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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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헌은 평양을 떠난지 한주일만에 낡아빠진 화물차에 처실은 푸대자루속에 누워 서울에 돌아왔다. 미아리고개밑에서 내린 그는 왕궁의 위엄을 돋구느라고 드높이 쌓아올린 창경원의 높은 담장밑을 걷고있었다. 문뜩 뒤에서 뚜거덕거리는 말발굽소리가 들렸다. 마차형뻐스, 아니 뻐스형마차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광복의 산물이 여윈 말에 이끌려오고있었다. 미군정청 적산관리처에서 관리하는 공공건물에서 뜯어낸 합판으로 소형뻐스모양의 궤짝을 만들어 마차우에 올려놓은 서울의 기괴한 교통수단이다.

허헌은 손을 들었다. 뻐스형마차는 그를 서울중심가에서 얼마쯤 벗어난 룡산역부근의 청파동으로 싣고갔다. 여기에 그의 집이 있었다. 그는 운전수이자 차장이기도 한 마차군의 손에 돈 백원을 놓아주면서 집앞의 번잡한 소로길에 들어서게 했다. 혹시 평양에 가있는 사이에 집에서 그 어떤 변고라도 있지 않나 해서 합판에 뚫어놓은 차창을 대신하는 조그마한 구멍을 통해 자기집 2층쪽을 바라보았다. 여름에도 문을 꼭꼭 닫고 지내는것이 이제는 버릇으로 된 집인데 2층의 문들이 활짝 열려있었다. 허헌은 안경을 벗어들고 로안증이 찾아든 눈을 비비고나서 자기 집을 다시한번 바라보았다. 분명히 횡포한 폭력이 마구 뜯어메치고 걷어차서 문들이 온통 떨어져나가고 부서져나간 2층이였다.

(테로를 당했구나! 내가 평양에 갔다는것을 냄새맡았는가?)

허헌은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털썩 떨어져 내리는것 같은 감을 느꼈다. 그는 마차를 돌려세웠다. 대로에 나서는 길모퉁이에 헌 모자로 얼굴을 반쯤 가리운 중키의 청년이 궤짝을 받친 모판에 양담배며 자질구레한 일용잡화를 몇가지 널어놓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틀림없이 호위를 겸한 서기의 모습이였다. 허헌은 허수한 중국료리점앞에 마차를 멈추고 궤짝속에서 빠져나왔다. 서기도 마차에서 내려서는 허헌을 알아보고 료리점에 들어가있으라고 눈짓을 했다.

허헌은 료리점의 으슥한 구석에서 그동안에 집에 들이닥친 재난을 서기한테서 자세히 들었다. 사흘전에 경찰이 달려들어 안해인 류덕희로부터 시작해서 갓난애기인 막내까지 여섯식구모두를 룡산경찰서에 끌어갔다는것이다.

《우리 집만 당했나? 다른분들도 당했나?》

《김창준목사하구 녀맹위원장 류영준아주머니를 찾아가 봤는데 그 집들은 그때까진 무사했습니다. 김창준목사는 군정청에 항의하겠다구 그리스도교련맹사람들을 찾아떠나는걸 봤는데 그후에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무엇때문에 가족들을 끌어갔는지 알아보지 못했나?》

서기는 무슨 말을 할듯 허헌을 쳐다보았으나 곧 눈길을 떨구었다. 그의 눈빛에는 분명히 불만이 어려있었다. 어째서 서기의 눈빛이 저런가? 가족들이 경찰에게 련행된것을 자기의 탓으로 여기는것 같은데 어째서 이러한 생각을 하는가? 김규식과 련계를 가지는것을 뜨아해하던 서기였으니 혹시 이번 일을 그와 접촉한탓이라고 생각하는것이 아닐가? 그렇다면 김규식이 자기와의 비밀접촉을 누구에게 고해바쳤다고 봐야 할것인데 그를 이런 루추한 인간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수 없었다.

