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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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한 당일에도 장군님께서는 쉬지 못하고 당중앙위원회에 나와 그동안에 제기된 문제들을 료해하고 결론을 주시였다. 심중한 문제를 처리하느라고 마음을 쓰실 때에도 불안의 그림자처럼 한가닥의 거뭇한 흑점이 얼씬얼씬 그이의 뇌리속을 스쳐지나군 했다. 아침에 헤여질 때 무슨 말을 할듯하다 그대로 묵새겨버리던 김책의 얼굴, 말하기 어려운 그 어떤 고충을 안은듯한 그 표정을 장군님께서는 머리속에서 지워버리기 어려우시였다.

아침에 비행장에서 뒤따라온것도 그 무엇인가 말하기 어려운 그것을 이야기하자는것이 아니였을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잠간 틈이 생긴 기회에 김책에게 전화를 거시였다.

《오늘은 저녁늦게까지 여기서 일을 봐야 할것 같은데 내게 할 말이 없습니까?》

아침에 헤여질 때 오늘은 당에서 일을 보겠으니 무슨 문제가 제기되면 당중앙위원회로 전화를 하라고 말씀하시였다. 이 말씀을 들은 김책은 무슨 말을 할듯한 기색이였으나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때 고통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김책의 울적한 모습이 그이의 눈앞을 스쳐지났다.

《꼭 오늘 말씀드려야 할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니 보고해야 할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말이였다.

《무슨 문제입니까?》

《허헌선생문제하구 산업국에서 있은 크지 않은 문제입니다.》

《허헌선생이 어떻게 됐다는겁니까? 가만 내 오후 첫시간에 거기로 가겠습니다. 그때 이야기합시다.》

장군님께서는 송수화기를 내려놓으시였다. 김책이 쉽게 말을 시작하지 못한 까닭을 알것 같으시였다. 뇌리속을 얼씬거리던 설핏한 검은 그림자가 순간에 매지구름과 같이 확대되여 그이의 머리속을 꽉 채웠다. 장군님께서는 허헌이 남조선 좌익의 단합을 위해 한몫을 크게 맡아주어야 할 인물이라고 굳게 믿고계시였다. 그러나 그는 보호해주지 않으면 시련의 구렁텅이에 빠질수도 있는 운명의 소유자라고 해야 할 사람이다.

허헌이 민족적량심을 무엇보다 귀중히 여기는 결곡한 성격의 소유자인것은 사실이지만 언제 음모군들에게 걸려들지 알수 없는 약점도 가지고있었기때문이였다. 광복전에 그는 《조선국민회》사건관련자들을 비롯해 3. 1운동관련자, 조선공산당사건 등 특대형사건들에 나서서 조선민족의 권리를 옹호하는 견결하면서도 량심적인 변호를 하여 세인을 경탄시켰다. 한때 신간회회장으로 추대된 때도 있었고 제네바에서 개최된 국제변호사회의에 참가하여 일제의 강도적침략과 만행을 세계에 고발하기도 했다. 수년간 감옥살이도 했으며 일제말기에는 장군님께서 파견하신 국내공작원의 고무를 받으며 조국광복을 맞이하는 마지막날까지 항거를 계속했다.

허헌에게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불과 같은 항거자들에게서 흔히 볼수 있는 약점이였다. 맞다든 불의에 격한 나머지 먼 앞날을 계략하지 못하는 성급함, 보다 효과적인 투쟁방법을 강구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었던것이다. 이런 약점으로 해서 광복직후 일생을 두고 지워버릴수 없는 일대 오점을 남겼다. 미군이 남조선을 강점하기전에 정권을 세워야 한다는 조급증에 사로잡힌 나머지 정권욕에 환장한 일부 사람들이 배후조종한 《인민공화국》의 내각총리로 취임하는데 동의했던것이다. 그후에도 구태여 끼여들 필요가 없는 일에 공연히 뛰여들어 세인의 주목을 끈적이 한두번 있었다. 이를테면 허헌은 어느때 무슨 일을 칠지 알수 없는 벌거벗은 량심적인 변호사, 정치인, 순결한 인간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 허헌을 아끼고 존중하시는것은 우선 그가 민족적량심을 무엇보다 귀중히 여기기때문이였다. 그런데 극도로 혼란된 남조선과 같은 사회는 음모가들에겐 활무대였으며 량심적인 사람들에게는 마귀의 늪과 같은곳이다. 장군님께서는 전화로 김책한테서 허헌의 신상에 그 어떤 문제가 발생한듯한 말을 듣고 당중앙위원회에서의 사업을 중단하시고 오후 첫시간에 인민위원회로 나가기로 하신것은 이런 사정때문이였다.

