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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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동지께서는 펜을 드시였지만 종시 글을 써내실수 없었다. 집행위원회에 제기할 토지문제에 대한 보고서를 쓰시는데 썼다는 지우고 또 썼다는 지우군 하시였다. 종이장우에도 박원식의 얼굴이 보이시고 참고자료나 서적을 번지여도 거기에 또 박원식의 웃는 얼굴이 떠오르군 하시였다. 무시로 문득문득 이렇게 나타나서는 사색을 헝클어놓는것이다. 박원식과 영결하신지도 벌써 한주일이 된다. 하지만 가슴에 패인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고 무시로 통세를 일으키는것이다.

모란봉 동쪽켠 릉라도가 내려다보이는 아늑한 기슭에 푸른색이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겨울이건만 이제 새봄이 오리라는것을 믿고 감빛으로 물들어버린 떼장을 덮어 분묘를 지어주었다. 이제 봄이오면 박원식이가 그렇게도 그리던 평양의 봄이 그의 분묘앞에 활짝 펼쳐질것이다. 꽃도 피고 새도 찾아올것이다.

그이께서는 책상두리를 몇바퀴 돌다가 다시 방향을 바꾸어 방안을 대각선으로 걸어갔다가 다시 걸어왔다 하시였다. 이것은 깊은 사색에 잠기실 때 흔히 하게 되는 하나의 습관이였지만 이번만은 사색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될수록 깊은 망각속에 잠기고싶으시여 하는 몸가짐이시였다. 그러나 이것이 헛된 일이라는것을 그이께서도 모르지 않으시였다. 기쁜 일이 있을 때에도 모든 전우들속에 박원식이 빠지지 않았는가 살피게 되였고 슬픈 일이 있을 때면 또 그를 끝까지 위로하지 않고는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는 그이시였던것이다. 철도가 걸리였을 때도 박원식이, 양춘만을 데려오기 위해서도 박원식이였다. 때문에 10여년동안 생활과 정서의 관성을 띠고 거침없이 굴러가던 바퀴를 순간에 멈춰세워낼수 없다는것을 잘 아시였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보시는것이였다. 방안을 거닐으시기를 벌써 30분이상인데 이제 얼마나 더 계속될지 아실수 없었다.

문기척소리가 났다. 그렇지만 그이께서는 잠시동안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얼마후에야 문을 열고 내다보시였다. 문밖에는 김책이 서있었다.

《들어오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되도록 내색을 보이지 않기 위해 김책의 팔을 붙잡고 들어와 안락의자에 앉게 하시였다. 《무슨 일입니까?》하고 물으시며 바로 그옆 쪽걸상에 앉으시였다. 어느 하루 사업토의를 건늰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김책은 언제나 중하고 긴요한것만을 가지고 찾아오군 했던것이다. 김책은 의자에서 일어나 허리를 펴고 단정히 서더니 나직이 말을 떼였다.

《강선제강소의 양춘만이 나타났습니다.》

《양춘만이?》

그이께서는 반사적으로 받아읽으시였다.

《그렇습니다. 박원식동무가 서울에 데리러 갔던 강철기사 그 사람입니다.》

그이께서 이미 알고도 남음이 있는 이름을 정확하게 확인하실수 있게 약간 설명을 첨부해서 시간을 끄는것이다.

《양춘만이가 어디에 나타났습니까?》

그이께서는 흠칫 놀라는듯한 표정을 지으시였다가 인차 본래의 기분으로 돌아가며 매우 실무적으로 물으시였다.

《아침에 저한테 찾아왔습니다. 한 둬시간동안 담화를 하였습니다. 혹시 직접 만나시지 않겠는가 해서.》

《그렇습니까.》

그이의 음성은 전에없이 푹 가라앉았다. 그러나 김책은 다른 때 흔히 그러한것처럼 《만납시다. 만나야지.》한다든가 《어서 오라고 하시오.》 또는 《내가 가겠소.》하는 등의 말씀이 있을것으로 알고, 잠간 사이를 두어 기다리고있었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김책을 등지고 잠간 서계시다가 다시 걸음을 떼여 방안을 거닐으시면서 한동안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였다. 그것은 참말 뜻밖이였다. 벌써 오래전부터 그이를 모셔온 김책은 여적 이런 일이 한번도 없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더구나 그이께서 그렇게도 바라시던 양춘만이기때문에 그 놀라움이란 한층 더 컸던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 더이상 물을수도 없어서 침묵을 지킨채 기다리였다.

