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1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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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두드려대는 비발소리는 한결 더 소란해졌다. 고려왕조를 안아키운 송악산도 비에 젖은 어둠속에 잦아들었다. 개성사람들이 흔히 《망월성지》라고 일컫는 송악산 서남쪽골짜기의 기와집들도 비발과 저녁연기속에 가라앉았다.

이 《성지》안의 한 기와집 건넌방에서 갈람한 몸집에 얼굴도 갸름한편이지만 관골이 두둑하고 턱뼈가 든든해서 의지가 굳세보이는 40대의 장년이 줄담배를 피우며 앉아있었다. 서울의 실업계와 정계, 지어는 군부에도 정향명이란 아호로 널리 알려져있는 성시백이였다. 그는 새 담배가치에 또 불을 달려다 마당을 건너오는 발자욱소리를 듣고 잠시 손을 멈추었다. 길잡이역인 동행자 마동삼의 발자욱소리라는것을 안 그는 성냥을 그었다.

마동삼은 간데라불을 켜들고 방에 들어왔다. 당시 남조선의 지방은 물론 서울까지도 미군이 북조선에 전기값을 물지 않아 송전이 중단된 후 대부분의 평백성집들에서는 석유 아니면 카바이드를 조명에 리용하고있었다. 마동삼은 30전후의 얼굴이 기름한 건장한 청년이였다. 그는 간데라불통을 벽에 걸며 성시백에게 말했다.

《오늘밤엔 38°선을 넘기 힘들것 같습니다.》

성시백은 말없이 동행자를 쳐다보는데 안경속의 눈은 왜 38°선을 넘지 못하겠다고 하느냐고 묻고있었다.

《이번 충돌은 송악산은 물론 연백일대에서도 있었다고 합니다. 38°선을 자주 넘어다니는 장사군들도 길을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하고있습니다. 모험을 해서라도 38°선을 넘자면 산발을 타야겠는데 비가 사나와서 산을 넘어가기는 어려울것 같습니다.》

38°선에서 무장충돌이 터졌다는것을 모르고 개성에 온 그들이였다.

《아무리 비가 사나워도 방향은 바로잡을수 있겠지?》

《방향이야 북으로 가면 되는거니까 바로잡구 어쩌구 할게 있습니까. 그렇지만 먹물속을 뚫고 가는것 같겠는데 오솔길같은것도 찾기 어려울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바위투성이 산비탈을 기여올라가야 하구 거기다 비까지 쏟아져서 미끄럽기까지 하겠는데···》

《그쯤한 난관은 결심하고 떠난 길이 아니요? 내 걱정은 말구 떠나자구.》

성시백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타이르듯 이야기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두말을 할수 없게 하는 결연한 그 무엇이 있었다. 그는 어제 오후 마침내 평양방문을 결심하고 출발준비를 서둘렀다. 미중국전구사령관이며 장개석의 수석군사고문의 역할을 수행하고있는 웨드마이어가 대통령특사라는 요란스러운 명색으로 서울에 날아든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 며칠동안 언론계, 정계, 군부의 중진들과 빈번한 접촉을 가지며 이야기를 나누어온 그였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웨드마이어의 서울방문에 깊은 우려를 품고있었다. 우선 남조선에는 대통령특사를 맞이할 정부란것도 없었고 그와 마주앉아 그 무슨 방략을 론의할 상대도 없었다. 정치, 경제, 군사, 립법권, 사법권 이 모든것을 틀어쥔 남조선강점 미군이 있을뿐이였다. 이런 정치의 불모지, 인민의 의사가 가차없이 짓밟히고있는 군정만능지대에 대통령특사라는 요란스러운 명분을 안겨주어 웨드마이어를 서울에 파견하기로 한데는 그 어떤 중대한 목적이 있을것이였다. 트루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아시아며 유럽에서 미국의 지배권을 확립할양으로 별의별 롱간을 다 피우며 돌아치던 륙군참모총장 마샬이 일약 국무장관자리에 올라앉은 후 더욱 악독해지는 미국의 대조선정책, 반공미치광이 웨드마이어의 서울방문은 바로 이 우경화되고있는 미국의 대조선정책, 민족분렬책동이 결정적인 단계에 들어섰다는것을 보여주는 징조가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군사적도발이 목적이겠는가? 그런데 안타까운것은 미국의 이 민족분렬책동과 침략행위에 맞서싸워야 할 남조선혁명력량이 올해초부터 급격히 와해되고있는것이였다. 광복의 흥분을 안고 온 남조선땅에 뿌리를 박았던 혁명조직들이 미제침략자들과 그들의 비호와 지지를 받는 친일역적, 지주나부랭이, 월남도주해온 인민의 원쑤들··· 아무튼 인간쓰레기라고 할수밖에 없는 놈들한테 무지막지한 탄압을 받아 무리로 파괴되고있었다.

이런 때 려운형이 사람들의 래왕이 번잡한 대낮에 괴한의 습격을 받고 목숨을 잃는 비극적사태가 발생하였다. 려운형은 선지피가 쏟아지는 가슴을 그러안고 겨우 《조선···》이란 말을 한마디 남기고 절명했다고 한다. 려운형은 민족의 장래를 근심하며 숨을 거두었을것이다.

성시백은 끝맺지 못한 려운형의 유언을 짐작할수 있었으며 그가 절명하면서 필경 느꼈을 민족적재난을 느낄수 있을것만 같았다. 우리 조국의 머리우에 밀려드는 재난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했다. 그러자면 남조선혁명력량을 강화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겠는데 어떤 방략을 써야 이 복잡한 과제를 수행할수 있겠는지 성시백은 도무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김일성동지의 말씀을 들어야 앞날을 내다볼수 있을것 같았다. 그이를 만나뵈올 결심을 하고 그는 서울을 떠났다.