재글재글한 첫가을 오후의 따거운 해빛이 실내 한귀에 비쳐드는 집무실에 들어서신 김일성동지께서는 곧 김책을 찾으시였다. 김책은 장군님을 인민위원회로 오시게 한것이 마치 자기탓이기라도 한듯이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인 괴로움을 품은듯한 모습으로 집무실에 들어섰다. 장군님께서는 김책과 마주앉으시였다.

《허헌선생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습니까?》

《장군님을 만나뵙겠다고 평양에 왔다가 사흘전에 도루 나갔습니다.》

그이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비꼈다. 혹시 려운형선생에게 들이닥친것 같은 돌이킬수 없는 불행이 허헌선생에게 덮씌우지 않았는가 하는 불안도 느끼셨고 김책이 보고를 미루는것으로 보아 테로를 당해 부상을 입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한 장군님이시였다. 그런데 평양에 왔다가 자신께서 출장중이여서 되돌아나갔다니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된것이다.

《꼭 돌아가야 할 일이 있어서 떠났습니까?》

그이께서는 분렬되여있는 남조선의 좌익력량을 허헌을 중심으로 해서 단결시켜볼 뜻을 품고계시였다. 그런데 한자리에 마주앉아보지도 못하고 떠났다니 서운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런것은 아니구 우리는 장군님의 행선지를 말해줄수 없구 선생님은 그대로 기다리고있을 처지에 있지 못했습니다.》

《선생이 무엇때문에 어려운 걸음을 했는지 알아보지 못했습니까?》

《장군님을 꼭 만나뵈야겠다고 할뿐 일체 말이 없었습니다.》

그이께서는 창밖의 푸른 하늘을 내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 환갑고개의 선생이 무엇때문에 38°선을 넘을 결심을 했는가? 성시백이 그러했던것처럼 그도 민족의 전도가 근심되여 평양에 들어올 생각을 한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20여년전부터 안면을 익히고 도움을 주기도 한 김책에게 무슨 말이든 남기고 평양을 떠나는것이 정상인데 어째서 아무 말도 없이 서울에 나갔는가?··· 필시 함부로 입밖에 낼수 없는 무엇인가 심중한 문제를 가슴속에 품고 38°선을 넘은게 틀림없었다. 그의 생각을 알자면 무릎을 맞대고 마주앉는 외에 다른 길은 없었다.

《허헌선생은 꼭 할말이 있어 우리를 찾아왔을겁니다. 곧 사람을 내보내서 선생을 다시 모셔와야겠습니다. 산업국문제라는것은 어떤것입니까?》

전화로 이야기할 때는 크지 않은 문제라고 하던 김책이 자세를 바로잡은 후에도 곧 입을 열지 못했다. 말하기 어려운 심상치 않은 문제인게 틀림없었다. 한참만에야 김책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씀을 드리기 시작했다.

