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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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책은 장군님께 제출할 문건을 검토하고있었다. 전호준을 북부석탄관리국장으로 임명하는 문건과 서종현을 산업국 과장으로 계속 사업시키겠다는 제의서도 그속에 들어있었다. 장군님의 말씀이 계시여 서종현문제를 그동안 김책이 료해를 했는데 전호준의 말대로 그에게는 아무것도 문제로 될것이 없었다. 평양시인민보안서장 오진우도 이런 사람이 어떻게 되여 보안서에 끌려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석유화학공장소요사건에 관여한 사람이 정권기관에서 과장사업을 하는것을 못마땅하게 여겨오던자가 모해를 한것 같다면서 그를 구속한 서원을 처벌하겠다고 오진우는 성이 나서 말했다. 문뜩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김책은 문건을 들여다보며 송수화기를 들었다. 그렇게도 기다리던 마동삼이 돌아왔다는것을 알리는 성시백의 말소리가 수화기에서 울려나왔다.

《마동무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전해주시오.》

김책은 송수화기를 내려놓고 곧 부관을 불러 고려호텔에 다녀오라고 지시했다. 그는 부관이 호텔에 갔다오는 그 짧은 사이가 너무나도 오랜듯이 느껴졌다. 마침내 돌아온 부관이 겉봉에 장군님의존함을 정중히 모신 한통의 봉함편지를 김책에게 넘겨주었다. 김책은 그닥 부피가 두텁지 않은 편지를 들고 곧 장군님의 집무실로 올라갔다.

장군님께서는 만주에서 싸우는 민주련군에 공급되는 군수물자수송정형을 철도국장한테서 보고받고계셨다. 강건이 위수사령관의 직책에 있던 두만강대안의 간도지방은 장개석군대가 감히 침범을 하지 못해 민주련군의 공고한 후방기지로 되고있었는데 지금 그곳으로 조선의 철도망을 통해 방대한 병력과 군수물자가 수송되고있었다. 철도국장한테서 구체적인 보고를 청취하고나서 장군님께서는 강조하시였다.

《작전에 지장이 없게 병력이동과 군수물자수송을 책임적으로 보장해야 하겠습니다. 전투의 승패는 병력과 군수물자를 제때에 보급받는가 받지 못하는가 하는데 크게 달려있는것만큼 이 사업을 책임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국장동무가 직접 틀어쥐고 사업하시오.》

철도국장이 집무실에서 나가자 김책은 장군님께 성시백이 보낸 편지를 드리며 마동삼이 도착했다고 알려드렸다.

《빨리 왔구만…》

장군님께서는 웃음어린 안색으로 편지를 개봉하시였다. 두장의 미농지와 한장의 백지를 곁들인 편지였다. 먼저 백지의 글을 읽고 이어 미농지의 글을 읽으시는 장군님의 얼굴에 긴장한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편지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기에 장군님께서 그리도 심각한 안색을 지으시는가? 김책도 목덜미가 뻣뻣하게 강직되는것 같은 긴장을 느꼈다. 편지를 두번이나 되짚어읽은 장군님께서는 잠시 무거운 생각에 잠겨계시다가 편지를 김책에게 주시였다.

《김책동무도 읽어보시오.》

장군님께서는 편지를 넘겨주고는 깊은 생각에 잠겨 집무실안을 거니시였다. 김책은 그이께서 넘겨주신 편지를 서둘러 읽기 시작했다. 동봉한 한장의 백지에 자기가 뒤일을 부탁하고 떠난 부책임자가 보낸것이라는 성시백의 글이 씌여있었다. 두장의 미농지를 골싹하게 채운 글이 원본이였다.

…웨드마이어는 남조선의 군력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발작적인 격분을 폭발시켰음. 군편성을 지연시키기 위한 노력의 결과임. 그의 서울방문목적은 남조선괴뢰정부를 빠른 시일내에 조작해내는데 있음. 웨드마이어는 미군의 영구강점을 합법화할수 있는 괴뢰정부를 시급히 만들어낼데 대한 트루맨대통령의 지시와 함께 리승만에 의거해서 단독정부를 조작하라는 마샬국무장관의 지령을 가져왔음. 그는 리승만을 자기의 숙소인 조선호텔 귀빈실에 불러들여 극력 고무. 공개적인 석상에 그를 끼고 출현…

통보의 정확성을 립증하느라고 자료를 제공해준 여러명의 이름이 기입되여있었다.

