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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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에워싼 북악산, 인왕산은 말할것 없고 시내 한복판에 오붓이 솟아있는 남산의 봉우리마다에서도 진곤색 밤하늘을 불살라버릴듯한 드세찬 불길이 치솟아올랐다. 봉화였다. 봉화라고 하지만 미군의 대형화물차에서 감쪽같이 떼낸 두세짝의 다이야를 산봉우리의 장송우에 올려놓고 휘발유를 부어서 불태우는 봉화여서 소방차들이 싸이렌을 요란스럽게 울리며 현장으로 내달리고 경찰대가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지는 봉화투쟁이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미군사령부앞에서 닷새나 앉아버티기를 하던 롱성자들이 슬금슬금 철수하기 시작했다. 허헌도 영등포 빈민촌의 한끝에 자리잡은 고삭은 양철지붕을 떠인 조순옥의 집에 돌아왔다. 롱성자들이 철수하면 반드시 보복이 뒤따를것이며 특히 주동자색출에 혈안이 되여 날뛸것이라고 하며 각당, 각파 지도자들에게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지만 그자신은 순남이옆에 단 하루밤이라도 앉아있고싶어 조순옥이네 집에 돌아왔다. 순남이는 롱성자들이 철수하기전에 누이와 함께 저녁어둠을 리용해 미군사령부앞을 떠나 빈민촌으로 돌아왔다. 리병남, 류영준이 계속 치료비를 대주겠다고 했지만 오누이가 외롭게 병원에 들어가있다가는 테로를 면할수 없을것이여서 집에서 의사회원들의 왕진을 받기로 했던것이다.

밤장막이 내리덮인 빈민촌의 질척거리는 골목길을 걸어가는 허헌은 전에는 감수할수 없었던 정취를 느꼈다. 삶의 보람을 느낀 통쾌한 웃음, 생기에 넘친 드높은 말소리를 들을수 있었으며 날렵하고 경쾌한 빈민촌사람들의 몸놀림이 눈앞에 보이는것 같았다. 시커먼 구멍이라고 할수밖에 없는 하모니카집의 외짝문앞에서 사람들이 모여앉아 통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왁자지껄 떠들고있었으며 공동수도앞에 늘어선 아낙네들도 생활을 귀찮아하는 수심에 잠긴 모습에 짜증을 내는것이 아니라 생기에 넘친 말을 웃음속에 주고받고있었다. 분명 삶의 보람이며 미래를 확신한 사람들의 웃음이였으며 말소리였다. 보호를 해주는 젊은이들한테 뒤지지 않을양으로 걸음을 다그치고있어 그들의 말을 듣고있을수는 없었지만 《미국놈들이랑게 움쩍을 못해.》, 《시위를 하니께로 로동자도 사람값에 들던게로.》, 《미국놈 반대하는 사람들이 하 그렇게도 많다는걸 잉젠 알았당이.》, 《하하···》, 《호호···》 이런 말과 웃음소리를 여기저기서 들을수 있었다. 허헌도 밤하늘을 쳐다보며 가슴속에서 터져나오는 통쾌한 웃음을 한바탕 터뜨리고싶었다. 말년에 이르러 처음으로 보람찬 일을 한것 같았다.

조순옥의 어머니는 또 어떤 모양으로 허헌을 맞이했던가! 조순옥은 시위를 주도한 인물은 원쑤놈들의 보복에 대처해서 이전의 거처와 아지트를 옮겨야 한다는 지시를 받은터여서 대문안에 들어서는 허헌을 보고 당황도 하고 놀라와도 했지만 어머니는 방에서 달려나와 이마가 땅에 닿을만큼 머리를 깊이 숙였으며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그를 마주보면서 목멘 소리로 무슨 말부터 먼저 해야 할지 몰라했다.

《순남이가 글쎄 이부자리를, 그것두 글쎄 비단이부자리를, 글쎄 우티만 해두 몇벌이나 되는지··· 선생님, 고마워요.》

이런 말을 중언부언하는 어머니를 부엌에 떠밀어넣은 조순옥은 당황한 빛이 력력한 얼굴로 허헌을 마주봤다.

《상급당의 지시도 있었고 마동삼씨도 반드시 원쑤놈들의 탄압이 있을거라고 하던데요.》

《순남이는 어떻소? 그새 상처가 나빠지지 않았소?》

근심스러워하는 조순옥의 말을 숫제 무시해버리며 허헌은 물었다.

