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6

 

6

 

박창술이 일으킨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해서 강병철은 지하실로부터 1층 구석방으로 옮기게 되였다. 책상 하나를 들여놓을만한 작은 방이였다. 이전에는 청소도구같은것을 넣어두던것 같았다. 지는해가 잠간 비쳤다가 사라지는 뙤창이 한쪽에 있고 오래전부터 비였던 모양이여서 곰팡내가 꽉 차있었다. 널마루짬으로는 밤이고 낮이고 찬바람이 솔솔 올라와 뼈속까지 스미였고 키낮은 합판천정에서는 쥐새끼가 언제나 와락와락하기도 하고 찍찍거리기도 하였다.

보안서는 강병철이보다 박창술때문에 더 분주스럽게 지내고있었다. 그 누구도 박창술을 완력으로 눌러낼수 없었고 더구나 그를 리치를 캐서 진정시킬수도 없었다. 사실상 박창술의 립장이 되고보면 그것은 생사판가름을 해서라도 풀어야 할 절박한것임에 틀림없었다. 리치로 보아 정당한데다가 그의 과도한 열정에 의해 분출하는 행동, 얼마간 조폭하기까지 하면서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행동을 막아내지 못하였다.

《나한테 정대를 달라. 그것을 못하겠으면 강병철을 내놓으라.》

박창술은 자기를 설복하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들이대군 하였다. 그러면 한번 상대해본 사람들은 모두 《그 사람은 그렇게밖에 할수 없는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강병철은 빈방에 홀로 앉아서도 이것을 죄다 알고있었다. 누가 친절하게 귀띔해주지는 않았지만 토막토막 들려오는 말마디들과 보안서원들이 주고받는 짤막한 대화들을 통해서 이러한 표상이 생긴것이였다. 강병철이로서는 이것이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될수 있었으나 그는 그렇게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자기 총화를 끝내였으며 확고한 결론에 도달하였기때문이였다. 때문에 그는 박창술에 대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또 때로는 그 사건에 말려들기도 하였지만 거기에서 어떤 기대를 가지게 된것도 없었고 따라서 자기생활궤도를 추호도 달리할만한 충격으로는 되지 못했다. 다만 그는 인정적으로 감사하다는것과 인간으로서 솔직하고 완강한 청년을 본것으로 해서 탄복해마지 않을뿐이였다. 하여 강병철은 방을 옮기기 위해 자기 소지품을 깐깐히 걷어가지고 일어나면서도 저쪽에 대고 그 어떤 뜻이 담긴 인사말 한마디 한것이 없었다.

강병철은 만년필을 탁자우에 덜컥 소리가 나게 던지면서 발부터 쭉 폈다. 오금이 끊어지는것 같이 저리고 머리가 휘휘 돌았다. 눈앞에 별찌가 날았다. 그는 한참동안 이마를 붙잡고있다가 안경을 벗었다. 수건으로 안경알을 꼼꼼히 닦았는데도 무엇이나 다 뿌옇게 허상이 져보인다. 얼굴은 홀쭉해지고 코마루가 더 날이 서보이였다. 그는 만년필을 다시 집어들었다.

방을 옮긴지 이틀만에 련3일간에 걸친 장문의 편지를 끝맺게 되였다. 그 편지는 4살짜리 아들 강영남에게 보내는것인데 그거나마 그렇게 긴요한것도 아니며 그렇게 힘들여 써야 할것도 아니였다.

문기척소리가 나더니 이미 낯익은 젊은 보안서원이 나타나 본궁에 있는 원시범이 찾아왔는데 만나보겠는가고 하였다.

《만나?》하고 그는 잠시 멍청히 상대방을 쳐다보기만 하였다. 불과 열흘전에 왔다갔는데 왜 또 왔는가 하는 위구가 앞서고 뒤이어 만나봤대야 별일이 없을것이라는 예측이 따라섰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만나지요.》하는 대답이 나갔다.

한 1분되나마나했는데 문이 쩍 열리더니 키가 껑충한 원시범이 나타났다. 들가방을 들고 머리에는 공장에서처럼 기름에 전 작업모를 올려놓았다.

《그새 어떻게 지냈나? 방을 옮긴걸 보니 무슨 대우개선이라도 있은것 같군 그래.》하며 원시범은 그간 있었던 일들은 완전히 모르는것처럼 하면서 롱을 걸었다.