《자네 밖에 나가서 마차를 붙들어주게. 내 아무래도 인사동에 가봐야겠네.》

남대문통에 민전의 간판을 내건 건물이 한채 있었지만 거기에는 책상이나 의자들을 몇개 들여놓았을뿐 의장단성원들이나 상무위원들의 중요모임은 빠고다공원뒤의 낡아빠진 인사동의 목조건물에서 주로 진행해왔다. 거기에 가면 민전의 현재 형편을 알수 있을듯싶었다. 허헌은 다시 뻐스형마차에 올라앉았다.

종로네거리에서 동대문을 향해 달리던 뻐스형마차가 문득 빠고다공원앞에서 멎었다. 합판벽밖에서 울려오는 격노한 부르짖음, 악을 쓰는 웨침, 대오를 지휘하는듯한 고함···

승객들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렸다.

《데모요?》

《패싸움을 하는것 같소.》

《패싸움이 뭐요? 어제밤부터 좌하구 우가 붙어 돌아가는데···》

허헌은 지르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어제밤부터 싸우고있다니? 그렇다면 다른 민전간부들도 습격을 받았다는 말이 아닌가? 그는 밖을 내다보는 승객들의 다리사이를 비집고나가 어스크레한 궤짝에서 무작정 뛰여내렸다. 일신의 안전을 도모해야 투쟁을 계속할수 있다는 리성적인 사고는 벌써 그의 머리에 없었다. 민전을 인정하면 《좌우합작》에 동의하겠다고 김규식에게 전제조건을 내댔는데 가족을 체포하고 민전을 습격하다니? 정녕 그런 전제조건을 내댄것이 사달을 가져온것이 아닐가? 어떻든 민전간부들이 습격을 당하고있다는것을 알면서 그대로 스쳐지날수는 없었다.

민전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한다! 의장단성원들중에서도 제일 첫머리에 이름이 놓이군 하는 자기가 아닌가. 전차, 자동차, 뻐스형마차, 인력거, 자전거들이 혼잡을 이룬 그 사이사이에서 처절한 피투성이싸움을 공포에 질려 지켜보는 녀인, 무거운 시름에 잠겨 바라보는 중년사나이, 통쾌한 구경거리를 만난듯 껌을 질근질근 씹으며 뭐라고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군 하는 미국놈들··· 그사이를 헤치며 허헌은 인사동회관에 접근할수 있는 골목길에 들어섰다. 검정경찰바지에 보위색와이샤쯔소매를 걷어붙인자들이 피칠갑을 한놈, 머리가 터진 놈, 정갱이가 부러진자, 갈비뼈라도 부러진 모양 비명을 내지르는 놈들을 빠고다공원입구에 꽁무니를 들여댄 군용화물차에 올려던지고있었다. 터지고 부러지고 깨진자들을 끌어올리는 놈들은 그 외모를 보아 분명히 경찰들중에서 훈련된자들이였다. 그러니 민전을 짓뭉개는데 아직은 군대나 경찰이 공식적으로는 개입하지 않고있다는것을 의미했다. 테로단을 동원하여 민전간부들의 모임장소를 습격한 모양이였다.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이고 몽둥이를 든 폭력배들이 인사동회관에 육박해들어간다.

《이 거랑말코같은 빨갱이들아!》

《죽여라! 죽여라!》

온통 유리창이 깨져나간 회관안에서 똑똑히 알아들을수 없는 힘찬 웨침이 울려나왔다. 뒤이어 악악, 와와 고아대는 폭력배의 고함을 짓누르며 울려퍼지는 《적기가》···

 

높이 들어라 붉은 기발을

그밑에서 굳게 맹세해

 

박살난 유리창을 열어젖히고 돌멩이, 기와쪼각, 잉크단지··· 손에 쥘수 있는 모든것을 폭력배들의 머리우에 내려던진다. 청사에 몰려들어가던 폭력배들이 머리가 터지고 갈비뼈가 부러져 죽어가는 소리를 내지르며 길우에서 딩군다. 푸른 잉크, 붉은 잉크벼락을 맞은자들이 해괴한 적청색귀신의 모상이 되여 입안에 튀여든 잉크를 뱉아내느라고 구역질을 한다. 이 순간 청사안에서 몽둥이를 든 작업복, 교복차림의 청년학생들이 사태처럼 쏟아져나와 테로단을 짓조긴다. 수백의 폭력배와 민주청년, 민주학생들이 어울려 싸우는 처절한 격투···

