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1

 

제 9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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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권이와 함께 평양종로인민학교를 돌아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예정했던대로 종합대학창설을 위한 협의회를 가지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회의가 시작되자 인차 만족해서 웃음을 지으시였다.

그렇게 되자 탁자에 둘러앉았던 종합대학창설 기성회성원들의 얼굴에도 모두 기쁨이 어리였다. 그러나 안동권이만은 빗살주름이 선 입술을 굳게 다문채 꼿꼿이 앉아서 침묵을 지키고있었다. 안동권은 순수 학자이다뿐이지 누구와 교섭을 한다든지 어떤 집단을 움직이는것과 같은 사회사업은 전혀 해본 일도 없고 그자신이 하려고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 종합대학을 내올데 대한 구상을 하나 만들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시여 이자리에 앉게 되였던것이다.

《선생님! 자세히 보면 기성회성원모두가 다 하나하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성회명단을 들어보이시며 김일성동지께서는 바로 정면에 앉아서 시종 정중성을 지키고있는 안동권을 향하여 말씀하시였다. 《교육자도 있고 사업가들도 있으며 종교인들도 있습니다. 이만하면 각계각층 인민들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할수 있고 크게 힘을 쓸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이께서는 명단의 앞머리에서부터 차례로 다시한번 더듬어나가시였다. 최만식, 장성춘, 박창건, 리덕준 등 34명을 하나하나 짚어나가시였다. 그다음에는 대학에 두어야 할 학부와 학제 그리고 보장부서를 꾸릴데 대한 기구를 내놓으며 따라서 학교창설과 관련한 총예산안이 발표될 차례였다. 그러나 안동권은 처음에 앉았던 꼿꼿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만족해하시는 장군님의 얼굴만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고있었다.

《안동권선생! 말씀해보십시오.》

김일성동지께서 권고하시자 그는 고개를 약간 숙여 무언의 인사를 차린 다음 전혀 발언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얼굴이 차츰 하얗게 되더니 나중에는 입술이 푸르러지며 턱이 알릴락말락 떨리였다. 방안의 시선이 모두 쏠리였는데도 그는 좀체로 움직일 엄두를 못내고있었다.

《아니 몸이 괴로운것이 아닙니까?》

그이께서는 당황한 빛을 보이면서 물으시였다.

《아닙니다! 아무일도 없습니다.》

안동권의 대답은 명확하고 또릿또릿하였다. 그러나 그 매 음절들은 마디마다 불안하게 떨었다. 다시 몇분동안 시간이 흐른 뒤에 안동권이 몹시 난처해하며 일어나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떼였다.

《나는 오늘 이 기성회모임이 있기전에 장군님을 사전에 만나뵙고 저의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길가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여 종로소학교를 같이 다녀오는동안 저의 마음은 달라졌습니다. 그렇게도 의욕에 차있고 열정이 끓고계시는분에게 아무리 진실이라도 사실대로 말씀드림으로써 실망하게 만들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입을 다물기로 했었습니다. 긴 설명을 할것없이 한마디로 말하면 현재 평양에 종합대학을 내올 가능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첫째리유는 자금원천이 보이지 않기때문입니다.》

방금전까지 웃음을 짓고계시던 장군님의 밝은 얼굴에 불안과 초조의 빛이 한순간에 어리였다.

《어서 생각한것을 죄다 공개하십시오. 가능성 불가능성을 다 말씀하시오. 들어봅시다.》

잠시동안 생각해보던 안동권은 제낀옷 속주머니에서 서류묶음을 꺼내들더니 《첫째 학제편성》하고나서 공학부, 생물학부, 의학부, 문학부 등등 10여개의 학부를 꼽았고 그에 뒤이어 둘째 셋째하면서 무슨 학부에는 무슨 연구소, 무슨 학부에는 무슨 실험실습실 하며 렬거하였다. 나중에는 후방경리부서구성안과 총예산안이 나왔다. 건물로는 신축하는 경우에 최저한으로 줄여서 5만평방은 당장 지어야 할것이라고 하였다.

안동권은 더 많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던지 서류를 접어 탁자우에 놓고 조용한 목소리로 보태였다.

