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1

 

제 5 장

1

 

김모라니는 청사에 들어서기전에 신발의 흙을 나무꼬챙이로 긁고 뒤등에 발린 흙은 저고리를 벗어서 비벼털었다. 늦장마가 휩쓸어내린 모래를 질통으로 져나르다 위원장을 만나려고 들어오는 길이였다. 위원장은 어지러운 옷차림을 한 일군이 자기 사무실에 들어오는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문을 열기전부터 얼굴에 미소를 그리며 위원장실에 들어서서 머리를 숙였다. 얼굴을 수굿하고 문건을 들여다보던 위원장은 눈을 치뜨고 김모라니를 바라보긴 했지만 표정의 변화는 전혀 없었다. 앉으란 말도 없다. 찾아올 때마다 이런 랭담한 표정이다. 오늘도 또 《생각해봅시다.》 한마디의 말을 뒤에 달고 위원장실에서 나가야 할것 같다.

속을 터놓고 그 무슨 협의를 한다는것은 생각도 할수 없는 일이여서 김모라니는 머리속에 굴리던 말을 직통배기로 털어놓았다.

《위원장동무도 알고있겠지만 지금 온 나라에서 애국미헌납운동이 벌어지고있지 않습니까?》

위원장은 김모라니가 무슨 말을 하려고 찾아왔는지 대뜸 짐작한듯 설핏한 눈섭을 미간에 모으며 얼굴을 찌프렸다. 귀찮은 용건을 또 들고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내가 시작을 떼겠습니다. 우리 군에서도 땅을 분여받은 농민의 도리를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원장은 한참동안 책상우의 문건에 눈길을 떨구고 앉았다가 권연을 꺼내물고 담배연기를 날렸다. 탁상우에 가로누운 석양빛을 가운데손가락으로 어루쓸며 중얼거리듯 말한다.

《우리 대령에서 헌납운동이 가능할것 같소? 애국미로 바치자면 벼가 많아야겠는데 우리 대령군농민들이 주식으로 삼고있는건 조나 수수, 피 같은것뿐이요. 우리 군에서 벼를 여유있게 갖고있는 농가가 몇이나 될것 같소? 봉건을 설교하는 최로인네나 부위원장네 집엔 남아돌아가는 벼가 있겠는지 모르지만 우리 군의 대부분의 농민들은 뙈기논에서 몇줌의 벼를 거두어들이는게 전부가 아니요. 제사나 늙은이들의 생일상에 놓을 쌀을 애국미로 내라고 할수는 없지 않소. 온 군에서 모아들였대야 벌방지대의 한 농민이 내는것보다 못할게요. 그걸 끌고 평양까지 가겠소?···》

김모라니도 위원장을 찾아오기전에 그만한것은 생각해봤다. 황소가 끄는 달구지 하나도 채우기 어려울수 있었다. 그러나 북조선의 전체 농민들이 애국미헌납운동에 떨쳐나섰는데 땅이 척박한 산간이라고 해서 가만 있겠는가. 다문 한종지, 한되박씩이라도 헌납해야 농민의 도리를 지키는것으로 되지 않는가.

김모라니는 이런 말을 하며 자기의 주견을 세워보았다.

《또 고집이군. 관개공사를 시작할 때도 대령의 강물은 물살이 급하구 장마때 물이 갑자기 불어나기때문에 관개를 할수 없다고 말하는데 고집을 부리더니 결국 어떻게 됐소? 장군님앞에서 맹세한 35정보도 태반이 모래에 묻혀버리지 않았소. 동무가 하는 일은 하나도 잘되는 일이 없다고 이야기들을 하오. 내가 동무의 처지에 있다면 수해를 입은 관개공사장이나 빨리 정리하겠소.》

김모라니는 목덜미가 꺾인듯 머리를 떨구었다. 위원장을 설복해보려던 혀끝에 매달린 말도 어느새 목너머로 잦아들었다. 위원장의 말대로 관개수로와 래년에 논을 35정보로 늘이겠다고 장군님께 결의다진 땅이 절반이나 자갈과 모래에 묻힌것은 사실이였다. 갑자기 늦장마가 들면서 례년에 없이 많은 비가 내려 강물이 범람하면서 수로를 따라 시뻘건 벌물이 쏟아져내렸던것이다. 몇달간 수많은 노력을 들인 수로가 메워지고 대령의 유일한 논고장이라고 할수 있는 평평한 땅도 적지 않게 자갈과 모래에 뒤덮였다. 산간군에서 선봉적역할을 한다고 장군님께서 높이 평가해주신 그 모든것이 졸지에 사라져버렸다.