 

비에 젖은 무거운 어둠을 헤치며 성시백과 마동삼은 바위투성이 산비탈을 톺아올랐다. 그들은 송악산에서 천마산에로 치달아오른 험한 산릉선을 넘고있었다. 비물이 탕수처럼 쏟아져내리는 가파로운 산비탈을 기여올라가다가는 굴러떨어지기도 하고 한발을 올려짚었다가는 두발자욱씩 미끄러져내리기도 했다.

그들은 비발에 젖은 미명의 어둠이 아직도 아아한 산발을 감싸고있을무렵 두어개의 산등성이를 넘는데 성공했다. 량손이며 얼굴이 온통 째지고 상처투성이가 된 그들은 마침내 새벽빛이 깔린 골바닥에 내려섰다. 지난날에는 분명 논자리였을 바닥인데 버들과 가둑같은 잡관목이며 가막사리, 창포같은 잡초들이 허벅다리를 치게 자라올랐다. 38°선이란것이 생겨난지 불과 두해밖에 안되는데 농민들이 자기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농토가 이렇게도 어수선하게 황페해진것을 목격한 성시백은 금시에 가슴이 죄여드는것 같았다. 문뜩 멀리 서쪽에서 새벽정적을 깨뜨리며 자지러질듯한 총성이 울려왔다. 송악산쪽에서 비발에 젖은 회색장막을 뒤흔들며 울려오는 총성이였다. 이날도 치렬한 무장충돌이 계속될 모양이였다.

성시백은 다잡기 어려운 통분함을 느끼며 조선민족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을 강요하고있는 38°선이란것이 이 나라의 허리를 어떤 모양으로 동강내고있는지 온몸으로 절감했다. 비발이 얼굴을 때리는것도 느끼지 못하고 잡초속에 아래도리를 파묻고 지난밤 넘어온 거뭇한 산발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넘어온 저 산에는 38°선이 어디쯤을 지나갔소?》

그는 마동삼에게 물었다.

《경비막이 서있으면 거기가 38°선인가부다 하지 똑똑하게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송악산에서는 싸움이 붙었으니 거기선 이젠 똑똑히 알게 됐겠지요.》

《그래도 경계선을 표시한 표말같은것은 있을게 아니요?》

《나무말뚝을 박아놨다고 하는데 나도 지금까지 본 일이 없습니다. 38°선을 많이 넘어다니는 장사군들도 그런건 본 일이 없다고 합니다. 지도에나 그어져있겠지요.》

성시백의 가슴속에 억이 막힌 분격이, 비애가 파고들었다. 타드는 목안을 담배연기로 달래려는듯 속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으나 비에 젖어 범벅이 되여버렸다. 마동삼에게서 담배 한대를 얻어물고 연기를 내뿜으면서 성시백은 저쯤에 바라보이는 페가인듯싶은 침침한 색갈의 검은 그림자를 향해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소 한짝쯤 매고 산골농사를 지었을 너새를 얹은 집이였다. 너새들이 미끄러 떨어진 지붕에도, 깨진 질그릇이 여기저기 널린 뜨락과 토방에도 잡초들이 뒤덮였다. 성시백은 잠시 비를 그으며 다리쉼을 할 생각으로 토방우에 올라섰다. 기울어진 페가의 문지방에 걸터앉아 솔가이주했을 너새집농민을 생각하느라니 38°선을 가운데 두고 이런 불행을 강요당했을 수천수만의 겨레의 모습이 눈앞에 얼른거렸다. 광복의 감격을 안고 끓어번지던 겨레의 머리우에 분렬의 비운을 들씌운 외세의 무자비한 침략을 우리 민족이 어찌 잊을수 있겠는가.

잠시 휴식을 한 그들은 잡초가 우거지긴 했어도 달구지바퀴자리가 우묵우묵 패인 촌길을 따라 북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에 와서는 인적이 끊어졌지만 어떻든 이 길을 따라 북을 향해 가느라면 북조선측 경비초소에 맞다들것이며 마침내 평양에 이를것이였다.

그러나 무장충돌이 빈번한 요즘 38연선에 나와있는 경비대원들은 성시백이 생각한것처럼 그렇게 선의를 가지고 맞이해주지 앉았다. 30분도 걷지 않아 날카롭게 번뜩이는 총창과 거친 웨침이 그들을 멈춰세웠다. 애젊은 병사들은 마동삼이 나서서 무슨 말을 하건 일체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의 말보다 성시백과 마동삼이 밀수군 행색을 내느라고 등에 진 미국제약이며 천쪼박들을 더 중시했다. 그런데다 이들의 차림새는 또 어떠한가? 마동삼은 미국병사들이 입다버린것 같은 병사용바지에 역시 병사용반소매샤쯔였으며 성시백은 온통 째지고 구멍이 나긴 했어도 마카오나 홍콩에서 밀수입한게 분명한 고급미색양복을 입었다. 38°선남쪽에서 미군경비병들에게 걸려들었을 경우를 생각해 행색도 이 모양으로 꾸몄는데 이것이 이제는 우환거리로 된것이다.

이들이 호송병들의 엄격한 감시를 받으며 군보안서에까지 끌려간것은 이날 저녁이였다. 어느덧 는개로 변한 가느다란 비발이 어둠속에 젖어들고있었다. 성시백의 고향이 자리잡은 평산읍거리에 들어섰다. 방학이면 향수에 젖은 가슴을 울렁거리며 길가운데 서서 주위의 산천을 둘러보군 한, 그 산세에 그 하천이 분명한 고향땅을 죄수처럼 호송을 받으며 걷자니 가슴이 저며지는듯 아팠다. 자신을 달래기도 할겸 이런 취급에 격분한 마동삼이 무슨 일을 칠것만 같아 성시백은 엄격한 목소리로 그에게 주의를 주군 했다.