···산업국사업을 료해하려고 대동교를 건너갔다. 여러 부문에서 상반년총화를 진행한 후에 모두들 앙양된 분위기속에서 일을 하고있어 인민위원회로 돌아오려는데 30전의 청년이 불쑥 김책앞에 나타났다. 너무 흥분해 말을 더듬기까지 했지만 그의 이야기에는 무심히 들어넘길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 서종현과장이 강직되여 덕산광산에 내려간다고 해서 전기동력처안의 과장들이 소박한 송별회를 마련했다. 처음에는 입을 꽉 다물고 말이 없던 서종현이 동료들의 강권에 못이겨 술을 몇잔 들이키더니 혀꼬부라진 소리로 몇마디의 말을 했다. 자기따위는 어떤 취급을 해도 할말이 없는데 전호준은 아깝다, 투지에 넘친 청년일군인데다 사업능력이 있지 인정은 또 얼마나 후더운가? 거기에다 알짜배기 로동계급출신이 아닌가? 그런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는것은 조선의 불행이다. 이렇게 말한 서종현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슬이 번지르르하게 번져가는 눈언저리를 닦았다. 씨원씨원한 성미에 장군님앞에서도 속에 품은 말을 거침없이 쏟아놓던 전호준을 상반년총화회의에서 보게 된 30전후의 청년과장은 그를 좋게 생각한듯싶었다. 젊은 과장은 서종현과 함께 전호준이 피해를 입게 됐다는 이 사실속에는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것이 있는것 같다고 했다. 그는 격분해서 부르짖었다.

《한사람은 유능한 기술자이구 다른 한사람은 확고하게 계급적립장에 선 로동계급출신 간부인데 이런 사람들이 한꺼번에 피해를 입는다는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청년과장의 말이였다.···

김책은 장군님께 말씀드렸다.

《나도 뭣인가 이상한 감촉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함북도에 나가있는 지도검열그루빠책임자한테 전화를 걸어서 전호준이 지금 어떤 취급을 당하고있는지 알아봤습니다. 전호준이 관리국장으로 임명된것을 도의 책임일군들이 그닥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반영이외에는 아는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김책의 말을 주의깊이 듣던 장군님께서는 물으시였다.

《왜 전호준동무를 관리국장으로 임명한것을 좋지 않게 생각한답니까?》

《나도 그것을 물었는데 지도검열그루빠는 지금까지 이 문제에 크게 관심을 돌리지 않은것 같습니다. 함북도에 그대로 내버려둘수 없는 문제가 있는것 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함북도에서 벌어지고있는 사태란 어떤것인지 대체로 짐작할수 있었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무거운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출장기간에 제기된 문제나 처리하고 함북도에 내려가봅시다. 내 생각에는 전호준동무에게 가해지고있는 이런 현상은 현시기 특히 경계해야 할 유해로운 경향입니다. 김책동무는 서종현동무가 왜 강직됐는지 알아봐야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정준택, 허정숙을 비롯한 정권기관의 요직에서 사업하는 일군들과 함께 비행기에 오르시였다. 함북도사업을 현지지도하기 위해 떠나시는 길이였다. 예측한대로 그동안 함북도에 파견되여있던 지도검열조의 서면보고에는 중앙의 결정과 지시를 제멋대로 대하는 일부 함북도일군들의 사업이 여러군데 지적되여있었다. 전호준을 반쏘반혁명분자라고 하며 박해를 가하고있는 현상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렇다고 해서 장군님께서 이번에 함북도에 가시는것이 전호준문제 하나를 해결하기 위한것은 아니였다. 정례적인 현지지도였다. 그이께서는 평양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도들이라고 해도 정기적으로 현지에 나가 지방의 실정을 구체적으로 료해도 하고 가르침도 주시였다. 이번 현지지도는 기간공업이 집중되여있는 함북도에서 1947년도 인민경제계획수행과 자립적민족경제건설방침을 어떻게 집행하고있는지 현지에서 료해하고 지도해주시는것이 목적이였다. 이번 현지지도의 중요한 목적의 또 하나는 제일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서 훈련을 다그치고있는 함북도내 보안간부훈련소들의 형편을 개선하는데도 있었다.

청진에 도착한 장군님께서는 다른 일군들은 모두 담당한 사업장소로 보내면서도 정준택만은 자신의 전용차에 부르시였다.