김모라니는 어찌할바를 몰라 며칠간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수로며 논고장을 돌아보다 결심을 품고 일떠섰다. 장군님께서 기술자들까지 보내주신 관개공사인데 손맥을 놓고 나앉아있을수 없었던것이다. 원래 경험이 없어 수로를 잘못 쨌던것이니 공사를 새로 하는셈치고 물길을 다시 파자! 논에 뒤덮인 모래와 자갈은 질통으로 져내고 달구지로 실어내자! 그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며 일떠나 농민들에게 수해복구에 나설것을 호소했다. 우선 논에 덮인 모래와 자갈을 제거하는 역사에 달라붙었다.

현장에서 살다싶이 하면서 모래와 자갈을 등짐으로 져내는데 애국미헌납운동에 떨쳐난 농민들의 미거가 매일과 같이 신문에 소개됐다. 올해도 김제원은 놀라운 수량의 애국미를 나라에 바쳤다. 농민들이 헌납한 애국미로 학교도 짓고 농기계임경소도 내온다고 한다. 그런데 대령에서는 아직 한명의 농민도 애국미를 헌납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없다. 과연 이래서 되겠는가? 김제원처럼 많은 낟알을 헌납하지 못한다고 해도 농민이 해야 할바를 해야 할게 아닌가. 생각던 끝에 김모라니는 자기가 이 운동의 선두에 설 결심을 했다. 위원장을 찾아들어온것은 이때문이였다.

《애들이 또 온것 같소.》

석양빛이 스러져가는 창밖을 내다보던 위원장이 말했다.

《부위원장동무는 어머니를 찾아다니는 저 애들이 불쌍하지 않소? 물론 정권기관사업도 중요하지만 어머니는 우선 애들을 돌봐야 할게 아니요. 난 부위원장동무가 갓난애에게 젖이라도 제때에 먹였으면 좋겠소. 부위원장에 대해서 농민들이 좋지 않은 말을 한다는것을 알아야 하오.》

김모라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위원장실을 나섰다. 정갱이를 몽둥이에 얻어맞은것처럼 다리가 휘청거리고 눈앞도 갑자기 회색장막이 드리운것처럼 뿌옇게 흐려왔지만 그는 이를 사려물고 청사밖에 나섰다.

인민위원회마당에서 내려다보이는 한적한 산간읍은 벌써 엷은 안개에 감싸인듯 저녁연기에 덮여있었다. 정문앞의 소소리높은 황철나무우듬지에 마지막잔광이 걸려 눈부신 빛을 뿌린다. 남순이가 아이를 업고왔다면 아마 그 황철나무밑에서 어머니를 기다릴것이다.

남순이는 황철나무밑이 아니라 군불을 때는 경비실아궁이앞에서 뛰여나오며 소리를 쳤다.

《어머니, 나 여기 있어!》

설핏한 어둠속에서 남순이의 동그스름한 얼굴이 해맑게 웃었다. 그의 등뒤에서 막내가 칭얼거린다.

《혼났지? 어머니를 찾아다니느라구··· 갑자기 의논할 일이 있어서 들어왔다.》

김모라니는 위원장한테서 받은 타격을 잊어버린것처럼 웃음어린 얼굴로 말하며 남순의 여윈 등에서 남철이를 안아올렸다. 아궁옆에 앉아 막내에게 젖을 물리고나서 종이에 싼 누룽지를 남순이의 손에 쥐여주었다.

《나 배고프지 않아. 철이에게 줘.》

《남철이는 젖을 먹지 않니···》

《어머니 먹어.》

일곱살잡힌 계집애가 벌써 어머니를 생각한다.