《일시 오해를 받은것이니 참아야 하오.》

군보안서에서도 역시 그들을 불법월경한 밀수군취급을 했다. 마동삼이 분격해서 서장을 대면시키라고 웨쳤지만 그의 이런 웨침은 일제의 패주병들한테서 빼앗은듯싶은 붉은 장화에 긴 칼을 찬 그 무슨 과장이란 사람의 자존심만 상하게 했을뿐이였다. 전연초소에서와 같이 여기서도 다이아징같은 미국약이며 마카오에서 밀수한 천쪼박, 미국경비병들에게 걸려들었을 때 찔러주려던 돈뭉치, 이런것들이 그들을 아무렇게나 다루어도 되는 밀수군취급을 받게 했다. 그들은 랭습한 소방대창고에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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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도끼로 내리찍은듯한 절벽을 감돌기도 하고 하늘에 닿을듯한 높은 령을 오르내리기도 하면서 압록강을 한옆에 끼고 허연 띠와 같은 신작로가 연연히 뻗어나갔다. 엊그제까지 쏟아져내린 장마로 해서 돌머리가 드러나고 땅이 패이기는 했지만 깐진 아낙네가 행주질을 한것처럼 신작로는 거울처럼 여름해빛을 눈부시게 반사하고있었다.

씻고 닦아낸것 같은 이 신작로를 두대의 자동차가 고르로운 속도로 달리고있었다. 앞차는 곤색승용차였으며 뒤따르는 자동차는 풍차였다. 앞차에는 내륙의 북변지방을 현지지도중인 김일성동지께서 앉아계시였으며 뒤따르는 풍차에는 김일이 타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 몸에 밴 심산속의 청신하고 상쾌한 정취에 취한듯 강건너 대안을 바라보기도 하고 여름의 강렬한 빛발을 걸탐스럽게 빨아들이며 우적우적 키돋움을 하는 산비탈의 무성한 초목에 마음을 두고계신듯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이께서 주의를 집중해 귀를 기울이고계시는것은 압록강연안 중국의 동북땅에서 울려오는 포성이였다. 2천리장강의 강폭이 좁아지고 내륙의 산악지대에 들어설수록 대안에서 울려오는 포성은 더 자주 가까이에서 들려오군 했다. 만주땅에서는 중국혁명의 운명을 건 처절한 대격전이 전개되고있었다. 현재 린방의 혁명가들은 일대 시련을 겪고있었다.

쏘련은 제2차대전시기 파괴된 경제를 복구할 시간을 얻을 생각으로 미국과의 대결을 피해 만주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린방의 혁명군은 발전된 중공업에 비옥하고 광활한 땅이 펼쳐진 동북3성을 전 중국해방을 위한 근거지로 만들 전략적목적을 세우고 재빨리 만주에 진출했다. 바로 이러한 때 웨드마이어는 본국의 지령을 받고 현대적인 전쟁잉여무기로 무장시킨 30만의 장개석군대를 비행기와 함선으로 동북지방에 투입하여 중국혁명군에게 말할수 없이 참혹한 타격을 가했다. 지난 겨울에만도 동사자가 10만에 이르렀다고 하니 얼마나 엄중한 타격을 받았는지 가히 짐작할만 했다. 혁명군은 남만과 북만의 산악지대로 철수하지 않을수 없었다.

한편 이와 때를 같이하여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이 막대한 희생을 내면서 2만 5천리장정을 단행하여 북중국에 건설했던 혁명근거지도 광란적인 장개석군의 공격을 받아 모택동, 주은래, 류소기와 같은 지도자들의 생사도 알수 없는 형편에 이르렀다.

장군님께서는 이웃나라 혁명가들이 겪고있는 시련을 방임할수 없으셨다. 단동교외의 어느 한 별장에서 중국의 혁명가들과 마주앉아 조중인민의 공동투쟁으로 시련을 극복하고 전환을 이룩할데 대해 의견을 나누신것은 중국혁명이 벌써 시련기에 들어섰을 때였다. 그이께서는 우리 나라도 건국도상의 어려운 처지에 있었지만 회의에서 결정된대로 민주련군(혁명군)이 하루빨리 반격에로 이행할수 있게 막대한 지원을 주고계시였다. 무려 10만정의 총기류와 포, 방대한 군수물자를 민주련군에 보냈으며 작전상 필요할 때는 우리 나라의 교통망을 리용해 민주련군이 이동할수 있게 하셨다. 지난날 항일유격대의 영향을 많이 받은 만주에 거주하는 조선사람들을 중국혁명에 참전케 하여 무려 25만이나 되는 청년들이 총을 들고 용약 전투에 떨쳐나섰다. 그러나 압록강이 유유히 흐르는 대안의 평야지대와 료동, 심양, 장춘, 길림··· 대도시를 비롯한 광대한 지역은 의연히 장개석군의 점령하에 있었다. 전투는 주로 사평가와 남만의 산악지대에서 치렬하게 전개되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땅을 파헤치고 뒤번져놓으며 대안에서 울려오는 폭음을 들으면서 민주련군이 빨리 시련을 이겨내기를 바라고계시였다.

발전소에 이른 장군님께서는 일제놈들이 파괴하고 달아난 대형변압기를 대보수하고있는 로동자들을 고무해주고나서 김일과 함께 언제에 오르시였다. 장개석군대가 두번이나 래습한 언제를 돌아보면서 침범의 규모를 현장에서 료해하셨다.