《장군님! 문제는 자금입니다. 자금에 대한 안이 서지 않으면 저의 안은 더이상 론의할 가치가 없습니다. 여기저기 분산시켜 기존건물을 리용한다쳐도 그것들을 보수하자면 헐잡아도 수만원은 당장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단 1전도 없는 형편입니다. 초보적으로 안을 잡아보았는데 시제당장 교사가 10개는 있어야 하겠습니다. 제가 알고있는데 의하면 하바드, 옥스포드, 로모노쏘브, 도꾜, 캠브리치 등 대학창설기금이나 그 운영자금은 후진국가 하나의 년간예산만한것이 요구되였습니다. 우리가 당장 그렇게 하자는것은 아니지만 이 대학들은 교원이나 연구사만도 대체로 l 000명이 다 넘습니다.》

자기의 제기가 어떤 반향을 일으키고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안동권은 처음에 장군님을 그다음에는 10여명으로 된 기성회대표모두를, 다시 그다음에는 장군님의 왼쪽옆에 앉은 김책을 둘러보았다. 역시 그들모두가 자기가 제기한대로 자금이 걸린다는 한결같은 표정을 보이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명단뒤에 별지로 붙은 예산서를 보고계시다가 고개를 돌리며 《만약 교사를 전부 신축한다면 얼마나 돈이 들겠습니까? 그 계산서는 여기에 왜 보이지 않습니까.》하고 물으시였다.

《전부 신축한단말입니까?》하고 안동권은 좌우를 다시 둘러보았다.

기성회대표들은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으로써 다시금 견해가 명확해진 안동권은 주저없이 자기 의견을 말씀드릴수 있었다.

《처음 모였을 때 우리는 가능성여부는 고려없이 신축안을 토론하였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가지는것은 좋으나 현시점에서 불가능한것을 제기할 필요가 없다는데 의견일치를 보았습니다.》

《불가능하다는 리유는 무엇입니까?》

《자금을 누가 대는가 하는것입니다.》

《역시 자금입니까?》

《방도는 두가지가 있었습니다. 몇명의 자본가가 재산을 전부 털어내놓는 방도가 하나 있고 그다음에는 적산을 불하해서 자금을 조성하는것인데 현재로서는 어느것이나 다 믿음성이 덜합니다.》

《그것은 옳습니다. 우리는 어느 자본가가 투자하는 대학을 세울수 없습니다. 또 일제가 내던지고 간것을 긁어모아 대학을 세울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명실공히 인민의 대학을 우리자신의 힘으로 세우자고 합니다.》

《그래서 기존건물 리용안이 나왔습니다.》

《그렇게도 할수 없습니다, 안선생!》

순간 안동권은 얼떠름해졌다. (이이상 더 좋은 안을 생각해낼수 없습니다.)라는 그의 속마음이 온 얼굴에 력력히 내비치고있었다.

미소를 띠신 김일성동지께서는 기성회대표들을 천천히 둘러보시고나서 힘을 주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평양에 인민의 대학을 내오자고 결심하였습니다. 때문에 인민의 애국적열의가 한데 집결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향학열이 매우 높은 슬기로운 민족입니다. 물지게를 지고 삯바느질을 해서 자녀를 공부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인민에게 호소해서 한사람이 기와 한장, 벽돌 한장씩이라도 내게 한다면 안되겠습니까. 인민들은 자기들이 지은 학교에 자기 자녀들을 보내는것을 좋아하지 어느 자본가나 일제의 재산으로 짓는것을 좋아할것 같지 않습니다. 또 우리가 지금 아무리 형편이 곤난하다 해도 나라와 민족의 백년대계를 짜는 마당에서 첫걸음부터 구차하게 시작할 필요가 없을것 같습니다. 인간의 지능을 발전시키고 인재를 키우는 일인데 무엇을 아낄 필요가 있겠습니까. 여기서도 역시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고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게 하면 안되겠습니까.》

온 방안을 울리며 일시에 탄성이 터졌다.