《그 사이에 병원보다 더 좋은 치료를 받았습니다.》

순남이는 역전병원에서 다리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의사회원선생님들이 두세분씩 붙어서 치료를 해주셨어요. 리병남회장님도 매일 찾아오시구요.》

롱성장에서도 후더운 치료를 계속 받은 모양이였다.

《순남이는 지금 방에 있소?》

《네.》

《내 좀 들어가보겠소.》

조순옥은 허헌이 잠시 문병을 할양으로 찾아온줄 안것 같았다. 허헌은 신발을 벗고 방등불이 가물거리는 방에 들어갔다. 그를 본 순남이는 기쁨에 넘친 외마디 탄성을 내지르며 웃몸을 일으키다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다. 순옥이 어머니가 말한 그대로 순남이가 깔고 누운 요자리는 이 집의 가장집물과는 어울리지 않는 두툼한 보료라고 해야 할것이였다. 이불도 번쩍거리는 비단잇을 씌운것이다. 아마 시위에 참가한 녀대생쯤되는 비교적 유족한 집의 녀성이 들고나온 이부자리인것 같았다. 순남이는 기절할번한 아픔을 벌써 잊어버린 명랑한 웃음이 차넘치는 얼굴로 머리맡에 쌓인 옷가지들을 가리켰다.

《할아버지, 이게 다 내 우티예요.》

소년은 열두살 어린이의 동심을 되찾은것 같았다.

《난 이번에 떡이랑 빵이랑 실컷 먹었어요. 어머니는 이게 다 할아버지 덕택이라고 했어요. 난 할아버지가 하라는대로 다 하겠어요. 벌써 공부도 시작했어요.》

순남이는 머리맡에 놓인 손때가 밴 소책자를 손더듬으로 찾았다. 순남이는 집에 돌아오자 곧 공부를 시작한 모양이였다.

《난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래 계셨으면 좋겠어요.》

어딘지 모르게 서글픔이 낀 눈매로 동생을 지켜보고 앉았던 조순옥이 순남의 말을 가볍게 나무랐다. 허헌은 그 말을 귀결에 흘러들으며 이불을 젖히고 수술한 다리를 내려다봤다.

《할아버지, 보지 말아요. 난 이번에 대학생누나한테서 두다리를 쓰지 못하는 사람이 유명한 사람이 됐다는 말을 들었어요. 열심히 공부를 할래요.》

열두살짜리 어린것이 괴로와할 늙은이의 심정을 생각하다니? 더구나 그의 목소리에는 지금도 웃음과 희망이 어려있지 않는가. 이번 시위투쟁을 통해 자기의 꿈이 실현될수 있다는것을 확신한 모양이였다.

허헌은 심저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격정을 누르기 어려웠다. 순남에게 확신을 안겨준것만으로도 이번의 시위투쟁은 뜻있는것이였다고 해야 할것이다. 허헌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신심을 잃지 말거라. 나는 너의 확신이 헛된것으로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 이 결심이 얼마나 뜻깊은것인지 이야기를 해도 너는 알지 못할게다.》

허헌은 소년의 가냘픈 손을 찾아 힘있게 꽉 부여잡으며 소리내서 말했다.

《순남아, 넌 자기의 신심을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내 말을 명심하면 너는 절대로 불행한 일생을 보내지 않을게다!》

《나도 알아요, 할아버지! 잃지 않겠어요!》

소년은 그저 기쁨에 취한 얼굴이였다.

허헌은 이날 참으로 오랜만에 만시름을 잊고 깊은 잠에 들었다. 뒤울안으로 향한 유일한 창문인 쌍바라지를 찬란한 아침빛이 물들일무렵 문득 눈을 떴다. 피곤을 말끔히 털어버린 상쾌한 기분으로 기지개를 늘어지게 켰다. 심신이 날듯이 가벼운 행복한 순간이였다. 문득 다급한 발자욱소리가 뒤울안에서 들리는가싶더니 조순옥이 쌍바라지밑에서 숨가쁘게 속삭였다.