김일에게서 래습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료해한 그이께서는 물으시였다.

《파괴에 목적이 있는것 같소? 위협에 목적이 있는것 같소?》

《규모로 보아 위협인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다시한번 침해하면 한놈도 돌려보내지 않고 호수의 고기밥이 되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오. 파괴도 못하고 위협도 못한다, 우리에게 감히 달려드는자들은 저 깊은 호수의 고기밥이 되는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이것을 알게 해야 하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군님의 단호한 말씀에 김일은 차렷자세를 취하면서 말씀드렸다.

발전소의 경비를 철석같이 다질 방도를 세워주신 장군님께서는 김일을 급히 돌려보내셨다. 압록강하구의 황초평(황금평)을 장개석군이 점령했다는 긴급전화련락이 있었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압록강에서 얼마쯤 내륙쪽으로 굽어들어간, 유난히도 계곡의 물결소리가 드높은 한적한 산간의 농촌마을에서 하루밤을 쉬시였다.

계절이나 사업의 경중에 관계없이 진행되는 하루의 첫 일과가 시작되였다. 들추어대는 자동차에 앉아 수백리 먼길을 현지지도해오신 그이께서 미명무렵에 자리에서 일어나 산책을 하려고 마루에 나서신것이다. 부잇한 미명무렵의 안개가 장막처럼 드리워있었다. 그 새벽장막속에서 두세명의 호위원들에게 둘러싸인 꺽두룩한 군관이 목소리를 낮추어 무슨 말인가 하고있었다. 뜨락 한귀의 거밋한 토담밑에 보이지 않던 오토바이가 내던진듯 놓여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순간 긴장감을 느끼시였다. 그이께서 이 한적한 농촌에 계신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김책밖에 없었다. 김책은 웬만한 중대사가 아니고는 현지지도중인 장군님께 련락군관을 파견할 사람이 아니다.

마루에 나서신 장군님을 본 련락군관은 옷매무시를 바로잡고 정보로 그이앞에 와서 보고를 드렸다. 김책동지의 명령을 받고 도착했다는 보고였다. 온밤 산길을 달려오느라고 얼굴에 땀이 번질거리는 군관은 야전가방에서 한통의 문건을 꺼내 장군님께 드렸다. 그이께서는 문건을 들고 조그마한 방에 도로 들어가셨다. 놀랍고도 긴장하지 않을수 없는 보고를 두세번 읽은 장군님께서는 다시 마루에나서시였다. 호위성원들에게 에워싸여 평양소식을 이야기하던 련락군관은 토방에 내려서시는 장군님앞에 다가와 차렷자세를 취하였다. 회답을 주려고 방에서 나오신줄 안것이다.

《수고했소. 푹 쉬시오.》

옆에 서있는 책임부관에게 회답을 줄 때까지 련락군관을 휴식시키라고 지시한 그이께서는 몽몽한 물안개가 늠실거리며 피여오르는 골안을 향해 걸음을 옮기시였다. 비통한 심회가 쇠덩어리처럼 무겁게 명치끝에 매달린듯싶고 분격이 뇌리를 지지는듯한 심정이였지만 그이께서는 애써 마음을 눅잦히며 소란스러운 물결소리가 울려오는 골짜기를 오르시였다. 물안개에 축축히 젖은 바위들사이를 걸으시는 장군님의 눈앞에 짙은 우수와 풀길없는 의문으로 해서 이그러진 려운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장군님께서는 려운형의 놀라운 모습에 문뜩 걸음을 멈추시였다. 복잡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평양에 찾아들어오군 한 려운형에게서 한번도 느낀적이 없고 본 일도 없는 모습이였다. 그는 침통한 얼굴로 우리 민족의 머리우에 드리운 엄혹한 난국을 어떤 방략으로 타개하시려는가 묻고있는것 같았다. 장군님께서는 축축히 젖은 바위앞에 서서 소용돌이치는 물안개속을 들여다보며 귀가에 들려오는것 같던 려운형의 물음을 생각해보시였다. 안타까운것은 그의 물음에 흔연하게 대답할 방략이 아직 준비되지 못하고있는것이였다.

그이의 눈앞에 웨드마이어의 어렴풋한 모상이 건듯 스쳐지났다. 신문 한귀퉁이에 난 사진을 건듯 스쳐본적이 있을뿐이여서 뚜렷한 표상을 눈앞에 그릴수는 없으시였다. 김책은 련락군관을 통해 려운형이 암살당했다는 뜻밖의 사변과 함께 근간에 대통령특사의 명목으로 서울에 날아들게 될 웨드마이어가 고아대고있는 망발을 장군님께 통보해드렸던것이다. 맥아더와 함께 웨드마이어가 떠들어대고있는 망발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중국혁명을 지원하는 북조선을 가차없이 징벌하겠다는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생각에 잠겨 성급히 뒤설레며 바위머리를 씻고 때리면서 흘러내리는 골짜기의 급류기슭을 따라 걸으시였다.

김책이 보고한 두개의 사태가 하나의 고리로 련결된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우연한 일치인가? 우연한 일치라고 해도 사태는 결코 가볍게 대할수 없는, 정세가 급격히 악화되고있다는것을 뜻하는 징조였다.