《난 사무실에서 먹었다. 너나 먹어라.》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이려고 공연한 말을 한다는것을 아는듯 남순이는 누룽지쪼박을 떼내서 어머니의 입에 살그머니 넣어주었다.

《오늘은 우리하고 같이 집에 가나?》

《일이 있어서 오늘도 집에 빨리 들어갈것 같지 않구나.》

《할머니가 또 성을 내겠네.》

《괜히 그래. 나이를 자셔서···》

《그렇지만 자꾸 욕하는거 뭐. 난 어머니하고 같이 집에 갔으면 좋겠어.》

《래일은 빨리 들어갈게. 오늘은 일이 있어서 그래. 할머니에게 저녁을 지으라구 해라. 너도 도와주구.》

젖을 다 먹인 모라니는 남순의 여윈 등에 막내를 또 업혀주었다. 어머니와 함께 집에 가지 못하는것이 서운해 고개를 떨구고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어린것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서있는 모라니의 머리에 문뜩 위원장의 말이 떠올랐다. 집에 들어가 아이들 건사나 하는것이 좋지 않을가?··· 부질없는 생각인줄 알면서 거기에서 도무지 벗어날수가 없었다.

녀성간부들을 대담하게 등용해야 한다는 장군님의 말씀이 계시여 군녀맹위원장사업을 하던 김모라니가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직무에 옮겨앉은것은 이해 초봄이였다. 학교문전에도 가보지 못한 자기같은 촌아낙네에게는 군녀맹위원장도 분에 넘친 자리인데 정권기관에서 책임적인 사업을 하게 되다니?··· 북조선에 수립된 민주제도가 참말로 로동자, 농민들을 위한 사회제도라는것을 그는 심장으로 느꼈다. 그는 장군님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우선 알곡을 더 많이 생산하는 일에 달라붙었다. 뭐니뭐니 해도 먹는 문제가 풀려야 산간농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킬수 있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관개공사도 새 영농법도입도 이렇게 돼서 시작한 일이였다. 그런데 그가 하는 일을 처음부터 시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령강은 다른 강과 달라서 관개를 못한다, 봉건쟁이령감태기가 무슨 새 영농법을 알고있겠는가, 설사 알고있다고 해도 인민정권기관에서 상투쟁이를 찾아가 머리를 숙이겠는가?

그가 하는 일을 시비하며 이런 말을 돌리는 사람들은 무식한 촌녀자가 치마바람을 일구며 돌아가는것을 아니꼽게 여기기때문이라는것을 김모라니도 알고있었다. 문맹퇴치를 할 때도 성인학교 교원을 할 때도 걸음마다 시비와 뒤소리를 들어왔다. 까막눈에서 벗어난지 며칠이나 된다고 야학선생을 한다는건가? 아낙네라는거야 시부모와 남편공대나 잘하고 자식을 잘 키우면 그만이지 성인학교란 또 뭔가? 무던히도 치마바람을 일쿠기를 좋아한다··· 김모라니는 누가 뭐라고 하든 야학과 성인학교운영을 중단하지 않았다. 북조선에서 제일먼저 문맹을 퇴치한 모범군의 영예를 쟁취한것도 이런 노력의 결과였다. 평양에서 열리는 큰 회의에 참가하여 표창장과 함께 상품도 수여받았다. 지금도 그의 집에는 액틀에 넣은 표창장이 벽에 걸려있으며 칠이 벗겨진 낡은 농짝안에는 그때 상으로 받은 한자루의 호미가 소중하게 보관되여있다. 회의가 끝난후 시상을 받은 10여명의 농민들은 만경대에 나가 장군님의 조부모님의 일손을 도와드렸는데 김모라니는 바로 그 호미를 손에 쥐고 김보현할아버님과 리보익할머님과 함께 밭에서 일했다.