《나하고 같이 회령에 있는 보안간부훈련소에 가보기요. 공장이나 광산들은 잘 알겠지만 보안간부훈련소에는 처음 가볼테니 생각되는게 있을게요.》

회령읍거리에 들어서기전 오산덕이 저 멀리 바라보이는 야산앞에 벽돌로 쌓아올린 담장이며 단층과 2층으로 된 병영의 모습들이 드러났다. 함북도의 훈련소들이 모두 그런것처럼 회령의 보안간부훈련소도 일본놈들의 병영을 리용해서 창설한 훈련소였다.

《함북도의 훈련소들을 제2훈련소라고 하는데 강건동무가 지휘하고있소. 그런데 훈련소의 형편이 여간 곤난하지 않소. 작년에 라남에 있는 훈련소에 들려봤는데 굉장했소. 소장이란 동무가 모자가 없어서 사민모자를 쓰고있었소. 강건동무가 평양에 왔을 때도 건강하지 못한 동무가 외투를 입지 못하고있었소. 후에 알아보니 밤에 병영을 나오다가 람루한 옷을 입고 우들우들 떨고있는 보초에게 제 외투를 벗어줘서 외투없이 지낸다는것을 알았소. 저기 저 훈련소는 류경수동무가 소장이요.》

장군님께서는 눈길로 앞에 보이는 불깃한 벽돌건물을 가리키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정준택동무도 만나본 일이 있겠지만 류경수동무는 불과 몇달사이에 땅크운전법을 배워가지고 땅크지휘관이 된 동무요. 유격대에 처음 입대했을 때는 기관총을 멨소.》

자동차는 벌써 정문앞에 이르렀다. 정문보초가 뭐라고 소리를 치는듯싶더니 위병소에서 체소한 지휘관과 군복이 훌렁훌렁해보이는 훌쭉한 키의 지휘관이 뛰여나왔다.

강건과 류경수였다.

《우리가 온다는것을 김책동무가 알려준것 같소.》

김책은 장군님께서 떠나신 후 제기되는 문제를 처리하려고 평양에 남아있었다. 류경수가 정문앞에 멎어선 자동차에 앉아계시는 장군님께 거수경례를 올려붙이고는 차문을 열었다. 영접보고를 드린 강건이 그이의 넓은 품에 뛰여들기라도 할것처럼 장군님의 손을 부여잡았다. 류경수도 그이의 손을 부여잡고 흔드는데 몇삼년만에 처음 만나기라도 한것처럼 기뻐했다.

《청진에서 쉬구 래일이나 오실줄 알았는데.》

강건이 밝게 웃으며 웨쳤다.

《래일까지 오시지 않으면 청진으로 마중나갈 생각이였습니다.》

《그러니까 아침부터 위병소에 나와서 기다렸겠구만?》

《김책동무한테서 9시경에 평양을 출발하셨다는 전화가 있었습니다. 그래 급히 여기에 오니까 류경수동문 청진에 나갈 준비를 하고있는게 아닙니까.》

《작년에 왔을 때 라남에만 들리구 여기엔 오지 못했으니까 날 데려올 생각을 했겠지? 그렇지 않소?》

《제가 어떻게 모셔오기야 하겠습니까. 그렇지만 떼를 써볼 생각은 했습니다.》

《그럼 자랑거리가 많은 모양인데 들어가보자구.》

《장군님, 사열을 먼저 받으시지 않겠습니까?》

류경수가 장군님의 안색을 살피며 간절한 소원을 담아 제기를 했다.

《사열이라? 그러니까 열병행진을 준비했다는거겠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한개 대대력량으로 사열식을 준비했습니다. 우리 군대도 이젠 정규무력이라고 할수 있는데 영접절차를 지켜야 할게 아닙니까.》

장군님께서는 잠간 생각에 잠기시였다.