김책은 한순간 매지구름과 같은 시커먼 장막이 자기를 콱 감싸버리는것 같은 느낌속에 말려들었다. 괴뢰정부가 수립되면 민족분렬은 더욱 심화될것이며 군사적대결은 격화될것이다. 그런 정황속에서 장군님께서 총로선으로 제시하신 건국위업은 과연 어떻게 될것인가? 《건국》호라는 배는 광란하는 파도에 휩쓸려 향방을 가려보기 어려운 난항을 계속할지도 모른다.

준절한 안색으로 집무실안을 오가던 장군님께서 굳게 주먹을 틀어쥐며 말씀하셨다.

《미국놈들이 가면을 벗었습니다. 일본군을 무장해제시킨다고 하면서 남조선을 강점한 미국놈들이 드디여 자기의 본심을 드러냈습니다. 우리는 미국놈들을 청한 일도 없고 그들의 힘을 빌릴 필요도 없었습니다. 미국놈들은 38°선을 조작해낼 때부터 조선민족의 장기분렬을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웨드마이어에게 대통령특사의 모자를 씌워 서울에 보낸것은 미제놈들이 인천에 상륙한 그때부터 목적해온 남조선의 식민지화, 이것을 정책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부터는 미제와의 정면대결입니다!》

장군님의 눈에서는 푸른 섬광이 번개쳤다. 틀어쥔 주먹을 들어올리며 말씀하시는 음성은 집무실벽에 부딪쳐 메아리를 일으키며 온 방안에 울려퍼졌다.

《남조선강점의 합법화는 우리의 민주기지가 미제놈들한테 군사적위협을 받게 된다는것을 의미합니다. 민족의 장기분렬이 눈앞에 닥쳐온 이 엄혹한 사태를 수수방관해야겠는가? 우리는 절대로 그렇게 할수 없습니다. 형편이 어렵게 되였다고 할수 있지만 우리는 반드시 해결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집무실안을 거닐다가 같은 말씀을 되풀이하셨다.

《우리는 해결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나도 찾겠지만 김책동무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김책은 자기 사무실에 내려오기는 했지만 장군님의 준절한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그이의 음성이 귀전에서 떠나지 않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장군님께서 말씀하시던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모지름을 썼지만 막혔던 숨이 탁 트일 방략은 좀체로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방안에 어스레한 어둠이 스며들기 시작했을 때에야 김책은 여름의 늦은 저녁이 벌써 찾아들었다는것을 알았다. 불을 켜고 미처 처리하지 못한 문건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 하루일을 끝낸 그는 몸을 돌려 창밖을 내다봤다. 장군님의 집무실에서 내리비치는 밝은 불빛이 누워있군 하던 그 자리에 희미한 가로등의 불빛이 깔려있었다. 김책은 눅눅하고 차거운것이 가슴에 스며드는듯 한 느낌을 받고 몸을 흠칫했다. 인민위원회사무실의 불빛이 다 꺼져 해방산을 감싸안은듯 한 청사가 고즈넉한 어둠속에 잠겨버린 야밤중에도 그이의 집무실에서만은 언제나 밝은 불빛이 흘러나오군 했다. 김책은 급히 송수화기를 들고 장군님의 부관실을 찾았다. 퇴근시간이 지나 댁에 들어가셨다고 부관은 말했다. 여느때는 김책에게 빨리 집에 들어가라고 독촉하던 장군님이시였다. 김책은 서둘러 집에 들어갈 차비를 했다.

사택에 들어가 온종일 땀에 젖었던 얼굴을 씻은 김책은 저녁상을 차리는 안해를 불렀다.