만경대조부모님께서는 광복후에야 글눈이 튼 아이에미가 성인학교 교원에 군녀맹위원장을 하며 맨 선참으로 문맹퇴치군의 영예를 쟁취했다고 얼마나 기뻐하시였던가.···

그는 읍거리의 변두리에 산을 등지고 서있는 조그마한 목조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그 건물에 여러 근로단체 군위원회들이 들어있었다. 그는 군녀맹사무실을 찾아들어갔다. 위원장을 둘러싸고 웃고 떠들며 무슨 문제인가를 의논하던 일군들이 앞을 다투어 의자를 내주며 앉기를 권했다. 명랑하고 의욕에 넘친 그들의 모습을 본 모라니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여오르고 머리속의 무거운 번뇌도 바람에 날린듯 건듯 사라졌다.

《녀맹에서 주동이 돼서 애국미헌납운동을 전개하지 못할가요?》

그는 녀맹을 찾아온 까닭을 말하기 시작했다.

《대령군과 같이 땅이 척박한 고장에서는 낟알을 절약해서 헌납운동을 할수밖에 없을것이니 아주머니들과 련계가 많은 녀맹에서 이 운동을 틀어쥐고 나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요.》

낟알을 직접 다루는 사람은 밥을 짓는 아낙네들이다. 한집에서 주부가 한끼에 한숟가락씩 절약하면 한주일에 한사발의 낟알이 나온다. 올해 수해를 입은 농가를 제외하고 천수백여호의 농가에 이런 식으로 낟알을 모으면 능히 한달구지이상의 애국미가 마련될수 있다. 대령군에서는 조나 수수가 주식이니 그것도 좋다. 애국심이 발동되면 많은 땅마지기를 가지고 농사를 짓는 집에서는 한되박의 낟알을 애국미로 바치는것과 같은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을것이다.

《우리 집에서 제일먼저 애국미를 내겠어요. 남순이 아버지의 이름을 애국미헌납자명단에 제일 처음 써주어요. 종자와 시부모님 생일날 대접할 쌀을 내놓고 모두 애국미로 내겠어요.》

녀맹일군들이 놀란 빛을 띠우고 모라니의 웃음어린 얼굴을 마주봤다.

《그렇게야 어떻게?···》

위원장이 주저하는 기색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왜요? 장군님께서 분여해주신 땅에서 거두어들인 낟알인데 무엇이 아깝겠어요. 8. 15전에는 지주놈한테 구박을 받으면서 농사를 지었는데 지금은 구박이 있어요, 욕과 매질이 있어요? 건국을 위해 한해농사를 지은것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아요. 수수하고 조가 있으니 해춘이 될 때까지는 견딜수 있어요. 어때요? 녀맹에서 앞장에 서서 한번 일을 해보지 않겠어요?》

꾸밈없는 김모라니의 말과 열의에 감동된 녀맹일군들은 주먹을 부르쥐고 일어섰다. 문맹퇴치군의 영예를 제일먼저 쟁취한 대령군이 애국미헌납운동에서도 본때를 보이자! 그들은 부르짖으며 조직사업을 짜고들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벌써 녀맹일군들이 면을 향해 떠났다. 각면에서 일제히 열성녀맹원회의가 진행됐다. 매 동네에서 녀성들의 모임이 열렸다. 김모라니는 낮에는 수해입은 현장에서 질통을 지고 밤이면 가까운 마을의 녀맹회의에 참가해서 열변을 토했다.

··· 야학에서 글눈이 터서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게 되고 편지를 읽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까막눈이던 녀성들도 사람구실을 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나라도 까막눈이 되면 또다시 남의 나라에 먹히우게 됩니다. 그래서 장군님께서는 종합대학을 세우고 부모들이 혁명가라고 해서 길가의 조약돌처럼 버림을 받았던 유자녀들이 공부할 학원을 세울 결심을 하신것입니다. 그런데 나라에는 학교를 세울만한 돈이 없습니다. 장군님의 이 근심을 재령나무리벌농민들이 풀어드릴 결심을 한것입니다.··· 우리 대령군에서도 올해에 두명의 학생이 종합대학에 갔습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 갈것입니다. 그 동무들은 지금 교사가 없어서 림시건물에서 공부를 합니다. 그 학생들이 앞으로 민족간부가 돼서 고향에 돌아와 어째서 대령에서는 대학건설을 위해 한되박의 애국미도 내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우린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모두가 애국적열의를 발휘해서 애국미를 헌납합시다!···

김모라니가 메고나간 중태에 쌀자루를 들고와서 낟알을 쏟아넣는 녀인들도 있었다. 다음날 조와 수수같은 낟알을 서너말, 지어 한가마니씩 남정의 지게에 얹어 군녀맹에 보내는 녀인들도 있었다. 최로인네는 벼를 두가마니나 헌납했다.