그것은 려운형이 민족의 량심을 대변한 정치인으로 인정되여왔으며 미군도 남조선인민들의 민심을 고려하여 그를 감히 다칠 생각을 못한 사정과 관련된다. 반대로 미군은 자기네의 무지막지한 군정을 마치 민주주의가 시행되고있는듯 가장해보려고 좌우 수평관계를 유지한다고 떠들면서 려운형을 남조선좌익의 대표자로 대우했다. 미국놈들은 려운형을 미군사령부에 불러들여 그 무슨 부탁을 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경찰을 붙여 경호를 책임지겠다는 제의를 하기까지 했다. 물론 려운형은 미군의 이런 유혹들을 그럴듯한 구실을 붙여 거절해왔다. 이런 그가 백주에 참혹한 암살을 당한것이다. 이것은 미제침략자들이 민심도, 남조선정계에서 려운형이 차지하고있은 위치도 고려함이 없이 가차없는 폭압을 감행하는 길에 들어섰다는것을 의미했다. 웨드마이어가 고아대고있는 망발도 군사행동전야에서만 볼수 있는 사태였다.

그런데 웨드마이어가 군사적목적으로 서울에 날아든다면 무엇때문에 대통령특사라는 명분을 붙였는가? 리치로 따지면 맥아더사령부나 륙군성의 군인이 찾아오는것이 자연스러울것인데 미중국전구사령관에 장개석의 수석군사고문에 지나지 않는 그 반공광신자를 대통령특사라는 요란스러운 명색을 붙여 서울행각을 시키는가?···

두개의 사변이 하나의 고리로 련결되여있다고 해도 어쩐지 사개가 잘 물리지 않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렇다면 군사행동을 훨씬 벗어난 모종의 은밀한 사명을 지니고 서울에 날아든다는것인데 그것이 뭣이겠는가?···

새벽안개가 눈부신 아침해발에 황금빛으로 물들무렵 숙소에 돌아온 그이께서는 한장의 백지에 김책에게 보내는 회답을 쓰셨다.

《사태를 더욱 심도있게 밝히시오.》

 

장군님께서는 현지지도를 끝내고 귀로에 오르셨다. 궁벽한 산간벽지인 대령군내에 들어서면서 마음도 어깨도 한결 가벼워지는듯싶으시였다. 검푸른 전야에 새벽이슬을 차며 논밭에 나온 희끗희끗한 농민들의 모습도 수많이 볼수 있었지만 다른 고장에 비해 새로 지은 기와집이 류달리 많이 보였다. 하긴 토지개혁후 한해농사를 지었을뿐이지만 북반부의 농촌들에서는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개축하거나 추녀를 하늘높이 추켜든 덩실한 기와집을 도처에서 일떠세우고있었다. 그러나 땅이 척박한 이 산골군처럼 기와지붕에 회가루칠까지 산뜻하게 한 기와집을 저렇듯 많이 세운 고장은 보기 어려우시였다. 대령군에 곤궁한 생활속에 파묻혀살던 산간농민들을 민주건국의 밝은 세상에 이끌어내기 위해 무진 애를 쓰는 일군이 있는 모양이였다.

승용차가 또 한굽이 산모퉁이를 돌아섰다. 저만치 앞의 산기슭에서 수많은 농민들이 북적거리며 일을 하고있었다. 웃도리를 벗어던지고 곡괭이를 휘두르는 젊은이, 괭이로 찍어낸 흙을 가래질을 해서 산기슭에 올려던지는 중년, 옹구에 뭣인가를 무겁게 담아실은 소의 걸음을 재촉하는 농민들의 모습도 보였다. 지난해 수해를 입은 고장이여서 밭에 쏟아져내린 사태를 쳐올리면서 사방공사를 하는가 했는데 그런것 같지도 않았다.

장군님께서는 신작로옆에 세운 게시판에 전망도같은것이 붙어있는것이 눈에 띄여 자동차를 멈추게 하셨다. 군의 경내에 들어서면서 느낀 새로운 정취의 일단을 아실수 있을것 같았기때문이였다.

게시판에는 수리화공사의 전모를 그린 전망도가 붙어있었다. 전망도라고 해야 대령군경내에서 벌써 몇번이나 본 《쌀이 없이는 건국도 없다!》라는 힘찬 글발이 씌여있는 그밑에 서툰 솜씨로 강과 산을 그리고 논으로 풀 예정인 평지에 푸른 색칠을 한 극히 단순한 그림이였다. 대령강으로부터 산기슭을 따라 오불꼬불한 곤색선을 그려넣고 그옆에 수로라고 먹글씨를 쓰기는 했지만 그림을 보아서는 그 길이가 얼마나 되고 논으로 풀 땅은 몇정보나 되는지 바이 알수 없었다. 밭농사에 습관된 산간농민들이 논농사를 지으려고 수리화공사를 시작한것도 새로운 기상이 낳은 현실일것이다.

그이께서 공사의 규모와 진행정형을 설명해줄수 있는 상대를 찾아 공사장을 바라보시는데 아이를 업고 가래줄을 당기던 녀인이 허둥지둥 달려왔다. 녀인은 달려오며 머리를 비듬기도 하고 저고리의 앞섶을 여미기도 한다. 치마를 바로잡으려고 했지만 아이를 등에 업고있어 마음만 조급할뿐 생각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였다. 장군님 가까이에 다가오는 녀인의 해볕에 그을은 얼굴은 이 산골에서 그이를 뜻밖에 뵙게 된 감격으로 해서 벌써 벌겋게 상기되여있었다. 녀인은 장군님앞에 와서 정중하게 깊이 머리를 숙였다.