몇분동안 시간이 흐른뒤에 김책이앞에 걸음을 멈추시더니 《그래 어떻게 되여 찾아왔다고 했습니까?》하고 물으시였다.

이렇게 되자 김책은 한층 더 정신을 긴장시켜 양춘만이 찾아온 전과정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게 되였다. 사연인즉 이러했다.

김책이 자기 방에 앉아서 전화를 받고있는데 앞방에서 좌현이의 고함소리가 들리였다.

《당장 죽여놓고말테다. 너는 총살이야!》

뒤이어 권총소리가 《빠방!》하고 귀청을 째였다.

송수화기를 책상우에 집어던지고 달려나가니 좌현이가 권총을 뽑아들고 공포를 쏘며 어느 한 사나이에게 달려들고있었다. 어간에서 말리는것은 얼굴색이 새까맣게 죽은 경위대원 최동무였다.

《저놈, 저 악독한놈, 너는 이 총에 죽어야 해. 양춘만이! 당장 박원식을 내놓으라. 네놈이 우리 박원식을 죽였지.》

넋을 잃어버린 좌현이는 기어코 쏴갈기겠다는 기세로 최동무를 떠밀면서 권총을 내두르고있다.

《좌현이! 이게 뭐요.》

김책은 엄하게 소리치며 좌현이앞에 막아섰다. 그렇게 되자 좌현은 마루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울기 시작하였다.

《원식아! 양춘만이 찾아왔다. 원식아! 으흐흐.》

비통한 울음소리가 방안을 울리였다. 그는 숨도 바로 내쉬지 못하고 끅끅 갑자르고있다.

처음에는 당황하였지만 좌현이의 한두마디의 웨침으로써 사연을 넉넉히 알게 된 김책은 방한복판에 떡 버티고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한편 방구석에 무릎을 꿇고앉았던 양춘만이 김책의 앞으로 나오며 고개도 들지 못하고 무어라고 융얼융얼하였다.

《···저를, 저를 이자리에서 죽여주십시오.》 한참동안이나 뭐라뭐라 또 하다가 고개를 들더니 《제가 박원식선생을 죽였습니다. 저때문에 박선생이 희생됐습니다. 저는 이 죄를 갚을길이 없습니다. 이자리에서 저는 총에 맞아 마땅합니다.》라고 하면서 양춘만은 이마를 방바닥에 굴리고있다.

누구만 못지 않게 적개심이 끓어오른 김책은 얼굴이 하얀 양춘만을 훌쩍 들어일구더니 의자에 앉아 자세한 사연을 말하라고 하였다. 그렇게 되자 최동무는 좌현이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의자 한끝에 겨우 몸을 의지한 양춘만은 고개를 숙인채 말이 없었다.

《무엇때문에 여기 왔소. 어서 말하시오.》

양춘만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또다시 《어서 말하시오. 왜 왔는가?》하고 다그었지만 그래도 대답이 없다.

이윽해서 양춘만은 고개를 들었다. 꼬리가 치켜올라간 그의 예민한 눈이 김책을 포착한채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말은 하지 않았다. 김책은 발을 벌려디디고 서있고 양춘만은 그를 쳐다만보고있을뿐이다. 양춘만은 진정 할말이 없었다. 여기를 찾아왔다는 그자체가 립장을 다 설명한것으로 되며 박원식이 자기때문에 희생되였다고 말한것으로써 자기의 각오가 완전히 표현된셈이였다.

