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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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님께서는 경쾌하게 달리는 승용차에 몸을 맡기고 마가을 해빛이 가득찬 보통벌을 내다보고계시였다. 검푸른 남새밭들이 나누운 보통벌의 여기저기에 하늘높이 올려쌓은 벼낟가리들이 보였다. 집무실을 나서기전에 읽은, 농림국에서 제출한 서면보고에 담겨있던 글줄들이 눈앞에 떠오르시였다.

그이께서는 올해 작황을 전면적으로 료해하려고 각도에 농림국일군들을 파견하시였었다. 그들이 돌아와 서면보고를 제출한데 의하면 어느 지방, 어느 도 할것없이 례년에 없는 대풍이였다. 평북과 같이 수해를 입은 도에서도 풍년이였던 지난해보다 수만t의 알곡을 더 수확할수 있을것이라고 했다. 올해 인민경제계획은 지난해보다 9%의 증수를 예견하여 30만t의 알곡을 더 생산하는것이 목표였는데 계획을 초과할수 있다는것이 확실하다고 했다. 30만t을 증수하면 낟알이 모자라던 북조선이 식량을 자급자족하게 된다. 먹는 문제가 풀리게 되는것이다. 일제놈들에게 낟알을 수탈당하는것은 말할것도 없고 농사를 지을 장정들까지 징용, 징병으로 깡그리 끌려가 굶주린 배를 그러안고 광복을 맞이한 우리 인민들이 먹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게 됐으니 이 얼마나 큰 력사적전변인가! 장군님께서는 저으기 흥분하여 집무실을 거니시다 준공단계에 이른 혁명학원을 현지지도하려고 인민위원회를 나서시였다.

혁명학원에 도착한 장군님께서는 교실과 실습실, 침실과 도서실은 말할것 없고 식당과 주방까지 돌아보며 못내 만족하여 일군들에게 치하의 말씀도 주시고 미흡한 점을 발견했을 때는 시정방도를 세세히 가르쳐주기도 하셨다. 현지지도는 예정했던 시간을 초과해서 어방없이 연장되였다. 그런데도 장군님께서는 창고며 교정을 돌아보고 사격훈련장으로 향하시였다. 책임부관이 안타까와하다가 장군님께 시간을 알려드렸다. 그이께서 오늘도 점심을 번지실것 같았던것이다.

《오래간만에 나왔는데 건성건성 돌아볼수야 없지 않소. 나는 유자녀들의 아버지가 되여야 할 사람이요.》

장군님께서는 마가을의 짧은 해가 사위기 시작할무렵에야 학원을 나서시였다. 그이께서는 수행한 간부들을 돌아보며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은 먼저 돌아가시오. 오래간만에 만경대에 나왔는데 난 조부모님을 잠간 만나보고 들어가겠소. 함께 내려가서 점심을 먹었으면 좋겠는데 우리 집에는 조밥 아니면 감자밖에 없겠으니 권하지는 못하겠소. 늦어서 안됐소.》

장군님께서는 마가을의 정취가 무르녹은 만경봉기슭의 애솔밭을 헤치며 고향집으로 내려가시였다. 동행한 간부들도 그이의 뒤를 따랐다. 만경대조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지만 험한 음식을 들지 않게 하려고 먼저 시내에 들어가라시는데 어떻게 발길을 돌릴수 있겠는가.

할아버님, 할머님은 여럿의 발자욱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시였다. 장군님께서 일군들의 앞에 서서 밭에 들어서고계시였다. 할아버님께서는 주먹으로 허리를 두드리며 오금을 펴시는데 주름이 얼기설기 패인 얼굴에 반가움을 다잡지 못한 밝은 웃음이 넘쳐난다.

《학원에 나왔던 길에 고구마맛을 보려구 들렸습니다. 난 우리 집 감자가 제일인것 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조부모님께 인사를 하며 시원스런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할아버님께서는 두어대밖에 남지 않은 앞이를 드러내며 흡족한 웃음을 지으시였다. 고구마를 좋아하는 장군님의 식성을 생각해 감자농사를 각별히 정성을 기울여 짓군 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준것 같아 무등 기쁘셨던것이다.

《고향땅에서 캔 감자니까 입에 붙겠지. 내가 지은거래서 그렇겠나. 돌아갈 때 증손들에게 줄걸 싣구 가라구.》

《할아버님, 할머님도 오늘 아예 시내에 들어가십시오. 년세가 어떻게 되시게 아직 농사를 짓고계십니까?》

장군님과 동행한 인민위원회 서기장의 권고였다.