《군인민위원회 부위원장 김모라니가 문안을 드립니다.》

장군님께서는 크고 거칠거칠한 부위원장의 손을 힘있게 부여잡으시였다. 땀발이 굴러내리는 검실검실한 얼굴이며 검은 고무신을 신은 흙투성이 맨발, 발이 굵은 반베저고리는 땀에 화락하니 젖어있었다. 아이를 업고 가래줄을 당기느라고 그 모양이 된것 같다. 열성도 능력도 있다고 해서 간부로 등용하면 자신의 지난 처지를 잊어버리고 일제시기의 관료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을 한둘만 보아오지 않은 그이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북조선인민들의 통일단결을 좀먹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서든 근절케 하려고 간부란 말대신 지난날 품을 파는 머슴이나 로동자들을 가리키는 낱말인 일군이란 말을 쓰게 하는 조치까지 취하셨지만 간부들의 전횡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대령강가의 크지 않은 수리화공사장에서 농민들과 같이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있는 허술한 차림새의 녀성간부를 만나신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상대가 녀인이 아니라면 어깨를 와락 그러안고싶은 심정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전망도를 가리키며 녀성부위원장에게 물으시였다.

《이 전망도는 누가 그렸습니까?》

녀인은 자신의 서툰 솜씨를 장군님께 보인것이 부끄러운듯 얼굴을 붉히며 나직한 음성으로 답변을 드렸다.

《농민들에게 신심을 주자면 이런것이 필요할것 같아 몇사람이 모여앉아 그리기는 했는데 손에 선 일이여서 잘 되지 않았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부위원장을 칭찬하셨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만하면 자기네 고장이 어떻게 변천되여가고있는지 알수도 있고 신심도 가질수 있습니다. 특히 알곡증산은 곧 건국이라는 당의 구호를 전망도에 써넣은것은 아주 잘한 일입니다. 이 전망도에 푸르게 색칠한 곳이 앞으로 개답할 땅입니까?》

그이께서는 농민들의 희망을 상징하듯 푸른빛으로 색칠한 곳을 가리키며 물으시였다.

《개답할 밭도 있고 천수답을 수리안전답으로 만들 논도 있습니다. 작년에 열두정보를 개답했는데 수로를 째면 스물세정보를 논으로 만들수 있을것 같습니다.》

《이 산골에서 서른다섯정보면 대단합니다. 아주 큰 일을 하고있습니다. 물길의 길이는 얼마나 됩니까?》

부위원장은 답변을 드리지 못하고 쭈밋거리기만 했다. 대령강에서 논을 풀 평지까지 물길을 짼다, 이런 식으로 대체적인 계획을 세웠을뿐 수로의 총연장길이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산굽이를 한두개 돌면 논고장으로 만들수 있는 평지가 보이니까 물길의 총연장길이를 재지 않고 공사를 생각했을수 있습니다.》

그이께서는 밝게 웃으시며 왜 물길의 총길이를 미리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를 손가락을 꼽으며 말씀하셨다. 우선 로력과 자재, 공사기일을 예정할수 있고 물길을 결정하는 과정에 지질조건을 알아내서 반복시공을 없앨수 있다···

《그렇다고 이미 시작한 공사를 계획을 세운다, 물길의 길이를 잰다 하면서 중단해서는 안됩니다. 밭농사, 부대기농사에 매달려살던 농민들을 논농사를 지을 결심을 하게 한것만도 큰 일이였겠는데 이제와서 공사를 중지하면 영향이 좋지 않을수 있습니다. 우리가 평양에 가서 기술자를 보내줄테니 그 동무들의 방조를 받으면 됩니다.》

녀인은 자기가 겪은 고충까지 헤아려주시는 그이의 자심한 말씀에 눈굽이 뜨거워진듯 잠시 머리를 떨구고 서있었다. 그이의 마지막 말씀을 들은 부위원장은 눈굽을 훔치며 기쁨에 넘친 얼굴을 들었다.

《고맙습니다, 장군님!》

《응당 도나 농림국에서 도와주어야 할 일인데 고마와할것은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신작로 한옆에 누운 논배미들가운데서 농민들이 일하고있는 유난히도 검푸른 논을 가리키며 물으시였다.

《저 논은 종자가 다릅니까? 그렇지 않으면 영농법이 달라서 저렇게 벼가 잘 됐습니까?》

《새로운 방법을 도입한 논입니다. 이 고장에 <봉건>이란 말을 듣는 최씨성을 가진 늙은이가 한분 계시는데 언젠가 나들이를 갔다가 알아가지고 온 방법을 이 고장의 실정에 맞게 해본 영농법입니다.》

《그건 어떻게 하는 방법입니까?》

《아주 간단한 방법입니다. 해토무렵에 논에 모판을 짓고 종자를 뿌린 다음에 싹이 얼지 않게 거적이나 검불을 덮어주면 됩니다. 생육기일을 한 보름 단축할수 있습니다.》

보름을 단축하면 이 고장과 같이 여름이 짧은 산골에서도 벼농사를 지을수 있을것이다. 이런 영농법을 알아가지고 온 로인을 어째서 《봉건》이라고 하는가? 씨족마을을 꾸려놓고 좌상행세를 한다고 해서 그렇게 말들을 하는가?···

《그 최씨성을 가진 로인을 어째서 <봉건>이라고 합니까?》

《최뭐라고 하는 대마도에 끌려가서 왜놈의 음식을 먹지 않고 굶어죽은 량반과 같은 본이라면서 어떻게나 <봉건>을 내세우는지, 로인님도 아직 상투를 틀고있구 자식들도 머리태를 자르지 못하게 합니다.》

머리태를 자르지 못해서 아이들이 동네밖에 나올 생각도 못한다고 했다. 그래 마을에 꾸려놓은 서당에서 주로 공부를 한다는것이다.