양춘만은 강선에서 안해를 만난 다음날 중화에 있는 삼촌네 집에 건너갔었다. 그는 거기 있다가 서울에서 왔다는 사나이를 만나 민기환이와 영영 결별하고 그길로 박원식을 찾아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소문을 들었다. 사경에 이른 박원식을 실어갔다고 하였다. 너무나 놀랍고 공교로와 박원식이 총에 맞았다는 그자리에 가보기까지 하였다. 풀섶이 이겨지고 피흘린 자리를 흙으로 묻어놓았다. 그는 그자리에 몇시간동안 앉아서 강선에서 서울로, 서울서 평산으로 다시 중화를 거쳐 강선으로 돌아온 로정을 하나하나 회상하였다. 박원식을 처음 만났을 때 가슴이 떨리던것이며 술을 먼저 마셔보던 그 순박한 얼굴 그리고 뒤따라오며 소리치던 평산벌이 생동하게 떠올랐다. 양춘만이 분연히 고개를 들고 일어나 평양에 오니 박원식은 영원히 가고 스스로 발길이 여기에 와닿았던것이다. 그래 방문에 들어서자 그는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대상을 가릴새도 없이 문칸에 있는 좌현에게 《나는 양춘만입니다. 박원식선생을 희생시킨 죄인으로 찾아왔습니다.》라고 했었다.···

시간이 30분이상 흘렀지만 양춘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있다가 이윽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사죄하려고 찾아왔습니다. 물론 저의 죄가 너무 크기때문에 렴치없는 행동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 저는 이 길밖에 없습니다.》

한껏 비약하고 함축된 그의 심리가 이렇게 짤막하게 표현되였다.

《무슨 죄를 그렇게 크게 지었는가요?》

김책이도 역시 복잡한 과정의 설명이 없이 상대방이 표현하려는 의사의 핵을 내놓으라고 하였다. 양춘만은 이미 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있었던 모양이여서 즉시에 얼굴을 들고 말하였다.

《대답하겠습니다. 첫째로, 저는 왜정때 일본놈들에게 충실히 복무한 기사입니다. 둘째로, 저는 자기 일터를 버리고 서울로 도망을 쳤습니다. 나자신이 자기가 지은 죄로 해서 일본놈의 편에 자기를 세운것입니다. 셋째로, 박원식선생이 저를 찾아왔을 때 평산까지 오다가 도망을 쳤습니다. 그것은 제가 박원식선생의 말을 믿지 않았기때문입니다. 이것이면 저는 어떤 극형을 받아 마땅한놈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이 죄를 스스로 씻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박원식선생을 찾았는데 그 선생은 이미···》

마치 잘 다듬어진 어떤 법조문같은것을 한번도 더듬지 않고 줄줄 내리외우던 그가 갑자기 눈을 싸쥐며 흐느껴울기 시작하였다.

《무엇이 어째? 이 인간답지 않은것!》

김책의 고함소리가 방안공기를 또다시 왈카닥 흔들어놓았다. 참고참았던 울분이 가슴을 터치고 뿜어나온것이다. 하관이 빠르고 억세게 생긴 그의 턱이 후두두 떨었고 손은 권총이 달린 허리를 더듬고있었다.

《그래 당신도 사람이요. 말해보오. 당신도 지각이 있는 인간인가 말이요. 우리는 당신때문에 10여성상 피바다를 같이 헤여넘어온 전우를 잃었소. 이 상처가 언제 아물겠는지 모르겠단말이요. 하루에도 몇차례씩 전투를 할 때라면 몰라도 지금 해방된 이 땅인데 이건 너무하지 않소. 그러나 우리가 당신을 보고 격분하고 중오하는것은 그것만이 아니요.》

주먹을 우쩍 쳐들었다가 책상을 탕 내리치면서 김책은 고개를 숙이고있는 양춘만을 쏴본다. 언제나 소박한 기운이 어려있던 그의 눈에 물기가 어리더니 푸른빛이 번쩍하였다.

《당신은 혼자 살겠다고 처자를 버리고 도망쳤지. 고열이 나서 바들바들 떨고있는 자기 자식을 내버리고말이요. 양춘만이! 가시오. 당신이 갈데로 가란말이요. 우리는 인간이 하도 불쌍해서 당신을 찾았댔소. 어린 아이와 그 어미가 불쌍해서말이요. 솔직히 말하면 당신이 팽개치고 간 당신의 아들을 누가 살려놨는지 알기나 하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일웅이 입에 죽물을 떠넣으시였소. 병원에서 아이를 안고 밤을 새시였소. <이 아이를 보오. 내가 안으니 이렇게 잠들지 않소. 아마 아버지품이 그리운것 같소.>하시며 아이를 얼리였고 그 이튿날에 박원식을 떠나보내시였소. 그런데 양춘만이 당신은 서울서 잠이 오던가? 찾으러 갔는데 오다가 왜 내뺐는가 응? 내 여직까지 별의별 인간을 다 보아왔지만 당신처럼 인정이 없고 악독하고 렴치없는 사람은 보다 처음이요. 박원식이 살아있더라면 좌현이처럼 공포를 놓지 않고 당신의 그 너절한 머리에 대고 쐈을거요. 우리는 당신네한테 빚진것이 없기때문에 이제 다시는 같이 가자고 구걸하지 않겠소.》