《대우개선정도가 아니네. 이제 천당에 올라가는 문고리를 잡게 되였네.》하며 웃자고 하는것 같은데 그의 얼굴은 정반대의 서글픈 표정을 보이고있었다.

《어허 이것봐라. 정말 달라지긴 달라졌구만. 언젠가는 하느님을 비난하더니 이제는 한옛날로 되돌아간셈인가?》

그러면서 원시범은 쟈크가 달린 려행용 가방을 열고 과자와 통졸임통들을 집어내놓았다. 마지막에 탁자가 텅 울리게 내놓은것은 백지에 정성들여 싼 책이였다.

《뭔가?》

원시범은 책을 툭툭 쳐보이며 대답했다.

《자네 밥바가지야. 이전에 들렸을 때 잊은거네. 특수합금법!》

《이건 또 어데서 새로운 신창탄광이 또 하나 나타났어.》

이때만은 정말 두툼하고 푸른 강병철의 입술에 유모아적인 웃음이 한껏 나타나있었다. 그들은 우정에 넘친 이전 본래의 생활정취를 그대로 풍기면서 은유적으로 또는 해학으로서 자기 감정들을 각각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몇개의 계란빵과 함께 과일통졸임을 모조리 없애치웠다.

《그래 어째 또 왔나. 이런 식으로 사식을 계속 넣자는건 아니겠지.》

물을 마시고나서 입을 훔치며 강병철이 물었다.

《그렇네. 사식을 넣는것이 목적이네. 그래서 또 왔어.》

《그렇다. 사식이 푸짐해 좋군 그래.》

《아직 난 그 사식보자기를 풀지도 않았는데.》

《오! 또 그걸 먹이려고. 하하하. 인생행로는 하나이거나 둘만이 아니라 무수하다. 유크리트에 대치시킨 반유크리트 그래서 왔단말이지. 알겠네, 알겠어.》

이렇게 앞질러나가면서 강병철은 줄곧 명랑해지려고 하였지만 감정은 그의 의도를 따라오지 않았으며 오히려 완강하게 반발하여 더욱더 그의 행동을 어색하게 만들었다. 그것을 예민하게 감촉한 원시범은 그제서야 《사식보따리》를 펼치기 시작하였다. 그는 먼저 자기나름으로 이번 사건에 대한 앞으로의 발전과 그의 종착점으로서의 결속에 대하여 추리하였다. 로폭파는 그것이 고의적이 아니였다는것으로 끝까지 내뻗쳐야 한다. 그것은 사실과 부합되는것이며 또 다른 경우,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도 그 편이 유리하다. 다음은 이것으로 해서 이제 서게 되는 새 정부나 어떤 정권이 사형언도같은것을 내릴것인가. 그렇게는 될수 없다. 절대로 그렇게는 안된다. 그런데 어떤 공산분자가 적개심때문에 극단한 행동을 할수 있다. 그런 함정에 절대로 걸려들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종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지연전술을 써야 한다. 이제 내가 평양에 올라가서 맨먼저 최준걸을 만나겠다. 그한테는 어렵지 않게 우리구상을 접수시킬수 있다. 그다음에는 김책을 만난다. 사실 알고보면 김책은 독한 술과 같아서 자극이 세기는 하지만 후환이 없는 사람이다. 그가 아직 여기에 손을 뻗치지 않는것을 보면 《땅!》 해치울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것이 명확하다.

이렇게 해도 정 안되는 경우에 최후의 방법으로 김일성장군님께 상소하자. 이것을 위해서는 강병철 너자신이 본정 2층집에서 만났을 때 론의한것을 풀어서 편지를 한장 잘 쓰는것이 좋겠다. 그때 그 무슨 언약이 있었다니까 그것을 충분히 상기시키면 효과가 있을수 있다. 이것이 일단 생명을 부지하기 위한 첫 단계사업이다. 다음 단계에는 말그대로 일변도로 나가지 말자. 외구멍으로만 나가려고하지 말고 다각통로를 개척하자.