《저 논에서 지금 일을 하고있는 동무도 그 <봉건>이란 말을 듣는 로인의 집안입니까?》

장군님께서 가리키시는 게시판옆의 논배미에서 일하고있는 농민들가운데 머리태를 등뒤에 길게 늘인 청년이 한명 보였다. 논에서 일하던 농민들은 방금 승용차에서 내린분이 자기네 부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시는것을 허리를 펴고 바라보고있었다.

《녜, 그렇습니다. 그 로인의 아들입니다.》

《저 청년의 나이가 올해 몇살입니까?》

《옹근 나이로 해서 올해 열여덟살입니다.》

《저 청년도 주로 서당공부를 했겠습니다?》

《녜, 그렇습니다.》

부위원장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나직한 음성으로 답변을 드렸다. 끌끌한 한 청년이 고루한 구습의 장벽에 부딪쳐 한창나이의 청춘시절을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고 지낸다고 생각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는 모양이였다.

부위원장이 장군님께 문득 말씀드렸다.

《장군님, 민전에 <공자동맹>을 내올수 없습니까?》

민전에 유교동맹같은것을 내오면 최로인을 개조하는데 도움이 될것 같다는 뜻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부위원장의 심정을 리해할수 있었지만 그의 안타까운 마음을 풀어주실수는 없었다. 광복전에 유교교리를 신봉하던 북조선의 유학자들은 이런저런 경로를 거쳐 이미 사상적전환을 했는데 산간의 몇명 안되는 늙은이들을 위해 새삼스럽게 유교동맹같은것을 내올수는 없었다.

《남조선민전에는 유교도련맹이 있지만 우리 북조선에는 유교교리에 깊은 학식을 가지고있는분이 몇명 없기도 하지만 유교를 숭상하던 사람들은 대체로 학식이 깊어서 유물보존이나 력사학계통에서 일을 하고있습니다. 북조선민전에는 그런 조직이 없습니다.》

부위원장은 저으기 실망한 빛을 지었다. 장군님께서는 유교교리의 피해를 입어 일생을 망칠수도 있는 군내의 한 청년을 걱정하는 부위원장의 세심한 마음에 못내 감동되시였다. 어떻게 해서든 부위원장을 도와주고싶으셨다. 그이께서는 책임부관을 돌아보며 나직이 이르시였다.

《저 논에서 일하는 농민들을 부르시오. 머리태를 늘인 젊은 동무를 꼭 데려오오.》

농민들은 황급히 어지러운 종다리를 도랑물에 씻기도 하고 옷매무시를 바로잡기도 하며 얼마간 시간을 보냈다.

그사이에 그이께서는 부위원장에게 물으셨다.

《공부는 어디까지 했습니까?》

녀인은 불깃해진 얼굴을 숙이며 나직한 음성으로 말씀을 드렸다.

《8. 15전에는 공부를 못했습니다. 광복후에 성인학교에서 배우고 군녀맹사업을 하다가 지금은 부위원장사업을 하면서 성인학교 교원노릇도 가끔 합니다.》

그러니 광복전에는 학교문전에도 가보지 못한 한 녀인이 광복후 속성교육을 받고 지금은 군인민위원회 부위원장사업을 하고있는것이였다. 아이를 등에 업고있는것으로 보아 자식들을 거느린 어머니인것이 분명한 30대의 녀인이 부위원장사업에 성인학교 교원까지 하자면 여간만 드바쁘지 않을것이다.

《아이는 몇이나 됩니까?》

《좀 많습니다. 제 등에 업힌게 넷쨉니다.》

《넷?···》

장군님께서는 사뭇 놀라며 강냉이알같은 든든한 웃이가 드러나군 하는 녀인의 두리두리한 얼굴을 다시한번 여겨보시였다. 시부모와 남편이 아무리 뒤를 잘 받쳐준다고 해도 아이 넷을 슬하에 둔 녀인이 성인학교 교원까지 한다는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건국을 위해 한몸을 돌보지 않으면서 일을 하고있는 녀성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세명의 농민이 승용차 가까이에 오기는 했으나 더 다가설념을 못하고 그저 웅기중기 서서 주밋거리고있었다. 부위원장이 나직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

《왜 그러구 섰어요? 장군님께서 부르셨는데 어서 와서 인사를 드리라요.》

김일성동지께서는 뒤를 돌아보셨다. 농민들은 장군님을 뵙게 된것이 그저 꿈만 같고 오늘의 이 행운을 도무지 믿을수 없는듯 환희에 넘친 눈으로 그이를 우러렀다. 그들은 부위원장의 말을 듣고서야 황송한 몸가짐으로 그이앞에 와서 허리를 깊이 숙였다. 그러나 큰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한것처럼 주눅이 든 중키의 최성근이란 청년은 나이 지숙한 농민들처럼 웃몸을 깊이 숙이지 못했다. 등뒤의 머리태를 장군님께서 보실것 같아 웃몸을 깊이 숙이지 못한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최성근앞에 다가가 너그러운 웃음을 웃으며 그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였다.

농민들과 올해의 작황을 묻기도 하고 가정형편을 알아보기도 한 장군님께서는 얼굴을 들지 못하고 서있는 최성근만을 뒤에 좀 남으라고 하고는 다른 농민들은 돌려보내시였다.

《부위원장동무의 말을 들으니 서당공부를 했다는데 어디까지 공부를 했소?》

최성근은 부끄러운 자기의 생활을 장군님께 말씀드리게 된것이 못내 죄송스러운듯 머리를 수굿한채 알아듣기 어려운 나직한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맹자까지 읽었습니다.》

《그럼 사서를 뗐다는 말인데 그만하면 서당공부를 많이 했구만. 신식공부는 어떤 공부를 했소?》

《부위원장아주머니가 성인학교교재를 갖다주어서 2학년과제를 공부하고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부위원장이 이 청년을 고루한 《봉건집안》에서 끌어내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있다는것을 알수 있으시였다.

