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3

 

3

 

해방산을 동남방향에서 두팔로 그러안듯 한 북조선인민위원회청사의 1층에 자리잡은 김책부위원장실은 아침부터 삼복허리의 뜨거운 해볕이 마루바닥을 따갑게 지져댔다. 방안은 마치 한증탕에 들어앉은것처럼 무더웠다. 그러나 부위원장은 닫긴양복저고리의 목단추조차 벗기지 않은 엄정한 모습이였으며 그와 앞상을 사이에 두고앉은 기획국장 정준택도 눈부시게 흰 와이샤쯔에 넥타이까지 맨 단정한 차림새였다. 그들이 이렇게 엄정하고 단정한 차림새로 마주앉은것은 장군님께서 1947년도 인민경제계획수행에 얼마나 큰 의의를 부여하고계시며 지금 총화하게 되는 채굴공업부문을 얼마나 중시하시는지 알고있기때문이였다. 장군님께서 경제계획작성그루빠의 한 성원이 되다싶이 하여 1947년도 인민경제계획을 세우시면서 제일 중요시한 부문이 채취공업이였다.

일제강점하에서 기형화된 경제를 바로잡고 자립적인 민족경제를 건설하자면 공업의 식량인 석탄을 더 많이 캐내야 했고 광석을 많이 채굴해서 제철소와 제강소에 보내주어야 철을 생산해서 건설도 하고 일본놈들이 자기 나라에서만 완제품을 만들던 기계도 자체로 생산할수 있었다.

김책은 깐깐하게 검토하던 문건에 연필로 표시를 하고나서 얼굴을 들었다. 계산척을 놀리기에 여념이 없는 정준택을 지켜보던 그는 기획국장이 계산을 끝내고 문건에 수자를 기입해넣었을 때에야 입을 열었다.

《유선은 계획을 못한 탄광인데 어째서 고려해줘야 할 대상에 넣었소?》

《채산상으로는 계획을 못했지만 탄은 계획량을 초과했습니다. 보고에 써넣지 못한 사정이 있는것 같아 고려대상에 넣었습니다.》

《올해 상반년총화를 독립채산제의 원칙에서 진행한다고 지배인들에게 통고했는데 인민위원회명의로 내려보낸 문건을 우리가 먼저 위반해서야 되겠소? 비판할것은 비판하고 알아볼것은 알아보는게 좋겠소.》

《알겠습니다.》

정준택은 수건을 꺼내들고 이마에 맺힌 땀발을 씻었다. 그들은 지금 채굴공업부문 지배인회의를 준비하고있었다.

문득 김책의 사무탁우에 놓인 전화기에서 나직한 신호가 울렸다. 김책이 자리에서 일어나 송수화기를 들었다. 언제나 직방치기인 내무국장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튀여나왔다.

《38°선에서 밀수군을 두놈 체포해서 우리한테 보내왔습니다. 마흔두살이라고 하는놈은 앓는 흉내를 내면서 일체 말이 없구 젊은놈이 갈개면서 부위원장동무를 만나게 해달라고 고아댑니다. 앓는 흉내를 내는놈은 정향명이라고 하구 그자를 따라다니는 놈은 마동삼이라고 한답니다.》

김책은 잠시 송수화기를 든채 기억의 갈피를 더듬었다. 면회를 요청하는 두사람의 이름이 언뜻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던것이다. 불쑥 망각의 껍질이 터지면서 근 두해전의 일이 불현듯 눈앞에 떠올랐다. 조국이 광복된 그해도 저물어가던 12월 그믐께 장군님을 찾아왔던 중년사나이의 별호가 분명 정향명이였다. 본명은 성시백이라고 했다. 김책은 우선 내무국장의 말투를 힐책했다.

《동무, 그 말버릇을 고치라고 몇번이나 말했는데 왜 고치지 못하오? 나를 찾아왔으면 만나게 하는것이 도리인데 놈이 뭐요? 놈이! 부관을 보낼테니 그 두사람을 나한테 보내시오.》

송수화기를 내려놓은 김책은 곧 부관실에 나가 지시를 했다.