한달구지의 낟알도 거두지 못하리라던 당초의 예상을 뒤집어엎고 힘꼴이나 쓸만한 황소 다섯마리를 골라잡아 멍에를 메워야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다섯채의 달구지에 애국미를 무드기 싣고 출발하기 전날 김모라니는 위원장을 찾아들어갔다.

《이번 애국미헌납운동은 녀맹에서 주동이 돼서 한 일인데 평양에 몇번 가본 내가 가야 한다구 해서 래일 아침에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방에 들어온 부위원장을 쳐다보지도 않고 새파랗게 성이 난 얼굴로 이날도 탁상우에 가로누운 가을해빛을 손가락으로 쓸고앉았던 위원장이 짓씹어내는듯한 말로 대꾸를 했다.

《동무는 참 무서운 녀자요. 내 충고를 듣지 않고 그 길로 녀맹을 찾아가 충동을 했더군. 그건 아무래도 좋소. 명색상 애국미헌납운동을 했으니까. 그런데 수해를 입어서 올해도 넘기기 어려운 농가에서까지 헌납이요, 뭐요 하면서 량곡을 받아냈으니 동무는 래년도 농사를 어떻게 할 생각으로 그런짓을 했소?》

《수해를 입은 농가는 이번 헌납운동에서 제외됐습니다.》

《제외가 뭐요? 이 위원장이 허재빈것 같소?》

탁상우의 해빛을 쓸던 손이 딱 멎었다. 김모라니의 얼굴을 쏘아보는 눈길이 랭혹할만큼 차거웠다.

《내 이런 편향이 생길가봐 우리 군에서는 재령나무리와 같이 헌납운동을 할수 없다고 했던것이요. 평양에 가는건 동무 마음대로 하오. 그러나 그전에 잘못 진행한 헌납운동은 바로잡아야 하오.》

모라니는 빨리 군녀맹에 가서 위원장의 말대로 헌납운동이 잘못 진행됐는지 알아봐야 했다.

《만일 그러한 편향이 있다면 바로잡겠습니다. 래일 새벽에 출발할 예정이니 다시 인사를 할 기회가 없을것 같습니다.》

군녀맹에 가서 따져보니 수해를 입은 농민들가운데 헌납운동에 참가한 집이 더러 있기는 했다. 본인이 간청하다싶이 해서 얼마 안되는 낟알을 내기는 했지만 여유량곡이 아닌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섯개의 달구지에 싣기좋게 맞추어놓은 낟알가마니를 이제와서 풀어헤칠수도 없었다. 김모라니는 열댓집에 반환할 낟알을 자기 집에서 내기로 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군내인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애국미를 실은 다섯채의 달구지는 대령을 출발했다.

 

서평양창고에서 애국미를 접수하는 량정부일군들은 말할것도 없고 이 사업에 동원된 종합대학학생들은 산간농민들이 헌납한 애국미를 각별한 기쁨을 안고 받아들였다. 비록 량은 많지 않아도 그들이 얼마나 큰 애국적열의를 발휘했는가를 알고있었던것이다. 미리 준비해놓은 려관에도 안내하고 평양시민들이 정성을 들여 마련한 음식도 려관방에 넣어주었으며 애국미를 싣고 평양에 올라온 애국농민들에게 차례지는 특별참관도 조직했다. 그것은 웅장하게 일떠서는 종합대학이나 만경대혁명학원건설장을 견학시키는 일이였다. 달구지를 끌고온 농민들은 소를 돌봐야 해서 가까운 종합대학을 택했지만 김모라니는 만경대혁명학원에 나가겠다고 했다. 지난해처럼 김보현, 리보익 조부모님과 함께 밭일을 하며 지금까지 누려보지 못한 뜨거운 혈육의 정을 체험해보고싶었으며 고무적인 말씀도 듣고싶었다.