《아- 저애들이, 아까운 저애들이···》

허헌은 하늘을 향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원쑤놈들을 저주하고싶었다. 교실과 공장, 가두에서 학업에 열중하고 부모처자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일을 해야 할 학생들과 청년들이 목숨을 내건 이런 싸움을 해야 하다니··· 허헌은 자기와 같은 나이든 정치인들이 제구실을 못해 이런 싸움이 터진것만 같았다. 그는 허둥지둥 민전일군들이 원쑤놈들의 습격을 받는 경우 피신을 할수 있게 준비해놓은 뒤문으로 달려갔다. 한무리의 아낙네들이 함지며 바구니, 광주리며 바께쯔를 들고 뒤문으로 빠져나오고있었다. 누구인지 허헌의 팔을 우악스럽게 거머쥐였다. 온통 땀투성이얼굴인 류영준이였다. 지난날 왕궁에 박혔던 경력탓인지 50이 넘은 나이에도 언제나 머리를 곱게 빗어넘기고 옷매가 헝클어진것을 볼수 없었던 녀맹위원장이 얼굴도 적삼도 온통 땀에 화락하니 젖고 치마자락을 허리춤에 걷어붙이고있었다. 그는 허헌을 끌고 무작정 실골목을 꿰여나갔다.

《위원장, 이걸 놓으시오. 저안에 상한 우리 애들이 있지 않겠소?》

허헌이 왼팔을 왁살스럽게 거머쥔 류영준의 손을 오른손으로 풀어보려고 안깐힘을 썼다.

《놈들이 누구를 제일 노리는지 알겠는데 여기에는 왜 오셨수?》

《저 청년들은 누가 불렀소? 체포된분들은 없소?》

《조용한 곳에 가서 얘기할테니 빨리 가시자요.》

허헌은 누구네집 뒤문인듯한 외짝문앞에 떠밀려들어갔다. 뒤마당에서 머리를 수건으로 싸맨 아낙네들, 치마자락을 허리에 걷어붙인 젊은 녀인들, 속샤쯔바람의 녀학생들 이삼십명이 주먹밥을 빚어 광주리에 담기도 하고 목욕탕안에서 밥이 무둑하게 담긴 함지를 안아내오기도 한다. 인사동사무실을 지켜 혈투를 계속하고있는 수백명의 청년들에게 밥을 지어 나르는 집인것 같았다. 허헌은 류영준에게 떠밀려 대청마루에 올라섰다. 외딴 방에 들어앉아 인사동회관을 고수하기 위한 류혈전이 시작된 경위를 듣고있는데 흰 위생복차림의 중키의 중년사나이가 방안에 들어왔다. 리병남박사였다. 허헌은 그제서야 자신이 리병남소아과병원에 와있다는것을 알았다. 리병남은 민전상임위원이기도 했지만 남조선의학협회, 과학자동맹, 인권련맹, 적십자위원회와 같은 숱한 협회, 위원회의 위원장, 부위원장직책에 있어 회의장에서 자주 만나기도 했으며 서울에서 유명한 소아과의사여서 아이들이 앓을 때 몇번 신세를 지기도 해서 잘 알고있었다. 원래 말이 적은 리병남은 페를 끼쳐 안됐다는 허헌의 인사를 겸한 말에

《뭐유.》

충청도 사투리로 한마디 대꾸를 할뿐 이렇다할 인사의 말도 없이 허헌과 마주앉았다.

《그러니까 부상당한 애들은 이 병원에 입원하고있겠습니다?》

《오늘 새벽까지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민전사무실이 가까와서 지금은 의사회원들이 많은 큰 병원에 보내고있습니다. 민전회관에도 회원들이 몇명 들어가있습니다.》

그러니 중상자들은 민전산하단체인 의사회 회원들이 압도적인 수를 차지하고있는 큰 병원들에 보내고 경상자들은 이 병원이나 현장에서 치료를 하고있다는 말이였다.