《그건 훈련소를 돌아본 후에 보자구. 류경수동무도 우리가 인사를 받자구 부대를 찾아다니지 않는다는걸 알지 않소. 우선 무기고부터 보자구.》

류경수는 얼마간 실망한 기색이였으나 김일성동지를 곧 무기고로 안내했다. 앞으로 신입대원들을 더 많이 받아들일 예정으로 보총이며 수류탄, 몇개정량의 탄알, 박격포중대를 편성해보려고 박격포탄까지 질서정연하게 무져놓았다. 다음엔 식량창고로 발걸음을 옮기시는데 어째서인지 류경수는 무기고로 그이를 모실 때처럼 활기에 넘친 모습이 아니였다. 식량창고에 들린 그이께서는 반쯤 비여있는 어둑시그레한 창고안을 둘러보시였다. 쌓여있는 식량가마니앞으로 다가가 손으로 쿡쿡 눌러보기도 하신다.

《창고원을 부르시오.》

어느새 류경수뒤에 붙어섰던 훈련소부직간부가 창고원을 찾았다. 그이의 모습을 뵙고싶어 그 어디 가까운 곳에 있음직한 창고원이 도무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저기 콩가마니뒤에 있을게요. 아직 군복을 입지 못해서 나서기 부끄러워하는것 같은데 괜찮으니 오라고 하시오.》

장군님께서는 어느새 콩가마니뒤로 숨어버리는 한 병사의 모습을 보아두셨던것이다. 무명바지저고리에 무명으로 지은 모자, 헌 지하족을 신은 중키의 병사가 부직간부에게 이끌리다싶이하며 장군님가까이로 거춤거춤 다가왔다. 군대의 외모를 갖추지 못한 차림새인 병사를 보시는 순간 그이의 온 얼굴에 느긋한 웃음이 퍼져나갔다. 뜻밖에도 함북도의 북쪽 한끝 회령에서 평북도의 대령군에서 만나본 청년을 대하게 되셨던것이다. 비상한 기억력으로 잠간 만났던 사람이며 이름을 오래동안 잊지 않으시는 그이께서는 주눅이 든 모습으로 앞에 선 병사가 서툰 솜씨로 그린 관개공사전망도앞에서 잠간 이야기를 나눈 긴머리태를 잔등에 늘이고있던 바로 그 청년이라는것을 대뜸 알아보시였다. 입대하게 된 동기며 고향에 계신 부모의 안부도 묻고싶으셨지만 지금은 장군과 병사간의 군률을 지켜야 할 자리였다. 그이께서는 명령을 하달하는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창고원동무, 이 주간의 주식물출고량을 말해보시오.》

장군님의 말씀을 들은 병사는 그이께서 자기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생각한것 같았다. 하루에도 수십명을 대하실 장군님께서 지나는 길에 잠간 만난 자기따위 촌놈을 어떻게 다 기억해두실수 있겠는가. 최성근은 회령훈련소에 오점을 찍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듯 얼굴을 곧추 들었다. 때가 낀 바지옆에 두손을 딱 붙인 자세로 보고를 드렸다. 쌀 얼마, 콩 얼마, 수수를 몇% 섞어서 출고를 했으며··· 소대나 중대쯤은 능히 지휘할것 같은 절도있는 목소리였다. 석달전에는 봉건구습을 등에 걸머진 시대의 락오자란 생각으로 해서 얼굴을 들지 못하던 그, 김모라니부위원장의 독촉을 받고서야 인사를 차리던 어리숙해보이던 산골청년이 신식수학용어를 써가며 보고를 하는 말을 들으니 그이께서는 만족한 웃음을 금치 못하시며 3개월이란 기간이 결코 짧은 시일이 아니란 느낌이 드시였다. 이것이 민주기지의 성장속도이며 우리 인민의 발전속도일것이다.

《현재 훈련소 급식인원은 몇명이요?》

류경수에게 물으시는 말씀이였다. 류경수는 훈련생들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것이 제 잘못이기나 한듯이 긴장한 표정에 무거운 음성으로 보고를 드렸다.

