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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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부일군에게서 회의에 올라온 채굴공업부문 지배인들의 숙식보장문제를 알아보는중인데 전화종소리가 울려 김책은 무심히 송수화기를 들었다. 뜻밖에도 수화기에서 장군님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울려왔다. 모레쯤 되여야 돌아오실것으로 예견했던 장군님께서 이미 집무실에 와계셨던것이다. 정세가 악화되여 현지지도를 서둘러 끝내신것 같았다.

김책은 총무부일군에게 과업을 주고 옷매무시를 바로잡으며 곧 사무실을 나섰다.

장군님의 집무실에는 은테안경에 여름철의 홀가분한 양장차림의 허정숙이 얼마간 그늘진 표정으로 수첩과 만년필을 들고 서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무거운 안색으로 그의 앞을 오고가며 려운형선생을 추모하는 추도식과 민전결성 한돐기념행사를 함께 진행할데 대한 말씀을 하고계시였다.

《회의참가자들만이 아니라 전체 조선인민에게 조국의 머리우에 어떤 엄혹한 정세가 드리웠는지 알려주는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해야 북조선민전도 강화할수 있고 똑똑하게 처신하지 못하던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게 할수 있습니다. 이런 각도에서 추도사도 만들고 회의도 진행하는것이 좋겠습니다.》

허정숙이 집무실을 나서자 그이께서는 참으로 오랜만에 장군님을 뵌듯 반가운 표정을 짓고 서있는 김책의 손을 잡아 쏘파에 앉히고는 자신께서도 그옆에 자리를 잡으시였다.

《출장을 좀 단축했습니다. 오래동안 지방에 나가있을 형편이 아닌것 같아 그렇게 했습니다. 그사이에 제기된 문제중에서 내가 급하게 알아야 할것부터 말해주시오.》

인민위원회사업에서 제기된 두어가지 문제를 우선 말씀드린 김책은 현지지도중에 주신 과업이야기에 말머리를 돌렸다.

《언젠가 심양에서 성시백이라는 사람이 장군님을 찾아오지 않았댔습니까. 그 사람이 평양에 왔습니다.》

《그 사람이 왔습니까? 요즘 38°선이 소란한데 별일이 없이 들어왔다고 합니까?》

《그 사람과 함께 마동삼이라고 하는 청년이 들어왔습니다. 말을 들어보니 마동삼이라는 청년은 그동안에 몇번 북에 들어왔다 간것 같습니다. 남에서 천이나 약을 갖고 들어와서 우리가 생산하는 비누나 카바이드 같은것을 남으로 가져간것 같습니다. 그 청년을 길잡이로 삼아가지고 들어왔다고 합니다.》

《생활이 곤난해서 그런 일을 했다고 합니까?》

《생산이란 거의 없는 남조선에 우리의 제품을 실어내다 북의 발전상을 보여주려구 그렇게 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생활에 보태기도 하고 활동자금으로 쓰기도 한것 같습니다.》

김책은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굴에 비꼈던 기쁜 기색은 어느새 잦아들고 눈에는 긴장한 빛이 어려있었다. 그는 성시백이 제공해준 자료에 자기의 판단을 붙여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장군님께서는 두팔을 엇걸어 가슴우에 올려놓고 창가에 서서 연곤색 저녁어스름이 내려덮이는 거리를 내다보며 김책의 말을 들으시였다.

《마동삼이를 다시 서울에 내보냈습니다.》

그이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집무탁에 놓인 자개함에서 담배를 한대 꺼내들고 불을 붙이시였다. 두어번 연기를 내뿜기는 했으나 타드는 담배를 손에 든채 무거운 생각에 잠겨 방안을 오가실뿐이다. 담배불을 비벼끈 그이께서는 김책에게 다가와 어깨를 눌러 자리에 앉히시였다.

《우리앞에 엄혹한 정세가 닥쳐왔다는것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찾아온 성선생이나 김책동무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그것도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빨찌산을 할 때는 지금보다 더 엄혹한 역경도 수많이 헤쳐온 우리들이 아닙니까. 문제는 타개책을 찾아내는것입니다. 마동삼동무의 도착을 기다립시다. 우리가 세우는 대책은 뚫린 구멍을 메꾸는 식이 아니라 근본적인 전략적대책이여야 하지 않습니까. 내가 없는 사이에 김책동무는 벌써 많은 생각을 했을겁니다. 나도 그사이에 생각을 좀 했습니다. 앞으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울 때 토의를 합시다.》

방금전까지 그리도 무거운 안색이던 그이의 얼굴에 벌써 느긋한 빛이 퍼져나가고있었다.