언제나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던 김책이건만 끝없이 규탄도 하고 설분도 터뜨리였다. 그럴수록 양춘만은 숨소리마저 죽이고 꼿꼿이 고개를 숙인채 앉아있었다. 이윽해서 김책은 의자에 앉았다.

침묵이 계속되였다. 김책은 더이상 물을것도 없고 그에게 설명하거나 권고할것도 없었다. 다시 시간을 끌다가 이렇게 물었다.

《그래 당신이 우리한테서 바라는것이 도대체 무엇이요?》

《바라는것말입니까?》하고 반문하였다. 양춘만은 질문의 뜻을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나 뜻밖이였기때문이다. 양춘만은 자세를 바로하더니 수건으로 눈굽을 닦은 다음 짓씹던 입술을 천천히 움직여 말을 떼였다.

《저에게 바라는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저는 죽어도 좋습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것뿐입니다. 그러나 소망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박원식선생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양춘만에게 전하라는 말을 옮기겠습니다 하고 선생은 수첩에 적은것을 또박또박 읽어주었습니다. <우리는 양춘만기사가 강선제강소에 하루빨리 돌아와 강철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양춘만기사가 돌아오기를 바라는것은 강철이 필요한데도 있지만 그보다는 일제에게 얽매인 한 인테리의 사상과 지식을 완전히 해방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저의 외람된 소망은 이 양춘만이가 김일성장군님의 이 말씀을 정확하게 전해들었다는것을 직접 장군님께 말씀드려달라는것뿐입니다. 이외에 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양춘만에 대해서 김책은 이외에도 많은것을 말했지만 그것들은 모두 부차적인 세부들이며 따라서 중요한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김책은 방금 전한 한 인테리의 진정한 뉘우침을 타고 흐르는 심각한 자기 변화 그리고 다시한번 가슴을 조이는 박원식에 대한 추억, 그것만으로도 김일성동지의 심금을 크게 흔들어놓을것으로 짐작하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뜻밖에도 이미 가지시였던 그 감정과 기분을 그대로 유지하고계시였다. 다만 약간한 변화를 보였다면 설명을 다 들으신뒤에 《그러니 끝내 그는 우리한테 돌아온것이지요?》하고 무등 기쁨을 가지고 하셔야 할 말씀을 서글픈 심정으로 말씀하시는것뿐이였다.

그이께서는 자리를 뜨시여 창문가로 다가가시였다. 2∼3초 밖을 내다보시다가 돌아서시여 김책이와 마주서시였다.

《그럴수 없소. 그럴수 없지.》 그이께서는 방한복판 탁자옆에 서서 김책을 쳐다보시였다. 《박원식동무가 양춘만을 만나기전에 내가 먼저 만날수는 없지 안돼. 그건 안돼.》

그이의 눈에서는 번개불같은것이 번쩍하였다. 언제나 사색이 깃들고 온몸에서 끓어번지고있는 정열을 한껏 내비치고있던 억실억실한 눈에 처절한 빛이 언뜻 나타났다.

《그렇게 합시다, 김책동무!》하고 그이께서는 붉게 충혈된 눈을 들어 쳐다보시였다. 《사죄할것이 있어도 강선의 로동자들한테 가서 하게 하고 어떤 소망이나 결의같은것을 표명할것이 있어도 그 로동자들앞에서 하도록 합시다. 그런데···》 그이께서는 잠간 사이를 두었다가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박원식동무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무척 기뻐도 했을것이고 그와 나누어야 할 이야기도 많았을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는 지금 없습니다. 박원식동무를 대신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단말입니다.》 그이께서는 이때 자신의 심장이 울리는 소리를 들으시면서 《양춘만을 돌려보내시오. 나는 후날에 기회가 있을 때 만나보겠습니다. 장마당에서 사온 그의 책을 가져가라고 하시오.》하고는 창문가에 또 다가서시였다.