류영준의 말에 의하면 민전간부들에 대한 체포는 허헌만이 아니라 의장, 부의장들모두에게 덮씌워졌다고 한다.

《우리 집 서기는 위원장은 무사하다구 하던데 그후에라도 경찰이 찾아가지 않았습디까?》

《나라구 왜 가만두겠어요? 내놓고 욕을 하고 다니는게 나니까 나를 제일 미워하는데. 애를 받느라고 밖에 나가 있어서 화를 면했어요.》

《그렇다면 남조선녀맹을 살리기 위해서라두 위원장은 여기서 떠나야겠소.》

《선생님은 아까 왜 회관에 들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였어요? 뒤에서 밥이나 해다주구 상한 사람들을 끌어내는 일이나 하는데 내 걱정은 마세요.》

《나야 나 하나 체포되면 그만이지만 위원장에겐 남조선녀맹이란 큰 조직이 달려있지 않소?》

《허헌선생에겐 민전전체가 달려있다구 봐야 하지 않아요?》

인사동회관에 폭력배들이 달려든것은 민전에 들이닥친 위험을 놓고 민전상무위원들이 열기띤 의논을 하고있던 어제의 늦은 저녁때라고 한다. 놈들의 동향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회관주변의 학교와 가두에서 수십명의 청년학생들을 불러 경비를 세우고 회의를 하고있어서 민전상무위원들은 테로를 당하지 않을수 있었다고 했다. 그 대신에 사무실주변에서 처절한 격투가 벌어졌다. 반동들은 회관을 점거하는것쯤 우습게 알고 달려들다가 불의에 반격을 받아 수십명이 부상을 당하고 일단 물러났다. 적들이 력량을 재편성하는 사이에 회관에서 롱성을 하고있던 청년학생들이 전화로 공장과 학교에 련락을 하여 통행금지시간이 되기도전에 수백명의 청년들이 달려와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섯차례나 피의 격전이 전개되였다고 한다.

아무리 청년학생들이 목숨을 내대고 싸운다고 해도 경찰과 무력을 쥐고있는 미국놈들한테 사무실이 점령당할것은 뻔한 일이였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허헌은 문뜩 김규식을 생각했다. 민전의 합법성을 보장하는 조건에서 《좌우합작》을 고려해보겠다는 자기의 요구조건을 놓고봐도 그렇고 자기와의 비밀접촉이 문제로 되여 오늘의 사태가 발생했다고 해도 그렇고 그에게 무슨 말이든 해야 할것이였다. 허헌이 리병남소아과병원의 한방에 갇혀 두세시간 속을 태우다 이런 생각이 문뜩 머리에 떠올라 전화기가 있는 바깥방으로 나가려는데 류영준이 앞을 막으며 방에 들어가자고 했다.

《손님이 오셨어요.》

손님이란 허헌이 이미 여러번 만난적이 있는 정향명의 방조자 마동삼이였다. 성시백이 일상적으로 접촉하고있는 서울의 인사들속에 허헌도 들어있었다. 마동삼은 허헌에게 한통의 봉합편지를 전했다. 글체로 보아 딸이 보낸게 분명한 편지에는 아버지의 소원이 성취될수 있으니 아무쪼록 어려운 걸음을 다시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씌여있었다. 편지를 쥔 허헌의 손은 알릴듯말듯 떨렸다.