《오늘은 성선생을 만납시다. 우리를 만나자고 38°선을 넘어온 손님인데 우리 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눕시다.》

김책은 장군님께 뭐라고 답변을 드렸으면 좋을지 알수 없어 머밋거리다 며칠후에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왜 그럽니까? 내게 뭘 감추고있는것이 아닙니까?》

《얼굴과 손에 상처들이 있어서 지금은 밖에 나다니기 어려울것 같습니다.》

《38°선을 별일없이 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김책은 성시백이 상처를 입게 된 경위를 이야기하고나서 집중치료대책을 세웠다고 보고드렸다. 근심어린 안색으로 김책의 말을 듣고난 장군님께서 말씀하시였다.

《문병을 할겸 우리가 찾아갑시다. 좀 늦은저녁에 10시쯤해서 가봅시다.》

 

손에는 붕대를 감고 얼굴에는 고약을 바른 가제천을 붙여서 성시백은 돌격선에 나섰다가 중상을 당한 병사 비슷했다. 그는 침대에 누워 신문을 읽다가 방에 들어서시는 김일성동지를 보고 자리에서 뛰쳐 일어났다.

장군님께서는 의사에게 성시백의 건강상태를 자세히 알아보시였다. 감기로 해서 기관지염 초기증상이 있고 손과 얼굴의 상처는 가벼운 외상이여서 곧 완쾌되리라고 했다.

《신문을 보니 어떻습니까? 서울의 신문보다 못하지 않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침대우며 앞상, 안락의자에 널린 신문과 잡지들을 돌아보며 물으시였다.

《저는 서울의 신문을 전부 준다고 해도 평양의 <로동신문>과 <민주조선>을 가지겠습니다.》

《어떤 기사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습니까?》

성시백은 건국사상총동원운동에 떨쳐난 농민들이 애국미를 헌납해서 학교를 세우고 로동자들은 자체로 탄을 캐서 철도운행을 하며 지어 문화인들까지 로농대중속에 들어가 글을 쓰겠다고 결의해나서고있는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방송을 통해 <토지는 밭갈이하는 농민에게!>라는 구호를 듣고 세기적질곡이 깨져나가는 소리를 듣는것 같았는데 이번에 평양에 와서는 <공장은 로동자들에게!>라는 구호를 봤습니다.》

성시백은 열정에 넘친 목소리로 말했다.

《장군님께서는 건국에 나선 인민의 정신상태를 인민도덕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마흔이 넘은 오늘까지도 이렇게 좋은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평양에 도착한지 며칠 안되는 사이에 건국을 위해 떨쳐나선 북조선인민들의 기상을 대뜸 느낀 성시백의 예민한 감수성에 감탄했으며 이러한 사람이 남조선에서 활동을 개시한것이 못내 기쁘셨다.

《남조선에서 싸우고있는 동무들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들입니다. 북조선과는 혁명의 성격이 다른것만큼 인민도덕이란 말을 붙일수 없겠지만 조국의 통일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있는 사람들보다 더 훌륭한 도덕의 소유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남조선에서는 그런 고상한 도덕의 소유자들이 적잖게 헛된 고생을 하고있습니다.》

성시백의 얼굴에서는 어느덧 열정의 빛이 사라졌다. 그는 머리를 수굿하고 긴숨을 내쉬듯 말했다.

장군님께서는 성시백의 아픈 마음을 리해하실수가 있었다.

《요즘 남조선형편은 어떠합니까?》

《광복직후에는 인민의 손에 장악되여있던 농촌과 지방의 소도시들이 지금은 반동들과 지주의 손에 넘어가고있습니다. 큰 도시의 공장이나 학교들, 철도와 가두 같은것은 농촌이나 소도시처럼 빤드름하지 않아서 아직은 조직들이 뿌리뽑히지 않았지만 현재와 같이 공개적인 투쟁을 계속해나가면 이런 조직도 머지 않아 파괴되여버릴것 같습니다.》

장군님의 눈앞에 좌경모험주의적투쟁으로 해서 피바다속에 잠겼던 10여년전의 간도의 농촌과 도시의 참혹한 전경이 펼쳐졌다.