《내 자동차를 가지고 내무국에 가서 국장이 내주는 두사람을 려관에 들게 하시오. 남조선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들군 하는 고려호텔이 좋겠소. 내가 호텔에 갈 때까지 동무는 거기에 있으시오.》

김책이 성시백을 처음 만나본 그날은 유난히도 랭혹한 추위가 창밖의 대기를 굳게 얼어붙인 밤이였다. 당중앙청사의 집무실에서 장군님께서 김책이와 함께 정권건설문제를 가지고 심중한 의논을 하고있는데 부관이 먼저 동북행영 화교판사처 부처장 겸 정치주임이라는 직명을 밝힌 명함을 들고 들어오고 뒤어어 책임부관의 안내를 받으며 중키에 얼굴이 갱핏한 중년사나이가 방안에 들어섰다. 그는 장군님께 오늘에 이른 자기의 과거를 놀랄만큼 간명하면서도 설득력있게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리진룡의 의병대에서 참모장까지 지낸바있는 애국자로서 자신의 무력을 한탄하며 광복전까지는 하늘을 쳐다보지 않을양으로 고향인 황해도 평산군 주상리에서 땅을 뚜지며 여생을 보냈다. 성시백은 22살에 조국광복의 큰뜻을 안고 중국에 망명, 상해에서 고학으로 대학을 졸업, 중공계신문의 편집원, 장개석의 배신에 격분한 상해로동계급의 폭동이 참혹하게 실패한 후 주은래의 지도를 받으며 파괴된 조직을 복구하고 대렬을 정비하는 지하투쟁에 참가, 장개석도당에게 체포되여 9년간의 감옥생활, 등이 얼마간 구부정한것은 이 고역에 찬 옥중생활이 가져다준 후유증이라고 했다. 서울중동중학교에서 배우고 옥중에서 더 깊이 익힌 영어와 프랑스어, 일본말에 능한것이 빌미가 되여 중국에서는 그래도 개명했다고 하는 군벌 염석산의 눈에 띄여 그의 자녀들을 교육하는 가정교사가 됐다. 성시백의 높은 지성과 그가 즐겨 화제에 올리는 《안로분배주의》(로동에 따라 분배해야 한다는 주장)가 염석산이 마음을 의탁한 그리스도교리와 비슷한데가 있다고 하여 그의 말동무로, 숨은 책사로 되였다. 일본놈들에게 징집되여 중국전선에 끌려왔던 10여명의 《학도병》출신 조선청년들이 염석산이 차지한 제2전구에 탈출해왔다. 성시백은 그들을 데리고 장개석정부의 림시수도인 중경으로 갔다. 거기에 상해에서 안면을 익힌 림정의 민족주의자들을 비롯해 조선의 망명객들이 집결해있었다. 압록강을 끼고 간고한 항일투쟁을 전개하고계시는 김일성장군부대를 찾아가고싶었지만 왜놈들의 점령지역을 만수천리나 뚫고나간다는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였다. 중국에 망명한 독립운동자들의 집결처라고 하지만 그것은 뿔뿔이 헤여진 류랑객들이 랭습한 안개의 도시 중경에 모인것 같은 모양이였다. 백명안팎의 독립운동자란 사람들이 그 무슨 당, 그 무슨 동맹이란것을 대여섯개나 조직해가지고 어느 당, 어느 파 하면서 반목질시하고있는 모양이 하도 어이가 없어 웃지도 못할 지경이였다.

성시백은 일제와의 결전을 벌리고있는 시기에 이런 반목질시는 민족앞에 큰 죄를 짓는 일이라면서 림정을 반대하는 당, 반대파지도자들을 납득시켜 김구를 수위로 하는 구국전선을 형성케 했다. 이것은 파벌싸움에 시달리고 궁지에 몰린 김구를 《기사회생》(죽음에서 벗어나 삶을 찾는다는 뜻)시킨 구원자의 역할을 했다는것을 의미했다. 김구는 김일성장군님의 항일무장력량과 련합하여 조국광복의 성전을 전개해야 한다는 정향명의 제기도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다. 이렇게 되여 림정의 《국무회의》에서 조종의 산 백두산에 사령부를 두고계시는 김일성장군님께 편지를 보내는데까지 이르렀다.··· 성시백은 태평양전쟁이 끝나자 곧 중경을 출발하여 동북으로 옮겨왔으며 행정권을 장악한 《동북행영》밑에 붙었다. 그는 국민당정부시종실과 염석산의 유력한 소개신을 주머니에 넣어두고있어 그닥 명색있는 부서도 아닌 화교판사처라는것을 곧 조직할수 있었으며 처장엔 중국사람들한테 얼마간 이름이 알려진 사람을 올려앉히고 자신은 부처장 겸 정치부장이란 명목으로 사실에 있어 판사처의 실권을 틀어쥐였다.