《그렇지 않아두 지난해에 우리 집 녀장군이 증손들이 보고싶어한다구 우릴 억지로 자동차에 태워가지구 시내에 들어갔지. 그런데 농사로 늙은 내가 하는 일 없이 우두커니 앉아있자니 몸이 근질거려서 견디겠더라구. 열흘도 채우지 못하구 도로 나왔어.》

교육국장이 밭을 둘러보다 불쑥 한마디 했다.

《나이가 계신데 오늘 하루동안에 이렇게 많은 일을 축내시다니 참 대단합니다.》

《웬걸, 이젠 늙어서 우리 힘으로 하루 두어마지기도 뚜지기 어려워. 대령의 녀맹위원장이 일을 축냈어.》

《대령의 녀맹위원장이라니 김모라니라는 이름을 가진 녀동무가 왔습니까?》

장군님께서 물으시였다.

《옳아, 그런 이름을 가진 애어머니야. 내 오늘 정말 기막힌 말을 들었어.》

할아버님께서는 이랑에 앉아 고불통에 담배를 꾹꾹 눌러담으며 모라니의 기구한 운명을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수행한 일군들도 김모라니의 기막힌 지난 생활에 큰 충격을 받은 표정들이였다.

할아버님께서 이야기를 끝내시자 장군님께서 깊은 생각에 잠긴 안색으로 말씀하시였다.

《그 녀성동무는 군녀맹위원장이 아니라 지금은 대령군인민위원회에서 부위원장사업을 합니다. 아이가 4이나 달린 어머니인데 얼마나 열성이 높은지 남자들도 당해내지 못할만큼 많은 일을 하는 동무입니다.》

《장군도 알고있었구만.》

김일성동지께서 모라니를 알고계신것이 너무도 기뻐 할아버님의 얼굴에 패인 깊은 주름이 빛나는 웃음속에 녹아들었다.

《그 부위원장이 어떻게 돼서 모라니란 이름을 갖게 됐는지 나도 할아버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알았습니다. 우리가 참고해야 할 좋은 말씀을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뒤에 서있는 서기장을 돌아보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동무네가 올려보낸 문건에 말썽군이라고 한 그 녀성부위원장이 할아버님이 방금 말씀한 그 동무요.》

장군님께서는 통일전선사업을 강화할 목적으로 시군인민위원회 책임일군회의를 준비하고계셨다. 그런데 서기장이 올려보낸 기초자료에 각계각층 인민들과의 단결을 강화하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정권기관 일군들이 단합되지 못하고 다투는 현상이 있다면서 그의 대표적실례로 평북도 대령군을 들었다. 대령군인민들이 단합되지 못하고있는것은 김모라니부위원장의 공명주의탓이라고 했다. 기초자료의 작성자들은 이번 회의를 통해 그와 같은 결함을 반드시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장군님께서는 담배연기를 날리고계시는 할아버님께 물으셨다.

《그 부위원장동무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장군님께서는 김모라니를 꼭 만나고싶으셨다.

《여기에 있어. 점심을 축내기가 미안해서 떠나겠다는걸 내가 붙들어서 점심을 같이 먹었어. 고구마를 이여드리겠다구 광주리를 가지러 들어갔는데 왜 나오지 않는지 모르겠구만. 아까두 장군에게 걱정을 끼칠 일을 했다구 얼굴빛이 흐려지던데 모라니가 무슨 일을 잘못했나?》

《그건 이제부터 알아봐야 합니다. 할아버님의 말씀을 들으니 그 부위원장이 밭에 나오지 못하는 리유를 알만 합니다.》

자신께서 만경대고향집에 나왔다는것을 알면 허둥지둥 달려올 부위원장이 얼굴을 내보이지 못하는 까닭을 그이께서는 짐작할수 있으시였다. 사실 광주리를 찾아들고 뜨락을 나서던 김모라니는 수원들의 앞에 서서 고구마밭으로 향하시는 장군님의 모습을 보고는 그만 그 자리에 굳어져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평양에 올 때 혹시 장군님을 뵙게 되면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것인가? 이런 근심으로 발걸음이 무거워지군 했는데 뜻밖에도 만경대에 와서 그이를 뵙게 된것이다.

그가 부엌에 들어박혀 혼란된 머리를 수습하려고 애쓰고있는데 리보익할머님께서 빠른 걸음으로 집에 들어오셨다. 장군님께서 찾으시니 어서 나가보라고 등을 떠미신다. 그가 할머님에게 끌리다싶이하며 고구마밭에 나갔을 때 장군님께서는 이미 동면에 들어 검푸른 잎사귀를 드리우고 서있는 야산기슭의 소나무밑에 서계셨다.