《여보, 며칠전에 집에 갔다가 가져온것 있지 않소? 제일 잘 곤거라고 하면서 아버님이 보낸 약주말이요. 그것하구 뭘 좀 꾸려가지고 곧 장군님댁에 가져오오.》

옷매무시를 거울에 비쳐보고난 김책은 좁은 길을 하나 사이에 둔 장군님댁으로 향했다. 정원에 들어선 그는 저도 모르게 못박힌듯 한자리에 굳어졌다. 무더위가 계속되는 삼복허리에 창문을 꼭꼭 닫았을뿐만아니라 창가림까지 드리운 응접실안에서 걸음을 옮기시는 장군님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헤아릴수 없는 거대한 중량이 어깨에 실린듯 걸음은 느리고 무거워보였다. 형편이 어렵게 된 조선혁명, 민족의 장기분렬, 장군님께서 거쉰 음성으로 말씀하신 낱말들이 김책의 머리속을 꿰지르고 지나갔다. 엄혹한 현사태를 수수방관할수 없다시던 말씀이 귀청을 때린다. 김책이 모지름을 쓰며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애쓰던 민족의 운명을 건 사색을 그이께서는 계속하고계시는것이다. 김책이 선뜻 현관앞으로 다가가기가 저어되여 어둠이 깔린 정원길을 잠시 거닐고있는데 김정숙녀사께서 소리없이 그의 옆으로 다가오셨다.

《부위원장동지가 오셨군요.》

녀사께서는 한시름 던듯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아직 식사도 드시지 않고 응접실에 계십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수 없지만 식사는 드셔야 할것이 아닙니까.》

김책은 근심이 낀 김정숙동지의 그늘진 안색을 언뜻 스쳐봤다. 김정숙동지께서 얼마나 깊은 근심에 잠겨계시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어찌 그렇지 않을수 있겠는가. 장군님의 건국로선을 관철하기 위해 아글타글 애써오시는 김정숙동지가 아닌가.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수립되였을 때만 해도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터전이 마련되였다고 바쁜 시간을 틈내서 대중강연에도 출연하시고 남조선에서 찾아오는 이름난 정객들을 맞이하여 장군님의 구상을 알려주시군 하던 김정숙동지이시였다. 그런데 이제 조국의 장기분렬이 눈앞의 엄혹한 현실로 닥쳐왔다는것을 알면 얼마나 괴로와 하시겠는가. 김책은 낮에 장군님의 집무실에서 있었던 일을 김정숙동지께 말해줄수 없었다.

《내 들어가서 식사를 드시라고 권해보겠소. 정숙동무, 너무 걱정하지 마오.》

김책은 응접실쪽을 바라보며 나직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는 현관앞으로 다가가 일부러 소리를 내며 유리미닫이문을 열고 발자국소리를 크게 내며 마루우에 올라섰다. 응접실 한가운데 놓인 원탁을 틀어쥔 주먹으로 지그시 내리누르고 서서 깊은 사색을 이어가던 장군님께서 방안에 들어서는 인기척소리를 듣고 고개를 드시였다.

《김책동뭅니까? 거기 앉으시오.》

쉬여버린것 같은 석쉼한 음성이였다. 불과 한나절사이에 모색도 한결 축간것 같은 모습이였다. 얼마나 심각한 사색을 계속하셨으면 음성이 석쉼해지기까지 했겠는가. 김책이 자리를 잡자 그에게 바람이 쏠리게 선풍기를 돌려놓으신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응접실안을 무거운 걸음으로 오가기 시작하시였다. 김책이 와있다는것을 잊은듯 하셨다. 어찌나 근엄한 안색인지 김책은 식사를 드셔야 한다는 말을 입밖에 낼수가 없었다. 그렇게 좋이 30분은 지난것 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 조심스럽게 응접실문을 열고 들어오시였다.

《밤도 깊어서 좀 서늘해졌습니다. 창문을 여는게 좋지 않습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씀하시며 김책을 돌아보셨다. 김책은 녀사의 눈길을 감촉했지만 아무런 대꾸도 할수 없었다.

《그렇게 하오.》

김정숙동지께서는 창가림을 열어젖히고 창문을 활짝 여시였다. 이렇게 한것만으로도 한결 근심을 던듯한 기색으로 김정숙동지께서는 응접실을 나서며 뒤일을 부탁한다는 뜻이 담긴 눈길을 김책에게 보내시였다.

창가림이 가볍게 날리는 창문가에 한동안 서계시던 장군님께서 김책앞에 와서 앉으시였다. 깊은 생각에 잠긴 안색에 석쉼한 음성으로 그이께서는 말씀하시였다.

《미제와의 정면대결은 보통 심각한 투쟁이 아닙니다. 력량대비로 보나 포악성이나 교활성으로 보나 미제와의 투쟁은 우리가 진행한 반일투쟁보다 더하면 더했지 그보다 쉽지 않습니다.》

김책은 온몸이 굳어지는듯한 긴장감을 느끼며 웃몸을 곧추 세웠다.