성시백은 조국에 개선하신 장군님께 인사를 드리고싶어 찾아왔다면서 심양의 실태도 말씀드렸다. 현재 심양에는 3만이나 되는 교포가 모여들었는데 그중에는 장군님께서 조국에 개선하셨기에 북조선으로 나올수 없는 친일파, 민족반역자들도 끼여있다고 했다. 이자들은 미군이 강점한 남조선에 가야 산다면서 반동세력과 련계를 맺고 남으로 도주하고있다. 미국놈들도 《동북행영》과 련계를 맺고 지난날 일제놈에게 붙어먹던 패덕한들가운데서 군대, 경찰, 첩보사업에 경험있는자들은 서울에 데려가고있다.···

《앞으로 미국놈들은 이자들을 발판으로 삼아 반동세력을 규합해가지고 조선혁명에 커다란 난관을 조성할것입니다. 이자들과 투쟁할 효과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조국은 앞으로 커다란 시련을 겪을수 있다고 보아집니다.》

장군님께서는 성시백이 정세를 예리하게 판단할줄 아는 사람이라는것을 간파하시였다. 조국앞에 어떤 시련이 닥쳐오는지 알지도 못하고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광복의 열파에 들떠 공연히 주먹을 내두르고 웨치며 뛰여다니고있을 때 미제의 침략이 앞으로 어떤 양상, 어떤 형태로 감행될것인지를 벌써 감촉한 사람이 있는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성시백에게 언제 조국에 돌아올 예정인가고 물으시였다. 그가 귀국하면 중요한 직책을 맡길 생각이신것 같았다. 그런데 성시백은 북조선이 아니라 남조선으로 갈 결심을 했다는것이였다.

《평양에 와서 장군님을 모시고 혁명을 하고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남조선정세가 앞으로 우리 나라 혁명에 난관을 조성할것은 뻔한데 사업하기 유리하다고 북조선에 올수 없지 않습니까. 저는 남조선에 가서 혁명을 계속하는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성시백이 참으로 어려운것을 결심한, 민족을 위해 한몸을 헌헌히 바칠줄 아는 투사라는것을 아시고 그의 손을 굳게 잡으시였다. 김책도 성시백의 결심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그 성시백이 근 두해동안 아무 소식도 없어 김책은 그의 별호를 잊어버릴 지경이 되였는데 난데없이 불법입북자로 취급을 받으며 돌연히 평양에 나타났다.

김책은 총화사업을 정준택에게 맡기고 곧 사무실을 나섰다.

김책은 부관이 출입문밖에 서서 기다리는 호텔 3층의 너렁청한 특실에 들어섰다. 헌털뱅이를 걸친 건장한 청년은 벽면에 붙인 가죽쏘파에 앉아있었으며 성시백은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런데 김책을 놀라게 한것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성시백이 모상을 알아볼수 없게 째지고 멍이 들었으며 악수를 나누자고 해도 잡기 어려울만큼 손에 험한 상처를 입고있는것이였다.

《몸이 왜 이렇게 됐습니까?》

김책은 굳이 침대에서 일어난 성시백을 쏘파에 눌러앉히며 물었다. 내무국에서 성시백을 이렇게 험상스럽게 만든것 같아 금시에 분격을 폭발시킬것 같은 표정이였다.

《비오는 밤에 38°선을 넘다나니 그만···》

성시백이 김책의 분격을 누그러뜨리려는듯 상처입은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옆에 섰던 마동삼이 불쑥 끼여들었다.

《부위원장님에게 사실대로 다 말씀드리지 않구 왜 그럽니까? 내 생각에는 우리와 같이 북조선에 꼭 와야 할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래도 몸을 단련할 기회도 있었고 젊기도 해서 별일이 없었습니다만 성선생이 당한 고충은 말이 아니였습니다.》

《그만하오. 우리가 오해를 받아 그렇게 된건데 뭘 그러오.》

《마동무, 계속하시오.》

김책의 독촉을 받은 마동삼은 그동안에 겪은 고초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38°선에서의 무장충돌로 해서 장사군들의 밀로를 리용할수 없어 천마산의 산릉선을 비오는 밤에 넘었다. 경비대원들이 밀수군취급을 하며 평산보안서에 호송했다. 랭습한 소방대창고에 옹근 이틀동안 갇혀있어 성시백은 하마트면 페염에 걸릴번 했다.···

《마동무의 말이 옳습니다. 장군님을 뵈려고 38°선을 넘어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이 성선생이 당한것 같은 그런 취급을 계속 당하면 큰일이 아닙니까. 곧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이것은 김책이 성시백일행을 위안하느라고 한 말이 아니였다. 광복후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받으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38°선을 넘어왔는데 분렬이 심화되고있는 이즈음 시급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알수 없었다.