《솔직히 말하면》하고 원시범은 음성을 탁 낮추어 마주앉은 강병철도 겨우 들을 정도로 말하였다. 《우리 인테리가 무엇때문에 공산주의자들과만 손을 잡아야 살아갈수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이 외통길밖에 길이 없는가. 인생철학은 그렇게 말하고있지 않아. 목적을 향해가는 길은 무수하다는거네.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 개체의 성공이네. 그것을 위해 우리는 무수한 통로를 내다볼수 있고 그중에서 가장 적절한것을 선택할 권리가 지어져있단말일세. 내가 자네한테 넣어주는 <사식보따리>는 이것이 전부네. 우리가 서울 안국동 뒤골목 술집에 앉아 미국사람과 담판하던것을 상기해보라구. 이상이네. 난 할말 다 했네.》

고개를 떨구고 듣고만 있던 강병철이 안경을 벗어서 탁자우에 놓으며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원시범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강병철의 눈초리는 분명히 파르르 떨고있었다. 빛을 잃어버린 근시안은 한걸음 나앉아 아래우를 두세번 거듭 훑어보더니 이윽해서 주먹을 천천히 머리우까지 들어올리였다. 다음순간 실성한 사람처럼 와락 달려들면서 멱살을 움켜쥐더니 원시범의 따귀를 후려쳤다. 매를 맞은 원시범은 태연하게 앉아있는데 강병철은 마치 자기가 맞은것처럼 머리를 싸쥐고 마루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울음을 터치였다. 몇분동안 서로 말이 없었고 엎드려 울고있는 강병철을 들어일구려고도 하지 않는다.

《난 가겠네. 알아두게. 난 한두번만 생각해서 한 말이 아니기때문에 내 계획에는 변동이 없어.》

원시범은 가방을 집어들고 일어서며 단호하게 내뱉어버린다. 그러자 강병철은 고개를 들고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주소를 적은 다음 탁자에 놓았던 편지를 조심스럽게 넣어 내밀었다.

《나도 내 계획을 조금도 바꿀수가 없네. 이걸 부탁하네.》

《영남? 응! 알겠네 알겠어.》

이것으로 그들은 또 한번의 작별을 치르게 되였다. 원시범은 자꾸 멀어져가는데 강병철은 창밖으로나마 내다보면서 그를 배웅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오직 그는 다시 침착해지려고 애를 쓰면서 책가방을 천천히 당겨 무릎에 놓고 약봉지에서 약을 꺼내였다. 다음 그는 좌우를 살피며 물주전자를 찾았다. 물주전자는 탁자우 한쪽에 이전처럼 놓여있었는데 그는 마치 그것을 처음 발견하기나 하는것처럼 한참동안이나 유심히 보고있다가 물잔에 물을 따랐다. 《루미나르》라고 쓴 약봉투를 확인하고나서 그는 10회분인 10개의 봉지를 하나하나 풀어서 한군데 모았다. 약종이가 넘칠만치 분량이 많았지만 그래도 한번에 넘길수는 있었다. 그는 음울한 시선을 물잔으로 가져가더니 그것을 들어서 한모금 마셔 우선 갈증이 난 목과 입안을 추기였다.

《안국동 뒤골목을 생각하라.》 그는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것도 오늘과 같은 하나의 인생희롱이였지.》

원시범이 안국동을 생각하라는것은 그에게 아무런 충격도 자극도 줄수 없었으며 오직 혐오와 허무감을 자아낼뿐이였다.

대구에 있던 강병철이 서울에 올라와보니 사정이 달라졌다. 안국동뒤골목에서 햄스라는 미국신사가 만나자고 하였다. 어간에 나선것은 영어강습소를 금방 차린 민기환이라는 사람이였다.

햄스는 능숙한 조선말로 《강병철선생을 우리는 알고있은지 오래됩니다. 이제부터 우리 미국과 조선의 영예를 위해서 새로운 강철을 만들어보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위해 우선 몇달동안 미국에 려행을 하시는것이 어떻습니까?》하고 물었다.

바로 그 순간 강병철의 머리에는 려순공대를 졸업했을 때 일본인교수 오까모또가 한 바로 그와 똑같은 말이 떠올랐다.

《그래 당신은 결국 우리더러 스칼레트와 같은 인생관을 가지라는거지요. 치부를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데 신사나리는 무슨 말인지 잘 리해가 가지 않는 모양인지 《스칼레트, 스칼레트》하고 반복하였다.

그래 강병철은 《아트란타의 스칼레트를 모르면 당신은 우리 성춘향이가 그와 짝이 될수 없다는 말을 잘 리해할수 없겠는데요.》하고 비꼬아붙이고나서 《나는 원시범이와 함께 북조선에 가보기로 결심하였소!》하였다.