량정부일군들이 조직해주는대로 김모라니는 몇명의 농민들과 함께 혁명학원건설장에 도착했다. 평양에서 달려나온 지원자들속에 섭쓸려 땀을 흠씬 흘리며 삽질을 하고난 그는 무명천에 싼 호미를 옆구리에 끼고 야산사이의 달구지길을 잠시 걸었다. 그 호미는 말할것도 없이 만경대조부모님과 밭일을 같이하는 행복을 지닐 때 쓰려고 농짝속에서 꺼내가지고 온것이다.

장군님께서 탄생하신 수수한 초가집옆의 고구마밭에서 어쩐지 호젓해보이는 두 늙은이가 이랑을 타고 나가며 고구마를 캐고계셨다. 강마른 몸에 뿌옇게 먼지가 낀 감투를 머리에 올려놓으신분은 김보현할아버님이 분명했으며 그옆에서 부지런히 호미를 놀리시는분은 리보익할머님일것이다. 대령산골에서 자식을 슬하에 두지 못한 외로운 늙은이들이 밭에 나와 일하는 모습과 신통히도 비슷했다.

김모라니는 밭머리에서 서둘러 고무신을 벗고 보선을 발에서 뽑아 그우에 놓았다. 한손에 호미를 들고 치마자락을 허리에 걷어붙이며 급히 조부모님곁으로 다가갔다.

《그동안 몸성히 지내셨습니까?》

김보현할아버님은 눈을 쪼프리고 김모라니를 쳐다보셨다.

《임자구만. 작년에 재령의 제원이하구 같이 왔던 김뭐라드라 좀 별난 이름이였는데···》

할아버님께서는 깊은 주름이 얼기설기 파고든 얼굴에 인정이 흐르는 웃음을 띠우고 잠시 기억을 더듬으시였다. 지난해 모범농민회의에서 표창을 받은 농민들을 만경대에 데리고 나온 사람이 김제원이였다.

《모라닙니다. 김모라니라고 합니다.》

《옳아. 모라니야. 제일 선참으로 문맹을 퇴치했다고 해서 상을 받은 모라니야. 이번에는 무슨 일로 올라왔나?》

《애국미를 바치러왔습니다.》

《좋은 일을 하레 왔구만. 오다가 봤지? 성안에 들어가서도 보기 어려운 덩실한 학교가 일어서는걸.··· 유자녀들이 공부할 학원이지. 우리 집 장군이 생각이 있어 세우는 혁명학원이야. 우리 집에선 애국미를 낼 형편이 못돼서 저 사람이.》

호미를 쥔 손으로 리보익녀사를 가리키시였다.

《무명을 낳아 나라에 바치기로 했는데 이걸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대동군에서 벌써 수천필의 무명을 짰어. 좋은 세상이야.》

할아버님께서는 고개를 젖히고 가슴속에서 솟구쳐나오는 흡족한 웃음을 내뿜으시였다. 김모라니는 척박한 땅에만 매달린 자신을 뉘우쳤다. 신문에서 수십만원의 돈을 바친 애국적상공인을 소개한 글을 보기도 했는데 어째서 값이 나갈만한 물건을 만들 생각을 못했는지 모를 일이였다. 대령은 옻의 산지로 유명하니 가구를 짜서 팔았더라면 더 많은 애국미를 싣고 평양에 올수 있었을게 아닌가!

올해 농사형편을 알아보던 할아버님께서 걸싸게 호미질을 하고있는 김모라니를 잠시 지켜보다가 문득 물으시였다.

《임자는 어떻게 돼서 모라니라는 별난 이름을 갖게 됐나?》

관골이 두둑한 모라니의 얼굴이 부끄럼으로 해서 불깃해졌다.

《저에게는 사실 부모님들이 지어준 이름이 없습니다.》

《이름이 없다니? 그럼 부모님을 모르고 자랐나?》

할아버님께서는 자못 놀라며 물으시였다.