《내 보기엔 우선 치료부터 받아야 할것 같습니다. 장군님께 시급히 전해드릴 말이 없으면 병원에 입원하든가 이 려관에서 치료를 받든가 하는것이 좋겠습니다.》

《제가 평양에 온것은 우리 조국에 엄중한 정세가 도래하고있다고 생각했기때문입니다.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는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김책은 대번에 긴장해서 간절한 념원을 안고 자기를 쳐다보는 성시백의 지성이 내밴 갸름한 얼굴을 잠시 마주봤다. 성시백의 말은 사태를 더욱 심도있게 밝히라고 장군님께서 지시하신 려운형의 암살과 웨드마이어의 서울방문을 념두에 둔것이 아닐가? 김책은 장군님의 지시를 받고 통신사 책임일군이며 선전부장 허정숙을 통해 사태를 깊이있게 추구해들어갈수 있는 자료를 손에 넣어보려고 애썼지만 이렇다 할 소득은 없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북조선에는 이런 중대한 문제를 심도있게 구명할수 있는 기관도 사람도 준비되여있지 못했다.

《장군님께서는 지금 평양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이께서는 려운형선생이 암살을 당하게 된 전후관계와 웨드마이어가 서울에 날아오는 진짜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이것을 빠른 시간내에 심도있게 알아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계십니다. 그동안 서울에 있었으니 이 문제와 관련해서 알고있는것이 있으면 우리에게 알려줬으면 합니다.》

성시백은 잠시 얼굴을 수굿하고 머리속의 생각을 정리했다.

김책이 요구하는것이 주로 사실자료에 기초한 판단일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그런 방향에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려운형이 피살되기 이틀전부터 이른바 《경호》라는 명색으로 경찰이 집요하게 미행했다. 려운형은 원래 미군헌병이나 경찰의 경호를 완강하게 거부해왔다. 자신이 미군측의 비호를 받고있는듯 한 인상을 민중들에게 줄수 있기때문이였다. 이때도 맏딸을 시켜 경찰의 《경호》에 강력히 항의하게 했다. 《경호》는 피살되는 당일까지 계속됐다.

려운형을 살해할양으로 선생의 전용차를 가로막을 화물차가 혜화동경찰파출소앞에서 대기하고있었다. 이것은 경찰의 《경호》가 무엇때문에 필요했는지 말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선생이 입원한 대학병원에 경기도경찰국장 장택상이 문병이란 구실을 붙여 찾아왔다. 이것은 선생의 《절명》을 확인하기 위해서일것이다. 선생의 맏딸도 이것을 륙감으로 느꼈던지 장택상이 입원실에 들어서자 그에게 달려들며 아버지를 죽인자가 무엇때문에 나타났는가, 나가라고 소리를 쳤다고 한다.

장택상이란 어떤자인가? 흉악범죄를 방지할 임무를 지닌 경기도경찰국장의 자리에 있으면서 미군정과 리승만계에서 요구하는 조직적인 살인을 수많이 감행해온 인간백정이다. 이자는 살인을 해제끼고는 리승만은 말할것 없고 미국인들한테서까지 만딸라이상의 돈을 반드시 받아냈다. 그런데 려운형의 살해사건과 관련해서는 일체 보상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려운형과 같은 거물을 미국놈들한테 제물로 섬겨바친 대가로 자기에게 어떤 보상이 차례지겠는가를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장택상이기때문이다.

그러면 김규식과 손을 잡게 하여 남조선의 주도적정치세력을 만든다고 떠들던 미국이 어째서 려운형선생을 없애치웠는가? 그것은 려운형선생이 더는 필요없는 거치장스러운 존재로 되였기때문이다. 어째서 거치장스러운 존재로 되였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두가닥으로 견해가 갈라져 현재로서는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 어렵다.