《장군님! 알겠습니다. 저희들은 그렇게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안동권의 주름진 턱이 사정없이 떨었다. 문제제기도 놀랄만치 간단명료하고 그에 대한 해결방법도 독특하다. 돈이나 자금이라고 한다면 곧 국고나 자본가의 투자를 념두에 두기마련인데 그이께서는 언제나 인민의 열의와 그 힘을 보시고 그에 의거하시는것이다.

《다음은 교수진을 어떻게 꾸리자고 합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안동권으로부터 시선을 평양제1중학교 교장선생에게 돌리시였다. 목이 기름하고 안경을 낀 교장은 사실은 그것이 자금보다 더 큰 난문제라고 하였다. 여기저기서 같은 의견이 터져나왔다. 십시일반으로 자금이나 자재를 내는것과도 다르고 힘으로 굼땔것도 못된다고 하였다. 그이께서는 교수진을 꾸릴 안이 적힌 명단을 펼쳐보시면서 난처하고 서글픈 기분에 잠기시였다. 이 문제를 대할 때마다 체험하시는것인데 참으로 숨막힐 정도로 사정이 딱했다. 사회과학과 자연과학부문을 다 포괄하는 학부와 강좌를 짜놓았지만 그것을 누가 담당하는가 하는 안은 서있지 못한것이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는것으로 일단 침울한 분위기를 돌려놓으시였다.

《토론해봅시다. 교사도 있고 교원도 다 갖추어진것을 가지고 학교를 내오자고 한다면 그거야 누군들 못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우리 기성회도 필요없는것이지요. 자! 의견을 내시오.》

같은 권고를 두세번 반복하였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 호상간에는 지칠 정도로 론의된 문제이기때문에 더이상 론의를 거듭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것이였다. 시간을 끌게 되자 안동권이 그간 론의된 내용을 개략해서 말씀드리고나서 장군님께서 좋은 안을 내주시기 바란다고 제기하였다. 회의장 분위기를 계속 지켜보고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내 의견을 듣자고 그럽니까?》하고 웃음어린 어조로 반문하시였다.

《그렇습니다. 그래 우리들은 교사도 그렇고 교원도 그러니 이불기장을 봐가면서 거기에 맞추자는 의견이 나왔던것입니다.》

《다른 문제면 몰라도 교원진을 꾸리는것이야 안동권선생이 누구보다 더 잘 알것이 아닙니까.》

《장군님,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교원이다뿐이지 학교를 세우거나 선생을 데려올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능력이라구요?··· 김책동무.》하고 그이께서 고개를 돌리시였다. 김책이 수첩에 무엇을 적고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안선생이 우리더러 교원을 꾸릴 안을 내놓으라는데 동무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완전히 립장이 바뀌였다고 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립장이 바뀌였습니다. 안선생은 직접 생동한 체험을 가지고있습니다.》

《보시오. 같은 의견입니다.》 그이께서는 담배갑을 앞으로 밀어주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문제는 어려울것이 없습니다. 안선생이 공업전문에 책을 보내고 오늘은 이자리에 나오기까지 했는데 그 과정을 생각해보면 방도가 서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이야기가 번져가자 안동권은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만치 도리머리를 저으면서 웃었다. 그렇게 되자 오히려 이야기는 더 활기를 띠게 되였다. 자리에서 일어나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방안이 더워서 창문을 약간 틔워놓으시였다. 그런 다음 다시 자리에 돌아오셨지만 앉지는 않으시고 선채로 말씀하시였다.

《그간 여러분들이 일을 많이 했습니다.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제는 우리 로동자, 농민의 자제들이 공부할 종합대학이 환히 내다보입니다. 이제부터는 교원을 꾸리는데 모를 박고 사업을 추진시켜야 하겠습니다. 교원을 꾸리는 방도는 다른것이 없습니다. 교원을 할수 있는 대상자를 다 조사등록하고 하나하나 설복하면 됩니다. 현재는 그 길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은것만큼 한 반년동안 기일을 더 가지고 준비를 착실히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사업에서 애로되는것이라든지 의문되는것이 있으면 말씀하시오.》

그이께서 조용히 자리에 앉으시여 좌우를 둘러보시였다. 그러자 오른쪽에 앉았던 제1중학교 교장이 일어섰다.