《혁명조직이 로출되면 투쟁하던 동무들은 어디에 몸을 붙입니까?》

《산속에 들어가거나 큰 도시에 피신해서 유령인구 생활을 합니다. 그중 많은 동무들이 혁명조직과 련계를 맺지 못하고 체포돼서 처형당하고있습니다.》

성시백은 될수록 자신의 침통하고도 암담한 내심을 내비치지 않으려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가 이야기하는 많은것은 이미 알고계시는 사태였지만 살을 저미는것 같은 괴로움을 안고 몸부림을 치면서도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성시백의 고민이 가슴에 마쳐와서인지, 실감있게 말을 해서인지 장군님께서는 어깨를 짓누르는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시였다.

《그런 사람들을 군대에 입대시키는것이 좋겠다고 남로당동무들에게 권고를 했는데 아직도 처형당하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조직선을 잇지 못해선지 많습니다. 저희들이 그런 사업을 좀 하고있는데 우리는 아직 조직의 범위가 넓지 못해서 적들의 마수가 닿기전에 우리 동무들을 빼돌리기가 어렵습니다. 몇십명정도 군적에 옮겨놓았습니다.》

《몇십명이면 대단합니다. 그 동무들을 잘 교양해서 혁명의 지휘성원으로 만들면 조선혁명에 많은 도움을 줄수 있을겁니다. 물론 앞으로 더 많은 동무들을 군대에 입대시켜야 합니다. 혁명동지들을 보호해주기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하고 남조선혁명력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남조선정세가 어째서 급속히 악화되는것 같습니까?》

성시백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답변을 드렸다.

《우선 미군과 극우익분자들의 폭압이 가혹한데 있습니다. 이런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남조선의 중요좌익당인 남로당이 합법적당처럼 조직되여있고 활동도 로출되기 쉽게 진행하고있는데 원인이 있는것 같습니다.》

얼굴을 수굿하고 이야기하던 성시백은 눈길을 들어 그이를 마주봤다. 그는 장군님께서 이 심중한 문제를 해결해주시기를 바라고있는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성시백의 눈길을 느끼지 못한듯 묵묵히 그의 뒤말을 기다리고계셨다. 성시백은 조리있게 말을 계속해나갔다.

《합법적당처럼 조직되여있으면서 모험적인 대중투쟁을 무모하게 전개하니 조직이 파괴될수밖에 없습니다. 모험적인 투쟁을 전개하는 리유는 원쑤놈들의 폭압에 효과적으로 대응할수 있는 전략전술이 없는데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령도권쟁탈에도 있는것 같습니다.》

이런 상태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미제의 침략책동을 막아내기는 고사하고 자체의 력량을 보존하기도 어렵게 될것이라고 성시백은 침통한 음성으로 말하였다. 심중한 안색으로 성시백의 말을 듣고계시던 장군님께서는 물으시였다.

《성시백선생, 그러니까 선생은.》

장군님께서는 서두를 떼던 말씀을 문득 멈추시였다. 자기를 선생이라고 부르는 장군님의 새삼스러운 말씀이 너무나 놀랍고 섭섭해서 짙은 실망의 빛을 짓는 성시백의 표정을 감촉하신것이다.

《같은 조선혁명을 진행하고있으니 동무라고 불렀으면 좋겠는데 성선생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선생이라고 했습니다.》

성시백은 김일성동지를 마주보며 간청하듯 말했다.

《저는 혁명을 하기 위해 조국에 돌아온 사람입니다. 장군님께 이미 말씀드린것처럼 남조선이 우리 나라 혁명에서 제일 큰 장애로 될것 같아 북이 아니라 남으로 갔을뿐이지 저는 조선혁명을 령도하실분은 오직 김일성동지 한분밖에 없다는것을 광복전부터 알고있었습니다. 저를 동무라고 불러주십시오.》

《그럼 앞으로 우리와 뜻을 같이 할 동지라고 생각하고 북조선에서처럼 동무라고 부르겠습니다. 성시백동무.》

이렇게 호칭한 장군님께서는 성시백의 얼굴기색을 주의깊이 살피셨다. 성시백의 단아하고 지성적인 얼굴에 감격의 잔물결이 일더니 안경속의 눈에 맑은 눈물이 번져나갔다.

《그러니까 성시백동무가 보기엔 남조선좌익은 미제의 침략책동을 저지시킬수 있는 능력을 이미 상실했다는것이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장군님의 안색은 더욱 침중해지였다. 방안의 분위기는 숨을 쉬기도 어려울만큼 무거웠다.