그이께서는 서기장에게 묻고계시였다.

《대령군일군들이 단합되지 못하고있는것은 김모라니부위원장의 공명주의때문이라고 했는데 그건 어디에서 나온 자료요?》

옷매무시를 바로잡기도 하고 머리를 비다듬기도 하며 장군님께서 계신 곳으로 다가가는 김모라니의 귀에는 물론 그이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다. 다만 흐려진 안색으로 서기장에게 인민의 신망을 얻고있는 간부들에 대한 문제는 특히 심중해야 한다는, 그것도 마지막 한마디의 말씀을 들을수 있었을뿐이였는데 부위원장은 그것이 자기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장군님께서는 김모라니의 정중한 인사를 받고나서 밝은 웃음을 띄우신 모습으로 다정하게 물으시였다. 아이들은 잘 자라는가? 아직 젖을 떼지 못한 아이를 어떻게 하고 평양에 왔는가? 동네아주머니에게 맡기고 왔다? 하루저녁도 아니고 며칠동안이나 젖먹는 아이를 봐주겠다는 아주머니가 있는걸 보면 부위원장이 동네녀인들의 인심을 얻고있는 모양이라고 하시며 통쾌한 웃음을 터뜨리시였다. 시부모와 남편의 건강에 대해서도 물으셨다.

《대령군에서는 애국미를 얼마나 헌납했습니까?》

그이께서는 대령군과 같이 땅이 척박한 고장에서 애국미를 헌납했다는것이 어쩐지 근심되시는듯한 안색이였다. 모라니는 눈길을 떨구고있어 그이의 얼굴에 건듯 비꼈다 사라진 근심의 빛은 감촉하지 못했다. 그는 부끄러운 기색으로 나직이 말씀드렸다.

《겨우 다섯채의 달구지에 60가마니의 벼를 싣고왔습니다.》

《대령군에서 60가마니를 헌납했으면 대단합니다. 애국미헌납운동을 하느라고 농민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지는 않았습니까?》

장군님의 칭찬에 김모라니는 기운을 얻은듯 얼굴을 들었다.

《소출이 많지 못한 고장이여서 처음에는 헌납운동에 참가할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애국미헌납운동의 정치적의의를 알게 된 후에는 모두들 쌀을 더 많이 내지 못해 안타까와했습니다.》

모라니는 그이를 우러러보며 말씀드렸다.

《정치적의의를 알게 된 후에는 더 많은 쌀을 내지 못해 안타까와했다, 그래 정치사업을 어떻게 했습니까? 어떤 내용으로 정치사업을 했습니까?》

모라니는 자기와 군녀맹에서 진행한 정치사업방법과 내용을 간추려 말씀드렸다.

《나라도 까막눈이면 남의 나라에 예속된다, 아주 좋은 내용으로 선전사업을 했습니다. 농민들에게 큰 부담도 주지 않고 온 군이 애국미를 헌납했다는 긍지를 갖게 됐다니 좋습니다. 마음이 놓입니다. 그러나 부위원장동무는 앞으로 먼길을 오고가지 마시오. 아이들이 많구 군사업도 해야 하지 않습니까.》

김모라니는 장군님의 자심한 말씀에 눈굽이 뜨거워진듯 얼굴을 수굿한채 나직이 중얼거렸다.

《알겠습니다.》

《내 부위원장동무에게 물어볼 말이 있습니다. 부위원장동무는 어떤 생각으로 관개공사를 하구 또 새로운 영농법을 도입하기 위해 애썼습니까?》

장군님을 뒤따라 애솔과 가둑나무를 헤치며 산비탈을 걷던 모라니는 한순간 발걸음을 멈추었다. 두리두리한 검은 눈에 의혹의 빛을 담고 장군님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뭐라고 말씀드리려던 그는 장군님께서 질문하시는 뜻을 그제야 깨달은듯 머리를 떨구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얼굴을 싸쥐고 흐느껴우는듯한 목소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저으기 놀라 뒤를 돌아보시였다.

《무엇을 잘못했다는겁니까?》

《제 잘못으로 관개수로가 못쓰게 되구 개답한 논도 얼마간 모래에 묻혔습니다. 우리 대령과 같이 물살이 사나운 산골에서는 관개공사를 할수 없다고 하면서 손맥을 놓고 나앉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령에서 수해를 입은것은 부위원장동무의 잘못이 아닙니다. 수로에 물을 대고싶어 동뚝을 허물었지만 원상대로 다져놓지 않았습니까. 올해의 늦장마는 많은 강수량이 일시에 쏟아져서 평북도의 대부분의 군이 수해를 입었습니다. 기술자들을 파견해서 실태를 알아봤는데 대령군이 피해를 본것은 한꺼번에 많은 비가 쏟아졌구 일제놈들이 나무를 란벌했기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부위원장동무는 어째서 수해를 입은것을 자기 잘못으로 생각합니까?》

억센 성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하셨던 부위원장이 어떻게 되여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이렇게 나약해졌는가? 건국기상을 지녔던 녀성, 군내인민들의 생활을 하루빨리 향상시키려고 제몸을 돌보지 않으면서 뛰여다니던 부위원장이 어떻게 되여 이렇게 주눅이 들었는가?

