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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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보고자가 일제히 자리를 뜨려고 했을 때 좌현이가 나타나 흥남에서 전화가 걸려왔다고 하였다.

《흥남에서? 누구한테서요?》

그이께서 물으시자 좌현이는

《탄광에서 온 사람이라고 하는데 긴급한 일이 있다고 하면서 바꾸어달라고 합니다.》

《긴급한 일이면 이쪽으로 돌리시오.》

좌현이가 돌아나가는것과 함께 김일성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집어드시였다. 두 보고자는 흥남이라는것에 한껏 호기심이 생겼지만 방을 비우기 위해 자리를 뜨려고 하였다. 그러자 그이께서 잠간 기다리라고 손짓을 하시고 전화를 받으시였다.

《네! 제가 김일성입니다. 네! 신창탄광의 누구?··· 박···》

전화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다.

《바가지라는 박, 알겠소. 창끝이라는 창, 다음엔 음! 술술 넘어간다는 술, 박창술 하하하 알겠소, 박창술, 가만.》

그이께서는 최준걸에게 박창술이 누군가 기억이 나는가고 물으시였다. 최준걸은 신창탄광자치회책임자가 박창술이라고 말씀올리였다.

《그래 용무를 말하시오. 음! 음! 석탄을 캐야겠는데 정대가 없다. 그래서, 그래서 와보니 정대를 만들수 있는 기사는 붙잡아놓고 일을 안시킨다. 가만 좀 있소. 동무가 열쇠를 가지고 나한테 찾아왔던 동무가 아니요? 금고열쇠말이요, 그렇다. 옳소. 알만하오, 알만해. 하하하, 그렇구만, 어서 말하시오. 그때 려관에 있다던 그 강철기사, 옳소, 그때 나도 만나보았소. 그 사람이 반동이라고 한다? 반동이든 뭐든지간에 강철을 뽑아 정대를 만들어야겠다. 승인해달라. 알겠소. 곧 대책을 세우겠소. 알만하오. 미안할것이 뭐가 있소. 우리는 그때 약속하지 않았소. 애로가 있으면 아무때나 전화를 해도 좋고 찾아와도 좋다고 알겠소, 알겠소.》

그것으로 전화는 일단 끝났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앞서보다 완전히 기분을 달리하시였다.

《또 다른 의견이 하나 제기되였습니다. 신창탄광 로동자는 반동이든 뭐든 그것은 후에 재판할셈치고 지금 당장은 특수강을 만들수 있는 사람은 강병철기사 한사람뿐이니 우선 그것을 만들고 보자고 합니다.》

그이께서 최준걸에게 시선을 보내시였을 때 그는 《그렇게도 할수 있을것입니다.》하고 송구스러운 낯을 지으며 대답하였다. 그러나 오기섭은 그와 정반대였다.

《그런 실패와 모험은 한번이면 충분한것이지 그것을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우리 나라에 그런 로가 다섯손가락안에 드는데 그것을 아이들 놀이감 다루듯할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역시 오기섭의 표정과 몸가짐도 최준걸이 못지 않게 근엄하였고 또 그것으로써 자기 견해에 대한 확신성을 충분히 나타내고있었다.

《좋습니다. 돌아들 가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하나의 현상을 놓고 립장이 두 극단으로 달아나고있어서 불쾌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런 기색은 전혀 나타내지 않으시고 두 보고자를 자연스럽게 돌려보내시였다.

이때는 벌써 그이의 심중에 확고한 결심이 지어져있었다. 직접 가서 알아보자. 언제나 최상의 방법은 누구의 말을 따르는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알아보고 결심하는것이다. 그것은 오랜 시일에 걸쳐 그이께 형성된 하나의 공고한 방식이였다. 이전에 군사행동을 위주로 할 때도 그러하였고 얼마전에 철도공장사건때도 또한 그런것을 느끼시였다. 그때도 김책을 대신 내보내서 사태를 수습하게 할수 있었는데 직접 나가보니 결국 누구를 대신하게 하지 않은것이 천만번 옳았다는 생각이 드시였던것이다. 방금 박창술이가 요구해온것만해도 그렇다. 누가 옳고그른가는 차후에 판가름한다치고 당장 혁명의 요구를 외면해서는 안된다는것이다. 이것은 로동계급의 사심없는 정당한 목소리이며 요구이다.

밤은 벌써 깊었다. 좌현이는 벌써 두번이나 찾아들어와 식당의 안명숙이 아직 기다리고있다고 알리였다. 그러나 한 인간, 한 인테리의 운명이 어떻게 될것인가 하는것을 저울질하는 이 마당에서 쉽게 물러서실수가 없었다. 한 인테리에 대한 운명이자 곧 우리 혁명에서 지식계층에 대한 태도로 될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창가에 다가서서 거리를 내다보시였다. 들끓던 거리도 벌써 정적이 깃든지 오랜데 희미한 외등만이 그물그물 졸면서 텅빈 길바닥을 지키고있다. 사람이 생겨나서 수수만년 살아오는동안 그들은 이른바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를 써왔던가, 하여 철학이라는 학문을 생각해내서 진리라는 기준을 발견했으며 또한 법률과 륜리를 동원해서 생활의 착오를 막고 균형을 유지하고있다. 자연을 향해서는 수많은 측정계기들과 도량형기들을 만들어 편향과 오차를 없애고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인간은 아직도 시작한 그때와 별로 다름없이 공정성을 기하기가 그토록 어려운것인가. 그것은 사람에게 특유한 감정이라는것이 있어서 그것을 항상 어느 한쪽에 올려놓게 되기때문이 아닐가, 그렇다면 강병철에 대해서 나는 어느쪽에 더 치우치게 되는것일가. 처음 강병철을 만났을 때 그는 주저함이 없이 내 나라의 강철을 위해서 한몸바치고싶다고 하였다. 이때 그의 눈은 긍지에 넘쳐 빛나고있었으며 온몸은 걷잡을수 없이 흥분되여있었다. 그때 그의 눈에는 그 무엇인가 의욕에 차있었으며 선량하고 정직한것이 비껴있었다. 또한 그의 표정에는 가식이 아니라 진정이 그리고 그 어떤 리기적인것이 아니라 정의로운것에 대한 희생의 각오가 력력히 어려있었다.

그 당시 나는 그를 믿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전에 감정은 벌써 그를 끝없이 믿고있었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던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인테리를 대하였지만 언제나 그러하였으며 그 립장은 오늘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물론 개중에는 리종락이와 같은 배신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극히 보잘것 없는 부분적인 현상이고 그것으로 해서 사람들을 이단시해야 한다는 근거를 이끌어낼수는 없다. 성공을 해도 사람을 믿다가 성공을 하고 설혹 실패를 한다 해도 사람을 믿다가 실패하면 여한이 없을것 같다. 그렇다면 강병철은 어째서 믿을수 없으며 믿었다 한들 무엇이 잘못으로 될수 있는가. 그런데 최준걸이나 오기섭이 제기한 그대로 《본인이 고의적》으로 한것이 틀림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얼마 넓지 않은 방안을 몇번이나 거듭 오가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