그때 그는 이 한마디 말을 남기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시 추억할것도 없고 그것을 상기만 해도 진절머리가 나는데 원시범은 그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아니 그 길이 제일 현명한 길이라고까지 한다. 구역질이 날만큼 혐오스러웠다. 강병철은 고개를 들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누가 자기의 심리를 엿보고있는것 같았다. 불안이 생긴것이다. 현기증을 일으켜 벽을 붙잡고 겨우 몸을 바로 세우고나니 온몸에 식은땀이 쭉 내돋았다.

(갈길은 얼마든지 있다고? 천만에)

그는 수건을 꺼내 이마와 목덜미를 훔치였다. 그런 다음 벽을 짚고 뙤창으로 다가갔다. 공연히 그쪽으로 자꾸 마음이 쏠리는것이였다. 책장 두너비만한곳으로 내다보이는 외계에 자기가 이제부터 가야 할 길이 있는것 같은 착각이 생기였다. 그는 수염이 꺼슬꺼슬하게 자란 턱을 이그러뜨리며 빙긋이 웃음을 지었다. 어리석은 자신을 보게 된것이다. 그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툭툭 치고나서 다시 벽을 등지고 마루에 앉았다. 그때 《스르륵》하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는 돌아다보지도 않았다. 환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무릎에 흰것이 툭 떨어지는것이다. 눈여겨보니 한장의 종이쪽지였다. 후두두 떨리는 손으로 집어들었다. 쪽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탈주하라. 당신은 며칠안으로 총살된다. 서호에 있는 <해방려인숙>으로 오든지 평양의 <3. l려관>으로 오라. 서울에서 강병철을 기다리고있다. 민○○》

입가에 쓴웃음을 지은채 눈을 내리감았다. 공연히 가슴이 후두두 떨리였다. 《서울, 민》 등으로 미루어보아 미군정청에 드나들던 로이터안경쟁이의 작간이 아니면 안국동에서 만났던 그 줄이 보냈을것으로 짐작되였다. 그는 쪽지를 꼬깃꼬깃 구겨서 툭 튕겨버렸다. 벽에 부딪칠 때 (이것도 또 하나의 길인가?)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렇다. 이것은 또 하나의 길이다. 원시범이 말하는것에 비하면 훨씬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내가 이 길을 택하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그 길을 갈수 있다. 변소에 간다고 하고 내뺄수도 있고 저 뙤창구멍으로도 능히 빠져나갈수 있지 않는가. 그러나 그렇게 찾아간 그앞에는 무엇이 기다리고있을것인가. 그것은 형태와 장소를 달리한 이곳 흥남의 생활과 같을것이다. 그것도 잘되는 경우에 야하다의 미국판일수도 있다.)

그의 가슴은 텅 빈것 같았다. 한발이나 되는 막대기를 휘둘러도 아무 거칠것도 없는 공허뿐이다. 그는 10년전만 해도 순결하기 그지 없는 순박한 청년이였다. 그때는 보통학교 교실 면판에 써붙인 《정직, 례절, 근면》 그것을 고스란히 그대로 받아들였었다. 한데 생활은 그것을 첫걸음부터 무자비하게 부정하였다. 사람들은 정치와 사회체제와 무관계한 자연과학은 해볼만한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려순에서와 야하다에서 본 전기나 강철은 정치와 권력이 가장 첨예하게 반영되는 요점에 있었다는것을 그는 통감하였다. 그때부터 그는 정직성에 의해서 지탱되여야 한다던 청소년시기 인생관을 집어던지고 량심이라는 하나의 안전하고 우아한 지팽이에 의지하게 되였다. 일본인들이 눈을 부라리면서 명령하고 강요할 때 량심은 그에게 항거하라고 하였다. 《인간은 인간으로서 존엄을 잃게 되면 벌써 개짐승이나 다름없다. 항거하라, 항거하라.》하고 량심이 추기였지만 그렇게 할수 없었다. 량심이라는 지팽이의 다른 한끝은 순종하는것이 항거하는것보다 몇배나 더 헐하다고 하면서 배신의 길로 이끌어갔다. 그것이 바로 이곳 최성우라는 청년이 몽둥이를 들고 접어들만큼 적의를 불러일으켰던 야하다의 생활인것이다.

이북에 넘어와서 첫걸음은 매우 락천적으로 내뗄수 있었다. 이미부터 가지고있던 량심은 활개치고 창공을 날았다. 그렇다. 량심이 가리키는 그 길로 나가자. 《우리 조선의 공업을 일으켜 세우자!》 그것을 위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다 기꺼이 바칠수 있다. 모두다 바치고싶었다. 지혜도 정열도 희망도 지어 개인의 행복도 다 바칠 각오를 하였다.