모라니는 주밋거리다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이번에 일을 당한후 저는 녀자가 간부를 한다는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것을 알았습니다. 제 성미가 드세다고 시비를 해온 군간부들은 말할것 없고 야학에서 함께 공부하고 저녁밥을 지어주고 아이를 업어주면서 성인학교에서 공부를 시킨 아낙네들까지 녀자가 나서서 하는 일이 잘되는걸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제가 일을 벌려놓은것을 녀자의 공명심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전 지금도 공명이란것이 어떤것인지 알지를 못합니다.》

모라니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인 눈으로 장군님을 쳐다봤다. 장군님의 안색도 저으기 흐려지셨다. 그이께서는 산비탈에 드러난 너럭바위에 앉으며 모라니에게도 옆에 앉기를 권하시였다. 부위원장은 앉을념을 못하고 오히려 한발자욱 물러섰다.

《부위원장동무의 말을 알겠습니다. 공명을 위해서 관개공사를 한것도 아니고 새 영농법을 도입한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시작했던 일이 난관에 부딪치니 말이 많고 심지어 야학에서 같이 공부한 녀성들까지 뒤소리를 하니 녀자가 앞에 나서서 일을 하기는 어렵다··· 이것이겠습니다?》

모라니는 머리를 떨구고 고무신앞코숭이로 마가을빛을 어루쓸며 잠시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하고 서있었다. 막상 그이의 말씀을 들으니 자기와 같은 녀자를 종살이에서 해방시켜주고 군인민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시켜주신 장군님의 크나큰 은정을 저버린것 같아 마음이 괴로왔던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속생각을 표현할 적당한 말을 찾기도 어려웠다.

《그럼 부위원장동무에게 한가지 묻겠습니다. 정권기관사업을 부위원장동무와 같은 녀성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모라니는 무겁게 떨구었던 머리를 들기는 했지만 장군님께서 말씀하시는 뜻을 아직 깨닫지 못한 눈길이였다.

《현시기 우리가 제일 중시하는 혁명적과제는 민족통일정부를 수립하는것입니다. 그렇게 하자면 무엇보다도 북조선의 인민정권을 강화해야 합니다. 인민정권을 강화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것 같습니까? 북조선정권은 로동자, 농민의 정권입니다.》

그제서야 김모라니는 장군님께서 물으시는 뜻을 안듯 해볕에 그을은 검실검실한 얼굴이 희벗해졌다.

《토지개혁과 같은 민주개혁의 고마움을 알게 해야 합니다.》

모라니는 자기의 말에 자신이 없는듯 얼굴을 붉히며 중얼거리듯 답변을 드렸다.

《옳습니다. 우리 제도가 좋은 제도라는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자면 부위원장동무와 같이 왜놈의 세상이 어떠한지, 지주의 학대라는것이 어떤것인지 잘 아는 녀성이 정권기관사업을 해야 우리 사회를 더 좋은 사회로 만들려고 아글타글 노력할것이 아닙니까.》

할아버님으로부터 부위원장이 어떤 기구한 운명을 지니고 이 세상에 태여났는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며 장군님께서는 모라니의 모습을 다시한번 찬찬히 여겨보시였다.

《부위원장동무도 이젠 아이어머니가 됐으니 자식을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독한 생각을 한 어머니의 마음을 알겁니다. 부위원장동무가 그 산골에서 이악한 노력을 하는것도 광복전과 같은 기막힌 생활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군녀맹에서 일할 때 기와집을 많이 짓고 문맹퇴치사업을 한것도 그렇구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사업을 하는 지금도 산간농민들을 더 잘살게 하려고 이악한 노력을 하는것은 제도의 고마움을 알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을겁니다. 지금 남조선인민들은 일제시기와 똑같은 식민지정책을 실시하는 미제를 반대해서 피를 흘리면서 싸우고있습니다. 부위원장동무와 같이 착취와 예속에서 해방된 행복한 생활을 쟁취하려고 목숨을 내걸고 싸우고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모라니동무와 같은 일군이 난관이 좀 있고 일부 사람들이 뒤소리를 한다고 해서 부위원장자리를 내놓았다는것을 안다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너럭바위에서 일어나 마른 풀을 밟으며 때로는 손세를 쓰기도 하시면서 말씀을 하시는 장군님의음성은 준절하였다. 그이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동행한 일군들과 모라니를 둘러보시였다.