《창고원동무, 이달에 접수한 량곡의 종류와 수량을 보고할수 있겠소?》

《전사 최성근, 보고할수 있습니다. 쌀 1t, 콩 26t 500kg, 수수 15t 700kg, 현재 재고량은 15일분···》

그이께서 잠간 암산을 해보니 훈련생들은 규정량의 70%, 그것도 대부분의 량식은 콩과 수수를 공급받고있었다. 그이께서는 그늘진 안색으로 어둑시그레한 창고 한구석을 잠간 바라보시였다. 최성근의 발전속도로 보아 류경수는 하달된 요강에 기초해서 훈련을 다그치고있는게 분명한데 량식조차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못내 마음이 괴로우시였다.

《소장동무, 식량을 더 끌어들일수 있는 방도가 없겠소?》

《앞으로 100%로 급식시키겠습니다.》

류경수는 장군님의 괴로움을 덜어드리고싶어 급히 말씀드렸다.

《우리는 배고픈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있는 사람들이 아니요. 훈련생들은 아직 전투속에서 단련되지 못한 동무들이구 민주기지를 지키기 위해 집을 떠나서 총을 든 동무들인데 어떻게 해서든 배불리 먹이고싶구만···》

그이의 음성은 처연하기까지 했다. 언제 창고안에 들어왔는지 장군님뒤에 서있던 황순희가 불쑥 앞으로 나섰다.

《장군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산에서 싸울 때는 콩죽이면 상음식이 아니였습니까. 제 매일 병실을 찾아다니면서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때 어떤 고생을 이겨냈는지 말을 해줍니다.》

장군님께서는 황순희의 자그마한 손을 잡고 더욱 작아진듯싶은 그의 동글납작한 얼굴을 굽어보시였다. 조국에 개선하자 곧 유격대군복을 보안간부훈련생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병실에서 남편 류경수를 도와 전하사들과 함께 생활하고있는 녀투사, 훈련소식당에서 전하사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니 식당에서 해주는 그 보잘것 없는 식사마저 배고파하는 훈련생들에게 주어버릴 때가 많을것이다.

《고맙소, 황순희동무. 병사들과 같이 훈련소식당에서 죽을 먹는다는 말을 들었소. 그렇지만 앞으로 소대를 찾아다니면서 콩죽이면 상음식이였다는 말은 하지 마오. 그것은 어디까지나 혁명군대의 혁명의식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것을 말해줄 때 필요한것이요. 우리야 일제놈들의 포위속에 있었으니까 할수 없이 그런 생활을 했지만 우리의 주권이 있고 우리의 령토가 있는 민주기지에서 무엇때문에 우리 병사들을 고생시키겠소. 풀뿌리를 캐먹다나니 김책동무도 강건동무도 위병을 앓지 않소. 안길동무도 그렇구. 1947년도인민경제계획을 수행하면 우리 경제가 2배로 발전한다, 식량도 30만t이 더 생산된다, 그때에는 쌀밥을 규정량대로 공급받을수 있고 고기도 먹을수 있다, 이렇게 사실자료를 가지고 말해줘야 하오. 말을 가지고 허기진 배를 채울수는 없소. 배고픈것하고는 타협할수 없는것이 사람이요,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때 배고픈것을 몰랐는가? 어떻게 해서든 훈련생들이 앞날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금년을 이겨내게 해야 하오.》

창고원은 자기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 콩가마니뒤로 사라지려고 했다.

《최성근동무, 어딜 가오? 할 이야기가 있으니 여기에 있소.》

창고원은 부드러운 미소가 어린 장군님의 얼굴을 마주보며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언제 입대했소? 아버님은 입대를 찬성했소?》

병사는 장군님의 물음에 답변을 드리지 못하고 머리를 떨구었다. 알고계셨구나! 장군님께서 모르실수 없다는것을 어째 생각하지 못했는가. 《봉건》이란 말을 듣는 아버지를 둔 대령군 학봉리의 머리태를 드린 청년으로 되돌아간듯 최성근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러니까 아버님 모르게 입대했구만.》

지금은 군률을 지켜야 하는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라 사사로운 이야기를 나누고있다는것을 말해주려는듯 그이께서는 호방한 웃음을 터뜨리시였다.