《선생님, 미국놈이 왔습니다. 순남이를 찾습니다.》

《몇놈이나 왔소?》

《지금은 미군장교하구 녀자통역, 이렇게 둘입니다. 문병을 하려고 왔답니다. 그렇지만 이런 아침에 찾아온걸 보면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선생님은 자리를 옮기시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문병을 왔다니까 미국놈들이 달려들어도 그놈이 간 다음이겠지. 좀더 두고보자구.》

아직 위급한 정황이 닥쳐온것도 아닌데 공연히 쑥스러운 행동을 하고싶지 않았다. 조순옥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조급한 심정인듯 싶었지만 미군장교를 내버려둘수도 없어 발자욱소리를 죽여가며 총총히 쌍바라지밑에서 멀어져갔다.

양키가 외짝대문안에 들어서는 구두발소리가 들렸다. 조순옥의 어머니가 뛰여나가기는 했으나 미군장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수 없어 허둥대는 모양이였다.

《방안이 어지러워서···》

아주머니가 당황해서 중얼거리는 말을 녀통역원이 군화를 벗지 않고 방에 들어가도 된다는 말로 번졌다. 군화를 신은채 아래방에 들어서는 발자욱소리가 들렸다.

《여긴 우리가 등을 붙이고 자는 방바닥이예요! 신을 벗어요, 신을! 그래 이 집이 당신들에겐 마구간으로 보여요?》

갑자기 조순옥의 째지는듯한 격분에 찬 부르짖음이 들렸다. 통역이 뭐라고 나직한 목소리로 변명을 한다. 삿자리가 어지러워서 미군장교는 군화를 벗을수 없다는것 같다.

《삿자리가 어지럽지 않으면 그럼 우리가 으리으리한 장판방에서 사는줄 알았어요?》

순옥이가 또다시 녀통역원에게 쏘아붙였다. 통역이 앵돌아진 목소리로 장교님은 순남에게 줄 선물을 갖고 왔다느니, 당신들이 요구하는 사죄와 보상을 할 생각으로 백화점에서 카스테라를 사왔다느니, 아주머니가 구두를 신은채 방에 들어서도 좋다고 해서 군화를 벗지 않고 들어왔다느니 하고 빈정거리는 투로 종알거렸다.

《사죄하려고 왔으면 정말 잘못을 비는 마음으로 행동해야 할것이 아니예요. 그런데 군화를 신고 방안에 들어와요? 우리 어머니가 언제 군화를 신고 들어와도 좋다고 했어요. 방안이 어지럽다고 했지··· 그리고 또 카스테라가 뭐예요? 카스테라가. 내 동생을 비루먹은 강아지보다 못하게 생각하는 당신들의 행동이 참을수 없어 쵸콜레트쪼각을 내던진것이 뭣이 잘못이예요. 이것이 반항이예요? 설사 반항을 했다면 어쨌다는거요? 당신들에게 그런 모욕을 가했다면 권총을 빼들지 않았겠어요? 나가요! 우리는 이런 사죄를 받아들일수 없어요. 조선사람을 멸시하는 이런 사죄를 받아들일수 없단 말이예요.》

이렇게 부르짖은 조순옥은 어머니한테 울음을 내쏟으며 웨쳤다.

《어머니는 무엇이 모자라서 순남이를 죽여버릴 생각을 한 저 사람들이 군화를 신고 들어오는걸 그대로 보고있는거예요. 아들이 모욕당한것이 분하지도 않아요? 왜 미국사람이라면 덮어놓고 머리를 숙이냐 말이예요? 어머니는 자식의 다리를 뺏긴것이 분하지도 않는가 말이예요?》

오열을 터뜨리며 부르짖는 딸의 말에 어머니도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난 방안이 너무 어지러워서··· 그저···》

《우리가 가난하게 사는것이 우리의 죄예요? 우리의 죈가 말이예요? 왜놈들이 아버지를 빼앗아가구 저 사람들이 들어와서 공장을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이 모양이지 우리가 일을 하지 않겠다는거예요? 게을러빠진 사람들이예요? 가난하게 사는것도 분한데 자식을 병신으로 만든놈에게 무엇때문에 머리를 숙이는거예요? 예, 어머니!》

순옥이는 자기쪽에서 모욕을 받은듯 되돌아서는 미국놈을 토방밑에까지 따라내려서며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통렬하게 절규했다.