《미국놈들도 좌익이 약화되였다는것을 알고 행동을 개시한것 같습니다. 바로 그 약화된 혁명력량을 어떻게 해서든 추켜세우지 않으면 우리 민족이 어떤 수난을 또 당할지 알수 없는것이 현정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혁명력량을 추켜세우자면 정책이 정확해야 할것은 말할것 없고 민족이 운명을 의탁할수 있는 령도자의 지도가 반드시 있어야 할것으로 저는 생각하고있습니다.》

성시백은 간절한 소원이 담긴 타는듯한 눈길로 장군님의 존안을 우러러보며 말씀드렸다. 그는 지금의 이 자리가 곧 장군님의 말씀을 듣는 장소로 되기를 열망하고있었다. 장군님께서도 성시백의 심정을 알수 있었으며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면서 38°선을 넘어온 그의 절박한 마음도 리해할수 있으시였다. 그러나 민족의 운명과 관련된 중대한 문제인것만큼 생각을 더 깊이 하셔야 했다.

장군님께서 문병을 할 생각을 한것은 성시백이 귀중한 자료를 들고오기도 했지만 민족적재난을 어떻게 해서든 타결해보려는 그의 열의가 고마우셨기때문이였다. 그이께서는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시였다.

《성시백동무가 부위원장동무에게 한 말을 다 들었습니다. 적들이 려운형선생을 어떤 방법으로 암살했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각계 인사들의 견해도 우리가 정세를 판단하는데 큰 도움을 줄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밤 성시백동무를 찾아온것은 병문안을 하기 위해섭니다. 나라사정이 걱정되여 평양에 들어오다 상처를 입고 병에 걸린 동무인데 문병도 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웬간해서는 놀라거나 당황한 빛을 보이는 일이 없는 성시백의 눈이 순간에 휘둥그래져서 밝은 웃음이 어린 장군님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시간을 다투는 엄혹한 정세가 닥쳐온 때에 자기같은 사람의 병세가 걱정되여 일부러 시간을 내서 문병을 하시다니?··· 불뭉치같은것이 가슴속에서 치밀어오르고 눈굽에 뜨거운것이 맺혔다.

눈물짓는 성시백을 여겨보던 장군님께서 밝은 안색으로 문뜩 물으시였다.

《광복된 그해에 우리한테 왔을 때 황해도 평산에 아버님과 처자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직 홀몸으로 객지생활을 하고있습니까?》

《작년 여름에 처하구 누이를 데려내갔습니다.》

《스무해만에 다시 가정을 이뤘으면 자손을 보지 않았겠습니까?》

성시백은 어줍은 웃음을 빙긋 웃었다.

《아들입니까, 딸입니까? 두 아들을 고향에 두고 떠났다고 했으니 이번이 세번째가 아닙니까?》

《아직 세상에 나온것은 아니구 어머니 배속에 있는데 배가 바가지짝을 엎어놓은것 같은걸 봐서는 계집애같은데···》

《이제보니 성시백동무의 욕심이 보통이 아닙니다. 우에 아들 둘을 뒀으면 이번엔 계집앨 낳아야 평등을 주장하는 공산주의자지···》

너스레란 통 모를것 같은 김책이 문뜩 웃음지은 얼굴로 이런 말을 했다.

《여기에 오지 않았으면 이 좋은 이야기를 듣지 못할번했습니다. 그래 언제쯤 몸을 풀것 같습니까?》

《9월말이 아니면 10월초쯤 될것 같다구 하는데.》

《그럼 이제는 몸이 무겁겠는데 매사에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여기 들여다 해산하게 하는것이 좋지 않습니까?》

《우리 사람들가운데 의사들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들여보내지 않겠다는것인데, 하긴 남편곁에서 해산을 하는것이 더 좋을수 있습니다. 앞으로 아주머니를 우리한테 보내는것이 좋을것 같으면 언제든지 들여보내시오. 유능한 의사를 붙여주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우선 건강을 돌봐야 한다고 하며 치료를 잘 받아서 빨리 몸을 회복시키라고 거듭 말씀하고나서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김책과 함께 장군님께서 타신 승용차는 해방산 동쪽비탈의 사택마을 한가운데를 헤가르며 잠시 달리다 두어m높이의 세멘트담장에 둘러싸인 단층집앞에서 멎었다. 장군님댁이였다. 지난해 이 세상에 없는줄로만 알았던 김책의 두 아들이 장발한 청년의 모습으로 찾아오고 마흔세살 장년에 홀아비살림을 계속할수 없어 엇비슷한 나이인 《로친네》(강정숙)를 안해로 맞아들인 후에 김책이 새 생활을 시작한 사택은 장군님댁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둔 맞은편에 있었다. 김책은 김일성동지와 함께 한자동차에 앉아 집으로 돌아올 때면 언제나 승용차가 지금 멎어선 이곳에서 내리군 했다. 그런데 오늘은 김책이 몸을 일으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동차는 정원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장군님께서는 김책이 무엇인가 중요한 말을 할 생각이라는것을 느끼고 정원에 들어서는 자동차에 그대로 몸을 맡기시였다. 차에서 먼저 내린 김일성동지께서는 뒤따라 내리는 김책에게 말씀하시였다.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집안에 들어갈것 없이 여기서 이야기합시다. 무슨 일입니까?》

