가기는 하겠지만 황철에 깔아놓은 세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큰 나라를 등에 업고 무지막지한 짓을 하는 부국장같은 사람을 국장동무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서종현은 그림자처럼 소리없이 문밖으로 사라졌다. 정준택은 자기와 서종현사이에 도저히 넘을수 없는 깊은 단애가 가로놓여있다는것을 알았다. 세월이 흐르고 수많은 체험을 거친후에라도 서종현의 가슴속에 신심이, 사람이 참답게 살자면 반드시 품고있어야 할 신념이 깃들기를 바랄수밖에 없었다.

황철의 종업원들은 말할것 없고 송림의 주민들까지 온통 용광로복구를 위해 떨쳐나섰다. 작업장에는 야간작업을 하느라고 수백개의 전등이 마치 장식등처럼 매달려있어 밤중에도 명절날처럼 흥성거렸다. 거리의 음식점 아낙네들까지 지원사업에 떨쳐나 국밥과 떡, 지짐과 군감자를 머리에 이고 작업장에 찾아와 로동자들을 고무했다. 작업실적은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뛰여올랐다. 결정적으로 걸린것이 내화벽돌이였다. 누구의 입에서 먼저 튀여나왔는지 간부숙소의 벽돌을 헐어오자는 말이 로동자들속에 퍼져나갔다. 작업반장은 전호준을 찾아와 내놓고 제기를 했다.

《용광로가 중요합니까? 숙소가 중요합니까? 내화벽돌을 쓰지 않았을 때에도 요란스러운 집이였는데. 우린 헐어다 쓰겠습니다.》

로동자들의 요구를 그대로 눌러버렸다가는 무슨 일이 터질지 알수 없는 분위기였다. 전호준은 국장한테 달려갔다. 잠시 생각을 굴리던 정준택은 지배인을 전화로 찾았다. 일요일이여선지 지배인은 사무실에 없었다. 교환수를 시켜 그를 찾게 했지만 지배인의 행처를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로동자들이 간부숙소에 밀려가겠다고 한다는거겠소?》

《축로공들이 일감이 떨어져 손맥을 놓고 앉아있는데 가만있겠습니까?···》

《그 숙소의 벽돌을 헐어오면 며칠이나 쓸수 있다고 하오?》

《한주일쯤은 문제없다고 합니다.》

전호준의 대답을 들은 정준택은 결심을 내린것 같았다.

《어떻게 해서든 지배인을 찾아서 로동자들의 요구를 알려주시오. 로동자들이 흥분해서 조폭한 행동을 하지 않게 해야 하오.》

전호준은 화물자동차와 달구지를 동원하라는 말을 남기고 지배인사택을 찾아갔다. 혹시 술잔이라도 걸치고 집에 누워있을지도 몰랐다. 지배인은 토요일저녁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전호준은 지배인이 가있음직한 곳을 두세군데 돌아다니다 용광로복구장에 돌아왔다. 그런데 작업반장이 그를 기다리다 못해 화물차와 달구지는 말할것 없고 숱한 로동자들까지 휘동해가지고 간부숙소에 밀려갔다는것이다. 전호준은 그 즉시 황철에 내려온 소조성원들과 함께 간부숙소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