《어린애의 다리를 짓뭉개놓고서도 우릴 비루먹은 강아지만큼도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가 이런 수모를 그대로 받고있을줄 알아요? 반드시 복수할 날이 있을테니 그런줄 알라요. 당신들이 군화바닥으로 짓밟은 삿자리에서 그대로 등을 붙이고 살 조선사람이 아니란것을 알란 말이예요!》

순옥의 부르짖음은 아침대기를 뒤흔들며 계속 울려퍼졌다.

구태여 카스테라따위를 사들고 오지 않는다고 해도 자기가 사죄를 하러 왔다면 머리를 조아리며 고마와할줄 안 미군장교였던것 같다. 그놈은 순옥이의 맵짠 항의에 참을길 없는 모욕을 느낀듯 볼따귀살을 실룩거리며 잔인한 눈길로 앙바틈한 처녀를 훑어내렸다. 순남이란 거지꼴의 소년과 그를 손수레에 싣고 나온 녀공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와야 한다는 상관의 명령이 없었다면 벌써 권총을 꺼내들었을것이다. 그는 통역의 손에 들려있는 카스테라통을 뜨락에 내동댕이치고는 찌그러진 외짝문을 걷어차며 조순옥의 집을 나섰다. 미국놈의 오만한 행동을 통분해하면서도 조선민족의 강직한 기상을 순옥이를 통해 본것 같아 끌어오르는 격정을 누르기 어려워하던 허헌도 간소한 조반을 끝내고는 곧 고삭은 양철지붕을 떠인 이 집을 떠났다.

언제나 뻐스형마차에 올라타군 하던 옹기점 뒤울안에서 허헌은 마차에 올랐다. 한강다리를 향해 덜커덩거리며 달리는 마차에 몸을 맡기고 앉았던 그는 경호를 위해 컴컴한 뻐스형마차에 함께 오른 청년들이 일시에 수군거리는 말소리를 듣고 내리감았던 눈을 떴다.

《무슨 일이요?》

《미국놈들이 우리 공장을 습격하러 오는것 같습니다.》

《엉?···》

허헌은 청년들이 자리를 내주어 합판에 뚫린 구멍에 얼굴을 붙이고 앞을 보았다. 불도젤을 앞세우고 10여대의 군용차가 먼지를 휘말아올리며 달려오고있었다. 뻐스형마차를 다급히 길옆에 세우게 했다. 그는 가슴언저리를 매만지며 불도젤과 경찰을 가득히 처실은 군용차가 소란스런 소리를 내면서 옆을 스쳐지나 허헌이 방금 빠져나온 바로 그길로 굽어드는것을 보았다. 그는 이날 아침 조순옥의 집에 찾아든 미군장교란자가 사실에 있어 빈민촌을 초토화하고 미군사령부앞에서 롱성투쟁을 한 로동자들을 철창속으로 끌어가기 위해서 온놈이였다는것을 알았다. 허헌은 마차안의 청년들에게 마을에 돌아가 가족을 구원하고 로동자들을 피신시켜야 한다고 더듬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청년들은 입을 꽉 다물고 움직일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미국놈들이 탄압을 하자는건데 빨리 행동하게! 어서!》

그러나 청년들은 여전히 눈길을 내리깔고 입술을 짓씹고있을뿐이다. 철덩어리같은 침묵만이 마차안에 가득찼다.

《이것은 나 개인의 지시가 아니라 조직의 요구라는것을 알아야 하네. 빨리 움직이게!》

그래도 청년들은 망두석이 되여버린듯 침묵으로 대답할뿐이다. 그들도 미국놈들이 피비린내나는 탄압을 감행할양으로 한강다리를 넘어왔다는것을 직감했지만 허헌의 옆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임자네들이 무엇때문에 지금까지 나를 보호해줬나? 임자네들이 지시를 받아야 할 상급이기때문이 아닌가? 시간이 급하네. 빨리 움직이게. 임자네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마을에 가서 희생을 최소한으로 막는거네. 마차에서 빨리 내리게.》