《2학년과제를 공부하고있으면 중학교에서 공부할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는 말인데 조무래기들하고 한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할 결심이 되여있소? 성인학교는 아무래도 정규교육이라고 할수 없으니 이제 이 군에도 중학교가 서면 중학공부를 할 결심이 되여있는가 하는것이요.》

최성근은 답변을 드리지 못하고 머리를 무겁게 떨구고 서있기만 했다. 그 모양을 안타까운 눈길로 지켜보던 부위원장이 불쑥 장군님께 말씀드렸다.

《최성근동무는 군대에 입대하고싶어합니다.》

《군대에?》

부위원장의 너무나도 뜻밖의 말에 장군님께서는 자못 놀라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시였다. 봉건의 마지막피해자가 혁명군대에 입대한다는것은 당치 않은 일같지만 한편 또 생각해보면 그것이 선진대렬에 들어서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일수도 있었다. 항일유격대에도 봉건적가정에서 뛰쳐나온 청년들이 없었던것은 아니다.

《군대에 입대하자면 머리태를 잘라야겠는데 아버지가 찬성을 하겠습니까? 경비대나 보안간부훈련소에는 본인은 물론 부모가 찬성했을 경우에만 입대할수 있습니다. 부위원장동무는 최령감님의 동의를 얻어낼 자신이 있습니까?》

녀성부위원장은 난감한 빛을 지으며 머리를 숙였다.

《군대에 입대하자면 아버지를 납득시킬 용감성쯤은 있어야 하겠는데 최성근동무 어떻소? 아버지의 동의를 얻어낼 자신이 있소?》

수굿하고 서있던 최성근의 머리는 더욱 무겁게 밑으로 처져내리고 어깨는 한결 더 우그러들었다. 아버지의 동의를 얻어낼 자신이 없는 모양이였다.

《만일 최령감님이 아들의 입대를 찬성하면 부위원장동무가 최성근동무를 가까운 부대에 데리고 가서 우리가 이 동무의 입대를 찬성했다고 말하시오. 지금은 더 많은 알곡을 내서 건국에 이바지할 생각을 하면서 성인학교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머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정중히 드리는 최성근의 손을 다시한번 힘있게 잡아주며 말씀하시였다.

《자기의 장래는 자신이 개척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오. 아버지의 동의를 얻어낼 방도를 생각해보시오.》

저만쯤에서 맥고모를 머리우에 올려놓은 사나이와 또 한명의 민머리의 중년이 달려왔다. 장군님께서 신작로에 자동차를 멈추고 군사업을 지도하고계신다는것을 뒤늦게 전달받고 달려오는 군간부들이였다. 그들은 장군님앞에 달려와 인사를 드리며 자기 소개를 했다. 맥고모를 벗어쥔 사나이는 군인민위원회 위원장이였으며 그옆의 사나이는 부위원장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인사를 받고나서 지금 진행하고있는 수리화공사에 매일 몇명의 로력이 동원되고있는가? 군기관들에서는 어떤 방조를 주고있는가? 이런저런 문제를 알아보시였다. 그런데 위원장도 부위원장도 곧 정확한 답변을 드릴수 없어 김모라니라는 별스러운 이름을 가진 녀성부위원장의 얼굴을 돌아보군 했다.

《이 군에 들어서면서 보니까 새로 기와집을 많이 지었는데 토지개혁후 개축하거나 새로 지은 기와집은 몇채나 됩니까?》

그이의 이 물음에도 아이를 업고있는 녀성부위원장이 답변을 드렸다. 장군님께서는 이 군의 경내에 들어서면서 느끼게 된 농촌의 새로운 면모며 농민들의 앙양된 건국기상은 아이를 넷이나 두었다는 부위원장의 노력에 의한것이라는것을 알게 되시였다.

그이께서는 승용차에 오르기전에 군일군들에게 간곡히 말씀하셨다. 현시기 농업부문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알곡증산이다, 알곡을 증산하자면 수리화를 해야 하고 선진적인 영농법을 도입해야 한다. 이 군에서는 이 모든 일을 다하고있으니 다른 산간군보다 앞섰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일군들이 한덩어리가 되여 시작한 일을 끝까지 내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기껏 시작한 좋은 일도 훌륭한 결실을 얻을수 없다. 무엇을 놓고 한덩어리가 되여야 하는가? 대령군에서 발휘되고있는 건국기상이 활짝 꽃피고 열매를 맺을수 있게 하는 사업을 놓고 단결해야 한다.···

《지금은 건국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때입니다. 수고를 해주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군일군들의 손을 또 한번 굳게 잡으시고 자동차에 오르시였다. 남으로 달리는 승용차의 앞창을 향해 푸른 하늘이 달려왔다. 그이의 눈앞에 또다시 려운형의 그 무엇을 묻는듯한 우수에 잠긴 눈길이 떠오르고 귀전에 웨드마이어의 망발이 들려왔다. 그러나 려운형의 눈길도 웨드마이어의 망발도 어느새 사라지고 강냉이알같은 앞이가 드러나군 하는 입을 북두갈구리같은 큰 손으로 가리우며 산골군의 장래를 확신에 넘쳐 이야기하던 녀성부위원장의 얼굴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북조선 도처에서 앞을 다투며 태여나는 수천수만의 새 인간들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며 장군님께서는 조국의 머리우에 드리운 엄혹한 정세를 타개해나갈 방략을 모색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