《알았습니다.》

김책은 문밖으로 나갔다.

그이께서는 이때 양춘만을 따라가다가 총에 맞은 상처를 가리우기 위해 길을 많이 걸어 발이 부르텄다고 하던것을 상기하시였다. 그러고나서 태연하게 철도에 나갔고 철도에 가서는 한명구가 갈길을 대신해 갔던것이다.

《박원식동무! 동무는 어쩌면 그렇게 사람이 모진가. 차라리 엄살도 있고 얼마간 미련한 점이 조금이라도 있었다 해도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는 않겠는데···》

그이께서는 기관구에 나가시였을 때 땅바닥에 금을 그으면서 박원식에게 쌀이 있고 기관차가 있는데 굶는다는것이 말이 되느냐고 단호히 말씀하신 그때의 기분이 좀 지나치지 않았는가 하고 후회도 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시였다. 눈물이 끝없이 솟아올랐다. 병원에서 그가 숨을 거둘 때에도, 그의 령구우에 흙을 뿌릴 때에도 그리고 그 미망인 필남이를 만나 위로할 때에도 그이께서는 혀를 짓씹으며 눈물을 보이지 않으시였다. 그러나 그에게 응당 차례져야 할 기쁨이 다가온 지금에는 정녕 자신의 의지로써도 감당하실수 없는 슬픔이 북받치시였다.

(우리들이 가장 기뻐했던것이 어떤 때였던가.)하고 그이께서는 생각해보시였다. 적을 종횡으로 무찌르고 도시나 마을을 해방하고 환호성이 터질 때 무척 기뻤다. 적의 포위속에 들었다가 과감하게 돌파구를 열고 전원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그때도 기뻤다. 그리고 영원히 다시 만날수 없으리라던 동지가 문득 찾아왔을 때 그때도 역시 그러하였다. 하지만 그 모든것은 혁명진지안에서 생겨나는것이며 아무리 그 감정의 용량이 크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박원식이가 양춘만을 데려왔다는것과 같은 이를테면 새 사람을 얻었다는것, 전우를 하나 얻게 되였다는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양춘만이 나타났다고 했을 때 그 기쁨은 한순간에 분노와 슬픔으로 바뀌여지고말았던것이다. 그것은 취득과 상실에 의한 차이에서 오는것도 아니며 더구나 인정이 불러오는 과민한 정서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혁명임무를 수행하지 못한것으로 해서 자기 입으로 《실패》했다고 말한채로, 그 《과오》라는것을 안은채 우리곁을 떠났기때문이였다. 림종에 이르렀을 때 혁명을 위해 한생을 바쳤다는 긍지와 보람을 안는것은 혁명가에게만 간직되는 가장 숭고한 감정이다. 한데 그 한구석에 《과오》라는것을 남기고있다면, 그것이 또한 본의아니게 크게 오해된것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더구나 지금처럼 《과오》라는 자리에 큰 영예를 놓아줄수 있는데 그것을 본인이 모르게 된다면 얼마나 절통한 일인가.

그이께서 시선을 돌리였을 때 책장안 맨 밑칸에 놓인 놀이감권총을 띠여보시였다. 박원식이 만들다가 채 완성하지 못한것이 거기에 있었다. 그이께서는 요새 하루에도 몇번씩 그것을 볼 때마다 박원식을 생각하군 하시였다. 그럴 때면 그것을 보이지 않는데 치워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종시 그렇게도 못하시였다.

《원식이! 양춘만이 찾아왔소. 양춘만이!》

그이께서는 수건으로 연방 눈굽을 훔치시였다. 그러나 끝없이 눈물이 흘렀다. 가슴은 벅찬데 무엇이라고 그에게 할 말을 찾으실수 없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화락하니 젖은 수건을 염낭에 쑤셔넣고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전화통을 더듬어잡더니 흥남비료공장을 찾으라고 지시하시였다.