《아닙니다. 부위원장동무가 찬성해주었습니다. 제가 머리태부터 잘라버리겠다고 하니까 결심을 잘했다고 하면서 입대도 승인해주었습니다.》

김모라니부위원장이 최성근아버님의 승인도 없이 서당공부를 하던 이 청년을 입대시킨것 같았다.

《입대한 후에 아버님께 편지를 올렸소?》

최성근의 얼굴에는 장군님께서 자기의 심정을 리해해주시기를 바라는 애원이 어렸다.

《편지를 하지 않으면 아버님이 걱정하시지 않겠소. 래일이라도 편지를 하오.》

《들었습니다.》라고 답변을 드릴줄 알았던 병사가 입을 꾹 다물고 서있기만 했다. 류경수가 급한 성미 그대로 한마디했다.

《편지 한장 쓰는게 무에 힘들어 그러오? 병사는 <들었습니다!> 이 말 한마디만 대답할줄 알아야 하오.》

《가만있소. 서당공부를 적지 않게 한 동무인데 그걸 모르겠소. 편지를 할수 없는 사정이 있는것 같은데 그걸 우리에게 말해줄수 없겠소?》

자애에 넘친 장군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최성근의 입이 열렸다.

《편지를 하면 아버님은 몰라도 어머님이랑 누이동생은 찾아올겁니다. 그런데···》

창고원은 혀끝에 매달렸던 말을 도로 삼켜버렸다. 도무지 뒤를 이을 생각이 없는듯 입을 꾹 다물고 서있다. 류경수가 안타까운 나머지 뭐라고 또 말하려는것을 장군님께서 손세로 막으시였다.

《알겠소. 어머니나 누이동생이 찾아와서 집에서 입고 온 바지저고리바람으로 콩가마니를 메는걸 볼것 같아 편지를 못하겠다는거구만···》

《면회를 오면 저희들이 군복을 입은 동무들하구 옷을 바꿔입혀서 면회를 시킵니다.》

이런 말을 하는 부직간부를 돌아보는 장군님의 눈길에는 순간 노여움이, 남의 군복을 입고 어머니나 동생들을 만나는 병사의 부끄러움을 리해하지 못하는 일군에 대한 힐책이 번쩍이였다.

정준택은 장군님의 시선에 한순간 비낀 그 노여움과 힐책이 자신의 가슴에 날아와 박히는것 같았다. 보안간부훈련생들이 어려운 형편에서 훈련을 하고있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어째서 그것을 자기가 풀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가? 콩을 닦아먹고 초신에 바지저고리를 입은 외모로 민주기지를 지키기 위한 전투훈련을 다그치고있는 병사들이 있다는것을 왜 알지 못했던가.

창고를 나선 장군님께서는 강건과 류경수를 돌아보며 말씀하시였다.

《나는 동무들이 준비한 사열을 받을수 없소. 사열을 받는다는건 인사를 받는다는걸 의미하는데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하는 내가 어떻게 인사를 받겠소. 규정된 급식량을 제대로 공급하고 군복을 다 입혔을 때 다시 와서 사열을 받겠소.》

청진으로 돌아가는 차중에서 무거운 생각에 잠기시여 창밖을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 문뜩 정준택에게 물으시였다.

《국장동무, 회령분소를 돌아보니 생각되는게 없소?》

《선차적으로 관심을 돌려야 할 부문에 관심을 돌리지 못했다는것을 알게 됐습니다.》

《훈련소들을 도와주어야겠소. 건국로선은 무력의 안받침이 없이는 관철될수 없소. 이것을 알아야 하오. 나는 군복을 입지 못해 집에 편지를 쓰지 못하는 동무가 있다는걸 알았을 때 가슴이 터지는것 같았소.》

《제가 잘못했습니다. 상반년중에 증산된 물자를 보안간부훈련소들에 돌려서 빠른 시일내에 훈련소의 생활을 개선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시창 저멀리 공장굴뚝들이 가을의 푸른 하늘을 꿰지를듯 솟아있는 청진의 거뭇한 모습이 바라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