《남조선에 미치게 될 영향을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상상하기도 어려운 불행을 겪으면서 고역살이를 해온 김모라니동무를 도와줘야겠습니까 도와주지 말아야 하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김모라니곁으로 다가가 치마폭에 애써 감추려고 하는 손을 잡아드시였다. 그의 손은 거칠거칠한 썩살이 두텁게 앉고 뼈마디가 툭툭 불거졌으며 농사군의 손치고도 너무나 험한 넉가래같이 큰 손이였다.

《이 손을 녀자의 손이라고 할수 있습니까? 이 손은 고역중에서도 가장 험한 고역을 강요당한 손입니다. 어머니까지도 딸자식에게 이런 고역을 겪지 않게 하려고 독한 생각을 했습니다. 광복후에야 자기도 사람구실을 할수 있다는것을 알고 힘든줄을 모르고 뛰여다녔는데 또 구박을 받고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현상을 그대로 묵과해야겠는가?》

장군님께서는 김모라니를 너럭바위에 눌러앉히고 자신께서도 그옆에 앉으시였다.

《그런데 부위원장동무자신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녀성들을 대담하게 등용하라고 한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나라 녀성들은 2중3중의 차별대우와 구박을 받으면서 살아왔기때문입니다. 다시말해서 녀자들도 남자들 못지 않게 정권기관 사업도 할수 있고 건국에 이바지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려는데 있습니다. 조선녀성의 참혹한 과거를 체험한 모라니동무와 같은 녀성들을 녀성해방의 선두에 세우는데 그 정책의 목적이 있다는것입니다. 그런데 부위원장동무가 오늘 우리한테 이야기하는 말을 들어봐도 자기가 얼마나 중요한 력사적사명을 지니고있는지 잘 모르는것 같습니다.》

김모라니는 자책감에 사로잡혀 몸둘바를 몰라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소견이 좁아서 장군님의 높은 뜻을 받들지 못했습니다.》

비록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김모라니의 말에는 굳건한 결심이 어려있었다. 그의 검실한 얼굴에도 새로운 결의가 차넘치기 시작했다.

《나는 김모라니동무가 앞으로 반드시 큰일을 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장군님께서는 확신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늦은 점심이 다 된듯 할아버님께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시는게 보였다.

《늙은분에게 공연한 걸음을 시킬것 같습니다. 이젠 내려가봅시다.》

일행은 장군님의 뒤를 따라 산비탈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이께서는 김모라니를 가까이에 불러 《봉건》이란 말을 듣는 최로인네도 수해를 입었는가? 아들이 군대에 입대한후 로인의 동향은 어떠한가? 수해로 해서 올해 알곡수확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것 같은가? 대령군의 형편을 자세히 알아보시였다. 그이께 답변을 드리고난 김모라니는 무슨 이야기를 꼭 하고싶은 모양이였으나 감히 그럴 용단을 내릴수 없는듯 그저 바재이기만 했다. 장군님께서 독촉을 하시였다.

《부위원장동무, 우리에게 할말이 있으면 이야기하시오. 일이 잘되자면 속을 툭 터놓고 이야기하는것이 제일 좋습니다.》

모라니는 그이의 재촉을 또 한번 받고서야 송구한 빛으로 말씀드렸다.

《이번에 수해를 입은 농민들에게 현물세를 감면해주실수 없겠는지··· 저도 나라의 량곡사정을 대체로 알고있습니다만 사태에 묻힌 밭도 있구 물이 쓸고지난 농토들이 있어서 일부 농가는 현물세를 물고나면 래년에 농사를 짓는데 영향을 받을것 같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기셨던 장군님께서는 서기장을 돌아보며 흔연한 안색으로 말씀하시였다.

《서기장동무생각엔 어떻소? 아직 나라의 식량사정이 어려운것은 사실이지만 인민정권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요. 회의를 했다고 해서 이보다 더 좋은 방도를 찾을수 있겠소? 오늘 인민위원회에 들어가거든 곧 재해지역의 실태를 료해하는 사업에 착수하시오. 수해를 입은 농민들의 현물세를 감면해줍시다.》

그이께서는 방금전까지 주눅이 들고 기가 꺾인 모습이던 모라니가 이런 제기를 한것을 못내 만족해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