한가닥은 웨드마이어가 워싱톤을 출발하기전부터 언론이 떠들어대는 《북조선징벌설》이며 다른 하나는 웨드마이어가 서울에 와서 더욱 파쑈화된 강경한 대조선정책을 발표할것이라는 견해이다. 전자는 군부중진의 주장이고 후자는 언론계와 정계의 반영이다.···

담배를 태우며 성시백의 말을 주의깊이 듣고있던 김책이 물었다.

《군부는 어떤 근거에 기초해서 <징벌설>을 내세웁니까?》

성시백은 의연히 담담한 목소리로 사리정연한 답변을 했다. 군정청에 국방사령부설치, 《국방경비대》의 확장, 여덟개 련대의 편성을 이미 끝낸데 이어 미군사령부에서 직접 나서서 일제침략군과 위만군, 왕정위괴뢰군에서 장교를 해먹던자들로 지휘관들을 갱질하기 시작, 인천-서울사이, 김포비행장-서울사이, 부산-서울사이의 도로확장공사, 인천항과 부산항 확장 등 이 모든 현상은 분명히 전쟁준비이다.···

《민족의 편에 선 애국적군인들이 미군사령부의 지시를 어떻게 해서든 집행하지 않으려고 모든 노력을 다하고있지만 실권은 고문자리에 앉은 미국놈들한테 있기때문에 지연공작이 크게 은을 내지 못하고있습니다.》

《민족의 편에 선 애국적군인이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입니까?》

견해의 신빙성을 확증하기 위해 김책은 묻지 않을수 없었다.

《류동렬선생, 송호성씨와 같은 민족적량심을 지닌분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분들은 중경에 있을 때부터 조국광복을 위해 싸우시는 장군님을 존경해왔고 저의 도움도 얼마간 받았습니다.》

김책은 저으기 놀랐다. 류동렬은 통위부(괴뢰국방부의 전신) 부장이였으며 송호성은 남조선경비대 사령관이였다. 류동렬, 송호성이 중국에 있을 때부터 김일성동지를 존경해왔다면 성시백의 감화가 반드시 있었을것이다. 미군이 통수권을 쥐고있지 않다면 그들은 남조선민족무장력의 최고지휘관들이라고 할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그의 편에 서있다면 성시백은 참으로 통이 큰 투쟁을 전개하고있다고 해야 할것이였다.

《류동렬, 송호성선생들의 주장을 부인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성시백은 이번에도 간단명료한 대답을 했다. 북조선에 주둔한 쏘련군의 존재, 전쟁전야의 행차치고는 지나치게 웨드마이어의 목소리가 요란하다. 군사행동을 개시하는 군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대통령특사의 명목···

《북조선을 침범하든 정책전환을 하든 우리 나라에 엄혹한 정세가 도래한것은 엄연한 사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 장군님의 말씀을 듣고싶어 평양에 왔습니다. 마동삼군을 다시 서울에 내보냈으면 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면 합니다.》

김책은 등골이 뻣뻣해지고 입안이 메말라드는듯 한 긴장감을 느끼며 성시백의 말을 들었다. 언론계와 정계의 견해는 확실히 론거가 박약하다. 웨드마이어의 요란한 허장성세만 해도 미국의 군력을 절대적인것으로 간주하는 반공광신자에게는 오히려 어울리는 행위라고 해야 할것이다. 대통령특사라는 어울리지 않는 벙거지를 뒤집어쓴것이 어딘지 모르게 모순을 느끼게 하지만 현재와 같이 엄혹한 정세가 찾아든 때에 모호하고 불확실한 문제에 매달리는것은 위험하다.···

김책은 지나치게 긴장한듯싶은 스스로의 표정을 애써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마동무를 서울에 내보내는 문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능한껏 도와주겠습니다. 그런데 마동무도 손에 상처가 있는것 같은데 일없겠습니까?》

《이따위 상처때문에 할 일을 못해서야 성선생을 따라다닐 자격이 없지요. 내 걱정은 마십시오.》

김책은 치료를 잘해야겠다는 말을 성시백에게 남기고 특실을 나섰다.

인민위원회에 돌아온 김책은 정준택이 마무리지은 총화문건을 앞에 놓고 고뇌의 바다속에서 그 누구와 사생결단을 하듯 푸른 불길이 타번지는 눈길로 사무실벽을 쏘아보며 앉아있었다.

그는 잠시후 안주머니에서 조그마한 수첩을 꺼내서 앞에 놓고 정세를 다시한번 분석평가하면서 머리에 떠오른 대책을 촘촘히 적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