《그런게 아니라 저는 태를 끊기도전에 이 세상에서 몰려날번한 녀잡니다. 저의 이름은 이웃에서 불러온 아명이 그대로 이름이 된것입니다.》

모라니는 도무지 믿기 어려운 자기의 과거를 띠염띠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축에 들지 못하는, 집도 땅도 없는 종의 딸자식으로 세상에 태여났다. 갓난 송아지가 몸을 말리는 외양간에 잇달린 헛간에서 8이나 되는 식솔이 오골거리며 살았다.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여물이 부글부글 끓는 여물가마칸이 곧 부엌이였으며 닳아빠진 밥주걱과 함께 여물을 휘젓는 나무주걱이 부뚜막우에 같이 놓이군 했다. 어머니는 지주집부엌에서 구정물에 손을 잠그고 동자질을 하다가는 들에 나가 해저물 때까지 힘겨운 농사일을 해야 했다. 거기에다 시부모와 남편, 4이나 되는 딸자식들의 오만가지 시중도 들어야 했다. 그는 그저 일에 다쫓기는, 느낌도 생각도 없는 목석과 같은 녀인처럼 보였다. 어머니의 머리에 기막힌 생각이 응어리처럼 옹치기 시작했다. 제몸에서 태여나는 계집애는 자기와 같은 고역을 면할수 없으며 참기 어려운 고생살이를 할 자식을 낳는다는것은 에미로서 자식에게 죄를 짓는것으로 된다는 생각이 머리속에 굳어졌던것이다. 또다시 배가 부르기 시작했다. 배모양으로 보아 이번에도 딸이 분명했다. 어머니는 고역을 강요당할 자식을 낳는 이런 기막힌 죄를 짓지 말아야겠다고 독한 마음을 품었다. 며칠후에 아궁앞에 짚을 깔고 혼자 몸을 풀었다. 또 딸이였다. 그는 피덩어리와 다름없는 계집애를 누데기에 싸서 토방에 놓고는 얼혼이 나간 사람모양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어머니는 밭을 뚜지며 스스로의 기막힌 《팔자》를 한탄했으며 태여나자 곧 저승으로 가게 된 가엾은 딸자식을 눈앞에 그리며 울음을 삼켰다.

《나를 원망하지 말아. 나처럼 고역살이를 할바에는 죽어버리는게 나아. 에미루서 네게 해줄수 있는건 이것밖에 없구나.···》

어머니는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남편과 시부모보다 먼저 밭에서 일어섰다. 이미 숨을 거두었을 딸자식을 땅에 묻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한것이다. 에미의 젖꼭지를 물어보지도 못한 자식을 다시한번 안아보고싶었으며 애기를 묻으며 어머니의 간절한 소원을 하늘을 향해 빌고싶었다.

《고생을 모르고 이승에서 살지 못한 몫까지 저승에서 오래 살게 해주옵소서.···》

정신이 이상해진 사람모양 흐릿해진 눈으로 휘청거리며 외양간 가까이에 이른 어머니는 야무진 애기의 울음소리에 소스라쳐 놀랐다. 그는 아이를 누데기에 싸서 내놓았던 토방을 향해 허둥지둥 달려가 이웃아낙네의 가슴에 안겨있는 어린애를 빼앗아안고 얼굴과 머리, 빨간 몸에 얼굴을 비비며 오열을 터뜨렸다.

《너만은 고생을 시키지 말자구 했는데, 너만은 고생을 시키지 말자구 했는데.···》

어머니는 흐느껴울며 부르짖었다.

계집애의 목숨을 구원해준것은 복슬강아지였다. 강아지는 토방에 놓여있는 피덩어리와 같은 갓난애의 몸뚱이를 부드럽고 따스한 혀바닥으로 핥아주어 피부의 감각기능을 살려주었으며 살아날수 있는 첫 징조인 오줌을 눌수 있게 했다. 동네사람들은 태여나면서 곧 죽음의 나락속에 몰려들어갈번한 이 불행한 어린애에게 《모라니》라는 아명을 달아주었다.···

김보현할아버님께서는 물주리를 물고 이랑에 걸터앉아 부위원장의 기막힌 말을 들으시였다.