그제서야 청년들은 마차에서 뛰여내려 빈민촌으로 달려갔다. 허헌은 끝까지 자기옆에서 떠나지 않는 건장한 청년을 한명 데리고 길옆의 밋밋한 산둔덕을 향해 올라갔다. 아지트로 리용되고있는 산중턱의 외딴집에 들어가려던 그는 그앞의 검푸른 로송밑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지금쯤 무지막지한 탄압이 감행되고있을 빈민촌이며 이미 숨죽인지 오랜 굴뚝이 솟아있는 공장을 바라보았다. 공장은 경영을 중단한지 오랬지만 로동자들은 공장에 나가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조금씩 만들어냈으며 회합도 가지군 했다. 시커먼 연기가 빈민촌에서 타래쳐올랐다. 울부짖으며 원쑤놈들과 싸우는 아녀자들이며 실그러지고 연기에 그을은 집들을 불도젤이 짓뭉개며 돌아가는 모양이 눈앞에 보이는것 같았다. 땅을 치며 원쑤를 절규하는 늙은이, 녀인들의 부르짖음이 들리는듯싶다. 몇방의 총성이 한적한 교외의 정적을 깨뜨리며 울려퍼졌다. 저놈들이 우리 사람들을 죽이는구나! 실그러진 집이나마 깔아뭉개면 추위가 닥쳐오는 이때 빈민촌사람들이 어떻게 겨울을 나겠는가. 그래 목숨을 걸고 항거하는 사람들을 적들은 가차없이 쏴갈기는 모양이였다. 허헌은 우들우들 떨리는 주먹으로 자기의 가슴을 쳤다.

그러나 허헌은 원쑤놈들이 어떤 잔혹한 만행을 감행하고있는지 다는 알지 못했다.

조순옥은 원쑤놈들의 탄압을 예견해 피해를 최소한으로 감소시킬양으로 투쟁지휘부로 리용되고있는 합숙의 한 방에 막 들어선 참이였다. 바로 이때 군용차들이 공장정문을 짓부시며 달려들었다. 적재함에서 훌떡훌떡 뛰여내린 검정개들은 눈에 띄는 녀공들을 무작정 붙잡아서 우선 옷을 발가벗겼다. 알몸뚱이가 된 녀공들은 두팔로 젖가슴을 가리우고 쪼그리고 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한패의 경찰이 발가숭이 된 수십명의 녀공들의 엉뎅이를 구두발로 걷어차서 한데 모아놓는 사이에 또 다른 한패는 공장구내며 사무청사에 짓쳐들어갔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습격이여서 조순옥이 그저 황급히 합숙방들을 뛰여다니며 원쑤놈들과 결사전을 벌릴 대오를 편성하고있는데 누구인지 그의 손을 무작정 움켜쥐고 합숙계단을 뛰여내려가며 웨치는것이였다.

《남자들은 녀공들이 피신할수 있게 경찰을 저지하시오! 공장뒤는 비였소! 녀공들은 뒤로 빠지시오. 뒤로!》

마동삼이였다. 원쑤놈들이 반드시 보복을 감행할것이라고 말은 했지만 조순옥이 자기의 말을 알아들었을것 같지 않아 방직공장에 온 그였다. 그는 경찰대와 거의 동시에 공장에 들어섰다. 애인이 합숙의 지휘부에 있다는 말을 듣고 달려왔다. 그는 조순옥을 끌고 공장뒤로 달려가며 분개해서 부르짖었다.

《조직적인 투쟁이외에는 무의미한 싸움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지 않았어? 이런 외딴곳에서 경찰과 싸워가지군 무의미한 희생을 낼수밖에 없다는것도 몰라! 미국놈들을 내쫓는 투쟁에 력량을 집중해야 한단 말이야!》

창고들이 늘어선 뒤마당에 이른 마동삼은 허접쓰레기, 찢어진 포장지, 판대기쪽들이 쌓여있는 페품적재장에 조순옥을 밀어넣으며 준절하게 일렀다.

