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1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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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연 비구름은 아호비령 산바람에 이리 날리고 저리 날리며 회오리쳤다. 강파로운 산비탈을 후려치기도 하고 오불꼬불한 신작로를 핥기도 한다. 낡아빠진 목탄뻐스는 이 심술이 뻗친 비구름속을 한시라도 빨리 뚫고나가려는듯 앙앙 악을 쓰며 울퉁불퉁한 비탈길을 한치한치 톺아올라갔다. 신작로쪽으로 팔을 내뻗친 소나무가지끝에서 하염없는 눈물인양 비방울이 투덕투덕 떨어졌다. 차창에서도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무거운 눈물처럼 비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서종현의 가슴속에도 차창에서 흘러내리는 비물과 같은 눈물이 고이는것 같았다.

누가 보나 이사짐이 분명한 고리짝에 트렁크, 네댓살짜리 사내애와 젊은 녀인에게 안긴 젖먹이어린애, 평양을 출발할 때는 웃기도 하고 떠들기도 하던 사내애도 부모들에게 들이닥친 불행을 이젠 알아챘는지 말을 잊어버린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서종현도 일체 번거로운 잡념에서 벗어나 모든것을 체념하려고 했지만 이런 론리적사고로는 도저히 밀어내버릴수 없는 감정이라는것이 있었다.

짓밟힌 자존심, 보안서에 끌려갔을 때 그는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는 이 사치한 감정을 짓밟아버리려고 퍼그나 애를 썼다. 구류장에서 10여일을 보내는 사이에 자존심이라는것을 줴버린것 같기도 했다. 이런 그에게 생각도 할수 없었던 해발이 비쳐들었다. 그를 보안서에서 내보내기전에 서장인 오진우가 만나주었다. 오진우서장은 서종현을 선생이라고 부르면서 애매한 사람을 못살게 군 서원을 대신해 사과까지 했다.

서종현은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리상과 함께 자존심을 되찾은듯 싶었다. 그런데 한달도 되기전에 이번에는 검열국에서 그를 불렀다. 서종현은 무엇인가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대동교를 건너갔다. 호출을 받고 부국장이란 사람을 찾아들어가니 주걱턱이 진 비대한 사나이와 마구 쥐여붙인것 같은 얼굴의 중년사나이가 로씨야말로 떠들며 웃어대고있었다. 그들은 방에 들어선 서종현따위는 숫제 안중에도 두지 않는 태도였다. 그도 산에서 숨어살 때 로어공부를 얼마간 했지만 전혀 말귀를 알아들을수 없을만큼 류창하게 로씨야말을 지껄여대는것으로 보아 항간에서 흔히 《얼마우제》라고 하는 족속들인것 같았다. 서종현은 후에야 그들이 쏘련군이 진주할 때 통역명색으로 껴묻어나온 사람들이라는것을 알았다. 한참동안 웃고 떠들던 그들은 서종현이 기침소리를 내서야 입들을 다물고 제법 위엄을 돋군 얼굴을 돌렸다. 그 다음에는 참기 어려운 욕설이 쏟아졌다. 종교는 아편이다, 목사라는것은 아편을 밑천으로 삼아 침략자들의 하수인노릇을 하는 아편장사군과 같은것이다. 당신은 아편장사군의 자식이다. 쏘련에 잠입하기 편리한 두만강류역에 들어온데는 은밀한 목적이 있을것이다. 그러나 인민정권은 당신이 불명확하고 위험한 존재인줄 알면서도 기술을 소유하고있는 특수한 점을 고려하여 석유화학공장에서 기사로 일을 하게 했다. 당신은 이 관대정책을 역리용하는 범행을 감행했다. 반쏘란 무엇인가? 반혁명이다. 반혁명분자를 동창생이라고 해서 산업국에 끌어올려 과장이란 직책까지 안겨준 그 사람도 기술자가 양성되는 차제로 계급의 신성한 보루인 인민정권기관에서 제거될것이다. 혁명적원칙을 위반하면서 당신을 보증한 전호준도 도에서 제재를 받는다.···

종교를 아편이라고 한 고전가들의 명제를 그도 알고있었으며 종교를 침략에 리용하는 제국주의자들을 혐오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아편장사군의 오명을 씌운 그들의 말을 그는 시인할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리스도교에 반일적인 경향이 있고 사람들을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 이 종교에 마음을 의탁했을뿐이였다.

더구나 밀정질을 목적으로 삼아 자기가 조선의 북단 두만강가에 들어왔다는 그들의 말은 받아들이기는 고사하고 고려할 여지도 없는것이였다. 일제의 폭압을 어떻게 해서든 멀리하려고 북부산악지대에로 흘러들어온 그였다.

만에 하나라도 자기가 가야 할 길을 가르쳐주는 은인을 만났으면 하는것이 꿈이기는 했지만 그는 자기를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해본 일이 없었으며 혁명에 몸을 던질 투지를 지닌 사람이라고 여긴적은 더구나 없었다. 다만 청신한 대기가 그리워 창문을 열듯이 마음의 창문을 열곳을 찾아 북단의 산간지역으로 발길을 돌렸을뿐이였다. 그런데 이것이 비렬한 밀정질을 하기 위한 행동으로 오해를 받을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는가.

서종현은 시까슬고 모욕하는 두 《얼마우제》의 말을 입술을 짓씹으며 피눈물이 가슴에 고이는 심정으로 묵묵히 듣고 서있었다. 일제에게 그대로 굴종할수 없어 스스로 선택한 길이 자기를 파멸에로 이끌어가는 길이였다는 기막힌 절망감에 사로잡혀 그는 망두석처럼 서있기만 했다. 산업국에 가서 다음 지시를 받으라는 말을 듣고 부국장실에서 나왔다.