《좀 까다로운 문제지만 제기해보겠습니다. 수물과계통의 교원이 모자라는데 남조선에 가면 어렵지 않게 데려올 가망이 있습니다.》

《데려옵시다.》하고 그이께서는 뒤벽에 걸린 조선지도를 쳐다보면서 말씀하시였다. 《지금은 38°선으로 갈라졌지만 앞으로 통일되면 북이요 남이요 차별없이 평양의 종합대학은 우리 조선의 인재를 양성하게 될것입니다.》

즉석에서 동의를 받게 되자 모두 마음이 후련해지는데 교장은 《그런데 한가지 청이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해결하기 힘든것이기때문에 말씀올립니다만.》하고 주저주저하였다.

《어서 말씀하시오.》

《권총을 한 서너자루 주실수 없겠습니까?》

그이께서는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그건 뭣에 쓰자고 그럽니까?》

《다름이 아니라 38°선을 넘나들자고 해도 그렇고 깡패가 득실거리는 서울에 들어가자면 보신용으로 필요해서 그럽니다.》

역시 교장은 진지한 얼굴을 들어보이면서 바로 그것이 절실하다는것을 강조해보이였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뜻밖에 통쾌한 웃음을 터치시였다.

《하하하.》 호탕한 웃음소리가 방안공기를 흔들어놓았다. 《난 총을 달라기에 어떤 나쁜놈들이 학자들을 한데 가두어넣은 수용소에라도 뛰여들려나 생각했었습니다. 하하하.》 김일성동지께서는 웃음어린 목소리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이렇게 놓고보면 우리가 서로 마주앉아 의논하기를 참 잘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총보다 더 힘있고 믿음성있는것을 드릴가 하는데 어떻습니까.》

그이께서는 아직 선자리에서 어쩌지 못하고있는 교장에게 물으시였다.

교장은 면도자리가 푸릿푸릿한 턱을 만지면서 영문을 알수 없다는듯이 좌우를 둘러보고나서 대답하였다.

《총보다 더 힘있고 믿음성있다면··· 우린 그저 권총이면 된다고 봤었습니다.》

《아니 꼭 필요할수 있습니다. 총은 드리지 못하겠지만 그것은 이제라도 드릴수 있습니다.》

그이께서는 책상서랍에서 종이를 꺼내시더니 만년필로 그우에 글을 쓰시였다.

잠간사이에 글을 다 쓰신 그이께서는 도장에 인즙을 묻혀 종이장 한옆에 꾹 누르시였다.

《자! 이것입니다.》하시며 종이장을 들어올리더니 《위촉장》하고 큰소리로 읽으시였다. 위촉장본문에는 새 나라를 떠메고나갈 믿음직한 인재를 육성하기 위하여 평양에 종합대학을 창설하게 된다는 취지가 밝혀져있었다. 계속해서 이 영예로운 사업에 귀하가 큰 기여를 할수 있다고 보기때문에 전체 애국적인민의 이름을 대신해서 이 위촉장을 가진 사람이 찾아가게 될터이니 적극 협력해주기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좌우에 갈라앉았던 10여명의 기성회성원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뻐한것은 권총을 달라던 교장이였다. 그는 위촉장을 받아들고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를 한 다음 동료들을 향해 벌씬 웃었다. 역시 누구보다도 패기가 있고 담이 크다고 자부했던 그는 자기때문에 이런 혜택이 차례질수 있었다는 자랑을 은근히 내비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협의회를 끝마치면서 몇가지 문제를 다시 강조하시였다. 먼저 그이께서는 얼마전에 있은 교육부문 일군들앞에서 종합대학을 창설할데 대하여 말씀하신 내용을 재삼 강조한 다음 기성회안에 몇개의 담당부서를 내서 적극적으로 활동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 부서로서는 총무, 기획, 건설, 재무 등을 내오며 전국에 알리기 위해 신문에도 보도하자고 하시였다.