《총창이 가슴에 박혀두 소리를 내선 안돼! 순옥이가 공장밖으로 나가선 안되는것은 조직을 책임졌기때문이야!》

마동삼은 공장뒤로 달려온 녀공들을 담장을 뛰여넘을수 있게 조를 편성해주고나서 바람처럼 담장을 날아넘으며 뒤를 돌아봤다. 로동자들을 공장에서 끌어낸 경찰은 아주 미쳐버린 야수모양 남녀를 가리지 않고 아래도리를 우악스럽게 내리벗겨서는 녀공들의 무리속에 차넣군 했다. 이미 인간이기를 그만둔 망나니들을 죽이고싶은 충격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는 준엄한 혁명투쟁속에서 이미 수년간이나 단련된 사람이였다. 자신의 임무는 성시백을 보호하고 련락을 취해주는데 있었다. 영등포방직은 애인인 조순옥이 이 공장에 있어 방조를 주고있을뿐이였다. 그는 공장밖에 나가 전차정류소에 서서 포악한 검정개들이 공장을 떠나기를 기다렸다. 경찰대는 백수십명의 로동자들을 군용차에 처싣고는 불도젤을 앞세우고 살기띤 모습으로 한강다리를 향해 되돌아갔다. 마동삼은 또다시 담장을 날아넘어 공장에 들어갔다. 조순옥을 밀어넣었던 허접쓰레기들을 헤쳤다. 애인은 없었다. 그는 미칠것만 같았다. 지휘부로 리용하던 합숙방에 뛰여올라갔다. 온통 깨지고 부러진 의자와 책상이 나딩굴고 모포들이 어질더분하게 여기저기 널려있었으며 짚을 쑤셔넣었던 침대깔개들은 칼로 갈기갈기 찢겨있었다. 어디에도 순옥은 없었다. 순옥이도 체포됐는가? 마동삼이 뛰여다니며 순옥이를 찾고있는데 머리칼이 헝클어진 녀공이 구석의 합숙방에서 비칠거리며 걸어나와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오열을 터뜨렸다.

《책임자가 체포됐소?》

순옥의 행처를 알아보던 마동삼의 물음이였다.

《집에 갔어요.》

마동삼은 어깨를 들먹이며 목놓아우는 녀공의 호곡소리를 듣고 조순옥의 집에 어떤 참혹한 재난이 덮씌웠는지 능히 짐작할수 있었다.

···잠시후 건장한 체구에 좀해서는 랭철성을 잃지 않는 마동삼이 비칠거리는 걸음으로 허헌이 있을 아지트를 향해 밋밋한 산둔덕을 올라왔다. 옷도 얼굴도 온통 먼지투성이였으며 검실한 낯빛인 기름한 얼굴은 경련이 인듯이 푸드득푸드득 떨렸고 눈은 피발이 서서 붉게 충혈되여있었다. 허헌은 아직도 로송밑에 서있었다. 허헌앞에 다가선 마동삼은 침착성을 되찾은 무게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은 이 자리를 빨리 뜨셔야 합니다. 우리가 선생님이 계실 곳을 준비해놨습니다. 이건 정향명씨가 선생님을 위해서 취한 긴급한 조칩니다.》

성시백은 허헌의 신상이 아무래도 근심스러워 당분간 그의 안전을 책임질 생각을 한것 같았다.

《자넨 지금 어디서 오는 길인가?》

허헌의 물음이였다.

《방직공장에서 오는 길입니다. 도중에 순옥이네 집에 들렸습니다.》

《그래 순옥이는 무사한가? 순남이도 별일이 없구?》

《순옥이는 무사합니다. 순남이는···》

불쑥 마동삼은 마가을의 풀숲에 무너지듯 주저앉더니 든든하고 실팍한 어깨를 드놓으며 가슴속에서 터져나오는 울음을 짓씹어냈다.

《선생님, 원통합니다! 정말 원통합니다!》

마동삼은 틀어쥔 커다란 주먹으로 땅을 내리치며 부르짖었다.

《그럼 순남이가 잘못됐다는건가?》

《세상에 이렇게도 잔인한놈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이 안에서 아우성을 치는데 불도젤로 아주머니두 순남이두 집두 깔아뭉갰습니다. 아-》

마동삼은 메마른 누런 풀을 쥐여뜯으며 우황이 박힌 황소처럼 절통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순옥이 어머니두 순남이두 잘못됐단 말인가?》

《아주머니는 불도젤이 짓뭉개구 순남이는 내려앉는 지붕에 깔려서 죽었습니다. 죽어서도 책을 한권 그러안고있었습니다.》

천진한 동심을 되찾았던 순남이,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어 비록 불구의 몸이 됐지만 절망이란것을 모르고 앞날을 살아나갈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그 어린것이 죽다니··· 세상에 이렇게도 무도하고 이렇게도 잔인하고 이렇게도 절통한 일이 하늘이 굽어보는 인간세상에서 어떻게 발생할수 있는가?··· 로송의 터실터실한 보굿을 그러잡고있던 허헌은 소의 영각과도 같은 외마디소리를 내지르고는 산비탈을 비칠거리며 뛰여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