《우리의 항일무장투쟁이 왜 간고했는가? 폭압이 강화될대로 강화된 식민지조선을 광복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야 했기때문입니다. 우리의 전세대사람들이 의병투쟁으로부터 시작해서 각이한 투쟁을 전개했고 수많은 조선동포들이 피를 흘린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나라를 독립시키지 못한것은 말할것도 없고 왜 일제의 폭압을 반대하는 효과적인 투쟁을 못했는가? 전민족을 하나로 단결시켜 결사적인 투쟁을 전개하지 못했기때문입니다.》

김책은 가슴이 미여지는듯한 심정으로 가슴아픈 지난날을 회억하시는 장군님의 추연한 얼굴을 마주봤다.

《선렬들의 이 쓰라린 교훈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새로운 수난의 력사가 시작된 현정세하에서 우리들은 선렬들의 오유를 절대로 반복해서는 안됩니다. 전민족의 단합된 력량으로 미제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것입니다. 미제놈들이 조국의 분렬을 장기화할수 있는 괴뢰단독정부를 세우려고 하는 조건에서 우리는 민족통일정부를 수립해서 민족의 자주권을 행사해야 하며 조국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자면 남북조선 전체 민족의 대단합을 반드시 이룩해야 합니다.》

김책은 눈앞이 탁 트이는듯 싶었다. 먹장구름과 같은 짙은 회색장막에 휩싸였던 자신이 해빛 눈부신 밝은 세상에 솟아오른것 같았다. 장군님께서 역경에 처한 혁명정세를 유리하게 전환시킬 대경륜을 찾으셨구나! 그의 눈앞에는 민족통일정부란 항구를 향해 경쾌하게 내닫는 《건국》호가 보이는것 같았다. 장군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응접실안을 오가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러면 현재의 정세가 전민족을 단결시키고 민족통일정부를 수립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할수 있는가? 그런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수많은 난관이 우리앞을 가로막고있습니다.》

38°선으로 해서 래왕도 자유롭지 못한 동강난 조국, 미제의 음흉한 민족리간책동으로 사분오렬되여 권력을 다투는 남조선의 혼란된 정국… 이런 형편에 처해있는 민족을 하나의 력량으로 묶어세운다는것은 여간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것은 명백했다.

《수많은 난관이 앞을 가로막고있다고 해도 우리는 뒤로 물러설수 없습니다. 한치라도 뒤로 물러서면 우리 민족은 자주적인 통일정권을 가져보지도 못하고 미제의 침략에 맞서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미제의 침략적야망이 남조선은 물론 전조선에 미치게 하는것과 같은 전세대 선렬들의 오유를 절대로 반복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절대로 그렇게 할수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근엄한 안색으로 틀어쥔 주먹을 대각으로 내려후리시였다.

《우리는 만난을 무릅쓰고 민족대단합을 달성해야 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는 쏘련군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김책은 흠칫 놀라며 가느다란 실눈을 한껏 치뜨고 장군님을 마주봤다. 해빛에 물든 대양을 내닫던 《건국》호도 어느새 눈앞에서 사라졌다.

《지금 당장 말입니까?》

그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여나왔다.

《쏘련군의 철수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김책동무의 생각을 들어봅시다.》

김책은 입을 열수 없었다. 북변의 장강을 도하하여 조선땅을 빈번히 침범하는 장개석군, 38°연선에서 매일과 같이 벌어지는 적들의 무장도발, 전시상태와 다름없는 조국의 현실을 그는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쏘련군이 일방적으로 철수하는 경우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 알수 없었다. 김책의 얼굴은 풀길 없는 고뇌로 해서 컴컴한 빛으로 물들었다. 김책이 답변할수 있을만큼 준비되지 못했다는것을 안 장군님께서는 응접실안을 무거운 걸음으로 오가며 말씀하셨다.