《임자는 태여날 때에 벌써 왜놈의 세상에서 백성들이 어떤 설음을 안고 사는지 알았구만.···》

할아버님께서는 긴숨을 내쉬며 무거운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한뉘 모진 슬픔도 체험하고 험한 일도 해온 할아버님이였지만 모라니의 말을 들으니 가슴이 에이는듯한 심정이시였다.

《임자가 왜 그렇게 열성을 내서 배우지 못한 아낙네들의 글눈을 틔워주었는지 이젠 알겠어. 이 좋은 세상을 아낙네들이 빨리 알게 하자구 해서 그렇게 했겠지.》

할아버님께서는 썩살이 두텁게 앉은 손바닥에 대고 설대를 두드려 재를 털고는 대통에 담배를 꾹꾹 눌러담으시였다.

《사람이란 궂은일, 마른일을 다 겪어봐야 세상리치를 알아. 우리 장군이 백성들을 잘살게 하려고 애쓰는것도 설음이란 설음, 고생이란 고생을 다 겪어봤기때문이야. 나이로 말하면 내가 곱절이나 더 살았지만 고생으로 말하면 우리 장군이 더 많이 했지. 임자는 이것을 알구 우리 장군을 잘 받들어야 해.》

할아버님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겨 말씀하시였다.

《하느라고는 하는데 일이 잘되지를 않습니다. 아는것도 적고 소견도 좁아서 장군님께 걱정을 끼쳐드릴 일만 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하는 일이 다 잘되기만 하겠나. 그렇다면 곤난이란 말이 생겨나지도 않았게. 장군은 사람이 알아야 할것중에 제일 큰것이 나라없는 설음이구 사람이 겪어봐야 할것중에 제일 소중한것이 가난속에서 고생을 해보는것이라고 했어. 이건 무슨 말인가 하면 나라없는 설음을 알아야 조국을 사랑하게 되구 사람이 고생을 해봐야 인정이 고마운줄도 알고 우리 백성들을 잘살게 하려구 뼈심을 들여서 일을 한다는 뜻이야. 그런즉 임자야말로 그런 사람이라구 할수 있지 않나. 장군의 뜻을 받들어서 일을 잘하라구.》

《알았습니다.》

김모라니는 할아버님의 말씀이 너무나 뜨겁고 살뜰해서 목메인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점심전에 떠나려고 밭에서 일어섰다.

《별루 일을 도와드리지 못하면서 마음만 아프시게 해서 안됐습니다. 전 돌아가겠습니다.》

할아버님께서는 펄쩍 뛰며 모라니의 손을 붙드셨다.

《때식을 앞두고 객손을 떠나보내는 인심이 어디에 있나? 집사람이 먼저 집에 들어가는것으로 봐서 임자의 때식도 끓여놨을거네.》

할머님께서 치마폭에 고구마를 담아들고 먼저 밭을 떠나신것은 자기의 점심때문이였다는것을 김모라니는 그제야 알았다.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을것인데 할머님께서 손수 자기와 같은 촌녀자에게 때식대접을 할 생각을 하시다니.··· 부위원장의 가슴속에 뜨거운것이 고였다. 그는 할아버님한테 이끌리다싶이 하여 만경대고향집 사립문안에 들어섰다. 할머님께서는 고구마를 삶아놓고 모라니를 기다리고계셨다. 조부모님께서는 부위원장을 귀객처럼 안방에 앉게 하시였다. 할머님께서는 그앞에 삶은 고구마그릇과 풋김치를 놓아주며 물기에 젖은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난 임자의 말을 듣고 울었네. 나도 자식을 낳아보고 또 앞세우기도 했네만 임자 어머니가 그런 독한 생각을 품자니 오죽했겠나. 그건 자식을 앞세워본 어머니만이 알수 있어. 어머님은 지금도 앉아계신가?》

《광복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런, 좋은 세상을 보지 못하구 가셨구만. 눈을 감을 때도 임자생각으로 가슴이 아팠을거네.》

할머님께서는 눈굽을 저고리고름으로 훔치시였다. 김모라니는 인정깊은 이 초가집에서 며칠 묵으며 마음을 위안받고싶었지만 수많은 일거리와 자식들이 기다리고있으니 그렇게 할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