모임이 끝나고 모두 흩어지게 되였을 때 장군님께서는 문밖까지 따라나가 배웅하시였다. 그런데 안동권만은 장군님방으로 다시 따라들어왔다. 필경 무슨 긴요한 제기가 있거나 단독으로 만나야 할 일이 있을것 같아 김일성동지께서는 자리를 권하시고 자신께서도 새로운 기분으로 대하시였다. 얼마간 침묵이 흐른 뒤에 그이께서는 되도록 공식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먼저 다정하게 첫마디를 떼시였다.

《선생님, 그동안 수고가 많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이전에 선생님에게 서울로 가실 때는 가시더라도 종합대학을 내오는 안을 하나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었습니다. 결국 오늘로서 그 부탁이 완전히 실현되였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장군님의 말씀을 주의깊이 듣고있던 안동권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진심이 느껴지고 아울러 동정의 빛이 함뿍 어린 장군님의 시선과 마주친 그는 금시 가슴이 찌르르 울리는것을 감각하였다. 동시에 눈굽이 뜨거워나면서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장군님께서 방금 하신 말씀은 사실에 있어서 자기가 진작부터 하려던 말이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가 하고싶던 중요한 문제의 발단을 자연스럽게 떼려고 했던것이다. 그러니 좀 돌연하게 느껴질수는 있으나 가슴속에 깊이 묻어두었던것을 직발 꺼내놓지 않으면 안되였다.

《장군님!》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였다. 그럴만치 그는 흥분되여있었다. 《저는 오늘 이 방에 들어설 때까지만 하여도 제 마음을 어데다 깃들일지 모르고있었습니다.》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아 그이께서는 안동권을 의아쩍은 시선으로 쳐다보시였다.

《이제 말씀올리겠습니다. 저는 오늘 얼음장처럼 랭랭한 가슴을 안고 이 방에 들어섰댔습니다. 종합대학 기성회나 기구안을 만들기는 했지만 그것은 하나의 리상적인 목표일뿐이고 실현성은 전혀 없는것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저는 평양에 종합대학을 내오겠다는 장군님의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 크게 감동이 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도 그랬지만 후에 곰곰히 따져보니 그것은 안동권이라는 인테리 하나를 매혹시켜 여기에 눌러앉히기 위한 약속으로는 충분하지만 전혀 실현해낼 가망이 없는 공허한것으로 보았습니다. 원래 물리를 하는 사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격언을 인정 안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자리에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불가능이 가능으로 전환되였습니다. 이것은 듣기 좋게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이제 건국도상에 부닥칠 모든 난관과 애로가 이렇게 해결될것이라고 생각하니 이 늙은 가슴에서도 피가 끓습니다.》

안동권은 말을 중단하고 염낭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였다. 상대편의 일거일동을 주의깊이 지키고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재털이를 집어 앞으로 내놓으시며 아직 밑을 들여다보기에는 까마득한 한 지식인을 친근하게 바라보시였다.

뜻밖에도 안동권은 담배 한대를 다 태우고나서 불을 끄더니 《장군님!》하고 쳐다보면서 《제가 할 말은 다 했습니다.》 하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말씀하는 의도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것을 저는 저에 대한 기대와 고무로 받아들이겠습니다.》하고 만면에 웃음을 띠우시였다. 그런데도 안동권은 긴장을 풀지 않은채 제낀옷 속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끄집어내였다.

《이것을 보십시오.》 안동권은 속지를 뽑아 장군님앞으로 돌려놓고 말하였다. 《미군정청에서 저를 서울대학 학장으로 부르는 초청장입니다.》

《그렇습니까?》하고 그이께서는 속지를 밀어내놓으면서 약간 고개를 기울이시였다. 《그런데 이것은 저와 아무런 관계가 없잖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나의 인생행로에서 하나의 분기점을 이룬다고 보았습니다.》

안동권은 편지를 집어들면서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한것이 만족해서 그랬던지 아니면 좀 어색해서 그랬던지 알수 없지만 어쨌든 그는 평온한 기분에 잠겨 인사를 남기고 문을 나섰다.

안동권은 거리에 나서서 어둑어둑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방금전에 내놓았던 편지와 봉투를 갈기갈기 찢어서 하수도 도랑에다 뿌려던졌다.

때마침 불어온 한줄기 바람이 종이쪼박들을 허공으로 아득히 날려보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