그는 늦은 여름의 땡볕도 느끼지 못하면서 대동교를 건넜다. 자기가 어떻게 다리를 건넜으며 그 사이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지도 못했다. 그는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국장을 대리하는 최부국장을 찾아들어갔다. 부국장은 멸시와 조소의 빛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보이며 지금 가고있는 아호비령너머의 덕산광산의 이름을 찍어주었으며 과오를 씻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출발하는것이 좋다고 했다. 기사로 일할수 있게 된것이 다행이라면 다행한 일이라고 할수 있었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직급이나 직종따위에 개념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사짐을 량손에 들고 지고 아이들까지 이끌고 사무실에 들어서는 서종현일행을 맞이한 덕산광산기사장은 그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였다. 뒤미처 달려든 지배인과 당위원장도 먼길을 오기에 수고했다느니 애들이 귀엽다느니 하면서 당혹한 마음을 감추느라고 수선을 떨었다. 서종현이 과장으로 사업할 때 이 광산에 내려온적도 있고 또 산업국에서 손꼽히는 유능한 기술자여서 지배인과 기사장은 평양에 올라올 때마다 그를 찾군하여 잘 아는 사이였다.

서종현네가 광산에 온것을 놀라와 하는것으로 보아 최부국장은 전화쯤 걸어주는 하찮은 수고를 하는것조차 시끄러워한 모양이였다.

해발 수백m높이의 고산지대여서 벌써 가을선기 같은것이 몸에 스며든데다 뻐스에서 내려 광산까지 들어오는 사이에 비에 흠뻑 젖어 입술들이 시퍼래져서 덜덜 떨고있는 안해며 아이들을 아무데건 우선 들여앉혀야 했다.

《당신은 빈방같은걸 하나 얻어서 자리를 잡소.》

광산에 내려오게 된 구구한 사연을 늘어놓고싶지도 않았고 경난을 겪는 후줄근한 모습들인 안해며 애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오가고싶지도 않아 서종현은 안해에게 일렀다.

《난 현장에 나가봐야겠소.》

기사장에게 광석생산에 지장을 주고있다는 전동기를 보러가자고 했다. 광산일군들은 이삼일 쉬라면서 앞을 막았지만 서종현은 부득부득 트렁크속에서 작업복저고리를 꺼내서 웃몸에 걸쳤다. 자존심이란것을 줴버리기로 결심한터에 무엇때문에 체면을 생각하는지 스스로도 알기 어려웠지만 어쨌든 안해에게 볼성사나운 남편의 모습을 보이고싶지는 않았다.

그는 기사장과 함께 동력직장으로 향했다. 기사장의 직무에 있긴 했지만 기사의 자격증이 없는것은 말할것 없고 동력설비에는 문외한이나 다름이 없는 기능공출신의 덕산광산기사장은 가벼운 걸음으로 서종현을 안내했다.

그는 늦은 저녁 가족이 림시거처로 삼은 합숙에 들어왔다. 안해가 어린것에게 젖을 물리고 앉아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서종현은 평양에서 밤늦게 서말재밑의 자기 집에 돌아가 밥상을 마주하고 앉았을 때처럼 어스레한 전등불에 손에 든 책을 비쳐보며 통강냉이알이 박힌 저녁밥을 입안에 퍼넣었다. 나는 벌써 이렇게 마음이 안착됐다, 쓸데없는 말을 해서 공연히 마음을 어수선하게 만들지 말라. ···무언중에 안해에게 이런 말을 번지는 일종의 방어자세였다. 그러나 안해는 밥상을 합숙방 한귀에 옮겨놓더니 그 무슨 간청을 하듯이 조용히 이야기하는것이였다.

《난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준택선생님도 만나지 않고 떠난것이 잘한 일 같지 않아요. 일단 이사는 끝냈으니 평양에 올라가 정준택선생님도 만나뵙고 가능하면 김책부위원장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오시는것이 좋지 않을가요?

시보안서장님이 당신에겐 문제될것이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검열국에서 다시 취급한다는것이 내겐 이상하게 생각되여요.》

서종현은 안해의 말을 듣지 못한것처럼 책장만 번졌다.

《그렇게 하기 어려우면 편지를 쓰시든지···》

안해는 서종현이 어떤 생각을 하고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계속 애원을 했다. 그는 북조선의 정치구조를 지금에 이르러서야 어렴풋이 들여다볼수 있게 된것 같았다. 왜놈의 세상에서도 특출한 능력을 가진 기술인재로 인정받았으며 남달리 청렴결백하고 성실한 정준택도 자기가 당한것과 같은 모욕을 받아야 할 처지에 있는데 그에게 매달린다는것이 말이 되는가. 오진우서장이 각별한 친절을 베풀면서 한 말은 법적제재를 받을 근거가 없다는것이지 북조선에서 기술자로서 떳떳하게 생활할수 있다는 뜻은 아닐것이다. 종교인의 자식에 크든 작든 《반쏘소요》에 말려든 지식인인 자기는 조만간에 기사의 직책에서 일하기도 어렵게 될것이다.···

안해는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또다시 애원했다.

《평양에 있을 때는 정준택선생님이랑 가까이 계시고 직장에도 기술을 리해하는분이 있었지만 이 산골에서야 무슨 일을 당할지 어떻게 알겠어요.》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구 자리나 펴오. 일은 무슨 일을 당한단 말이요?》

서종현은 안해에게 짜증을 냈다. 자리에 누우며 그는 생각했다. 차례진 숙명에 항거하기엔 자기는 너무나 무력하다. 주어진 운명의 범위안에서 청렴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것,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스스로를 위안할수 있게 하는것 이것이 전부로 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