《왜 쏘련군을 철수시켜야 하는가? 그것은 미제놈들의 악선전으로 해서 남조선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쏘련군의 존재를 남조선을 강점한 미군과 같이 보고있기때문입니다. 민족대단합을 달성하자면 외세를 반대하고 애국심에 기초하여 련합을 이룩해야겠는데 북조선에 쏘련군을 두고 남조선사람들에게 미군을 반대해 싸우라고 할수 없지 않습니까. 이 땅에 외세를 둔다는것은 우리가 항일을 할 때부터 견지해온 민족자주리념에도 어긋나는것입니다.》

김책의 머리에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할 때의 생각이 번개쳤다. 일제의 폭압이 가장 삼엄한 압록강, 두만강류역에서 항전을 계속하시는 장군님의 뜻을 깨달았을 때의 감복과 충격이였다. 자신은 적의 탄압이 비교적 심하지 않은 북만을 투쟁무대로 삼았지만 장군님께서는 처음부터 조선사람들이 주로 거주하는 두만강류역에서 무장투쟁을 개시하셨으며 15성상 조종의 성산 백두산주변을 떠나지 않고 줄기찬 항일전을 전개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조선민족의 힘으로 조국을 광복시킬 결심을 하셨던것이다.

장군님의 민족중시의 리념은 마침내 결실을 맺어 조국광복의 큰뜻을 이룩할수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지금도 민족중시사상에 의거해 민족자체력량으로 미제의 대조선전략을 짓부셔버릴 결심을 하셨다. 얼마나 심원하고 결단성있게 원칙적으로 사색하시는 장군님이신가!

김책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목전의 위험에 구애된 나머지 장군님의 뜻을 곧 깨닫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그는 한마디한마디의 말에 힘을 주어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참으로 결심하기 어려운 문제를 결심하셨습니다. 나는 절대찬성입니다.》

장군님께서는 김책앞에 오시여 북만의 사나운 바람과 강추위에 거칠어진 비장한 빛이 어린 그의 얼굴을 이윽히 마주보시였다. 그이께서는 은근하면서도 나직한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쏘련군이 철수한 후에 있을수 있는 사태를 생각해봤습니까?》

《생각해봤습니다.》

《미국놈들이 북침을 감행할수 있다는것도 생각해봤습니까?》

《생각해봤습니다. 장군님의 결심은 잃는것보다 얻는것이 더 많은 결심입니다. 장군님께서 언제 외세의 힘을 빌어 민족해방투쟁을 전개한 일이 있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깊은 뜻을 김책이 리해했다는것을 확신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한발자욱 앞으로 나서며 김책의 어깨를 와락 그러안으시였다. 김책도 장군님의 어깨를 힘있게 그러안았다.

《나는 이 결심을 참으로 힘들게 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목멘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조선혁명은 왜 이렇게 어렵습니까? 조선을 광복할 전민항쟁준비가 다 되여 항공륙전대투하작전을 개시하려고 하는데 왜놈들이 서둘러 항복을 하는바람에 중지되지 않았습니까. 왜놈을 대신해서 이번에는 미국놈들이 들어와서 남조선을 강점하구… 백년래 조선의 력사를 돌이켜봐도 우리 민족은 너무나도 곡절에 찬 길을 걸어왔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인민의 힘을 믿고 조선민족을 위해 모든것을 바치시는 장군님께서 계십니다. 우리 민족은 이것을 압니다. 조선민족을 믿고 우리를 믿고 쏘련군을 철수시키십시오.》

김책은 눈물이 번져가는 불그레한 눈으로 장군님을 마주보며 힘주어 말씀드렸다.

《고맙습니다. 김책동무의 말을 전우들의 부탁으로 알고, 아니 조선인민, 우리 민족의 념원으로 받아들이고 미제침략자들과 투쟁하겠습니다. 조선민족과 외세와의 본격적인 투쟁을 선포하겠습니다.》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뭣입니까?》

《나는 성시백동무나 만나보고 곧 모스크바에 가서 쓰딸린을 만나겠습니다. 모스크바에 갔다와서 구체적인 문제를 토의합시다.》

김일성동지와 김책은 목메인 음성으로 진심에 넘친 뜨거운 말을 주고받았다. 방문밖에서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리시던 김정숙녀사께서 눈물이 어린 눈굽을 저고리고름으로 찍으며 응접실에 들어오시였다. 아직도 어깨를 힘있게 그러안고있는 장군님과 김책을 미소를 지은 안색으로 잠시 지켜보던 녀사께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부위원장동지댁에서 별식을 가져왔습니다. 음식이 식을것 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김책의 얼굴을 여겨보시였다. 그의 다심한 마음을 고맙게 여기시는 안색이였다. 잠시후 그이와 김책은 녀사의 뒤를 따라 식당으로 향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