《아침부터 선생님의 행처를 찾았습니다. 댁도 경찰의 습격을 받고 여기도 이런 형편이니 선생님과 련계를 가질수 없었습니다. 큰길에 자동차를 대기시켜놓았으니 곧 출발하십시오.》

장군님을 만나뵙지 못하고 38°선을 넘어온 그에게 딸의 편지는 너무도 뜻밖이였다. 그가 평양을 떠날 결심을 한것은 일부 사람들의 압력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장군님을 뵐 생각을 한것이 지나친 욕망이라고 단정한 탓이였다. 김책도 허정숙도 장군님께서 평양에 계시지 않는 까닭을 말해주지 않으면서 상봉날자를 하루하루 미루기만 했다. 그런데다 허정숙은 부르죠아공화국의 총리직을 일시 차지했던 광복직후의 허물까지 들추면서 아버지의 사상이 철저하지 못하다고 까박을 붙였다. 장군님과의 상봉이 까닭없이 연기되는것은 허물이 있는 정치인인데다 견결한 공산주의자라고 할수 없는 자기의 사상탓인것 같았다. 일부 사람들이 민전이 해산당할수 있다면서 출발을 재촉하자 그는 장군님을 뵙기를 단념하고 다시 38°선을 넘기로 결심했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장군님을 만나뵈려고 한 자신을 뉘우치기도 하고 김일성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아퀴를 지으려고 한 흉중의 수많은 문제를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알수 없어 허헌은 개성교외의 아지트에서 사흘이나 번민에 휩싸여 몸져눕다싶이 했다.

그런데 자기의 허물을 들추며 까박을 붙이던 맏딸이 다시 평양에 들어오라고 한다. 혹시 김책과 딸을 섭섭하게 여긴것은 자기의 옹졸한 오해가 아니였을가? 소원이 성취될수 있다는 깊은 뜻이 담겨있는듯싶은 딸의 그 말은 장군님을 만나뵐수 있다는 뜻이 아닐가? 도저히 기대하기 어렵고 주제넘은 생각인줄 알면서도 허헌의 마음은 벌써부터 흥분으로 뒤설레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장군님을 만나뵐수 없다면 김책을 거쳐서라도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을 생각을 하고 그는 북의 방문을 결심했다.

그러나 떠나기전에 김규식에게 반드시 전화를 해야 했다. 미처 큰 병원에 보내지 못한 부상자들이 차고넘친 리박사의 치료실에 나간 허헌은 전화로 김규식을 찾았다.

《여일민선생, 선생은 다른 사람들하고도 약속을 이렇게 지키시오?》

여일민이란 김규식의 몇개의 별호중의 하나였다. 자신은 백성의 한사람일뿐이라는 뜻이였다. 허헌이 세상에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이 별호를 쓴것은 김규식의 배신을 야유라도 하지 않고서는 참을수 없었기때문이였다.

《극인이 아니시오? 약속을 이렇게 지킨다는건 무슨 말씀이시오. 내 그사이 극인을 다시한번 만나고싶어 사방에 전화도 걸고 사람도 보내봤는데 극인의 행처를 알수 없었소. 지금 어디서 전화를 거시오?》

《나는 여일민선생에게 민전이 자유롭게 활동할수 있는 합법칙성이 보장되는 조건에서 우사가 제기한 좌우합작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했소. 그런데 그에 대한 대답으로 민전간부들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소동이 벌어지고 인사동회관을 습격해서 어제 저녁부터 회관주변에서는 혈투가 벌어지고있소. 사망자, 부상자수가 수백명이나 났소. 나에 대해서는 내 행처를 알수 없으니까 갓난애까지 온 가족을 모두 룡산경찰서에 끌어갔소. 나의 전제조건을 거부하는 방법치고는 이거야 너무하지 않소.》

김규식은 허헌의 말에 분명히 당황한듯 갑자기 이말저말 조리없는 말을 주어섬기기 시작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시오? 신문에는 전혀 그런 소식이 나지 않았던데. 그래 허헌선생의 일가족전부를 련행했단 말씀이시오? 체포된 민전간부는 어느분들이시오?》

《내 지금 긴말을 할 시간이 없소. 그러니 여일민선생이 인사동회관앞에 한번 와보는것이 좋겠소. 미군정청에서 민전을 어떻게 대하는지 본후에 나는 선생과 약속한 합작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겠소. 만일 나하고 만나 합작에 대한 말을 나누고싶으면 우선 체포된 민전간부들전원을 무조건 석방하고 민전회관을 습격하고있는 경찰과 테로단을 즉시 철수시키시오. 현재는 합작에 불응이요.》

허헌은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송수화기를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