운전수가 자동차를 차고안에 넣으려고 차머리를 돌리는것을 본 김일성동지께서 김책을 돌아보며 물으시였다.

《내 지금 2호집에 가볼가 합니다.》

《지금 말입니까?》

김책이 그 무슨 중대한 말을 하리라는것을 짐작하셨지만 이밤중에 북에 들어와있는 남로당부위원장을 찾아가겠다고 말할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시였다.

그 부위원장은 사실상 남로당의 실권자로 인정받고있었다.

《그래 무슨 일때문에 이 밤중에 거기에 가겠다는겁니까?》

《비판을 좀 하겠습니다. 부위원장이 제구실을 하지 못했기때문에 우리 나라에 엄혹한 정세가 닥쳐왔다고 찍어서 말해주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범하고있는 전술상과오에 대해서도 비판하겠습니다.》

김책은 격분한 나머지 심야의 이슬에 젖은 밤장막을 회초리로 내리치듯한 말투로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김책의 날카로와진 얼굴을 돌아보셨다. 우리 나라에 엄중한 정세가 도래한것은 미제와 효과적인 투쟁을 전개하지 못한 남로당의 과오에 있다는것을 고려호텔에서 새삼스럽게 절감한 김책은 비판이라도 하지 않고서는 잠들기 어려운 모양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정원길에 깔린 어둠을 밟으며 조그마한 련못을 에돌다가 말씀하시였다.

《오늘밤에는 가지 말구 래일 가는것이 좋겠습니다. 비판보다도 려운형선생의 장례식을 남로당에서 많이 도와주어야겠다는 말을 주로 하는것이 좋겠습니다. 사업과 관련해서 말을 나누게 되면 혁명투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군중적기반을 잃어버리지 않는것이라는것을 강조하는것이 좋겠습니다. 민전을 중심으로 남조선민주력량을 단결시켜 강점자들과 효과적인 투쟁을 하는것이 중요하다는것을 말해주시오.》

《래일은 아침부터 산업국에서 채굴공업부문 지배인들과 상반년총화를 하기로 했습니다.》

산업국장이 병으로 누워있으니 김책이 걱정하는것도 무리가 아니였다.

《계획총화회의면 정준택동무가 사회할수 있지 않습니까? 김책동무가 정 마음을 놓지 못하겠으면 내가 시간을 내보겠습니다. 지배인회의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공산주의자들이 려운형선생을 암살했다고 적들이 악선전을 하는 조건에서 남로당에서 조의대표도 보내고 근로인민당과 합심해서 장례식도 크게 하는것이 더 급합니다. 래일 2호집에 가는것이 좋겠습니다.》

담장을 따라 발자욱소리를 조심하며 조용히 걸음을 옮기시는 희끗한 그림자가 보였다.김정숙녀사이시였다. 특히 가로를 끼고있는 동쪽과 남쪽담장이 걱정되시여 그 밑을 걷고 또 걸으신다.

《이젠 돌아가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있으면 김정숙동무가 또 밤을 새울것 같습니다.》

《산에 있을 때는 몇백m밖에 적을 두고 며칠씩 숙영한 때도 있었는데 그러지 말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나는 김정숙동무가 있기때문에 장군님댁의 호위는 마음을 놓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빨찌산투쟁시기 그러했던것처럼 조국에 개선해서도 자신을 장군님의 친위전사로여기고 지금과 같은 심야에 그이께서 정원에 나와계실 때는 적들이 준동을 할수 있음직한 어스크레한 뜨락구석을 떠나지 않으시였다. 밤중에도 한두번은 반드시 저택주변을 주의깊이 살피고 다시 잠자리에 들군 하시였다.

김책은 일부러 기침소리를 크게 내며 정문을 나섰다. 장군님께서 집안으로 들어가시니 녀사께서 마음을 놓으시고 들어가라는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