(아, 그러나 이 량심을 받아주지 않는 마당인데 내가 무엇에 지탱해서 서있을것인가. 모든것이 허무한것으로 되였는데야. 나는 지금 반동분자로 인정되고있다. 로폭파는 고의적이 아니였는데 나는 그것을 고의적이였다고 량심을 배반하면서 그렇게 말했고 그것을 서면으로 적어내였다. 이렇게 하지 않고는 끝나지 못하는것이다. 이것은 객관이 이렇게 요구한것이며 또 나 자신이 그렇게 자기를 만들었다. 이런 경우에 그 유명한 마태복음 18장 21, 22를 상기해볼수 있는것이다. 《뻬뜨로가 예수에게 물었다. <주여! 형제가 나에 대해서 죄를 범했을 때 몇번 용서하리까 7번 하리까> 예수 대답해 가로되 <나는 7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7번을 7번 곱할지어다.> 여기에다가 마태복음 5장 39 <만약 누가 오른뺨을 때리면 다른 뺨을 돌려댈것이다.> <적을 사랑하고 박해하는자를 위해 기도하라.>》 이 얼뜨기같은 교리를 그대로 내 인생에 끌어들인다고 하자. 그러나 내가 소망한 내 나라를 위한 내 량심은 어데로 가는가? 그러면 어데로 가야 하는가. 갈길은 없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탱점을 잃은 말뚝은 서있지 못한다는 물리학의 공리는 무조건 옳은것이다.

결국 나라는 인간은 지금 량심을 지탱할 그 어떤 믿음이 없는것이다. 신념이 없는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믿는가, 그것이 없다. 인류의 태반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그들은 지금 중세기때처럼 죽어서 하늘에 있는 천당에 가겠다는 무지몽매한, 오직 그것만을 위해서 신을 믿고있다고 볼수는 없다. 그들도 이른바 과학의 빛발아래 《진보》한것이다. 그러나 신앙에 의해 생의 지탱점을 가지려는 욕망은 더욱 뚜렷해지고 그것이 생을 의의있게 하고 허무한 생에 그 무엇인가를 가지고 충만시키고있는것만은 사실이다. 그런데 내가 이제 제3의 인생관으로서 신을 믿고 신을 위해서 내 나라 합금강을 만들며 그것을 기쁨으로 내 한생을 보람있게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할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절대 불가능하다.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나 나의 량심이 모자라는것이다. 나는 여직 부유한 가정에서 나서자랐다. 때문에 의식주에 있어서 불편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생의 의의를 헤아리는 정신적재부에 있어서는 완전히 무산자이며 거지였다. 무엇인가를 구걸해서 한끼한끼 연명해온것이다. 결국 일본사람들한테서 생을 비럭질한셈이다. 그리고 또 내가 이제 그와 똑같은 수로써 여기서 생을 구걸해야 하는것이다. 이렇게 살아서 과연 뭘하는가. 때문에 나는 원시범의 충고에 따를수 없어 그것도 버리고 나자신도 버리자고 하는것이다.)

그의 눈앞에는 한길어름까지 따라나왔던 아들애의 얼굴이 나타났다.

(영남아! 잘 있거라. 부디 잘 있거라. 네가 커서 이제 인간이라는것을 리해하게 될 때면 이 못난 애비가 보낸 편지의 뜻을 알게 될것이다. 사탕을 사들고 너를 찾아가지 못하는 애비를 용서하여라. 어머니를 위로하면서 살아라.)

강병철은 눈물이 글썽한 눈을 들어 약봉지를 찾았다. 그런 다음 한쪽손에 물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이것을 목구멍에 넘기면 30분안으로 모든것을 가볍게 망각에로 끌어갈것이다.

《탕탕!》 요란한 문기척소리가 나더니 검은 그림자가 그의 시야를 꽉 채우는것이였다.

《나오시오. 어데 좀 가야겠습니다.》

강병철은 물을 마시면서 한쪽손에 들었던 약봉지를 꾸겨쥐였다.

《어데로 간다구요?》

그는 태연하게 물었다.

《공장사무실로 나갑시다. 옷을 단정히 하시오. 그렇지. 세수를 해야겠습니다.》

강병철은 수도칸으로 나가 물을 틀었다. 그런후에 하얗게 가루가 발린 손을 물에 슬며시 잠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